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흰꽃은 싫어. 예쁜 꽃을 가져와

장전 2011. 3. 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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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리

영정사진이 분홍색 꽃으로 장식되어 있어 보기 좋았다.

평소 그분은 입버릇처럼 가족과 친지들에게 말하셨단다.

 

" 흰꽃은 싫어. 예쁜 꽃을 가져와"

 

그 덕분에 이렇게 예쁜 빈소를 꾸밀 수 있었다.

 

 

 

['빈소=흰국화'가 상식이 됐지만,

이런 풍습은 개화기 이후 일본과 유럽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민속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칠용 한국공예가협회장은

"빈소에 꽃을 바치는 문화는 근대 이후 형성된 것"이라며

"예전에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뜬 사람의 장례를 치를 때,

 상여를 붉은 꽃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고 말했다.

 

상가에 놓인 '울긋불긋 예쁜 꽃'은 파격이지만,

'비례(非禮)'는 아닌 셈이다.  ]

 

 


[만물상] 묘비명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조병화 시인은 생전에 시 '꿈의 귀향'을 발표하면서 묘비명으로 삼겠다고 했다. 시인은 어머니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간다고 노래했던 것이다. 2003년 시인이 세상을 뜨자 묘소 부근 조병화문학관에 묘비명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묘비명은 한 개인의 생사관(生死觀)을 압축한다. 인쇄업자이기도 했던 프랭클린은 자신을 책에 비유한 묘비명을 남겼다. '낡은 책의 표지가 닳고 문자와 금박이 벗겨져 나간 것처럼 그의 몸은 여기 누워 벌레에게 먹히고 있다.(중략) 그가 믿는 바와 같이 저자(신)에 의해 개정판이 나올 것이다.' 시인 키츠는 '여기 물로 이름을 쓴 사람이 누워 있노라'라고만 새겨달라고 부탁했다. 묘비에는 정말 물로 쓴 듯이 시인 이름이 없다.

 

▶처칠은 익살스러운 묘비명을 남겼다. '나는 창조주께 돌아갈 준비가 됐다. 창조주께서 날 만나는 고역을 치를 준비가 됐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네'란 묘비명을 미리 골랐다. 영미권에서는 보통사람 묘비명 선집이 많다.

 

 

 평생 처녀로 산 우체국장 묘비명은 '반송(返送)-개봉하지 않았음'이다.

 손대지 않고 하늘로 돌려보낸다는 얘기다.

 

 

▶조선시대 묘지명(墓誌銘) 150점이 엊그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왕족과 양반 묘지명이 많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위해 쓴 묘지명도 있다. '끝내는 만고에 없던 사변에 이르고, 백발이 성성한 아비로 하여금 만고에 없던 짓을 저지르게 하였단 말인가? ' 아들을 죽인 자신을 변호하면서 동시에 자책(自責)하는 심정도 읽을 수 있다.

 

▶쿤데라는 묘비명이란 '존재와 망각의 환승역'이라고 했다. 죽은 이는 잊히더라도 묘비명이 그 삶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김광규의 시 '묘비명'은 유명 문인이 거짓말로 쓴 권력자의 묘비를 비아냥거렸다.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묘비명에 남길 권력과 재산을 얻으려고 탐욕에 빠지기 쉬운 게 인생이다. 지도층일수록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을 묘비명을 미리 써놓고 평생 실천하다가 떠나는 건 어떨까. 묘비명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