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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의 "민들래 꽃을 보며"에 대한 단상 / 스콧트랜드의 봄향기_ Ceud Mile Failte/ The Scottish fiddle orchestra

장전 2012. 4. 14. 04:56

 

 

매일 아침 즐겨 찾는 경향신문 칼럼을 읽는다

 

 함민복 시인은 오피니언  [낮은 목소리로]"민들레꽃을 보며"에서 4.19 총선의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시인 특유의 은유법으로 토로하고 있다

 

"마당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났다

 날이 흐려서인지 마음에 노란색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 빛이 예전만 못하다.

4·11 총선이 끝났다"

 

 

시인이 기다리던 봄이 왔고

시인의 봄을 알리는 민들래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노란색의 민들래"가 피였으나

그 빛은 예전만 못하다고

 

함민복 시인은 아무래도 19대 총선 결과가 마뜩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어서 함 시인은

 

 

"세계는 그 신비의 내밀성 속에서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며 노랗고 무거운 불꽃이 희고 가벼운 불꽃의 싹인 것과 같이

세계는 보다 나은 세계의 싹이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글귀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에 의문형으로 변형되어 떠오른다.

정말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고

세계가 보다 좋은 세계의 싹인가.

세계는 진정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신비의 내밀성 속에서

그가 내심으로 바랐던, 정화의 운명을 바랐던, 그 노란색에 대한 좌절에

함 시인은 4.11 총선 결과에 대한 시대적인 의문 부호를 찍는다.

"민들레꽃은 차다. 냉철하다. 민들레의 맛은 인내처럼 쓰고 생명은 질기다.

벌써 밭둑은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었고 노란 민들레 단추를 달았다.

 

자연은 때가 되면 순리에 맞게 옷을 갈아입거늘, 어찌 사람들은 그리하지 못하는지.

한겨울 옷을 갈아입을 때 잠시 춥다고 하여 속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옷이 때에 절어 더 오래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거늘".

 

 

 

글은 상당히 온유하나 내용과 선택한 용어로 보면

유권자들의 낮은 민도에 대한 한탄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한탄은 함 시인으로 하여금 속옷을 갈아 입지 못한 대중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토로케하며

이로서 다가오는 대선에서의 노란색의 혁명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지 않는다 

 

 

과연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신비의 내밀성 속에서의 정화의 운명"은

노란색 민들래로 부터만 오는 것일까 

 

그러나 어쩌랴

시대와 관계없이 봄은 어김없이 찾아 오지만

민들래의 색갈은 언제나 노란색만은 아닌것을...

 

 

금년 4월8일 내 고향 영서당 앞 마당에는

흰 색의 민들래가 피였음을 함 시인은 미쳐 알지 못하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