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악마는 어떤 모습일까.- 청바지 입은 악마 /매혹적인 바이올린 선율

장전 2011. 4. 9. 20:31

 

 

                                           악마는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주로 어떤 곳에 출몰할까. 영계(靈界)는 인간의 지각능력 밖에 있다.

 

3차원 세계의 언어로 4차원 세계를 제대로 묘사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18세기 과학자이자 신비가인 스베덴보리는 영계에 관한 책을 무려 30여권이나 저술했다.

 



스베덴보리는 악마를 처음 보았을 때 뼛속까지 떨리는 한기(寒氣)를 느꼈다고 한다.

 

1744년 9월21일의 <영계일기>다.

 

“악령에 대한 글을 쓸 때 어떤 사악한 음성이 ‘입 닥치라’고 으르렁거렸다.

 

그 순간 나는 누군가 얼음덩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고, 두려움에 오싹해졌다.”

 

 

그 뒤 숱한 악령을 만난 스베덴보리는 그들의 추한 외관이 곧 지상에서의 추악한 삶 때문임을 깨닫는다.

 

그런데 악령들은 추함도, 냉기도 전혀 못 느낀다고 한다.

 

역겹고 지저분한 모습이지만, 지옥의 어둠에 갇힌 그들은 되레 자신들이 의롭고 깨끗한 줄로 안다는 것이다.

 



자기 의(義)에 눈이 먼 악마는 결코 낯선 모습이 아니다.

 

가령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렇다.

 

자기 논리에 사로잡혀 도끼를 치켜든 그의 모습에서 신념이라는 이름의 악마를 엿볼 수 있다.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나서야 그는 인간으로 돌아와 장탄식을 한다.

 

“나는 노파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나를 죽였다.

 

대량 살육도 불사한 나폴레옹은 청동으로 된 인간이었던가!”

 


‘청동인간’의 전형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직을 이탈한 동지를 처단한 베르호벤스키는 범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키릴로프를 찾아가 자살을 교사한다.

 

권총소리가 들리자 베르호벤스키는 방에 들어가 촛불을 켜들고 시신과 유서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현장을 빠져나온다. 악마만이 지을 수 있는 어둠 속의 미소였다.

 



노르웨이 테러범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다.

 

여유있는 표정의 그는 ‘청동인간’인 듯 엷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악마같지 않은 ‘악마의 미소’였다.

 

 

몇 해 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때 범인 조승희를 가리켜 ‘청바지를 입은 악마’라고 표현한 이가 있었다.

 

악마는 악마의 얼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악마를 잉태한 극단주의와 광신이라는 두 단어는 우리 주위에도 흔하게 굴러다닌다.

 

 

 

둘러보니 문득 뼛속까지 으스스해지는 여름이다

 

 

김태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