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올드 불랙 죠 이야기-그럼, 누구에게나 다 봄날은 있지. 다만 머물지 않을 뿐인걸.../ Old black Joe (올드 블랙 조)

장전 2018. 8. 30. 06:43




올드 불랙 죠 이야기


그의 이름은 조셉 잭슨이다. 그는 자기를 그냥 '죠' 라 불러 달라 했다. 3년전 나는 그 흑인 할아버지를 트래킹에서 만났다. 우리집에서 30분 정도 서북쪽으로 달리면 아팔라치안 끝자락의 소니(Saunee) 산에 이르는데, 죠는 그 계곡의 오두막에서 혼자 산다. 그 집은 통나무와 흙벽으로 지었다. 백년은 넘은듯 낡았고 지붕에는 잡초까지 자란다.

 마당에는 주인만큼 늙은 스파니엘 개 한마리가 졸고있다. 나는 가끔 주말에 그 소니산 등성을 오르고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어느 가을날 계곡을 내려 오다가 밖에서 장작을 패고있는 죠를 만났다. 그는 허리를 펴고 땀을 닦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첫 조우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오가는 길, 지나칠때 마다 인사하고 때로는 짧은 대화도 나눴다. 

가을이 깊어지고 계곡에 낙엽이 쌓일 무렵, 죠는 계곡을 내려오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사슴머리 박제 하나를 내밀었다. 몇년전 죠가 덫으로 잡은것인데, 박제 상태는 좀 거칠었지만 뿔은 잘 보존돼 있었다. "그게 자꾸 나를 노려 보는거 같아서..
." 그러면서 덫에 치어 죽어갈때 그 슬픈 눈이 마음에 걸린단다. 나는 사슴머리를 받아 왔지만 차마 걸수 없어 다락방에 처박아 두었다. 
다음주 나는 트래킹을 생략한채, 마켓에서 몇가지 논페리시블 식료품을 장 보고, 통닭구이를 사 죠의 집으로 처들어 갔다. 개 짖는 소리에 눈 비비며 나온 죠는 잠깐 뜨악한 표정이다가 이내 집안으로 안내했다. 전기가 없는 집안은 어둡고 비좁았다.
 평상처럼 밋밋한 침대 하나, 돌을 쌓아 만든 부억 겸 벽난로, 주저앉은 식탁과 통나무 의자 세개, 마른 식량과 통조림만 눈에 띄는 선반들, 횃대에 걸린 옷가지들... 원시의 삶이 거기 있었다. 
죠는 내가 가져간 과자와 통닭, 그가 계곡물에 담가 두었던 캔맥주를 내 놓았다. 죠는 다짜고짜 자기가 그 통나무집에서 합법적으로 살고 있음을 얘기했다. 원래부터 있던 빈집을 주정부와 국립공원 관리국의 허가를 받아 '건물이 존재할때 까지' 살수 있다고 한다. 그의 임무는 산불 감시다. 
물론 그 직책으로 집세를 퉁치고, 수입은 얼마간의 사회보장 연금이 전부다. 내 몫의 맥주까지 다 마신 죠는 약간의 취기를 느꼈는지, 슬슬 그의 인생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죠의 고향은 앨라바마주 터스카루사 인근의 농촌이다. 그의 선조는 목화밭에 팔려 온 노예, 해방 후에도 그 농장에서 착취 당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목화 수확이 끝나는 초가을부터 이듬해 농사철까지 아무 수입이 없는 죠의 가족들은 굶기를 밥먹듯 했고, 도시로 구걸 나가기도 했단다. 
그 가난을 물려받은 죠는 고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많은 남부인들이 그랬듯이, 꿈의 직장이 있는 미시간으로 갔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세계 자동차 공업의 메카로 남다른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죠는 잠시 부품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다가 크라이슬러 자동차로 직장을 옮겼다. 
그의 황금시대가 막을 올렸다. 정말 꿈속에서나 상상했던 연봉을 손에 쥐었고, 온갖 베니핏이 삶에 풍족한 평안을 주었다. 죠는 고향의 처녀를 데려와 일찍 결혼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천년만년 행복할것 같았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것은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폭동 이었다. 이때 죠의 집이 불탔고, 백인들의 엑소더스로 디트로이트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직장이 있었기에 죠는 재기했으나, 도시는 범죄의 창궐로 점점 슬럼화 돼 갔다. 
비극은 항상 셋트로 온다. 다 키워놓은 두 아들이 은밀하게 마약에 손을 대더니, 추운 겨을 어느날 갱단의 전쟁에서 한꺼번에 처형 당했다. 아들 잃은 충격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아내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직장을 잃었다. 80년대 초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공장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불사조로 보였던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파산했다. 은행 융자금 갚을 길 없는 죠는 집에서도 쫓겨나 아파트를 전전하다가 끝내 노숙자가 되었다. 비극의 대미를 완성한 죠는 등 떠밀려 낙향한다. 그렇다고 고향 앨라바마로 갈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어찌 하다가 아팔라치안 산속으로 스며 들었고, 지금의 통나무 집을 얻었단다. 
죠가 담담하게 풀어놓은 인생 오딧세이아는 너무 건조해서 먼지가 풀풀 날렸다. "한때 좋은 날도 있었어, 내 생애에..." 그는 디트로이트 시절을 잊지 못해 했다. 우연인지 내가 미시간에 30여년 살아봐서 그의 지난날이 쉽게 그려졌다. "맞아, 맞아. 그 거리, 그 식당이 괜찮았지!" 얘기 도중 우리는 자주 하이파이브 하며 일치하는 기억에 동의 했었다.

요즘도 나는 가끔 죠의 집에 들른다. 86세의 죠는 이제 기력이 많이 쇠잔해 졌다. 개는 늙어 죽었다. 내가 조금씩 채워 준 식품들과 사료가 선반위에 거의 그대로 방치돼 있다. 분명 죠는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거 같다. 며칠전에는 카운티 보건의가 찾아와 요양원으로 이주 할것을 권유 했단다. 마지막을 준비 하라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죠를 만났을때 왼일인지 조금 취해 있었다. 꾸벅꾸벅 졸다가, 한숨 쉬다가, 횡설수설 하더니 뜻밖에도 흑인 작가 루실 클리포드의 詩 <좋은 시절>을 띄엄띄엄 읊었다. "엄마는 빵을 구웠지. 할아버지도 오고. 모두 취했어. 부억에서 춤 추고 노래 부르고. 이 좋은 시절에, 좋은 시절, 좋은 시절..."
나는 가슴에 돌 하나 잠긴듯 무거운 마음으로 계곡을 내려왔다. "그럼, 누구에게나 다 봄날은 있지. 다만 머물지 않을 뿐인걸...."




이원훈님이 North Atlanta, Georgia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