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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기억하라. / 그대 생각 가을 바람과 함께

장전 2012. 10. 29. 11:09

 

간병인으로 산 지 1년 반, 종합병원 중환자 전담 경력을 벼슬처럼 여기고 사는 그는

 의사 머리 꼭대기에 있는 듯했다.

"의술이 못 고치는 걸 사람의 정성이 고칩디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께요."

 

 

간혹 철학자 같은 말도 했다.

"수술실 앞 이별 풍경 보셨소? 숨죽여 흐느끼는 사람에, 벽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에….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1초, 1초에 피가 마른다 안 허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껴봐야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라.

 담배 피우러 병원 문만 나서도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지니 희한하지요잉.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앞만 보고 씽씽 내달리기만 하니."


강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기던 날, 이 선생은 일일이 작별인사를 했다.

"그동안 저희 땜시 잠 못 주무셨지라?"

 

'자식들은 안 와보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침대에 붙박이로 누워 있던 할아버지가 웅얼거렸다.

 "나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오겄지."

 

이 선생이 퉁박을 준다.

"어찌 또 시시한 말씀을 하신다요.

근육질 다리 맹글어 찐허게 연애 한번 하고 가시라닝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문을 나서는 이 선생이 뒤돌아 윙크를 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대 생각 가을 바람과 함께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