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냐 진화냐
- 참좋은 군사-
1. 진화론부터 창조과학까지
'창조과학'
언뜻 보기에는 '창조'라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단어와 '과학'이라는 논리적인 단어가 합쳐진 모순된 낱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이라는 것은 잘못된 이론인 진화론이 아직도 일반적인 정설로 생각되어 지는 요즘에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창조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창조과학'이 등장한 간단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진화론의 등장을 잠깐 이야기하면. 1859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출판되어 출현한 진화론은 그 시대의 배경과 조건에 맞물려 급속도로 전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전세계로 급속히 퍼진 것은 물론입니다.
그 이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신의 성역이었던 천지창조와 하나님의 존엄성 등이 진화론에 의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이론이 된 것입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확인할 수 없는 그 능력 너머의 일을 이야기함으로써 그 거짓을 포장하였습니다. 인간의 짧은 일생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려서 서서히 진화한다는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진화론이 전세계로 퍼질 때까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59년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진화론 1백주년 기념대회와 그 외의 여러곳에서 진화론이 증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의견은 조금씩 늘어났고 학계의 권위자들도 그것을 부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진화론이 부정됨에 따라 크리스챤 과학자들의 성경에 기초로 하는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1963년 미국의 창조과학자들이 창조과학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설립하였고, 1970년 창조론의 세계적 중추기관인 미국의 창조연구소(ICR)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학회가 다른 어떤 학회 못지 않게 많이 퍼지게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KACR)가 창립되었습니다. 이른바 '창조과학'이 등장한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도구로 쓰이던 것을 바꾸어,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여 믿음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 창조과학이 등장하였다면 지금과 같이 진화론이 큰 영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창조과학의 역할과 사명은 크지만 시기적으로 진화론보다 늦게 나타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과학은 이렇게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많은 학자들은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지만 너무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진화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챤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자리는 사탄에 의해 쉽게 점령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크리스챤들이 여러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2. 창조와 진화의 논쟁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와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를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주가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이외에는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없다. 만일 창조주가 있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 뜻에 맞게 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만일 저절로 우연히 생겨났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진화론의 영향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데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바른 인식은 기독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생명체는 진화한 것인가, 아니면 창조된 것인가?
어떤 사람은, 만물이 저절로 진화했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건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원에 관한 개인의 신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와 궁극적 운명에 관한 견해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즉 기원에 대한 인간의 입장은 그의 생활철학을 바로 세우게 하는 표준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생활 철학은 다시 인간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인간의 직면한 문제들(사회적, 정치적, 인종적, 생태학적)은 인간 행동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인간 행동은 세계관의 표현, 즉 세계관의 역동적 표출과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세계관이 공해산업도 괜찮다면, 자연이 오염될 것이며, 인종주의가 옳다고 하면 그는 인종을 차별하는 자가 될 것이다. 문제들과 행위, 세계관 그리고 기원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문제에 대한 해결은 적절한 행동의 변화에 의하며, 적절한 행동은 올바른 세계관을 갖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올바른 세계관은 기원에 대한 바른 입장을 요구한다. 한 개인은 근본적으로 기원에 대해 두 가지 입장에서 하나를 택할 수 있다. 하나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창조주가 없다는 것이다. 또 진화론이 기원을 설명해 준다는 것과 설명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창조 대 진화, 유신론 대 유물론 혹은 자연주의, 그리고 계획 대 우연의 양자 택일이다.
3. 진화는 과학이고 창조는 신앙인가?
창조론과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어느 이론을 택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확신이나 믿음에 따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또한 과학적 이론이다. 왜냐하면 각 이론은 자체의 체계를 가지고 과학과 역사의 자료를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이 신앙적이라면 진화론도 역시 무신론에 대한 신앙이다. 또한 진화론이 과학적이라면, 창조론은 창조를 증거하는 많은 과학자료를 통하여 과학적인 이론임을 보일 수 있다. 많은 지질 화석 자료들과 생물학적 열역학적 지식들은 오히려 창조를 지지하고 있다.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는, 진화모델과 창조모델이라는 단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델밖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들은 계속되는 자연주의적인 과정에서 발전되었던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지 제 삼의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 각 모델은 본질적으로 완전한 세계관, 곧 삶과 의미, 그리고 기원과 운명에 대한 철학이다. 그 각각은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확증되거나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할 수 없다. 이는 그것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필수적인 경험적으로 시험되거나 관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것을 택하든지, 그것은 개인적인 확신이나 믿음을 근거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각각은 또한 과학적인 모델이다. 왜냐하면 그 각각은 그 자체의 틀 속에서 과학과 역사의 모든 참된 자료들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은 적어도 진화론만큼은 비종교적이며, 또한 창조론자들은 창조 모델이 진화모델보다 참된 과학의 사실들에 잘 부합된다고 확신한다. 창조론이 유신론적 모델인 것은 사실이지만, 진화론이 무신론적 모델인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모든 것을 창조주 없이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신론이 종교적 신앙이라면, 무신론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얼마든지 정반대의 위치에서 서로 대비될 수 있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이나 창조론을 과학적 실험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기존의 과학적 법칙과 사실로 미루어 어느 이론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과학적인 고찰 방법으로는 수학확률론적, 생물학적, 열역학적, 지질화석학적 방법으로 고찰할 수 있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볼 때 진화론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와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즉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 체계이며 모든 사회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진화론이라는 이론이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는 죄와 인간의 불순종 때문인 것을 알게 된다.
II. 진화론의 허구성
진화론, 부정되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나온 후, 진화론은 특별한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도 않고 상식처럼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윈은 [~일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라고 여겨진다.]등의 추측하는 단어를 매우 자주 쓰고 있습니다. 검증이 되지 않은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기도 전에 그 시대의 상황과 맞아 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다윈의 이론은 이미 이론이 아닌 하나의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정설에 의문을 품는 것을 이단이라고 간주하던 옛 종교비판 시절처럼 진화론을 비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과학적으로 검증이 잘 되지 않자 몇몇 학자들이 진화론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11월 5일, 패터슨 박사는 미국 자연역사 박물관에서 진화론 전문가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했는데, 거기서 그는 감히 자기들이 지금까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론이 단순한 억측에 불과하며, 그것을 지탱할 중요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로서는 20년 이상이나 어떠한 형태로든 진화론의 연구에 관계해 왔습니다만,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룻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년 이상이나 연구해 온 일인데, 무엇하나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주일동안 여러 사람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돌아다녔습니다. <귀하는 진화론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소, 무엇이든 하나라도 좋으니 검증 가능한 것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언제나 침묵 뿐이었습니다.
과거 여러해 동안 진화론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신앙으로써 그랬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것처럼 생각합니다."
다윈에 대한 비판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물학의 권위자 중에서는 진화론을 포기해 버린 사람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에 관한 기사는 일반 출판물에는 별로 보도되지 않고 있지만, 학술회의나 학술잡지에는 때때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화론 쇠퇴의 최초의 징조가 나타난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1959년 시카고 대학에서 열린 진화론 1백주년 기념대회에서였습니다. 강연자 중 한 사람인 에베레트 클레아 올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생물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다윈이즘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진화론에 대한 비판조차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부터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하기 위하여 일부러 대규모의 자료를 갖추어 반론을 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갖고 있던 침묵이 깨어졌습니다. 이전에는 낮은 목소리의 속삭임이 항의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그랏세 박사는 "추측에 근거를 둔 불명료한 공리를 사용하여 진화론이라는 가짜 과학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이것이 생물학의 중심에 뿌리를 박음으로써, 그 이후의 생화학자나 생물학자들은 얼마나 피해를 입었던가"라고 거의 매도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윈이즘이 학회에서 공식적으로 부정되던 날
1980년에 진화론을 토의하기 위하여 세계의 분자생물학자, 발생학자, 생태학자, 생물학자가 시카고의 필드 박물관에 모였습니다. 회의실은 금방 전통파와 개화파와의 대결장으로 변했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회의가 끝날 무렵 진화론에 관해서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토의의 중심 테마는 과거 40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진화종합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금세기 초에 발전한 유전학의 연구를 중심으로, 생물학의 모든 성과를 다윈이즘에 결합시킨 것입니다. 회의 중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개체의 차원에서의 작은 유전자의 변화를 쌓아올린 것이, 과연 신종의 출현이라는 종의 차원에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습니다. 즉, 종(種)의 작은 변화가 누적되고 시간이 흐르면 사과가 오렌지가 되는 것같이 최종적으로 새로운 종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결론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진화론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 등 교육과정에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진화의 증거들
1. 화석
모든 교과서와 대부분의 책들에는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로 화석을 들고 있지만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종과 종사이를 연결시키는 중간단계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고 중간형태 없이 완전한 형태로 각 종류대로 나타난다면 화석은 틀림없이 창조론을 증거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동물인 물고기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로 변할 때마다 반드시 중간단계의 생물들이 존재해서 화석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석들 가운데 그러한 중간단계 화석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그 동안의 수 백만 개의 화석을 연구한 결과이다.
(1) 선 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동물의 화석이 전혀 없다가 캄브리아 지층에서 갑자기 삼엽충, 해파리 등의 무척추 동물과 산호류 등이 나타난다. 단세포 동물에서 다세포 동물로의 전이 화석 이 없다.
(2) 다양한 물고기 화석이 중간형태 없이 대량으로 독립적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심지어 캄브리아기에서도 발견된다.
(3) 백악기에 형성된 여러 나뭇잎의 모양은 현존하는 식물과 똑같으며 전혀 변화가 없다.
(4) 어류에서 양서류로의 전이 생명체 화석이 없다.
(5) 많은 동물이 활동 중에 갑자기 화석이 되었다.
(6) 멸종된 생물을 제외하고는 화석의 생물형태는 그것이 발견된 지층에 관계없이 현존하는 생물의 형태와 동일하다.
위의 화석 연구결과는 모든 생물이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생물이 천재지변에 의해 갑자기 매몰되어 화석이 되었다는 격변설을 증거한다. 1980년 Newsweek誌는 "화석 기록에서 중간형태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법칙"이라고 기술하였다.
결국 종과 종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간단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한 진화론은 과학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될수 밖에 없다.
2. 유인원 화석
종과 종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대진화에서는,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했으며 이들 사이에는 인간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중간 형태의 괴물들, 즉 원시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화석 증거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원시인의 것이라고 주장되어진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1.1 원숭이 계열
(1)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멸종된 큰 침팬지 종류로 원숭이의 변종에 다를 바 없으며 생태학적으로 갈라다 개코원숭이와 비슷하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다.
(2) 필트다운인 - 1922년, 도오손 등은 턱뼈와 두개골의 일부를 영국의 PILT DOWN 근처에서 발견하였다. 필트다운 인 또는 "처음 사람"(DAWN MAN)으로 명명된 이 표본은 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1953년, 영국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원숭이의 턱뼈이며 오래된 것처럼 위장된 것임을 발견하였다. 치아는 사람의 것처럼 보이려고 줄로 연마하고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조작된 괴물이었다.
(3) 자바원인 - 1892년, 자바에서 듀보아는 각각 60피이트 거리에서 제각기 따로 떨어진 두개골, 치아, 대퇴골을 수집하였다. 이것이 50만년 전의 직립원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1908년, 자바섬에서 분출한 용암은 500년을 넘을 수 없다고 독일의 탐험대가 발표했다. 1936년, 듀보아는 자바인이 원숭이였다고 고백하였다.
1.2 인간 계열
(1) 네안데르탈인 - 1856년, 네안데르탈 인이 최초의 뼈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발견되었다. 꾸부정한 모습을 지닌 이것들은 20만년 전쯤된, 원인으로부터 한층 진보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후에 이 네안데르탈인은 곱추병 환자였음이 밝혀졌다. 팔레스타인 동굴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직립보행 인간의 화석이 계속 발견되어 왔다. 그들의 두개골용적은 현대인의 그것보다 더 크다. 이것은 완벽한 인간의 두개골 일 뿐이다.
(2) 뉴우기니아인 - 현재 존재하는 인간
(3) 크로마뇽인 - 크로마뇽인의 화석은 프랑스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5만년전 인간으로 계산되었다. 크로마뇽인의 뇌의 용적은 현대인의 그것보다 더 크다. 그들은 동굴에 정교한 벽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크로마뇽인 역시 현대 인류와 차이가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1.3 허구의 존재
(1) 하이델베르그인 - 1907년, 독일 마우어에서 발견된 턱뼈를 재구성하여 진화론자들은 하이델
베르그인이 25만년 전에 생존한 사람과 원숭이의 빠진 고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이델베르그인의 치아는 현대인과 완전히 같다.
그래서 유명한 진화론자인 인류학자 허들리카는 이렇게 말했다.
"마우어(즉 하이델베르그인) 턱뼈의 치아는 완전히 보존되어있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의 치아이다"
(2) 네브라스카인 - 1922년 지질학자 헤롤드쿡(Haroid Cook)은 서부 네브라스카의 샛강바닥에서 치아 한개를 발견하였다. 생물학자 오스본 교수는 그것이 원인(APEMAN)에 속한다고 말했다. 후에 그것은 멸종된 멧돼지의 치아로 판명되었다.
1.4 기타
(1) 북경원인 - 1922과 1939년 사이에 38개의 뼈들이 북경 서남방 주구점에서 발견되었다. 처음 발견된 치아중 하나에 대해 북경 유니온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던 블랙박사는 이 치아를 중국 고대 유인원, 혹은 사람과 유사한 동물이 존재한 증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치아 두개를 제외한 이 북경인에 대한 모든 자료가 1941-1945년 사이에 모두 분실되었다. 자료없이 당시 진화론자들로 구성된 북경인 연구학자들이 남긴 자료에 근거해야하는 북경인은 인류 기원에 대한 증거물로 불충분하다.
3. 돌연변이
돌연변이나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변이에 따라 그 기능이나 구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은 종(種)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종 내에서의 작은 변이(진화론의 소진화)가 쌓여서 다른 종이 됐다고(대진화)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생물의 인위적 돌연변이 실험을 거의 반세기 동안 해왔어도 단 한번도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 일을 없다. 초파리로 실험했을 때 비록 크기, 모양, 색깔 등이 조금씩 다른 초파리가 나왔지만 초파리가 아닌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유전학적 한계 내에서, 즉 종 내에서 변이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누적돼 수직적인 변이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생명체 내에는 망가지거나 손상된 염기배열을 고쳐 원래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유전자 교정장치(DNA repair system)가 존재하고 있어 오히려 진화를 방해한다. 신다윈설을 증명한다는 예로 많이 인용되는 영국의 버밍헴지역의 불나방의 경우를 보자. 흰불나방과 검은 불나방의 비율이 주위의 환경에 따라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서 그랬다는 설명은 타당치 않다.
개를 가지고 실험해도 역시 개로 끝나고 박테리아를 가지고 아무리 여러 가지 변이실험을 해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긴 하지만 끝까지 역시 박테리아다. 야생동물들을 자연상태로 내버려 두어도 자기 종류들 내에서만 번식해 간다. 간혹 잡종이 생길 수 있으나 잡종들은 그 당대에서 끝나고 더 번식을 못한다. 말과 당나귀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인공적으로 교배시켜 노새가 생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새는 번식을 못한다. 식물이나 동물세계에서 혹 인공적으로 더 나은 품종을 개발했다 해도 대개 번식력이 약화되어 몇 세대 이상 가지 못하거나 존속하기 힘든 약체가 된다. 그렇다면 돌연변이의 특성을 살펴보자.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돌연변이는 100만 마리의 동물 가운데 한 마리, 혹은 10만 내지 100만 세대에 한번정도 일어난다고 본다.
또한 돌연변이는 해로운 방향으로 일어난다. 1928년 이래 초파리에 X-선을 조사하여 인공돌연변이 실험을 해왔고 1946년에는 이 분야의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밀러박사(H.G.Muller)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해롭게 나타나고 사실상 유익한 돌연변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모든 돌연변이가 다 해롭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했다. 돌연변이는 생존능력의 약화, 유전적 질병, 기형을 만듦으로 그러한 변화는 진화를 성립시키는 요소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유명한 진화론자 도브잔스키(Dobzansky)도 말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발생된 돌연변이의 경우 백혈병, 기형, 죽음을 초래했지 유익을 주지는 못했다. 유익한 변이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나온 논리이지 실제의 돌연변이는 모두 해롭게만 일어난다.
돌연변이가 한 종에서 고등종류의 생물체로 진화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돌연변이가 드물게 일어날 뿐 아니라 거의 항상 해롭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4. 계통발생설
동물의 배(embryo) 발생과정에서 사람이나 물고기, 닭 등의 배가 비슷하여 진화의 증거라 하여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 한다'는 학설을 1866년 헤케르가 발표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미 여러 학자들(Ehrich, Holm)에 의해 부정되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조차도 이 이론을 믿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 옹호의 이론으로 자주 이용되고, 초보적인 교과서에 게재되고 있는 것은 큰 잘못 중 하나이다.
[유명한 꼬리들기 단계의 배아]
위에 유사하게 보이는 배아는 헤켈만이 조작한 그림이고
아래 배아그림은 실제 사진입니다. 저런 엉터리에 대해서 지적하는것에 대해
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거짓을 계속 후배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인지...
수년전 유명한 진화론자인 몽태그(Ashley Montague)박사는 프린스턴대학 토론회에서 발생반
복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론으로서 더 이상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동물의 배 발생과정에서 생기는 새궁(gill arch)이나 새열(gill slit)은 물고기의 것과는 다르다. 물고기 배의 새열은 숨을 쉬게 하는 아가미로 발전되지만 사람 배의 목부분에 있는 막대기나 나사홈 형태와 비슷한 부분은 물고기에서와 같이 아가미로 발전되지 않고, 아래 턱 귀의 중간부분 및 내분비선(gland)으로 자라게 된다. 따라서 외견상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유전 정보상 서로 다른 근원을 가져서 다른 기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하다.
5. 말의 진화
그 동안 시조새와 더불어 말은 가장 효과적으로 진화를 보여주는 표본인 것처럼 제시되어 왔다. 그것은 포유류에 속하는 말의 화석이, 생물군의 발전과정을 계통적으로 보여주는 소위 계열 화석을 이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어떤 진화론자들은 오히려 시조새보다도 말이 진화를 보여주는 더 좋은 보기라고 말한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말의 진화계열을 살펴보면, 에오히푸스(Eohippus)-메소히푸스(Mesohippus)-메리키푸스(Merychippus)-플리오히푸스(Pliohippus)-에쿠스(Equus)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진화론적 말의 계열이 보여주는 것이 실제 진화의 증거가 되는 것인가 몇 가지로 나누어 검토해 보자
* 말 화석의 치아 : 말 화석의 치아는 씹는 이와 가는 이 두 종류로 명백하게 구별되며 중간 형태를 나타내는 말은 전혀 없다.
* 말의 크기와 주둥이의 길이 변화 : 말의 크기변화를 진화의 증거로 삼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현존하는 말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팔라벨라와 같은 말은 키가 50cm에 불과하며 경기용 말은 2m나 된다. 그러므로 크기와 길이의 변화로서 진화를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말 화석의 늑골 : 에오히푸스는 18쌍의 골을 지니며 오로히푸스는 15쌍, 플리히푸스는 19쌍, 현재의 말인 에쿠스는 18쌍의 늑골을 가진 것으로 보아 말 화석의 늑골은 진화가 점진적으로 되었다고 할 때 도무지 맞지 않는다.
* 말의 발가락 : 말의 발가락 수도 진화의 증거가 못된다. 제3기 중간에서 발견되는 말의 발가락이 두개이거나 한 개로 변해 가는 것을 보여주는 전이 형태가 전혀 없다. 각각의 말들은 진화의 계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다른 종류의 말이거나 혹은 돌연변이로 인하여 발가락 수가 준 멸종된 변종일 것이다.
* 에오히푸스 : 최근의 많은 과학자들은 말의 가상적 진화계열 중 조상형 에오히푸스를 말과 전혀 무관한 오소리 비슷한 동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위와 같이 가상적 말의 진화 계열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진화의 증거로 삼기에는 부적당하다. 그러기에 진화론자인 히칭 박사(Franis Hitching)까지도 다음과 같이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최초의 말이라고 추측하는 에오히푸스는 적어도 말이 아니다. 실제 최초로 발견되어졌을 때는 그것은 그와 같이 분류되지 않았었다. 그의 골격구조와 삶의 생태를 추적해 볼 때 그것은 오늘날 바위 너구리(Hyrax)와 흡사하다. 더우기 에오히푸스의 화석은 에쿠스 네반덴시스 (Equus nevadensis), 에쿠스 옥시덴탈리스(Equus occidentalis) 등 현재의 두 말 종류와 같은 표층에서 나란히 발견되어 진다.
둘째, 말 화석의 완벽한 계열이 아래서부터 위층까지 적절히 진화론적인 질서로 암석층에서 정렬된 채로 발견되는 곳이 세상의 어느 곳에도 없다. 이러한 배열은 단지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화석을 차례로 배열함에 의존하므로 그들이 어떤 순서로 들어가는가에 따라 심각한 논쟁이 있게 된다. 이에 대하여 어느 전문가는 "누가 그 이야기를 꺼냈는가에 의하여 크게 의존하고, 언제 그 이야기가 발표되었는가"에 따라 진화 계통수의 자리 다툼을 위해 경쟁하는 많은 화석 말들이있다고 하였다.
셋째, 발가락이 많은 동물로부터 한 개의 발가락을 지닌 동물로의 배열이라는 것은 순전히 이론에 불과한 순서배열로 많은 반론을 지닌 부자연스러운 배열이다.
이러한 모든 예를 통하여 볼 때 말 화석은 종류대로의 말을 보여주며 결코 진화의 증거로는 부적당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동일한 종 내에서의 변이를 선입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오늘 날 살아있는 사슴이나 기린 등도 말의 계열과 같이 진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의 화석이 진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은 결코 객관적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6. 시조새
진화론에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고 내세우는 가장 유명한 것은 시조새의 화석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많은 시조새의 화석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독일의 졸른호펜(Sornhofen)의 석회암에서 발견된 쥬라기 화석이다. 시조새의 새로서의 특징은 깃털, 날개, 부리이며, 파충류로서의 특징은 뼈가 있는 긴 꼬리, 날개 전면의 발톱, 부리의 치아 등이다. 그러면 시조새가 정말로 진화론에서 말하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인지 알아보자.
진화론자들은 시조새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새의 깃털은 다른 종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발달한 형태이다. 시조새는 완전히 날 수 있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깃털로서는 조류가 파충류에서 발생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에서 시조새가 파충류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날개의 앞쪽 끝에 있는 발톱(날개 발톱)이다. 그러나 날개 발톱이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현존하는 새 중에도 날개 발톱을 가진 새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남아메리카에 서식하고 있는 호애친(Opisthocomus hoatzin, 남미산의 뱀을 잡아 먹는 새)이라는 새는 날개 끝에 발톱 두개가 있다. 호애친은 100% 새이면서도 날개 발톱을 가진다. 그러므로 날개 발톱은 시조새가 중간 형태라는 증거로 전혀 사용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진화론자들이 내세우는 것은 시조새의 치아이다. 그러나 시조새의 치아도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사이의 중간 형태의 증거가 될 수 없는데 이유는 화석으로 나타나는 새들 중에는 시조새 외에도 치아를 가진 새들이 있기 때문이다. 치아의 유무가 파충류과 조류의 판별기준이 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오늘 날 파충류에도 거북이 같은 경우처럼 치아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치아가 없는 포유류인 오리너구리 등은 여러 모로 볼 때 모든 포유류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동물이다. 그러므로 치아의 유무도 시조새를 전이 형태로 내세우려는 진화론자들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이상의 논리를 종합해볼 때 시조새를 파충류와 조류의 전이 형태로 채택한 것은 진화론자들의 편견 때문이지 객관적인 증거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화론적 조류 전문가인 스윈톤은 "조류의 기원은 대부분 추론에 불과한 것이며 파충류에서 조류로의 변화를 명백히 보여주는 화석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화석 기록을 볼 때 조류가 파충류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의 주장을 부정하는 동시에, 조류의 화석이 독립적으로 갑자기 나타날 것이라는 창조론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 기사는 이제까지의 진화론에 도전하고 있다. 1977년 9월 24일 발행된 <과학 뉴스-Science News>지 112권의 128페이지에 실린 한 짤막한 기사에서 새의 화석이 시조새와 똑같은 지질 시대의 암석에서 발견되었다는 놀랄 만한 사실이 발표되었다. 만일 실제 새가 시조새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면 시조새는 명백히 조류의 조상이 될 수 없으며 파충류와 조류 사이의 중간 형태도 아니다.
7. 상동기관
생물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근연관계와 그 계통을 유추하고자 하는 것이 진화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분자수준에서 유사성은 재고되어야 한다. 분자의 생화학적 상동현상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진화론에 근거한 생물종간 비교와 아미노산 배열의 예는 거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예는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동물의 체내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인슐린의 아미노산 차이를 한번 비교해보자. 인슐린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조가 닭, 오리, 타조의 경우에는 거의 유사하며, 생쥐와 토끼도 서로 닮아있다. 그런데 가다랭이 (bonito)라는 물고기의 인슐린 구조는 같은 어류인 복어(toadfish)보다 오히려 닭이나 오리, 사람 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쥐는 가까운 돼지보다는 오히려 닭, 방울뱀, 가다랭이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예로 시토크롬 C는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효소인데 10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아미노산의 동물간 유사성을 조사해 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젖먹이 동물인 회색고래의 시토크롬 C는 같은 젖먹이 동물인 원숭이보다 오리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또 두꺼비는 방울뱀보다 초파리와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치의 시토크롬 C도 같은 어류인 돔발상어(dogfish) 보다 오히려 토끼의 그것과 닮았다. 이상의 예를 통해 볼 때 상동기관은 진화의 증거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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