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김구테러사건, 심층분석!

장전 2009. 1. 19. 15:08

http://blog.chosun.com/mantears/3589043 

 

김구테러사건, 심층분석!

 

[지면관계상 신동아나 월간조선 등과 같이 수십면에 걸쳐서 상세한 상황설명을 곁들이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을 위하여 말미에 밝힌 참고자료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최근 대한독립에 일생을 바친 수많은 애국선열 가운데 단연 윗쪽에 있는 백범 김구선생이 철없고 무지한 네티즌 몇 사람에 의하여 심한 모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름하여 '김구테러사건'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감히 김구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호칭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성웅 이순신장군까지 '살인자'라는 흉한 단어와 연결지었습니다. 아무리 무지한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선조들을 이 지경으로까지 욕보이다니 참담한 심정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다시 한번 "교육이 바로되어야 한다","인터넷에서도 리걸마인드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백범 김구 바로알기!'와 동시에 철없고 무지한 자들의 '험구'를

명백하게 증거를 제시하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백범 김구 바로알기!'

 

우리는 백범김구라는 이름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에 대하여

이상할 정도로 알고있는 것이 적은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주제에 한정하여 확인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의 각 항목에서 (O , X) 중 하나를 선택해 보십시오.

 

* 정답과 풀이는 항목 아래의 여백을 마우스로 긁으면 보입니다.

 

1) 백범은 양반이 아니었다. (O , X)

 

정답: ( O )

풀이: "아버지의 양반에 대한 증오심...백범에게 계승되었고, 양반에 대한 증오심은 좀 다르게 변형된 양반콤플렉스로 나타난다. 그는 동학의 교리를 처음 듣고 "...상놈된 한이 골수에 사뭇친 나로서는 동학의 평등주의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고..." 주)16  이것은 그의 심적 갈등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백범의 일평생은 상놈으로 태어나 양반이 되어야겠다는 탈신분적..."

 

2) 백범은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O , X)

 

정답: ( O )

풀이: "8세 무렵 한글을 배우기는 했으나, 15세때 정문재의 서당에서 글공부를 시작하여 17세때 과거에 응시했다가 실패하였다. 이는 실로 백범의 일생중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준 몇 가지 사건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백범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과거를 보았으며,..."아무리 공부를 한댓자 그것으로 발전하여 양반이 되기는 그른 세상인줄을 깨닫게..." 주20)"

 

3) 백범은 관상보기를 배웠다. (O , X)

 

정답: ( O )

풀이: "과거에 떨어지고...실의에 빠진 백범은 풍수, 관상을 공부하다가 자신의 관상에 또 한번 실망했지만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라는 귀절에서 위안을 얻고 心好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했다. 20p"


4) 백범은 일본인 밑에서 일하는 한국인 형사들을 증오하지 않았다. (O , X)

 

정답: ( O )

풀이:"...복역중 17년 전에 김창수라는 이름으로 인천감옥에 수감되었던 백범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한국인 형사들이 그 사실을 숨겨준데 대하여 그는 '나라는 망해도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며 매우 기뻐했다. 30p"

 

5) 백범은 도둑의 조직과 규율을 배웠다. (O , X)

 

정답: ( O )

풀이:"...복역중 감형이 거듭되어 석방의 희망이 생기자 이름을 거북구에서 아홉구로, 호를 연하에서 백정의 백과 범부의 범을 딴 백범으로 바꾸었다. 옥중에서 그는 삼낭의 활빈당 괴수 김진사라는 사람에게 도둑의 조직과 규율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그가 후일 임시정부 경무국장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31p"

 

6) 백범은 국내의 임시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았다. (O , X)

 

정답: ( O )

풀이:"...송명근 사건이 일어나 백범은 1911년 1월 5일 체포되어 15년 형을 선고받고, 같은 시기에 일어난 105인 사건으로 2년이 가산되어 17년 형이 되어 4년 반 동안 옥에서 살다가 1914년 7월에 가석방 되었다. 출옥후 약 4년 반 동안 소위 전과자로서 농장의 감독일을 맡아했다. 32p"

 

아래의 증거자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자료1.

 

임정구성.jpg

 

 

7) 백범은 상해 임시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았다. (O , X)

 

정답: ( O )

풀이: "김구선생이 상해에 도착한 때는 임시정부수립이 선포된 1919년 4월 13일이었다. 김구의 상해임시정부 참여는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의 일이다."

 

아래의 증거자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자료1.

 

기념사업.jpg

 

자료2.

 

직원.jpg

 

김구선생은 임시대통령이나 국무원 직원이 아니었고,
물론 참사원, 경호원, 고인도 아니었습니다.

 

자료3.

 

im07-2.jpg

 

위 목록에 김구선생의 이름은 없습니다. 즉,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당시 김구선생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구선생은 임시정부에서 무엇인가 일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대한독립에 보탬이 될 일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8) 백범은 임시정부청사의 수위자리를 부탁했다. (O , X)

 

정답: ( O )

풀이: "이때 김구는 처음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하게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임시정부에는 신익희, 이현진, 이춘벽 등 젊은 차장들이 총장의 직무를 대리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은 김구가 문 파수를 보게 되면 드나들기 거북하다는 이유로 김구는 1919년 9월 경무국장에 임명한다. 이로부터 5년동안 경무국장직을 맡게 되었다. 주43)

 

9) 백범은 주석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O , X)

 

정답: ( O )

풀이:김구선생 상해임정 수장이 되었을 때, 그 명칭을 마르크스 공산국가의 국가원수에 붙이는 칭호인 '주석'(장개석총통,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모택동주석, 김일성 주석이라고 불렀음)을 사용하였고, 당시 임정의 주석은 김구선생이, 부주석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맡았다.

 

10) 백범은 공산주의자이다. (O , X)

 

정답: ( X )

풀이: 백범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하루는 국무총리 이동휘가 김구를 보고 공산혁명에 가담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구는 이를 거절하였다. 39p"

 

백범이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우합작을 하였지만, 선생은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아래의 증거자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자료1.

 

반공[1].jpg

 

 

자료2.

 

공산.jpg

 

 

자료3.

 

"마르크스주의 하나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히 잘못된 이론일진대, 그런 큰 인류의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학설의 기초인 헤겔의 변증법 이론이란 것이 이미 ...전면적 진리가 아닌 것이 알려지지 아니하였는가. (중략)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스 독일...미국은 이러한 독재국에 비겨서는 심히 통일이 무력한 것 같고 일의 진행이 느린 듯하여도, 그 결과로 보건대 가장 큰 힘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의 효과이다. (중략) -백범일지-

 

 

11) 백범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O , X)

 

정답: ( O )

풀이: 백범은 일본제국주의에게 조국을 빼앗기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 남북이 분단되지 않은 조국을 되찾아서 근대국가가 성립되기를 바랬다. 따라서 그는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것은 백범의 '의지의 표현'이다.

 

아래의 증거자료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자료1.

 

정부수립.jpg

 

 

2. 무지한 자들의 '험구' 내용

 

부채질.jpg

 

 

철없고 무지한 몇 사람이 위의 사진을 제시하면서(붉은 줄 부분) 김구선생에 대하여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구를 퍼부었습니다. (김구테러사건) 이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저들은 '항일테러활동을 한 것'을 가리켜 "김구선생이 테러리스트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습니다.

a)백범은 항일테러활동을 했다 (o)
b)백범은 테러리스트이다(X)


만일 a)와 b)를 구분할 줄 모른다면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를 지닌 자라고 할 것입니다. 참고로 사전적으로 테러작전이란 호러와 유사한 의미로 공포심을 유발하게 하여 자신들의 이념적, 정치적 세력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작전'의 하나를 가리킵니다.

 

둘째, "이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는 것에 대하여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보셨듯이 사료에도 나타나있는 '사실'입니다.

 

셋째, 파랑색 밑줄 부분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였으며'라는 것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하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김구선생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그 해 9월에 참가하였음을 위 자료 7)에서 확인했습니다.

 

 

장삿속인지, 어리석은 군중심리인지 이와같은 '억지트집'으로 애국선열을 욕보이고, 시민이 찬반으로 나뉘어 다투게 만드는 세력이 이 시대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앞으로 우리 누구도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말을 만드는 자'에게 결코 한시라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끝으로 백범 김구선생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긴 '경계'를 마음에 새기고,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법치주의에 따라 통치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됩시다.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서로는 언제나 봄바람처럼 화기애애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백범일지- 


참고자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8,국사편찬위원회,2007
논문 '백범김구의 정치사상 연구'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백범김구, 백범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