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과 '독재'의 정부(情夫) 서정주
‘이 땅의 황국신민들' - 혹자는 미당이 시인들의 정부(政府)라 극찬하지만
우리나라는 약소국이라는 오랜 콤플렉스 때문인지 유난히 금메달에 집착한다. 은메달리스트는 마치 큰 죄인
취급을 당한다. 어디 스포츠뿐인가. 다른 누군가와 계량적인 비교가 어려운-아니 그런 비교자체가 무의미한-문학 분야에서도 금메달을 따고 싶어
안달이다. 바로 노벨 문학상이 그렇다.
한국의 경우 문학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한 노벨 문학상 수상. 이를 쟁취하기 위해 문학계는
‘소월’과 ‘미당’이라는 두 후보 선수를 밀고 있는데 아직 성과는 없다.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소월과 미당이 구사하는
구수한 우리말의 멋을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이해하려면 버터에 길들여진 그들의 입맛을 청국장으로 바꾸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우리들의 정서를 굳이 외국인-그것도 백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식민지 근성은 논외로 하자. 필자는 굳이
노벨문학상을 계속 받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그렇다면 그 대표선수에서 미당(오른쪽 사진)은 탈락시키자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 일종의 문학계
국가대표선수에 대한 세대교체 주장이다. 만약 그를 대신할 후보가 없다면 차라리 노벨문학상 하나 포기하자는 대안도 곁들여서 말이다.
지난 해에 미당을 연상시키는 빅 뉴스가 있었다. 바로 여당의 의장이던 신기남 의원의 부친이 일제시대 헌병 오장(伍長)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급기야 사퇴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오장은 지금의 하사에 해당되는 계급인데, 서정주의 대표적인 친일시가 바로 <오장
마쓰이 송가>이다. (원제목 松井伍長頌歌 매일신보 1944년 12월 9일)
다음은 <오장 마쓰이 송가>의
일부분으로 이 시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일원으로 전쟁 중 사망한 인(印)씨 성을 가진 조선청년의 죽음을 미화, 찬양한 미당의 대표적인 친일
시이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는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이하
생략)
이렇듯 민족말살에 광분하며 조선인 가미가제 청년이 일본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실을 열렬히 찬양하며 조선인을 전쟁터에 내몬 ‘대동아성전’의 선전대원이었던 그가 해방 후에는 군사정권 아래서는 독재자 전두환의 생일에 축시를
올리며 권력의 시녀였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었다. 혹자는 그를 시인들의 정부(政府)라고 극찬하지만 그는 반역의
정부(情夫)였을 뿐이다.
다음은 1987년 전두환의 56번째 생일에 바친 축시
<처음처럼>의 일부분이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이하
생략)
차마 그의 시를 다 옮기기에는 지면이 아까우므로 이 정도
해두자.
이처럼 서정주는 친일이 어떻게 친독재로 이어져 그 질긴 생존력을 유전하는지 잘 보여주는 표본이다. 이는 과거사 청산의
모범으로 자주 이야기되는 프랑스의 사례와도 좋은 대조가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하면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 그리고 소설 <이방인>의 작가 카뮈가 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가했다는 점이다. 즉, 우리로 말하면 독립운동가들인 셈이다.
카뮈(1913-1960)는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의 지명을 받았으나 노벨문학상의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특히, 카뮈는 나치 치하에서
전투라는 뜻의 지하 저항 언론 ‘콩바’지의 주필로 맹활약했으며, 파리해방 후에는 관용론을 주장하며 친나치 협력자 처벌에 소극적인 지식인들에 맞서
정의론을 주창한다. 즉, 나치치하에서는 직접 저항운동을 해방 후에는 협력자 처벌에 앞장선 카뮈야말로 프랑스가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시기 제국주의 치하에서 일본군의 종군 작가로도 맹활약하고 해방 후 반공과 독재 옹호에 앞장선
서정주(1915-2000)에게 ‘민족시인’, ‘국민시인’이라는 호칭을 주며 국가대표 문학인의 자리를 내줄 정도로 우리는 자존심도 없는 것일까.
만약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서정주의 이런 활동을 알고도 그에게 문학상을 과연 줄 수 있을까. 노벨상의 권위를 스스로 허무는 일을 그들이 할
리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하의 카뮈가 벌떡 일어날 일이다.
프랑스 해방의 영웅 드골은 파리 해방이후 숙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특히, 문학인과 언론인 등 주로 펜을 쥔 인사들에 대해 더욱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
드골을 비롯한 레지스탕스들은
‘만약 프랑스인 한 사람에게 가해를 입힌 나치협력자가 있다면 그는 피해를 당한 그 한 사람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되지만, 문필 활동으로 나치에
협력한 자는 불특정 다수의 프랑스인들에게 가해를 가한 것이므로 더욱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즉,
나치를 찬양하는 글과 방송과 선전 활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법률적으로 말하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즉, 자신의 행위로 인해서 구체적으로 어느 누가 피해를 볼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가 초래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법에서는 ‘미필적 고의’도 고의에 의한 살인과 동일하게 본다.
우리는 학교에서 영어시간에 비교법을 배우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는 속담을 달달 외곤 했다.
그것이 프랑스에서는 진실로
여겨졌던 것이고 지금도 그 사회는 주먹이 아닌 토론과 논쟁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작 우리는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고 가르치면서도 왜 친일 문학인들에게는 ‘정치를 몰라서...’라거나 ‘예술가도 희생자...’라거나 하면서 변호하기에 급급할까.
판사는 판결로 이야기하고 기자는 기사로 이야기하듯 문학인은 자신의 작품으로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품과 작가가
별개라면 왜 굳이 그런 위선적인 작가에게 큰 상을 주자고 호들갑일까.
얼마 전 서정주의 고향인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시문학관
이사회에서는 서정주의 친일?친독재 작품을 정식으로 전시하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서정주의 경우에는 노벨상보다는 그의
친일?친독재 작품을 먼저 널리 알리는 활동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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