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中日記(무소유)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얼마만큼 땅이 필요한가(1886)'는 소작인 빠홈이 평생소원인 자기땅을 마련하는 과정을 소재로 인간의 탐욕과 탐심이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속의 바시키르 땅은 일 년이 걸려도 다 돌지 못하는 광활한 땅이다. 바시키르 원주민들은 순해서 1,000루블만 지불하면 하루동안 걸어서 돌아온 안 쪽의 땅을 모두 준다.
땅을 사려는 사람이 오면 촌장은 원주민들을 모아놓고 모자를 벗어서 땅값으로 받은 돈을 그 속에 넣어 땅위에 내려 놓는다.
구매자는 모자를 터치하고 출발해서 갖고 싶은 땅을 한바퀴 돌아와 모자를 터치하면 그 안의 땅을 모두 다 주는 것이다.
주인공 빠홈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멀리 걸어갔다가 돌아오고 있었다.
빠홈은 곧바로 작은 언덕을 향해 걸었지만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며 기진맥진했고, 맨발의 다리는 여기저기 베이고, 타박상을 입었으며 오금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해가 지기 전까지 제 장소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태양은 기다려주지 않고,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 내가 실수한 건 아닐까? 땅을 너무 많이 취했나?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는 앞에 있는 작은 언덕을 보고 해를 번갈아 보았다. 돌아갈 장소는 아직 먼데, 태양은 벌써 지평선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빠홈은 계속 그렇게 걸었고, 힘들었지만 계속 발걸음을 재촉하고 또 재촉했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는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반외투도, 장화도, 물병도, 모자도 벗어던지고, 몸을 지탱할 삽만 쥐고 있었다.
‘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어. 모든 걸 망쳐버렸어. 해가 질 때까지 못갈 거 같아.’ 이런 생각이 공포가 되어 숨이 더 막혀왔다. 빠홈은 달렸고, 셔츠와 바지는 땀 때문에 몸에 달라붙었고, 목이 탔다. 가슴은 대장장이의 풀무처럼 부풀어 올랐고, 심장은 망치로 내리치듯 고동쳤으며, 다리도 자기 다리 같지 않게 자꾸만 꺾였다. 빠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얼마나 달렸는데, 이제 와서 멈추면 바보라고 할 거야.’ 그는 달리고 달려 마침내 가까이 가서 바시끼르인이 찢어질 듯 그에게 소리치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들이 지르는 소리 때문에 심장은 더 타올랐다. 빠홈은 마지막 힘을 다했지만, 해는 지평선에 다다라 안갯속으로 들어가면서 더 크고, 더 빨갛고, 더 핏빛으로 변해갔다.
빠홈은 작은 언덕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자신을 재촉하는 것을 보았다. 땅에 놓인 여우 털모자도 보였고, 그 속에 있는 돈도 보였다. 촌장이 양손으로 복부를 감싸고 땅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땅은 많지만, 하나님이 그 땅에서 살 수 있게 허락해 주실까? 오, 난 파멸했구나. 저기까지 가지 못할 거야.’
빠홈은 해를 봤다. 해는 땅까지 이르러 지평선 너머로 지기 시작했고, 지평선 쪽으로 궁형을 이루며 잘려 있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몸의 무게중심을 앞으로 쏟으며 넘어지지 않게 억지로 다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빠홈은 작은 언덕에 다가갔는데, 갑자기 어두워졌다. 돌아보니 이미 태양은 지고 보이지 않았다. 빠홈은 탄식했다. ‘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는 그만두려 했지만, 바시끼르인 전체가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에서 볼 때는 태양이 진 것 같지만, 작은 언덕에서 보면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빠홈은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작은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은 아직 환했다. 빠홈은 언덕에 올라와서 모자를 봤다. 모자 앞에 촌장이 앉아서 양손을 배에 대고 킥킥대며 웃고 있었다. 빠홈은 다리에 맥이 풀리면서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손은 모자 끝에 닿았다.
“어이, 훌륭해!” 촌장이 외쳤다. “많은 땅을 차지했군!”
빠홈의 일꾼이 달려와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빠홈은 입에서 피를 쏟으며 엎드러져 죽었다. 바시끼르인은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일꾼은 삽을 들고 빠홈의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빠홈은 정확하게 머리에서 다리까지 들어갈 수 있는 2미터가량의 무덤에 묻혔다.
우리들의 인생사 이야기와 너무 흡사해서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우리들은 한 푼이라도 더 움켜지기 위해 허겁지겁, 아둥바둥, 그리고 때로는 탐욕스럽게 살아간다.
다른건 몰라도 지나친 탐욕은 거의가 비극적 종말을 가지고 온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풍족한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다가 죽음과 파멸까지 가고만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삼독(三毒)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탐욕은 탐애(貪愛) 또는 탐착(貪着)이라고도 하며, 자신의 욕망에 집착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식욕, 색욕, 재욕, 명예욕, 수면욕을 가리켜 오욕(五慾)이라고 하는데, 정도를 넘어 추구할 경우 탐욕이 된다.
이러한 욕망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완전한 마음의 자유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무소유'라고 하는데,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진주에서 지리산 중산리로 갈려면 단성면 묵상마을 겁외사 앞을 지나서 간다.
겁외사는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세운 절이고 겁외(劫外)는 문리적으로는 시간의 바깥이라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독립적인 차원으로 보면 안 되고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통합하여 하나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하면 '겁외'는 시공을 초월한 차원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에서 탐욕이니 소유니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겁외사 사랑채에 가면, 맞은 편 벽면에 누더기 가사 한벌이 팔소매를 쩍 벌린채로 남루한 지팽이를 짚고 서서, 마치 불타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이제염오(離諸染汚)의 정신을 깨우치듯, 입상진의(立象盡意)로 무소유를 설파(說破)하고 있는 모습이 웬지 안스럽고 힘들어 보인다.
"사람이란 물질에 탐닉하면 양심이 흐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물질보다 정신을 높이 여깁니다.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런 왕궁을 버리고 다 헤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면서 수도하고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교화의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삶에서 때묻지 않은 정신이 살아난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죽비로 하고 스님의 지팽이를 회초리로 하여 호사(豪奢)한 마음에 매질을 하면서 절문을 나서는데, 어디서 홋떡 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담벼락 길가 포장차에서 씨앗홋떡 한 개를 사서 입에 넣으니 그 맛이 꿈길에 만난 여인의 입술처럼 감미롭고, 주변에 늘어선 고급차들로 눈이 금새 돌아간다.
晋州 奈洞에서 池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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