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있다.
- 사랑의 의사 장기려 박사 이야기(한국일보,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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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만한 일에 행복을 느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만 ‘옛날’엔 정말 그랬다. 내 아버지 살아생전에도 쌀독에 쌀이 2/3쯤 차있고, 헛간에 시커먼 연탄이 몇 줄 겹으로 쌓여있으면 가장의 구실을 다한 것으로 알고 가슴을 내밀었다. 거기에 겨울을 앞두고 김장까지 마쳤다면 더할 나위없는 행복이라 믿었고 어머니 앞에서 큰 소리를 뻥뻥 치셨다. 깍두기를 담을 때 대구아가미가 중간 중간 박힌 해에는 당신께서도 과분한 호사라 여기셨는지 동네 홀로 사시는 이북할머니에게 한 양재기 퍼다 주라 그러셨다. 70년대 중반 대구 변두리에 널찍한 집을 마련했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새집에 이사 와서 제일로 좋은 건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때 수도꼭지에서 나왔던 물은 지하수를 끌어당긴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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