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렀던 흔적들

[삼선 이야기] 배를 타고 한 지점만 바라보면 고개가 부러져

장전 2023. 2. 17. 19:41
 
[삼선 이야기] 배를 타고 한 지점만 바라보면 고개가 부러져
2023.2.17.
 
역사는 흘러간다고 표현한다. 시대의 흐름이 빠른 지금은 가히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에 역사를 비유하는 것도 게으르다. 뛰어간다는 표현도 모자랄 만큼 날아간다.
아무리 양보해도 우리나라는 덜덜거리는 포니 차로 운전하는 정치권과 전투기를 몰고 출근하는 기업인과 드론을 타고 잽싸게 움직이는 벤처와 멍청하게 정치권에 싸움을 붙이고 즐기는 대다수 국민이 어우러져 있다. 배를 타면서 풍경이 좋다고 한군데만 바라보다 고개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구경한다.
나는 여전히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집단은 소수의 엘리트”라는 가설을 버리지 않는다. 편협된 시각이라 비난받을지 몰라도 내 가설을 기각할 만큼 많은 자료는 내게 없다. 군중이 모여 정권을 교체하였다 하여 군중이 더 좋은 방향을 나아가지는 않는다. 어떤 조직이 투표를 하여 집행부를 바꾸었다하여 조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무릇 조직을 맡은 리더는 조직의 지향하는 선한 목적으로 권력을 사용하면 조직은 발전하고 그 반대로 개인의 권력을 사유화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면 그 조직은 망한다. 국가든 정당이든 노조든 가족이든 동창회든 무릇 무리가 구성되어 있는 집단은 다 똑같다.
군중의 힘은 거대하지만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만들기 위해서 창끝이 향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군중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정하고 조직의 전략적 사고를 하는 우두머리가 결정한다. 군중은 이들을 교체할 수 있는 힘은 있지만 그들에게 지혜를 주지는 못한다.
나는 민주화의 빛과 그림자를 잘 안다. 빛이 찬란하면 할수록 그림자도 짙다.
“누구나 합의만 하면 진리가 되는 것” 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면 옳다고 여기는 것” 이것도 민주화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사회학적 진리가 왜 필요하고 과학적 진리가 왜 필요한가? 광화문 광장에 모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O, X 하면 될 것 아닌가?
이제는 과학적 진리가 아닌 것이 없다. 지진에도 건물이 붕괴하지 않은 것도 과학적 진리다. 난방비가 오르는 것은 원가와 인건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에도 사회학적 진리가 있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사회학자들이 가설을 만들고 실증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 진리가 우선이다. 진리의 자리에 신념이 들어서면 그 사회는 퇴락한다. 난방비 폭탄이라고 선동질하고 여론이 나쁘다고 하여 또 난방비를 감해주면 누군가는 감면해준 돈을 내야 한다. 이것은 경제학 진리다. 국회가 떼를 써서 긁을 때 거기에 자신의 신념이 맞는다고 환호할 때, 그 순간 내 오른쪽 호주머니에 검은 손이 몰래 들어와 돈을 가져가는 것에도 박수를 쳐야만 오로지게 신념이 충실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 박수를 칠 때와 돈을 내 줄 때 생각이 다르다면 위선자다.
우리가 민주화의 다양성을 외칠 때 “이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이야”라고 말할 때의 가르마는 오직 ‘진리’ 아닌 ‘신념’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신념이란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옳게 되는 그 무엇이다. 신념을 갖고 전쟁을 하는 시대는 중세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만 여전히 고개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한쪽만 바라본다.
 
*사진은 동해 어달 해변 일출(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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