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선택>
돈이 필요해서 친구들하고 아버지 금고를 털기로 작당했어. 불가피한 선택이었지.
아버지 노트북 해킹해서 비밀번호 알아냈어. 오죽 절박하면 그랬겠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니까.
금고 열고 돈 꺼내는데 아버지가 딱 들어오신 거야. 그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재떨이로 뒤통수를 쳤지. 그때 들어온 아버지 잘못이지. 나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어.
그런데 이 노인네 대가리에 피 흘리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내 바짓가랑이 붙잡고 말리는 거야. 어쩌겠어. 귀찮아서 등에 칼 박았지. 정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니까.
나랑 친구들은 도망가고, 아버지는 입원하고 겨우 목숨은 구했어. 그런데 그 노인네, 내가 범인이라고 안 밝힌 거야. 경찰이 몇 가지 대충 물어보니까 앞뒤가 안 맞거든. 그래서 자작극이라고 아버지를 잡아가뒀어. 개 웃기지 않냐. 지들도 귀찮으니까. 그동안 아버지가 지들한테 찔러준 돈도 없어서 원망도 컸고. 내가 천하에 죽일 놈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나야 뭐, 자수할 생각 같은 건 없었지.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니까.
내가 좀 일찍 나섰어야 했는데. 불가피하게 숨어 있을 수밖에 없는 사이, 저 새끼가 아버지 자리 꿰찬 거야. 내가 얼마나 화나겠냐. 너희도 화나잖아. 그지? 그래서 불가피하게 내가 나온 거야.
저 자식이 하도 말아먹으니까 너희가 이제 와서 그 양반을 아쉬워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나이도 있고 한데 다시 회생하겠어? 사실 그 양반 건강도 좋지 않거든, 그러니까 한때 후계자를 자처했던 이 몸이 나선다 이거야. 이것만큼 불가피한 선택이 어디 있겠냐.
지금부터 이집 재산, 내가 관리한다. 생각해봐. 나 아니면 누가 이 집안, 우리 회사 살리겠냐고. 아버지가 피땀으로 이뤄놓은 거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너희들, 내가 그날 우리 아버지한테 뭔 짓 했는지는 알려고 하지 마. 불가피한 일이었으니까.
이미 지난 일. 세상에 다시 까발려서 뭐하겠냐. 골만 빠개지는 게 아니야. 이 집안 폭삭, 이 회사 망하는 거야. 너 가져 갈 월급이 없어진다고. 잘 들어. 그러니까 너도 입 꽉 다물어. 아니지. 우리 솔직해지자. 그날 무슨 일 일어났는지 니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잖아, 너희들한테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거잖아.
생각해봐. 너랑 나만 입 다물면 세상이 조용해져. 그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인 거야. 이미 지난 과거 파헤치는 건 비생산적인 일이니까. 과거 깨끗이 파묻고 그 양반 머릿속에서 싹싹 지우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응? 나랑 돌아온 내 친구들이랑 잘 해볼게. 믿어봐라. 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거, 나한테는 정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거 이해하겠지? 그리고 나한테 협조하는 거, 그게 너에게도 불가피한 선택인 거야. 귓구멍 열고 잘 알아들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