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 어느 현숙한 아내의 답변 (Reponse d'une epouse sage, Op. 35 /2)
장전2016. 10. 29. 23:49
러셀 : 어느 현숙한 아내의 답변
Reponse d'une epouse sage, Op. 35 / 2
엘리 아멜링(Elly Ameling) Sop. / Rudolf Jansen (루돌프 얀센) Piano
러셀 : 어느 현숙한 아내의 답변
Reponse d'une epouse sage, Op. 35 / 2
Text in Chinese by Chang Chi (錢起 710 - 782) 중국
알베르 루셀 (Albert Roussel 1869 - 1937) 프랑스
Connaissant, seigneur, mon état d'épouse,
Tu m'as envoyé deux perles précieuses
Et moi, comprenant ton amour
Je les posai froidement sur la soie de ma robe.
Car ma maison est de haut lignage
Mon époux capitaine de la garde du Roi
Et un homme comme toi devrait dire:
"Les liens de l'épouse ne se défont pas."
Avec les deux perles je te renvoie deux larmes,
Deux larmes pour ne pas t'avoir connu plus tôt.
당신은 내게 보내셨지요 값진 진주 두 알을,
그래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알아 차리고,
나의 비단 옷 위에 그것을 차갑게 올려 놓았죠.
나의 집은 명문이기 때문입니다.
내 남편은 왕의 호위 대장입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분은 말씀 하셔야죠:
아내를 구속 하는 끈은 풀어 지지 않는 법이다.
두 알의 진주와 함께 나는 당신께 돌려 보냅니다
두 방울의 눈물을 두 방울의 눈물 보다
일찌기 당신을 알지 못했던 까닭으로.
투르코앵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일찍부터 양친을 잃고, 숙부에게서피아노의 레슨을 받았다. 처음에 해군 사관 학교를 거쳐 사관이 되어 동양을 항해하기도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도 있어서 군무에서 떠났다. 그리하여 어릴 때 부터 깊이 사랑하고 있던 음악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25세 때 파리로 가서 저명한 오르가니스트 지구에게 사사하여 작곡법을 배웠다. 1898~1907년에는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댕디의 작곡법 강의를 수강했다. 그러나 이미 지구에 의해 대위법의 기술을 단련받고, 이 학교 입학 당시 작품이 출판되고 있을 정도의 실력이어서, 이례적으로 재학 중부터 대위법의 교실을 맡게 되어, 그 이후 12년 동안 재직했다(1902~14). 스콜라 내외에서의 그의 문하생으로서 사티, 바레즈, 마르티누 등이 있다.
루셀의 창작은 대체로 3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댕디나 프랑크의 영향이 짙은 제 1 기(작품 2, 4, 11), 그 스콜라풍의 형식감이 인상파의 음향감과 행복스런 결합을 보인 제 2 기(작품 7, 15, 17), 그리고 작품 18과 23을 과도기로 해서 거장의 개성적인 성숙을 보인 제 3 기(작품 33~58)이다. 작품의 스타일도 다종 다양해서, ‘바하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시대 사조를 반영하면서도 복조, 다조, 무조를 채용하거나, 인도 선법을 사용하거나 해서 젊은 세대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발레 음악 《거미의 향연》(1912), 교향곡 제 3 번(1929~30), 관현악 《에보카시옹》(1910~12), 《모음곡 F장조》(1926), 《플랑드르 광시곡》(1936), 현악 3중주곡(1937), 가곡 등이 있다. Roussel의 가곡 중에는 중국시를 번역한 가사에 곡을 붙인 〈현명한 아내의 대답 La Reponse d'une epouse sage〉과 영국 제임스 조이스의 시에 곡을 붙인 〈딸에게 준 꽃 A Flower Given to My Daughter〉이 대표적이다.
錢起 (710년 추정 ~ 780년 추정) 중국 당나라 시인
당나라 절강(浙江) 오흥(吳興) 사람. 자는 중문(仲文)이다. 시에서 낭사원(郎士元)과 이름을 나란히 해 “앞서 심ㆍ송이 있고, 뒤로 전ㆍ낭이 있다.(前有沈宋後有錢郞)”는 소리를 들었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9년(751) 진사시험에 급제했고, 성당(盛唐)에서 중당(中唐)으로의 전환기였던 대력(大曆) 연간에 태청궁사(太淸宮使)와 한림학사가 되었다. 청신수려(淸新秀麗)한 시로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필두로 칭송받았다. 그가 지은 「성시상령고슬(省試湘靈鼓瑟)」 시 중 2구 “노래가 끝나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강 너머로 봉우리들만 푸르네.(曲終人不見江上數峰靑)”가 세상에 크게 불려졌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연간에 남전현위(藍田縣尉)를 지냈고, 왕유(王維)와 교유했다. 사훈원외랑(司勳員外郞)과 사봉낭중(司封郎中)을 지냈고, 고공낭중(考功郎中)까지 올라, 세상에서는 ‘전고공(錢考功)’으로 불렸다. 저서에 『전고공집(錢考功集)』 10권 외에 부(賦) 13편이 남아 있다.
프랑스 작곡가 루셀이 중국 당나리 시인 전기(錢起)의 시에 곡을 붙인 것도 흥미롭지만 전기의 원시는 어떤 것인지 찾이보아도 알 수가 없다. 내용인 즉, 어느 고관대작의 사내가 명문가의 여인을 사모하여 진주 구슬을 선물로 보냈는데, 이를 정중히 거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두 방을의 눈물보다 당신을 일찍 알지 못했던 까닭으로...'라는 마지막 구절은 구애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혹시 전기의 원시를 아시는 분은 댓글에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멀뚱)
Anne-Hélène Moens, soprano / Marie-Pascale De Coster,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