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찬 민노당 이숙정 시의원의 행패를 보면서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에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떄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how you journey
Pilgrim/Enya
Pilgrim it's a long way /to find out who you are...
'완장 찬 민노당'에 분노하는 이유
자기 이름을 모른다고 행패를 부린 이숙정 시의원의 이름을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됐다. 이숙정 성남시의회 의원은 지난 1월 27일 판교동 주민센터 아르바이트 여직원이 자기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며 동사무소에 찾아가 신발과 서류뭉치를 던지고 직원의 머리채를 잡으려 하는 등 난리를 부렸다. 이 장면이 CCTV(폐쇄회로 화면)에 찍혔고 언론을 통해 많은 이들이 보게 됐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었던 설 연휴, 이는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대중의 분노가 불길처럼 일자 일부에선 "이숙정 시의원이 민주노동당 소속이라 보수 언론이 과도하게 비판한다"는 특정정당 미운털설(說), "시의회에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원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것이 스트레스가 됐을 것"이라는 왕따 동정설, 그리고 "어느 당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속한 당대표의 사과가 나왔으면 된 것 아니냐"는 '마이 묵었다, 고마해라'설 등 다양한 옹호론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떡국을 먹으며 이숙정 의원을 '씹은' 것이 과연 언론이 이런 일을 '강하게' 보도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자질 부족한 시의회 의원들의 이상한 짓거리는 이번에 처음 보도된 것은 아니다. 각종 인허가 내주겠다며 돈 받아 먹은 시의원은 부지기수고, 마음먹고 잡아넣자면 다 잡아넣었어야 할 집단수뢰 사건도 한둘이 아니다. 국민 살림은 어려운데 자기네 급여는 꼬박꼬박 올리는 의원들, 친척인지 친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보좌관으로 쓰겠다며 돈 내놓으라고 떼쓰는 의원 등 문제성 의원들의 사례가 보도된 것을 예로 들자면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왜 사람들은 이숙정 의원의 경우에 대해 더 강하게 분노하고 있을까.
일부 주장대로 그가 민주노동당 소속이기 때문인 것은 맞다. 진보적, 혹은 좌파적 성향의 인물을 국회에, 시의회에 진출시키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전 세대의 구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그들의 선전(宣傳)과 그걸 믿는 마음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의 이들이 GDP(국내총생산)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지만, 그들이 공동의 선(善)을 위해 희생할 것 같다는 판타지가 유권자들에겐 있다. 그런데 그들의 행태가 구악 의원보다 더 형편없는 것이라면 그걸로 끝이다. 정치적 음모론을 주장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진보진영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마저 깎아 먹는 짓에 불과하다.
물론 '그저 시의원이 화 좀 냈을 뿐인데'라며, 과도한 대중의 분노를 비난할 수는 있다. '힘'의 크기로 친다면야, 국회의원이나 장관, 그리고 대통령이 더 클 테니까. 김수영의 시구가 떠오를 만도 하다.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그런데 정말 '기름 덩어리만 들어간 설렁탕'에 대한 분노가 '왕궁의 음탕'에 대한 분노보다 못한 걸까.
사람들이 이숙정 사건에 분노하는 까닭은 알량한 권력일지라도, 일단 잡기만 하면 돌변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젊어서' '여자라서' '진보라서' 다를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그대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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