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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너무 많은 붓질로 포장 되어 있다. 이제는 지우고 비워내야 할 때.. /Olivia Newton-John - Blue Eyes Crying In The Rain / Greatest Hits

장전 2015. 11. 12. 07:53

 

 

 

 

 

 

 

 

 

삶의 능선에 일몰이 멀미처럼 출렁일 때 커다란 깨달음 하나 건진다.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안달했던 날들이, 한낱 허망한 욕심과 일그러진 자존심이

잘못 그려낸 인생 소묘의 하나일 뿐이라는 걸.

욕망으로 빼곡히 채워진 삶의 화폭은 이미 명품이 될 수 없으리라.

 

 

적당한 여백은 꼼꼼히 묘사된 어떤 것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무한한 사색의 바다를 덤으로 준다는 것을

그때는 진정 몰랐었다.

 

 

학창시절,

소묘 실기 수업에서 제자들의 작품을 수정해 주시던 선생님의 마지막 손길은 채우기가 아니라 지워내기였다.

하나 둘 지움으로써 신기하게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너무 많은 붓질로 포장 되어 있다.

특별한 상표 하나에 자존감을 저울질하는 위선과 허위,

집의 평수와 차의 크기로 사회적 위치를 잣대질하는 체면과 가식 등,

현란한 욕망의 터치로 한껏 덧씌워진 삶이다.

 

 

덕지덕지 덧칠된 모습으로 세월의 꽁무니만 ?는 동안

머리 위에는 어느새 은빛 서리가 내려앉았다.

이제는 지우고 비워내야 할 때라고 늦가을 바람이 넌지시 귀띔한다.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채워야 할지 삶의 화폭을 한 번 되돌아 볼 일이다

 

 

 

[제4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인생 소묘 / 이정순

에서 일부 발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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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제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녁 어둠이 더 깊어지기 전에

덕지덕지 덧칠된 모습

지우고 비워내는 일을 서둘러야 할 듯 마음이 자꾸만 초조해집니다.

 

 

 

 

 

 

영서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