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의 아픈 첫사랑 이야기
지난번 포스팅에서 예이츠의 묘비명을 얘기 했는데 한가지 빠진게 있다. 바로 예이츠의 시비(詩碑). 그것은 예이츠 무덤이 있는 성 콜럼버스(St. Columba's) 교회 마당에 있는 또하나의 기념물이다. 우선 멀리서도 눈에 띄는것은 똥누는 폼으로 앉아있는 영감님 동상이다. 물론 예이츠인데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폼파도르 헤어스타일 대신 대머리 노인이라 낯설다. 조각가 재키 맥키나는 예이츠의 말년을 그렸다는데 벗은 몸통과 맨발이 더 쓸쓸하다. 어쨋든 나는 조각상 보다는 그가 깔고 앉은 시비에 주목했다. 전체로 사방 6m 정도 넓이의 동판에는 예이츠의 절절한 사랑시가 새겨져 있다. 아니, 그것은 시를 수놓은 융단이다. 나는 슬라이고에 오기전 이 시를 알고 있었기에 보는것 만으로도 충격이 컸다. 아, 얼마나 아픈 기억이었으면 이 시를 여기다 쏟아 놓았을까..
Aedh Wishes For The Cloth Of Heaven
<하늘 융단을 위한 기원>
...前略.. "나는 가난하여 오직 꿈만 가졌기에, 그대 발 아래 내 꿈을 깔았어요. 부드럽게 밟아요, 그대 밟는것 내 꿈이오니."
잘 알려진대로 이 시는 예이츠의 사랑고백 이다. 그의 첫사랑 <에디스 모드 곤> 에게 바치는... 예이츠는 1889년, 24세에 한살 어린 모드곤을 처음 만나 바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모드곤에게 예이츠는 그저 '지저분한 옷차림의 문학도' 였을 뿐이었다. 예이츠는 그 만난 첫해 사랑을 고백하고 바로 딱지 맞는다. 그의 세번째 시집 <갈대숲의 바람> 에 실린 '하늘융단' 시는 고백 직전에 쓴것으로 보인다.
그는 1891년까지 두번 더 프러포즈 하고 내리 거절 당했다. 당시 에이레 해방운동에 몰두하던 혁명가 모드곤은 허약한 시인 따위에 별 관심 없었을법 하다. 예이츠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해방운동에 관여하고, 시대극 <캐슬린의 긍지>(Cathleen Ni Houlihan) 을 연출하며 모드곤을 주역에 발탁한다. 이런 예이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1도 관심 없었던 모드곤은 더 열렬한 해방운동가 맥브라이드와 결혼한다. 그리고 맥브라이드는 영국군에게 살해 당했다. 기회를 다시 얻었다 싶은 예이츠는 1916년, 그의 나이 51세에 다시 모드곤에게 청혼하고 또 정중하게 거절(Duly Refused) 당한다. 훗날 예이츠는 모드곤 처음 만났을때를 "내 인생 흑역사의 시작"(The Troubling Of My Life Began) 이라 썼다. 방황하던 예이츠는 결국 이듬해 하이드리스와 결혼하고 남매를 두었지만 애정은 별로 없었던듯 하다. 그는 여러 여자들과 혼외 로맨스를 이어 가다가 프랑스 멘퉁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했다.
그때 불었던 북아일랜드의 갈대바람 맞으며 예이츠의 시비 앞에 섰을때 만감이 교차했다. 나의 첫사랑도 이토록 애절하고 아쉬웠던가. 예이츠가 평생 사랑했던 오직 한 여인 모드곤, 그 아픈 순애보... 흙먼지 앉고 푸르게 녹슨 동판의 詩句 한줄 한줄이 일어서 내게로 걸어왔다.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것 내 꿈이오니.." 아니 그 마지막 구절은 다르게 읽혀졌다. "부드럽게 밟으렴, 너도 내 꿈을 짓밟았으니.."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
(후기 : 작년 초순엔가, 예이츠의 동상이 도난 당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이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못찾았단다. 절도범들이 녹였을거라는 추론.
또 하나 : 이 詩는 한국영화 '다세포소녀' 에 나온다. 이재용 감독의 치기어린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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