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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미국의 세기(世紀) 세계의 중심은 어디로 가는가

장전 2009. 1. 17. 06:07
 
 
저물어가는 미국의 세기(世紀) 세계의 중심은 어디로 가는가
제2세계

          파라그 카나 지음|이무열 옮김|에코의서재|663쪽|2만8000원
여시동 기자 sdyeo@chosun.com
 
 
 
금융위기로 지구촌 경제가 얼어붙는 요즘 국제정치판의 권력 구도 담론이 갈수록 뜨겁다. 미국의 세기(世紀)가 저물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조만간 미국이 수퍼파워 역량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다소 급진적 주장까지 당당히 명함을 내민다.

오바마 선거 캠프의 대외정책 팀을 이끈, 인도 출신 국제관계 전문가 파라그 카나(Khanna)의 《제2세계》(The Second World)도 이런 시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제2세계'의 개념은 포괄적이고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부유하고 안정된 1세계 국가와 가난하고 불안정한 3세계 국가들 사이에 있으며, 세계 3대 제국인 미국·EU·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치열하게 국가발전을 도모하는 나라들"로 규정돼 있다.

이 책은 저자가 2세계 국가들을 직접 답사하며 현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확인하고 2세계 국가의 특징과 미래를 가늠한 현장 보고서다. 그 범주에는 선진국과 극빈 후진국을 제외한, 웬만한 규모를 갖춘 거의 모든 국가가 포함돼 있다.
▲ 그래픽=송윤혜 기자 ssong@chosun.com
저자에 따르면 부시 정권 8년을 거치며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인심을 잃고 있고 이제 그 공백을 중국과 EU가 거세게 밀고 들어오는 형국이다. 제2세계는 생존과 발전을 위해, 미국이 빠진 2극(二極) 세력과 활발하게 관계를 형성한다.

사실 지구상에서 미국이 박수받는 지역은 많지 않다. 유럽과 미국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인 데다, 러시아는 반발하고 중동이 맞선다. 아시아에서도 미국 영향력이 줄어들고 남미엔 아예 미국을 무시하거나 대적하는 나라가 속출한다. 이 공백을 다른 2극이, 특히 중국이 급속히 메워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54개국 중 52개국 지도자를 베이징(北京) 회의에 불러 모았고 중동과 중앙아시아, 중남미까지 중국 전진 기지가 없는 곳이 없다. 남미 5억, 아프리카 5억, 아랍 3억, 심지어 EU 5억 명까지 이제 중국 눈치를 보는 시대가 됐다. 제2세계론은 이런 정세 분석하에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지미 카터 정부 시절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G2(미국과 중국) 회의'를 주창하면서 신구(新舊) 모두에 양다리를 걸친다. 경제위기든 중동사태든 기후변화든 핵확산이든, 신흥국 중국과 기존 초강국 미국이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국제문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논리다.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쪽에 좀 더 무게를 얹는다면 제2세계론은 시기상조다. 버락 오바마가 들고 다닌다고 유명세를 탄 책 《포스트 아메리칸 월드》(The Post-American World)에서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뉴스위크 국제 편집장)는 아직도 미국의 군사력과 연구개발 투자, 전문 인력, 기업 활력 등은 27개 나라가 합쳐진 EU도 족탈불급(足脫不及)이라고 장담한다. 특히 이민자 유입에 따른 미국의 넘쳐나는 젊은 인구는 강력한 무기다. 에이미 추아의 저서 《제국의 미래》(Day of Empire)가 역설하는, 외래인과 외래 문화에 대한 '관용' 내지 '포용'이 그 개념이다. 노년인구 급증과 출산율 저하로 고민하는 EU와 중국은 적어도 당분간은, 별다른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수많은 '제2세계' 국가들과 그 역학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에 적절한 도움을 줄 것이다. 


>> 한국이 제1세계?

책에서 한국은 제2세계가 아니라 제1세계 국가로 분류됐다. 저자는 나아가 한국을 아시아의 위대한 성공 사례로 적시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한국은 역시 중국이라는 프리즘으로 관찰된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의 비중은 절대적으로 높아졌고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 최대의 교역국이 됐다.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 한국 증시부터 무너진다. 한·중이 협력하지 않으면 북한마저도 절망적인 사회주의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지구촌의 거대한 파워이동 흐름에 따라 한반도에서도 미국이 멀어지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주한 미군의 유용성이 도마 위에 올랐고 북한에 대한 지렛대도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저자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두 강대국을 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주와 비슷하다고 봤다.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누구도 모른다.
입력 : 2009.01.16 22:57 / 수정 : 2009.01.16 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