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하기 전에 챙겨야 할 몇 가지
박쥐
이 영화는 박쥐가 된 신부의 이야기다.
신부가 어떻게 박쥐가 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박쥐가 신부가 되는 것 보다는 낫다
구원을 하려면 우선 악이 필요하다. 악이 악같지 않고 그럭저럭 괜찮다면 구원은 빛을 잃고 헛발질이 된다.
다음으로 구원의 대상이 선해야 한다.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애써 시간을 내서 도와줬는데 넙죽 넙죽 받기만 하면 속상하다.
마지막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내가 필요하다.
이거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그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다.
문제는 누구나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일찌기 간파한 슈퍼 히어로들은 현행 형사소추법상 피해자가 분명한 사람들로 구원의 대상을 한정했다.
아무리 부정이 판치고 불의가 넘쳐도 국가 권력의 한계를 결정하는 행정법이나 당사자들간의 민사 문제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슈퍼맨과 베트맨, 스파이더맨도 꺼려했던 문제를 자신했던 위인은 산타클로스가 유일하다.
한 명 더 있다.
<죄와벌>의 라스콜리니코프다. 법관은 판결하고 집에 가지만 스스로 심판한 사람은 판단 후의 세상을 책임져야 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페테르부르크 땅바닥에 입을 맞췄고 상현은 태주를 죽인다.
그리고 다시 살린다. 그녀를 벰파이어로 되살린 것은 더 이상 옳고 그름이 아니다.
외로워서다.
혼자 남는게 두려워서다.
하늘의 뜻을 되묻던 영화는 이제야 땅으로 내려와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밤거리를 내달리는 태주는 섹시하다.
먹이 사냥은 거침이 없고 보름달은 그녀의 자태를 드러내는 조명이다.
그렇게 벰파이어 부부의 신혼 생활을 쫓다보면 영화는 어느새 강우 어머니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다.
박찬욱이 보여준 두 번째 재주다.
세상을 구하려던 청년은 벰파이어가 됐다.
자기 이웃이라도 구원하려다가 새끼만 쳤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신봉하는 여신도를 강간한다.
정확히 하면 강간미수다.
우상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다.
태주를 데려간 곳은 여명이 시작되는 바닷가의 언덕이다.
태주가 트렁크에 숨는다. 트렁크를 뜯어 버렸다.
태주가 차 밑에 숨는다.
차를 굴려 버렸다. '
죽어야 하지 않겠니!' 하는 사람과 '꼭 죽어야 해?' 하는 사람의 다툼을 바라 보는데 웃음이 난다.
우리의 모습과 닮아서다.
자살로 끝을 맺는 영화는 많다. 비장한 음악 한 번 없이 설득하는 영화는 드물다.
박찬욱의 세 번째 재주다.
바벨탑을 쌓는게 오만인 것을 알면서 자기 잣대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다만 돕고 싶은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을 뿐이다.
최기열 (afrika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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