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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오전 권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전 대통령은
“명동성당으로 진입해 농성대를 해산시킬 것”을 지시했다.
당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6월 10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22개 도시에선 20여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민주헌법 쟁취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서울 도심의 시위대 일부가 경찰에 밀려 명동성당으로 들어갔고 밤새 투석전을 벌였다. 경찰은 성당 외곽을 겹겹이 둘러쌌고, 대학생들은 시위대를 구출하기 위해 명동성당 부근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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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생각을 돌릴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전 대통령의 형인 전기환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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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환씨를 만나고 돌아온 직후 강제진압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안기부에서 열렸다. 이상연 안기부 1차장은 권씨에게 “김수환 추기경에게 경찰 진입 사실을 미리 알리기 위해 같이 가자”고 말했다. 권씨는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중부서장을 대동하고 이상연씨와 명동성당 후문 문화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김 추기경 쪽에서 이씨만 만나겠다는 뜻을 알려왔어요. 저와는 사전에 약속이 돼 있지 않다는 이유였어요. 그래서 이상연씨가 20분 정도 김 추기경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강제진압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내가 정문에 서 있을 테니)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도 한국의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국의 CBS 등 외신은 명동성당 상황을 주요 뉴스로 타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명동성당 양권식 신부는 “미 국무부 직원이 명동성당 내 상황실에 와 있었어요. 미국은 명동성당 사태가 평화롭게 해결되기 바란다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고 말했다. 양 신부는 성당 부근 ‘판넬골목’의 한 골방에서 노태우 대표를 극비리에 접촉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표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위기상황이 올 수 있으니 우리가 나서서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4일 새벽 전기환씨는 청와대에 들어가 전 대통령에게 강제진압을 재고하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군 관계자와 안보관계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의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전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여러 사태가 발생해 걱정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비겁한 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진압을 반대하던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겠죠. 하지만 대통령은 진압 철회를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하신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었죠.”
명동성당 강제진압 명령은 취소되고, 성당 측 협조하에 자진해산 시킨다는 방침이 결정됐다. 한편 시위대는 15일 새벽까지 농성을 계속할지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가 “이제 삶 속으로 돌아가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할 때”라며 설득했다. 하지만 ‘투쟁 계속’ 주장이 만만찮아 세 차례의 투표 끝에 해산이 결정됐다. 명동성당에서의 6일간 농성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후 시위 정국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산 지역은 위수령이 발동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최정예 3개 경찰 중대를 18일 부산으로 급파했어요.” 19일 궁정동 안가에서 노태우 대표를 비롯해 국무총리ㆍ안기부장ㆍ보안사령관ㆍ치안본부장 등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권씨는 대통령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치안상황이 어떠냐고 묻더군요. 부산을 염두에 두고 묻는 것 같아 경찰력만으로 막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씀 드렸죠. 대통령은 ‘아, 그래. 알았어’라며 전화를 끊더군요.”
그리고 5분 뒤 군 출동은 전면 취소됐다. 이한기 국무총리, 노태우 대표, 안현태 경호실장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부산 지역으로 갈 군 병력이 기차를 타기 위해 이동 중인 급박한 상황이었다.
“군이 출동하던 그날 대통령이 결정을 갑자기 바꾸게 된 직접적 계기는 저와의 통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찰이 확실하다면 군이 개입해 사태가 커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이와 관련, 미국이 전 대통령을 압박해 군 출동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릴리 주한 미국대사는 19일 오후 전 대통령을 면담해 “군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계엄령이 선포되면 한ㆍ미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권씨는 6월항쟁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넥타이 부대가 학생시위에 동참한 것은 충격이었어요. 시민들이 시위대에게는 박수를, 경찰에는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지요.” 시위 현장 경찰의 사기가 떨어져 큰 걱정거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안본부 경무관 이상 간부 부인 30여 명을 시민인 것처럼 꾸며 경찰관들에게 커피를 건네주면서 격려했다고 한다.
권씨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6월항쟁에 대한 심경을 피력했다.
“학생들의 시위를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치안을 책임진 입장에서는 방치할 수 없었죠. 시위대와 경찰 모두 시대적 상황에서 할 일을 했다고 봅니다.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더 이상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