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雪中梅), 꽃 바람 속 봄은 성큼
남녘에는 매화가 만개했나 봅니다. 하동 섬진강 가에서 차를 가꾸시는 동학(同學)이 자랑삼아 보내주신 홍매(紅梅)를 보니 춘흥(春興)을 이기지 못해 몇 자 적습니다.
1.
꽃이 필 무렵에 부는 바람을 화신풍(花信風)이라 하는데.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 120일 동안에 닷새에 한 번씩 모두 24번의 꽃 바람이 분다고 하여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라 부릅니다. 24번의 꽃 바람 중에 가장 먼저 부는 바람이 소한(小寒)에 부는 매화풍입니다.
봄 꽃은 잎보다 먼저 핍니다. 매화나무나 벚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핍니다.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핍니다. 겨울에 지친 사람들을 위무하느라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성급하게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매화는 꽃이 피는 순서, 춘서(春序)의 으뜸입니다.
2.
투춘체(偸春體) 라는 한시체(漢詩體)가 있습니다.
투춘(偸春)이란 매화가 봄 기운을 훔쳐서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을 피운다는 뜻입니다.
봄이 온다는 사실을 행여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먼저 알까 봐 매화는 눈 속에서 북쪽 가지에 서둘러 핍니다.
옛부터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은 추운 겨울과 같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시간을 이겨내는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선비의 꺾이지 않는 고매(高邁)한 기개(氣槪)의 표상으로 삼았습니다.
3.
매화는 별칭도 많습니다. 조매(早梅), 한매(寒梅), 동매(冬梅), 설중매(雪中梅), 청우(淸友), 청객(淸客), 매선(梅仙), 꽃 중에 가장 먼저 핀다하여 화형(花兄), 화괴(花魁)등으로도 불립니다.
이밖에 뜰에 심는 매화는 지매(地梅)라 하고, 매실(梅室)이나 서재(書齋)에 심는 매화는 분매(盆梅)라 합니다. 분매 중에서도 초록색 꽃받침에 하얀 꽃(白梅)을 피운 녹악매(綠咢梅)를 으뜸으로 칩니다. 구부러진 줄기에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긴 고매(古梅) 또는 노매(老梅)는 꽃피지 않은 나무 자체로 꽃이나 향에 진 배 없는 매력을 발산합니다. 고목에 새 가지 돋아 꽃을 피우니 회춘(回春)의 상징으로 여겨 나이가 들수록 매화를 좋아합니다.
4.
아무래도 매화의 압권은 엄혹한 겨울 한 복판에서 피어나는 설중매일 것입니다. 눈으로 하얗게 얼어붙은 세상 한 모퉁이에서 숨은 듯 드문드문 피어나는 매화를 보고 사람들은 새 봄의 희망을 발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宋나라 문인인 왕안석(王安石, 1021-1068)이 눈 속에 핀 매화를 보고 읊은 “한매(寒梅)” 를 소개 합니다.
墻角數枝梅 (장각수지매) 담장 모퉁이에 매화꽃 몇 가지
凌寒獨自開 (능한독자개) 추위를 깔보고 혼자 피었네
遙知不是雪 [요지불시설] 아득하나 눈이 아님을 알겠으니
爲有暗香來 [위유암향래] 그윽한 꽃향기 불어오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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