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고개’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다”고 하면 농담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는 실없는 얘기가 아니다. 돈암동에 실제로 있는 아리랑고개는 원래 정릉고개로 불렸는데,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이후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었기 때문이다.
1926년 개봉한 영화 <아리랑>에서 미친 영진은 악덕 지주이자 일본 순사의 앞잡이인 오기호를 낫으로 찔러 죽인다. 누이동생을 겁탈하려 하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오랏줄에 묶인 영진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이때 구슬픈 가락이 흘러나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조선사람이라면 눈물 없이는 못 들었던 ‘본조(本調) 아리랑’ 이다.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 가장 흔히 불리는 곡이다.
‘정선아리랑’은 망국의 신하가 고려 왕조를 그리워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정선 고장의 노래에 뜬금없이 개성 만수산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날 좀 보소”로 경쾌하게 시작되는 ‘밀양아리랑’의 고장에도 ‘만수산 구름’만큼이나 어두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영남루의 원혼 ‘아랑 전설’이 그것이다. ‘진도아리랑’도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하는 첫머리는 흥겹지만 후렴은 눈물로 홍건하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리랑’에 관한 뜬소문이 실렸다고 해서 말이 많다.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1위에 꼽혔다”는 대목이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거짓말을 해도 노래는 거짓말을 안한다는 말이 있다. 아리랑 노래에는 거짓이 없는데, 아리랑에 관한 이야기에는 거짓이 끼어든 셈이다. 어찌된 경위인지 아리송하기만 한 아리랑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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