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뼈의 나라 /Who Can I Turn To* Tony Bennett

장전 2011. 1. 15. 05:26

 

뼈의 나라 

 

 


"소 1000마리를 제물로 강에 제사를 지낼까요?" 요즘 얘기가 아니다. 3000여년 전의 갑골문에 기록된 내용이다. 옛날 중국 상나라에서는 거북 껍데기(龜甲)나 소뼈(牛骨)를 이용해 점을 쳤다. 갑골에 점을 칠 내용을 새겨 열을 가하면 뼈가 갈라지는데, 이때 생긴 잔금을 복관이 해독해 하늘의 뜻으로 받들었다. 소 1000마리라는 제물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같은 갑골문에서는 소와 함께 사람 1000명도 제물로 바칠지를 묻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사람 제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갑골문에는 이런 문구들이 숱하다. "사람 5명의 목을 바칠까요?" "포로 50명으로 제사를 올릴까요?"

중국역사 저술가 공원국씨는 갑골문이 출토된 은허(殷墟)를 '뼈다귀의 세계'라고 표현한다. < 춘추전국 이야기 > 라는 책에서 공씨는 은허를 둘러본 감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3000여년 전 유적의 진짜 주인공들은 인간의 뼈였다. 불과 몇 미터 지하에 무더기로 누워 있는 인골들. 상나라 말기의 수도 은허는 그야말로 뼈의 도시였다."

 

말기의 상나라는 정치보다는 전쟁과 폭압에 의존했다. 권력자는 백성을 가축처럼 다뤘고, 노예들은 걸핏하면 생매장됐다.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수는 갑골문에 기록된 것만 1만여명에 달한다. 발견된 갑골은 빙산의 일각일 터이니, 실제 사람 제물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땅 속의 뼈들은 상나라의 야만성을 두고두고 후세에 증언하고 있다.

구제역 살처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젖소 106마리를 땅에 묻은 경기 파주의 박성대씨는 최근 토론회에서 "곳곳에 소를 파묻어 마을 전체가 공동묘지 같다"며 "살처분만이 능사인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어느 신문 독자는 기고한 시에서 '소 한 사람'의 무게는 '사람 열두 마리의 무게'라며, '사람 수백만 마리'가 땅에 묻혔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뼈의 나라'는 고대 상나라만을 가리키는 얘기가 아니다. 21세기에 이 땅은 파묻은 동물들로 거대한 무덤을 이루고 있다. 어느 신학자는 "성경을 쥐어짜면 피가 흐를 것"이라고 했다. 구약성서에는 제물로 바쳐진 소와 양의 피가, 신약에는 인간 예수의 피가 흥건하다는 뜻이다. 먼 훗날 후손들이 이 강산을 파보면 아마도 핏물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 피보다 진한 눈물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 김태관 논설위원 |

 

 

 

Who Can I Turn To* Tony Benne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