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을 주눅들려 주저않힙니다
시인의 말
그해 여름 그 섬
모래톱에 새겨진 나비의 푸른 지문이
단단한 허무의 껍질을 깨고 있었다.
내 시와 오래했던 시간을 내려놓는다.
너무 미안하다.
부디 높고 멀리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2018년 7월
이현서
유빙(流氷)
극지에서 우리는 떠돌았지
심장을 포개면 영혼의 살점마저 녹아내려
조금씩 높아지는 눈물의 수위
수면을 휘젓듯 통증을 헤집으면
수많은 균열음 사이로 설산이 빠져나갔지
꿈속에서도 고향은 예감처럼
가끔 시린 향기를 몰고 왔지만
끝내 우리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기로 했지
폭설이 치는 저문 날 혼자 먹는 밥처럼
조금씩 남은 생을 파먹으며
먼 후생에 가닿을 부음을 미리 듣는 밤
생과 몰의 연대기를 표류해 온 얼룩의 심연에서
숨겨진 이름 하나 가까스로 꺼내본다
아주 잠깐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가
그믐 달빛 아래 출렁이는 물결
천년 바람에 기억의 모서리마저 허물어지면
내재율로 흐르던 슬픔 한 조각
어둠의 폐벽 속으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