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故鄕 長華里와 迎瑞堂의 빛

조선말 전통혼례 상징 '혼서지' 발굴 -의병장ㆍ유학자 이최선이 1871년 3월14일 신부집에 보낸 편지

장전 2015. 2. 8. 13:41

조선말 전통혼례 상징 '혼서지' 발굴


심정섭 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위원 본보에 공개
 
의병장ㆍ유학자 이최선이 1871년 3월14일 신부집에 보낸 편지
폭 7칸에 장남 혼인 문제 正字로 언급…크기 60.2㎝×76.5㎝

2014. 02.18(화) 18:07 확대축소
심정섭 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위원이 조선말 의병장ㆍ유학자인 이최선이 장남 혼인문제로 신부집에 보낸 전통혼례 상징인 \'혼서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

현재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조선말 전통혼례의 상징 징표인 '혼서지'(婚書紙)가 공개돼 주목된다.

 평생 친일문제 연구에 매진하는 등 친일청산 운동에 온 힘을 쏟아온 향토사학자이자 교육자, 수필가인 심정섭(71ㆍ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위원)씨가 150여년전 이 지역 명망가 집안의 '혼서지'를 17일 본보에 공개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혼서지는 1866년 프랑스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한 병인양요 때 스승 기정진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진사이자 유학자인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이 1871년 3월14일 그의 장남 이승학(1857∼1928)을 혼인시키기 위해 신부집(죽산 안씨)에 보낸 편지로 밝혀졌다.

 혼서지는 혼인날이 결정되면 혼례식을 1개월 또는 1주일여 앞두고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폐백을 보내게 되는 데 이때 검은 색 함에 폐백과 함께 보냈다.

 이번에 공개된 혼서지는 전통적 혼서지와는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예장' 혹은 '혼서'라고도 불리는 혼서지는 백지를 사용해 길이 36㎝×폭 60㎝ 크기로 보통 9칸이며 양편에 1칸씩 비워 7칸에 글씨를 썼던 것이 관례이지만 이최선이 보낸 혼서지는 7칸에 한문 정자(正字)로 새겨져 있고, 크기는 60.2㎝×76.5㎝다.

 혼서지에는 '때는 봄이 무르익은 계절인데 존체만복하십니까? 저의 장남 승학이 성장해 배필이 없더니 귀하의 높이 사랑하심을 입사와 귀중한 따님으로 아내를 삼게 해주어 이제 조상의 예에 따라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삼가 납폐하는 의식을 행하오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심정섭씨는 "1980년 대 말 광주 예술의거리 고서적 더미 속에서 발견해 소장하게 됐다"면서 "혼서지가 유교에 속한 옛 혼례의 유풍이지만 이최선이 작성한 혼서지는 민족정기를 선양한 문화재이며 민속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 혼서지에 등장하는 이승학은 조선시대 성리 6대가 중 마지막 어른인 노사 기정진의 제자로,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하게 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는 치욕을 겪고난 뒤 의병을 일으킨 항일충의지사다. 그의 아들 이광수(1873∼1953)는 성균관 박사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완용 등 5적 암살을 도모했으나 실패한 뒤 10년 유배형을 받았다. 그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3대가 한말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에서 항일구국운동으로 이어오면서 호남의 명문이 됐다.

 이최선의 후손으로는 전남대 문리대 학장을 역임했던 역사학자 이혁(1897∼1977), 서울대 법대 교수와 국무총리 서리를 지낸 이한기(1917∼1995)가 있고, 이혁과 이한기는 부자지간이다.

고선주
rainide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