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율 시인의 TRAVEL NOTES
1994-2005
끌림
#047 시시한
조금만 좋아하지 그랬어요? 너무 열심히 그 시간을 살지말지 그랬어요? 조금뿐이었다면 안 헤어질 수도 있는데 뭔가를 너무 많이 올려놓으니깐 헤어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바꾸기로 한 건가요. 바꿔도 안시시해지는걸 찾아서?
신발이 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언젠가 신발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당장은 사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하게 해요.
신고 있던 신발은? 몇 달쯤, 적어도 한 달은 이 신발로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도 생각하잖아요.
근데 어느 날, 신발을 사요. 단순히 기분 때문에 날씨 때문에 혹은 시간이 남아서 일 수도 있겠죠. 새 신발을 사서 신고 나면 쇼핑백에 담겨 한쪽 손에 들린 신고 있던 신발은 얼마나 시시해요?
죽을 것처럼 시시하죠. 시시하고, 도무지 시시한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는 돌리는 내등짝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시시했겠어요?
시시한 게 싫다고 시시하지 않은 걸 찾아 떠나는 사람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시해요?
처음에 시시하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면 시시해요, 사랑은..
너무 많은 불안을 주고받았고, 너무 많이 충분하려 했고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하중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시시해요, 사랑은. 그러니 어쩌죠? 신발을 사지 말까요? 옆에 아무도 못 오게 할까요?
하지만 그럴 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건 어때요? 시시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확신했던 그 지점, 그 처음으로 달려 가는 거예요. 그리고 당분간도, 영원히도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채로 계속 자나깨나 시시할거라고, 또박 또박 말한다음, 처음부터 다시.
지구 반대편에 있다 생각하고 세상 모든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고 처음부터 다시.
가슴을 쓸다.
진정일 물가를 다 돌고도 모아지지 아니하는 생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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