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삼선 이야기] 주군을 위한 코미타투스, 그건 참으로 허망한 거야

장전 2023. 3. 12. 09:02
[삼선 이야기] 주군을 위한 코미타투스, 그건 참으로 허망한 거야
2023.3.12.
벌써 다섯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 때문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기개라면 광화문 광장에서 속 시원하게 말이나 하고 당당하게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되지, 그 무엇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고 그렇게 했을까? 참으로 허망하다. 그런 것이 아닌데.
우리의 기억에는 가물가물한 유산밖에 없다. 주군(主君)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忠)과 한번 맺은 인연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의(義)다. 그러면 주군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사한다. 그것은 유목 민족에게 DNA처럼 전해지는 코미타투스 문화다.
코미타투스는 “중앙 유라시아 문화복합체의 초기 형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회정치적-종교적 이상형으로서의 영웅적 군주와 그의 코미타투스이다. 코미타투스는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키기로 맹세한 주군의 친구들로 구성된 전투 부대이다.”라고 정의한다.
삼국지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셋 중 첫 번째, 도원결의(桃園結義), 복숭아꽃이 만발한 가운데 서당 훈장인 관우와 돼지국밥 장수인 장비, 그리고 돗자리를 짜는 유비가 단을 쌓고 의형제를 결의한다. 이들은 한솥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잔다. 군사(君師)가 된 제갈량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주군과 의형제를 관우와 장비였다. 뒷날 황제가 된 유비는 관우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오(吳)를 침공하다가 패배하고 백제성에서 죽는다. 어쩌면 촉을 망하게 한 것은 이들이 사적으로 맺은 주군-코미타투스 관계다.
몽골의 초원에서 한 사내가 하늘을 향하여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손은 축배를 들듯 흙탕물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부하의 충(忠)에 감사하면서 그들의 충(忠)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자 함께한 부하들도 흙탕물을 마시며 끝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한다. 발주나 맹약이다. 그렇게 그 사내는 네 마리의 사나운 늑대인 코빌라이, 젤메, 제베, 수베데이, 자모카를 곁에 두고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한다. 이들은 정벌한 나라마다 요구한 첫 번째 품목이 금과 은, 그리고 비단이다. 왜냐고? 충성스럽게 의리를 지키는 사나운 늑대에게 하사할 품목이기 때문이다.
루스 베니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한 책이다. 그중 가장 압권은 47 로닌(浪人) 이야기다. 아사노 영주는 기라 영주가 가르쳐준 복장을 하고 쇼군을 뵙는 영예로운 날 행사를 집행한다. 그러나 아사노는 곧 자신이 모욕당했음을 깨닫고 칼을 뽑아 기라의 이마를 벤다. 쇼군의 어전에서 칼을 뽑는 것은 충(忠)에 반하는 행위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더럽힌 기라의 이마를 베는 것은 의(義)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일은 '셋푸쿠(할복)' 밖에 없다.
그렇게 영주가 죽자 47명의 사무라이는 뿔뿔이 흩어지면서 복수를 꿈꾼다. 어떤 이는 창녀의 집에 틀어박혀 추악한 싸움질로 나날을 보내, 또 어떤 이는 길거리에서 발길질 당하고 침을 받는 수모를 당하며, 어떤 이는 거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를 창녀로 팔아넘겼고, 어떤 이는 음모가 탄로 날까 봐 누이를 죽이려고 했으며, 어떤 이는 의부를 죽였으며, 어떤 이는 기라 저택의 정보를 알기 위해 누이를 첩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주군을 위해 복수를 끝마친 후 모두 스스로 할복한다. 사사로이 사람을 죽였기에 쇼군에 대한 충(忠)을 위반한 것이고, 주군을 위해 복수를 하였기에 의(義)를 지켰지만, 이 둘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으리~’, ‘행님’, 우리 정치 역사에서 처음으로 코미타투스가 등장한 것은 YS, DJ 때부터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그들을 시작으로 친노, 비노, 진박, 비박, 친문, 비문, 친윤, 비윤, 친명, 비명 등등 모두 주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다. 이제는 당당하게 코드인사라 부른다.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것은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의리를 지키면 이들에게 줄 비단, ‘공천’이 있고, 이들을 이용하여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대통령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비난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은 때는 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제도를 만드는 이는 그들이고 그들을 뽑는 사람은 우리인데, 우리가 현명하지 못하면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