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호남 선비들의 풍류와 누정 문학을 찾아서*
士林 文學(사림 문학), 歌辭 文學(가사 문학),그리고 樓亭 文學(누정 문학)의 산실인 竹鄕(죽향), 담양을 가서
옛 선비들의 풍류의 발자취를 더듬다
*라이딩 코스*
1,2018,5,27(일), 서울 센트럴 시티 버스 터미날에서 오전 8시 10분에 담양 행 버스에 탑승
2,오전 11시 반에 담양에 도착하여 라이딩 시작
3 명품 가로수길로 유명한 약 2.1키로에 달하는 메타 세콰이어 가로수길
4,메타 세콰이어 원목으로 만든 약 200여 점의 장승 조각이 있는 장승 공원
5,수령 300년 이상 거목들이 늠름하게 줄지어 서 있는 천연 기념물 제 366호인 官防 堤林(관방 제림)
6,빽빽히 들어 선 푸른 대나무들이 유쾌한 향연을 펼치고, 푸른 댓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경이로운 국내 유일의 죽림 욕장인 죽녹원
7,관방 제림 부근의 향교 다리 인근에 있는 유명한 담양 국수 거리
8,일제 강점기 때 옛 경찰서 자리에 세운 담양 평화 소녀의 상
9,한국에서 자생하는 총 64개 품종의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온갖 대나무 관련 자료와 죽제품들이 전시 되어 있는
국내 유일의 대나무 박물관
10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이며,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면앙 송순이 후학을 가르쳤던 면앙정
11,송강 정철이 유배 생활을 끝내고, 낙향하여 임금님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노래한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저술했던 송강정
12,조선 후기의 학자 吳以井(오이정)이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은거했던 명옥헌 원림
13,조선 명종 때 문신인 林億齡(임억령)이 관직을 버리고 유유 자적하며 자연을 벗삼아 지냈고, 송강 정철의 성산 별곡을 탄생시킨 식영정
14,나주 목사를 지낸 金允悌(김윤제)가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인 환벽당
15,忠莊公(충장공)인 김덕령 장군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취가정
16,송순의 면앙집,정철의 송강집등 수 많은 가사 문학 관련 서화및 유묵, 도서들이 전시되어 있는 가사 문학관
17,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하고,우리 나라 최고의 명품 별서 정원으로 손 꼽히고 있는 명승 40호인 소쇄원
17,고려 때 큰 벼슬을 한 全新民(전신민)이
고려가 멸망한 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며, 은거하며 지냈던 독수정
18,담양군 남면 연천리의 독수정에서 광주 버스터미날까지 22키로 라이딩
19,광주 버스 터미날에서 오후 8시 5분에 분당행 버스에 탑승
20,자택에 오후 12시경에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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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綠園 (죽녹원)*(1)
죽록원은 국내 유일의 죽림욕을 즐기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산책을 할 수 있게끔 잘 조성되어 있었다
산책길은 추억의 샛길,철학자의 길,사색의 길, 죽마 고우의 길등 총 8개 코스가 2.4키로 구간에 조성되어 있다
竹綠園(죽녹원)*(2)
죽녹원의 매표소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자
곧 이어 동화 속, 푸른 나라의 요술에 휩싸여 빨려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창창한 푸른 대나무들이 향연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위가 온통 푸르러 대나무에서 싱그러운 푸른 물이 뚝뚝 떨어 질것만 같았다
*竹綠園 (죽녹원)*(3)
죽녹원의 가장 큰 매력은 대숲에 부는 청량한 바람과 대숲과 대숲이 서로 부딪히는 사각 삭하는 소리,그리고 대숲을 통과하여 눈부시게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
바람이 대나무를 흔들면 댓잎들이 청량한 기운을 뿜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햇살과 그림자가 그려내는 풍경도 자뭇 고혹적이다
*竹綠園(죽녹원)*(4)
대숲은 산소 발생량이 많고 음이온도 일반 숲에 비해 2배가 많이 나와 머리가 한껏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기치 장검같이 하늘을 찌르는듯이 거침없이 쭉 쭉 뻗은 "왕대"를 비롯하여 둘레가 두 뼘이나 되는 "맹종숙"
손가락 보다 가느다란 "이대"등.....
많은 종류의 대나무들이 서로 서로 다투며 자신을 뽐내고 있다
*竹綠園(죽녹원)*(5)
맑은 바람이 푸른 댓잎을 간지럽히고 미소 지으며 지나 간다
푸른 댓잎을 통과해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하늘로 쭉쭉 빵빵 뻗은 대나무들이 청량하고 청아한 기운의 물결에 일렁이고
나무도 풀도 아닌 것이 싱그러운 매력을 뿜어 대며 나의 온 몸을 휘감는다
*竹綠園(죽녹원)*(6)
눈이 부시게 푸르른 5월....
竹鄕(죽향)인 담양의 5월은 더욱 푸르르다
햐얀 손수건을 공중에 휙 던지면 파란 물이 묻어 날것 같고
하늘을 가린 대나무 숲에서는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아름드리 거목들이 하늘로 우뚝 솟아 열병식을 하듯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 콰이어 길, 관방 제림은 푸른 5월의 낭만이 일렁거리며 정겨움이 묻어 있고,
음진 울창한 대 숲에선 봄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시원한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죽녹원 전망대인 봉화루에서 바라 본 풍경*
가까이에는 아름드리 거목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관방제림이 보이고
멀리에는 담양 읍내 모습이 보인다
*松竹問答(송죽 문답:소나무와 대나무 대화)*...이식
소나무가 대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눈보라 몰아쳐 산골 가득해도
나는 강직하게 머리 들고서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히지 않는다오
대나무가 소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고고할 수록 부러지기 쉬운지라
나는 청춘의 푸르름을 고이 지킬 따름
머리 숙여 눈보라에 몸을 맡긴다오
*메타 세콰이어길*(1)
살아 있는화석...
공룡과 함께 살았던 나무...
현재 알려진 최고령 나무가 樹齡(수령)이 무려 3200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순위 1위~3위까지 차지한 나무...메타 세콰이어
*메타 세콰이어 길(2)
순창에서 담양으로 넘어 가는 국도에 접어 들면 메타세 콰이어 가로수를 만나게 되는데 그 길 끝에는 차가 달릴 수 없는 메타세 콰이어 길이 따로 있다
이 곳은 담양 읍내로 접어 드는 샛길이 나면서 더 이상 자동차가 이용하지 않는 가로수 길이다
*메타 세콰이어길*(3)
메타 세콰이어길은 총 길이 2.1키로로, 이 구간에는 메타세 콰이이어 나무가 총 478그루가 심어져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늦 봄에 메타세 콰이어 길을 천천히 浮遊(부유)고 있는 듯,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메타 세콰이어길*(4)
이 곳은 1972년 정부가 가로수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담양군이 메타세 콰이어 가로수를 심었는데
지금은 전국을 통틀어 명품 숲길로 자리 잡고 있다
여유로운 풍경속을 거닐며 명품 가로수 길의 아름다움을 탐닉 해 본다
*메타 세콰이어 나무 이야기*
영웅의 뜻을 가진 미국 체로키 인디언의 지도자의 이름인 "세콰이어"에서 유래 되었는데
체로키 인디언들은 그들의 영웅인 세콰이어를 영원히 기억하고 추앙하기 위하여 ,자신의 거주지에서 자생하는 수령 3000년이나 되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에 "세콰이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 후 이 나무가 1년에 무려 1 메타씩 자란다 하여 세콰이어 앞에 "몌타" 를 붙이게 되었다 한다
(세콰이어와 나무와 약간 다른 나무가 후에 발견되어 "후에"라는 접두어인 "메타"를 붙여 "메타 세콰이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메타 세콰이어 굴다리 갤러리*
메타 세콰이어 가로수의 4계절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메타 장승 공원*
메타세 쾨이아 길 인근에는 2003년 국도 15호선 도로의 확장공사로 인하여 부득하게 훼손 벌목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를 재 활용하여 만든 장승들이 세워진 공원이 있는데
이 곳 장승들의의 이름들은 "천하 대장군"."지하 여장군",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벼슬인 "영의정","좌의정","우의정"등의 장승이 있고, 장승의 색깔도 빨강,파랑, 노랑등 온갖색으로 장식해 화려하며 크기도 메타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장승들 보다 훨낀 크다
*담양 국수 거리*(1)
엣날 대나무 제품을 사고 팔았던 죽물 시장이 열리던 관방 제림의 부근인 향교 다리에는 이제 비슷 비슷한 국수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늘어서 있다
이 근방에 있는 죽녹원, 관방제림,메타세 콰이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
국수집들이 유명해서 이 일대의 거리를 국수 거리리 한다
*담양 국수 거리*(2)
천연 기념물로 지정된 200여 그루의 관방 제림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 길에 있는 이 "국수 거리의 국수"는 멸치 국수로 구수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라 한다
*官防堤林(관방제림)*...천연 기념물 제 366호(1)
죽녹원 바로 앞에 있는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때 담양 부사였던 成以性(성이성:성 춘향전의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 해 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처음 조성하기 시작 하였다
*官防堤林(관방제림)*...천연 기념물 제 366호(2)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며 지나는 담양천의 북쪽 제방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방제림으로 심은 官防堤林(관방제림)은
담양읍 東亭子(동정자) 부터 천변리까지 약 2키로 구간이었지만
지금은 대전면 강의리까지 약6키로까지 연장되었다
*官防堤林(관방제림)*...천연 기념물 제 366호(3)
몸통과 가지가 한 껏 노익장을 과시 하며, 비틀리고 구부러진 기괴한 모습을 한 거목들이 담양천변의 제방을 따라 늘어져 있는 모습은 장관을 이루며, 이채로운 풍광을 선사 해 준다
이 관방제림에는 느티 나무,음나무,벚나무, 이팝 나무,개서어 나무,팽나무등 약 420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는 수령이 300년이상 거목들이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은 독특한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연 기념물 구간으로 지정된 구간에는 약 185그루가 심어져 있다
*官防堤林(관방제림)*...천연 기념물 제 366호(4)
천연 기념물로 등록된 거목들은 일련 번호가 1~177번까지 매겨져 있다
곳곳의 거목의 나무 밑둥에서 세월과 바람의 흔적들이 무슨 훈장처럼 보였다 서저이독특한 서정이즉, 온갖 풍파에 시달린 세월의 흔적들을
즉, 오랜 세월의 거친 풍파를 견뎌낸 세월의 흔적들이 자신의 樹皮(수피)에 새겨져 있었다
*담양 평화의 소녀상*
담양읍 중앙 공원에 있는 이 "평화의 소녀상"은 전남에서 8 번째로 세워졌는데
이 세워진 위치는 일제 강점기 시절 경찰서 자리였다 한다
대나무 박물관 전경*
대나무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수 많은 대나무 공예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竹種場(죽종장)*...대나무 박물관
한국에서 자생하는 총 64품종의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대나무 박물관 광장 조형물 *
대나무 박물관 광장에는 옛 대나무 상인들의 여러 가지 행상 모습의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五友歌(오우가)*...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가 시켰으며,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대나무 박물관 로비*
대나무 박물관 로비에는 천장에 형형색색의 대나무 우산이 걸려 있고
벽면에는 담양의 성곽인 금성산성(삼국 시대)의 모습이 대나무로 형상화 되어 있다
*대나무 공예품*(1)
*대나무 공예품*(2)
*대나무 공예품*(3)
*대나무 공예품*(4)
*대나무 공예품*(5)
*면앙정*...전남 기념물제 6호(1)
영산강이 흘러 가는 담양의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동산에 세워진 담양군 봉상면 제월리에 있는 면앙정은 "宋純(송순:조선 중기 문신)"의 호에서 따 온 것으로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송순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면앙저에 오르면 넓은 담양 들판과 너머로 노령 산맥의 험준한 마루금이 보인다
*면앙정*...전남 기념물제 6호(2)
면앙정의 주인인 송순은 "소쇄원 48영"을 지은 김인후와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그의 대표 작품으로 "면양정가"가 있다
*면앙정가*...송순
속세를 떠나 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것인가
* 면앙정에 걸린 수 믾은 편액들*
송순은 이퇴계를 비롯하여 많은 문인,학자,정치인들과 교류 하였는데 그들은 주옥같은 글씨로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무릇, 정자란 바깥에서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 하는 것이다
*증암천*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광주호를 거쳐 결국 영산강과 한 몸이 되는 "증암천"은
옛 부터 여름철이면 유난히 배롱나무(목 백일홍)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빼어 난 경관을 가졌다 하여 "紫薇灘(자미탄)"라 불리웠는데,
이는 배롱 나무는 한자어의 "紫薇(자미)"와, 개울의 옛 말인 "灘(탄)"을 붙여 자미탄이라 하였던 것이다(창계천이라고도 불린다)
길가의 가로수들이 거의 배롱 나무이며,
이 증암천 물줄기를 따라 주변에 수 많은 옛 선비들이 吟風 弄月()음픙 농월했)던 정자들이 세워져 있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1)
송강 정철이 쓴 불후의 名 詩文(명 시문)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의 산실인 송강정 올라 가는 길......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증암천변에 있는 "松江亭(송강정)"은
激濁揚淸(계탁양청:더러운 탁류는 몰아 내고 맑고 깨끗한 물을 끌어 들인디)의 정치인이자,
대 문호인 송강 정철이 유배 생활을 끝내고, 이 곳에서 "죽록원"이라는 草幕(초막)을 짓고, 약 4년동안 조용히 심신을 달래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을 지으며 머물렀던 정자이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2)
광주 무등산에서 발원한 지천인 증암천이 영산간과 합류하기 직전인 위치해 있는 이 송강정에서 정철은 그의 대표작인 불후의 명시문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이곳에서 저술하였다
정철의 호에 걸맞게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앞으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3)
송강정의 현판은 두 개로, 정자의 정면에는 "松江亭(송강정)"이란 현판이, 그리고 측면에는 원래 이름인 "竹綠亭(죽록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송강정은 그를 기리기 위해ㅔ 후학들이 지은 것이며 죽록원은 송강 정철이 머물렀던 초막 이름이다)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思美人曲 詩碑(사미인곡 시비)*
송강 정철이 탄핵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인 창평에서 지은 이 사미인곡은 글자 그대로 "미인을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미인은 임금님(선조)를 뜻하며, 선조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충성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성이나 문화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이 사미인곡은
4계절의 변화에 따라 님(임금님)에 대한 간절한 보고픔과 짙은 외로움을 토로하는,
한 마디로 戀君之情(연군지정)"의 가사인 것이다
*사미인곡*
아 몸이 태어날 때 임을 따라 태어 나니
한 평생의 연분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오로지 젊어 있고 님 오로지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다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내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 갈꼬?
가거든 문을 열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 하실까?
봄 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 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싹싹하고 담담한데
그윽이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 와 베갯 머리에 비치니
흐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 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꺽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고 생각을 하실까?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중에서....)
*續美人曲(속미인곡 시)*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구나
천상의 백옥경(임금님이 계시는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 다 져서 저물어 가는데 누구를 보러 가시는가
(임금을 그리는 심정을 여인과의 대화를 빌려 은유적으로 노래 하였다)
*************************************************************************** *1부, 끝*
대나무 박물관*
대나무에 관련된 모든 자료와 수 많은 대나무 공예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竹種場(죽종장)*
한국에서 자생하는 총 64품종의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대나무 박물관 산책로*
五友歌(오우가)...윤선도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는 뉘가 시켰으며,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대나무 공예품*(1)
*대나무 공예품*(1)
*대나무 공예품*(4)
*대나무 공예품*(5)
*대나무 공예품*(6)
*대나무 공예품*(7)
*면앙정*...전남 기념물제 6호(1)
영산강이 흘러 가는 담양의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작은 동산에 세워진 담양군 봉상면 제월리에 있는 면앙정은 "宋純(송순:조선 중기 문신)"의 호에서 따 온 것으로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송순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면양정에서 바라다 본 담양 들판*
넓은 담양 들판 저 너머로 노령 산맥의 험준한 마루금이 보인다
*뒷쪽에서 바라 본 면양정*
무릇 정자란 바깥에서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 하는 것이다
*면앙정가*
속세를 떠나 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으며
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것인가
*면앙정*...전남 기념물제 6호(2)
면앙정의 주인인 송순은 "소쇄원 48영" 을 지은 김인후와 함께 호남릉을 대표하는 유학자로 그의 대표 가 작품으로 "면양정가"가 있다
* 면앙정에 걸린 수 믾은 편액들
송순은 이퇴계를 비롯하여 많은 문인,학자,정치인들과 교류 하였는데 그들은 주옥같은 글씨로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1)
송강정 올라 가는 길......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증암천변에 있는 "松江亭(송강정)"은
激濁揚淸(계탁양청:더러운 탁류는 몰아 내고 맑고 깨끗한 물을 끌어 들인디)의 정치인이자 대 문호인 송강 정철이 유배 생활을 끝내고 약 4년동안 조용히 심신을 달래며 머물렀던 정자이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2)
광주 무등산에서 발원한 지천인 증암천이 영산간과 합류하기 직전인 위치해 있는 이 송강정에서 정철은 그의 대표작인 불후의 명시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이곳에서 저술하였다
정철의 호에 걸맞게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앞으로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松江亭(송강정)*...전남 기념물 제 1호(3)
송강정의 현판은 두 개로 정자의 정면에는 "松江亭(송강정)"이란 현판이, 그리고 측면에는 원래 이름인 "竹綠亭(죽록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식영정,환벽당과 함께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思美人曲 詩碑(사미인곡 시비)*
송강 정철이 탄핵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인 창평에서 지은 이 사미인곡은 글자 그대로 "미인을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미인은 임금님(선조)를 뜻하며, 선조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충성을 노래한 것이다
작품성이나 문화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이 사미인곡은
4계절의 변화에 따라 님(임금님)에 대한 간절한 보고픔과 짙은 외로움을 토로하는, 한 마디로 戀君之情(연군지정)"의 가사인 것이다
아 몸이 태어날 때 임을 따라 태어 나니
한 평생의 연분임을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나 오로지 젊어 있고 님 오로지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가 전혀 없다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내고, 오색실을 풀어 내어
금으로 만든 자로 재어서 임의 옷을 만들어 내니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격식도 갖추었구나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담아
임에게 보내려고 임 계신 곳을 바라보니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천 리 만 리나 되는 머나먼 길을 누가 찾아 갈꼬?
가거든 문을 열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 하실까?
봄 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 세 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싹싹하고 담담한데
그윽이 풍겨 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황혼에 달이 따라 와 베갯 머리에 비치니
흐느껴 우는 듯 반가워하는 듯 하니
임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를 꺽어 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그러면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고 생각을 하실까?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 중에서....)
*續美人曲(속미인곡)*
저기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하구나
천상의 백옥경(임금님이 계시는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 다 져서 저물어 가는데 누구를 보러 가시는가
(임금을 그리는 심정을 여인과의 대화를 빌려 은유적으로 노래 하였다
*증암천*
무등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하여 광주호를 거쳐 결국 영산강과 한 몸이 되는 "증암천"은
옛 부터 여름철이면 유난히 배롱나무(목 백일홍)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빼어 난 경관을 가졌다 하여 "紫薇灘(자미탄)"라 불리웠는데,
이는 배롱 나무는 한자어의 "紫薇(자미)와, 개울의 옛말인 "灘(탄)을 붙여 자미탄이라 하였던 것이다
이 증암천 물줄기를 따라 주변에 수 많은 옛 선비들이 음픙농월했던 정자들이 세워져 있다
*瀟灑 梁先生 遺蹟碑(소쇄 양선생 유적비)*
瀟灑園(소쇄원)은 梁山甫(양산보,호가 瀟灑翁(소쇄옹)으로 조선의 문인)가 3대에 걸쳐 지었다
양산보는 스승이었던 조선의 사상가인 趙光祖(조광조)가 개혁을 급히 서둘다 실패한 뒤, 끔찍한 기묘 사화로 유배를 갔다가 결국에는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자,
그 때 나이 겨우 17세였던 양산보는 그 충격으로 낙담하여, 현세적인 꿈을 접고 處士(처사: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거사)로써 삶을 영위 하기 위하여 고향인 담양으로 낙향하여,
소쇄원을 짓고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며 숨어 살게 되었던 것이다
즉,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隱者(은자)의 생활을 하면서도, 사대부의 규범을 지키고자 이 소쇄원을 지었던 것이다
양산보 시(1)
한 병 술을 가지고 꽃밭에 들어가
친구 한 명 없이 술을 마실 때
잔을 들어 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가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
나만 술에 취하여 버렸네
양산보 시(2)
가장 아끼는 몸, 그 몸 누가 낳았으며
천금같은 눈과 얼굴 어디서 이루었나
아 부모님은 나를 낳아 주셨으니
수고로움 망극하고 사랑도 그지없다
*소쇄원 안내도*
소쇄원은 광주 버스 터미날에서 약 22키로, 담양 버스 터미날에서도 20키로 떨어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다
瀟灑園(소쇄원)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소개된 후,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구름 관중이 몰려 들고 있다.
한국 전통의 別墅 庭園(별서 정원:오늘 날 별장에 해당하며, 주택에서 떨어진 경승지나 유원지에 은둔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어 놓은 건물)으로
보길도의 윤선도 선생이 지은 "洗然亭(세연정:부용정 원림안에 있음)", 영양의 정영방 선생이 지은 "瑞石池(서석지)"와 함께 자연과 인공으로 조화시킨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3대 아름다운 별서 정원이다
*소쇄원 계곡의 청둥 오리*
담양의 남면 지곡리에 위치한 는 이 소쇄원은 서울에서 낙향한 양산보가 뒤뚱거리는 오리를 따라 가다 우연히 발견한 청정하고 맑은 支石川(지석천)의 계류가 흐르는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있다
양산보는 소쇄원에서 자연을 즐기고 숨어 살면서 봄에는 매화와 복사꽃을, 여름에는 목 백일홍(배롱나무)을 감상 하며,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피 맺힌 한을 이곳 소쇄원의 계류에 흘러 보내며, 마음속 불덩이들을 식혀 갔던 것이다
* 건너편 주차장에서 바라 본 소쇄원 입구*
소쇄원은 가까이에 있는 식영정,환벽당 송강정, 면앙정등과 함께 면앙 송순, 송강 정철,하서 김인후, 우암 송시열등 당대의 호남을 대표하는 여러 선비들이 드나 들면서 정치, 학문,사상등을 논하던 구심적 역할을 하면서 호남 士林 文化(사림 문화)를 이끌었다
소쇄정의 "소쇄"라는 말은 중국 송나라의 孔稚圭(공치규)가 쓴 "北山 移文(북산 이문:여기에서 북산은 隱者(은자)가 숨어 사는 산을 말한다)"에서 借用(차용)는데
*北山 移文(북산 이문)*
隱者(은자)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夫以耿介拔之標(부이경개발지표)
무릇 지조와 절개가 세속에서 빼어 난 풍모가 있어야 하고
瀟灑出塵之相(소쇄출진지상)
마음이 씻은 듯이 맑고 깨끗하여 홍진을 뛰어 넘는 기상이 있어야 하고
度白雪以方潔(도백설이방결)
몸은 흰 눈을 갓 건너서 온 것처럼 결백하여야 하며
干靑雲而直上(간청운이직상)
뜻은 하늘의 푸른 구름을 능가하여 곧 바로 하늘 위로 다달아야 한다
즉, 소쇄원의 주인인 양산보는 위의 글에서 瀟灑(소쇄)라는 문구를 차용하여 "瀟灑園(소쇄원)"이라 하였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몸과 마음의 기운을 맑고 깨끗하개 하다"의미로 더러운 세상을 피하여 울창한 대숲과 굽이 굽이 휘돌아 가는 계류 옆에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맑고 깨끗한 이상적인 공간을 건설 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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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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