[남다은의 환등상자] 세상의 모든 계절
지질학자 톰(짐 브로드벤트)과 심리 상담가 제리(루스 신)는 함께 산 지 적어도 30년은 되어 보이는 부부다.
먼저 퇴근한 배우자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주변인들을 걱정하며 잠시 서로의 행복을 확인하고, 가끔씩 방문하는 아들을 기다린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주말농장에 가서 함께 식물을 가꾸는 이 부부의 일상은 평화롭긴 하지만, 별반 낯설지 않고 평범하다.
부부는 종종 혼자 사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신세한탄이 뒤섞인 술주정을 받아주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어김없이 자신의 외로움을 추하게 드러내며 고요한 부부의 집에 소란을 더한다.
부부는 언제나 돌봐주고 위로하고 들어주는 자들 쪽에 선다. 별다른 사건 없이 그저 불행한 친구들의 방문기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의아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마음 좋은 부부는 물질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확연히 불균등한 이 관계를 과연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부부는 둘만의 삶의 울타리가 침범되는 것을 어떻게 이토록 관용할 수 있는가.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며 던지게 되는 위의 물음들은 그것이 마치 이웃에 대한 인간의 이타성에 계산기를 들이민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기분은 영화의 핵심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살아온 것처럼 보이던 노부부의 삶은 그들이 집에 못난 친구들을 들일수록 빛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부부의 평범함이 비범하게 읽히기 시작하는 건, 그 곁에 평범함조차 꿈꾸지 못하는 군상들이 얼씬대면서부터다.
행복은 불행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시권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많은 경우, 행복과 불행은 절대가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다. 톰과 제리 부부의 행동이 그걸 의식한 결과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부부는 친구들의 외로움에 지친 푸념을 듣는 와중에도 틈틈이 둘만은 그 외로움의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음을 눈빛으로, 손길로, 혹은 대화로 확인한다. 혹은 부부가 주선한 친구들과의 파티에서도 부부의 세계는 엄밀히 말해 친구들의 궁상맞은 일상과 뒤섞이지 않는다.
‘공감’의 진정한 의미가 내가 부서질 것을 무릅쓰고서라도 상대를 껴안는 것이라면, 부부의 감정은 공감에 이르길 망설이며 동정과 연민 어디쯤에 서성이고 있는 것 같다.
‘자선’은 때때로 타자의 아픔보다는 나의 욕망에 가까이 있다. 부부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 오가는 지나치게 심약한 신경증 환자 친구가 어느 순간, 관용이 가능한 한계선을 넘어서자 부부는 얼음처럼 차가워지는데, 그 냉담함은 부부가 그간 내밀었던 따뜻한 손길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다면, 결정적인 순간 진짜 가족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 그렇다 해도 부부를 비난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 행복과 불행은 친구가 될 수는 있어도, 둘은 하나가 될 수는 없다
Rachmaninov - Lilacs, song for voice & piano Op.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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