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바람처럼

'아네스의 노래..from 영화'시'

장전 2010. 11. 23. 20:20

 

4.jpg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은 누가뭐래도

생애 처음으로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남기고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부분이죠.

 

 

아네스의 노래, 를 빼고 이 영화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아네스의 노래, 한 편를 짓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네스가 누구인가요? 

 <시>는 하나의 궁금증을 남깁니다.

 

  이 영화속 다리 난간 위에서 떨어져 죽은 소녀일까요? 

 아니면 1년전 부엉이 바위 위에서 몸을 던진 그 사람일까요? 

 

  참여정부시절,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창동  감독은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습니다.

 

 

 

 

 아네스의 노래... 이창동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박기영 '(from 영화'시')'앨범 .. '아네스의 노래(Song of Anes )''

  

 

 

영화 중간중간에 관객은 예쁜 시편 하나씩을 선물처럼 받습니다.

  이 영화가 각본상을 받은 이유랄까요 ?  

관객에게 들려주는 한 편의 시는 서정적인 화면과 조화를 이뤄 영화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그 중 조영혜 시인의  한 편을 옮겨 봅니다.

 

8.jpg

 

 

 

 

 

 시를 쓴다는 것...조영혜


 

 

 

시를 쓴다는 것은
동지섣달 이른 새벽
관절이 부어 오른 손으로
하얀 쌀 씻어 내리시던
엄마 기억하는 일이다
소한의 얼음 두께 녹이며
군불 지피시던
아버지 손등의 굵은 힘줄 기억해내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깊은 밤 잠 깨어 홀로임에 울어보는
무너져 가는 마음의 기둥
꼿꼿이 세우려
참하고 단단한 주춧돌 하나 만드는 일이다
허허한 창 모서리
혼신의 힘으로 버틴
밤새워 흔들리는 그 것, 잠재우는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퍼내고 퍼내어도
자꾸만 차 오르는 이끼 낀 물
아낌없이 비워내는 일이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지나
그 것, 그 쬐끄만한
물푸레 나뭇잎 만지는
여백의 숲 하나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