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기억의 그늘에 묻은 약속

장전 2018. 8. 9. 04:55


기억의 그늘에 묻은 약속



비극의 전쟁 625가 한국사회에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이 비극의 역사를 잊고 지우고 싶은 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이 땅에서 625는 그대로 잊히거나 묻혀도 괜찮은 것일까? 

미제의 패권경쟁이 낳은 폐해라고 주장해온 자들이여, 단 한번이라도 통곡하는 유족의 손 한번 잡아준적 있는가. 북침전쟁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이 땅의 교사들이여, 

수백만의 무고한 죽음을 그렇게 모독하고도 그대가 선생이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겨우 5년 뒤인1950년 6월 25일,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자 마자 북괴의 남침으로 한반도는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고 만다.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던 한국군은 탱크까지 앞세운 북괴의 침공에 처참히 무너지고 결국 미군을 필두로 연합군이 참전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땅에 도착한 터키군 하사 슐레이만의 이야기이다. 조국만큼이나 사랑한다는애인을 두고 이국만리 전장으로 떠나온 슐레이만과 그의 동료들은 전쟁이 막바지여서 곧 귀국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들떠 있었다.


그때 중공군이 참전하게 되고 상황은 급박하게 변한다. 바로 옆 전우가 폭격에 죽어나가는 등 참전 후 처음 생과 사의 경계에 서게 된 슐레이만 하사는 동료들과 희미한 달빛을 더듬어 전장을 헤집던 중 시체더미 속에서 홀로 앉아 있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눈 앞에서 부모가 총살 당하는 것을 본 뒤 말을 잃어버린 아이, 슐레이만은 그녀를 꼭 안고 부대로 데려오고, 전장을 함께 다니면서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본다.터키군은 연합군이 후퇴할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사수한 군우리에서의 전투능력을 인정받아, 미국과 한국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으며, 형제의 나라라는 칭호를 받는다.


달빛 아래서 발견한 달처럼 동그란 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아일라! 그녀로 하여 슐레이만은 참혹한 전쟁터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한국에 머문다. 물론 귀국해도 된다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지만 고아가 된 아일라를 더 돌보려고 떠나지 않는다. 그림책으로 터키어를 가르치는 술레이만, 그림책의 가족 셋을 가리키며 엄마도 형제도 없고 아빠만 있다며 술레만을 파파라고 부르는 아일라. 그들은 한 발자국도 곁을 떠나지 않는 찰떡 부녀지간이다. 이런 그들 부녀는 동료와 상사들로부터도 사랑을 받는 천상부녀지간.


1년을 함께 한 아일라와 술레이만, 고향친구도 잃고 수많은 장병들이 차가운 땅속에 묻히는 슬픈 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나 죽음의 사선도 함께 넘은 이들 부녀가 넘지 못할 장벽은 바로 한국정부와 터키정부, 귀국하는 술레이만이 가방에 아이를 넣고 귀국하는 등 갖은 수단을 써서 아일라를 데리고 가려해도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가족과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보다 고아가 된 아일라를 혼자 둘 수 없는 술레이만, 그러나 어쩌랴,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 술레이만은 어쩔 수 없이 홀로 귀국한다. 반드시 잊지 않고 너를 데리러오마!


기다릴줄 알았던 애인도 떠나고 없는 고향에 돌아온 술레이만, 그러나 상황은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린다. 세월은 덧 없이 흘러가고 그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여자를 만난 술레이만, 당신의 딸이면 내 딸이고 당신이 찾아야 한다면 내게도 찾아야 할 아이라는 그녀의 내조에 힘 입어 아일라를 찾기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매우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서 아일라를 찾을 방법이 없다. 아일라의 한국 이름도 모르고 가슴에만 묻은 채 49년이 흐른다.


1999년 터키 앙카라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한국에서온 봉사자들이 터키를 찾는다. 50년도 더 지난 세월동안 한 시도 아일라를 잊어본적이 없는 술레이만의 표정은 더욱 슬픔에 잠기고 아일라를 만나는 꿈도 꾼다. 이런 사정을 안 한국방송 MBC에서 한국전쟁 60주년 관련해서 터키로 취재를 오고, 터키 방송국과 협력하여 우여곡절 끝에 아일라를 찾는다. 약속을 지킬 때까진 죽을 수도 없다는 술레이만, 헤어진지 60년만인 2010년 4월 10일 서울에 온 슐레이만은 꿈에 그리던 아일라를 만난다.


이 영화가 남긴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세상의 아빠들은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슐레이만의 고백 뿐일까. 전쟁이 가져온 지상의 모든 비극은 아무리 감동적인 드라마로 포장을 해도 감춰지지 않는다. 아일라와 같은 전쟁고아는 전 세계에 2,800만명이나 되고 터키에만 15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니 전쟁을 일으킨 전범을 자자손손 어찌 잊겠는가.


그럼에도 이 땅의 개돼지들은 아일라와 같은 전쟁고아는 물론 수백만의 희생자를 낸 전범은 물론 그 손자까지 추앙하고 있다. 참 개돼지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영화가 개봉된 뒤 A4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김은자( 아일라)를 위로하는 대신, 슐레이만 가족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아일라역의 김설을 불러 사진을 찍고 쇼를 했다고 한다. 


참 슬프다 이 나라의 백성인 게.


이미지: 텍스트
이미지: 사람 3명, 사람들이 서 있음, 실외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사람들이 서 있음, 결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