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기생충’을 두고 정치병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인다. 이게 좌파 영화다, 우파 영화다 하면서. 어떤 화제작이 등장하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논의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나 역시 정치병자로서 이런 논의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편이다. 영화처럼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떠드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정치철학적인 시각에서 봉준호 감독은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좌파적 세계관을 펼쳐온 영화인이다보니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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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생충’은 좌파적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의 테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 구조’다. 딱히 우아하지도, 은근하지도 않게 그 주제의식에 대해 외치고 있다. 하류층들은 세상의 온갖 더러움이 떠내려오는 낮은 곳에서 살아간다. 상류층들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텐트를 치고 쏟아지는 폭우를 유희로 즐길 때, 그 폭우는 하류층들의 터전을 범람하고, 일상을 파괴하는 고통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동네로 흘러내려가며 이를 따라 도망치듯 터전으로 돌아가는 ‘기생충’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건 너무 뻔해서 보고 있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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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네의 경사가 사회 계층의 높낮이를 보여줬다면, 집은 사회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집 주인, 즉 부자들을 위해 모든 것들이 작동한다. 중산층은 부자들을 위해서 노동을 제공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하류층은 부자들의 음식을 몰래 훔쳐먹으며 살아간다. 집 주인을 위해 만들어진 그 룰에 따라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룰의 틈새에 숨어서 작중에서 묘사된 ‘바퀴벌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 구조는 집 주인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다. 집은 그대로 있다. 구조도 그대로 있다. 모든 걸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도, 이들을 위해 일하는 하인도, 이들로부터 숨어살며 기생하는 기생충들도. 정원도, 거실도, 주방도, 그리고 지하실도. 살아가는 사람이 바뀌어도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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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렇게 세계를 권력, 계층 그리고 사회구조로 해석하는 시각을 바로 ‘좌파적 세계관’이라고 한다. 맑스 같은 인간들은 이 시스템으로부터 억압받는 이들이 단결하여 시스템 자체를 엎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이런 세계관을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 이런 시각은 ‘개인들의 존엄’을 철저히 부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집단과 계급간의 갈등으로 해석하고 이를 부추긴다. 좌파적 세계관에서 집단을 극복하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시스템 안에서만 의미를 갖추는 ‘부품’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모든 개개인이 사회에 종속되어 살아간다고 본다. 그래서 ‘기생충’에서는 하층민 가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 몸에서 나는 지하실의, 하류인생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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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말 그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인간이란 존재는, ‘개인’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시스템의 부품으로서 종속되어 살아가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판단하고, 극복하고, 전진한다. 반지하방에서 살아가던 이가 정원이 있는 집의 주인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부잣집을 물려받은 이가 반지하방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는게 우리의 삶들이다. 지울 수 없는 영원한 반지하방 ‘냄새’ 따위는 없다는 거다. 나는 개척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삶들이 아름답다고 믿고, 우리 모두에게는 전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계급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내게 주어진 계급과 계층을 벗어날 수 없고, 평생을 주어진 이 신분에 따라 살아가야한다는 시각. ‘개인’이 아니라 같은 ‘집단’을 위해 다른 집단들을 견제하고, 구조에 투쟁해야 하며, 혁명을 꿈꿔야 한다는 시각. 나는 이런 시선이 지극히 비인간적이며, 패배주의적이고, 우울하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틀린 생각’이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을 발전시켜왔고, 이를 통해 위대한 문명을 이루며, 이에 따라 모두의 삶의 질을 꾸준하게 전진해온 인류 발전의 지난 역사가 이를 증명하니까. 세계는 정해진 총합이 있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한정된 행복을 집단과 집단이 서로 투쟁하고 빼앗고 빼앗기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거다. 개인들의 삶의 에너지가 모여 전진하고, 확장되고, 개선되는 게 바로 이 세계라는 개척지다. 우리 개인 하나 하나가 곧 세계다. 그래서 모든 개인은 존엄하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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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런데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좌파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런 개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모두가 그저 시스템 속 작은 부품이며 구조의 일부일 뿐이다. 게다가 인간의 심성, 인성조차도 이런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작중 집 안주인이 착하다고 칭찬하는 장면에서는 자본이 만든 여유 덕분이라며, 그 위치에 있으면 누구나 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의 유무를 떠나 누구든 추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선의 가치조차도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사치품 취급을 하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이 구조 자체를 바꾸거나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테마는 늘 이거였다. ‘혁명과 해방’.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줬던 작품이 영화 ‘설국열차’였다. 직선 구조로 되어 있는 열차. 하류층이 살아가는 꼬리칸에서 출발한 크리스 에반스는 영화 내내 혁명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상류층으로. 앞 열차로. 하지만 결론이 어땠나? 애당초 이 열차라는 사회 구조의 모순을 깨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열차는 곧 제로섬게임이니까. 맨 앞 열차에 도착한 크리스 에반스는 깨닫는다. 모두가 타고 있는 기차 자체가 문제라는 걸. 작중 송강호는 계속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이 열차에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냥 나가면 되는데. 그래서 크리스 에반스와 송강호는 결국 열차를 폭파시킨다. 그렇게 문을 열고, 아이들이, 새 희망들이 열차라는 시스템 밖으로 탈출한다. 혁명과 해방이다. 이 장면을 보고 자못 유치한 그 설정에 실소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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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좌파적 세계관’에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거다. 자기 자신에게 내재된 힘과, 존엄과, 위대함을 자각하지 못하는 거다. 자기 자신을 어딘가에, 어느 집단에, 어느 구조에 종속시키려 하는 거고, 이를 통해 자신을 낮추며, 가능성을 제한하고, 스스로를 억압한다. 자존감의 문제라는 생각까지 드는 부분이다. 왜 자신을 지하실에, 열차의 꼬리칸에 가두려 하는 걸까. 진정한 ‘혁명과 해방’은 집을 허무는 것도, 열차를 폭파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 편협한 세계관에서 탈출하는 거다. 그리고 이는 집단의 투쟁 같은 걸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신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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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물론 나는 영화에 조예가 깊지 않다. 이 글은 잘 모르면서 재미삼아 떠든 거일 뿐이다. 개인적인 평이지만, 이런 한 물 지난 좌파적 세계관을 담은 영화보다는, 2000년대 최신유행(?)인 PC라는 개념의 그 허례허식을 PC에 서툰 늙은이의 ‘공동체적 선의’라는 본질로 꼬집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근 영화가 더 세련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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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 몇 달 전 글을 다시 올립니다.
(글출처: 페친 우원재 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
[이글에 대한 저의 댓글입니다]
예.저도 우원재님과 같은 생각으로
제가 보고있는 넷플릭스에서 무료로 공개할때까지 안보려고 합니다.설국열차는 무료라 예전에 집사람과 함께보았지만 옥자와 더불어 봉준호 감독 좌익적 세계관 작품 다시 살펴보려하는데
참고보기 힘들긴 마찬가지입니다.
세익스피어도 엘리자베스 시대 왕.귀족 등 기득권 세력을 풍자.조롱하였고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프랑스 에밀졸라 사실주의 소설 등 작가.예술가들은 보통 본질적으로 진보 좌파적 성향입니다.
봉준호의 정치.경제.세계관 육성 인터뷰 참고바랍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45110888974162&id=100004257968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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