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간에 4월의 폭설이 내렸다. 차량이 거북이걸음을 하는 한계령 고갯길에는 눈꽃이 만발했다. 봄꽃처럼 흐드러진 눈꽃이다. 오대산 월정사의 설경 사진을 보니 눈인지 꽃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저 분분한 풍경에 마음이 산란하기는 설악산 백담사의 만해 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昨冬雪如花)/ 이 봄에 핀 꽃은 도리어 눈 같구나(今春花如雪)/ 눈도 꽃도 참이 아니거늘(雪花共非眞)/ 어째서 내 마음은 찢어지려고 하는고(如何心欲裂).” ‘벚꽃을 보고(見櫻花有感)’라는 한시다. 눈도 꽃도 헛것이건만, 눈보라처럼 날리는 벚꽃은 마음을 뒤흔든다. 지는 꽃잎에 가슴이 시린 것은 승(僧)과 속(俗)이 다를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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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1763~1827)의 하이쿠다. 벚꽃은 한순간이다. 아침에 핀 꽃이 저녁이면 시든다. 오늘 만발한 꽃은 내일이면 벌써 옛날이 된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바라본 꽃도 돌아서면 이미 추억이 되어 버린다. 밤에 핀 벚꽃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봄날은 짧고 벚꽃은 더욱 짧다. 그러나 잠깐인 벚꽃에도 어엿한 한 생(生)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하이쿠의 거장 마쓰오 바쇼(松尾芭焦·1644~94)의 작품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정인(情人)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고 운명처럼 헤어졌을 것이다. 둘 사이에 핀 벚꽃에는 인생 같은 긴 사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심연에서 와서 심연으로 간다. 이 두 심연 사이를 인생이라고 부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짧은 시를 연상시키는 마쓰오 바쇼의 절창이다.
법정 스님은 “매화는 반개, 벚꽃은 만개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눈도 꽃도 아름다움은 참으로 순식간이다. 더 늦기 전에 저 흐드러진 벚꽃을 가슴에 담아보자. 오늘의 벚꽃은 눈 녹듯 사라져도, 추억의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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