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원고를 읽는다

장전 2010. 12. 7. 06:28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원고를 읽는다

2010.12.06 08:06 | 문화&멘토링& 자기계발 | apple1111

 

  • 서하진 소설가

입력 : 2010.12.02 23:09

 

 

 

서하진 소설가

 

 

의사 아들을 잃은 사람이 습작 소설을 보내왔다
문장과 구성이 엉망이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분노로 글을 썼지만 생각이 달라졌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가 바란 건 책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읽어 줄 사람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은 피곤하다. 일단 끊임없이 써야 한다.

 

쓸 거리가 없어도, 문장이 엉망인 것이 눈에 보여도 무조건 진도를 나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며

 

쓰고 난 후에는 눈을 질끈 감고 보내는 용기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누군가 내 글에 대해 품평을 하면 '그게 아닌데' 싶더라도 '

 

아, 그처럼 관심을 표해주시다니'하고 황송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그 작품이?" 싶은 소설이 상을 타더라도

 

기꺼이 축하를 보내는 아량도 익혀야 한다.

 

 

나처럼 겸업으로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수강생들의 습작을 읽어야 하는 일이 기다린다. 학기 말이면 수백편의 단편을 읽고 평가를 하는데, 그저 학점을 주는 것뿐이라면 좋으련만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적지 않은 수강생들이 그럴 듯한 평을 해주기를 목을 빼고 기다린다.

특히나 사이버대학의 경우, 연령대가 높은 학생일수록 그 간절함이 손에 잡힐 듯 느껴져 나의 갈등 역시 깊어진다. 대체로 나는 '기성 작가 못지않은 실력',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날이 있을 것', '이제 그만 접고 생업으로 돌아가시라'라는 세 가지의 멘트를 적절히 변형해서 사용해 왔으나 언제부터인가 그 분류 방식을 버렸다. 어느 겨울, 장편을 보내온 한 수강생 때문이었다.


나이 예순에 이른 그의 직업은 목사라 했다. 15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그 원고는 그의 외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련의였던 그의 아들은 어느 아침 돌연히 사망했다. 고작 스물일곱 살이었으며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 착하고 다정한 청년이었다. 전형적인 과로사였다. 그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으나 돌아온 것은 피로와 재정적 곤란뿐. 그의 허탈함은 깊어지고 신에 대한 분노 역시 깊어만 갔다. 목사로서의 기본적인 믿음조차 상실한 그는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었으며 그와 그의 아내의 방황은 끝 간데없는 듯 보였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생전의 아들 일과와 사망 후의 일들, 아들이 남긴 일기 등을 종횡으로 오가며 쓴 그 원고는 소설이라 할 수 없는 것이

었다. 구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주술(主述) 관계가 뒤틀린 문장이 드물지 않았고, 문맥을 따라잡기 어려운 부분 또한 적지 않았으나 나는 마지막 장까지 성의를 다해 읽었다. 세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그가 겪은 참척(慘慽·자식을 먼저 잃는 일)의 아픔이 고스란히 닿아온 때문이며, 그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그의 떨리는 손이 눈에 보이는 듯 다가온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나서 나는 그에게 솔직한 답신을 썼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논픽션도 아니다. 출판을 원한다 했지만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꼭 책으로 엮겠다면 엄청난 손질이 필요하다. 만일 원한다면 수정 작업을 도와주겠다.'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그대로 메일을 보냈다. 나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상당한 작업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얼마가 지난 후 그에게서 답신이 왔다. 그는 감사하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썼다. '어떻게든,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는 동안 새삼 분노가 끓어올랐고, 원고를 보낼 당시만 해도 무조건 사비를 들여서라도 출판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답을 받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되었다. 이제야말로 진정으로 아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그는 적었다.


그의 답신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에게는 소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가 원한 것은 한 권의 책도 아니었다. 그가 바란 것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줄 사람이었다. 비록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날 이후 나는 보내 온 모든 원고를 소중히 읽고 모든 사람에게 계속 써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재능에 의심이 든다고, 회의가 일어 못 견디겠다 하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다들 그렇게 살아요. 어쨌든 쓰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