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사윤수
코스모스가 살아온 방식은
한결같이 흔들렸다는 거다
이 바람결에 쏠리고 저 노을 쪽으로 기울며
제 반경을 끊임없이 넘어가던 그 범람이
코스모스의 모습이 아니던가
가만히 서 있을 땐 속으로 흔들리는 꽃
몸이 그토록 가늘고 긴 것은
춤을 추라고 생겨난 것이다
가늘고 길수록 춤은 위태하니
위태해야 더욱 춤인 것을
어머니께서 나를 지으실 때
꽃대 무너진 아득한 어둠 속에서
그 꽃잎 한 움큼 뜯어 삼켰던 것일까
내 몸의 성분은 수많은 코스모스의 퇴적물 같다
눈을 감아도 흔들리고
국밥집 앞에서 개업식 공연하는
각설이 타령만 들어도 춤추고 싶다
한복 입고 환영식에 나온 평양아가씨들 같은
코스모스는 뜨겁게 흔들리다 죽은 것들의 환생이다
흔들리며 사는 것들의 뒤통수에서 수군거리지 말자
가을 국도(國道)의 평화는 온통
코스모스가 이루어 놓은 것이니
- 시집 『파온』 (시산맥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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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들기 전에 펼쳐지는 코스모스의 향연이 절정이다. 요즘은 외래종 코스모스가 지천이라 계절과 상관없이 피고지지만, 본디 국화과인 코스모스가 이 계절에 피는 이유는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때에 개화하는 속성의 단일식물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우리말인 ‘살사리꽃’은 가을바람 곁에 살살 흔들리는 연약한 몸에서 연유되었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그 여린 품성으로 인해 속절없이 가는 여인네를 떠올리는데, 성숙한 여인보다는 소녀의 수줍음이 느껴진다. 어느 시인은 길가의 무리 진 코스모스 앞에 서면 합창단의 지휘자가 된듯하다고 했는데, 그 코스모스에서 ‘한복 입고 환영식에 나온 평양아가씨들’을 연상해낸 것은 절묘한 상상력이다.
달빛이 없다면 파도는 치지 않듯이, 꽃이 흔들리는 것도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늘고 긴 몸매를 가진 코스모스는 바람 없이도 한결같이 흔들릴 것만 같다. 태생적으로 ‘속으로 흔들리는 꽃’이고 춤의 기원이기 때문이리라. 시인이 말하는 ‘내 몸의 성분’도 ‘수많은 코스모스의 퇴적물’ 같은 것이며, 그것은 가문의 내력이리라. 그것은 얼핏 가느리고 허약해보지만 결코 쉽사리 꺾이지 않는다. 그 흔들림은 단순반복동작이 아니라 속으로 꽉 들어찬 정열적인 춤이고, 동시에 중심잡기였던 것이다. 그 중심은 가히 우주를 떠받칠만한 조화이며 균형임을 간파할 수 있겠다. 신이 이 투명한 작은 우주를 처음 꽃으로 빚은 이유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는 뜨겁게 흔들리다 죽은 것들의 환생이다’ 촌티 난다며 쑥덕거리지는 자 누구인가. ‘흔들리며 사는 것들의 뒤통수에서 수군거리지 말자’ 저 팔짝팔짝 뛰면서 무언가를 흔드는 것은 길들여진 웅변이 아니라 내재적 열망 가득한 춤이었던 것이다. 그 열망이 무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춤은 몸으로 말하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일견 유치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 유희를 너무나 오래 잊고 살았다. 잊어버리고도 잘 살아가는 듯싶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간장종지에 담을 만큼의 감성, ‘평화통일’에 대한 민족적인 열망이 남아있다면 서정적 파장으로 하늘거리는 저 코스모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눈썹을 간질이는 가벼운 속삭임이다가, 돌아서며 연신 부딪치는 물결 같은 그리움이기도 한 이 코스모스는 끊어진 철길 옆에서, 임진강의 강둑에서 우리들의 연애를 부추기며 서툴렀던 연애의 추억을 야금야금 파먹는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스러지면 이제 곧장 단풍으로 물들 것이다. 눈물이니 통곡이니 청승은 말고 감상의 물기만 살짝 남기고서 주말엔 길 양쪽으로 팔랑거리는 코스모스 꽃길을 달리고 싶다. 뒤에서 빵빵거리거나 말거나 시속 40킬로쯤 정숙주행으로 그들의 사열을 받으며 통과하고 싶다. 따까리 없는 잘 빠진 차가 아니어도 좋다. 이 땅 평화의 국도라면 중고 아반떼로 어디인들 가지 못하랴.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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