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여적]사랑과 결혼

장전 2011. 5. 1. 07:26

 

 

“나 때는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했어.” 요즘도 이런 말을 하는 할머니들이 가끔 있다. 결혼식도 치르기 전에 아이부터 만드는 신식 젊은이들에겐 구석기시대 얘기쯤으로 들릴 것이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골동품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연애결혼이 대세가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지 않다. 사랑을 잣대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한다는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야 유럽에서 싹튼 급진적 사고였다.

요즘 커플에게 “왜 결혼하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사랑하니까”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예부터 결혼은 경제적 거래이자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굳이 정략결혼이 아니어도 유력한 가문과 사돈을 맺어 신분을 과시하고, 그 뒤로 지참금이 오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또 결혼에는 공동체 유지와 재산상속 등 여러 사람의 이해득실도 걸려 있었다. 결혼은 두 남녀가 아니라 두 집안이 맺어지는 중대 비즈니스였다. 그런데도 신분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단지 사랑만으로 결혼한다는 것은 철부지의 짓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은 가장 어리석고, 가장 난폭하고, 가장 덧없는 감정에 의해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버나드 쇼의 독설이다. 그는 연애결혼에 대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두 사람의 진을 빼놓는 비정상적인 흥분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한 쇼의 이런 말은 요즘 세대에게는 유머이겠지만 옛날 세대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혼전의 연애를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보았다.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도 사랑을 결혼의 결과이지, 결혼해야 할 이유로는 보지 않았다. <진화하는 결혼>(스테파니 쿤츠·2009)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근대 유럽의 속담에는 이런 것도 있다. “사랑으로 결혼한 사람의 밤은 즐겁지만 낮은 괴롭다.” 결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부부의 사랑이 지나치면 대가족의 화목을 해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연애는 둘이 좋아서 하지만, 결혼은 둘만 좋아서는 안된다는 얘기들이다.

영국 왕실의 혼사에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오늘 낮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예식 장면은 TV로 20억 인구에 중계된다고 한다. 결혼에 따른 경제효과도 천문학적이라는 소식이다. ‘세기의 결혼’이 아니라 가히 ‘세기의 결혼쇼’라고도 하겠다. 연애는 그들이 했는데 재미는 주위 사람이 본다. 역시 결혼은 둘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만은 세상이 변해도 변함이 없다.

 

 

김태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