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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문자 메시지/ 이문재

장전 2018. 8. 4. 06:49


문자 메시지/ 이문재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 시집『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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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신기기와 정보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로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도 엄청나게 변모했다. 지금 세상의 의사소통은 말도 아니고 글도 아닌 문자메시지가 대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카톡의 ‘문자질’과 SNS이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카톡 문자대화는 장소와 때에 관계없이 가장 사용빈도가 높은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문자를 보낸 즉시 문자를 받게 되면 뇌에서 쾌락을 담당하는 도파민 수치가 증가하고, 이와 반대로 문자를 보내고도 즉답을 받지 못하면 문자가 ‘씹혔다’면서 무시당한 느낌과 함께 이내 불쾌감을 드러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개비한지는 꽤 되었지만 여전히 구식 폰을 쓰던 습관이 몸에 밴데다가 천성적인 통신 둔감증상으로 꽤나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다. 그간 문자가 씹혔던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자주 인간성을 의심받으며 몹쓸 인간이라 욕을 얻어먹었을까. 애인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열 번도 더 차였을 것이다.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서 날리는 경이로운 작업 수행도 잘 하지 않는다. 밝혀두지만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하지만 내가 안한다고 해서 다른 이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전송사진을 고맙지 않은 마음으로 보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듯 물고 뜯고 빨지 않는다는 뜻이다.


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문자가 왔는지 수시로 폰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이 시대에 참 무던히도 원시적으로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문자메시지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는 점점 휴대폰 전원에 연결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루함을 문자로 달래면서 젊은이들은 마치 핑퐁 하듯 현란한 문자질에 몰입해 있다. 눈으로는 TV를 보면서 손으로는 문자를 찍어 보내는 아이도 보았고, 밥을 먹으면서도 용케 문자대화를 이어가는 여학생도 보았다. 이들의 중독성 문자메시지 사용은 조급한 성격과 부주의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생각을 깊이 하기도 전에 행동부터 성급히 해버리는 성향은 갖가지 실수를 저지를 개연성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자질’의 습성이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배양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잘만 사용한다면 언어순발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소설가 김영하는 통신문명과 문자메시지 시대가 낳은 총아라 하겠는데, 그는 ‘자기 뇌는 손끝에 있는 것 같다’면서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아야 뇌가 작동한다고 했다. 생각을 하고 타자하는 게 아니라 타자와 동시에 생각이 따라 움직인단다. 이문재 시인의 이 ‘문자메시지’가 시인이 실제 동생으로부터 받은 내용을 고스란히 옮긴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쁜 데 써도 돼’ 그 아름다운 스파크 같은 한마디가 독자들의 가슴까지 기분 좋게 뒤흔든다. 저토록 형을 무한 신뢰하고 형이 시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생을 둔 이문재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가정해서 저 돈을 받은 사람이 정치인이고 어떤 수사과정에서 이런 문자가 발견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우선 ‘나쁜 데 써도 돼’란 대목부터 꼬치꼬치 따져 들것이다. 얼마 전 최강욱 변호사가 박상융 특검보를 ‘섹시하다’고 표현한 걸 들었다. 이때 ‘섹시함’이란 뭔가 한건 해보고자 튀어보려는 수작을 의미한다. 대놓고 뭐라 하기엔 그렇고 좀 앞서나간다는 뜻의 표현인데 나는 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TV를 보면 귀에 거슬리는 표현들을 흔히 듣는다. 이를테면 체널A에서 동아일보 허문영 기자는 ‘노회찬 얼굴에서 김경수가 겹쳐 보이고 김경수 얼굴에서 노회찬이 어른거린다.’는 부적절한 언사를 남발하는 등 정말 ‘섹시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회색지대’발언에 이은 리비아 피랍 사태 관련 ‘문학적’ 논평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비유도 은유도 문학적 표현도 다 좋은데,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갖다 붙일 것은 아니다. 노회찬의 촌철살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시처럼 얼마간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켜주거나 적어도 문학의 품격은 해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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