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으로 산 지 1년 반, 종합병원 중환자 전담 경력을 벼슬처럼 여기고 사는 그는
의사 머리 꼭대기에 있는 듯했다.
"의술이 못 고치는 걸 사람의 정성이 고칩디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께요."
간혹 철학자 같은 말도 했다.
"수술실 앞 이별 풍경 보셨소? 숨죽여 흐느끼는 사람에, 벽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에….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1초, 1초에 피가 마른다 안 허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껴봐야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라.
담배 피우러 병원 문만 나서도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지니 희한하지요잉.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앞만 보고 씽씽 내달리기만 하니."
강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기던 날, 이 선생은 일일이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저희 땜시 잠 못 주무셨지라?"
'자식들은 안 와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침대에 붙박이로 누워 있던 할아버지가 웅얼거렸다.
"나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오겄지."
이 선생이 퉁박을 준다.
"어찌 또 시시한 말씀을 하신다요.
근육질 다리 맹글어 찐허게 연애 한번 하고 가시라닝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문을 나서는 이 선생이 뒤돌아 윙크를 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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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생각 가을 바람과 함께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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