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20세기 영화사 연대표

장전 2006. 7. 26. 21:27

 

 

 

 연도

 한국영화

세계영화

 

1901

 

 <어느 범죄 이야기>,최초 상영 금지 처분을 받다

1902

 

조르주 멜리에스, 공상과학영화 <달나라 여행 A Trip to the moon>공개하다(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이자 비평가인 체자레 자바티니 태어나다(이탈리아)/ T.L. 톨리, 로스앤젤리스에 일렉트릭 공장 건설하다.

1903

6월 23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한성전기회사에서 활동사진 상영 기사. 7월부터는 협률사에서도 활동사진 상영 시작. <대열차 강도> 상영.

에드윈 포터, <대열차 강도>에서 원시적이고 시험적인 편집을 시작한다.(미국)

1904

 

촬영기사 그렉 톨랜드 태어나다(미국).

1905

 

고몽 영화사, 유럽 영화의 중심지로 자리잡다/ '5센트 극장'에서 영화 상영되기 시작한다.

1906

 

모스크바에 최초로 영화회사 설립되다/ 노르디스크 영화사 설립되다(덴마크)/ 로베르토 로셀리니 태어나다(이탈리아)/ 루키노 비스콘티 태어나다(이탈리아).

1907

한미전기회사, 동대문 차고에 활동사진관람소 설치. 최초의 전문상영관인 <단성사> 개관.

프랑스와 미국은 영화 배급을 위한 트러스트 결성하다/ 로베르 브레송 태어나다(프랑스).

1908

 

러시아 최초의 극영화 <강 밑의 도적당>괴 <스텐카 라진>공개 하다 (V. 로마시코프 감독)/ 필름 다르 형성하다.

1909

 

영국, 영화법 제정하다

1910

 

러시아, 미래파 출현하다/ 미국 영화 배급회사인 제너럴 영화사 설립하다. 파리에서 필름 다르Film d'Art(무대영화)운동이 일어남

1911

<쿼바디스> 상영.

니콜라스 레이 태어나다(미국).

1912

일본인에 의해 상설영화관인 <고등연예관>이 을지로 인근에 세워짐, 혁신단, 인흥사에서 <육혈포 강도>, <군인의 기질> 등 공연. 박승필 <광무연극장> 설립.

희극영화의 주류를 형성한 키스턴 영화사 설립되다(미국)/ 아돌프 쥬커, 파라마운트사 창립하다(미국)/ 칼라 에물, 유니버설사 창립하다(미국)/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태어나다(이탈리아).

1913

<폼페이 최후의 날> 상영. <황금연예관> 개설 - 훗날 우미관이 됨.

1940년대 네오리얼리즘의 단초인 베리스모 스타일이 이탈리아 영화에 나타나다.

1914

영화관 <단성사> 소유자 다무라의 위탁을 받아 박승필이 운영 시작. - 박승필(1875~1932)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작자이자 흥행가였다. <나폴레옹 일대기> 상영.

최초의 만화영화 <공룡 거티>(원저 맥케이)상영하다/ 찰리 채플린, <생계벌이>로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다(영국).

1915

 

인스, 그리피스, 세네트와 함께 트라이앵글 영화사 설립하다(미국)/ 엄청난 제작비, 3시간 분령의 길이, 인종적 편견 때문에 폭동을 야기하기도 한 <국가의 탄생>제작되다

1916

예성좌 <코르시카 형제>, <아내> 등 공연

'쿨레쇼프 효과'로 불리는 편집 실험에 몰두하기 시작하다/ 오슨 웰즈 출생하다(미국)/ 위고 뮌스터버그, <사진: 심리학적 연구> 발간하다

1917

유락관(有樂館)에서 이탈리아 영화 상영. 6월,당시 서울의 황금관 극장에서 상영된 극영화 <과거의 죄> 상영.

몽타주 착상에 따라 만들어진 최초의 러시아 영화 <기능공 프라이트의 계획>(레프 쿨레쇼프 감독) 나오다/ 참전을 지지하는 영화를 후원하기 위해 정부와 독일 은행, 대기업들이 많은 영화사를 통합하여 우파 (UFA) 영화사 설립하다(독일)/ 에디슨, 바이오그래프, 바이타그래프 등의 보수연합인 할동사진 특허회사가 일련의 반스트러스트법에 괸한 재판을 거치며 법적으로 무효라는 판결을 받다.

1918

 

프랑스에서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영화 등장하다(1918~1930,<마담 뵈데의 미소> <안달루시아의 개>등)/ 잉마르 베리만 태어나다(스웨덴).

1919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구투(義理的仇鬪)> 단성사에서 상영됨.(제작 박승필, 김도산, 촬영 이필우, 출연 변기종) 10월 27일 - 현재 우리나라 영화의 날이 됨.

소련, 영화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국립영화기술학교 (VGIK)개설하다/ 독일에서 표현주의 화 등장하다(1919~1930)/ 채플린과 그리피스, 픽포드와 페어뱅크스가 공동으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설립하다

1920

대구에 상설 영화관인 조선관 개관.

제9회 소련 공상당대회 결의에서 영화가 계몽, 선동, 선전의 강력한 수단으로 규정되다. 쿨레쇼프, 실험집단인 '쿨레쇼프 아틀리에' 결성하다(소련)/ 미국 영화의 제작 중심지가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옮겨지다

1921

조선총독부가 극단 취성좌를 동원해 계몽물 <호열자> 제작.

미국 영화 제작배급협회(MPAA) 설립하다/ 페데리코 펠리니 태어나다(이탈리아)/ 쇼티아지트 레이 태어나다(인도).

1922

영화관 조선극장 개관됨, 早川孤丹 감독 <춘향전> 영화제작. - 조천고주는 본명이 하야가와로 황금관과 조선극장을 운영하던 일본인.

베르토프, 기록영화 시리즈 <키노 프라우다>의 제작에 착수하다(소련)/ 레닌, "모든 예술 가운데 우리에겐 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다/ 정부의 검열을 막기 위해 헤이즈를 MPPA 소장으로 추대하다(미국)/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태어나다(이탈리아)

1923

조선총독부가 국민계몽용으로 제작한 선전영화 <월하의 맹서> (감독. 윤백남. - 한국최초의 무성영화). 연극,영화잡지 <예원(藝苑)> 발행(주간 윤백남), 윤백남 감독 <운영전>, 왕필열 감독- 일본인 감독 다카사 간죠(高佐貫長)의 한국이름 - <바다의 비곡>

에이젠슈테인, <레프>에 <친화의 몽타주> 기고하다(소련)/ 워너 4형제, 워너브러더스 설립하다. 아벨 강스, <바퀴>를 발표함 - 포토제닉 이론에 의해 사진과 영화의 재결합을 지향함.

1924

조선키네마 주식회사 설립. 첫작품으로 <해의 비곡>, 이형우 기록영화 <전국여자정구대회사진>촬영. 김영환 감독 <장화홍련전> - 제작진과 배우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영화. <멍텅구리> - 우리나라 최초의 코미디 영화로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노수현 원작의네칸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프랑스의 르네 클레르, 가장 중요한 다다이즘 영화인 <막간>을 만들다/ <괴스타베링의 이야기>(스웨덴, 모리츠 스틸러)에 그레타 가르보 출연하다/ 컬럽비아사 창립하다(미국)/ 루이스 에이어, MGM사 설립하다(미국).

1925

<운영전> 윤백남 감독 - 나운규 데뷔작 .윤백남 프로덕션 <심청전> 조선극장에서 상영. 조일제 계림영화협회 창립, 고려영화제작소(고려키네마)창립, 이구영 감독 <쌍옥루>. 왕필렬 감독 <신의 장()>.

에이젠슈테인, 소브키노 설립하다(소련)/ 런던에 영화에 관한 지적 관심을 표방하는 영화협회가 생기다(영국)/ <전함포템킨> 혁명식장에서 처음 공개되다(러시아)/ 월트 디즈니, 디즈니사 창립하다(미국). 모홀리 나기 『회화,사진,영화』 출판

1926

활동사진 필름검열규칙 공포(8.1.시행), 나운규 각본, 감독, 주연 <아리랑> 상영 - 총독부 검열에 걸릴 것을 두려워 한 나운규는 당시 조선키내마 제작부장이던 일본인 쓰모리의 한국 이름. 김창선을 감독으로 내세워 검열통과. <풍운아> - 나운규 감독, 각본, 주연.

푸도프킨, <영화시나라오>와 <영화감독과 영화요소>발전하다(소련).

1927

김철산 감독, 주연 <쾌인의 정례(快人政禮)>, 이규설(李圭卨)감독, 주연 <홍련비련>, <불망곡>, 나운규 감독, 주연 <잘 있거라>(전옥 주연), 김창선 감독 <뿔빠진 황소>, 김해운 감독 <운명>, 심훈 감독 <먼동이 틀 때> 등, 조선문예영화예술협회 창립, <낙화유수> -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음악. '강남달'. <낙원을 찾는 무리들> - '눈물의 여왕' 전옥(본명 전덕례) 데뷔

대사와 음악, 기타 음향을 합성한 최초의 극영화 <재즈싱어> 뉴욕에서 공개되다(미국)/ 아벨 강스, 영화 <나폴레옹>에서 세개의 영사기를 사용하며 상영하다(프랑스)/ 영화인들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영화예술 과학아카데미 출범하다(미국).

1928

나운규 감독, 주연 <사랑을 찾아서>(전옥 주연)-우리 영화사 최초의 검열사건 발생. 이경손 감독 <춘희>, 홍개명 감독 <사나이>(나운규 등 주연), 한국최초의 영화잡지 <문예·영화> 창간(평양). <장한몽> - 이수일 역에 소설가. 심훈 출연

완벽한 토키 영화 <뉴욕의 불빛>공개되다(미국)/ 월트 디즈니 최초의 유성만화영화 <증기선 윌리호> 발표(미국). 데즈카 오사무 탄생(일본)

1929

나운규 감독.주연 <벙어리 삼룡이>. 영화 <젊은이의 노래>. 김유영 원작. 감독의 경향파 영화 <혼가> 임화(시인), 남궁운 등이 출연.

베르토프,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제작하다(소련)/ 미국의 '영화예술 과학아카데미', 11개 부문에 걸쳐 아카데미상을 주기 시작하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루이스 부뉴엘 감독, 살바도르 달리 참여) 완성.

1930

경보극장 개관. 나운규 감독 주연 <아리랑 후편>, 왕덕성 감독 <회심곡>, 이구영 감독<승방비곡>, 윤백남 감독 <정의는 이긴다> 등 사영

장 뤽 고다르 태어나다(프랑스)/ 프랑스 최초의 토키 영화 <파리의 지붕 밑> 상영하다(르네 클레르 감독).

1931

서월영, 복혜숙, 나운규 등, 찬영회의 나운규 매장공작에 격분, 각 신문사 습격, 김유영 감독 <화륜>, <황혼>,<지하촌>, 이구영 감독 <수일과 순애>- 우리나라 최초의 이동촬영 장면이 나오는 영화. <영화시대> 창간

에이젠슈테인,<영화형식>출간하다(소련).

1932

영화잡지 <신흥영화>창간, 나운규 감독. 주연 <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 이규환 감독 <임자없는 나룻배>(나운규, 문예봉 주연), 주호산 감독 <벙어리 삼룡이>. <암굴왕>

세계 최초의 국제 영화제인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다(이탈리아)/ 디즈니, 3색 테크닉 컬러 방식의<세 개의 심포니>소개하다(미국)/ 아마추어용어으로 가장 폭이 좁은 필름을 사용하는 8mm영화 사용되다. 장 비고 <품행제로>.

1933

 

영국 영화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설립되다/ BFI가 영화잡지 를 창간하다(영국).

1934

경성촬영소 설립. <종로> - 나운규 주연

소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예술정책 시행하다/ 미국,영화 검열 강화하다.

1935

<내가 사랑하는 여자>. <어둠을 뚫고>. <무화과>. <강 건너 마을>. <그림자>. <칠번통 소사건> - 나운규가 참여한 영화들. 발성영화 <춘향전> - 주연: 문예봉

프랑스에서 시적 리얼리즘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다/ 동유럽 최초의 국제 영하제인 모스크바 영화제 개최되다(소련)/ 윌리엄 폭스, 폭스사 창립하다(미국)/ 자연 컬러 촬영이 시작되다(마물리안의<베르샤프)>/ 이탈리아, 영화실험센터 설립하다.

1936

<아리랑 3편> - 나운규 감독, 극본, 주연. 한양영화사. <동아일보> 시나리오 공모 - <애련송> 당선.

뉴욕 영화비평가상 생기다(미국)/ 앙리 랑그르와, 장 미트리, 조르주 프랑주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설립하다(프랑스). 1937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지원 아래 치네치타 영화촬영소 설립하다.

1937

<오몽녀> - 나운규의 마지막 영화. <황무지> - 나운규가 남긴 유고 시나리오.

장 르느와르(르느와르의 아들)가 영화 <거대한 환상>을 제작함,

1938

국내 최초의 영화제 <조선일보영화제> - 11월 25일~28일까지. 무성영화 부문 1위 <아리랑>, 유성영화부문 1위 <심청전>

이탈리아, 영화보관소 설립하다/ 일본, 영화인의 등록과 각본의 사전 검열을 강화하는 등 영화 행정을 내각정보국이 장악하다.

1939

<애련송>, <어화>, <귀착지>, <성황당>, <국경>, <사랑에 속도 돈에 울고> 등 제작.

소련, 연방영화회의 결성하다. 중국 옌안 영화집단 결성하다

1940

조선총독부 '조선영화령' 발표 - 모든 영화사를 폐쇄하고 대신에 어용영화사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설립. <수업료> - 최인규 감독,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녹음영화.

에이젠슈타인, 논문 <수직의 몽타주> 집필하다(소련)/ 프랑스영화 산업, 독일 지배하에 들어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태어나다(이탈리아).

1941

전창근 각본, 감독, 주연의 영화 <복지만리>가 상영되었으나 민족애를 주제로 한 탓에 감독은 백일간의 옥고를 치름.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영화제작 금지당함.

영국은 전시 세미다큐멘터리 만들기 시작하다/ <말타의 매>를 시작으로 필름 누아르 장을 나오기 시작하다(미국)/ <시밑케인>(오슨웰즈 감독, 그렉 톨랜드 촬영)에서 딥 포커스를 탁월하게 사용하다

1942

<신개지> - 일제 말기 민간영화사 제작 마지막 작품.

최초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인 <강박관념>(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만들어지다(이탈리아).

1943

군국주의 어용영화 <나는 간다>, <우러르라 창공>, <망루의 결사대>, <조선해협> 등 제작

마르셀 레르비에, 프랑스 영화학교(IDHEC) 설립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리츠 랑을 위해 영화교본 <교수집행인 또한 죽는다>쓰다(미국).

1944

<망루의 결사대> - 일본인 감독 이시이 작품. <병정님>, <태양의 아이들>, <너와 나> 제작

할리우드 테크놀로지의 귀재 조지 루카스 태어나다(미국).

1945

<사랑의 맹세>, <신풍의 아이들>, <우리들의 전장>, <감격일기> 등 제작 - 한편 일제와 타협하길 거부하고 침묵한 영화인들. 윤봉춘, 이규환, 전창근, 안종화 등. 해방 이후 '조선영화건설본부' 설립 - 미군정청으로부터 영화제작 촬영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아 뉴스영화 제작.(본부장. 윤백남). 조선영화동맹 결성. 조선영화구락부 결성.

캘리포니아 대학 지원을 받는 미룰 영화잡지 <필름 쿼털리 >창간되다.

1946

<안중근 사기> - 이구영 감독. 해방 후 첫 영화, 우미관 상영. <제주도 풍토기> - 기록영화. <똘똘이의 모험> - 해방후 제작된 극영화 제1호. <자유만세>(최인규 감독, 전창근 주연)

전후 영화 발전을 위해 칸 영화제 열리다(프랑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태어나다(독일)/ 빔 벤더스 태어나다(독일).

1947

<영화순보> 창간. <해방된 내고향>(전창근 감독, 배우 김승호 데뷔작). <새로운 맹세>(신경균 감독, 최은희 데뷔작. 음악 김순남). <불멸의 밀사>, <민족의 새벽>, <삼일혁명기>, <민족의 성벽> 등 일련의 애국영화 상영. 보스톤 국제마라톤 대회 다큐멘터리<패자의 수도> 상영.

허우 샤오시엔 태어나다(대만)/ 체코, FAMU 영화학교 개설하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영화사회학에 관한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출판하다(독일)/ 스티븐 스필버그 태어나다(미국)/ 의회 반미활동위원회(HUAC)에서 할리우드에서의 공산주의 활동 가능성을조사 하기 시작하다(미국).

1948

<예술영화> 창간. <유관순>, <검사와 여 선생> 개봉. 영화배우 윤일봉, 황정순, 주선태, 조미령, 주증녀, 이향 등 데뷔.

D.W.그리피스 사망하다/ 세르게이 M.에이젠슈테인사망하다.

1949

최은희가 출연한 <마음의 고향>이 제1회 서울시문화상에서 영화부문상을 수상. <성벽을 뚫고>(한형모 감독, 황해의 영화 데뷔작). <전우>, <나라를 위하여>, <북한의 실정>, <목동과 금시계> 등 상영. <여성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총천연색 컬러영화.

이탈리아, 국립영화연구소 설립하다/ 중국, 영화산업을 국유화하다.

1950

<여인애사>, <흥부와 놀부> 등이 6.25 전에 극장 개봉. 전쟁 발발 후 <리버티 뉴스> 제작.

뒷날 누벨 바그의 기수가 된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이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다(프랑스)/ 영국, 영화제작기금 조성하다/ 나는 FBI의 공산주의자였다>같은 반공영화가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와 국가기관에서 최고의 영화로 지목되다. <영화수첩> 창간.

1951

<내가 넘은 삼팔선> - 손전 감독. 다큐멘터리 <정의의 진격> 제작. <삼천만의 꽃다발> 개봉.

베를린 영화제 개최되다(독일)/ 의회 반미활동위원회, 200명 이상의 영화 관계자들을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 지지자로 지명하다(마국)/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몬>이 베니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일본 영화의 국제화가 본격화되다

1952

<성불사> (윤봉춘 감독) - 계몽영화로서 반공영화 장르의 정착. <공포의 밤>, <태양의 거리>, <베일부인>, <낙동강> 등 상영.

이스트만 컬러 소개되다/ 시네라마 장식 공개되다/ 비디오 개발 되다/ 20세기 폭스사가 시네마스코프 특허권 획득하다(미국)/ 채플린, <라임라이트>를 공개하기 위해 영국에 갔다가 공산주의자였다는 혐의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망명생화 시작하다/ 첸 카이거 태어나다(중국).

1953

반공영화 <애정산맥>(이만홍 감독), <진격만리>, <총검은 살아 있다>, <영광의 길> 등

 

1954

윤백남(1888년) 사망 - 극단 문수성 창단. <월하의 맹세>를 감독. <운영전>, <정의는 이긴다> 등의 작품. <매일신보> 편집장. 역사소설가. 해방 후 서라벌 예술대학 초대학장. <코리아>(신상옥 감독) - 우리나라 명승지를 소개한 문화영화, 시나리오 유두연, 미술 운보 김기창, 음악 김동진. <탁류>, <고향의 등불> 등 상영. <운명의 손>(한형모 감독) -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키스신 등장.

제1회 아시아 영화제 개최되다/ 프랑수아 트뤼포,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 발표하다(프랑스)/ 비스타비전 소개되다

1955

<춘향전>(이규환 감독) - 서울에서만 12만명을 동원하는 대성공(당시 서울인구 150만)-한국영화의 중흥기. <주검의 상자>(감독 김기영 데뷔작). <피아골>(이강천 감독).

미국의 실험여와와독립영화, 작론의 소개가 특정적인 잡지 <필름 컬쳐> 창간되다/ <오클라호마>로 Todd-AO 방식 소개되다.

1956

<시집가는 날> - 이병일 감독. <마의 태자>, <구운의 정화>, <단종애사>, <무영탑> 등 사극영화 붐. <자유부인>(정비석 원작, 한형모 감독)

안제이 바이다, 국영 영화산업의 제조직에 참가하여 유니트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하다(폴란드). 알랭 레네, <밤과 안개>

1957

<풍운의 궁전>, <봉이 김선달>, <선화공주>. <황혼열차>(감독 김기영) - 배우 김지미, 안성기의 데뷔작, 이후 '명자, 아끼꼬, 소냐'에 이르기 까지 347편의 영화에 출연함. 제4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시집가는 날>이 특별희극상을 수상.

루이 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런던 쇼, 홍콩에 쇼 부라더스 창립하다.

1958

<별아 내 가슴에>(홍성기 감독), <아름다운 악녀>(감독 이강천). 문교부 주관의 '우수국산영화시상제' - 훗날 '대종상'이 된다.

 

1959

<고종황제와 안중근 의사> - 전창근 감독. <청춘극장>(홍성기 감독). <십대의 반항>(감독 김기영) - 이 영화는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되어 안성기가 아역상 수상. <길은 멀어도>(감독 홍성기) - 한국영화 최초로 프랑스 파리 로케

유니버설사, MCA로 소유권 넘어가다(미국)/ 푸랑스, 누벨바그 운동 시작되다/ 영국의 프리시네마 운동 시작되다/ 쿠바, 영화예술산업연구소(ICAIC) 설립하다/ 누벨 바그의 대표적인 촬영기사 라울 쿠다르, 고다르와 함께 그의 첮 작품 <네 멋대로 해라>만들다(프랑스)/ 프랑수와 트뤼포, <400번의 구타>를 시작으로 앙트완느 드와셀 시리즈 시작하다/ 일본, 자주제작, 자주배급, 자주상영이라는 독립프로덕션 제2기가 시작되다.

1960

<로맨스 빠빠> (감독 신상옥). '영화윤리위원회' - 4.19 혁명 후 5.16까지 영화검열을 민간인으로 구성된 이 단체에서 맡게 됨. 덕분에 <오발탄>, <하녀>, <나그네>, <아, 백범 김구선생> , <주마등> 등과 같은 수작이 발표될 수 있었다. <하녀>(감독 김기영)

뉴아메리칸 시네마그룹 결성되다(미국)/ 안보투쟁을 다룬 오시마 나기사의 <일본의 밤과 안개> 개봉과 동시에 상영 중단되다(일본). 장 뤽 고다르, <네멋대로  해라>

1961

두 편의 <춘향전> 경쟁 -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의 대결. <성춘향>의 대성공(관객동원 361,973명). <오발탄> (감독 유현목, 한국최초의 영화전문 조명기사 김성춘 제작). <나그네> - 1937년 작품을 이강천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 김승호, 이예춘 주연. 군사정부의 지원으로 전쟁영화 <5인의 해병>(감독 김기덕). <마부>(강대진 감독)-김승호, 황정순

장 루쉬와 에드가 모렝, <여름의 연대기>로 시네마베리테 운동을 시작하다/ 언더그라운드 제1선언 발표되다.

1962

제1회 대종상영화제 시작 - <연산군>이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촬영상 등을 수상. 군사정부 '영화법' 제정 공포 - 71개사에 달하던 영화사를 통폐합아여 16개사로 줄임(군사정권 최고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전격적으로 공포한 영화법에 따라 영화계 재편, 모처럼 희망을 주었던 표현의 자유가 굳게 닫히기 시작). <두고 온 산하> (감독 이강천, 극작가 신봉승의 첫 시나리오 작품). <두만강아 잘 있거라> (감독 임권택) - 임권택의 감독 데뷔작.

글라우베르 로차, 첫 장편영화 <바라벤토>를 만들어 '시네마노브'의 기수로 각광받다(브라질)/ 서독, 오버하우젠 선언 발표하다/ 앙드레 바재, <영화란 무엇인가> 완간하다(프랑스)/ 고다르,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브레히트적 영화 <그녀의 인생을 살다> 소개하다/ 일본, 예술국장조합(ATG) 활동 시작하다.

1963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감독 이만희)

 

1964

<빨간 마후라> (감독 신상옥, 각본 한운사, 음악 황문평) - 제11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신영균) 및 편집상을 수상.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 - 신성일, 엄앵란 결혼(11월 14일)

크리스티앙 메츠, <영화, 언어체계인가 언어활동인가>라는 논문 발표하다(프랑스).

1965

'우수영화보상제' 실시 - 문예영화 붐. <갯마을> (감독 김수용) - 제13회 아시아영화제 흑백촬영상 수상.

super 8mm영화 소개되다/ 프랑스, 시네클럽연합(FFCC) 결성되다/ 독일, 청년독일영화관리국 설립되다/ 고다르, <남성-여성>에서 실험영화와 극영화, 다큐멘터리를 통합해 '영화적 에세이'의 모델을 보여주다.

1966

감독. 안종화(1902년생) 사망 - 서울출생으로 <바다의 비곡>, <운영전>에 출연. 1930년 <꽃장사>로 감독 데뷔 1962년까지 <애정 삼백년> 등 13편의 영화 감독. <만추>(감독 이만희) 등 여러 편의 문예영화가 제작됨.

솔라니스와 베티노, '해방영화집단'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다(아르헨티나)/중국 문화대혁명으로 몇개의 스튜디오 문을 닫다

1967

당시 개봉관 입장료 오십원. <만선>,<산불>,<일월>, <메밀꽃 필 무렵>, <막차로 온 손님들>, <싸리골의 신화> 등 상영. <안개>(감독 김수용)-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하여 원작자 김승옥이 직접 각색하고 이어령이 감수, 김승옥이 작사하고, 이봉조 작곡의 주제가 <안개>를 가수 정훈희가 불러 히트. - 이후 김승옥은 영화에 흥미를 느껴 1969년 연출에 도전하나 실패.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

크리스 마르케느,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다섯 명의 영화 감독들과 함께 영화집단 ' slon' 결성하다(프랑스)/ 고다르, <주말>에서 수평 트래킹 숏과 화면의 평면화로 부르주아적 세계를 탈신비화하려고 하다.

1968

영화배우 김승호(1917) 사망 - <시집가는 날>, <마부>, <박서방>, <로맨스 빠빠>, <육체의 길> 등 3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 서민의 우상이었다. 영화인장.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상영. <미워도 다시 한 번> (감독 정소영) - 362,503명의 관객 동원.

5월혁명으로 칸 영화제 취소되다(프랑스)/ 장뤼크 고다르와 장 피에르 고랭, '지가 베르토프 집단' 결성하다(프랑스)/ 4명의 볼리비아 영화인이 영화집단 '우카마우 집단' 결성하다(볼리비아)/ 크리스티앙 메츠, <영화 의미작용에 관한 사론> 발표하다(프랑스).

1969

<미워도 다시 한 번2> (감독 정소영). <봄봄> (감독 김수용) 등 2백 29편의 영화가 제작되는 등 한국영화의 전성기.

솔라니스와 케티노의 <제3영화를 향하여>라는 논문 발표하다(아르헨티나)/ 장 루이 코몰리, <영화/ 이데올로기/ 비평> 발표하다(프랑스)/ 미국,영화발전연구 센터 설립하다/ 일본, 소시민 희극 <남자는 괴로워>시리즈 시작하다.

1970

<미워도 다시 한 번3> (감독 정소영) 한국영화 제작 2백 31편. <잃어 버린 면사포> (감독 이두용) - 이두용의 감독 데뷔작. 북한 <꽃파는 처녀>에 인민상 수여.

독일, 뉴저먼 시네마 운동 시작되다/ 홍콩, 레이몬드 초우가 골든 하베스트를 세우고 상업적으로 일상하기 시작하다.

1971

<미워도 다시 한 번4-완결편> (감독 정소영) - 시리즈 관객동원 100만명. 영화배우 남정임의 결혼. 트로이카 체제의 붕괴. '한국영화진흥조합' 창설 - 영화진흥공사의 전신. <분례기> (감독 유현목) - 방영웅 원작의 소설을 영화화해서 대종상영화제 작품상 부문에 올랐으나 내용이 어둡다 하여 이 해 작품상 부문은 '해당없음'으로 발표되는 촌극이 벌어짐. 한국최초의 70밀리 영화 <춘향전> 제작. 세계에서도 다섯번째였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 첫 세대의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다<(져자 키우기>,<제니의 제니>, <세가지 삶>,<여성 영화>)/ 케이블 TV 소개되다

1972

텔레비전의 대량 보급으로 영화 제작 편수가 급격히 급감하기 시작. <화분> (감독 하길종) - 하길종의 감독 데뷔작. 감독 전창근(全昌根,1902) 사망 - <복지만리>로 감독 데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아, 백범 김구 선생>, <삼일독립운동> 등 감독. 북한 <꽃파는 처녀> 제18차 국제영화축전에서 특별상 수상.

미국, 영화등급제(G,PG,R,X)실시하다/ 에딘버그 영화제와 뉴욕 국제 영화제 개최하다(미국)/ 영화잡지 <여성과 영화>간행되다(미국)/ 4중 입체음향 시스템 도입되다/ 에딘버그와 뉴욕에서 국제여성영화제 개최되다.

1973

<이별> (감독 신상옥), <증언> (감독 임권택) 등의 작품만이 관객 십만 명을 넘겼을 뿐 나머지 한국영화는 흥행부진. '한국영화진흥공사' 설립.

토론토와 워싱턴에서 여성영화제 개최되다/마조리 로젠의 영화 속의 여성의 대한 최초의 저작 <팝콘 비너스>발간되다.(미국)/ 영국, BFI의 여성에 대한 최초의 저작 <팝콘 비너스> 발간되다(미국)/ 알제리에서 제3세계 영화인의 결의가 발표되다/ 파리에서 제1회 super 8mm영화제 개최되다.

1974

<별들의 고향> (감독 이장호) -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으로 최인호의 신문연재소설을 원작으로 46만명의 관객 동원. 여주인공 '경아'신드롬.(배우 안인숙)

여성의 시각으로 현대 영화를 분석하는 평론지 <점프 컷> 최초로 간행되다(미국)/ 칸 영화제에서 호금전(홍콩)의 <협녀>가 공개되어 비평가들의 격찬 속에 기술대상을 받다.

1975

<영자의 전성시대> (감독 김호선, 염복순, 송재호 주연) - '영자' 붐. <바보들의 행진> (감독 하길종) - 시나리오 최인호, 촬영 정일성. 감독 이만희(1931) 사망 - 1961년 <주마등>으로 감독 데뷔. <돌아오지 않는 해병>, <흑백>, <시장>, <만추> 등 50편의 작품을 남겼다. <어제 내린비> (감독 이장호) - 두번째 작품. <여고졸업반> (감독 김응천) - 하이틴 영화 붐.

로베르 브레송, 영화 연출에 대한 책인 <영화에 관한 소론> 출간하다.

1976

<여자들만 사는 거리> (감독 김호선). <진짜진짜 잊지마> (감독 문여송) - 이덕화, 임예진 콤비. <고교얄개> (감독 석래명)

베루톨루치의 <1900년>을 3개의 미국회사(파라마운트, 폭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편집하여 배급하다.

1977

<겨울여자> (감독 김호선) - 58만명의 관객 동원. 영화배우 이예춘(1920) 사망 - 1955년 영화 <피라골>의 아가리 대장으로 데뷔. 주로 악역 전문 배우로 명성을 알렸다. 영화배우 이덕화의 아버지. <병사와 아가씨들> (감독 김기) - 안성기의 성인역 데뷔작.

페미니즘 영화이론지인 <카메라 옵스큐라>발간되다(프랑스).

1978

<속 별들의 고향> (감독 하길종, 장미희 주연), <꽃순이를 아시나요> (감독 정인엽, 주연 정윤희)

빔 벤더스, 프랜시스 코폴라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하메트>의 제작에 착수하다/ 대만, 시테마테크, 금자장영화제가 신설되고 정부의 제작비 지원이 시작되다.

1979

감독 하길종(1941) 사망 -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영화 수업. <화분>, <수절>, <바보들의 행진>, <한네의 승천>, <여자를 찾습니다>, <속 별들의 고향>, <병태와 영자> 등 7편의 작품을 남겼다.

문화대혁명으로 문을 닫았던 북경의 전영학원 다시 수업을 시작하다/ 홍콩 뉴웨이브 개막하다

1980

컬러 텔레비전 방송 시작. <바람불어 좋은 날> (감독 이장호) - 이장호의 대마초 사건 이후 재기작. 이 영화에서 안성기는 최초의 성인 역으로 데뷔해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감독 정진우). <그때 그 사람> (감독 문여송). <짝코> (감독 임권택)

장 자크 베네의 <디바>를 시작으로 '누벨 이마주' 감독들의 영화가 나오기 시작하다/ 짐 자무쉬의 <미스터리 트레인>, 일본의 JVC의 미국 내 자회사인 라르고 엔터테인먼트의 첫번째 작품이 되다/ 인도, 영화금융공사와 인도영화수출협회를 설립하여 인도 영화의 부흥을 꾀하다

1981

<별들의 고향 3> (감독 이경태, 유지인 주연), <만다라> (감독 임권택). <어둠의 자식들> (감독 이장호).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감독 정진우),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감독 김호선).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감독 김수형, 주연 이주일). <피막> (감독 이두용) - 제43회 베니스영화제 본선 진출, 국내영화 최초의 국제영화제 정식 출품작.

 <점프컷> 24,25호에서 레스비언과 영화에 대한 특별호를 발행하다(미국)/ 스필버그, <인디애나 존스>만들기 시작하다(이후 1984년, 89년에 제작).

1982

<속 영자의 전성시대> (감독 심재석). <꼬방동네 사람들> (감독 배창호) - 배창호의 감독 데뷔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감독 이원세). <반노> (감독 이영실). <백구야 훨훨 날지 말아라> (감독 정진우). <바보선언> (감독 이장호) - 시카고 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최초의 영화운동 집단인 '서울영상집단' 창립, 서울대 영화동아리 '얄라셩'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짐. 이어 노동자뉴스제작단, 독립영화협의회,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푸른영상, 인디라인 등 독립영화 집단이 연이어 창립

스티븐 스필버그의 ,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다(미국).

1983

<적도의 꽃> (감독 배창호). <물레야 물레야> (감독 이두용). <무릎과 무릎사이> (감독 이장호)

코카콜라사, 컬럼비아사를 일본의 소니사에 매각되다(미국)/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향수>로 칸 영화제 창조대상 받다/ <아빠는 출장중>(에미르 쿠스타르차)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

1984

<물레야 물레야> (감독 이두용) -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느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분야 선정. 감독. 이규환(1904년) 사망 - <임자없는 나룻배>로 데뷔한 후 <나그네>, <갈매기>, <춘향전> 등 감독. <적도의 꽃>, <고래사냥> (감독 배창호). <어우동> (감독 이장호)

 <터미네이터>, 근육질의 우람한 전사 아놀드 슈왈제너거를 스타로 만들다.

1985

<깊고 푸른 밤> (감독 배창호), <땡볕>(감독 하명중).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감독 배창호). 새 영화법 공포 - '영화법 시행령' 공포. 영화진흥공사 부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1회 졸업생 배출. 미국영화의 국내시장 개방 압력 굴복.

소수 민족의 애환을 그린 웨인 왕의 <딤섬> 소개되다

1986

<길소뜸> (감독 임권택). <변강쇠> (주연 이대근), <황진이> (감독 배창호), <겨울나그네> (감독 곽지균) - 곽지균의 감독 데뷔작. <이장호의 외인구단>, 최은희-신상옥 부부 탈북

스파이크 리, 첫번째 장편영화인 <그녀는 그걸 가져야 해>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혼합한 참신한 흑인영화를 만들다/ 코카콜라사의 자회사인 컬럼비아 영화사,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퍼트냄을 회장으로 추대하다(곧 밀려나오다).

1987

<씨받이> (감독 임권택) - 제44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강수연).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도 않는다> (감독 이장호). <87 영자의 전성시대> (감독 유진선)

SFX의 걸작 <천녀유혼>, 홍콩 영화를 예술영화의 반열에 올려 놓다/ 대만, 신영화 선언 발표하다

1988

<아다다> (감독 임권택). <개그맨> (감독 이명세) - 이명세의 감독 데뷔작. <칠수와 만수> (감독 박광수). UIP 미국직배 반대 투쟁 - 이 해의 외화 수입 편수는 200 여 편이 넘었다.

서극, 자신의 영화사인 '전영공작실' 설립하다

1989

<오 꿈의 나라> 제작진 문화공보부에 의해 고발당함.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감독 배용균) - 제42회 칸느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선정. <아제아제 바라아제> - 강수연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최우수여우주연상 수상. <성공시대> (감독 장선우). <구로 아리랑> (감독 박종원) - 영화아카데미 1기생인 박종원의 감독 데뷔작. <그들도 우리처럼> (감독 박광수)

 <비정성시>(허우 샤오시엔),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수상, 대만 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하다/ <배트맨>, 상상을 뒤엎는 흥행 성공으로 관련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다/ 배용균 감독,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대상 받다

1990

상영금지된 영화 <파업전야>전국 6개 도시 상영 강행 - 장산곶매의 <파업전야> 상영에 형사처벌 발표, <파업전야> 상영 장소인 전남대에 경찰 당국이 상영을 막기 위해 사복경찰 12개 중대와 경찰 헬기까지 동원, 영화사상 유례없는 탄압을 가함, <장군의 아들> (임권택 감독) - 당시 한국영화 최고의 관객 동원. 영화배우 신일선(1911년생) 사망 -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여주인공. <남부군> (감독 정지영).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감독 김유진). <부활의 노래> (감독 이정국). <우묵배미의 사랑> (감독 장선우), 소련3대도시에서 한국영화주간행사 개최,

 

1991

<연극영화의 해>

다분히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에드워드의 가위손>,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 MTV의 영행력으로 <도어즈>등 새로운 영화 지형이 나타나다

1992

<걸어서 하늘까지> (감독 오병철), <하얀 전쟁> (감독 정지영) 제5회 도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수상.

 <미녀와 야수>, 만화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상 본선에 진출하다.

1993

<투캅스> (감독 강우석), <결혼 이야기> (감독 김의석), <그대 안의 블루> (감독 이현승)

 <피아노>(제인 캠피온),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아 호주 영화와 여성감독 영화의 가능성을 알리다. 펠리니 사망.

1994

<그 섬에 가고 싶다> (감독 박광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감독 박종원). <그 남자 그 여자> (감독 김의석). <두 여자 이야기> (감독 이정국).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감독 장선우)

제 47회 칸 영화제, 예상을 뒤엎고 <펄프픽션>에 황금종려상이 돌아가다/ 키에스로프스키, <레드>를 끝으로 더이상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다.

1995

<천재선언> (감독 이장호), <태백산맥> (감독 임권택), <게임의 법칙> (감독 장현수), <장미빛 인생> (감독 김홍준). ,<마누라 죽이기> (감독 강우석)

 

1996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감독 박광수).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영화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시작. <축제> (감독 임권택). <꽃잎> (감독 장선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감독 홍상수), 촬영감독 유영길 <8월의 크리스마스>를 유작으로 남김.

 

1997

<초록물고기> (감독 이창동), <불새> (감독 김영빈), <비트> 감독 김성수

<타이타닉>(제임스 카메론), 아카데미 11개부문을 수상하며 세계를 정복하다.

1998

일본문화개방선언 - <하나비> 첫 상영,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베포르 영화제 대상 수상 등 4개 영화제 석권. 한미투자협정에서 스크린쿼터 폐지문제가 쟁점화됨.

 

1999

영화 <쉬리> 개봉 - 전국 6백만 관람

장르의 연금술사 스탠리 큐브릭이 아이즈 와이드 샷을 완성하고 사망하다(미국).

2000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