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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 기사작성의 정확성 2

장전 2009. 1. 19. 15:23

http://blog.chosun.com/mantears/3557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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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혜의 여신, 아테나

 

 

더 썬의 보도에 따르면 자살자 크레이그 에버트씨는 천국이나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죽으면 끝이라고 본다. 불멸의 영혼도 없고 내세도 없다,I truly expect that death is the end, that there is no everlasting soul, no afterlife. ) 그는 말을 또렷이 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근력도 있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자살을 죄악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자기 집에서 아내의 도움을 받아서 조용히 자살하지 않고, 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안락사지지 단체'와 함께 행동했을까? 이들은 왜 '합법적으로 죽여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또 어떤가? 우리 언론의 태도는 혹시 이들 '정체불명의 집단'의 주장에 기울어 있지 않은가? 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더 바닥으로, 더 비인간적으로, 더 부정적인 것만 바라보는가?


 

 

[19禁] 죽을 권리(A Right to Die)

 

영국의 디지털 방송인 스카이 리얼 라이브즈(Sky Real Lives)는 현지시간 2008년 12월 11일 자살을 도와주는 장면을 담은  '죽을 권리(A Right to Die)'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6년에 촬영된 것이고, 다큐멘터리 원본을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서 자살한 크레이그 에버트씨는 퇴직한 대학강사로, 2006년 당시 59세였고, 미국에서 영국 노스 요크셔의 해러게이트로 이주한 사람이다.

 

영국에서는 의사보조자살(PAS)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제한된 조건하에서 합법적 의사보조자살이 허용되는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이동했다. 디그니타스 병원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수면제나 극약 등을 처방해 주고 환자가 스스로 약을 먹어 목숨을 끊도록 한다. 스위스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을 받고 있는 병원이다.

 

크레이그 에버트씨는 스위스 디그니타스가 소유주인 취리히의 아파트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 의사보조자살이 허용된다고 하여도 자살보조자는 자살을 도울 수만 있고, 직접 목숨을 끊는 일체의 행위를 수행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크레이그씨는 스스로 인공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독극물을 마셔서 자살해야 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조자는 인공호흡기의 타이머를 그의 입에 물려주고, 크레이그씨 스스로 그 타이머를 물어서 인공호흡기를 껐다. 그 다음으로 자살보조자가 컵에 치사량의 소디움 페노바르비탈(sodium phenobarbital, luminal)을 담고, 핑크색 스트로우를 꽂아서 크레이그씨의 입에 물려주고, 자살자 스스로 이 액체를 빨아마셨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자살자는 한 두번 스트로우를 입에서 놓쳤다. 약물을 마시고 나서 45분 후 크레이그씨는 사망했다.

 

이번 자살보조 경비로 크레이그씨는 디그니타스에 6726달러를 지불했다.

 

아래에 문제의 동영상을 소개한다. 동영상을 볼 때,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자살자 스스로 죽음과 관련된 일체의 행위를 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또한 자살자의 힘있게 말하는 모습과 또렷한 눈빛도 봐주기 바란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자살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의사'로 자살을 결정했고, 스스로 자살을 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동영상을 보실 분은 플레이버튼을 눌러주세요)

 

(치사량의 약을 마시고 45분 후 사망했으나, 이 동영상은
동영상편집자가 3분 정도의 길이로 편집한 것임)

 

 

오류 혹은 왜곡

 

이 다큐멘터리와 관련하여 비용을 받고 자살을 보조한 디그니타스와 의사보조자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여행','편안한 잠' 등으로 표현했지만 자살보조자 역시 자살보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래에 소개하듯이 외국의 뉴스보도에서는 '안락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뉴스닷컴은 'assisted suicide', 더 썬은 'a man is helped to end his own life', 영국 타임즈온라인은 'assisted suicide', 가디언은 'assisted suicide'라고 보도하고 있다. '자살(suicid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존엄사나 안락사가 아니라 '자살'장면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뉴스를 아래와 같이 보도하고 있다. (발췌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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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TV 안락사 장면 방송 논란

영국 TV에서 방영된 '죽을 권리(A Right to Die)'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지난 2006년 안락사한 대학강사 Craig Ewert씨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당시 59세였던 그는 안락사가 불법인 영국을 떠나 스위스를 찾았습니다.
그레이그 씨는 스위스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스위스에는 이곳 외에도 안락사를 지원하는 병원이 있습니다.

제롬 소벨(엑시트 센터장) : "스위스는 안락사가 합법적인 나라죠."

(출처: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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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잘못된 보도이다. 아래의 사진을 보자. 

국내에서 게재한 동영상(나레이터의 목소리 때문에 노력이 필요함)에서

자살이라는 말이 나오는 대목까지 모두 다 안락사라고 번역하였고,

다른 부분도 외신의 '정확한 뜻'과 다르게 해석하여 보도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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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관음증

 

더 썬과의 인터뷰에서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영국수상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며 흥미거리로서가 아니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그리고 방송이 일반대중에 대하여 폭넓은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기를 바란다. 장차 TV방송 내용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고, 이 디지털 다큐멘터리 방송이 있은 이후 '미디어 윤리문제'가 제기되었다.

 

사람들은 불구경이나 싸움구경을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물며 누군가가 죽어가는 과정을 훔쳐볼 수 있다면, 죽음이 무엇인지 미리 경험해 볼 수 없는 우리가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후, 문제의 디지털 방송사에서 전세계의 시청자수 집계를 하였는데,  폭발적인 숫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개인의 경우 자살하는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예가 더러 있지만, 방송채널에서 이와같은 방송을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동영상을 올린 후 1시간 만에 1억 3천만 명이 시청했다고 추정해보자.(여기서 구체적인 수치는 소개하지 않겠다) 사람들이 행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을 할 때  '돈'이 기준이 되어버린 오늘날, 이 사건이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다음 번 '자살 다큐멘터리'의 주연은 누구인가?"하는 것이 미디어의 관심사가 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자살장면을 훔쳐보는 것을 즐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신이 지적한 '자살 관음증 우려'이다.

 

법률의 의미

 

가령 우리나라에서 이와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의사의 특별의무를 논외로 하더라도 '자살방조죄'로 처벌될 것이다. 사망에 직접 관계된 행위를 한 사람은 '살인죄'로 처벌될 것이다. 현재 세계 대다수의 국가는 우리와 같다.

 

그런데 얼마 전 대한민국 법원은 '환자자신의 의사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제거결정을 했다.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살인' 내지 '처형'을 결정한 것이다.

 

법률로 '운동신경질환'을 앓고있는 사람의 의식이 없는 채 3개월을 경과하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된다'는 규정을 마련하면 이 조건을 충족하는 전국의 모든 환자는 '죽여도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법률은 A에게는 적용하고, B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의 문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번 사건과 같은 것을 '별로 달갑지 않은 다 산 생명'인 노인들의 문제라고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소위 '첫 존엄사(살인)판결'보도 이후 뒤이어 보도된 것은 '장기기증'문제였다. 장기기증은 대체로 45세 이전의 사람의 몸에서 떼어낸 심장, 간장, 폐 등이어야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80세까지도 쓸 수 있는 장기가 극소수 있지만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각 장기는 나이에 따라서 수술성공률이 크게 좌우된다.

장기이식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때 안락사, 존엄사 기타 그 이름이 무엇이든 '제3의 사망선고'가 법적으로 인정되면 이 문제는 45세 이하, 젊은 사람들에게 '본인의 의사를 묻지않는 죽음'을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선언하는 문제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의사보조자살 혹은 의사나 가족이 환자에게 사망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락사 및 존엄사와 같은 용어에 대하여 정확하고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폭넓게 그리고 심도있게 연구를 하고, 그 결과 입법의 필요성이 있고 입법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국민에게 그 동안의 연구자료를 소개하고 국민의 합의가 도출되면 비로소 입법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바른 순서이다. 가령 국민투표를 했더니 투표참가자의 60%가 안락사법을 제정하는데 찬성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60% 찬성자의 의사를 전체국민의 의사로 보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누구를 죽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다수결만으로 타당성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철학과 합의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도서: 리걸마인드 (도서출판be)
2. 칼럼: 허영 (2008 12 04 동아닷컴)
3. 가디언, guardian.co.uk
4. 타임즈온라인  timesonline.co.uk
5. 뉴스닷컴  news.com.au
6. 더 썬  thesun.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