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 스님의 사자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렇게 한다면 비로소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제어록(臨濟語錄)’
불교에서 부처, 조사, 나한은 숭배의 대상이자 자신이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 부모나 친척 등은 존경의 대상이자 전범으로 삼아야 할 사람이다.
그렇지만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이상이나 전범이라는 생각 자체를 제거해야만 하지 않는가?
이것이 임제 스님의 생각이었다.
기 드보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부처, 조사, 나한, 부모, 친척 등은 구경꾼이 관조해야만 하고 몰입해야만 하는 스펙터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스펙터클에 지배되면, 우리는 자신의 몸짓이 아니라 스펙터클의 몸짓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삶을 당당하게 영위하는 주인이 되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몸짓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해탈이란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임제는 사자와 같이 포효했던 것이다.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제가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실제로 살해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죽여 버리라고 요청했던 대상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관조 대상, 즉 스펙터클일 뿐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만든 전쟁 영웅의 이미지,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환상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드라마와 그 주인공,
억압된 남성을 극복하여 강인한 남성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해병대.
이 대목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임제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새겨야하지 않을까?
영웅을 만나면 영웅을 죽이고,
스타를 만나면 스타를 죽이고,
해병대를 만나면 해병대를 죽여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겨주는 비극적인 분단 현실,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전쟁의 참혹함과 매정함,
스타를 만들어 이윤을 남기는 연예 시스템,
그리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혹한 인내를 요구하는 해병대가 있는 그대로 그들의 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스펙터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났을 때에만,
우리들의 결단은 절실함과 당당함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구경꾼이 아닌 삶의 주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 아닐까?
강신주 철학박사
::스펙터클(spectacle)☆::
우리의 시선을 끄는 화려한 볼거리를 의미한다.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소비문화가 기승을 부릴수록, 스펙터클은 우리의 삶을 더 강하게 지배한다. 자신이 무엇을 만들기보다는 가장 세련되고 매혹적인 무엇을 흉내 내기에 급급한 삶이 시작된 것이다. 스타와 그를 추종하는 팬이라는 형식은 스펙터클 지배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스펙터클을 통해 우리가 자신의 삶이나 사회를 관조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구경꾼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삶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스펙터클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해야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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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cred Circle - 2008~2012 Gold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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