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親과 獨島, 先代 對日 抗爭의 記錄

'악처(惡妻)' 당뇨병

장전 2007. 12. 9. 17:15
[만물상] '악처(惡妻)' 당뇨병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
입력 : 2005.03.14 18:28 03'

세종대왕은 병치레가 잦았다. 27살에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사서(史書)에 기록돼 있다. 연로해서는 곁에 앉은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안질에 시달리고 옆구리의 종창과 풍질로 고생했다. 현대 의학에서는 세종의 고질병이 소갈증(消渴症)에서 비롯된 합병증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소갈증은 목이 말라 물을 많이 마시면서 몸이 마른다는 뜻으로 오늘날의 당뇨병을 말한다.
 

▶세종은 식성이 좋아 하루 네 차례 식사를 했다고 한다. 고기가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을 만큼 육류를 좋아했다. 그런데 사냥 같은 무(武)에는 흥미가 없어 몸이 비중(肥重)했으며 이것이 조정의 고민거리였다.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데 비해 운동이 부족한 탓인지 세종처럼 왕실에서 당뇨 환자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조선조 철종도 그렇고 메이지(明治) 일왕도 당뇨병 환자였다.

 

▶국내에서 해마다 당뇨병 환자가 새로 50만명씩 생겨난다고 한다. 왕정(王政)시대의 제왕들 부럽지 않은 탐식에다가 몸 움직일 일은 별로 없어 칼로리가 당(糖)으로 혈관에 쌓이기 때문이다. 당뇨병 치료에 꼭 필요한 게 소식(小食)과 절식(節食)이다. 먹고 싶은 것을 눈 앞에 두고 안 먹으려면 눈물겨운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뷔페 식당에 간 당뇨 환자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네 원수를 사랑하듯 당뇨를 사랑하라.” 서울법대 교수, 국무총리를 지낸 고 이한기(李漢基)씨가 1987년 쓴 ‘당뇨 인생’이라는 글에서 한 충고다. 평생 떼어놓을 수 없는 게 당뇨병이다. 배우자는 정 못 참겠으면 이혼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뇨는 완치되는 일이 없다. 죽을 때까지 갖고 가야 한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따라붙는 악처(惡妻)와 같다’는 것이다. 떼어놓을 수 없을 바에야 적당히 비위를 맞춰가며 의좋게 살아가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수십년 당뇨와 싸운 끝에 도달한 해탈의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일병식재(一病息災)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병을 가진 사람이 그 병을 다스리려고 절제 생활을 하는 덕에 다른 재앙도 막게 된다는 뜻이다. 잊어버렸는가 싶으면 다시 찾아오는 고약하고 귀찮은 친구가 당뇨다. 하지만 그 친구를 잘만 길들이면 병이 없는 사람들보다도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다. 당뇨 인생이라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당뇨병 환자가 400만명을 넘어섰다는 것은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절제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