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아이들>, 지금이야말로 자유를 지킬 마지막 기회!
지난주 초, 명보 시네마였던가, <김일성의 아이들> 상영 스케줄 잡혔다는 정보를
김덕영 (Young Kim) 감독님 탐라에서 보고 소리 소문 내지 말고 살짝 가서 보고 와야지, 했었다. 그런데 ‘우한폐렴 계엄령’ 때문에 취소됐다는 소식에 계획 취소. 다운로드 빠지면 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마음 비우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 감독님 페친이 집에서 보셨다는 글을 올리신 거 보고 냉큼 검색, 어느새 유튜브랑 다운로드 사이트에 다 깔렸다. 제휴 콘텐츠니까 어디서나 동일한 가격으로 다운로드 가능하다.
보고 나니 감독님이 처음 제목을 왜 <Two Homes>라고 하셨는지 이해했다. 솔직히 소설가 입장에서는 처음 제목이 더 마음에 들고 더 어울린다고도 생각, 더 문학적이고 더 상징적인 제목이라는 데 한 표 던진다. 그러나 대중에게 다가가기엔 <김일성의 아이들>로 바꾸길 잘하셨다는 데 열 표!
김일성은 6.25전쟁으로 부모 잃고 집 잃고 갈 데 없는 북한 아이들을 위탁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동유럽 각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5천 명쯤 된다고 한다. 짧게는 3~4년, 길게는 7년 여, 아이들이 힘들고 외롭게나마 해외 살이를 할 수 있었던 건 김일성의 능력이 아니라 1950년대, 소련이 세계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다큐는 과거 기록필름들과 함께 현재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등으로 직접 찾아가 만난 현지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릴 적 북한 친구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사랑했던 북한인 남편을 그리워하는 늙은 아내의 눈물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나, 무슨 착각이었을까. 아, 유럽인 친구들 앞부분에 나오고 김일성의 아이들 현재 모습은 짜잔~ 하고 뒤에 나오겠구나,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고 봤다.
나는 몰랐었다. 그들이 그냥 시베리아나 사할린에 버려진 채 살고 있는 고려인들처럼 동유럽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김일성은 그들을 죄다 불러들였다. 소련도, 동유럽 국가들도, 무엇보다 북한이 그들의 유학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유의 바람을 쐰 아이들에게 투자해야 할 이유가 김일성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충격이었던 건 송환된 아이들을 돌아가는 길. 하나씩 뿔뿔이 다 떨궈놓고 흩어놓은데다 그 후 소식마저 모두 끊겼다는 것. 아, 그들 모습은 끝까지 못 보는 거구나.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운 사람 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캄캄하게, 숨 막히게 폐쇄된 곳이구나!...... 이 당연한 사실이 왜 이렇게 충격이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생명은 어미 잃은 새끼다. 거기다 비바람 막아줄 집이 없는 아이다. 여기에 더해 나를 지켜줄 자유롭고 힘 있는 국가가 없는 인간이라면! 존 레논이 ‘국가 없는 세상’을 꿈꾸어 보라고, 그러면 ‘하나 된 세상에서 평화’로울 거라는 이상한 노래(‘Imagine’)를 불러 한때 유행하기도 했지만 힘없는 나라를 조국으로 둔 인간, 아예 조국이 없는 무국적 인간이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가치 없는 존재다. 그런데 그 모두를 잃게 만든 조국이, 아이들이 그나마 마음 주고 의지했던 선생님과 친구들마저 모두 갈라놓고 찢어놓았다. 그리고 생사마저 모른다. 있는 대로 빼앗고 또 빼앗고 목숨마저 빼앗은 것이 아이들에게 그들의 조국이 행한 짓이었다.
동유럽 국가에 생존하고 있는 노년의 친구들은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보고 싶다, 기다린다, 행복하면 좋겠다며 안부를 전하는데 북한으로 돌아간 친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답이 없다. 교장과 교사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딸 낳고 살았던 남편과 강제로 헤어진 아내는 60년이 지나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그가 살아 있다 믿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숙명 속에서 태어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조국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숙명 중 하나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선지 선택 받아서인지 자유의 땅에서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무슨 연유인지 노예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지옥의 땅에서 태어난다.
노력에 따라 개인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유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개인의 의지도, 땀도, 꿈도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이니 성실이니 긍정적 마인드니 하며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건 오직,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6.25 이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세대가 자유에 대해 생각해볼 일 있었을까. 우리에겐 그냥 너무나 당연한 자유였다. 그런데 그 모든 자유와 풍요를 다 누리면서도 지옥에서 살고 있는 듯, 독재타도니 민주주의니 떠들던 투사라는 인간들은 이제 와 보니 자유를 위해 싸운 게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이 믿는 왜곡된 이념만을 위해 투쟁한 것 뿐.
그 결과 그들만의 자유는 확대되고 우리들, 보통 사람들의 자유는 점점 쪼그라들어 이젠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리고 이대로 간다면 우리 후손들, 우리 미래 세대는 “자유가 뭐야? 난 그저 배가 고플 뿐, 오직 쉬고 싶을 뿐이야.” 신음하며 새벽별 보기 운동하고 강제 노동하며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글 잘 쓰시는 건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땀 흘려 한 발 한 발 찾아가 정성껏 만든 영상 위로 감독님의 글과 내레이션이 자유의 소중함을 관객에게 나직하게, 그러나 진실로 절절하게 전달한다. 지금, 자유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아무렇지 않게 누린 자유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영화다. 과거를 돌아보며 지혜롭게 미래를 말하는 영화.
우리나라 권력 소유자나 그들을 따르는 언론 등은 꼭꼭 감춰놓고 싶고 깎아내리고 싶겠지만,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자유의 친구들이라면 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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