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이종웅2020년 2월 28일 ·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중에서

장전 2021. 4. 3. 12:22

이종웅

2020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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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시인.

당신의 <세한도>라는 시를 처음 읽던 날.

내 목마름이 구체적인 소리로 다가 오더군요.

그 동안 뱉고 싶었던 내 안의 모든 말들이 당신의 시 속에서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었기에

난 이내 한기와 함께 오한을 느꼈으며,

그날부터 감기와 몸살로 며칠을 앓아야 했답니다.

내가 시를 읽고 앓아 보기는 처음이었지요.

우리 인간들이란...... 시를 읽고 앓기도 한다는 사실을,

박현수 시인, 당신은 알고 계시는지요?

세한도歲寒圖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 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클어진 삶을 쓸어올리며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 속에서

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鶴笛)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 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 가는 것

-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중에서

 

 

세한도歲寒圖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 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클어진 삶을 쓸어올리며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 속에서

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鶴笛)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 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 가는 것

 

-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