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수장(水葬)

장전 2011. 5. 4. 09:12

 

수장(水葬)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스님들은 산길을 가다 무성하게 자란 율무를 보면 걸음을 멈춘다. 합장하고서 반야심경을 읊는다. 율무는 염주로 깎아 목에 걸고 다니다 땅에 떨어져도 60~70년 뒤까지 싹이 튼다고 한다. 어느 불자(佛子)가 길에 쓰러져 시신이 썩고, 걸고 있던 율무가 자란다. 스님들은 거기서 한 삶이 흙에 남긴 흔적을 본다. 15세기 조선시대 스님 기화(己和)가 썼다. '사람의 죽은 몸을 물속에 버리거나 한데 두는 것은 정이 박한 것이요, 땅에 묻는 것은 후한 것이다.'

▶17~18세기 프랑스 군함들은 항해하다 수병이 죽으면 항구로 갈 때까지 시신을 선창에 보관했다. 영국 군함은 시신이 썩지 않도록 럼주에 넣어 뒀다. 죽은 이가 흙에서 안식을 찾으리라는 믿음에서다. "너는 흙에서 난 몸,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구약 창세기). 동양에서 사람의 죽음을 귀토(歸土)라 불렀던 것과 다르지 않다.

▶현대에도 시신을 정 후송할 수 없을 경우엔 선장 판단에 따라 수장(水葬)하도록 돼 있긴 하다. 우리 선원법 17조도 "선장은 항해 중 선박 안에 있는 자가 사망한 때 국토해양부령에 의해 수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율법이 까다로운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이 부패하기 전에 뭍으로 돌아올 수 없으면 무거운 추를 달아 빠뜨린다.

▶그건 예외일 뿐 이슬람은 죽은 자를 땅에 묻어 영혼이 살 공간을 마련하라고 가르친다. 이슬람에서 죽음은 이승과 저승 사이 매듭이자,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 건너가는 다리다. 사람이 죽으면 얼굴을 메카로 향하게 한다. 발목을 묶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놓은 뒤 염(殮)한다. 간단하되 엄숙한 예의를 갖춰 상을 치르고 하루 안에 관 없이 묻는다. 내세(來世)에서 영혼과 함께 육신도 부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이 빈 라덴의 시신을 아라비아해에 수장한 것을 두고 이슬람권이 들끓고 있다 한다. 미국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수장했다지만 빈 라덴이 내륙 파키스탄에서 죽었기에 수장 자체가 율법에 어긋나는 게 사실이다. 미국은 빈 라덴의 시신을 받아 줄 나라를 찾기 힘들고 그의 무덤이 테러리스트의 성지(聖地)가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했다. 아랍 속담에 '죽음을 막아낼 성채는 없다'고 했다. 깊은 바다를 떠돌 빈 라덴의 영혼이 세계 질서를 어떤 쪽으로 몰아갈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