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리/첼로 소나타 D 단조

장전 2016. 6. 17. 09:56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 2. 17 교황령 이몰라 근처 푸지냐노 ~ 1713. 1. 8 로마.)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바이올린 양식의 발달에 기여했고 또 그가 작곡한 소나타들과 합주협주곡 형식을 확립한 12곡의 합주협주곡 작품으로 유명하다. 코렐리는 유복자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머니 산타 라피니는 코렐리가 태어나기 불과 5주 전에 남편을 잃었고 그는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게 되었다. 코렐리의 초기 교육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첫 스승은 푸지냐노 교외에 있는 마을인 산사비노의 보좌신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에 그는 파엔차와 루고로 가서 처음으로 음악이론을 접하게 되었다.

 


1666~67년 볼로냐에 있는 산페트로니오 성당의 바이올린 연주자인 조반니 벤베누티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고 또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인 레오나르도 브루뇰리로부터는 보다 전문적인 것을 습득하는 등 볼로냐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 4년 동안 볼로냐에 머문 후 로마로 갔다. 로마에서의 처음 5년 동안 행적에 관한 믿을 만한 증거는 부족하지만 아마도 토르디노나 극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숙련된 지휘자로 근대 관현악단 지휘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에게는 특별한 음악 공연들을 기획하고 지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의 왕 제임스 2세의 명으로 로마에 온 영국대사를 위해 크리스틴 여왕이 후원한 공연일 것이다. 이 공연을 위해 코렐리는 150명의 현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1689년 추기경에 임명된 오토보니는 그를 문예원 소속 악단의 지휘자겸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임명했으며, 이때부터 코렐리는 로마의 가장 권위있는 음악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교사로서 코렐리의 명성은 곧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고 이어 전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1690년 그는 조반니 룰리에르의 오라토리오 〈산타 베아트리체 데스테 Santa Beatrice d'Este〉 공연에서 33대의 바이올린, 10대의 비올라, 17대의 첼로로 구성된 대규모 관현악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1689년 모데나의 공 프란체스코 2세에게 헌정한 2대의 바이올린과 아치형 류트, 오르간 계속저음을 위한 12곡의 교회 트리오 소나타 작품3이 출판되었고

 

1694년에는 오토보니 추기경의 아카데미를 위해 작곡된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로네 또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12곡의 실내 트리오 소나타 작품4가 출판되었다.

 


아마도 코렐리는 로마에 있는 독일 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친 듯하며, 1700년에는 팔라초 델라 칸첼레리아의 연주회를 위한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 겸 지휘자가 되었다.

같은 해 브란덴부르크의 소피아 샤를로테에게 헌정한 〈바이올린과 비올로네 또는 하프시코드를 위한 12곡의 소나타〉 작품5가 출판되었다.

 


1702년 나폴리로 가서 왕 앞에서 연주하고 이탈리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공연한 듯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 자료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그가 1707~08년 로마에 머물렀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과 만났다는 증거도 없다.

 


1706년 코렐리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나르도 파스퀴니, 스카를라티와 함께 아카데미아 델 아르카디아에 들어갔으며 특별한 경우 연주회를 지휘하기도 했다.

 


1713년 로마에서 삶을 마감했다.

 

 

 

  1 Preludio
  2 Allemanda
  3 Sarabanda
  4 Gi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