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 Solo e pensoso i più deserti campi (홀로 생각에 잠겨 나는 유심히 들녁을 본다) from Il Canzoniere di Petrarca, concert aria, Hob. 2
장전2016. 7. 8. 21:29
하이든 : Solo e pensoso (홀로 생각에 잠겨)
from Il Canzoniere di Petrarca, concert aria, Hob. 24b:20
Solo e pensoso [Haydn, from Il Canzoniere di Petrarca] - Miah Persson, soprano
Solo e pensoso [Haydn, from Il Canzoniere di Petrarca] - Leonardo De Lisi, tenor
하이든 : Solo e pensoso (홀로 생각에 잠겨)
Text : Francesco Petrarca, "Il Canzoniere", Sonetto 35
from Il Canzoniere di Petrarca, concert aria, Hob. 24b:20
하이든 (Franz Joseph Haydn 1732~1809) 1798년 作 오스트리아
Solo e pensoso
Solo e pensoso i più deserti campi
vo misurando a passi tardi e lenti,
e gl'occhi porto per fuggir intenti
dove vestigio human l'arena stampi.
Altro schermo non trovo che mi scampi
dal manifesto accorger de le genti,
perché ne gl'atti d'allegrezza spenti
di fuor si legge com' io dentr'avampi.
Sì ch'io mi cred' homai che monti e piagge
e fiumi e selve sappian di che tempre
sia la mia vita, ch'è celata altrui,
ma pur sì aspre vie né si selvagge
cercar non so ch'Amor non venga sempre
ragionando con meco, et io con lui.
Alone and pensive
Alone and pensive I measure the fields
the most deserted with tarrying
and slow steps,
and turn my eyes to try to elude
any human signs imprinted in the sand,
I have no other protection to thwart me
from showing my feelings to people,
for by my joyless acts from the outside
all can see that on the inside I am burning.
So much that I think that hills and plains,
rivers and forests atready know
what the temple of my life is,
which I conceal from others,
for harsh and savage as they might be,
I want no other paths
than those frequented by Love,
always reasoning with me, and with him.
홀로 수심에 잠겨 (Solo e pensoso)'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 ~ 1374) 소네트 '일 칸초니에레 (Il Canzoniere' 중의 Aria이다. 단테, 보카치오 등과 함께 이탈리아 문예부흥기를 대표하는 세 거장의 한 사람. 당시의 신흥 상인 세력 등과 연결된 데 대하여 그는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교황청 근방에서 살았다. 법률 공부를 하러 프랑스의 몽펠리에로 갔다가 이어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 법률을 배웠으나, 그 즈음부터 고전 작가와 친밀했었고 문학자와도 교제했다. 1326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아비뇽으로 돌아와 그곳에 살면서 시인으로서 교황 궁정에 출입했다. 그의 시의 원천이 된 프랑스 미인 라우라와 만난 것은 그 이듬해 1327년의 부활제 때였다. 그의 고전 애호는 그후 동경으로 바뀌어 키케로, 티투스 리비우스 등을 통하여 고대 제국의 이념을 흠모하고, 대작 〈아프리카〉의 시, 〈목가〉, 〈나의 비밀〉, 서한집 등을 라틴어로 발표했다. 〈아프리카〉는 그가 프랑스, 독일 등을 여행한 뒤, 아비뇽으로 돌아와 1338년 속세를 멀리 떠난 보클뤼즈에 살면서 착수한 자신에 넘치는 작품으로 로마 원로원은 이 시작의 공로로 계관을 수여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작품은 돌보아지지도 않는 반면, 속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만년 그가 천하게 여긴 바 있는 이탈리아어의 서정 시집 〈칸초니에레〉(1350)편은 지금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