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스님이 미국에서 법문하고 있을 때이다.
어떤 사람이 자리에서 느닷없이 일어나서 도중에 질문을 던
졌다.
“스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그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스님은 법문을 거두고는 한참 생각하다가 주장자로 법상을 ‘탕’
내려쳤다.
“기적을 보여달라고?”
“네, 스님. 저는 불법을 믿지 않사오나 스님께서 기적을 보여
주신다면 오늘부터 불교 신자가 되겠습니다.”
스님은 다시 주장자로 법상을 ‘탕’ 하고 내려쳤다.
“오늘 밥을 먹고 왔느냐?”
“네, 스님.”
“그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 그것이 기적이니라.”
“스님,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억지라니, 하루 밥을 먹고 힘을 쓰며 법문을 듣고 있는
것이 어찌 기적이 아니란 말인가.”
스님의 눈빛은 법당의 천장까지도 뚫을 기세였다.
“그래 네가 밥을 먹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니란 말
인가. 너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디에서 왔는가?”
“잘 모릅니다.”
“그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기적을 묻는단 말이지. 지금 네가 두 다
리로 멀쩡하게 서 있는 것도 기적이니라.”
그는 그제야 느낀 바가 있었는지 갑자기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늘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임을 알
겠습니다. 그런 소중한 나를 잘 다스리겠습니다.”
스님의 설법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
다”는 것을 일러주신 일침(一鍼)이었다. 이 하나의 법문은 숭산
스님이 한국의 선불교를 미국 땅에 심고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
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오늘 하루 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그저 일어날 일
들이 일어나는 것일 뿐, 애당초 세상엔 기적이란 건 없다는 뜻이
다. 그냥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