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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면 말이지 / 가을오고 가을가고

장전 2012. 2. 26. 09:50

 

 

 

기차를 타면 말이지
나보다 먼저 추억이 올라타서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내 자리에 미리 앉아있곤 했어


 

 

한 단어를 떠올리는것 만으로 왠지 사무쳐서 눈물 나기도하고

가슴속에 숨어있던 어떤 이름모를 줄 하나를 건드려서 팅~소리가 나는 그런 단어들이 있다.

그런 단어들은 사람마다 다 다를것이지만

<외삼촌> <작은오빠> 이런 단어들이나 <스물두살> 이런 것들이 되겠는데

<경춘선> 이란 말도 그중에 하나라고 할수있지 싶다.

<경춘선>이란 말만 가만히 떠올려봐도 왠지 머릿속 어느 한구석에 노란색 조그만

호박등 하나 탁 켜지고 불빛아래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를것만 같다.

 

 

 

성북역 근처
오래 된 이정표처럼 서 있는 네가 보이면
일부러 걸음을 늦췄지
나를 기다리는 네 모습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나는 통장잔고만 좀 있으면 계절이 바뀌든 말든 알바없고 그냥 행복한 사람인데

이번 가을은 왠지 마음이 안 잡히고 좀 그렇다.

우리 이웃님인 마이란님의 시 하나 올려놓고

한 며칠 어디로 쏘다니다 와야될까 싶으다.

 

 

 

 

 

93.JPG

 

 

 

 

경춘선

 

                      -Myran-

 

 

 

 

기차를 타면 말이지


나보다 먼저 추억이 올라타서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내 자리에 미리 앉아있곤 했어

빗살무늬로 퍼져가는 창밖 풍경속엔

유년의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한 시절이

물그림자로 숨어서 손을 흔들더라.


아마 네 생일이었을꺼야

봄꽃들 놀래키는 재미도 시들해진 햇살이

아무데나 주저앉아 수다를 떠는

늦은 사월 어느 오후,

집 앞에 놓여있는 자전거에 오르듯 그렇게 기차를 탔지.

성북역 근처

오래 된 이정표처럼 서 있는 네가 보이면

일부러 걸음을 늦췄지

나를 기다리는 네 모습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창문 낮은 찻집의 창가 구석 자리

돌아갈 시간이 적힌 기차표를 모래시계처럼 세워두고도

우리의 이야기는 끝나지가 않았어.

막차를 놓칠까봐

내 손을 꽉 잡고 광장을 뛰어가던 너,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바람속으로 던지며 나도 뛰었지.

가쁜 숨 몰아쉬기도 전에

덜.컹. 기차는 움직이고

어둔 창 밖에 불빛처럼 서있는 너는

내겐 벌써 그리움이었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

선잠 든 슬픔처럼 엎드린 남춘천역

나, 잘 왔어.

짧게 끊었던 공중전화의 그 주황빛이

여태도 호흡짧은 설움으로 남을줄은 그땐 몰랐지

경춘선 기차를 타고

내가 드나들던 그 먼 시절이

이렇게나 긴긴 이별로 기억조차 아슴해질줄

그땐 몰랐지

경춘선 기차만 여전히 남아

햇살아래 빛바랜 여린 꽃잎처럼

간직하지도 못하고 흘려보낸

그런 추억이 될줄은

그땐 정말 몰랐지.


 

  

 

秋來秋去

가을오고 가을가고

 

黃江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