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혹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 들어봤어?

장전 2023. 4. 27. 07:51

혹시,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 들어봤어? 어미 닭이 스무날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되잖아. 그런데 병아리의 부리는 너무 연약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껍질을 깨기가 힘이 들어. 그때 어미 닭이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밖에서 껍질을 쪼아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거야. 그것을 줄탁동기라 불러.

사실, 농경시대가 아닌 지금의 삶은 거의 “할까, 말까”의 노이로제 가까운 삶이야. 선택의 폭이 너무 넓기 때문이지. 밥 먹을 때조차 검색하지 않으면 밥도 굶을 판이야. 여러 개의 옵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밥보다 더 큰 문제에는 용기도 없고 비전도 없고 그렇게 우물쭈물 주저하다가 한평생 똑같은 삶을 살아. 가까운 친구의 일이 폼나 보여 한 번쯤 움찔하다가도 도로 껍질 속으로 주저앉아. 그러니 삶에 변화가 없지. 무수히 많은 망설임 속에 알을 깨고 나올 줄탁동기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뭐, 거창한 대학 교수는 아닌 것 같아. 그런 충고는 검색하면 수도 없이 나와. 유료 서비스받는 유명한 컨설턴트, 그분도 아니야. 그러면 누구야? 우선 내 부끄러운 속 마음조차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 일머리를 알아 순간의 결정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면 좋겠어.
누구나 그렇잖아. 끊임없이 되물었던 수많은 질문들, 한 번도 실행치 못하고 처박아 둔 아이디어들, 모두 세상 밖으로 꺼내기가 두려웠던 거야. 그래서 고독이 멈춰지지를 않아. 바로 그때 “지금이야” 하고 ‘탁’ 소리쳐 줄 도반(道伴)이 필요한 거지. 찾아봐. 많을 거야. 그때부터 삶이 달라진 것을 느낄 거야. 올바른 일을 겁 없이 행동하거든. 그러면 줄탁동기 솔메이트를 만난 거야.

 

사실, 궁핍이라는 희소성이 사라진 현대인의 삶은 매 순간 살불살조(殺佛殺祖)에 가까운 용기가 필요해. 인간은 궁핍을 느끼면 그것만 해소하면 되는 단순한 존재일 수 있어. 그때는 삶은 피곤해도 지향점은 뚜렷하니 고뇌의 깊이는 없었지. 하지만 희소성이 사라진 지금 매 순간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종사(宗師)마저 저버려야 하는 용기가 필요해. 그만큼 홀로 던져진 세상에서 선택은 힘든 일이 된 거야.

천자문에 이런 말 있는 거 알아? 제7구 “劍號巨闕(검호거궐), 珠稱夜光(주칭야광).”이라. 원문을 해석하면, “검은 거궐이 으뜸이요, 구슬은 야광이 첫째라.” 삼선 평어는 “검이 아무리 날카롭고 야광이 아무리 빛나도, 그대의 사랑만 하리오.” 그래. 먼 길 걸어가는 삶에서 때론 된서리 같은 냉혹함은 물론 봄볕 같은 따스함도 느낄 수 있는 솔메이트가 필요하지. 그 사람이 줄탁동기, 도반이야.

글 윤일원 『맹꽁이도 문득 깨달은 천자문해석』 저자
출처 : 공감신문(https://www.go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