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변주곡 / 바이올린 Solo. 백고산(북한)
아리랑 변주곡 / 바이올린 Solo. 백고산(북한)
바이올린 Solo. 백고산(북한) 연주 (1930 - 1997) 북한의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故백고산(1930~1997)님은 우리 KBS관현악단출신모임의 회원이신 故백해제 님의 친아우이다. 어린시절 이 형제는 천재적인 바이올린 솜씨로 중국, 한국 순회공연도 같이 했고 해방직후에는 형제가 남한에서도 연주활동을 잠시 함께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념이 달라 형은 남, 아우는 북으로 헤어져서 음악활동을 하게 된다. 부친이 아들 이름을 지을때 형은 바다의 제왕이 되라고 海帝, 동생은 땅에서 가장 높은산이 되라고 高山이라고 이름지었다한다. 형은 한국에서 교향악단의 악장에서 머물렀지만 동생 백고산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에서 인정받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독주자였다. 백고산의 바이올린 독주곡집은 현재 국내에서도 시판되고 있다. 한국 첼로계의 선구자였던 전봉초(1919~2002)선생은 20여년전 KBS-TV의 "11시에 만납시다" 에 출연,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대담에서 자신은 바이올린으로서 대성하고 싶어 중학시절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중 자신보다 나이 어린 백해제, 백고산 형제 바이얼린의 연주를 관람하고 그들이 자신의 경지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느끼고 첼로로 전향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어릴때부터 뛰어난 연주실력을 갖고 있었고 형인 백해제는 해방직후 서울교향악단, 한국전쟁시 해군정훈음악대와 서울시향 초기에 악장을 역임했다. 북한에서는 해방 이후 '양악기로 서양곡만 연주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 어디까지나 조선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조선의 곡을 연주해야 하며, 서양음악을 민족음악 발전에 이용해야 한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백고산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보면 본조 아리랑을 기본으로 한 [아리랑 변주곡]과 민요를 바탕으로 한 [민요를 주제로 한 소품]은 첫 번째의 경우이고, 그밖에 '고향길', '환희', '고향마을', '굴진공', '용광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와 같은 곡들은 새로운 주제로 창작한 곡들이다. 백고산, 1930. 5. 27~1997. 11. 27 6·25전쟁 와중인 1951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열린 교내 연주회. 머리카락이 검은 한 동양인 연구생의 낯설고도 격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당시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였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는 직접 그를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그는 북한에서 특별 연구생으로 초청받아 온 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1930∼1997). 그가 연주한 곡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되는 본조(本調)아리랑을 변주한 무반주 ‘아리랑 변주곡’이었다. 사후에도 북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백고산의 독주 앨범(신나라)이 발매됐다. 특히 오이스트라흐를 감동시켰던 무반주 ‘아리랑 변주곡’은 이 음반 첫머리에 실렸다. 나라 잃은 설움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분단과 동족전쟁으로 고통 받는 민족의 슬픔을 처절한 선율에 담은 이 곡은 지금도 백고산만이 제대로 연주해낼 수 있다는 평을 듣는 그의 대표작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4069&cid=40942&categoryId=3438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81&cid=46663&categoryId=46663
<동아일보 1990.7.22 위 사진 클릭> 백고산은 오이스트라흐의 제자로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 195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종신 심사위원을 지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등에 재직하며 북한은 물론 중국, 몽골 등에서 온 유학생들을 길러냈다. 본격적인 작곡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백고산은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을 이용해 민족적 선율이 담긴 곡을 창작해 연주하는 것도 즐겼다. ‘아리랑 변주곡’ 외에 민요를 바탕으로 한 ‘민요를 주제로 한 소품’이 그것. 이번 음반에는 이 밖에 ‘고향길’ ‘환희’ ‘용광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등 창작곡이 수록됐고 그의 친필이 담긴 악보사진도 음반 표지에 실렸다. 이 음반은 일본 신세계 레코드사에서 ‘오픈 릴’(오디오 테이프가 밖으로 노출돼 감겨진 릴) 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북한의 음악 중 백고산의 연주 음원만을 재정리해서 만든 것이다. <민요를 주제로 한 소품> ▲어린 시절의 백고산과 자필 아라랑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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