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故鄕 長華里와 迎瑞堂의 빛

전남 담양군의 연혁 및 옛이름 / http://cafe.naver.com/lwpg/348

장전 2016. 10. 23. 00:09



전남 담양군의 연혁 및 옛이름|자유로운글
전체공개2007.09.14.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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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의 연혁 및 옛 땅이름
&담양군의 연혁
지금의 담양군은 삼국시대 백쩨 땅으로
) 이를 '추자흘'로 읽을 수도 있다. '혜(兮)'의 고음(古音)이 '흘'이기 때문이다.
추자혜군(楸子兮郡)이었는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신라 경덕왕이
) 일부 자료에는 추성군(秋城郡)으로 나온다.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쳤다.
고려 제6대 성종 14년(995)에 담주(潭州)가 되어 도단련사(都團練使)로 하였다가 얼마 후 담양(潭陽)으로 고쳐 나주(羅州)에 붙였
다.
고려 제19대 명종 2년(1172) 감무(監務)를 두었고, 고려 제34대 공양왕 3년(1391)에
) 율원현은 지금의 금성면 일대이다.
율원현(栗原縣)을 겸임하였다.
조선 태조 4년(1395)에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본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조선 제2대 정종 원년 (1399)에 중궁 김
씨의 어머니 본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하였다. 조선 제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되었다.
조선 제21대 영조 4년(1728)에 현(縣)으로 강등하였다가, 같은 14년(1738)에 군(郡)으로 복구되었고, 같은 38년(1762)에 또 현으
로 강등하였다가 같은 48년(1772)에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 제26대 고종 32년(1895)에 남원부(南原府) 관할의 군이 되어, 동변(東邊), 무이동(無伊洞), 정석(貞石), 답곡(畓穀), 고지산
(高之山), 서변(西邊), 목산(木山), 산막곡(山幕谷), 마입곡(馬入谷), 대곡(大谷), 갈마곡(葛馬谷), 우치(牛峙), 기곡(基谷), 용
천(龍泉), 천동(泉洞)의 15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때인
) 19세기 말, 일본은 대륙 침략의 길잡이와 토지 수탈을 목적으로 한국의 지형도를 간행코자 본격적인 땅이름 조사에 착수했다.
이 때 모아진 땅이름은 약 180만 개로서 상당수가 일본 육군 참모본부 간행의 지형도에 기입되었다. 1899년, 육군 참모본부 간행
의 군용 지형도(축척 5만분의 1)는 300 장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6만 개 마을 이름(법정지명)을 반 정도로 줄여서 이
지도에 표기하였다. 그러나, 이 때의 땅이름 조사·정리는 불충분했고, 더우기 일본 사람들의 사용에 편리한 땅이름으로 변질된
것이 상당히 많았으며, 또 지형도에는 일본글인 가다가나를 병기하여 여기에서 파생된 혼란이 심했다. 오늘날 지도 등에 나타난
땅이름들이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와 서로 다른 것이 많은 것은 지형도 간행 때 일본군이 저질러 놓은 결과
이다.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는 많은 땅이름들이 없어지거나 변질되었는데, 이는 행정구역을 크게 줄임으로써 일어난 현
상이었다. 즉, 군(郡)이 377개에서 220개로 줄었고, 면은 1,338개에서 2,521개로, 동·리(洞里)는 62,532개에서 28,366개로 줄게
되었다.
1914년 3월 1일, 창평군(昌平群) 일원과 장성군(長城郡)의 갑신면(甲申面), 광산군(光山郡)의 갈전면(葛田面), 대치면(大峙面)을
편입하였다.
1914년 4월 1일 군면(郡面) 폐합에 따라 창평군(昌平郡)의 군내면(郡內面), 가면(加面), 서면(西面), 고현내면(古縣內面), 북면(
北面), 내남면(內南面), 외남면(外南面), 대면(大面), 덕면(德面), 장북면(長北面), 장남면(長男面), 동서면(東西面)의 12개 면과
광주군(光州郡)의 갈전면(葛田面), 대치면(大峙面)의 2개 면과 장성군의 갑향면(甲鄕面) 및 북하면(北下面)의 적암리(赤岩里), 대
정리(大井里) 일부와,
) 동복군(同福郡)은 일제 때 폐현이 되면서 면으로 강등, 지금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동복면 되었다. 본래 백제의 두부지현인데,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동복으로 고쳐서 곡성군의 딸린 현이 되고, 고려 초에 보성에 붙였다가, 중 염조의 고향이라 하여 감무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조 3년(13 94)에 화순 감무를 겸하다가, 제3대 태종 5년(1405)에 화순현을 합하여 복순이라 하다가, 같은 16
년(1416)에 복구되어 예에 따라 현감이 되고, 제17대 효종 6년(1655)에 화재로 전패가 탔으므로 화순현에 붙이었다가, 제18대 현
종 5년(16 64)에 복구되고, 제26대 고종 32년(1895)에 군이 되어, 읍내, 내남, 외남, 내서, 외서, 내북, 외북의 7개 면을 관할하
였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화순군에 편입되어, 현재 동복, 이서, 북면, 남면의 4개 면의 지역이 된다.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의 반곡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 구암, 월산, 금성, 용면, 무면, 정면, 평창, 고서, 남면
, 대덕, 수북, 대전의 13면, 139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2년 4월 1일, 13면을 12면으로 1면을 줄였다. 무면(武面)과 정면(貞面)을 합하여 무정면(武貞面)으로 하고, 구암면(九岩面)을
봉산면(鳳山면)으로 고쳐서 12면으로 하였다.
1943년 9월 1일,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담양읍(潭陽邑), 고서면(古西面), 금성면(金城面), 남면(南面), 대덕면(大德面), 대전
면(大田面), 무정면(武貞面), 봉산면(鳳山面), 수북면(水北面), 용면(龍面), 월산면(月山面), 창평면(昌平面) 등 1읍 11면이 되었
다.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담양군(潭陽郡)의 옛 땅이름
·추자혜(秋子兮)
이 이름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갓골'로 유추되고 있다. '추(秋)'는 지금은 그 훈이 '가을'이지만, 옛말로는 '가슬' 또는 '갓
'이 된다. '갓'은 '가장자리(邊)'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그 뒤에 따르는 '자(子)'는 특별한 의미는 없으며, 다만 앞말과 뒷
말을 이어 주는, 지금의 'ㅅ(사이시옷)' 구실을 하는 정도로 보아도 될 것이다. '혜(兮)'는 '흘'로도 읽어 왔는데, 이것은 옛 땅
이름에서 '고을'의 의미인 '골'을 표기하는 데 대개 쓰인다. 따라서, '추자혜'는 거슬러 올라가면 '가시골'과 근사한 음으로 불려
왔던 것이 한자로 그와 같이 표기된 것으로 보이며, 이 이름은 '가장자리 고을'의 뜻인 '갓골'의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아
마 옆의 어느 고을(예를 들면, 지금의 광주시나 나주시)로 볼 때 그 곳과 인접해 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나왔을 가능성이 짙
다.
'추자혜'에 대한 또 다른 어원적 견해에 '갓잣골'이 있다.
) 옛말의 '갓(갇)'은 개음절화(開音節化)하여 '갈'로도 그 음이 바뀌었는데, 이에 따라 '갈암(가람)', '갈대', '갈풀'과 같은 낱
말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가람'은 '강(江)'의 옛말이다.
'갓(갇)'은 원래 '물(水)'의 뜻을 가진 옛말이고, '잣(잗)'은 '산(山)'의 뜻을 가진 옛말이므로 이 '갓잣골'을 '물가의 산'이란
의미로 보기도 한다.
'추자혜'를 '갓잣골'로 보는 것은 '추(秋)'를 '갓'으로, '혜(흘)'를 '골'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갓(秋)+자(子)+골(兮)=갓잣골(秋子兮)
·추성(秋城-秋成)
담양의 고려 때 이름이
) 이 '추성(秋成)'이 '秋城)'으로 기록한 문헌도 있다.
추성(秋成)이다. '추자혜'를 달리 표기한 것으로, 이 역시 '갓골'의 의미를 갖는다. '고서현일운추자혜(皐西縣一云秋子兮)'라는
기록도 보이는데, 여기서의 '고서(古西)'도 '곳'의 음차(音借)로 보이므로 이 역시 '갓'일 것이다. 지금의 이름 '담양(潭陽)'의
'담(潭)'도 옛날식 훈으로는 '갓'이다.
·담양(潭陽)
'갓골'의 한자식 표기인 '추자헤'나 '추성'의 뜻을 이어받은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글자대로 풀면 '담양(潭陽)'이 '못골'처럼 되
어 큰 담수호가 있어 이 이름이 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추성'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름임을 볼 때 여기서의 '담(潭)' 역시
'갓'의 표기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담양'의 '양(陽)'은 다른 고을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고을'의 의미를 지닌다.
*담양의 산천
& 산과 등성이
·고비산(高飛山)
금성면 봉황리와 무정면 봉안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462m이다. 산 남쪽으로 오례천(五禮川)이 흐른다.산 남서쪽에 무정(武
貞) 농공단지가 있다.
·광대바우산
담양군 월산면 광암리와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20미터이다. 광대가 놀았다고 전해지는 넓은
바위가 있다. 산 남쪽에 광대고개가 있다.
·광덕산(廣德山)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와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산 아래에 문암제라는 못이 있다.
·괘일산(掛日山)
담양군 무정면 서흥리와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산 서쪽에 정석제(貞石堤)가 있다.
·국수봉(國守峯)
창평면 외동리와 대덕면 입석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18m이다.이 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산줄기가 이루면서 창평면과
대덕면의 경계를 이룬다.
·금산(錦山)
무정면 동산리와 대덕면 금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499m이다. 이 산을 중신으로 길게 산줄기를 이루면서 무정면과 대덕면
의 경계를 이룬다.
·기우산(騎牛山)
대덕면 갈전리와 곡성군 오산면 종양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서족으로 상갈, 하갈의 마을이 있다.
·노가리재
창평면 유천리와 창평면 외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441m이다. 산줄기가 길게 느러져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가리'는 갈'
에 바탕을 둔 이름으로, 땅이름에서 대개 산을 뜻한다.
·덕재
무정면 동산리와 대덕면 금산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367m이다. 근처의 금산(錦山)과 한 줄기를 이루면서 무정면과 대덕면의
경계를 이룬다.
·두구봉
수북면 궁산리와 월산면 용흥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35m이다. 산 서쪽의 용구산(龍龜山)과 한 줄기를 이루면서 월산면과
수북면의 경계를 이룬다.
·매봉
창평면 광덕리와 대덕면 비차리 경계에 있는 작은 산이다. 전국에는 '매봉' 또는 매봉산이란 이름의 산이 무척 많은데,
) '매봉' 또는 '매봉산'이란 산이름은 엄청나게 많다. 이것의 한자식 표기인 '응봉(鷹峰)', '응봉산(鷹峰山)'까지 합하면 아마 우
리 산이름 중에 가장 많은 산이름일 것이다. 서울에만도 이런 이름의 산이 10여 곳에나 있다. 문헌에는 대개 '매가 날아가는 형국
의 산' 또는 '매를 놓아 사냥을 하던 산'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매'는 우리말의 '산(山)'이란 뜻의 뫼일 가
능성이 아주 높다.
'매'는 단순히 '산'의 의미를 갖는 수가 많다.
·삼인산(三人山)
대전면 행성리와 수북면 오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64m이다. 산 북쪽에 삼인동(三人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수양재
무정면 덕곡리와 금성면 봉황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서쪽에 고비산(高飛山)이 있다.
·연화봉(蓮花峰)
남면 인암리와 화순군 북면 외예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420m이다.산 남쪽으로 동복호(同福湖)가 있다.
·영천산(靈泉山)
무정면 오봉리와 창평면 광덕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이 양옆으로 날개를 펴 줄기를 만들면서 무정면과 창평면의 경계를 이룬다
.
·오장산(五將山)
용면 통천리와 월산면 오성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 서쪽에 오성이라는 마을이 있다.
· 용추봉(龍湫峰)
용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 523m이다. 이 산에
) 한글학회 간 <한국지명총람>에는 이 이름이 '가막골'로 나온다.
가마골이라는 유명한 골짜기가 있다. 분통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4km 정도나 된다.
더 깊이 알기
-가마골
깊은 계곡과 폭포,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 가마골의 용소가 영산강의 발원지이다.
1986년부터 관광지로 지정-개발되어 900명이 동시에 야영할 수 있는 야영장과 관광객을 위한 각종 볼거리, 편의시설 등이 있다.
이 가마골에는 유명한
) 옛날 담양 고을에 풍류를 좋아하는 부사가 부임하였다. 그 부사는 가마골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경치를 구경하고자 관속들과 함
께 골짜기 아래에 머물렀는데, 그 날 밤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 다음날 자기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사
라졌다. 그러나 부사는 신령의 말을 저버리고 이튿날 예정대로 가마골로 행차했다. 어느 못에 이르러 그 비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 갑자기 그 못의 물이 부글부글 소용돌이치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룡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황룡은 다
오르지 못하고 그 부근 계곡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를 본 부사도 기절하여 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사람들은
용이 솟은 못을 '용소'라고 하고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을 '피잿골'이라 했다고 한다.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하여
) 가마골은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다. 1998년 용추사 주변에서 임도 개발 공사를 하다가 가마
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명의 유래가 사실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라고 하나, 가마골이란 이름은 대개 '감(大)+골'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가마골"이라 불렀다고 하나, 단순히 '큰 골짜기'의 의미인 듯하다. 이 골짜기는 6.25 격전지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던
곳이다. 1950년 가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전남-북 주둔 북한군 유격대 패잔병들이 이 곳에 집결하여 은거하면서 약 5년 동
안 유격전을 펼쳤다. 당시 유격대들은 이 곳 가마골에 노령지구
) 당시의 사령관은 장성군 북하면 출신의 김병억이었다.
사령부를 세우고 3개 병단이 주둔하면서 낮이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다. 전투가
장기화됨에 따라 병기 시설인 탄약 제조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 및 정미소까지 설치해 놓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
다가 육군 8사단, 11사단과 전남 도경 합동작전에 의해 1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1955년 3월 완전히 섬멸되었다. 지금은 관광지
로 개발되어 그 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나 가끔 탄피, 수류탄, 무기 제조에 쓰인 야철, 화덕 등이 발견되어 그 날의 참화를
말하여 주고 있고, 당시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사령관 계곡을 등산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월봉산(月峯山)
대덕면 운암리와 창평면 용수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북쪽의 단산 남쪽의 국수봉과 길게 남북으로 한 줄기를 이루면서 창평면과
대덕면의 경계를 이룬다.
·장원봉(壯元峯)
고서면 향리와 남면 학선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 아래쪽에 광주호(光州湖)가 자리잡고 있다.
·추월산(秋月山)
전남 5대 명산중의 하나로,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와 순창군 복흥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높이 721미터이다. 산마루에 추월바우
가 있다.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14km쯤 떨어져 있다.
& 큰 내와 호수
·광주호(光州湖)
담양군 남면과 고서면, 광주시 북구 경계에 있는 큰 인공 호수로, 고서면에 설치한 광주댐에 의해 생겼다.
더 깊이 알기
-광주호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 계획의 제1단계 사업인 4개 댐(장성댐, 담양댐, 나주댐, 광주댐)의 건설 사업으로 만들어진 호수이다. 전남
의 기존 저수지 가운데 가장 큰 영광의 불갑저수지보다도
) 만수 면적에 있어서 불갑저수지보다 23정보가 더 넓은 1백86정보에 달하고 있으며, 광주시내에서 제일 큰 석곡저수지의 9배, 제
1수원지의 150배로서 광주 근교에서는 가장 큰 인공호수이다.
넓다. 영산강유역 개발조사 당시에는 이 댐이 계획되지 않았으나 무등산 원효계곡의 물과 장불천을 합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
해 1970년에 광주호의 건설계획을 확정하게 되었다. 이 호수는 광주의 석곡, 지산 및 담양군 무정면 관내 일대의 관개용수로 쓰이
고 있으며, 몽리 면적은 3,155ha에 달한다. 담양군 남면 분향리의 분향교를 중심으로 용대산과 그 건너편을 막았는데, 댐의 제방
높이는 25m, 길이 505m로 만수 면적이 186정보, 홍수시의 수면은 208정보에 달한다. 공사비는 7억 9천만 원으로 1974년에 착공하
여 1976년에 완공되었다. 광주에서 20~30분이 걸리며 무등산 관광도로쪽의 배재의 갈림길에서 3km의 거리에 있다. 따라서 이 호수
는 광주 근교의 관광지로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는데, 여기서 원효계곡의 풍 암정쪽으로 무등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충효
동으로 통하는 금곡동에는 사적 제141호인 충효동 도요지가 있다. 마을 앞 50m 지점까지 물이 넘실거리게 되어 한결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이와 아울러
) '충장공(忠壯公)'은 광주 출신 임진왜란 의병 김덕령 장군의 시호이다. 광중시의 충장로(忠壯路)는 그의 시호를 따 붙인 것이다
.
김충장공의 탄생지를 비롯한 광주의 충효동 일대에는 많은 유적과 전설이 얽힌 명소들이 산재해 있다. 충효동 건너편의 지곡동은
그 유명한 성산별곡의 식영정과 부용정, 환벽당 등을 비롯한 유서깊은 정자들이 있다. 그 밖에도 고분군과 송강 장서각이 있으며
송강이 어렸을 때, 이 지실마을과 연을 맺었다는 용소와 조대 또한 무등산의 명소로서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극락강(極樂江)
담양군 용천산 용연에서 발원하여 광주를 지나 나주의 영산강과 만난다. 본래 극락강의 옛 이름은 담양의 원율천과 광주의 칠천으
로 각각 불렸으나, 일제 이후
) 문헌에 극락암(암자), 극락원(출장 다니는 관리의 숙소), 극락시(지금의 시장)가 강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극락강으로 통합 지칭되고 있다. 조선 중기 중앙 정계에서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언거(1503-1584)가 풍영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당대의 유명한 학자인 이황, 기대승, 김인후 등을 초청, 무등산의 위용과 극락강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였다고 한다. 한편, 강
유역 들에서는
) 강 유역에 극락강역이 설치되면서 극락강변에서 재배된 쥐꼬리무우가 역을 통해 서울로 운송되었고 '극락강 무우'맛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무우를 많이 재배한다.
·담양호(潭陽湖)
금성천의 상류를 막아 만든, 담양군 용면에 있는 큰 인공 호수이다. 담양 군내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영산강 유역 개발 4개 댐
가운데 장성, 나주 댐에 이어 세번째로 완성된 호수이다. 1976년 10월 14일 준공된 이 호수로 인해 용면의 청흥리와 산성리가 물
속으로 들어가서 그 남은 지역이 용연리와 도림리로 각각 편입되었다.
더 깊이 알기
-용을 불러들인 용면의 큰 호수 담양호
용면(龍面)읜 인공 호수 담양호는 그 면이름처럼 용들이 불러들였다고 만하고들 있다. 면이름에 용(龍)자가 들어갔으니, 용못이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용면에 호수가 생긴 것은 1976년이다. 높이 46m, 길이 316m의 댐을 막아 그 남쪽 금성면과 월산면의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저수량은 6천만 톤. 이 물은 담양군의 많은 들판을 적시면서 영산강으로 들어간다. 담양군에서 가장 큰 인
공 호수이기에 이름도 '담양호'이다.
담양호의 이름을 낳은 담양(潭陽).
역시 군이름도 못(潭)을 불러들이기에 족했다.
담양호 주변에는 호수가 들어서기 전부터 많은 용들이 있었다. 용(龍)자 지명들이 많이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우선 이 호수의 북쪽부터 더듬어 보자.
담양호 북쪽에는 용추봉(龍湫峰)이 있고, 그 남쪽에는
) 용추사는 신라 법흥왕 12년(525)에 창건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그 후 다시 세웠다. 그러나, 1949년 1월 25일 전략상 아
군이 불태워 방치했던 것을 1961년 3월 말에 다시 세웠다.
용추사(龍湫寺)라는 절이 있다. 절 밑에 용추(龍湫)라는 마을이 있고, 이 마을에서 전북 순창으로 넘어가는 '용추고개'도 있다.
또, 용추 근처에 용평(龍坪)이란 마을도 있는가 하면 그 앞에 '용평들'이란 들도 있다.
이 마을들이 속한 용연리(龍淵里)도 용(龍)지명이다. '용연(龍淵)'은 '용소'라는 마을이 있어서 나온 것인데, 이 마을 근처엔 용
이 살다 폭포를 따라 승천했다고 하는 용소(龍沼)가 셋이나 있어 그 크기에 따라 '큰용소', '작은용소' 등으로 불렀다. 용못이 있
는 골짜기는 '용못골'(용목골)이라 했다.
용연리의 서쪽도 역시 용(龍)자가 들어간 용치리(龍峙里)라는 법정지명이다.
용연리의 남쪽 월계리에는 복룡(伏龍)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뒷산 모양이 엎드린 용처럼 생겨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고 있
다.
담양호 남쪽의 추성리에는 청룡등(靑龍嶝)이라는 등성이도 있다.
용면은 이처럼 그 이름처럼 많은 용들을 거느렸다. 그래서, 그 이름 용면(龍面)이 결코 부끄럽지가 않다.
이 용면은 조선시대엔
) 일제시대인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천면(泉面)의 일부를 병합해 10개리로 개편 관할하였지만, 그 이전까지는 32개리를
관할하는 큰 면이었다.
용천동면(龍泉洞面)이라 했다. 용못(용연.龍淵)이 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은 것이지만, 지금과 같이 큰 호수가 들어서기 전에는
작은 웅덩이에 불과했다.
담양군에는 이 담양호 외에도 담양읍의
) 관방제는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북안에 있는 제방이다. 이 제방은 인조 26년(1648)부터 해마다 봄철이면 둑을 쌓아 수해를 막
아 왔는데, 철종 5년(1854)에 와서 당시의 황종림(黃鍾林) 부사가 관비를 들여 연인원 3만여명을 동원해 완성해 놓은 것이다. 담
양은 강우량이 많은 지방이어서 예부터 치수(치수)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관방제(官防堤), 고서면과 남서면의 광주호 등이 있어 그 이름 담양(潭陽) 그대로 못(담.潭)의 고을임을 실감케 한다.
담양읍의 담양군청에서 동쪽으로 1백m쯤 떨어진 국도변에는 짐대(석당간=石幢竿)가 나온다. 전설에 따르면 담양읍의 지형이 배가
떠가는 형국이라 해서 고을의 발전을 기원하는 뜻에서 돛을 상징하는 이 당간을 세웠다고 한다. 또, 배가 가려면 사공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근처 냇가에 있는 한 쌍의 돌에 사공 형상을 새긴 '사공바위'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담양은 땅이름뿐 아니라 지형과 유적 등에서도 물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석천(石川)
광주시 동구 학운동 동쪽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청옥동, 장운동을 지나 동북쪽으로 흘러 담양군 고서면 본촌리, 주
산리를 지나 원강리에서 증암강(甑岩川)으로 들어간다.
·수북천(水北川)
수북면 궁산리의 병풍산과 두정리의 두구봉에서 발원, 풍수리에서 한 줄기로 아울러서 동남쪽으로 흘러 영산강으로 들어간다.
·영산강(榮山江)
다른 이름으로 극락강 또는 금강이라고도 한다. 담양군 용면 담양호에서 발원한 물이 동남쪽으로 흘러 같은 군 금성면의 사방 산
성산, 광덕산, 덕진봉, 봉황산, 고비산에서 발원한 물과 합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금월리를 지나 같은 군 담양읍을 꿰뚫고, 같은
군 월산면과 수북면의 경계를 따라 흘러 같은 군 봉산면 삼지리에서 오례천(오례강)을 합하고, 또 수북천을 합하여 황금리 황덕에
서 증암천(甑岩川)을 합하고, 광주시 북구를 동서로 꿰뚫고 광산구 신가동에서 광주시의 경계를 따라 서창면에 이르면서 관주천을
합하여 극락강이 되어 서남쪽으로 흐른다. 같은 군 서창면, 대촌면과 동곡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며 다시 황룡강(黃龍江)을 합하고
,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에서 드들강을 합하여 금성시 송현동의 석현동, 청동동과 성북동의 죽림동, 남상동의 삼도동, 송월동의 토
계동, 송월동을 지나 영강동을 지나 영산동에서 신동천을 합하고 가야동의 운곡동에서 새끼내를 합하여 나주시 다시면과 왕곡면,
공산명의 경계를 따라 흘러 같은 시 공산면과 동강면과 함평군 학교면, 엄다면의 경계를 지나 남해만의 이르러 삼포강을 합하여
무안군 몽탄면과 영암군의 경계를 따라 흘러 도포만에서 영암천을 합하여 영암만을 이루며 흘러 목포시와 해남군의 경계에서 남해
로 들어간다.
·오례강(五禮江)
담양군 대덕면 금산리 매봉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용곡리를 지나 같은 군 무정면 동강리에서 서북쪽으로 꺾여 평지리를 지
나 서쪽으로 꺾여 봉안리, 오룡리, 성도리, 영천리를 지나 봉산면 제원리에서 서남쪽으로 꺾이고 신학리를 지나 삼지리 삼지 앞에
서 영산강에 합류된다.
·증암천(甑岩川)
담양군 남면 정곡리 무등산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 광주시와의 경계를 따라 흘러 광주호를 지나 같은 군 고서면 고읍리,
교산리, 동운리, 주산리, 원강리를 지나 석천을 합하고, 같은 군 창평면과의 경계에서 창평천을 합류하여 같은 군 봉산면 양지리
를 지나 같은 군 수복면 황금리에서 영산강으로 들어간다.
&각 읍면의 내력
① 담양읍(潭陽邑)
·조선시대-담양군의 서변면(西邊面)
담양 읍내 서쪽이 되어 서변면(西邊面)이라 했던 곳이다. 시산(匙山), 고산(高山), 사미(四美), 외천(外川), 마내(馬內), 마외(馬
外), 천변(川邊), 봉산(峯山), 만성(萬成), 백동(柏洞), 신기(新基), 누문(樓門), 간리(間里)의 1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담양군 담양면 ※ 9개 리 관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 따라 동변면(東邊面)의 남산(南山), 동정(東亭), 향교(鄕校), 취영(取英), 광동(廣洞), 객사(客
舍), 북내(北內), 북외(北外), 부중(府中), 간동(澗洞), 마내(馬內), 마외(馬外), 마구(馬口), 북우(北右), 득삼(得三), 지침(紙
砧), 삼거(三巨)의 17개 동리와, 무면(武面)의 향백동(香柏洞) 일부와 목면(木面)의 두곡리(斗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면(潭陽
面)이라 해서 남산, 향교, 객사, 지침, 양각, 담주, 만성, 백동, 천면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3년-읍으로 승격
1943년 9월 1일, 면(面)에서 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읍 관할 구역 확장 ※ 18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현재의 읍 소재지는 객사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금성면
남쪽-무정면과 봉산면
서쪽-월산면
북쪽-월산면
② 고서면(古西面)
·조선시대-창평군의 고현내면(古縣內面)
옛 고을이 있어서 '고현내면'이라 했던 곳이다. 분향(分香), 용대(龍臺), 고읍(古邑), 덕촌(德村), 죽림(竹林), 신량(新良), 삼산
(三山), 성산(聲山), 평촌(坪村), 광산(廣山), 하북(下北), 강정(江亭), 교촌(校村), 운현(雲峴)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고서면(古西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분토(粉土), 원이(院以), 월곡(月谷), 주평(舟坪), 내보(內甫), 외보(外甫), 금
단(金丹), 노채(蘆菜)의 8개 동리와 북면(北面)의 연동(蓮洞), 후산(後山), 상덕(上德), 운월(雲月), 동산(東山), 성덕(盛德), 원
등(院嶝), 하유(下維), 주산(舟山)의 9개 동리와 우면(牛面)의 장산(長山), 상동(上洞), 강정(江亭) 일부와 내남면(內南面)의 학
미동(鶴尾洞) 일부와 가면(加面)의 하산(下山)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 고서면(古西面)이라 하
여 원강, 주산, 보촌, 금현, 분향, 구읍, 성월, 교산, 산덕, 동운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동운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창평면과 남면
서쪽-광주시
남쪽-광주시
북쪽-봉산면
③ 금성면(金城面)
·조선시대-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
고지산(高之山) 밑이 되어 고지산면(高之山面)이라 하여, 문암(文岩), 주진(舟津), 부곡(釜谷), 평신기(平新基), 행정(杏亭), 영
월(迎月), 봉서(鳳棲), 장항(獐項), 비내(飛內), 와룡(臥龍), 시목(枾木), 덕성(德城), 손곡(巽谷), 산이천(山伊川), 대곡(帶谷)
, 장재(長財), 가라곡(加羅谷), 봉황(鳳凰), 원율(原栗), 오평(五坪), 매곡(梅谷), 노천(盧川), 외추(外楸)의 23개 동리를 관할하
였다.
·일제 때-금성면(金城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천동면(泉洞面)의 금월(錦月), 장은(長隱), 연화촌(蓮花村), 삼만(三萬), 선계(仙界), 내동(內
洞), 오정(梧丁), 석현(石峴), 무림(茂林), 내천(內泉), 외천(外泉), 봉곡(蜂谷), 대성(大成)의 13개 동리와 용천면(龍泉面)의 정
각(正角), 양지(陽地), 치등(峙嶝)의 3개 동리와 각 일부를 편입하여 금성산(金城山) 밑이 되어 금성면(金城面)이라 해서 석현,
금월, 삼만, 원천, 대성, 원율, 금성, 덕성, 봉서, 대곡, 외추, 봉황, 학동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학동리(鶴洞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석현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전북 순창군 금과면
서쪽-월산면과 담양읍
남쪽-무정면
북쪽-용면과 순창군 팔덕면
④ 남면(南面)
·조선시대-창평군의 외남면(外南面)
창평 읍내 남쪽이 되어 외남면(外南面)이라 했던 곳이다. 수구(守口), 무동(武洞), 구룡(九龍), 석계(石溪), 망월(望月), 쌍룡(雙
龍), 용연(龍淵), 구산(九山), 장단(長丹), 인암(麟岩), 혈암(穴岩), 청촌(淸村), 자창(自唱), 화암(花岩), 학항(鶴項), 연풍(連
豊)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남면(南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남면(內南面)의 개선(開仙), 외지(外芝), 학미(鶴尾), 지석(支石), 지곡(芝谷), 산음(
山陰), 연천(燕川), 취연(吹連), 반석(盤石), 정곡(鼎谷), 사봉(士峯), 경상(京相), 환암(環岩)의 13개 동리와 군내면(郡內面)의
외동(外洞)과 광주군(光州郡) 석제면(石堤面)의 덕의리(德義里) 일부와 같은 군 상대석면(上大石面)의 당촌(唐村), 평촌(坪村)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면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학선, 지곡, 연천, 정곡, 경상, 무동, 만월, 구산, 인암, 가암, 풍암, 외
동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연천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과 화순군 북면
서쪽-광주시
남쪽-화순군 서면
북쪽-대덕면과 창평면
⑤ 대덕면(大德面)
·조선시대 창평군 대면(大面)
창평군의 지역의 대면(大面)으로, 입석(立石), 등갈(等葛), 사창(社倉), 소산(小山), 대산(大山), 장동(獐洞), 비차(飛 ), 원효(
元孝), 가흥(佳興), 상운(上雲), 하운(下雲)의 11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덕면(大德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덕면(德面)의 시목(枾木), 당촌(堂村), 무월(撫月), 요곡(要谷), 성신(聲新), 내문(內門), 외
문(外門), 원기(元基), 학동(學洞), 옥천(玉泉), 수곡(水谷), 청운(靑雲), 소지(所之), 용대(龍臺), 상갈(上葛), 하갈(下葛), 송
산(松山), 운산(雲山), 대서산(大西山)의 19개 동리와 외남면(外南面)의 입석리(立石里)와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의 반곡
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면(大面)과 덕면(德面)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大德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입석, 매산, 장
산, 비차, 운암, 금산, 성곡, 문학, 용대, 갈전, 운산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매산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오산면
서쪽-창평면
남쪽-남면과 화순군 북면
북쪽-무정면
⑥ 대전면(大田面)
·조선시대 광주군(光州郡)의 대치면(大峙面)
조선시대 광주군의 지역으로서 대치(한재) 밑이 되어 대치면(大峙面)이라 했던 곳이다. 중옥(中玉), 문내(門內), 금곡(金谷), 용
동(龍洞), 서옥(西玉), 신촌(新村), 환인(環印), 청룡(靑龍), 응기(應基), 망화(望化), 효례(孝禮), 대아(大雅), 화암(花岩), 평
장(平章), 시목(枾木)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전면(大田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갈전면(葛田面)의 월인(月印), 본상(本上), 본하(本下), 강의(講義), 태암(台岩), 신룡(新龍)
의 5개 동리와 삼소지면(三小旨面)의 해산리(海山里)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갑성(甲城), 옥동(玉洞), 학전(鶴田), 기강
(基岡), 주동(舟洞), 옥산(玉山), 덕산(德山), 대성(大成), 행정(杏亭), 소두(梳頭), 사성(四聖), 나곡(羅谷), 내동(內洞), 후동
(後洞), 노은(魯隱), 대산(臺山)의 17개 동리와 같은 군 외동면(外洞面)의 청룡리(靑龍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大峙)와 갈전(葛
田)의 이름을 따서 대전면(大田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월본, 강의, 태목, 중옥, 서옥, 응룡, 대치, 평장, 성산, 행성,
갑향, 병풍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대치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수북면과 봉산면
서쪽-장성군 진원면과 장성읍
남쪽-광주시
북쪽-수북면과 장성군 북하면
⑦ 무정면(武貞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촌(新村), 반룡(盤龍), 용주(龍珠), 봉서(鳳棲),
영천(靈泉), 죽산(竹山), 오봉(五峯), 오현(五鉉), 계동(桂洞), 운산(雲山), 오룡(五龍), 외당(外堂), 성덕(成德), 서정(西亭),
중리(中里), 도리(道里), 칠전(漆田), 동산(動産), 봉안(奉安), 구안(龜安), 술지(述只), 수문(守門), 기동(基洞)의 2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목면(木面) ※ 8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木面)의 두곡(斗谷), 도고정(都古亭)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반룡, 영천, 오봉, 오계, 오룡
, 성도, 동산, 봉안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2년-무정면(武貞面)
1932년 지방 행정 구역 조정에 의하여 정면(貞面)의 전역(안평, 덕곡, 서흥, 정석, 평지, 동강, 오례 7개 리)을 병합하여 무면(武
面)과 정면(貞面)의 이름을 따서 무정면(武貞面)이라 하여 15개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3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봉안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옥과면과 오산면
서쪽-봉산면
남쪽-대덕면과 평창면
북쪽-담양읍과 금성면
⑧ 봉산면(鳳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두면(豆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두면(豆面)이라 했던 곳이다. 연동(淵洞), 죽림(竹林), 삼지(三支), 신곡(新谷), 상덕(上德), 방축
(防築), 탄금(彈琴), 천수(泉水), 구암(九岩), 학동(鶴洞), 면앙정( 仰亭), 마항(馬項), 서봉(棲鳳), 곡정(曲丁)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구암면(九岩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목산면)의 강쟁(江爭), 두곡(斗谷), 대추(大秋), 도고정(都古亭), 신기(新基)의 5개 동리
와 우면(우치면)의 양지(陽地), 월전(月田), 강정(江亭), 화평(華平), 오산(五山), 구미(龜尾), 봉학(鳳鶴), 와우(臥牛), 광신(光
新), 마산(馬山), 송산(松山), 유산(柳山)의 12개 동리와 창평군(昌平郡) 장남면(長南面)의 정중리(井中里), 관동리(關洞里) 일부
와 광주군(光州郡) 우치면(牛峙面)의 학림(鶴林), 회룡(回龍)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기곡리)의 이름을 따서 구암면(九岩面)
이라 하여 강쟁, 대추, 삼지, 연동, 기곡, 신학, 제월, 양지, 와우, 유산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1-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변경
1931년 4월 1일, 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고쳤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9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강쟁리(江爭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신학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무정면과 창평면
서쪽-대전면과 수북면
남쪽-고서면과 광주시
북쪽-월산면과 담양읍
⑨ 수북면(水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장북면(長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지역으로서 장평부곡(長平部曲)의 북쪽이 되어 장북면(長北面)이라 했던 곳이다. 송정(松亭), 행정(杏
亭), 대방(大舫), 포박(浦泊), 강동(江洞), 삼인(三人), 와룡(臥龍), 오정(梧亭)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수북면(水北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남면(長南面)의 정중(井中), 금구(金九), 개동(開東), 남산(南山)의 5개 동리와 동서면(東西面)
의 상촌(上村), 나산(羅山), 신월(新月), 신복(新福), 고대(古大), 평촌(坪村), 성산(城山), 궁암(弓岩), 대흥(大興), 화성(花城
), 월계(月桂), 동장(東庄), 월산(月山), 회룡(回龍), 신정(新亭)의 16개 동리와 광주군(光州郡) 갈전면(葛田面)의 두동(斗洞),
용정(龍井), 경호(鯨胡), 궁산(弓山), 구암(龜岩), 신기(新基), 주평(舟坪)의 7개 동리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황덕(黃德), 신기
(新基)의 각 일부와 부면(夫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와 두면(豆面)의 곡정리(曲丁里) 일부와 목면(木面)의 미산(尾山), 동장(東
庄)의 각 일부와 고면(高面)의 가량(加良), 운연(雲淵), 구연(龜淵), 일부와 갑향면(甲鄕面)의 운산(雲山), 주동(舟洞), 기강(基
岡)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산강 북쪽이 되어 수북면(水北面)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두정, 궁산, 대방, 오정, 정중, 황금
, 개동, 남산, 나산, 고성, 대흥, 풍영, 주평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대방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봉산면
서쪽-대전면
남쪽-봉산면
북쪽-월산면
⑨ 용면(龍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용천동면(龍泉洞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용못(龍淵)이 있어서 용천동면(龍泉洞面) 또는 용면(龍面)이라 했던 곳이다. 대흥(大興), 분통(粉桶), 용평
(龍平), 소천치(小天峙), 대천치(大天峙), 세룡(細龍), 용동(龍洞), 사거(四距), 견양(牽羊), 복룡(伏龍), 월계(月桂), 월암(月岩
), 신령(新令), 월성(月星), 진수(進水), 청연(淸淵), 부흥(復興), 낙천(樂天), 구암(九岩), 성내(城內), 신정(新正), 도림(道林
), 상월(上月), 태월(台月), 삼태(三台), 추성(秋城), 치등(峙嶝), 서평(西坪), 장찬(長贊), 박곡(泊谷), 매월(梅月), 통천(桶泉
)의 32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용면(龍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천면(泉面)의 신흥(新興), 두지(斗支), 오정(梧丁) 일부를 병합하여, 용연, 용치, 월계, 청흥, 도
림, 쌍태, 추성, 두장, 통천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6년 담양호 담수로 지역 개편 ※ 8개 리 관할
1976년 10월 14일 준공된 담양호(潭陽湖)로 말미암아 용면의 청흥리(淸興里), 산성리(山城里) 2개 리가 완전히 물로 들어가 청흥
리의 남은 지역을 용연리에, 산성리의 남은 지역을 도림리에 각기 편입하여 8개 리로 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추성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팔덕면
서쪽-월산면과 순창군 복흥면
남쪽-금성면과 월산면
북쪽-순창군 쌍치면
⑪ 월산면(月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산막곡면(山幕谷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산막곡면(山幕谷面) 또는 산면(山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계(新溪), 신평(新平), 도동(道洞), 용금
(龍錦), 중방(中方), 월곡(月谷), 월평(月平), 단사(丹砂), 신양(新陽), 왕산(旺山), 대례(大禮), 송정(松亭), 월산(月山), 동산
(東山), 화방(化方)의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월산면(月山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면(廣面)의 산정(山亭), 사암(四岩), 광덕(廣德), 월천(月川), 개양(開陽), 신기(新基), 오성(五
星), 군수(郡守), 내동(內洞), 월계(月桂), 농암(籠岩), 옥산(玉山), 장원(壯元), 기룡(起龍), 남계(南溪), 능동(陵洞), 홍암(紅
岩), 장재(長財)의 18개 동리와 고면(高面)의 봉명(鳳鳴), 마산(馬山), 회룡(回龍), 가산(佳山), 구련(龜蓮), 외다(外茶), 동다(
東茶), 서다(西茶), 사미(史美)의 9개 동리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와 서면(西面)의 만성(萬城), 시산(匙山)의 각 일부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적암(赤岩), 대정(大井)의 각 일부와 창평군(昌平郡) 장북면(長北面)의 유곡(柳谷), 용산(龍山), 신평(
新平), 월송(月松), 가곡(柯谷), 죽림(竹林) 6개 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월산리(月山里)의 이름을 따서 월산
면(月山面)이라 하여 광암, 오성, 월계, 운교, 용암, 신계, 용흥, 중월, 월평, 월산, 화방, 가산, 삼다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
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월산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용면과 금성면
서쪽-장성군 북하면
남쪽-담양읍과 봉산면, 수북면,
북쪽-순창군 복흥면
⑫ 창평면(昌平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군내면(郡內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지역으로서 창평 읍내가 되어 군내면(郡內面)이라 했던 곳이다. 당곡(唐谷), 오산(梧山,) 양산(良山), 유촌(柳
村), 하소천(下素川), 상소천(上素川), 월량(月良), 용운(龍雲), 수곡(水谷), 용전(龍田), 부동(釜洞), 읍리(邑里), 본촌(本村),
보평(普坪)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창평면(昌平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加面)의 장전(長田), 장산(長山), 연화(蓮花), 덕치(德峙), 광암(廣岩), 조현(鳥峴), 부동(富
洞), 애교(艾橋), 화촌(華村), 상산(上山), 하산(下山), 의암(義岩), 죽항(竹項)의 13개 동리와 대면(大面)의 가흥(佳興), 화양(
華陽), 증산(曾山)과 북면의 내동(內洞), 성덕(盛德), 하유곡(下維谷), 신기(新基), 강촌(江村) 및 상유곡(上維谷), 운월(雲月),
상덕(上德)의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하여 창평면(昌平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장화
, 광덕, 해곡, 유곡, 일산, 의항, 오강, 유천, 용수, 창평, 삼천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현재의 면 소재지는 창평리이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
서쪽-고서면과 봉산면
남쪽-남면
북쪽-무정면과 대덕면
*담양군의 여러 마을들
`바바
`담양읍
·관방제(官防堤)【뚝】객사 앞에 있는 제방. 120년전 부사 황 종림(황종림)이 쌓았다. `담양읍 객사리
·광들【들】→강두리. `담양읍 강쟁리
·구례걸【들】용수막걸 동쪽에 있는 들. 땅이 깊어 물 대기가 좋다. `담양읍 강쟁리
·높은등【들】모릿둘 서북쪽 등성이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독짐보【보】강쟁 서남쪽에 있는 보. `담양읍 강쟁리
·돼아지둠벙【둠벙】모릿돌 동쪽에 있는 둠벙. `담양읍 강쟁리
·두룸박좃【둠벙】서당위 서북쪽에 있는 둠벙. 두루수가 술에 취하여 빠져 죽었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강쟁리
·따부논【논】안들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땀띠기시암【우물】소반배미 위에 있는 샘. 물이 매우 차므로 땀띠기(땀띠)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강쟁리
·똘배미【논】말뚱배미 동쪽에 있는 논. 옆에 똘이 흐른다. `담양읍 강쟁리
·말뚱배미【논】장성배미 밑에 있는 논. 옛날 장마가 심하여 논둑에 말뚝을 많이 박았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강쟁리
·모릿둘【들】서당뒤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목침배미【논】강두리에 있는 논. 양쪽 들 사이에 끼어있다. `담양읍 강쟁리
·물방애들【들】세포들 남쪽에 있는 들. 전에 물방애(물방아)가 있었다. `담양읍 강쟁리
·베락방애시암【우물】두룸박좃 남쪽에 있는 샘. 샘 위에 베락방아가 있었다. `담양읍 강쟁리
·보통거리【들】여쟁이 남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새보【보】풀섶내 동북쪽에 새로 된 보. `담양읍 강쟁리
·생수꼬지 〔생수곶〕【들】아살피 서남쪽에 있는 들. 물이 솟아난다. `담양읍 강쟁리
·서당뒤【들】작은드리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세포들【들】구롓걸 남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소금배미【논】해장배미 동북쪽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소반배미【논】강쟁 북쪽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시역씨【밭】서편 북쪽에 있는 밭. `담양읍 강쟁리
·아살피【들】강쟁이 동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안들【들】높은등 남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앞밭등【들】물방애들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양마지기들【들】종짓보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여쟁이【들】독짐보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연화춘【밭】시역씨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용수막걸(용수막걸)【들】안들 서쪽에 있는 들. 용수막이 있었다. `담양읍 강쟁리
·이오매기【들】양마지기들 동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일오매기【들】이오매기 동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작살배미【논】소금배미 남쪽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작은드리【들】강두리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강쟁/////////////////////리
·장성배미【논】아살피에 있는 논. 장승이 서 있었다. `담양읍 강쟁리
·종짓보【보】보통거리 북쪽에 있는 보. `담양읍 강쟁리
·질매배미【논】목침배미 북쪽에 있는 논. 질매(길마)처럼 생겼다. `담양읍 강쟁리
·천지배미【논】강쟁 앞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초신보(草薪洑)【보】→풀섶내. `담양읍 강쟁리
·풀섶내〔초신보〕【보】일오매기 북쪽에 있는 보. 풀섶이 많다. `담양읍 강쟁리
·해장배미【논】장성배미 밑에 있는 논. `담양읍 강쟁리
·금강수(금강수)【들】금월 앞에 있는 들. '금강수'라는 연못이 있었다. `담양읍 금월리
·금월교(錦月橋)【다리】금월 앞에 있는 다리. 폭4m, 길이 20m이다. 일제 때인 1914년 준공. `담양읍 금월리
·닭실【굴】개장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금월리
·물건너【들】금월 동남쪽, 내 건너에 있는 들. `담양읍 금월리
·미로매【들】금월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금월리
·베틀바우【바위】닭실 서쪽에 있는 바위. 베틀처럼 생겼다. `담양읍 금월리
·연화촌보【보】연화촌 앞에 있는 보. `담양읍 금월리
·정잣굴꼴착【골】연화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정자가 있었다. `담양읍 금월리
·함들【들】금월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금월리
·남산리(南山里)〔남산, 남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面)의 지역이었다. 남산 밑이 되어 남산 또는 남촌(南村)이
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정리(東亭里) 일부를 합하여 남산리(南山里)라 로 정하고, 담양면(→담
양읍)에 넣었다. `담양읍 남산리
·관산보【보】아래남산 동쪽에 있는 보. `담양읍 남산리
·당똘【들】남촌 서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남산리
·뒷굴【골】남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산리 뒤쪽이다. `담양읍 남산리
·무젯등【등】남촌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담양읍 남산리
·아랫당똘【들】당똘 아래에 있는 들. `담양읍 남산리
·어사리들【들】남촌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남산리
·웃당똘【들】당똘 위에 있는 들. `담양읍 남산리
·짐댓거리【들】동정자 남쪽에 있는 들. 짐대가 있다. `담양읍 남산리
·탑거리【들】짐댓거리 남쪽에 있는 들. 오층석탑이 있다. `담양읍 남산리
·효자리터(孝子里터)【들】짐댓거리 동쪽에 있는 들. 효자리 마을이 있었다. `담양읍 남산리
·용방우〔용암〕【바위】담주리에 있는 바위. `담양읍 담주리
·용암(龍岩)【바위】→용바우. `담양읍 담주리
·만성리(萬成里)〔만성, 완동〕【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西邊面)의 지역이었다. 완동(完洞) 또는 만성(萬成)이라 하였는
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리(峰山里)와 동면의 광동(廣洞) 일부를 합하여 만성리(萬成里)로 정하고, 담양
면(→담양읍)에 넣었다. `담양읍 담주리
·구레【들】벌매 서북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담양읍 담주리
·담양공원(潭陽公園)【공원】완동 동쪽, 향교리 경계에 있는 공원. `담양읍 담주리
·더우시암【약】벌매 북쪽에 있는 약샘. 물이 차서 땀띠 없애기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담주리
·도장골【골】수박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① 옛날에 엽전을 만들었다고 전해 온다. ②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담양
읍 담주리
·만성교(萬成橋)【다리】담주리와 만성리 경계에 있는 다리. `담양읍 담주리
·솔정지【골】벌매 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나무가 많다. `담양읍 담주리
·수박등【등】벌매 북쪽에 있는 등성이. 수박처럼 둥그스름하게 생겼다. `담양읍 담주리
·수박등굴【골】수박등에 있는 굴. `담양읍 담주리
·여시골【골】완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여시(여우)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담주리
·캐캐들【들】캐캐모팅이 아래에 있는 들. `담양읍 담주리
·캐캐모팅이【모롱이】벌매 남쪽에 있는 모롱이. `담양읍 담주리
·캐캐보【보】캐캐들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담주리
·내동골【골】내동 뒤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백동리
·모래시암【둠벙】모래시암걸에 있는 둠벙.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다. `담양읍 백동리
·모래시암걸【들】새터 서쪽에 있는 들. 모래시암이 있다. `담양읍 백동리
·방죽들【들】안들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백동리
·부삿골【골】삼거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 부사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백동리
·안들【들】백동리에 있는 들. 담양읍의 안쪽. `담양읍 백동리
·주벅들【들】새터 동쪽에 있는 들. 주벅(밥주걱)처럼 생겼다. `담양읍 백동리
·가토평(可土坪)【들】→더터리. `담양읍 반룡리
·구례실【들】말머리들 남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담양읍 반룡리
·대팔등【등】진동 남쪽에 있는 등성이. `담양읍 반룡리
·더터리〔가토평〕【들】버들배기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반룡리
·뒷골【골】반룡 뒤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반룡리
·말머리들【들】대팔등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반룡리
·매양배미【논】민양껄 남쪽에 있는 논. `담양읍 반룡리
·모냉기【들】방애실 북서쪽에 있는 들. 지대가 비스듬하여 항상 물이 넘침. `담양읍 반룡리
·모내걸【들】큰모냉기 북쪽에 있는 들. 모래가 많다. `담양읍 반룡리
·민양껄【논】반룡 앞에 있는 논. `담양읍 반룡리
·민양껄둠벙【둠벙】민양껄에 있는 둠벙. `담양읍 반룡리
·방구배미【논】빗가리 위쪽에 있는 논. 지형이 방구 형국이다. `담양읍 반룡리
·방애실【들】매양배미 남쪽에 있는 들. 물방아가 있다. `담양읍 반룡리
·버들배기【들】구례실 동쪽에 있는 들. 버드나무가 있었다. `담양읍 반룡리
·빗가리【들】구례실 서쪽에 있는 들. `담양읍 반룡리
·사장거리(射場巨里)【들】말머리들 밑에 있는 들. 활쏘는 장소였다. `담양읍 반룡리
·작은모냉기【들】모냉기의 작은 들. `담양읍 반룡리
·장등【등】→진등. `담양읍 반룡리
·죽배미【논】똥매산 옆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반룡리
·진등〔장등〕【등】반룡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 `담양읍 반룡리
·큰모냉기【들】모냉기의 큰 들. `담양읍 반룡리
·개내들【들】갱이들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개내들보【보】개내들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삼다리
·갱이들【들】외다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갱이보【보】갱이들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삼다리
·군논【논】군논들에 있는 논. 고래실이다. `담양읍 삼다리
·군논들【들】일공두 북쪽에 있는 들. 군논이 있다. `담양읍 삼다리
·냇건네【들】외다 동쪽에 있는 들. 내 건너가 된다. `담양읍 삼다리
·때암머리【들】사갑들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방어드리【들】군논들 북쪽에 있는 들.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담양읍 삼다리
·방죽밑【들】삼다저수지 밑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사갑들【들】방애드리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삼다교(三茶橋)【다리】방죽밑 남쪽에 있는 다리. 1936년에 놓다. `담양읍 삼다리
·성북징이【들】회징이들 남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솔밭밑【들】외다 동쪽에 있는 들. 위에 솔밭이 있었다. `담양읍 삼다리
·솔밭밑보【보】솔밭밑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삼다리
·시정이【들】사갑들 북쪽에 있는 들. 시정이 있었다. `담양읍 삼다리
·일공두【들】갱이보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중구밑에【들】사갑들 북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회징이들【들】동다 동쪽에 있는 들. `담양읍 삼다리
·갈치배미【논】북덕산 동남쪽에 있는 논. 갈치처럼 기다랗다. `담양읍 삼만리
·동매기골【골】삼만 동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뒷구실【골】삼만 뒤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몰똥골【들】정림골 서남쪽에 있는 들. 몰똥배미가 있다. `담양읍 삼만리
·몰똥배미【논】몰똥골에 있는 논. 말똥처럼 작다. `담양읍 삼만리
·반자태【들】잿등들 밑에 있는 들. `담양읍 삼만리
·방정지【골】내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비랑목【골】미리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산적골【골】비랑목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삼무사(三無寺)→삼만리. `담양읍 삼만리
·용배미【논】몰똥배미 동쪽에 있는 논. 지형이 용틀임한 형국이다. `담양읍 삼만리
·웃모실【골】내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있었다. `담양읍 삼만리
·잿등들【들】삼만 서쪽에 있는 들. 재처럼 높게 되었다. `담양읍 삼만리
·잿등보【보】잿등들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삼만리
·정림골【골】황새목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삼만리
·탕건바우【바위】탕건바웃등에 있는 바위. 탕건처럼 생겼다. `담양읍 삼만리
·탕건바웃등【등】뒷구실 북쪽에 있는 등성이. 탕건바우가 있다. `담양읍 삼만리
·황새목【들】잿등들 서남쪽에 있는 들. 지형이 황새 목처럼 가늘고 긺. `담양읍 삼만리
·양각리(羊角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시산, 고산동(高山洞
), 사미정(四美亭)을 합하여 양각산(羊角山) 밑이 되어 양각리(陽刻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담양읍 양각리
·강징이【들】아살피 남쪽에 있는 들. `담양읍 양각리
·강징잇보【보】강장이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양각리
·관죽전(관죽전)【밭】사미정 뒤에 있는 대밭. `담양읍 양각리
·배암산모팅이【모롱이】배암산 밑에 있는 모롱이. `담양읍 양각리
·사밋들【들】사마정 앞에 있는 들. `담양읍 양각리
·산정골【골】배암산모팅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정자가 있었다. `담양읍 양각리
·새빗들【들】사미정 남쪽에 있는 들. 새비(새우)처럼 생겼다. `담양읍 양각리
·새빗보【보】새빗들에 물을 대는 보. `담양읍 양각리
·수박골모롱이【모롱이】배암산 서북쪽에서 만성리 수박등으로 가는 모롱이. `담양읍 양각리
·심통보【보】술매 앞에 있는 보. `담양읍 양각리
·아살피【들】사미정 남쪽에 있는 들. `담양읍 양각리
·짐땟거리【길】지침리에 있는 길. 짐대가 있었다. `담양읍 지침리
·팔층탑(八層塔)【탑】짐땟거리에 있는 탑. `담양읍 지침리
·홍살문거리【길】지침리에 있는 길. 홍살문이 있었다. `담양읍 지침리
·오계리(五桂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현동(五鉉洞)과 계동
(桂洞)을 합하여 오계리(五桂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담양읍 오계리
·오례교(五禮橋)【다리】계동 남쪽에 있는 다리. `담양읍 오계리
·천변리(川邊里)〔천변〕【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西邊面)의 지역이었다. 관방천변(官防川邊)에 있어서 천변(川邊)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누문(樓門), 간리(間里)를 합하여 천변리(川邊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
)에 넣었다. `담양읍 천변리
·강쟁잇들【들】→봉산면 강쟁리의 '강쟁잇들 '. `담양읍 천변리
·사공불(沙工佛)〔사공석〕【서적】천변 서쪽 냇가에 있는 고적. 담양읍이 배가 나가는 형국이므로 배에는 사공이 있어야 된다
하여 한 쌍의 돌에다 사공 형상을 새겨 뱃머리 부분이 되는 서쪽 냇가에 세웠다. `담양읍 천변리
·개바우【바위】개바웃등에 있는 바위. 모양이 개처럼 생겼다. `담양읍 학동리
·개바웃등【등】초분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개바우가 있다. `담양읍 학동리
·갱번들【들】학동 앞, 냇가에 있는 들. `담양읍 학동리
·나부절【골】지프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학동리
·덕석바우【바위】새짓고개 서북쪽에 있는 바위. 덕석을 씌운 것처럼 되었다. `담양읍 학동리
·삿갓몰랭이【모롱이】섬바웃등 남쪽에 있는 모롱이. 삿갓처럼 생겼다. `담양읍 학동리
·생이바우【바위】생이박몰랭이에 있는 바위. 생이(상여)처럼 생겼다. 생이바우가 있다. `담양읍 학동리
·생이박몰랭이【모롱이】삿갓몰랭이 동쪽에 있는 모롱이. `담양읍 학동리
·서당골【골】학동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담양읍 학동리
·섬바우【바위】섬바웃등에 있는 바위. 볏섬처럼 생겼다. `담양읍 학동리
·섬바웃등【등】한각굴 동쪽에 있는 등성이. 섬바우가 있다. `담양읍 학동리
·수무통【골】나부절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학동리
·잿등【들】지프실 앞에 있는 들. 재를 뿌린 것처럼 땅이 좋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학동리
·접은골【골】존심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학동리
·존심바우【바위】송정지고개 서쪽에 있는 바위. `담양읍 학동리
·초분골【골】잿들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초분(초빈)을 했었다. `담양읍 학동리
·한각굴【골】학동리에 있는 골짜기. `담양읍 학동리
·호랑이집【너설】생이박몰랭이 동북쪽에 있는 너설. 호랑이굴이 있다. `담양읍 학동리
·향교리(鄕校里)〔향교, 교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면)의 지역이었다. 담양향교(潭陽鄕校)가 있어서 향교(鄕校
) 또는 교촌(校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취영리(取英里), 광동(廣洞) 일부를 합하여 향교리(鄕
校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담양읍 향교리
·땀띠기시암【우물】→사당골시암. `담양읍 향교리
·사당골【골】서우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사당이 있다. `담양읍 향교리
·사당골시암〔땀띠기시암〕【우물】사당골에 있는 샘. `담양읍 향교리
·야은전선생유허비(野隱全先生遺墟碑)【비】담양향교 앞에 있는 야은 전녹생(全祿生)의 유허비. `담양읍 향교리
·향교교(鄕校橋)【다리】→향굣다리. `담양읍 향교리
·향굣다리〔鄕校橋〕【다리】향교 앞에 있는 다리. `담양읍 향교리
`고서면
·고읍리(古邑里)〔구읍, 고읍〕【리】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다. 창평현(昌平縣)이 있어서 구읍(舊邑
) 또는 고읍(古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촌(德村), 죽림(竹林), 신량(新良), 삼산리(三山里
)를 합하여 고읍리(古邑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고읍리
·감남쟁이【들】도내기시암 동쪽에 있는 들. 큰 감나무 정자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감남쟁이시암【우물】감암쟁이에 있는 샘. `고서면 고읍리
·객사들(客舍들)【들】신양 서북쪽에 있는 들. 창평현의 객사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깐치바우【바위】작살골몬댕이에 있는 바위. 까치가 바위에서 물을 찍어 먹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고읍리
·닥시암【둠벙】아삽들에 있는 둠벙. `고서면 고읍리
·대밭〔죽전〕【골】봇당락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밭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도내기들【들】물모실들 동쪽에 있는 들. 도내기시암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도내기시암【우물】도내기들에 있는 샘. `고서면 고읍리
·독골【골】산정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독처럼 옴팍하다. `고서면 고읍리
·등잔걸이시암【우물】등잔걸이 밑에 있는 샘. `고서면 고읍리
·마당바우【바위】행굣골몬댕이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다. `고서면 고읍리
·물모실들【들】아삽들 북쪽에 있는 들. 지대가 낮아 물이 모인다. `고서면 고읍리
·방아드리들【들】화약골 남쪽에 있는 들.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봇당락【골】대밭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고읍리
·새앙골【골】신양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고읍리
·새적굴【골】고읍리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고읍리
·쌍둠벙【둠벙】물모실들에 있는 둠벙. 한쌍이 있었는데 하나는 메워졌다. `고서면 고읍리
·아삽들【들】옥답 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고읍리
·오동나무꺼리【들】덕촌 동쪽에 있는 들. 오동나무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옥답(獄沓)【논】객사들에 있는 논. 고을의 옥터였다. `고서면 고읍리
·요질내미【들】메물대산 북쪽에 있는 들. 요질내미란 부자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고읍리
·요질내미시암【우물】요질내미에 있는 샘. `고서면 고읍리
·자래바우【바위】고읍리에 있는 바위. 자래(자라)처럼 생겼다. `고서면 고읍리
·작은구실【골】큰구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구시(구유)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고읍리
·작은어덩굴【골】독골 동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어덩(언덕)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죽전(竹田)【골】→대밭. `고서면 고읍리
·참삿골【골】큰어덩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참시암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치매바우【바위】큰구실에 있는 바위 `고서면 고읍리
·칡발굴【골】작은구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 칡이 많다. `고서면 고읍리
·큰구실【골】폿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구시(구유)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고읍리
·큰어덩굴【골】독골 동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어덕(언덕)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폿징이【골】참삿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고읍리
·화약고들【들】화약골에 있는 들. `고서면 고읍리
·화약골【골】신양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화약고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교산리(校山里)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북촌(下北村
), 강정(江亭), 교촌(校村)과 북쪽의 운월리(雲月里) 일부를 합하여 교산리(校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교산리
·객삿들【들】→고서면 고을리의 '객삿돌'. `고서면 교산리
·도리챙이【들】핑겟등 동쪽에 있는 들. 지형이 도리깨 꼭지처럼 생겼다. `고서면 교산리
·둔전보(屯田洑)【보】새보 서쪽에 있는 보. 둔전이 있었다. `고서면 교산리
·병배미【논】핑겟등에 있는 논. 모양이 병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고서면 교산리
·새보【보】죽산보 남쪽에 새로 된 보. `고서면 교산리
·안골【골】해앗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교산리
·안터【골】장성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있었다. `고서면 교산리
·장구배미【논】도리챙이에 있는 논. 장구처럼 잘록하다. `고서면 교산리
·죽산보(竹山洑)【둠벙】교촌 남쪽에 있는 둠벙. `고서면 교산리
·핑겟등【들】교촌 동쪽에 있는 들. 지형이 핑계(풍경)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교산리
·하마정(下馬亭)【들】→하마정이. `고서면 교산리
·하마정이〔하마정〕【들】교촌 남쪽에 있는 들. 하마비가 있었다. `고서면 교산리
·함바대【들】둔전보 서쪽에 있는 넓은 들. `고서면 교산리
·해앗골【골】박성고개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교산리
·행굣등【등】교촌 북쪽에 있는 등성이. 향교가 있다. `고서면 교산리
·금현리(金峴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단동(金丹洞),
노채리(蘆菜里) 일부와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운현을 병합해서 금단(金丹)과 운현(雲峴)의 이름을 따서 금현리(金峴里)로 정하고
,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금현리
·가락굴【골】웃무실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금현리
·독징이【골】강단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돌이 박혀 있다. `고서면 금현리
·물레실【들】호락질 남쪽에 있는 들. `고서면 금현리
·웃무실【들】매봉 서쪽에 있는 들. `고서면 금현리
·지방바우【바위】가락등에 있는 바위 `고서면 금현리
·초봉골【골】운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초봉(초빈)을 했었다. `고서면 금현리
·호락질【들】갈미봉 서쪽에 있는 들. `고서면 금현리
·구레실【들】구름다리 동남쪽에 있는 들. 지대가 낮고 물대기가 좋다. `고서면 동운리
·굼보【보】밴등보 서쪽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굼보들【들】굼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대해평(大海坪)【들】→한바대. `고서면 동운리
·댕댕보【보】한바대 남쪽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댕댕봇들【들】댕댕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동산【들】새터 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동운리
·동운-교(東雲橋)【다리】비아 남쪽에 있는 다리. `고서면 동운리
·둔전-보(屯田洑)【보】동운교 동쪽에 있는 보. 둔전이 있었다. `고서면 동운리
·둔전봇들【들】둔전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밴등-보【보】동운교 동쪽, 밑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밴등봇들【들】밴등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새-보【보】밴등보 동쪽에 새로 된 보. `고서면 동운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시암들【들】구레실 동쪽 들. 논배미마다 시암(샘)이 있었다. `고서면 동운리
·쌍다리【다리】쌍다릿들에 있는 한 쌍의 다리. `고서면 동운리
·쌍다릿들【들】한바대 서쪽에 있는 들. 쌍다리가 있다. `고서면 동운리
·아릿시암보【보】웃시암보 아래쪽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아릿시암봇들【들】아릿시암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웃시암보【보】아릿시암보 위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웃시암봇들【들】웃시암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중과보【보】쌍다리 동쪽에 있는 보. `고서면 동운리
·중과봇들【들】중과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동운리
·풀사래보【보】시암들에 물을 대는 보. `고서면 동운리
·한바대〔대해평〕【들】비아 서쪽에 있는 들. 큰 바다와 같이 넓고 큼. `고서면 동운리
·보촌리(甫村里)〔봇몰, 보촌〕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물대는 보(洑)가 있어서 봇몰 또는 보촌(洑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보촌(外洑村), 내보촌(內洑村)과 북면(北面)의 원등(院嶝) 일부를 합하여
보촌리(甫村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보촌리
·고동등【등】안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 `고서면 보촌리
·뗏거리【들】방주간 북쪽에 있는 들. `고서면 보촌리
·모래답보【보】내보촌 동쪽에 있는 보. `고서면 보촌리
·모래답봇들【들】모래답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모래가 많다. `고서면 보촌리
·방앳등【들】홈거리 남쪽에 있는 들. 방아가 있다. `고서면 보촌리
·방주간【들】방주간에 있는 들. `고서면 보촌리
·방죽밑【들】방앳등 남동쪽에 있는 들. 방죽 밑. `고서면 보촌리
·새빗등【등】방주간 동쪽에 있는 등성이. 새비(새우)처럼 생겼다. `고서면 보촌리
·소태실【골】고동등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보촌리
·수통거리(水桶거리)【들】방주간에 있는 들. 수통이 있다. `고서면 보촌리
·신흥보(新興洑)【보】소태실 북쪽에 새로 된 보. `고서면 보촌리
·쌍가맷등【등】소태실 남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한 쌍의 가마처럼 생겼다. `고서면 보촌리
·안골【골】방주간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보촌리
·품사래보【보】모래답보 서쪽에 서쪽에 있는 보. `고서면 보촌리
·품사래봇들【들】품사래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보촌리
·홈거리【들】독거리 남동쪽에 있는 들. 홈을 놓아 물을 대었다. `고서면 보촌리
·분향리(分香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인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백정(栢亭
), 용대(龍臺), 고읍리(古邑里) 일부와 서면(西面)의 노채리(蘆菜里) 일부와 내남면(內南面)의 학미동(鶴尾洞) 일부를 합하여 분
향리(分香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분향리
·동강약수터(東江藥水터)〔영천수〕【약】용대 서남쪽에 있는 약수터. `고서면 분향리
·무돔실【골】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분향리
·분향들【들】새봇들 북쪽에 있는 들. 분향리 앞. `고서면 분향리
·사장등(射場嶝)【등】용담대 동쪽에 있는 등성이. 옛날 고을의 있을 때 활터였다. `고서면 분향리
·새보【보】닭대 동남쪽에 새로 된 보. `고서면 분향리
·새봇들【들】새보에 물을 대는 들. `고서면 분향리
·시리바우〔증암〕【바위】증암천에 있는 바위. 모양이 시리(시루)를 엎어 놓은 형국이다. `고서면 분향리
·영천수(靈泉水)【약】→동강약수터. `고서면 분향리
·외밭골【골】소탕매 북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분향리
서면 분향리
·육룡굴(六龍굴)【골】소산정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육룡쟁주형(六龍爭珠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분향리
·조석교(朝夕橋)【다리】분향 앞들에 있던 다리. 운현 선생이 벼슬길에서 은퇴하여 소일할 때 창평 현감이 조석으로 문안 드리러
건너 다녔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분향리
·죽룡동(죽룡洞)【골】관수정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분향리
·증암(甑岩)【바위】→시리바우. `고서면 분향리
·증암보(甑岩洑)【보】용대 앞에 있는 보. 증암천을 막아 만들었다. `고서면 분향리
·진다물거리【들】분향들 동쪽에 있는 들. 기다란 돌담이 있었다. `고서면 분향리
·큰골【골】육룡굴 동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고서면 분향리
·학구당(學求堂)【집】백정 동쪽에 있는 집. 지방 유림들의 서당으로 조선 중엽에 세웠다. `고서면 분향리
·산덕리(山德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인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연동(蓮洞), 후산(
后山), 상덕리(上德里), 운월리(雲月리) 일부를 합하여 산덕(山德)과 후산(后山.後山)의 이름을 따서 산덕리(山德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산덕리
·계마수(繫馬水)【나무】→행정이. `고서면 산덕리
·당몰랭이【모롱이】→애기당몰랭이. `고서면 산덕리
·대해평(大海坪)【들】→한바대. `고서면 산덕리
·도장곡(道場谷)【골】→도장골. `고서면 산덕리
·도장골(道場谷) 【골】쟁거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오 한림, 정 귀용, 송 우암을 모신 서당이 있었다. `고서면 산덕리
·독배기【동】후산 동쪽에 있는 등성이. 독(돌)이 박혀 있다. `고서면 산덕리
·마당바우【바위】된까금 동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다. `고서면 산덕리
·반월등(半月嶝)【등】연동 앞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 `고서면 산덕리
·부엥바우【바위】애기당몰랭이 동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 집이 있었다. `고서면 산덕리
·쌍룡곡(雙龍谷)【골】→쌍룡골. `고서면 산덕리
·쌍룡골〔쌍룡곡〕【골】절안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쌍룡이 다루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고서면 산덕리
·애기당몰랭이〔당몰랭이〕【모롱이】독배기 동쪽에 있는 모롱이. 아기당이 있었다. `고서면 산덕리
·절안산골【골】도장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고서면 산덕리
·지각굴【골】택거리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각(재각)이 있었다. `고서면 산덕리
·택거리바우【바위】꼭두말재 동쪽에 있는 바위. 끝이 길쭉하게 빠져 나와 턱걸이하기에 좋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산덕리
·한바대〔대해평〕【들】뒷매 남쪽에 있는 들. 바다처럼 넓고 큼. `고서면 산덕리
·행정(杏亭)【나무】→행정이. `고서면 산덕리
·행정이〔행정, 계마수〕【나무】뒷매 중앙에 있는 은행나무. 둘레 12아름으로 수령 약 550년쯤 되는데, 조선 인조 때 오한림에
게 온 칙사의 말을 매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산덕리
·건넌터【들】소리매 건너편에 있는 들. 마을이 있었다. `고서면 성월리
·검보(劍洑)【보】→칸짯보. `고서면 성월리
·구렁걸【들】→구례실. `고서면 성월리
·구례실〔구렁걸〕【들】성산 남족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이 좋고 비옥하다. `고서면 성월리
·구름걸【들】뒤안걸 북쪽에 있는 들. `고서면 성월리
·도내기시암【우물】구례실 서쪽에 있는 샘. 물이 잘 난다. `고서면 성월리
·뒤안걸【들】검단 뒤에 있는 들. 마을 뒤쪽 울 안. `고서면 성월리
·모래보〔사보〕【보】칸짯보 동남쪽에 있는 보. 모래가 많아 물이 잘 빠진다. `고서면 성월리
·문바우(문암)【바위】문바웃재에 있는 바위. 재마루 양쪽에 문처럼 서 있다. `고서면 성월리
·사보(沙洑)【보】→모래보. `고서면 성월리
·새암보【보】아낙들 남쪽에 있는 보. 새암(샘)이 있다. `고서면 성월리
·새암봇들【들】새암보의 물을 대는 들. `고서면 성월리
·새텃굴【골】월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가 있다. `고서면 성월리
·시암보【보】구례실에 있는 보. `고서면 성월리
·아낙들〔안락평〕【들】새터 동쪽에 있는 들. 평사낙안형(평사낙안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성월리
·안락평(雁落坪)【들】→아낙들. `고서면 성월리
·장무숫굴【골】월전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성월리
·칸짯보〔검보〕【보】성산 북쪽에 있는 보. 모양이 칼처럼 생겼다. `고서면 성월리
·원강리(院江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분토동(粉吐洞),
원이동(院以洞), 월곡(月谷)과 우면(牛面)의 장산리(長山里), 상동(上洞), 강정리(江亭里), 일부를 합하여 원이(院以)와 강정(江
亭)의 이름을 따서 원강리(院江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원강리
·강동굴【골】빕새머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원강리
·깃대봉【산】대명산등 서쪽에 있는 산. 측량 표준기를 꽂았다. `고서면 원강리
·남산깽이【산】뒷매 서쪽에 있는 산. `고서면 원강리
·남산봉(南山峰)【산】남산깽이 서쪽에 있는 산. 원강리 남쪽이다. `고서면 원강리
·남산봉골【골】남산봉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원강리
·담양산(潭陽山)【산】→대명산등. `고서면 원강리
·당살매【산】진등 남쪽에 있는 산. 당산나무가 있다. `고서면 원강리
·대명산등〔담양산〕【산】원유동 북쪽에 있는 산. 옛 창평면이었을 때 이 산은 담양에 속했다고 전해 온다. 송강정이 있다. `고
서면 원강리
·뒷들【들】원유동 동쪽, 뒤에 있는 들. `고서면 원강리
·뒷매【산】원유동 뒤에 있는 산. `고서면 원강리
·등전들【들】원유동 동쪽, 앞에 있는 들. `고서면 원강리
·빈태【산】솔다징이 동북쪽에 있는 산. 마을이 있었다. `고서면 원강리
·빕새머리【산】앞뫼 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빕새(뱁새) 머리처럼 생겼다. `고서면 원강리
·사줏등【등】남산봉 서쪽에 있는 등성이. 뱀처럼 긺. `고서면 원강리
·새보【보】뒷들 동북쪽에 새로 된 보. `고서면 원강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는 들. `고서면 원강리
·솔다징이【산】깃대봉 남쪽에 있는 산. 정 철(鄭澈)이 벼슬을한 후 이 곳에 솔대(솟대)를 세웠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원강리
·수랑걸【들】원유동 남서면에 있는 들. 수렁이 있다. `고서면 원강리
·신보(新洑)【보】원유동 동쪽에 새로 된 것. `고서면 원강리
·심보(深洑)【보】원유동 동남쪽에 있는 깊은 보. `고서면 원강리
·싹가심【골】장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서면 원강리
·앞뫼【산】영마봉 북쪽에 있는 산. 원유동 앞. `고서면 원강리
·여시골 【골】조수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여시(여우)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원강리
·역마봉(驛馬峰)【산】→영마봉. `고서면 원강리
·영마봉〔역마봉〕【산】당살매 남쪽에 있는 산. `고서면 원강리
·옥녀봉(玉女峰)【산】분토동 서쪽에 있는 산. `고서면 원강리
·장골【골】사줏등 서쪽에 있는 긴 골짜기. `고서면 원강리
·진등【등】싹가심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 `고서면 원강리
·주산리(舟山里)〔주산〕【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고 하여 주산(舟山)이라 하였
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주평리(舟坪里), 내보촌(內甫村) 일부를 합하여 주산리(舟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고서면 주산리
·갈오개【등】주산 서쪽에 있는 등성이. `고서면 주산리
·높은보【보】대사리보 밑에 있는 보. 지역이 높다. `고서면 주산리
·대경보【보】서창봇들 북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대경봇들【들】대경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고서면 주산리
·대사리보【보】대정보 밑에 있는 보. `고서면 주산리
·대정보【보】주산 남쪽에 있는 보. `고서면 주산리
·뒷들【들】조섯등 남쪽에 있는 들. 주산 뒤가 된다. `고서면 주산리
·매산바우【바위】매산봉에 있는 바위. 바위에 대고 소리 치면 소리가 되돌아온다. `고서면 주산리
·매산봉【산】주평 남쪽에 있는 산. 매산바우가 있다. `고서면 주산리
·모름뜨라지【들】비암실 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방죽밑【들】황룡부주등 서북쪽에 있는 들. 방죽 밑이다. `고서면 주산리
·비암실〔사줏등〕【골】주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비암(뱀)처럼 길게 생겼다. `고서면 주산리
·사줏등【골】→비암실. `고서면 주산리
·새보【보】쌍다릿들 남쪽에 있는 새로 된 보. `고서면 주산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는 들. `고서면 주산리
·서창보【보】조개바지 남쪽에 있는 보. `고서면 주산리
·서창봇들【들】서창보의 물을 대는 보. `고서면 주산리
·신고방천【뚝】방죽밑 북쪽에 있는 뚝. `고서면 주산리
·쌍다리【다리】쌍다릿들에 있는 2개의 다리. `고서면 주산리
·쌍다릿들【들】뒷들 북쪽에 있는 들. 쌍다리가 있다. `고서면 주산리
·조개바지【들】진골 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조동촌【골】진골 남족에 있는 골짜기. 조동촌이란 마을이 있었다. `고서면 주산리
·조섯등【들】쌍다리 북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죽산골【골】매산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나무가 있었다. `고서면 주산리
·진골【골】죽산골 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 `고서면 주산리
·진산등【들】한거리 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짚은보【보】장산 동쪽에 있는 깊은 보. `고서면 주산리
·한거리【들】새보 남동쪽에 있는 들. `고서면 주산리
·한대실【들】모름뜨라지 동쪽에 있는 넓은 들. `고서면 주산리
·황룡부주등(黃龍浮舟嶝)【산】주산 남쪽에 있는 산. 황룡부주형(황룡부주형) 이라고 전해 온다. `고서면 주산리
·금성리(金城里)〔금성〕【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금성산(金城山) 밑이 되어 금성(金城)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문암리(文岩里), 부곡(釜谷), 평신리(平新里)를 병합해서 금성리(金城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금성리
·가짓몰고랑【골】통시암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 가재가 많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금성리
·개정자들【들】평신기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금성리
·공알바우【바위】하성리 서쪽에 있는 바위. 공알(음핵)처럼 생겼다. `금성면 금성리
·꽃남쟁이【들】소잡는골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금성리
·나뭇가마실【골】가마실 너머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노적봉【산】금성 북쪽에 있는 산. 모양이 노적처럼 생겼다. `금성면 금성리
·다랭굴〔월현곡〕【골】평신기 서쪽엥 있는 골짜기. 달이 골짜기 위로 떠오른다. `금성면 금성리
·도독바우【바위】칡등 동북쪽에 있는 바위. 도둑이 숨어 살았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금성리
·뒷골【골】평신기 뒤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들시암【우물】연동골에 있는 샘. `금성면 금성리
·마죽골〔마지골〕【골】평신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마지골【골】→마죽골. `금성면 금성리
·배너메【들】안산밑 북쪽에 있는 들. 옛날에 배가 넘어다녔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금성리
·부영골【골】마죽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부엉이가 살던 부엉이집이 있었다. `금성면 금성리
·북당골【골】서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이 있었음 `금성면 금성리
·분산등【등】설산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 마을터였는데 불이 나서 폐촌되었다. `금성면 금성리
·사당배미【논】부영골 동쪽에 있는 논. 옛날에 홀아비가 사당과 자고서 주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금성리
·새터건네【들】새터 건너편에 있는 들. `금성면 금성리
·서당골【골】사당배미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금성면 금성리
·서석골〔우식곡〕【골】다랭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설산골〔안산〕【골】채알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서씨의 선산이 있다. `금성면 금성리
·섬걸【들】진대배미 북쪽에 있는 들. 섬이 있다. `금성면 금성리
·섬걸보【보】섬걸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금성리
·소동쟁이【들】개정자 서쪽에 있는 들. 거기서 소를 잡았다고 한다. `금성면 금성리
·소잡는골【골】개정자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도둑이 훔친 소를 이 곳에서 잡았다고 한다. `금성면 금성리
·시리봉【산】평신기 북쪽에 있는 산. 엎어 놓은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금성면 금성리
·안산【골】→설산골. `금성면 금성리
·안산밑【들】안산 밑에 있는 들. `금성면 금성리
·연동곡(蓮洞谷)【골】→연동골. `금성면 금성리
·연동골〔연동곡〕【골】평신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옻판바우【바위】황새봉 서북쪽에 있는 바위. 옻판이 새겨져 있다. `금성면 금성리
·우식곡(牛息谷)【골】→서석골. `금성면 금성리
·월현곡(月峴谷)【골】→다랭굴. `금성면 금성리
·작은골【골】큰골 서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접시바우【바위】문암 남쪽에 있는 바위. 접시처럼 납작하다. `금성면 금성리
·정깃등〔정주등〕【등】평신기 북쪽에 있는 등성이. 옛날 배가 쉬어 넘어갔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금성리
·정심바우【바위】문암리 동쪽에 있는 바위. 정오가 되면 그늘이 지므로 이 위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다. `금성면 금성리
·정주등(정주嶝)【등】→정깃등. `금성면 금성리
·좃탯거리【들】탑거리 밑에 있는 들. 전에 낚시질을 했다 한다. `금성면 금성리
·진대배미【논】개정자들에 있는 논. 진대(돛대)처럼 길쭉하다. `금성면 금성리
·채알봉〔치알봉〕【산】가짓몰고랑 동쪽에 있는 산. 채알(차일)을 친 형국이다. `금성면 금성리
·치알봉【산】→채알봉. `금성면 금성리
·칡등【등】마실재 북쪽에 있는 등성이. 칡이 많다. `금성면 금성리
·큰골【골】외앗골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금성면 금성리
·탑거리【들】개정자 북쪽에 있는 들. 탑이 있었다. `금성면 금성리
·통시암【우물】통시암들에 있는 샘. 통을 짜 넣었다. `금성면 금성리
·통시암들【들】평신기 동쪽에 있는 들. 통시암이 있다. `금성면 금성리
·투구봉【산】시리봉 북쪽에 있는 산. 투구 형국이다. `금성면 금성리
·평풍바우【바위】시리봉에 있는 바위. 평풍(병풍)을 둘러 친 것 같이 생겼다. `금성면 금성리
·황사봉(黃巳峯)【산】→황새봉. `금성면 금성리
·황새봉〔황사봉〕【산】평신기 남쪽에 있는 산. `금성면 금성리
·대곡리(帶谷里)〔대곡, 대실〕【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띠처럼 생겼다고 하여 대실
또는 대곡(帶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손곡(巽谷)과 산이천(山伊川), 외추동(外楸洞)을 합하여
대곡리(帶谷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대곡리
·구렁보【보】산이천 서쪽에 있는 보 `금성면 대곡리
·굼들【들】손우실 동쪽에 있는 들. 천수답으로 구름이 끼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대곡리
·금만등【등】대실 남동쪽에 있는 등성이. `금성면 대곡리
·꼭두말보【보】구렁보 동쪽에 있는 보. 꼭두말(꼭지머리)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대곡리
·둥근바우【바위】둥근바웃등에 있는 둥근 바위. `금성면 대곡리
·둥근바웃등【등】대실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둥근바우가 있다. `금성면 대곡리
·땀띠기시암【우물】소누실 서쪽에 있는 샘. 물이 차서 목욕하며 땀띠가 죽는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대곡리
·만화실【골】소누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대곡리
·먹굴【골】만화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먹처럼 검다. `금성면 대곡리
·모래보【보】장백보 동쪽에 있는 보. 모래가 많다. `금성면 대곡리
·모퉁이들【들】장백들 서쪽 모퉁이에 있는 들. `금성면 대곡리
·몰궁고리보【보】용대보 동쪽에 있는 보. `금성면 대곡리
·사락골【골】용구초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대곡리
·소태쟁이【산】대실 서북쪽에 있는 산. `금성면 대곡리
·시암보【보】모래보 동쪽에 있는 보. 시암이 있다. `금성면 대곡리
·용구초리【골】먹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대곡리
·용대보【보】시암보 동쪽에 있는 보. `금성면 대곡리
·장백들【들】굼들 서쪽에 있는 기다란 들. `금성면 대곡리
·장백보【보】장백들에 있는 보. `금성면 대곡리
·대성리(大成里)〔대성〕【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면(泉面)의 지역이었다. 향교의 대성전(大成殿)이 있어서 대성(大成)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곡리(蜂谷里)와 용면(龍面)의 정각리(正角里), 양지리(陽地里), 치등리(峙
嶝里) 일부를 합하여 대성리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대성리
·남산(南山)【산】대성 남쪽에 있는 산. `금성면 대성리
·도채비다리【다리】대성리에 있는 다리. 도깨비가 건너 다닌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대성리
·부엉데미【바위】남산에 있는 바위. `금성면 대성리
·산성(山城)【성】버실 동북쪽에 있는 성. 임진란 때 의병들이 쌓았다. `금성면 대성리
·새갈창【골】대성리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대성리
·샛가래【들】새갈창에 있는 들. `금성면 대성리
·애기바우【바위】정각산에 있는 바위. `금성면 대성리
·옥녀봉(玉女峰)【산】대성리에 있는 산. `금성면 대성리
·정각산(正角山)【산】정각 뒤에 있는 산. `금성면 대성리
·덕성리(德成里)〔덕성〕【리】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둔덕에 마을이 이룩되어서 덕성(德成)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행정리(杏亭里), 영월리(迎月里), 시목리(枾木里)를 합하여 덕성리(德成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덕성리
·가마실들【들】아래툇굴 동쪽에 있는 들. 가마솥 형국이다. `금성면 덕성리
·각시바우【바위】덕진안에 있는 바위. `금성면 덕성리
·고지메〔고지산〕【산】행정 뒤에 있는 산. 고지(곶)로 되었다. 조선조 때 산이름을 딴 면이 있었다. `금성면 덕성리
·고지산(高之山)【산】→고지메. `금성면 덕성리
(舟津), 부곡(釜谷), 평신기(平新基), 행정(杏亭), 영월(迎月), 시목(枾木), 덕성(德成), 손곡(巽谷), 산이천(山伊川), 대곡(帶谷
), 봉서(鳳棲), 장항(獐項), 비내동(飛乃洞), 와룡촌(臥龍村), 장재(長財), 가라곡(加羅谷), 봉황동(鳳凰洞), 원율(原栗), 오평(
五坪), 매곡(梅谷), 노천동(盧川洞), 외추동(外楸洞)의 23개 동리를 관할하다가, 일제 때인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폐지되고,
전 지역이 금성면으로 들어갔다. `금성면 덕성리
·군교(軍橋)【다리】→군더리. `금성면 덕성리
·군교들(軍橋들)【들】→군더리들. `금성면 덕성리
·군더리〔군교〕【다리】군더리들에 있는 다리. `금성면 덕성리
·군더리들〔군교들〕【들】덕성 동남쪽에 있는 들. 군더리가 있다. `금성면 덕성리
·깍굴꼴착【골】시목 동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깍굴들【들】깍꿀꼴착에 있는 들. `금성면 덕성리
·담배밭굴【골】성적굴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담배를 많이 갈았다. `금성면 덕성리
·덕진안〔용진안〕【골】외밭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혈이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덕성리
·도독골【골】덕진안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도둑이 숨어 살았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덕성리
·뒨전골【골】시목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둔전이 있었다. `금성면 덕성리
·무젯등【등】덕성 남족에 있는 등성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금성면 덕성리
·샛까끔【산】덕성 북쪽에 있는 산. 소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덕성리
·성적굴【골】웃툇굴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쌍시암〔쌍천〕【둠벙】역적고개 밑에 있는 한쌍의 둠벙. 물이 잘 난다. `금성면 덕성리
·쌍시암【우물】안산 밑에 있는 한 쌍의 샘. `금성면 덕성리
·쌍천(雙川)【둠벙】→쌍시암.`금성면 덕성리
·아래툇굴【골】담배밭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안산(案山)【산】영월 앞에 있는 산. `금성면 덕성리
·여남다랭이【논】여남다랭이들에 있는 논. 논배미가 몇 개 안 된다. `금성면 덕성리
·여남다랭이들【들】시목 서쪽에 있는 들. 여남다랭이가 있다. `금성면 덕성리
·여시밭등【등】도독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 여우굴이 있다. `금성면 덕성리
·외밭굴【골】덕성리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외앗굴【골】덕성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외앗굴들【들】외앗굴에 있는 들. `금성면 덕성리
·용진안【골】→덕진안. `금성면 덕성리
·우렁실들【들】시목 서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덕성리
·웃툇굴【골】덕진안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덕성리
·원보(元洑)【보】덕진안 입구에 있는 보. 보 중에서 으뜸. `금성면 덕성리
·작수끄댕이【보】→작수보. `금성면 덕성리
·작수보(作水洑)〔작수끄댕이〕【보】원보 서쪽에 있는 보. 물길을 팠다. `금성면 덕성리
·장구시암【둠벙】가마실들에 있는 둠벙. 장구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금성면 덕성리
·탕수배미【논】깍굴에 있는 논. `금성면 덕성리
·하가배미【논】깍굴 남쪽에 있는 논. 하씨가 경작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덕성리
·행굣들【들】가마실들 동남쪽에 있는 들. 향교답이 있다. `금성면 덕성리
·행굣보【보】행굣들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덕성리
·봉서리(鳳棲里)〔봉서〕【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주위의 지형이 봉황이 깃드는 형국으로,
봉서(鳳棲)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항(獐項), 비내동(飛乃洞), 와룡촌(臥龍村) 일부를 합하여 봉
서리(鳳棲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봉서리
·가나실【들】메무동 동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각산〔각시산〕【산】연기포 동북쪽에 있는 산. `금성면 봉서리
·각시산【산】→각산. `금성면 봉서리
·간짐밖【들】금당실 서쪽에 있는들. `금성면 봉서리
·거치레【들】원덕골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건것보【보】숲쟁이 서쪽에 있는 보. `금성면 봉서리
·건네사태【골】초장골 남족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고가지터(古家趾터)【산】장항 서쪽에 있는 산. 옛 집터가 있다. `금성면 봉서리
·고지매【산】좆박등 동쪽에 있는 산. `금성면 봉서리
·고지매들【들】고지매 밑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구렁골【골】고지매 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국챙이【들】조등재이 동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굴바우【바위】굴바웃등에 있는 바위. 큰 굴이 뚫려 있다. `금성면 봉서리
·굴바웃등【등】독숨묏거리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굴바위가 있다. `금성면 봉서리
·금당실【들】도구메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남거리〔남걸들〕【들】참시암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남걸들【들】→남거리. `금성면 봉서리
·너무시암【우물】거치레 동쪽에 있는 샘. `금성면 봉서리
·다랑굴【들】와룡 남동쪽에 있는 마을. `금성면 봉서리
·대판골【골】건네사태 동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도구메【들】가나실 동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도천리들【들】독숨묏거리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독섬【섬】와룡 앞들에 있는 섬. 돌로 이루어졌다. `금성면 봉서리
·독숨묏거리【산】보름독보 남쪽에 있는 산. 큰 돌이 숨어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봉서리
·뒷멧갓【둘】외앗굴 서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메무동【들】남거리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물방앗거리【들】서답바우 북쪽에 있는 들. 전에 물방아가 있었다. `금성면 봉서리
·보름독보【보】너더리 서쪽에 있는 보. `금성면 봉서리
·부숭굴【들】다랑굴 동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비락바우【바위】좆박등에 있는 바위. 벼락 맞아 둘로 쪼개졌다. `금성면 봉서리
·사두산(巳頭山)【산】물방앗거리 북쪽에 있는 산. 뱀머리 처럼 생겼다. `금성면 봉서리
·사이내【산】→연기포. `금성면 봉서리
·사이내들【들】간짐밖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사이내보【보】사이내들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봉서리
·삼현영당(三賢影堂)【사당】와룡리에 있는 석헌(石軒) 최천범(崔天範)의 영당. `금성면 봉서리
·서답바우【바위】국챙이 남쪽에 있는 바위. `금성면 봉서리
·소등재이【들】굴바우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쇄숙골【골】사두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쇄숙골들【들】쇄숙골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숲쟁이【들】뒷멧갓 서쪽에 있는 들. 숲이 있다. `금성면 봉서리
·숲쟁이보【보】숲쟁이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봉서리
·아래방매【골】비내동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안산(案山)【산】노리목 앞에 있는 산. `금성면 봉서리
·연기포〔사이내〕【산】사이내들에 있는 산. `금성면 봉서리
·외앗굴【골】대판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용시암【우물】비내동 남쪽에 있는 샘. 용이 승천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봉서리
·웃방매【골】아래방매 위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원덕골【골】쇄숙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육효정문(六孝旌門)【정문】와룡 입구에 있는 정문. `금성면 봉서리
·장항교(獐項橋)【다리】너더리 앞에 있는 다리. `금성면 봉서리
·재너메【들】너무시암 서쪽에 있는 들. 고개 너머가 된다. `금성면 봉서리
·좆박등【등】노리목 남쪽에 있는 등성이. 좆박바우가 있다. `금성면 봉서리
·좆박바우【바위】좆박등에 있는 바위. 남근처럼 생겼다. `금성면 봉서리
·집앞보【보】새터몰 앞에 있는 보. `금성면 봉서리
·참시암【우물】참시암등에 있는 샘. 물맛이 차고 좋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봉서리
·참시암등【등】부숭굴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금성면 봉서리
·천질갓【골】장항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오솔길이 변하여 내가 되었다. `금성면 봉서리
·초장골【골】구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서리
·초장골들【들】초장골에 있는 들. `금성면 봉서리
·큰방천【들】참시암등 남서쪽에 있는 들. 큰 방천 아래가 된다. `금성면 봉서리
·탑거리【들】→합수통거리. `금성면 봉서리
·텃굴【골】비내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마을이 있었다. `금성면 봉서리
·합수통거리〔탑거리〕【들】숲쟁이 서쪽에 있는 들. 1 탑이 서 있다. 2 물이 합쳐진다. `금성면 봉서리
·봉황리(鳳凰里)〔봉황, 봉황동〕【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봉황산(鳳凰山) 밑이 되어 봉황동
(鳳凰洞) 또는 봉황(鳳凰)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라실(가라곡.加羅谷), 장재리(長財里), 대곡
리(帶谷里) 일부를 합하여 봉황리(鳳凰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봉황리
·가쟁이【골】죽림동 북쪽에 있는 마을. `금성면 봉황리
·국굴【골】짓댕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너마지보【보】서마지보 서쪽에 있는 보. `금성면 봉황리
·대숲뒤【골】불박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숲 뒤가 된다. `금성면 봉황리
·덩건바우【바위】덩건바웃등에 있는 바위. `금성면 봉황리
·덩건바웃등【등】일곱마지보 동쪽에 있는 등성이. `금성면 봉황리
·불바우【바위】불박등에 있는 바위. `금성면 봉황리
·불박등【등】봉황리에 있는 등성이. 불바우가 있다. `금성면 봉황리
·빈자터【들】죽림동 동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봉황리
·삿굴【골】국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서마지보【보】빈자터 남쪽에 있는 보. `금성면 봉황리
·웍굴【골】가쟁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유왕굴【골】팩징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일곱마지보【보】너마지보 서쪽에 있는 보. `금성면 봉황리
·절텃굴【골】죽림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금성면 봉황리
·주걱등【등】웍굴 서쪽에 있는 등성이. 주걱처럼 생겼다. `금성면 봉황리
·주왕굴【골】삿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중묏봉【산】주걱등 서쪽에 있는 산. `금성면 봉황리
·짓댕이【골】대숲뒤 남족에 있는 골짜기. 산제를 지내던 당집이 있었다. `금성면 봉황리
·팩징이【골】죽림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봉황리
·강진들【들】석현 서북쪽에 있는 보. `금성면 석현리
·강진보【보】강진들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석현리
·댕밑【들】석현 서쪽에 있는 들. `금성면 석현리
·새보【보】석현리에 새로 된 보. `금성면 석현리
·외추리(外楸里)〔외추동, 외추〕【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추성산의 바깥쪽이 되어 외추동(
外楸동) 또는 외추(外楸)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매곡(梅谷)과 노천동(盧川洞)을 합하여 외추리(外
楸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외추리
·괴비산【산】노천 동남쪽에 있는 산. 괴비(고양이) 형국이다. `금성면 외추리
·금들【들】눈들 서북쪽에 있는 들. 금이 묻혀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눈들【들】동대들 서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외추리
·달밧등【등】노천 서쪽에 있는 등성이. 옥토망월형(옥토망월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동대들【들】장성배기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외추리
·땅까시밭등【등】점굴 밑에 있는 등성이. 땅까시가 많다. `금성면 외추리
·똥매【산】조강정이 위쪽 들에 있는 작은 산. `금성면 외추리
·만화실【골】장배깃들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외추리
·매봉【산】노천 서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나는 매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방애실보【보】외추 앞에 있는 골짜기. 매곡 바깥쪽. `금성면 외추리
·부채골【골】땅까시밭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산이 부채처럼 생겼다. `금성면 외추리
·새정짓들【들】신춘들 남쪽에 있는 들. 새로 지은 정자가 있었다. `금성면 외추리
·새정짓보【보】새정짓들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외추리
·서답보【보】옷밭보 서쪽에 있는 보. 서답(빨래)하던 터가 있다. `금성면 외추리
·소태보【보】외추 남쪽에 있는 보. 소가 빠져 죽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신춘들【들】외추 서쪽에 있는 들. 전에 신춘 마을이 있었다. `금성면 외추리
·옷밭보【보】소태보 남쪽에 있는 보. 보를 낼 때 머슴에게 옷 한 벌 지어 주고 일을 시켰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용복골(龍伏谷)【골】노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장배깃들【들】금들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외추리
·장성배기【들】새정짓들 남쪽에 있는 들. 장승이 서 있었다. `금성면 외추리
·점굴【골】매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사기 그릇을 만들던 사기점이 있었다. `금성면 외추리
·조강정이【산】외추 북쪽에 있는 산. 조강정이 있었다. `금성면 외추리
·중산골【골】매곡 남쪽에 있는 골짜기. 중을 불살랐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진밭골【골】달밭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긴 밭이 있다. `금성면 외추리
·회룡산(回龍山)【산】용복골 남쪽에 있는 산. 용이 새끼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금성면 외추리
·원율리(原栗里)〔원율〕【리】 조선시대엔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옛날 원율현(原栗峴)이 있어서 원율(原栗)이라 하
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평리(五坪里)와 우면(牛面)의 원우리(院隅里)를 합하여 원율리(原栗里)로 정
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원율리
·갈모배미【논】독홈배미 서쪽에 있는 논. 갈모처럼 생겼다. `금성면 원율리
·관짐바대들【들】구십무리밋들 북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율리
·구레배미【논】갈모배미 밑에 있는 논. `금성면 원율리
·구십무리밋들【들】원텃골 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율리
·남문등(남문등)【등】대비찌락바우 북쪽에 있는 등성이. 금성산성의 남문이 있다. `금성면 원율리
·다릿골【골】원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원율리
·대비찌락바우【바위】마당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대비찌락(대비)으로 쓴 것 같은 흔적이 있다. `금성면 원율리
·댈깔꾸막【산】오평 북쪽에 있는 산. 가팔라서 오르기가 되다 한다. `금성면 원율리
·댕밑【들】오평 서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율리
·독홈배미【논】수지기배미 동쪽에 있는 논. 돌로 홈을 놓아 물을 댔다. `금성면 원율리
·마당바우【바위】다릿골 서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다. `금성면 원율리
·보름등【들】오평 동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율리
·보름등보【보】보름등에 물을 대는 보. `금성면 원율리
·서당골【골】외얏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금성면 원율리
·섬배미【논】관짐바대들에 있는 논. 섬이 있다. `금성면 원율리
·수지기배미【논】섬배미 동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수지기(수제비) 한 그릇을 얻어먹고 주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원율리
·외앗골【골】원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율원현(栗原縣)의 왼편. `금성면 원율리
·요강배미【논】장구배미 서쪽에 있는 논. 흉년에 요강 한개와 바꾸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원율리
·원모랭이들【들】원모랭이 앞에 있는 들. `금성면 원율리
·원텃골【골】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율원현이 있을 때 원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원율리
·장구배미【논】구레배미 동쪽에 있는 논. 장구처럼 가운데가 잘록하다. `금성면 원율리
·진배미【논】요강배미 동쪽에 있는, 긴 배미의 논. `금성면 원율리
·큰골【골】원율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금성면 원율리
·탑배미【논】원모랭이 남쪽에 있는 논. 탑이 있었다. `금성면 원율리
·원천리(元泉里)〔원천〕【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동면(泉洞面)의 지역이었다. 큰 샘이 있어서 원천(元泉)이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원리(內院里), 외천리(外泉里), 내동(內洞) 일부를 합하여 원천리(元泉里)로 정하고, 금
성면에 넣었다. `금성면 원천리
·가락시암【우물】베틀바우 밑에 있는 샘. 가락(가락지)처럼 둥그렇게 생겼다. `금성면 원천리
·각굴【골】안골 북쪽 가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원천리
·건넘굴【골】팩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원천 건너가 된다. `금성면 원천리
·뉘에머리【산】건널굴 남쪽에 있는 산. 누에머리처럼 생겼다. `금성면 원천리
·맷굴【골】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원천리
·방애드리【들】안시암골 서쪽에 있는 들. 못 쓰는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금성면 원천리
·베틀바우【바위】연이실재 북쪽에 있는 바위. 베틀처럼 생겼다. `금성면 원천리
·선달쟁이【들】아랫시암깨 동남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천리
·아랫시암깨【들】당산고개 서쪽에 있는 들. `금성면 원천리
·안골【골】조산골 남쪽 안에 있는 골짜기. `금성면 원천리
·연목골【들】외동 동쪽에 있는 들. 연못이 있었다. `금성면 원천리
·옥녀봉(玉女峰)【산】내천 동북쪽에 있는 산. 옥녀탄금형(옥녀탄금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원천리
·옹지봉〔집답봉〕【산】당재 북쪽에 있는 산. `금성면 원천리
·요강배미【논】안굴에 있는 논. 요강 팔아 샀다고 전해 온다. `금성면 원천리
·웃굴【들】구렁고개 북쪽에 있는 들. 마을 위가 된다. `금성면 원천리
·조산골【골】텃굴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돌로 쌓은 인조산이 있다. `금성면 원천리
·집답봉【산】→옹지봉. `금성면 원천리
·큰골【골】맷굴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금성면 원천리
·텃굴【골】웃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있었다. `금성면 원천리
·팩개【산】외천 서쪽에 있는 산. `금성면 원천리
·풍덕시암【우물】외천 입구에 있는 샘. `금성면 원천리
·건넌들【들】창촌 남쪽에 있는 들. 개울 건너가 된다. `남면 가암리
·건넌들보【보】건넌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가암리
·걸망봉【산】두뭇골 서남쪽에 있는 산. 전에 이 곳이 바다로서 배를 맸다고 전해 온다. `남면 가암리
·고라몰【골】외산이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가암리
·구멍바우【바위】가암 뒤에 있는 바위. 구멍이 있다. `남면 가암리
·기선들【들】아랫보 남쪽에 있는 들. `남면 가암리
·꽃밭등【등】망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참꽃이 많이 핌. `남면 가암리
·난조봉【산】꽃밭등 북쪽에 있는 산. 전에 기생이 놀았다고 전해 온다. `남면 가암리
·도리봉【산】준창봉 북쪽에 있는 산. `남면 가암리
·두뭇골【골】자창이 서남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 `남면 가암리
·뒷골【골】창촌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뒤가 된다. `남면 가암리
·망바우【바위】망바우산에 있는 바위. 산세가 장군대좌형인데 망보는 보초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남면 가암리
·망바우산【산】가남정이 남쪽에 있는 산. 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가암리
·모시골【골】망바위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가암리
·무저울〔수연평〕【들】건넌들 동쪽에 있는 들. `남면 가암리
·무저울보【보】무저울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가암리
·비릿보【보】비릿보들에 물을 대는 보. 바닥에 비리(납짝한 바위)가 많다. `남면 가암리
·비릿보들【들】기선들 북쪽에 있는 들. `남면 가암리
·수연평【들】→무저울. `남면 가암리
·신남정들【들】준참평 남쪽에 있는 들. `남면 가암리
·신남정보【보】신남정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가암리
·쌍렬각(쌍렬각)【정문】청촌 어귀에 있는 김 영식의 아내 밀양 박씨와 김남옥의 아내 밀양 박씨의 정문. `남면 가암리
·아랫보【보】가남정이 서쪽에 있는 보. `남면 가암리
·안산(안山)【산】뒷골 앞에 있는 산. 청촌과 안대가 된다. `남면 가암리
·안산보【보】안산 밑에 있는 보. `남면 가암리
·외산이【골】처눗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가암리
·준참보【보】준참평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가암리
·준참평【들】탑거리 남쪽에 있는 들. `남면 가암리
·준창봉【산】청촌 남쪽에 있는 산. `남면 가암리
·처눗골【골】준창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가암리
·탑거리【들】한사리 북쪽에 있는 들. 탑이 있었다. `남면 가암리
·한사리【들】무저울 남쪽에 있는 긴 들. `남면 가암리
·한사리보【보】한사리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가암리
·경상리(京相里)〔경상굴, 경상동〕【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경상굴 또는 경상동(京相洞)이라 하
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환암촌(環巖村)을 합하여 경상리(京相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
면 경상리
·경상교(京相橋)【다리】경상굴 서북쪽에 있는 다리. 1956년 4월 15일 준공. `남면 경상리
·경상리보【보】환암촌보 서쪽에 있는 터. 전에 마을이 있었다. `남면 경상리
·두뭇골【골】경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경상리
·뒷골【골】경상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뒤가 된다. `남면 경상리
·뒷들【들】봉암촌 남쪽에 있는 들. `남면 경상리
·물레방애보【보】경상리보 북쪽에 있는 보. 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남면 경상리

·범바우【바위】왕당이에 있는 바위. 범굴이 있다. `남면 경상리
·샛꼬리【골】큰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와우 명당이 있는데 그 꼬리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남면 경상리
·왕당이【골】정재막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경상리
·왕당이들【들】뒷들 서북쪽에 있는 들. `남면 경상리
·정재막굴【골】웃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경상리
·큰봉【산】웃말 남쪽에 있는 큰 산. `남면 경상리
·환암촌보【보】환암촌 앞에 있는 보. `남면 경상리
·구산리(九山里)〔거북뫼, 구산〕【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거북뫼(거북산)가 있어서 거북뫼 또는
구산(龜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단리(長丹里)를 합하여 구산리(九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면 구산리
·가는골【골】점골 서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남면 구산리
·거북뫼〔구산〕【산】작은말 남서쪽에 있는 산. 산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다. `남면 구산리
·고저리【산】거북뫼 서쪽에 있는 산. 산 모양이 조리처럼 생겼다. `남면 구산리
·구산(龜山)【산】→거북뫼. `남면 구산리
·금적골【골】큰봉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구산리
·똥뫼등【산】고저리 서쪽 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산. `남면 구산리
·매봉【산】방아재 남서쪽에 있는 산. 날아가는 매 형국으로 되었다고 전해 온다. `남면 구산리
·미영발골【골】거북뫼 동쪽에 있는 골짜기. 미영(무명)밭이 있었다. `남면 구산리
·방천들【들】장단 남쪽, 방천(防川:뚝) 밑에 있는 들. `남면 구산리
·부엉바우【바위】조왓들 북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집이 있다. `남면 구산리
·설밑들【들】방천들 서쪽에 있는 들. `남면 구산리
·설밑보【보】설밑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구산리
·쇠밭등【등】가는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 새로 된 밭이 있다. `남면 구산리
·외밧들【들】설밑들 위에 있는 들. `남면 구산리
·외밧보【보】외밧들에 있는 보. `남면 구산리
·점골【골】미영밭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독(질그릇)을 만드는 독점이 있었다. `남면 구산리
·조왓들【들】홈거리 위에 있는 들. `남면 구산리
·조왓들보【보】조왓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구산리
·초장골【골】거북뫼에 있는 골짜기. `남면 구산리
·큰배미【논】큰배밋들에 있는, 큰 배미의 논. `남면 구산리
·큰배밋들【들】조왓들 위에 있는 들. 큰배미가 있다. `남면 구산리
·큰봉【산】큰말 북쪽에 있는, 큰 봉우리의 산. `남면 구산리
·홈거리【들】외밧들 위에 있는 들. 홈을 놓아 물을 댔다. `남면 구산리
·만월리(滿月里)〔망월, 만월〕【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망월봉(望月峰) 밑이 되어 망월(望月)
또는 만월(滿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룡촌(九龍村), 석계리(石溪里), 쌍룡리(雙龍里), 용연
촌(龍淵村)을 합하여 만월리(滿月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면 만월리
·갈쟁이【골】점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만월리
·공시미【골】재밭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만월리
·굽은대이【모롱이】쌍룡촌 북쪽에 있는 있는 모롱이. `남면 만월리
·꾀꼬리봉【산】쌍룡촌 북쪽에 있는 산. 꾀꼬리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뚜깨비등【등】쌍룡촌 남쪽에 있는 등성이. 뚜꺼비처럼 생겼다. `남면 만월리
·망월봉(望月洑)【산】망월촌 뒤에 있는 산. 옥토망월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매봉【산】꾀꼬리봉 남쪽에 있는 산. `남면 만월리
·비암장굴【골】굽은대이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뱀과 같이 길고 꾸불꾸불하다. `남면 만월리
·삼태봉(三太峯)【산】매봉 북쪽에 있는 산. 3개의 봉우리로 되었다. `남면 만월리
·샘새골【골】용무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샘이 있다. `남면 만월리
·생오지(生吳地)【골】쌍룡촌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오씨가 피난했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용무곡(龍舞谷)【골】→용무골. `남면 만월리
·용무골〔용무곡〕【골】쌍룡촌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이 춤추며 승천했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용소(龍沼)【소】쌍룡촌 앞에 있는 소. 전에 용이 올라갔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재밭골【골】매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재가 있다. `남면 만월리
·잿들【들】상촌 동쪽에 있는 들. 땅이 재를 뿌린 것 같이 비옥하다 한다. `남면 만월리
·점골【골】공시미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남면 만월리
·지왓골【골】샘새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기와를 구웠다고 전해 온다. `남면 만월리
·초장골【골】지왓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초빈(가매장)을 하던 곳이다. `남면 만월리
·칠룡등(七龍嶝)【등】망월촌 남쪽에 있는 등성이. `남면 만월리
·코재이【등】칠룡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코처럼 생겼다. `남면 만월리
·풍정골(風井골)【골】망월촌 남쪽에 있는 등성이. `남면 만월리
·무동리(茂洞里)〔무동촌, 무동〕【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북산 밑이 되어 아이가 춤을 추는 형
국이므로 무동촌(舞童村) 또는 무동(舞童)이라 하였다 하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수구촌(守口村)을 합하여
무동리(茂洞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면 무동리
·각시보【보】서만보 동쪽에 있는 보. `남면 무동리
·더우시암【둠벙】외앗들에 있는 둠벙. 물이 매우 차서 땀띠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무동리
·도투바우【바위】무동촌 서쪽에 있는 바위. 들에 불쑥 돋아 있다. `남면 무동리
·매봉【산】무동촌 동쪽에 있는 산. 매가 깃들었다. `남면 무동리
·무등금광(無等金鑛)【광】수구촌 북쪽에 있는 광산. 금을 캤으나 지금은 휴광되었다. `남면 무동리
·방애들【들】수구촌 앞에 있는 들. 물방아가 있었다. `남면 무동리
·병목골【골】→비럭골. `남면 무동리
·북산〔종산〕【산】무동촌 북서쪽에 있는 산. 북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남면 무동리
·비럭골〔병목골〕【골】큰골 북쪽에 골짜기. 지형이 병목처럼 생겼다. `남면 무동리
·서만보【보】방애들 밀에 있는 보. 섬이 있었다. `남면 무동리
·성적골【골】북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무동리
·성지비들【들】각시보 동쪽에 있는 들. `남면 무동리
·쉿들보【보】각시보 동쪽에 있는 보. 숫돌이 나온다. `남면 무동리
·외앗들【들】성지비들 서남쪽에 있는 들. 마을 왼쪽. `남면 무동리
·용시암【우물】무동촌 서쪽에 있는 샘. 전에 용이 올라갔다고 전해 온다. `남면 무동리
·장배기들【들】무동촌 동남쪽에 있는 들. 전에 장이 섰다한다. `남면 무동리
·잿들【들】풍년골 남쪽에 있는 들. `남면 무동리
·점골【골】진틀배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남면 무동리
·젯댕이【들】장배기를 동남쪽에 있는 들. 전에 제당이 있었다. `남면 무동리
·종산(鍾山)【산】→북산. `남면 무동리
·진틀배기【골】비럭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진틀(진당)이 있다. `남면 무동리
·큰골【골】매봉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남면 무동리
·큰까끔【산】진틀배기 북쪽에 있는 산. `남면 무동리
·통시암【우물】장배기들에 있는 샘. 통을 짜 넣었다. `남면 무동리
·풍년골【들】장배기를 동남쪽에 있는 들. 땅이 비옥하여 해마다 풍년이 든다 한다. `남면 무동리
·가매바우【바위】큰음달에 있는 바위. 가마처럼 생겼다. `남면 연천리
·개정이들【들】연천 앞에 있는 들. 개정자가 있다. `남면 연천리
·개정이보【보】개정이들에 있는 보. `남면 연천리
·궁굴너들【산】가매바우 서쪽에 있는 산, 너덜겅이 있다. `남면 연천리
·금산(錦山)【산】서남들꼴창 서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깐치봉〔작산봉〕【산】외앗등 동남쪽에 있는 산. 작소형(작소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연천리
·꽃밭등【등】코재이 남쪽에 있는 등성이. 꽃이 많이 핌. `남면 연천리
·꾀꼴봉【산】깐치봉 동남쪽에 있는 산. 산 봉우리가 꾀꼬리집과 같이 생겼다 한다. `남면 연천리
·느래실【골】달동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달동굴【골】더덕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대판이【골】신붓골 서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남면 연천리
·대포리(大浦里)【들】꾀꼴봉 동쪽에 있는 들. `남면 연천리
·더덕골【골】좁은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더덕이 많이 났다. `남면 연천리
·뒷동산【산】찰건넘골 서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매봉【산】연천 남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바람골【골】연천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바람이 셈. `남면 연천리
·바람모팅이〔풍우〕【바위】새터 동쪽에 있는 바위. 4계절을 통하여 바람을 맞는다. `남면 연천리
·바람모팅이들【들】바람모팅이 밑에 있는 들. `남면 연천리
·바람모팅이보【보】바람모팅이들에 있는 보. `남면 연천리
·바람모팅이약물【약】바람모팅이 위에 있는 약샘. `남면 연천리
·배암촌【산】살구쟁이 남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새매기【골】연천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새목처럼 생겼다 한다. `남면 연천리
·서남등꼴창【골】안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선바우【바위】선바웃골에 있는 바위. 우뚝 서 있다. `남면 연천리
·선바웃골【골】좁은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선바위가 있다. `남면 연천리
·선바웃등【등】뒷동산 서쪽에 있는 등성이. `남면 연천리
·성적굴【골】바람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성적굴들【들】성적굴에 있는 들. `남면 연천리
·성적굴보【보】성적굴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연천리
·신붓골【골】팽풍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쏘쟁이바우【바위】대포리 북쪽에 있는 바위. `남면 연천리
·안산(안山)【산】바람모팅이 앞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외앗등【등】느래실 남쪽에 있는 등성이. `남면 연천리
·웃턱걸이바우【바위】성적굴에 있는 바위. `남면 연천리
·응골【골】대판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가 깊어서 어두컴컴하다. `남면 연천리
·작산봉(鵲山峯)【산】→깐치봉. `남면 연천리
·장자들【들】개정이들 서쪽에 있는 들. 장자(부자)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남면 연천리
·장자보【보】장자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연천리
·재걍골【골】금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적양골【골】배암춘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좁은골【골】응골 서남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남면 연천리
·좁은골【골】연천 북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남면 연천리
·중보(中洑)【보】중봇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연천리
·중봇들【들】장자를 서쪽에 있는 들. `남면 연천리
·찰건넘골【골】궁굴너들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연천리
·코재이【산】선바우 서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큰음달【산】꽃밭등 남서쪽에 있는 산. `남면 연천리
·팽풍산【산】연천 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팽풍(병풍)을 친 것처럼 죽 둘러싸고 있다. `남면 연천리
·풍우(風隅)【바위】→바람모팅이. `남면 연천리
·외동리(外洞里)〔외동〕【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창평 읍내에서 높은 산 밖에 외따로 떨어진 마
을이어서 외동(外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동리(外洞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외동리
·건넘굴【골】새모기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고막굴【골】노가리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관솔등【등】시룻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 `창평면 외동리
·구렁이보【보】홈거리에 있는 보. `창평면 외동리
·구시봉【산】→국수봉. `창평면 외동리
·국굴【골】고막굴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국굴들【들】국굴에 있는 들. `창평면 외동리
·국수봉(國守峯)〔구시봉〕【산】외동 동북쪽에 있는 산. 조선조 때 나라에 일이 있으면 봉화를 올렸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외
동리
·남박들【들】아릇모숙골 남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외동리
·담안에꼴착【골】해남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마당바우【바위】한대실에 있는 넓은 바위. 말 발자국이 있다 한다. `창평면 외동리
·붉은바우【바위】→호랑이바우. `창평면 외동리
·뻐드내【들】사장걸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외동리
·사장걸(射場걸) 【들】외동 남서쪽에 있는 들. 전에 사장이 있었다. `창평면 외동리
·세모시골【골】한대실 밑에 있는 들. `창평면 외동리
·소속굴【골】세모시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시룻골【골】독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아들바우【바위】아릇모숙골에 있는 바위.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외동리
·아릇모숙골【골】소속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안산(案山)【산】국굴 앞에 있는 산. `창평면 외동리
·저뭇등들【들】국굴 북쪽에 있는 들. `창평면 외동리
·저뭇등보【보】저뭇등들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외동리
·큰매기바우【바위】건넘굴에 잇는 바위. 메기처럼 생겼다. `창평면 외동리
·큰애기보【보】남박들에 있는 보. 큰애기(처녀)가 빠져 죽었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외동리
·한대실【골】국수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한박굴【골】관솔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해남골【골】아릇모숙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외동리
·호랑이바우〔붉은바우〕【바위】국굴에 있는 바위. ① 호랑이굴이 있다. ② 색깔이 붉다. `창평면 외동리
·홈거리【들】외동 남쪽에 있는 들. 홈을 댔다.
·인암리(仁岩里)〔기린바우, 인암〕【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기린바우가 있어서 기린바우 또는
인암(麟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인암리(仁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면 인암

·개바우【바위】인암 동쪽에 있는, 시커먼 바위. `남면 인암리
·공시밋들【들】토짓등 동쪽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기린바우〔인암〕【바위】인암 입구에 있는 바위. 기린같이 생겼다. `남면 인암리
·기선들【들】토짓등 동쪽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기선들보【보】기선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인암리
·다리건네보【보】물방애보 동남쪽에 있는 보. `남면 인암리
·대삿들【들】다리건네보 동남쪽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대삿들보【보】대삿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인암리
·대석골【골】연동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인암리
·등잔거리【산】인암 서쪽에 있는 산. 등잔거리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면 인암리
·매막등【등】인암 북쪽에 있는 등성이. `남면 인암리
·물방애보【보】새까끔보 남쪽에 있는 보. 물방아가 있었다. `남면 인암리
·베틀바우【바위】인암 북쪽에 있는, 베틀 모양의 바위. `남면 인암리
·새까끔보【보】기선들보 아래에 있는 보. `남면 인암리
·새터들【들】새터 앞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아들바우【바위】인암 남쪽에 있는 바위.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전해 온다. `남면 인암리
·연동골(蓮洞谷)【골】토짓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연꽃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남면 인암리
·연박골【골】연동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인암리
·인암(麟岩)【바위】→기린바우. `남면 인암리
·집앞들【들】팽나무정이 서북쪽에 있는 들. 마을 앞. `남면 인암리
·큰배미들【들】대삿들 동남쪽에 있은 들. 큰배미가 있다. `남면 인암리
·큰배미보【보】큰배미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인암리
·토옥골【들】새터 서쪽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토짓등【들】토옥골 북쪽에 있는 들. `남면 인암리
·토짓들보【보】토짓등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인암리
·팽나무정이【들】공시밋들 남쪽에 있는 들. 팽나무가 있었다. `남면 인암리
·정곡리(鼎谷里)〔속골, 정곡〕【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면)의 지역이었다. 안골짜기가 되어 속골 또는 정곡(鼎谷)
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봉리(士峯里)를 합하여 정곡리(鼎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
다. `남면 정곡리
·고산(고山)【산】→북산. `남면 정곡리
·권세남【산】평촌 남서쪽에 있는 산. `남면 정곡리
·깐치봉【산】평촌 남쪽에 있는 산. 산까치가 알을 품은 것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남면 정곡리
·뉘에머리【등】평촌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누에처럼 생겼다. `남면 정곡리
·독보(獨洑)【보】→욋보. `남면 정곡리
·뒤안산【산】평촌 서쪽에 있는 산. 마을 뒤가 된다. `남면 정곡리
·들찡이〔야정〕【들】평촌 동쪽에 있는 들. `남면 정곡리
·들찡이보【보】들찡이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정곡리
·모롱질【모롱이】평촌 동북쪽에 있는 모롱이. `남면 정곡리
·모리징이【들】들찡이 북쪽에 있는 들. `남면 정곡리
·북산〔고산〕【산】사봉실 남서쪽에 있는 산. `남면 정곡리
·새양골〔서양곡〕【골】평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정곡리
·서양곡(瑞陽谷)【골】→새양골. `남면 정곡리
·선바우〔입석〕【바위】뒤안산 봉우리에 서 있는 바위. `남면 정곡리
·숲징이【숲】장문터에 있는 숲. 쉬는 숲이 있다. `남면 정곡리
·신선대(神仙臺)【바위】북산 상봉에 있는 바위. 기암괴석이 많아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었다고 전해 온다. `남면 정곡리
·야정(野亭)【들】→들찡이. `남면 정곡리
·양마지기【들】평촌 서남쪽에 있는 들. 들이 개울을 중심으로 둘로 나뉘었다. `남면 정곡리
·양마지기보【보】양마지기에 물을 대는 보. `남면 정곡리
·오갈둠벙【둠벙】들찡이보 아래 있는 둠벙. 오리가 내려 앉았다. `남면 정곡리
·욋보〔독보〕【보】절골 북쪽, 무등산 아래 있는 보. 무산등에 구름이 끼면 물이 바로 붇는다고 전해 온다. `남면 정곡리
·입석(立石)【바위】→선바우. `남면 정곡리
·재정굴【골】안마을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정곡리
·절골【골】항굴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봉사가 있었다. `남면 정곡리
·정곡(鼎谷)【골】→정곡리. `남면 정곡리
·정곡교(鼎谷橋)【다리】장문터에 있는 다리. 1956년 4월 15일 준공되었다. `남면 정곡리
·중매들(중매들)【들】모리징이 동남쪽에 있는 들. `남면 정곡리
·팩징이【들】절골 앞에 있는 들. 팩징이숲이 있다. `남면 정곡리
·팩징이숲【숲】팩징이에 있는 숲. `남면 정곡리
·항굴【굴】절골 동북쪽에 있는 굴. `남면 정곡리
·향로봉(香爐峯)【산】평촌 동남쪽에 있는 산. 향로처럼 생겼다. `남면 정곡리
·지곡리(芝谷里)〔지실, 지곡〕【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지실 또는 지곡(芝谷)이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지석리(支石里)를 합하여 지곡리(芝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남면 지곡리
·고박골【골】→북바웃골. `남면 지곡리
·고박굴〔고암굴〕【굴】북바우에 있는 굴. `남면 지곡리
·고암굴【굴】→고박굴. `남면 지곡리
·광풍각(광풍각)【집】소쇄원에 있는 집. `남면 지곡리
·금교【다리】→금다리. `남면 지곡리
·금다리〔금교〕【다리】바르뫼 앞에 있는 다리. `남면 지곡리
·금산(金山)【산】지곡리에 있는 산. `남면 지곡리
·기암(畸菴)【짐】만수동에 있는 집. 정 철(정철)의 아들 기암의 문집을 인쇄하였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노자암【바위】→칠성바우. `남면 지곡리
·당나구배미【논】몰무덤거리에 있는 논. 전에 이 논을 부치고 당나귀를 길러 주었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도장골【골】만수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지곡리
·돌병풍〔석병〕【벼랑】식영정 밑에 있는 벼랑, 마치 병풍처럼 깎아 지른 듯하다. `남면 지곡리
·동막굴(東幕屈)【골】장원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식영정 동쪽. `남면 지곡리
·동지시암(冬至시암)【우물】동막굴에 있는 샘. 동지에 물이 나서 하지에 끊긴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만수동(萬壽洞)【골】지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지곡리
·매바우【바위】별뫼 서남쪽에 있는 바위. 매처럼 생겼다. `남면 지곡리
·명봉산(鳴鳳山)【산】장원봉 남쪽에 있는 산. `남면 지곡리
·몰무덤거리【들】지실 앞에 있는 들. 인조반정(인조반정) 때 급보를 전하러 왔던 말이 죽어 묻혔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발산(鉢山)【산】바르뫼 동쪽에 있는 산. 마을 뒤가 된다. `남면 지곡리
·벽간당(壁澗堂)【당】평무들에 있던 집. `남면 지곡리
·부용당(芙蓉堂)【당】식영정 밑에 있는 집. `남면 지곡리
·북바우【바위】북바웃골에 있는 바위. 북처럼 생긴 굴이 있다. `남면 지곡리
·북바웃골【골】지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북바우가 있다. `남면 지곡리
·삼봉(三峯)【산】장원봉, 효자봉, 열녀봉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 `남면 지곡리
·석병(石屛)【벼랑】→돌병풍. `남면 지곡리
·소쟁이들【들】식영정 앞에 있는 들. `남면 지곡리
·열녀봉(烈女峯)【산】효자봉 북서쪽에 있는 산. `남면 지곡리
·용추소(龍湫沼)【소】증암강에 있던 소. `남면 지곡리
·이문안(里門안)【들】바리매 앞에 있는 들. 수죽(수죽) 조 방직(조방직)의 자손들이 득세했을 때 세웠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
곡리
·장판각(藏判閣)【집】만수동에 있는 집. 구한말에 송강 정 철의 문집을 인쇄한 곳이다. `남면 지곡리
·저리매〔절의산〕【산】식영정 서쪽에 있는 산. `남면 지곡리
·저리매모팅이【모롱이】지곡리에 있는 모롱이. `남면 지곡리
·절의산(節義山)【산】→저리매. `남면 지곡리
·정자나무【나무】지실에 있는 은행나무. 둘레 1.5 아름, 수령 약 500년. `남면 지곡리
·조대바우(釣臺岩)【바위】환계에 있는 대. 김 덕령 장군이 낚시질했었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지숫골【골】만수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지곡리
·충효교(忠孝橋)【다리】지실에서 광주시 충효동으로 가는 다리. `남면 지곡리
·칠성바우(七星岩)〔노자암〕【바위】저리매 남쪽에 있는 바위. 일곱 개로 이루어졌다. `남면 지곡리
·평무들【들】지실 남쪽에 있는 들. 무진읍 터였다. `남면 지곡리
·하지시암(夏至시암)【우물】동지샘 옆에 있는 샘. 하지부터 물이 나서 동지에는 물이 끊어진다고 전해 온다. `남면 지곡리
·호두나뭇거리【들】강변말 남쪽에 있는 들. `남면 지곡리
·효자봉(孝子峯)【산】지곡리에 있는 산 `남면 지곡리
·풍암리(豊岩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화암촌(花岩
村), 학항(鶴項), 연풍정(連豊亭)을 합하여 연풍정(連豊亭)과 화암촌(花岩村)의 이름을 따서 풍암리(豊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
면에 넣었다. `남면 풍암리
·가는골【골】진밭골 동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남면 풍암리
·감남걸【산】꽃박굴 남쪽에 있는 산. 감나무가 있었다. `남면 풍암리
·게걸봉【산】어생이 동쪽에 있는 산. `남면 풍암리
·골모실【들】지방바우 북동쪽에 있던 들. `남면 풍암리
·금서동【골】학정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꽃바우【바위】꽃박굴에 있는 바위. 근처에 참꽃이 많이 핌. `남면 풍암리
·꽃박굴【골】금서동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남한굴【골】금서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느랭이골【골】새미기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댕갈막【골】접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더턱굴【골】학이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도장굴【골】학이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독보【보】접실 서쪽에 있는, 돌로 막은 보. `남면 풍암리
·매봉【산】학정 북쪽에 있는 산. `남면 풍암리
·매산이바우【바위】꽃박굴 남쪽에 있는 바위. `남면 풍암리
·물방앳보【보】→섬배미보. `남면 풍암리
·박산이들【들】배깥들 북쪽에 있는 들. `남면 풍암리
·방년동【골】어생이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배깥들【들】접실 서쪽에 있는 들. 마을 바깥쪽에 있다. `남면 풍암리
·범바우【바위】학이동에 있는 바위. 위에서 날마다 호랑이가 울었다고 전해 온다. `남면 풍암리
·별대보【보】조개둠벙 북쪽에 있는 보. `남면 풍암리
·새넘굴【들】외배미 북쪽에 있는 들. `남면 풍암리
·샛들【들】박산이들 북쪽에 있는 들. `남면 풍암리
·섬배미보〔물방앳보〕【보】골모실에 있는 보. 물방아가 있었다. `남면 풍암리
·쌀가지바우【바위】범바우 밑에 있는 바위. 삵괭이 굴이 있다. `남면 풍암리
·안골【골】핏골재 밑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어생이【골】꽃박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외배미【논】외배미보의 물을 대는 논. 밭 가운데에 논 한 배미가 있다. `남면 풍암리
·외배미보【보】중보 북쪽에 있는 보. 외배미에 물을 댐. `남면 풍암리
·작은꽃박골【골】꽃박굴의 작은 골짜기. `남면 풍암리
·조개둠벙【둠벙】퇴끼보 북쪽에 있는 둠벙. `남면 풍암리
·중보(中洑)【보】섬배미보 남쪽에 있는 보. `남면 풍암리
·지방바우【바위】샛들 북쪽에 있는 바위. `남면 풍암리
·진밭골【골】댕갈막 서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 `남면 풍암리
·진지모니【산】매봉 서쪽에 있는 산. `남면 풍암리
·청룡등(靑龍嶝)【등】꽃박굴 서쪽에 있는 등성이. 접실의 청룡(왼쪽). `남면 풍암리
·초분골【골】장구목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촉골【골】세거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풍암리
·퇴끼보【보】중보 북쪽에 있는 보. `남면 풍암리
·학이동【산】학정 북서쪽에 있는 산. `남면 풍암리
·한대실【골】진지모니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남면 풍암리
·분산등(分山嶝)【산】개선동 북쪽에 있는 산. `남면 학선리
·새보【보】새봇들에 물을 대는 보. `남면 학선리
·새봇들【들】텃들 북쪽에 있는 들. 새로 된 보가 있다. `남면 학선리
·서당골【골】함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남면 학선리
·용머리【골】분산등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용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남면 학선리
·지실골【골】초병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학선리
·초병골〔초분골〕【골】서당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초분(가매장)을 했었다. `남면 학선리
·텃들【들】밭지실 북쪽에 있는 들. `남면 학선리
·함골【골】장원봉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남면 학선리
·건넌들【들】갈밭 동쪽, 내 건너에 있는 들. `대덕면 갈전리
·걸망봉【산】장군봉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갈전리
·고라몰【골】처뭇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기선들【들】아랫보들 동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갈전리
·꽃밭등【등】망바우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갈전리
·도리봉【산】기우산 북쪽에 있는 산. `대덕면 갈전리
·두무골【골】모시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뒷골【골】갈밭 뒤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망바우【바위】웃갈밭 북쪽에 있는 바위. `대덕면 갈전리
·모시골【골】갈전리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무저울【들】건넌들 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갈전리
·비석거리【들】무저울 남쪽에 있는 들. 비석이 있다. `대덕면 갈전리
·새보【보】비석거리 서쪽에 새로 된 보. `대덕면 갈전리
·새보들【들】새보의 물을 대는 들. `대덕면 갈전리
·승적굴【골】기우산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쌍툼벙【둠벙】기선들에 있는 한 쌍의 둠벙 `대덕면 갈전리
·아랫보【보】걸망봉 동쪽에 있는 보. `대덕면 갈전리
·아랫보들【들】아랫보의 물을 대는 들. `대덕면 갈전리
·안산(案山)【산】갈밭 앞에 있는 산. 마을의 안대가 된다. `대덕면 갈전리
·여시골【골】승적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여시(여우)가 살았다. `대덕면 갈전리
·자랫등【등】뒷골 동쪽에 잇는 등성이. 자래(자라)처럼 생겼다. `대덕면 갈전리
·장군봉(將軍峯)【산】투구봉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갈전리
·처뭇골【골】도리봉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갈전리
·투구봉【산】여시골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갈전리
·금산리(錦山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시목리(枾木里),
당촌(堂村), 무월리(撫月里)를 합하여 금산(錦山) 밑이 되어 금산리(錦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금산리
·굽은대이【모롱이】생오짓고랑 동남쪽에 있는 모롱이. `대덕면 금산리
·꾀꼬리봉【산】망월봉 북쪽에 있는 산. `대덕면 금산리
·도롱굴【골】방애재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금산리
·뚜깨빗등【등】배알이재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금산리
·망월봉(望月峯)【산】금산 동쪽에 있는 산. 정월 보름에 달을 바라본다. `대덕면 금산리
·비암장굴【골】굽은대이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금산리
·빗가리【들】진걸 남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금산리
·삼태봉(三太洞)【산】매봉 남쪽에 있는 산. 큰 봉우리가 셋이 있다. `대덕면 금산리
·샘새골【골】용무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금산리
·생오지(生吳地)【들】생오짓고랑에 있는 들. `대덕면 금산리
·생오짓고량【골】초장골 동쪽에 있는 들. 난리 때 오씨가 피란하여 목숨을 건졌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금산리
·수랑걸【들】잿들 남쪽에 있는 들. 수랑(수렁)이 많음 `대덕면 금산리
·숲징이【들】빗가리 서쪽에 있는 들. 숲이 있다. `대덕면 금산리
·용무골【골】까마귀재 서남쪽에 있는 고개. `대덕면 금산리
·용소(龍沼)【소】비암장굴 동쪽에 있는 소. `대덕면 금산리
·잿들【들】코재이 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금산리
·지왓골【골】샘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금산리
·진걸【들】수랑걸 남쪽에 있는 진(긴) 들. `대덕면 금산리
·초장골【골】지왓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금산리
·코재이【등】용소 남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금산리
·매산리(梅山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면(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등갈리(藤葛里),
사창리(社倉里), 일부를 합하여 매봉(梅峰) 밑이 되어 매산리(梅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매산리
·구무시암【우물】송날등에 있는 샘. `대덕면 매산리
·군시암【우물】용골산 상봉에 있는 여러 개의 샘. `대덕면 매산리
·까리산【산】새앙골 남서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날평전【산】두끼바웃등 서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노적봉(露積峯)【산】소신봉 남쪽에 있는 산. 노적처럼 생겼다. `대덕면 매산리
·뉘에머리【산】북지기 서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대밭골착【골】매봉 밑에 있는 골짜기. 대밭이 있다. `대덕면 매산리
·독시암【우물】독시암골에 있는 샘. 돌 틈에서 물이 난다. `대덕면 매산리
·독시암골【골】매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독시암이 있다. `대덕면 매산리
·두끼바우【바위】두끼바웃등에 있는 바우. 우둘두둘하여 있다. `대덕면 매산리
·두끼바웃등【등】시적굴 북쪽에 있는 등성이. 두끼바우가 있다. `대덕면 매산리
·뒤안산【산】한새울 뒤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북지기【골】항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매산리
·분골【골】쟁비산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매산리
·산짓등【등】노적봉 서쪽에 있는 등성이. 산제를 지냈다. `대덕면 매산리
·새앙골【골】쇠꼬리명당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매산리
·소롱굴【골】연화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매산리
·소신봉【산】군시암 동북쪽에 있는 산. 우뚝 솟아 있다. `대덕면 매산리
·송날등【등】진등 서쪽에 있는 긴 등성이. `대덕면 매산리
·쇠꼬리명당【산】한새울 동쪽에 있는 산. 쇠꼬리 명당이 있다. `대덕면 매산리
·수박등【등】송날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수박처럼 둥글게 생겼다. `대덕면 매산리
·시적굴【골】심막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 매우 시원하다. `대덕면 매산리
·심막등【등】수박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매우 가팔라서 오르기가 심란하다 한다. `대덕면 매산리
·어리빗등【등】진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어리빗(얼레빗)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매산리
·연화봉(蓮花峯)【산】중매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용골산【산】쟁비산 서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재정굴【골】절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매산리
·쟁비산【산】짓당골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절골【골】뒤안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대덕면 매산리
·중메【산】뉘에머리 북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매산리
·진등【등】핑풍바우 서쪽에 있는 긴 등성이. `대덕면 매산리
·짓당골【골】소롱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당(제당)이 있다. `대덕면 매산리
·핑풍바우【바위】산짓등에 있는 바위. 모양이 핑풍(병풍)을 친 것처럼 생겼다. `대덕면 매산리
·항골【골】재정굴 서북쪽에 있는 마을. `대덕면 매산리
·문학리(文學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문치(內文峙),
외문치(外文峙), 원기(院基), 학동(學洞), 옥천(玉泉), 수곡(水谷) 일부를 합하여 문치(文峙)와 학동(學洞)의 이름을 따서 문학리
(文學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문학리
·고라실들【들】원텃골 밑에 있는 들. 바닥이 깊고 물대기가 좋다. `대덕면 문학리
·고창골【골】장성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난리 때 고창원이 피란했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문학리
·구남징이【들】높은징이 동쪽에 있는 들. `대덕면 문학리
·굴등【등】내리밧굴 서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대덕면 문학리
·금바우【바위】높은징이 동북쪽에 있는 바위. `대덕면 문학리
·내리밧굴【골】밍매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문학리
·높은징이【들】살구징이 남쪽에 있는 높은 들. `대덕면 문학리
·대롱바우【바위】미럭골에 있는 바위. 벼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대덕면 문학리
·뒨전머리【들】높은징이 북쪽에 있는 들. 들이 넓어 일이 쉬 끝나지 않으므로 일꾼들이 뒨전(웅성)댄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문학리
·미럭골【골】성적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미륵이 있다. `대덕면 문학리
·밍매기골【골】미럭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밍매기(명매기)집이 있다. `대덕면 문학리
·벌통바우【바위】고창골 동북쪽에 있는 바위. 벌통처럼 생겼다. `대덕면 문학리
·살구징이【들】굴등 남쪽에 있는 들. 살구나무가 있었다. `대덕면 문학리
·새바지【들】이기정이 동쪽에 새로 된 들. `대덕면 문학리
·성적굴【골】벌통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문학리
·옥시암〔옥천〕【우물】옥천골에 있는 샘. 옥같이 맑은 물이 솟아난다. `대덕면 문학리
·옥천(玉泉)【우물】→옥시암. `대덕면 문학리
·옥천골(玉泉谷)【골】안문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옥시암이 있음 `대덕면 문학리
·원안들【들】원텃골 앞에 있는 들. `대덕면 문학리
·이기정이【들】높은징이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문학리
·장성등【등】옥시암 북쪽에 있는 등성이. 장승이 서 있었다. `대덕면 문학리
·줄알【골】청룡안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돌이 줄지어 늘어져 있다. `대덕면 문학리
·줌벙거리【들】고라실들 아래에 있는 들. `대덕면 문학리
·청룡안【골】미럭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문학리
·비차리(飛 里)〔비나굴, 차동, 비차동〕【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비나처럼 생겼다고 하여 비
나굴 또는 차동( 洞), 비차동(飛 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원효동(元孝洞), 가흥동(佳興洞) 일
부를 합하여 비차리(飛 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비차리
·넉바우골【골】비나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네 개의 바위가 있다. `대덕면 비차리
·방애재골【골】방애재 밑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비차리
·방주간【골】자래명당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방죽이 있었다. `대덕면 비차리
·사장깽변【들】우터웃들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비차리
·우터웃들【들】비나굴 동북쪽, 마을 위에 있는 들. `대덕면 비차리
·자래명당골【골】비차동에 있는 골짜기. 자라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비차리
·절마당【골】사장깽변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당만 남아 있다. `대덕면 비차리
·탑선동【골】절마당 밑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비차리
·한대골【골】가흥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비차리
·성곡리(聲谷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성신리(聲新里)와
요곡(要谷)을 합하여 성곡리(聲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성곡리
·가미절골【골】부채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가미절 터가 있다. `대덕면 성곡리
·노랑바우【바위】독터골 북쪽에 있는 바위. `대덕면 성곡리
·독터골【골】여시모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성곡리
·말뚝산【산】새까끔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성곡리
·부채골【골】옥산까끔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성곡리
·사장등【등】노랑바우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성곡리
·새까끔【산】요골 서쪽에 있는 산. `대덕면 성곡리
·성곡교(聲谷橋)【다리】새말 앞에 있는 다리. `대덕면 성곡리
·성재【산】말뚝산 남쪽에 있는 산. 고려 때 성이 있었다. `대덕면 성곡리
·소반성국【골】매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소반처럼 생겼다. `대덕면 성곡리
·수랑들【들】우깽이들 서쪽에 있는 들. 수렁이 많다. `대덕면 성곡리
·여시모리【산】가미절골 남쪽에 있는 산. 여시(여우) 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대덕면 성곡리
·옥산까끔【산】소반성국 서북쪽에 있는 산. `대덕면 성곡리
·우깽이들【들】자래봉 북쪽에 있는 들. `대덕면 성곡리
·자래봉【산】지신갱이 동쪽에 있는 산. 자래(자라)처럼 생겼다. `대덕면 성곡리
·장구밭등【등】수랑들 북쪽에 있는 등성이. 장구처럼 잘룩하게 생긴 밭이 있다. `대덕면 성곡리
·지신갱이(地神갱이)【등】사장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지신을 모신 당집이 있었다. `대덕면 성곡리
·활맷등【등】장구밭등 위에 있는, 활 모양의 등성이. `대덕면 성곡리
·가는보【보】시봉산 북쪽에 있는 좁은 보. `대덕면 용대리
·가는봇들【들】가는보의 물을 대는 들. `대덕면 용대리
·기국치(基局峙)→기우재. `대덕면 용대리
·꼬두까끔【산】작은꼴착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용대리
·매봉산【산】파랏골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용대리
·모퉁이산【산】산태박골 북쪽 모퉁이에 있는 산. `대덕면 용대리
·방애실등【들】매봉산 북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용대리
·비암바우【바위】서적들 남쪽에 있는 바위. 비암(뱀)굴이 있다. `대덕면 용대리
·빗거리【들】꼬두까끔 동북쪽에 있는 들. 비가 서 있었다. `대덕면 용대리
·산태박골【골】평잣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서적골【골】평상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서적들【들】서적골에 있는 들. `대덕면 용대리
·시림점골【골】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시루점이 있었다. `대덕면 용대리
·시봉산【산】절산 동남쪽에 있는 산. 시루를 엎어 놓은 것 처럼 생겼다. `대덕면 용대리
·엿까끔【산】무네미고개 북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용대리
·용대교(龍坮橋)【다리】용대 앞에 있는 다리. `대덕면 용대리
·작은꼴착【골】큰꼴착 서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절산【산】서적골 동쪽에 있는 산. 절이 있다. `대덕면 용대리
·청운교(靑雲橋)【다리】청운동 앞에 있는 다리. `대덕면 용대리
·큰꼴착【골】용대리에 있는 큰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파랏골【골】시리점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평상골【골】산태밧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평잣골【골】용대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용대리
·홈거리【들】빗거리 남서쪽에 있는 들. 홈을 높아 물을 댔다. `대덕면 용대리
·운산리(雲山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산(松山), 저심
리(楮沈里), 대서산리(大西山里)를 합하여 수양산(首陽山)밑이 되어 운산리(雲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운산리
·개알산【산】솔정지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산리
·건넌들삐딱【들】시아치바구 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굴등【등】문박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대덕면 운산리
·꽃봉산〔화봉산〕【산 】송산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산리
·너덕굴【들】텃굴 북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넙바우【바위】넙바웃골에 있는 넓은 바위. `대덕면 운산리
·농바우〔농암, 상자바우, 상자암〕【바위】운산리에 있는 큰 바위. 농을 포개 놓은 것처럼 생겼다. 가로 10자, 세로 20자, 높이
12자쯤 된다. `대덕면 운산리
·농암(籠岩)【바위】→농바우. `대덕면 운산리
·뒷재【산】수암산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산리
·매바우【바위】씨름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대덕면 운산리
·문바우【바위】문박골에 있는 바위. `대덕면 운산리
·문박골【골】뒷재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문바우가 있다. `대덕면 운산리
·범낭굴【골】시암뜨래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산리
·산적골【골】넙바웃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산리
·상자바우【바위】→농바우. `대덕면 운산리
·상자암(箱子岩)【바위】→농바우. `대덕면 운산리
·새탯굴【골】개알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태가 있었다. `대덕면 운산리
·석담【들】새탯굴 동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섬바구【바위】씨름바우 밑에 있는 바위. 벼 담는 섬처럼 생겼다. `대덕면 운산리
·솔정지【들】범낭굴 남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쇠살【들】건넌들삐딱 동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수암산【산】꽃봉산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산리
·수양산(首陽山)〔수항산〕【산】산정리 동북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산리
·수항산(受降山)【산】→수양산. `대덕면 운산리
·시아치바구【바위】씨름바우 동남쪽에 있는 바위. `대덕면 운산리
·시암뜨래기【들】쇠살 동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산리
·씨름바우【바위】문박골 입구에 있는 바위. 넓고 평평하여 초군들이 씨름을 한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운산리
·절알【골】굴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산리
·텃굴【골】산적굴 서북쪽에 있는 마을. `대덕면 운산리
·화봉산(花峯山)【산】→꽃봉산. `대덕면 운산리
·운암리(雲岩里)〔운암〕【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큰 바위가 있어서 운암(雲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운암(上雲岩), 하운암(下雲岩), 사창리(社倉里) 일부를 합하여 운암리(雲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운암리
·괴비산【산】큰새텃걸 동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암리
·국산버들【들】퇴끼바우몬댕이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암리
·다리깃산【산】무짓등 동쪽에 있는 산. `대덕면 운암리
·도룡골【골】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도치바탕【산】독짐골 서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도치(도끼)처럼 생겼다. `대덕면 운암리
·독짐골【골】황새밭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마당바우【바위】무짓등에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 `대덕면 운암리
·말잔등【산】맹건쟁이 동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말 잔등 처럼 밋밋하게 되었다. `대덕면 운암리
·맹건쟁이【등】초붕골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운암리
·몰바우【바위】안골재에 있는 바위. 말(斗)처럼 네모지게 생겼다. `대덕면 운암리
·무짓등【등】쇄빗재 남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대덕면 운암리
·문안(門안)【골】상운암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상여바우〔상여암〕【바위】문안 동쪽에 있는 바위. 상여처럼 생겼다. `대덕면 운암리
·상여암(喪輿岩)【바위】→상여바우. `대덕면 운암리
·안골【골】도룡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엉굴【골】새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진잔등【등】다리깃산 동남쪽에 있는 긴 등성이. `대덕면 운암리
·초붕골【골】국산버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초붕(가매장)을 했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운암리
·큰골【골】하운암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대덕면 운암리
·큰새텃걸【산】진잔등 동쪽에 있는 산. 새터가 있었다. `대덕면 운암리
·퇴끼바우【바위】퇴끼바우몬댕이에 있는 바위. 퇴끼(토끼)처럼 생겼다. `대덕면 운암리
·퇴끼바우몬댕이【산】평풍바우 동북쪽에 있는 산. 퇴끼바우가 있다. `대덕면 운암리
·퉁퉁바우【바위】상여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발로 건드리면 퉁퉁 소리가 난다. `대덕면 운암리
·평풍바우【바위】엉굴에 있는 바위. 병풍을 친 것처럼 생겼다. `대덕면 운암리
·황새밭등【등】괴비산 동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운암리
·입석리(立石里)〔선돌, 입석〕【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마을 앞에 선돌이 있어서 선돌 또는 입석(立
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남면(外南面)의 입석리(立石里)를 합하여 입석리(立石里)로 정하고
,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덕면 입석리
·간댓들【들】섬석들 남쪽에 있는 들. 간대처럼 곧고 긺. `대덕면 입석리
·국곗들【들】창평때 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입석리
·단정【골】장구매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절터가 있다. `대덕면 입석리
·떡실바우【바위】장태봉에 있는 바위. 떡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 `대덕면 입석리
·뛰엄바우〔상지바우〕【바위】선돌 동쪽에 있는 바위. 띄엄띄엄 떨어져 있고, 옛날 장군이 뛰어 다녔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입석리
·무젯등【등】→무짓등. `대덕면 입석리
·무짓등〔무젯등〕【등】수양산 북쪽에 있는 등성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대덕면 입석리
·물통거리〔수락골〕【골】단정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물맞는 물통이 있다. `대덕면 입석리
·바구루매등【등】매봉재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바구루매(바구니)처럼 되었다. `대덕면 입석리
·바닥골【골】한수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입석리
·상지바우【바위】→뛰엄바우. `대덕면 입석리
·서잿들【들】안영들 남쪽에 있는 들. 서재가 있었다. `대덕면 입석리
·선돌【바위】선돌 뒤에 있는 바위. 옛날 산각 벽지로 관청과 거리가 멀어 도적이 심했으므로 주민들이 돌당산을 세워 지성으로
제사하여 도적을 막았는데, 도적이 이 앞에 오면 도망가지 못한다고 전해 온다. `대덕면 입석리
·섬석들【들】국곗들 남쪽에 있는 들. 섬이 있다. `대덕면 입석리
·수락골(水落谷)【골】→물통거리. `대덕면 입석리
·안영골【골】물통꺼리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입석리
·안영들【들】안영골에 있는 들. `대덕면 입석리
·우골〔우동〕【골】안영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입석리
·우동(牛洞)【골】→우골. `대덕면 입석리
·장구매기【산】장태봉 서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장구목 처럼 잘록하다. `대덕면 입석리
·장태봉【산】바구루매등 동쪽에 있는 산. 장태(닭장)처럼 생겼다. `대덕면 입석리
·지작골【골】우골 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 `대덕면 입석리
·풍산들【들】서잿들 남쪽에 있는 들. `대덕면 입석리
·한수골【골】지작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입석리
·장산리(章山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소산리(小山里),
대산리(大山里), 장동(獐洞)을 합하여 장동(獐洞)과 대산(大山)의 이름을 따서 장산리(章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 `대덕면 장산리
·검바우【바위】큰골 남쪽에 있는 검은 바위. `대덕면 장산리
·고사리밭등【등】수박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고사리가 많다. `대덕면 장산리
·굴등【등】밤나뭇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대덕면 장산리
·다랫등【등】쇠속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장산리
·동녘걸【산】노랑골 남쪽에 있는 산. `대덕면 장산리
·때왈밭등【등】지왓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산딸기가 많았다. `대덕면 장산리
·똘보【보】절목거리 서쪽에 있는 보. `대덕면 장산리
·망애등【등】굴등 북쪽에 있는 등성이. 소 멍에 형국이다. `대덕면 장산리
·매장선로(梅章線路)【길】노랑골 서남쪽에 있는 길. `대덕면 장산리
·모현관(慕賢館)【집】연계정 아래에 있는 집. 국보 미암일기(미암일기)가 보존되어 있다. `대덕면 장산리
·물통거리【골】검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장산리
·밤나뭇골【골】고사리밭등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다. `대덕면 장산리
·배나뭇걸【산】폭깍시암 서남쪽에 있는 산. 전에 배나무가 많았다. `대덕면 장산리
·배알등【등】동녘걸 서쪽에 있는 등성이. 뱀이 많았다. `대덕면 장산리
·뱀밭등【등】다랫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대덕면 장산리
·새샛굴【골】망애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장산리
·석은밭【들】시줏골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장산리
·세세곡(細細谷)【골】→쇠속골. `대덕면 장산리
·쇠속골〔세세곡〕【골】주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좁고 긺. `대덕면 장산리
·수박등【등】물통거리 남쪽에 있는 등성이. 수박 형국이다. `대덕면 장산리
·숲거리【들】꼭두말재 동쪽에 있는 들. 숲이 있었다. `대덕면 장산리
·시줏골【골】배알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장산리
·절목거리【들】주막거리 서쪽에 있는 들. `대덕면 장산리
·주막거리【들】숲거리 서쪽에 있는 들. 전에 주막이 있었다. `대덕면 장산리
·주산(主山)【산】석은밭 서쪽에 있는 산. `대덕면 장산리
·지왓등【등】새탯굴 동쪽에 있는 등성이. 기와집 모양이다. `대덕면 장산리
·큰골【골】배나뭇걸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덕면 장산리
·폭깍시암【우물】뱀밭등에 있는 샘. `대덕면 장산리
·높은바지【들】동서들 남쪽에 있는 들. 지대가 높다. `대전면 갑향리
·높은바지보【보】높은바지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갑향리
·동서들【들】들녁이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갑향리
·뒷등【등】배미등 북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갑향리
·들녁이【들】계곡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갑향리
·들녁이보【보】들녁이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갑향리
·배미등【등】소두말 남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갑향리
·비게통【둠벙】얼거리와 높은바지 사이에 있는 둠벙. 들 사이에 있어서 베개와 같다 한다. `대전면 갑향리
·소두산(梳頭山)【산】소두말 뒤에 있는 산. `대전면 갑향리
·얼거리【들】들녁이 동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갑향리
·얼거리보【보】얼거리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갑향리
·퇴끼등【등】뒷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갑향리
·한사정이【들】계곡 북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갑향리
·한사정이보【보】한사정이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갑향리
·거리새이【들】궁게들 서쪽에 있는 들. 물이 적다. `대전면 강의리
·검바우【바위】설밑등 남쪽에 있는 바위. `대전면 강의리
·궁게들【들】방애다리 남서쪽에 있는 들. 항상 물이 귀하다 한다. `대전면 강의리
·도산둠벙【둠벙】새논들 남쪽에 있는 둠벙. 도시암이 있었다. `대전면 강의리
·매까미둠벙【둠벙】도산둠벙 동쪽에 있던 둠벙. `대전면 강의리
·맷섭배미【논】응천들에 있는 논. 내 서쪽이 된다. `대전면 강의리
·방애다리【들】강의 동남쪽에 있는 들. 못 쓰는 디딜방아로 다리를 놓았다. `대전면 강의리
·번지【들】방애다리 북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강의리
·새논들【들】응천들 북쪽에 있는 들. 새로 된 논이 있다. `대전면 강의리
·설밑등【들】주랑주 북쪽에 있는 들. 솔나무 밑. `대전면 강의리
·양칭이들【들】검바우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강의리
·얼거리【들】번지 북쪽에 있는 들. 재대가 높아 물이 귀하다. `대전면 강의리
·우당골【들】강의 동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강의리
·응천들【들】강의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강의리
·응천보【보】응천들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강의리
·주랑주【들】얼거리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강의리
·통논들【들】거리새이 북쪽에 있는 들. 통논이 있다. `대전면 강의리
·가마수【들】한재 밑에 있는 들. `대전면 대치리
·가마수수문【물문】가마수에 있는 수문. `대전면 대치리
·감투시암【둠벙】여무시암 서쪽에 있는 둠벙. 감투처럼 생겼다. `대전면 대치리
·대치교(大峙橋)【다리】한재 서쪽에 있는 다리. 1933년 준공. `대전면 대치리
·독시암【둠벙】밴드리에 있는 둠벙. 물이 차서 땀띠에 좋다 한다. `대전면 대치리
·밴드리【들】비앙골 동쪽 마을 가에 있는 들. `대전면 대치리
·비앙골【골】가마수 서쪽에 있는 골짜기. 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대전면 대치리
·새시암【둠벙】감투시암 서쪽에 새로 된 둠벙. `대전면 대치리
·성맷등【등】동부 동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대치리
·쌍교당(雙橋堂)【집】→쌩기당. `대전면 대치리
·쌩기당〔쌍교당〕【집】서부에 있는 집. 이씨 문중의 노인 휴게소로 앞에 쌍다리가 있었다. `대전면 대치리
·여무시암【둠벙】큰들에 있는 둠벙. `대전면 대치리
·원수시암(原水시암)【둠벙】새시암 동쪽에 있는 둠벙. `대전면 대치리
·장깃보【보】한재 동쪽에 있는 긴 보. `대전면 대치리
·큰들【들】동부 남쪽에 있는 큰 들. `대전면 대치리
·한사물〔한새머리〕【들】동부 서쪽에 있는 들. 황새 머리처럼 생겼다. `대전면 대치리
·한새머리【들】→한사물. `대전면 대치리
·한새미【둠벙】한새미보에 있는 큰 둠벙. `대전면 대치리
·한새미보【보】장깃보 서쪽에 있는 보. 한새미의 물을 받다. `대전면 대치리
·개낫등【들】지렝이 남쪽에 있는 들. 개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대전면 병풍리
·검바우【바위】모릿등에 있는 큰 바위. `대전면 병풍리
·까재골【골】매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까재시암이 있다. `대전면 병풍리
·까재시암【샘】까재골에 있는 샘. 가재가 많다 한다. `대전면 병풍리
·까지등【등】개낫등 남쪽에 있는 등성이. 가재 형국이라한다. `대전면 병풍리
·노적봉【산】→티봉. `대전면 병풍리
·도장골【골】까지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대전면 병풍리
·매봉【산】내동 서쪽에 있는 산. `대전면 병풍리
·명막골【골】옌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명매기집이 있다. `대전면 병풍리
·모릿등【등】퇴끼등 북쪽에 있는 등성이. 옛날에 배가 드나들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병풍리
·사장안(射場안)【들】내동 동남쪽에 있는 들. 사장이 있었다. `대전면 병풍리
·새금점골【골】점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사기그릇을 굽던 사기점이 있었다. `대전면 병풍리
·옌골【골】모죽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피란 했었다. `대전면 병풍리
·원수시암(原水시암)【약】밴들이에 있는 약수. 음력 4월 8일 이후에 물이 나는데, 매우 차서 땀띠에 특효가 있다 한다. `대전면
병풍리
·절태골【골】새금점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극락사가 있었다. `대전면 병풍리
·점골【골】극락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질그릇을 만들던 독점이 있었다. `대전면 병풍리
·지렝이【들】평바들 동쪽에 있는 들. 지렁이처럼 꾸불꾸불 하다. `대전면 병풍리
·태촌이【들】태촌 앞에 있는 들. `대전면 병풍리
·퇴끼등【등】태촌이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옥토망월형(玉 望月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병풍리
·티봉〔노적봉〕【산】밴들이 남서쪽에 있는 산.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대전면 병풍리
·평바들【들】명막골 남쪽에 있는 들. 평평하고 기다랗게 생겼다. `대전면 병풍리
·관답징이【골】쇠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서옥리
·뒷등【등】청룡 뒤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서옥리
·등논들【들】청룡 서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서옥리
·등논보【보】등논들에 있는 보. `대전면 서옥리
·매산이등【등】최서당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서옥리
·무젯등【등】불대산 상봉에 있는 등성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대전면 서옥리
·비선등(飛仙등)【등】쇠골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서옥리
·비앙골【골】진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길고 꾸불꾸불하다. `대전면 서옥리
·비앙굴【들】비앙골에 있는 들. `대전면 서옥리
·상투바우【바위】상투봉에 있는 바위. 상투처럼 생겼다. `대전면 서옥리
·상투봉【산】시리봉 동쪽에 있는 산. 상투바우가 있다. `대전면 서옥리
·시리봉【산】큰민탈 북서쪽에 있는 산.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대전면 서옥리
·아릿모리대【들】청룡 서쪽에 있는 들. `대전면 서옥리
·옥산(玉山)【산】서옥산 동쪽에 있는 산. 구슬처럼 둥글고 작다. `대전면 서옥리
·용골【골】매산이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서옥리
·자갈【들】비선등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서옥리
·접때골【골】쇠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서옥리
·진등【등】자갈 동쪽에 있는 길 등성이. `대전면 서옥리
·청둥머리【들】청룡 북쪽에 있는 들. `대전면 서옥리
·최서당골【골】쇠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서옥리
·큰민탈【등】무젯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큰 너덜이 있다. `대전면 서옥리
·고두새보【보】쌍수통보 남쪽에 있는 보. `대전면 성산리
·대와배미【논】창앞들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대야와 바꾸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성산리
·물방애보【보】고두새보 남쪽에 있는 보. 물방아가 있었다. `대전면 성산리
·서당모퉁이【모롱이】성매 서쪽에 있는 모롱이. 서당이 있었다. `대전면 성산리
·성산(城山.成山)【산】성매 뒤에 있는 산. `대전면 성산리
·수랑걸【들】진걸 서쪽에 있는 들. 수렁이 많다. `대전면 성산리
·쌍수통보【보】원천보 서쪽에 있는 보. 수통이 쌍으로 있다. `대전면 성산리
·오중개보【보】성매 동북쪽에 있는 보. `대전면 성산리
·원천보【보】터까래보 남쪽에 있는 보. `대전면 성산리
·진걸【들】서당모퉁이 동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성산리
·창앞들【들】성매 남쪽에 있는 들. 사창이 있었다. `대전면 성산리
·터까래보【보】오중개보 남쪽에 있는 보. `대전면 성산리
·폿죽배미【논】대와배미 동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팥죽 한 그릇 얻어 먹고 주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성산리
·검바우【바위】검바우등에 있는 검은 빛의 바위. `대전면 월본리
·검바우등【등】갈밭 남쪽에 있는 등성이. 검바우가 있다. `대전면 월본리
·농시암【우물】농시암골에 있는 샘. `대전면 월본리
·농시암골【골】속매생이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농시암이 있다. `대전면 월본리
·닭구머리【등】검바우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닭의 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대전면 월본리
·뒨전들【들】솔밑들 동쪽에 있는 들. 둔전이 있었다. `대전면 월본리
·뒨전보【보】뒨전들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월본리
·밭매생이【들】청룡골 북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월본리
·배암바지【들】갈밭 동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월본리
·배암바지보【보】배암바지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월본리
·번지【들】뒨전들 서쪽에 있는 들. `대전면 월본리
·삔드리잔등【등】월인동 북쪽에 있는 등성이. 들 가운데에 삔드리(삐루지)가 난 것처럼 불거졌다. `대전면 월본리
·속매생이【들】밭매생이 안쪽에 있는 들. `대전면 월본리
·솔밑들【들】속매생이 동쪽에 있는 들. 솔숲이 있었다. `대전면 월본리
·양청이【등】닭구머리 동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월본리
·월본교(月本橋)【다리】월인동 북쪽에 있는 다리. `대전면 월본리
·정지바지【들】배암바지 동쪽에 있는 들. 정자나무가 있었다. `대전면 월본리
·정지바지보【보】정지바지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월본리
·청룡골【골】갈전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월본리
·한삼밑【들】갈밭 서쪽에 있는 들. 한시암이 있다. `대전면 월본리
·한시암【우물】한삼밑에 있는 큰 샘. `대전면 월본리
·응룡리(應龍里)【리】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응기리(應基
里)와 갈전면(葛田面)의 신룡리(新龍里)와 삼소지면(三所旨面)의 해산리(海山里) 일부를 합하여 응기(應基)와 신룡(新龍)의 이름
을 따서 응룡리(應龍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대전면 응룡리
·갈궁배미【논】모개배미 동북쪽에 있는 논. 모양이 갈궁이(갈고리)처럼 생겼다. `대전면 응룡리
·구례실【들】응깃들 동남쪽에 있는 들. 흙이 기름지고 물이 풍부해서 농사가 잘 된다. `대전면 응룡리
·너뱅이통【둠벙】모랫소 남쪽에 있는 넓은 둠벙. `대전면 응룡리
·떡짓골【들】신룡 서남쪽에 있는 들. 소출이 많아서 떡을 많이 해 먹는다 한다. `대전면 응룡리
·모개배미【논】고내쏙 서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모과 하나와 바꿨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응룡리
·모랫소【소】서답소 남쪽에 있는 소. 모래가 많다. `대전면 응룡리
·무주골【들】신룡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응룡리
·빨래통【소】→서답소. `대전면 응룡리
·서답소〔빨래통〕【소】응깃들 동쪽에 있는 소. 부근 마을 부인들이 이 곳에 서 빨래를 많이 한다. `대전면 응룡리
·시암배미【논】오갈솥배미 동쪽에 있는 논. 시암(샘)이 있다. `대전면 응룡리
·오갈솥배미【논】진때배미 위에 있는 논. 오가리 솥처럼 생겼다 한다. `대전면 응룡리
·응깃들【들】응기 앞에 있는 들. `대전면 응룡리
·응천보【보】응깃들에 물을 대는 보. `대전면 응룡리
·잿널들【들】진때배미 남쪽에 있는 들. 물이 무척 헤프다 한다. `대전면 응룡리
·잿밭들【들】옹기 남쪽에 있는 들. 물이 헤프다 한다. `대전면 응룡리
·조개소【둠벙】→조개툼벙. `대전면 응룡리
·조개툼벙〔조개소〕【둠벙】응기 동남쪽에 있는 둠벙. 조개가 많다 한다. `대전면 응룡리
·줄렛들【들】줄레 가에 있는 들. `대전면 응룡리
·진걸【들】너뱅이통 북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응룡리
·진때배미【논】구례실 북쪽에 있는 논. 진대가 서있었다. `대전면 응룡리
·화전들【들】잿널들 동쪽에 있는 들. 들이 좁아서 일을 일찍 끝내고 화전놀이를 하였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응룡리
·중옥리(中玉里)〔중옥〕【리】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서옥산(西玉山)과 동옥산(洞玉山)의 중간에 있
어서 중옥(中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문내리(門內里), 금곡리(金谷里), 용동리(龍洞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중옥리(中玉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대전면 중옥리
·건넌게【들】중옥 서쪽에 있는 들. 내 건너가 된다. `대전면 중옥리
·고창배미【논】몽구배미 북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고창(고추장) 한 단지와 바꿨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중옥리
·구레실【들】바웃걸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중옥리
·꽃댕이【산】중옥 서쪽에 있는 산. 참꽃이 많이 핀다 한다. `대전면 중옥리
·낙수껄【논】똘모리 서쪽에 있는 논. 낙수(낚시)처럼 생겼다. `대전면 중옥리
·닷마지깃걸【들】바웃걸 옆에 있는 들. 닷마지기가 되는 논배미가 있다. `대전면 중옥리
·도깨비둠벙【둠벙】사줏등에 있는 2개의 둠벙. 도깨비가 고기를 잡아서 둠벙에 고기가 없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중옥리
·도내기시암【샘】보두쟁이보 옆에 있는 보. `대전면 중옥리
·똘갓보【보】밤남걸 동쪽에 있는 보. 똘(도랑)가 에 있다. `대전면 중옥리
·똘모리【들】재추쟁이 남쪽에 있는 들. 똘(도랑) 모롱이에 있다. `대전면 중옥리
·망태배미【논】고창배미 동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나락(벼) 한 망태기와 바꿨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중옥리
·몽구배미【논】중옥 북쪽에 있는 논. `대전면 중옥리
·물방애들【들】똘모리 남쪽에 있는 들. 물방아가 있었다. `대전면 중옥리
·바웃걸【들】중옥 남쪽에 있는 들. 바위가 널려 있다. `대전면 중옥리
·밤남걸【들】물방애들 동남쪽에 있는 들. 밤나무가 있었다. `대전면 중옥리
·보두쟁이보【보】똘갓보 동쪽에 있는 보. `대전면 중옥리
·비게배미【논】창고지 서남쪽에 있는 논. `대전면 중옥리
·비앙골【골】사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대전면 중옥리
·비앙골들【들】비앙골에 있는 들. `대전면 중옥리
·빼논【논】구레실 북쪽에 있는 논. `대전면 중옥리
·사줏등【등】사동 위에 있는 등성이. 뱀처럼 긺. `대전면 중옥리
·선다리【들】물방애들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중옥리
·안들【들】도내기시암 서북쪽에 있는 들. `대전면 중옥리
·안들시암【우물】안들에 있는 샘. `대전면 중옥리
·용걸【골】중옥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옥리의 용동이 용의 머리이고 이 곳이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한다. `대전면 중옥리
·잔다랑걸【들】망태배미 서쪽에 있는 들. 논 다랭이가 여럿 있다. `대전면 중옥리
·장지매【산】비앙골 동쪽에 있는 산. `대전면 중옥리
·재추쟁이【등】중옥 동쪽에 있는 등성이. `대전면 중옥리
·줄레【들】안들 서쪽에 있는 들. 줄(풀)이 많았다. `대전면 중옥리
·진등【등】사줏등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대전면 중옥리
·창고지(倉庫址)【논】잔다랑걸 서쪽에 있는 논. 조선시대에 사창이 있었다. `대전면 중옥리
·홈건네【들】줄레 남쪽에 있는 들. 물을 대기 위해 홈통을 놨었는데 그 건너쪽. `대전면 중옥리
·갈모배미【논】오시논 서쪽에 있는 논. 갈모처럼 생겼다. `대전면 태목리
·감남골【들】시목 동쪽에 있는 들. 감나무가 많았다. `대전면 태목리
·거릿보【보】맹겟등 남쪽에 있는 보. `대전면 태목리
·구시툼벙【둠벙】삼암 앞에 있는 둠벙. 소구시(구유)처럼 생겼다. `대전면 태목리
·깔닥밭【들】삼암 서쪽에 있는 들. 갈대밭이 있었다. `대전면 태목리
·다물논【논】원성거리에 있는 논. 다무락(돌담)이 있다. `대전면 태목리
·무제들【들】감남골 동북쪽에 있는 들. 날이 가물면 무제(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태목리
·무지기【들】방애드리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태목리
·무지기다리【다리】무지기에 있는 다리. `대전면 태목리
·방애드리【들】깔딱밭 동쪽에 있는 들. 방아다리가 있었다. `대전면 태목리
·비석거리【거리】태암리 어귀에 있는 삼거리. 비석이 있다. `대전면 태목리
·빼시암【둠벙】쇠바탕 남쪽에 있는 둠벙. 물이 잘 난다. `대전면 태목리
·사마평【들】→삼밭들. `대전면 태목리
·삼밭들〔사마평〕【들】삼암 서쪽에 있는 들. 삼밭이 있었다. `대전면 태목리
·섬더리【들】무제들 북쪽에 있는 들. 작은 섬이 있다. `대전면 태목리
·쇠바탕〔우장평〕【들】삼암 북쪽에 있는 들. 전에 소를 많이 매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태목리
·쇠피실【들】무지기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태목리
·양챙이【들】한시암들 동쪽에 있는 들. 내가 둘 있다. `대전면 태목리
·어산이보【보】삼암 서쪽에 있는 보. `대전면 태목리
·오시논【논】빼시암 북쪼게 있는 논. `대전면 태목리
·옻남걸【들】무지기 서쪽에 있는 들. 옻나무가 있었다. `대전면 태목리
·우장평(牛場坪)【들】→쇠바탕. `대전면 태목리
·원성거리【들】쇠피실 남쪽에 있는 들. 오치면에 사창이 있었으므로 조세 바치러 오갈 때 원성이 높았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태목리
·작살배미【논】조리배미 서쪽에 있는 논. `대전면 태목리
·조리배미【논】갈모배미 남쪽에 있는 논. 조리처럼 물이 빠진다 한다. `대전면 태목리
·진절미【들】무제들 서쪽에 있는 긴 들. `대전면 태목리
·평생이통【둠벙】구시툼벙 남쪽에 있는 둠벙. 전엔 명주실 한 꾸리가 들어갔다 한다. `대전면 태목리
·한시암【둠벙】한시암들에 있는 큰 둠벙. `대전면 태목리
·한시암들【들】쇠바탕 남쪽에 있는 들. 한시암에 있다. `대전면 태목리
·가는골【골】물통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고라이【산】신광수 북쪽에 있는 산. 고라니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평장리
·꽃바우〔화암〕【골】평장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꽃바우가 있다. `대전면 평장리
·끄시골【골】민새알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끄시코(닻)처럼 생겼다 한다. `대전면 평장리
·동산밑에【들】마굿들 남쪽에 있는 들. 동산 밑. `대전면 평장리
·마굿들【들】미럭깨 남쪽에 있는 들. `대전면 평장리
·마당바우【바위】생이바우 서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다. `대전면 평장리
·물통골【골】수랑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물맞는 물통이 있다. `대전면 평장리
·미럭깨【들】보십들 동쪽에 있는 들. 미륵이 있다. `대전면 평장리
·민새알【산】고라이 동쪽에 있는 산. `대전면 평장리
·베락바우【바위】마당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벼락을 맞아 열십자로 쪼개졌다. `대전면 평장리
·보시들【들】불량골 동쪽에 있는 들. `대전면 평장리
·북바우【바위】용기툼벙 북쪽에 있는 바위. 북처럼 생겼다. `대전면 평장리
·불량골【골】순산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비룡곡(비룡谷)【골】→비렁실. `대전면 평장리
·비렁실〔비룡곡〕【골】장군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산밭골【골】씨알방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샛들【들】동산밑에 동쪽에 새로 된 들. `대전면 평장리
·생이바우【바위】북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생이(상여)처럼 생겼다. `대전면 평장리
·수랑골【골】 산밭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랑(수렁)이 많다. `대전면 평장리
·순산【산】화암 뒤에 있는 산. 지세가 순하다. `대전면 평장리
·신광수【골】가는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신광사(신광寺)가 있었다. `대전면 평장리
·씨알방골【골】한적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새알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평장리
·어디밋골【골】물통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항상 어두컴컴하다. `대전면 평장리
·오충정려(五忠旌閭)【정문】화암에 있는 박천봉과 그 아들 원겸, 인겸, 예겸, 의겸 5부자의 충신 정문. `대전면 평장리
·용기툼벙(龍起툼벙)【둠벙】장군봉에 있는 둠벙. 주위의 지세가 용이 일어나는 모양으로 되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평장리
·장군봉(將軍峯)【산】투구봉 남쪽에 있는 산. 장군대좌형이 있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평장리
·철안입【골】통시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통시골【골】끄시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투구봉【산】화암 북쪽에 있는 산. 투구처럼 생겼다. `대전면 평장리
·한적골【골】평장동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대전면 평장리
·행성리(杏成里)【리】 조선시대엔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에 폐합에 따라 옥산리(玉
山里), 덕산리(德山里), 대성리(大成里)와 행정리(杏亭里), 옥동리(玉洞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행정(杏亭)과 대성(大成)의 이름
을 따서 행성리(杏成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대전면 행성리
·가박머리【들】동대밭걸 동쪽에 있는 들. 지형이 까마귀 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대전면 행성리
·각시절터【골】대성 북쪽에 있는 골짜기. 각시절이 있었다. `대전면 행성리
·감남사터〔감남징이〕【골】각시절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감남징이【골】→감남사터. `대전면 행성리
·대성사(大成祠)〔鄕校〕【사당】점골에 있는 사당. 공자, 주자, 포은 정몽주를 모심. `대전면 행성리
·대파니골【골】홍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도내기시암【우물】시암골 밑에 있는 샘. 물이 솟아오른다. `대전면 행성리
·동대밭걸【들】토끼등 동쪽에 있는 들. 왕대가 있었다. `대전면 행성리
·두턱골【골】점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기와를 구웠다고 전해 온다. `대전면 행성리
·뒷굴【골】옥산촌 뒤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물방골【골】대파니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물방아가 있었다. `대전면 행성리
·분통꺼리【산】상자바우 남쪽에 있는 산. 옥녀봉의 옥녀가 화장을 하는 곳이라고 전해 온다. `대전면 행성리
·비지밭골【골】아홉사리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상자바우【바위】옥녀봉 동쪽에 있는 바위. 네모난 상자처럼 생겼다. `대전면 행성리
·솔아래【들】저수들 동쪽에 있는 들. 소나무숲 아래에 있다. `대전면 행성리
·수꿀【골】비지밭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옥녀봉(玉女峯)【산】수꿀 동쪽에 있는 산. `대전면 행성리
·저숫들【들】행정 북쪽에 있는 들. `대전면 행성리
·점골【골】행정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옹기점이 있었다. `대전면 행성리
·쫏박등【등】행정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쫏박(쪽박)처럼 오목하게 되었다. `대전면 행성리
·챔비장굴【골】분통꺼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옥녀의 참빗에 해당한다 한다. `대전면 행성리
·탑거리【골】점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다. `대전면 행성리
·토끼등【들】행정 서쪽에 있는 들. `대전면 행성리
·패미골【골】쫏박등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행성교(杏城橋)【다리】행정 동쪽에 있는 다리. `대전면 행성리
·향교(鄕校)【사당】→대성사. `대전면 행성리
·홍골【골】패미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대전면 행성리
·덕곡리(德谷里)〔덕실, 덕곡〕【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큰 골짜기가 되어 덕실 또는 덕곡(德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곡리(德谷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덕곡리
·가짠둥【산】화봉 서쪽에 있는 산. `무정면 덕곡리
·괴고리봉【산】동지산 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괴고리(개구리) 형국으로 되었다. `무정면 덕곡리
·당묏산【산】덕실 북서쪽에 있는 산. 당산제를 지내던 당산나무가 있었다. `무정면 덕곡리
면 덕곡리
·덕석바우【바위】→시암안바우. `무정면 덕곡리
·동지밑【들】동지산 밑에 있는 들. `무정면 덕곡리
·동지산【산】사장거리 남쪽에 있는 산. 활 쏘고 난 뒤 이 곳에서 동지(술자리)를 베풀었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덕곡리
·방적굴【골】빈소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건답이 많고 전에 방죽이 있었다. `무정면 덕곡리
·범굴꼴착【골】범굴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범이 살던 큰 굴이 있다. `무정면 덕곡리
·범굴산【산】덕곡리에 있는 산. `무정면 덕곡리
·범바우【바위】범굴산 상봉에 있는 바위. 모양이 범처럼 생겼다. `무정면 덕곡리
·빈소골【골】가짠둥 남쪽에 있는 골짜기. 빈소(초 빈터) 자리가 생겼다. `무정면 덕곡리
·사장거리(射場거리)【들】덕실 남서쪽에 있는 들. 백제 때 봉안리에 고을이 있을 때 이 곳에 활쏘기를 하던 사장이 있었다. `무
정면 덕곡리
·설묏대이【산】덕실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덕곡리
·시무실【골】방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덕곡리
·시무실들【들】시무실에 있는 들. `무정면 덕곡리
·시암안바우〔덕석바우〕【바위】서암산 밑에 있는 바위. ① 물맞는 시암(샘) 안쪽. ② 모양이 소에게 덕석을 씌운 형국이다. `
무정면 덕곡리
·저수지밑【들】덕곡제 밑에 있는 들. `무정면 덕곡리
·정지밑【들】덕실 앞에 있는 들. 큰 정자나무가 밑. `무정면 덕곡리
·치알봉【산】덕실 동쪽에 있는 산. 모양이 치알(차일)을 친 것처럼 붕긋하게 솟았다. `무정면 덕곡리
·함풍산【산】덕실 북쪽에 있는 산. `무정면 덕곡리
·홍청굴【들】저수지밑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덕곡리
·황생고개【등】괴고리봉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①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 ② 황새가 많이 앉았다. `무정면 덕곡리
·동강리(東江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고지(東古支)와
강정(江亭)을 합하여 동강리(東江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동강리
·고라실【들】동고지 서북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고 물대기가 좋다. `무정면 동강리
·구렁굴【골】강정자 북쪽에 있는 골짜기. 구렁이 졌다. `무정면 동강리
·높은안걸【골】동고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역이 높고 깊숙하다. `무정면 동강리
·단지골【골】삽갯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동낭치골【골】작은마끝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동냥치가 우막을 치고 살았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강리
·뒷까끔【산】강정자 뒤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막골【골】진갓돌 남쪽 끝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모리보【보】방애보 동쪽에 있는 보. 강정자 머리쪽에 있다. `무정면 동강리
·모리보들【들】모리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동강리
·박두봉〔박두우방〕【산】방아쟁이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박두우방【산】→박두봉. `무정면 동강리
·방겟등【등】점터 서쪽에 있는 등성이. 옥녀봉의 옥녀가 치고 노는 방구라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강리
·방아쟁이【골】강정자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방애보【보】방애봇들에 물을 대는 보. `무정면 동강리
·방애봇들【들】생숫들 동쪽에 있는 들. 물방아가 있었다. `무정면 동강리
·밭똥고지【골】동고지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배산등【등】단지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동강리
·버디쟁이【골】동고지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번디장이【들】강정자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강리
·새까끔【산】쟁기산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새마골【골】높은안걸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새태끝【골】요꿀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가 있었다. `무정면 동강리
·생숫들(생수들)【들】뒷까끔 서북쪽에 있는 들. 생수가 난다. `무정면 동강리
·쌍가매【골】버디쟁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쌍동고지【골】쌍가매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안밭골【골】동낭치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옥녀봉(玉女峯)【산】강정자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요꿀【골】박두우방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작은마끝【골】새마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쟁기산【산】강정 서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점터【골】안밭골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옹기점이 있었다. `무정면 동강리
·진갓돌【산】소롱굴재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강리
·호랭이코빼기【골】밭똥고지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강리
·동산리(東山里)〔동산〕【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옻재 동쪽 금산(錦山) 밑이 되어 동산(東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칠전리(漆田里), 칠치리(漆峙里)를 합하여 동산리(東山里)로 정하고, 무면(→
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동산리
·가루모탱이【들】방죽밑에 서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가시보【보】보돌 서쪽에 있는 보. `무정면 동산리
·가운데까래【들】안까래와 갓까래 사이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감태바우【바위】감태바웃골에 있는 바위. 모양이 감투처럼 생겼다. `무정면 동산리
·감태바웃골【골】때왈밭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감태바우가 있다. `무정면 동산리
·갓까래【들】가운데까래 북쪽에 있는 들. 절목거리 가가 된다. `무정면 동산리
·갱기랏대【산】순살막재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산리
·검바우【바위】동녘걸 남쪽에 있는 검은 바위. `무정면 동산리
·고사리밭등【등】수박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고사리가 많다. `무정면 동산리
·구롱보【보】동산 동쪽에 있는 보. `무정면 동산리
·굴등【등】밤나무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무정면 동산리
·굴렛등【등】옻재 서쪽에 있는 등성이. 옻밭이 와우 형국인데 그 굴레가 된다 한다. `무정면 동산리
·굴렛등들【들】→느치정이. `무정면 동산리
·굴바우【바위】굴박등에 있는 바위. `무정면 동산리
·굴박등【등】밤남등 위쪽에 있는 등성이. 굴바우가 있다. `무정면 동산리
·느치정이〔굴렛등들〕【들】옻재 서쪽에 있는 들. 큰 느티나무가 있다. `무정면 동산리
·다랫등【산】감태바우 북동쪽에 있는 산. ① 모양이 다래처럼 생겼다. ② 다래가 많다. `무정면 동산리
·대팬아골【골】덕재골 동북쪽에 있는 넓을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덕룡교(德龍橋)【다리】새터 앞에 있는 다리. `무정면 동산리
·덕석바우【바위】회골에 있는 바위. 덕석을 씌운 것처럼 생겼다. `무정면 동산리
·도치거리【들】매채미 서쪽에 있는 들. 옻밭이 소 형국인데, 이 곳은 소잡는 도끼처럼 생겼다. `무정면 동산리
·돌보【보】모팅잇보 서쪽에 있는 보. 돌로 막았다. `무정면 동산리
·동녘걸【산】동산 동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산리
·동챙이【들】새터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등룡보(登龍洑)【보】새보 서쪽에 있는 보. 옛날 용이 등천했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산리
·때왈밭등【등】미너리샘굴 서쪽에 있는 등성이. 때왈(딸기)이 많이 열림. `무정면 동산리
·똑각시암【우물】돌보에 있는 샘. `무정면 동산리
·망앳등【등】굴등 북쪽에 있는 등성이. 옻밭이 소 형국인데 그 멍에처럼 생겼다 한다. `무정면 동산리
·매채미〔웃생치〕【들】집앞에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모팅잇보【보】서답보 서쪽에 있는 보. 모퉁이에 있다. `무정면 동산리
·몰맷등【들】가루모탱이 북쪽 등성이에 있는 들. 몰매(말무덤)가 있다. `무정면 동산리
·무짓등【등】옻밭 남쪽에 있는 등성이. 전에 무제(기우제)를 지냈다. `무정면 동산리
·문바우【바위】큰골에 있는 바위. 두 개로 쪼개져 있는데,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무정면 동산리
·물통거리【골】검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찬물이 솟아나 물 맞던 물통이 있다. `무정면 동산리
·미너리샘【우물】미너리샘굴에 있는 샘. `무정면 동산리
·미너리샘굴【골】지왓등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미너리샘이 있다. `무정면 동산리
·반게등【등】옻재 남쪽에 있는 등성이. 방구처럼 생겼다. `무정면 동산리
·밤나뭇골【골】진등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다. `무정면 동산리
·밤나뭇등【등】진등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밤마무가 있었다. `무정면 동산리
·방죽밑【들】매채미 서쪽에 있는 들. 방죽 밑. `무정면 동산리
·방천너메【들】갓까래 서쪽에 있는 들. 방천(뚝) 너머가 된다. `무정면 동산리
·배알등【등】동녘걸 서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무정면 동산리
·번들바우【바위】자라실 아래쪽에 있는 바위. 발로 차면 쿵쿵 소리가 난다. `무정면 동산리
·불뭇등【산】초장굴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산리
·빨랫보〔서답보〕【보】구롱보 서쪽에 있는 보. 근처 마을 부인들의 서답(빨래)터 이다. `무정면 동산리
·살구쟁이【들】자라실 밑에 있는 들. 살구나무가 있었다. `무정면 동산리
·삼바실골짝【골】살구쟁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삼밭이 있었다. `무정면 동산리
·새보【보】등룡보 서쪽에 새로 된 보. `무정면 동산리
·새샛굴【골】망애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서금【들】→서금밭. `무정면 동산리
·서금밭〔서금〕【들】시줏골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서답보【보】→빨랫보. `무정면 동산리
·세세곡(細細谷)【골】→쇠속굴. `무정면 동산리
·솔등【등】불뭇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솔이 많다. `무정면 동산리
·쇠바배미【논】살구쟁이에 있는 논. 옻밭이 소 형국인데 여기는 그 고삐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산리
·쇠속굴〔세세곡〕【골】주산 남쪽에 있는 가늘고 깊은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수박등【등】물통거리 남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동산리
·숲거리【들】→숲안. `무정면 동산리
·숲안〔숲거리〕【들】동산 동쪽에 있는 들. 숲이 우거져 있다. `무정면 동산리
·시줏골【골】배알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시집을 보낸 것 같이 떨어져 있다. `무정면 동산리
·삵가짓굴【굴】대팬잇굴에 있는 굴. 삵괭이가 삶 `무정면 동산리
·안까래【들】절목거리 남쪽 안에 있는 골짜기. 옻나무가 많았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산리
·옹동굴【들】초붕거리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웃생치【들】→매채미 `무정면 동산리
·자라실【골】차작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자라처럼 생겼다. `무정면 동산리
·장군바우【바위】다랫 등 북쪽에 있는 바위. 옛날에 바위가 갈라지면서 장군이 태어났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동산리
·절목거리【들】주막꺼리 서쪽에 있는 들. 지역이 저울목(눈)처럼 세 갈래로 나뉘었다. `무정면 동산리
·절터굴【골】굴박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문암사터가 있다. `무정면 동산리
·주막거리【들】숲안 서쪽에 있는 들. 주막이 있었다. `무정면 동산리
·주산【산】서금밭 서쪽에 있는 산. `무정면 동산리
·주성보【보】가시보 서쪽에 있는 보. `무정면 동산리
·지왓등【등】새샛줄 동쪽에 있는 등성이. 옛날에 기화를 구웠다. `무정면 동산리
·진등【등】고사리밭등 남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동산리
·집앞【들】옻밭 동쪽, 앞에 있는 들. `무정면 동산리
·차작굴【골】삵가짓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찬물이 많이 난다. `무정면 동산리
·참샘【우물】참샘굴에 있는 샘. 차고 물맛이 좋다. `무정면 동산리
·참샘굴【골】무지등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참샘이 있다. `무정면 동산리
·초붕거리〔초빈골〕【들】몰맷등 서쪽에 있는 들. 초빈(가매장)을 했었다. `무정면 동산리
·초빈골【골】→초붕거리. `무정면 동산리
·초장골(草藏골)【골】자라실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큰골【골】참샘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호랭이굴【골】→회골. `무정면 동산리
·회골〔호랭이굴〕【골】반게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동산리
·국산버들【들】퇴끼바우몬댕이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봉안리
·꽃봉몰랭이【산】술기 동쪽에 있는 산. 봄이면 봉우리에 참꽃이 많. `무정면 봉안리
·다리깃산【산】술지 동쪽에 있는 산. 산 위로 달이 떠오른다. `무정면 봉안리
·도롱굴〔도룡곡〕【골】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봉안리
·도룡곡(道龍谷)【골】→도롱굴. `무정면 봉안리
·도치바탕【산】돗짐똑골짝 서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도끼 형국으로 되었다. `무정면 봉안리
·마당바우【바위】무짓등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다. `무정면 봉안리
·몰바우【바위】새빗재에 있는 바위. 말처럼 생겼다. `무정면 봉안리
·무짓등【등】새빗재 남쪽에 있는 등성이. 무제를 지냈다. `무정면 봉안리
·무짓등몰랭이【산】새빗재몰랭이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봉안리
·새빗재몰랭이【산】수문동 동쪽에 있는 산. 지형이 새비(새우) 형국으로 되었다. `무정면 봉안리
·생이바우【바위】도치바탕에 있는 바위. 생이(상여)처럼 생겼다. `무정면 봉안리
·수랑시암【우물】술기 동쪽에 있는 샘. 수랑(수렁)에 있다. `무정면 봉안리
·안골【골】무짓등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술지 안쪽. `무정면 봉안리
·안들【들】진잔등 남쪽에 있는 들. 개울 안. `무정면 봉안리
·엉굴【골】새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봉안리
·은행나무【나무】술기 중앙에 있는 귀목. 둘레 9.3m, 높이 약 23m이다. 수령 약 450년. 1968년 3월 2일 천연기념물 제3호로 등
록되었다. `무정면 봉안리
·진잔등【등】다리깃산 동남쪽에 있는 긴 등성이. `무정면 봉안리
·초봉골【들】국산버들 동북쪽에 있는 들. 초분(초빈)을 했다. `무정면 봉안리
·큰골【골】꽃봉몰랭이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무정면 봉안리
·큰새터껄【산】수문동 동쪽에 있는 산. 새터가 있었다. `무정면 봉안리
·퇴끼바우【바위】퇴끼바우몬댕이에 있는 바위. 토끼가 살던 굴이 있다. `무정면 봉안리
·퇴끼바우몬댕이【산】수문동 동북쪽에 있는 산. 퇴끼바우가 있다. `무정면 봉안리
·평풍바우【바위】엉굴에 있는 바위. 병풍을 둘러 친 것 같이 되었다. `무정면 봉안리
·황새밭등【등】봉안 동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봉안리
·서흥리(瑞興里)〔서흥〕【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서암산 밑이 되어 서흥(瑞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족자동(族子洞)을 합하여 서흥리(瑞興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서흥

·건넌들삐닥【들】시아치바우 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굴등【등】수암산 동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무정면 서흥리
·넙바우【바위】넙바웃골에 있는 넓고 편편한 바위. `무정면 서흥리
·넙바웃골【골】자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넙바우가 있다. `무정면 서흥리
·단저굴【골】새태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서흥리
·단저굴들【골】단저굴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뒤안산【산】서흥 뒤에 있는 산. `무정면 서흥리
·마당바우【바위】섬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다. `무정면 서흥리
·매바우【바위】씨름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나는 매처럼 생겼다 한다. `무정면 서흥리
·문바우【바위】문박골에 있는 바위. 두 바위가 나란히 서 있는데 그 사이로 길이 나서 문처럼 되었다. `무정면 서흥리
·문박골【골】서흥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문바우가 있다. `무정면 서흥리
·범낭굴【들】시암뜨래기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부엉밑【들】족자동 동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산적굴【골】새태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서흥리
·새태골【골】자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새터가 있었다. `무정면 서흥리
·석담【들】새태골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섬바우【바위】서흥리에 있는 바위. 모양이 곡식을 담는 섬처럼 생겼다. `무정면 서흥리
·솔정지【들】범낭굴 남서쪽에 있는 들.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무정면 서흥리
·쇠살【들】건넌들삐닥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서흥리
·시아치바우【바위】섬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무정면 서흥리
·시암뜨래기【들】쇠살 동쪽에 있는 들. 시암(샘)이 있다. `무정면 서흥리
·씨름바우【바위】문박골 입구에 있는 바위. 넓고 평평하여 나무꾼들이 씨름을 했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서흥리
·절알【골】굴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서흥리
·터꿀【골】자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있었다. `무정면 서흥리
·성도리(成道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성덕리(成德里),
서정리(西亭里), 중리(中里), 도리(道里)를 합하여 성덕(成德)과 도리(道里)의 이름을 따서 성도리(成道里)로 정하고, 무면(→무
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성도리
·가는보【보】가는봇들에 물을 대는 보. `무정면 성도리
·가는봇들【들】무등재 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성도리
·구렁보【보】구렁봇들에 물을 대는 보. `무정면 성도리
·구렁봇들【들】성덕 서쪽에 있는 들. 구렁이 있다. `무정면 성도리
·꼬두까끔〔꿩바탕〕【산】작은골짝 남쪽에 있는 산. ① 광대들이 꼭두각시놀이를 했다고 전해 온다. ② 모양이 꿩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무정면 성도리
·꿩바탕【산】→꼬두까끔. `무정면 성도리
·남산바우【바위】영천산에 있는 바위. `무정면 성도리
·도덩바우〔쌍바우〕【바위】도동 동쪽에 있는 1쌍의 바위. `무정면 성도리
·뒷몰랑【산】성덕 뒤에 있는 산. `무정면 성도리
·매봉산【산】파랏골 동쪽에 있는 산. 지형이 나는 매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무정면 성도리
·모퉁이산【산】산태바웃골 북쪽 모롱이에 있는 산. `무정면 성도리
·방애실등【들】매봉산 북쪽 등성이에 있는 들. 물방아가 있었다. `무정면 성도리
·보전보【보】성덕 서북쪽에 있는 보. `무정면 성도리
·비암바우【바위】도동 남쪽에 있는 바위. 비암(뱀)굴이 있다. `무정면 성도리
·빗꺼리【들】지사대 동북쪽에 있는 들. 비가 있었다. `무정면 성도리
·산태바우【바위】산태바웃골에 있는 바위. `무정면 성도리
·산태바웃골【골】평잣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산태바우가 있다. `무정면 성도리
·서적골【골】도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서적들【들】서적골에 있는 들. `무정면 성도리
·세네들【들】빗거리 북쪽에 있는 들. 새로 난 내가 있다. `무정면 성도리
·소갓보〔속하보〕【보】방애실등 서북쪽에 있는 보. 소(蘇)가 막았다. `무정면 성도리
·속하보【보】→소갓보. `무정면 성도리
·시리점굴【골】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시리(시루)를 만들던 시리점이 있었다. `무정면 성도리
·시봉산【산】절산 동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성도리
·쌍바우【바위】→도덩바우. `무정면 성도리
·안골【골】도동 안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엿깍금【산】도동 북쪽에 있는 산. `무정면 성도리
·작은골짝【골】큰골짝 서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절산【산】서적골 동쪽에 있는 산. 정도사가 있다. `무정면 성도리
·지사대〔지삿들〕【들】성덕 동쪽에 있는 들. 지사(기와)를 구웠다. `무정면 성도리
·지삿들【들】→지사대. `무정면 성도리
·칠성바우(七星바우)【바위】꼬두까끔 서쪽에 있는 바위. 북두칠성처럼 늘어져 있다. `무정면 성도리
·칠쌍바우〔칠쌍암〕【바위】성도리 주위에 있는 바위. 일곱쌍의 바위로 흔들면 소리가 난다. `무정면 성도리
·칠쌍암(七雙岩)【바위】→칠쌍바우. `무정면 성도리
·큰골짝【골】성덕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파랏골【골】시리점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평상골【골】모퉁이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평잣골【골】도동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성도리
·홈거리【들】세네들 남서쪽에 있는 들. 홈을 놓아 물을 댔다. `무정면 성도리
·안평리(安平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안동(新安洞),
평장동(平章洞)과 무면(武面)의 동산리(東山里) 일부를 합하여 신안(新安)과 평장(平章)의 이름을 따서 안평리(安平里)로 정하고
,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안평리
·구렁들【들】쇠침머리 서쪽에 있는 들. 구렁으로 되었다. `무정면 안평리
·구렁보【보】구렁들에 물을 대는 보. `무정면 안평리
·딜리들【들】소태장이 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안평리
·딜리보【보】딜리들에 물을 대는 보. `무정면 안평리
·똥매【산】신안동 남쪽 들 가운데 있는 작은 산. `무정면 안평리
·매봉【산】→채알봉. `무정면 안평리
·미럭절【골】채알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정화사가 있다. `무정면 안평리
·방앳보【보】서답보 서쪽에 있는 보. 물방아가 있었다. `무정면 안평리
·방앳보들【들】방앳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안평리
·범바우【바위】쪽도리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 범굴이 있었다. `무정면 안평리
·서답보【보】구렁보 서쪽에 있는 보. 근처 부인들이 서답(빨래)하던 터가 있다. `무정면 안평리
·서답보들【들】서답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안평리
·소태장이【들】신안동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안평리
·쇠침머리【들】딜리를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안평리
·수리봉【산】채알봉 남저쪽에 있는 산. `무정면 안평리
·운반보【보】방앳보 동남쪽에 있는 보. `무정면 안평리
·짝굴【골】짝굴 밑에 있는 산. `무정면 안평리
·짝굴산【산】신안동 서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안평리
·쪽도리바우【바위】채알봉 남쪽에 있는 바위. 쪽도리처럼 생겼다. `무정면 안평리
·채알봉〔매봉〕【산】신안동 동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채알(차일)처럼 생겼다. `무정면 안평리
·영천리(靈泉里)〔영천〕【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영천산(靈泉山)이 있어서 영천(靈泉)이라 하였는데
,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서리(鳳棲里), 죽산리(竹山里)를 합하여 영천리(靈泉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
에 넣었다. `무정면 영천리
·가미절골【골】부채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영천리
·고동시암【우물】가미절골에 있는 샘.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다. `무정면 영천리
·노랑바우【바위】사장등 북쪽에 있는 바위. 사장등에서 활쏘고 이 위에서 놀았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영천리
·독텃굴【들】여시모리 동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영천리
·말뚝산【산】점뒷산 남쪽에 있는 산. 모양이 말뚝처럼 생겼다. `무정면 영천리
·물통거리【골】활맷등에 있는 골짜기. 물맞는 물통이 있었다. `무정면 영천리
·부채골【골】영천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돌부처가 있었다. `무정면 영천리
·사장등(射場등)【등】노랑바우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고려 때 활 쏘던 사장이 있었다. `무정면 영천리
·수랑들【들】→쌍들. `무정면 영천리
·쌍들〔수랑들〕【들】사장등 서쪽에 있는 들. 수렁이 많다. `무정면 영천리
·여시모리【산】봉서리 남쪽에 있는 산. 여우의 머리처럼 생겼다. `무정면 영천리
·영천산(靈泉山)【산】영천 뒤에 있는 산. `무정면 영천리
·우깽이들【들】자래봉 북쪽에 있는 들. 봉서 위에 있다. `무정면 영천리
·자래봉【등】지신갱이 동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자라목처럼 생겼다. `무정면 영천리
·장구밭등【등】사장등 북쪽에 있는 등성이. 장구처럼 잘록하게 되었다. `무정면 영천리
·점뒷산【산】영천산 서북쪽에 있는 산. `무정면 영천리
·지신갱이(地神갱이)【등】봉서리 서쪽에 있는 등성이. 지신을 모신 당집이 있었다. `무정면 영천리
·활맷등【등】 독텃굴 남쪽에 있는 등성이. 활처럼 구부정하게 휘었다. `무정면 영천리
·오룡리(五龍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운산리(雲山里),
외당리(外堂里)를 합하여 지형이 다섯 용처럼 생겼다 하여 오룡리(五龍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오룡리
·간인보【보】외당 동남쪽에 있는 보. `무정면 오룡리
·간인봇들【들】간인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오룡리
·내리밧굴【골】밍미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룡리
·배롱바우【바위】미럭골에 있는 바위. 가파른 경사에 있어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다. `무정면 오룡리
·덕보【보】재상보 북쪽에 있는 보. `무정면 오룡리
·덕봇들【들】덕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오룡리
·문턱바우【바위】문턱바우쟁이에 있는 바위. 문턱처럼 생겼다. `무정면 오룡리
·문턱바우쟁이【골】성적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문턱바우가 있다. `무정면 오룡리
·미럭골【골】외당 동쪽에 있는 골짜기. 돌미륵이 있다. `무정면 오룡리
·밍미기골【골】미럭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밍미기(명매기)집이 있다. `무정면 오룡리
·사드래이【들】내당 동남쪽에 있는 들. 모래가 많다. `무정면 오룡리
·새보【들】덕보 서쪽에 새로 된 보. `무정면 오룡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오룡리
·성적굴【골】운산 밑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룡리
·영천(靈泉)【우물】사드래이에 있는 샘. `무정면 오룡리
·재상보【보】간인보 밑에 있는 보. `무정면 오룡리
·재상봇들【들】재상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무정면 오룡리
·줄알【골】내당 동쪽에 있는 들. 돌이 줄 서 있는 것처럼 늘어져 있다. `무정면 오룡리
·오봉리(五峰里)〔오봉, 오봉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뒷산이 다섯 봉우리로 되었으므로 오봉(五
峰) 또는 오봉촌(五峰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봉리(五峰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
었다. `무정면 오봉리
·구석물【들】방천들 서쪽에 있는 들. 마을이 있었다. `무정면 오봉리
·높은바우【바위】담주봉에 있는 바위. `무정면 오봉리
·담주봉(潭州峯)〔성재〕【산】새까끔 남쪽에 있는 산. 고려 때 담주군이 있었다. `무정면 오봉리
·독배기【들】오봉 동북쪽에 있는 들. 돌이 박혀 있다. `무정면 오봉리
·마당바우【바위】성몰랭이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다. `무정면 오봉리
·말뚝산【산】오봉 동쪽에 있는 산. 영천이 소 형국이므로 그 말뚝이라고 전해 온다. `무정면 오봉리
·매봉【산】담주봉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오봉리
·방천들【들】오봉저수지 밑에 있는 들. `무정면 오봉리
·배상투【골】화상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봉리
·사망골【골】흥미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봉리
·산너매【골】산밭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담주봉 너머가 된다. `무정면 오봉리
·산밭굴【골】외고리끝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봉리
·삿굴【들】구석물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오봉리
·새까끔【산】말뚝산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오봉리
·성몰랭이【모롱이】오봉촌 남서쪽에 있는 모롱이. 성터의 밑. `무정면 오봉리
·성안골【골】오봉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 성문의 안쪽. `무정면 오봉리
·성재【산】→담주봉. `무정면 오봉리
·소반성국【산】매봉 서쪽에 있는 산. 지형이 소반 형국으로 되었다. `무정면 오봉리
·오봉촌삑대기【모롱이】독배기 밑에 있는 모롱이. `무정면 오봉리
·옥산까끔〔옥선까끔〕【산】소반성국 서북쪽에 있는 산. 돛대처럼 생겼다 한다. `무정면 오봉리
·옥선까끔【산】→옥산까끔. `무정면 오봉리
·외고리끝【골】성안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오봉리
·웃집앞【들】사망골 동쪽에 있는 들. 오봉촌 위가 된다. `무정면 오봉리
·제월교(霽月橋)〔한다리〕【다리】→봉산면 제월리의 '제월교'. `무정면 오봉리
·한다리【다리】→제월교. `무정면 오봉리
·행기대밭【밭】오봉촌 뒤에 있는 대밭. 옛 담주군이 있을 때 행기(鄕校)가 있었다. `무정면 오봉리
·화상등【등】오봉 서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오봉리
·흥미【들】삿굴 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오봉리
·정석리(貞石里)〔정석〕【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정면 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정석(貞石)이라 하였는
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환대리(還大里), 평촌(坪村) 일부를 합하여 정석리(貞石里)로 정하고, 정면(→무정
면)에 넣었다. `무정면 정석리
·넉바웃골【골】무리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사방에 네 개의 바위가 있다. `무정면 정석리
·대짓보【보】대지봇들에 물을 대는 보. 돼지처럼 혼자서 물을 다 받다. `무정면 정석리
·대짓보들【들】방아재골 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정석리
·도루매【산】능고개 북쪽에 있는 산. 동그랗게 생겼다. `무정면 정석리
·매봉【산】넉바웃골 서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정석리
·무리봉【산】송곡바우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정석리
·문바우【바위】정석리에 있는 바위. 길 양쪽으로 대문처럼 서 있다. `무정면 정석리
·바람정자【나무】한다리 앞에 있는 나무. 들 가운데 있는데, 여름에 바람이 시원하여 농군들이 쉼. `무정면 정석리
·방아재골【골】방주간 남쪽에 있는 골짜기. 방아가 앞에 있었다. `무정면 정석리
·방주간【골】자래명당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방죽 안. `무정면 정석리
·사장갱변【들】우터우들 서쪽에 있는 들. 활쏘던 사장터가 있다. `무정면 정석리
·생여바우【바위】송곳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 상여처럼 생겼다. `무정면 정석리
·송곳바우【바위】문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 송곳처럼 뽀죽하게 생겼다. `무정면 정석리
·애경바우【바위】애경바웃골에 있는 바위. `무정면 정석리
·애경바웃골【골】화봉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애경바우가 있다. `무정면 정석리
·우터우들【들】대짓보 동북쪽에 있는 들. 정석리의 위가 된다. `무정면 정석리
·자래명당골【골】도루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자리(자라)명당이 있다. `무정면 정석리
·절마당【골】정석리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당만 남았다. `무정면 정석리
·탑선동【골】절마당 입구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었다. `무정면 정석리
·환대골【골】환대리 위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정석리
·평지리(平地里)〔평지, 청석〕【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평지가 되어 평지(平地) 또는 푸른 돌이 많
이 나서 청석(靑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미산리(尾山里)와 평촌(平村) 일부를 합하여 평지리
(平地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무정면 평지리
·가죽바우【바위】이기정이 서쪽에 있는 바위. 짐승 가죽을 벗겨 널어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평지리
·고라실들【들】→애미산들. `무정면 평지리
·고창골【골】소롱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고창 원이 피란 했었다고 전해 온다. `무정면 평지리
·구남징이【들】금바우 동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구무시암【우물】송날등 동쪽에 있는 샘. `무정면 평지리
·구실매〔옥산〕【산】평지 북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군시암【우물】용골산 상봉에 있는 샘. `무정면 평지리
·굴등【등】독시암 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금바우【들】높은징이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날평전【들】소신봉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노적봉〔매봉〕【산】소신봉 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노적처럼 생겼다. `무정면 평지리
·높은징이【들】평지 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대밭골착【골】매봉 밑에 있는 골짜기. 약물이 난다. `무정면 평지리
·독시암【우물】독시암골에 있는 샘. `무정면 평지리
·독시암골【골】두꺼비바웃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평지리
·두꺼비바우【바위】두꺼비바웃등에 있는 바위. 두꺼비처럼 생겼다. `무정면 평지리
·두꺼비바웃등【등】시적굴 북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뒨전등〔뒨전머리〕【들】높은징이 북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뒨전머리【들】→뒨전등. `무정면 평지리
·매봉【산】→노적봉 `무정면 평지리
·매통바우【바위】애미산 중턱에 있는 바위. 맷돌처럼 생겼다. `무정면 평지리
·문바우【바위】매통바우 서쪽에 있는 바위. `무정면 평지리
·벌통바우【바위】용골산 동북쪽에 있는 바위. 벌통처럼 생겼다. `무정면 평지리
·분골【골】쟁비산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평지리
·산짓등【산】노적봉 서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살구징이【들】높은징이 남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새바지【들】평지 동쪽에 새로 된 들. `무정면 평지리
·소롱굴【골】평지 동쪽에 있는 골짜기. 와우 형국으로 되었다. `무정면 평지리
·소신봉【산】군시암 동북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송날등【등】구무시암 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수박등【등】송날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수박처럼 생겼다. `무정면 평지리
·시적골【골】심박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무정면 평지리
·심박등【등】수박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애미산【산】평지 서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애미산들〔고라실들〕【들】애미산 밑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어리빗등【등】진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옥산【산】→구실매. `무정면 평지리
·용골산【산】평지 서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원안들【들】새바지 옆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이기정이【들】높은쟁이 서쪽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작은군시암【우물】용골산 상봉에 있는 작은 샘. `무정면 평지리
·장성등【등】굴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장승이 있었다. `무정면 평지리
·쟁비산【산】짓당골 남쪽에 있는 산. `무정면 평지리
·줌벙거리【들】매통바우 밑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진등【등】평지리에 있는 긴 등성이. `무정면 평지리
·짓당골【골】애미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제당이 있다. `무정면 평지리
·큰굿시암【우물】용골산 상봉에 있는 큰 샘. `무정면 평지리
·평전【들】날평전 밑에 있는 들. `무정면 평지리
·평풍바우【바위】용골산 동북쪽에 있는 바위. `무정면 평지리
·기곡리(錡谷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리(上德里),
방축리(防築里), 탄금정(彈琴亭), 천수동(泉水洞), 구암리(龜岩里), 연동(蓮洞) 일부와 우면(牛面)의 송산리(松山里)를 합하여 기
곡리(錡谷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봉산면 기곡리
·괴터【골】탄금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괴터들【들】괴터에 있는 들. `봉산면 기곡리
·내산골【골】퇴미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독꿀【들】연산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기곡리
·모산이【골】쟁이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모산이들【들】모산이에 있는 들. `봉산면 기곡리
·상딩이모팅이【모롱이】연산 동쪽에서 상덕으로 가는 모롱이. `봉산면 기곡리
·아홉바우〔압바우〕【바위】송산 뒤에 있는 9개의 바위. `봉산면 기곡리
·압바우【바위】→아홉바우. `봉산면 기곡리
·옥녀봉(玉女峯)【산】탄금 앞에 있는 산. `봉산면 기곡리
·용두봉(龍頭峯)【산】모산이 동쪽에 있는 산.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봉산면 기곡리
·장구터【골】괴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장구터들【들】장구터에 있는 들. `봉산면 기곡리
·쟁이골【골】장구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천수동(天壽洞)【골】상덕 남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있었다. `봉산면 기곡리
·큰골【골】구암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봉산면 기곡리
·퇴미봉【산】용두봉 동쪽에 있는 산. `봉산면 기곡리
·가리산(가리山)【보】강신보 북서쪽에 있는 보. `봉산면 대추리
·강신보【보】대추 북쪽에 있는 보. `봉산면 대추리
·개정지【들】마구들 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곡징이〔곡정, 구붕정〕대추 서남쪽에 있는 마을. `봉산면 대추리
·꽃남징이【들】개정지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대숲갱이【들】시오리 서쪽에 있는 들. 대숲이 있다. `봉산면 대추리
·마구들【들】대숲갱이 동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보랭이【들】대추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사야보(沙野洑)【보】가리산 밑에 있는 보. `봉산면 대추리
·살포쟁이【들】마구들 서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새보【보】마구들 동쪽에 새로 된 보. `봉산면 대추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는 들. `봉산면 대추리
·시오리【들】대추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안들【들】살포쟁이 서쪽 안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앞들【들】대추 앞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작살머리【들】시오리 동쪽에 있는 들. `봉산면 대추리
·초신보(草薪洑)【보】→최신보. `봉산면 대추리
·최신보〔초신보〕【보】곡징이 북쪽에 있는 보. `봉산면 대추리
·구럭보【보】삼지 서북쪽에 있는 보. 구럭(망태기)처럼 생겼다. `봉산면 삼지리
·구시논【논】삼지 남쪽에 있는 논. 구시(구유)처럼 생겼다. `봉산면 삼지리
·도지기【들】뒷말 북쪽에 있는 들. 수문이 있다. `봉산면 삼지리
·들청거리【들】앞말 동남쪽에 있는 들. 정자나무가 있었다. `봉산면 삼지리
·멍석논【논】구시논 동쪽에 있는 논. `봉산면 삼지리
·배깃보【보】신흥리 동쪽에 있는 보. `봉산면 삼지리
·소록보【보】주석보 남쪽에 있는 보. `봉산면 삼지리
·시암꺼리【들】앞몰 가운데 있는 들. 시암(샘)이 있다. `봉산면 삼지리
·아릿당산〔할무이당산〕【나무】앞몰 앞에 있는 느티나무. `봉산면 삼지리
·외양굴【들】해정잇들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삼지리
·웃당산〔할아버지당산〕【나무】아릿당산 위에 있는 느티나무. `봉산면 삼지리
·인정골【굴】외양굴 동쪽에 있는 들. `봉산면 삼지리
·작은방다리【다리】작은주릿대에 있던 다리. 디딜방아로 다리를 놓았다. `봉산면 삼지리
·작은주릿대【들】주릿대의 작은 들. `봉산면 삼지리
·주릿대【들】삼지 동남쪽에 있는 들. 냇가에 줄(풀)이 많이 있었다. `봉산면 삼지리
·주석보【보】구럭보 남쪽에 있는 보. `봉산면 삼지리
·큰방다리【다리】큰주릿대에 있던 다리. 디딜방아로 놓았다. `봉산면 삼지리
·큰주릿대【들】주릿대의 큰 들. `봉산면 삼지리
·할무이당산【나무】→아릿당산. `봉산면 삼지리
·할아버지당산【나무】→웃당산. `봉산면 삼지리
·합수통(合水桶)【들】주릿대 남쪽에 있는 들. 냇물이 합쳐진다. `봉산면 삼지리
·해정잇들【들】삼지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삼지리
·화숙골들【들】인정골 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삼지리
·신학리(新鶴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학동, 신곡리(新
谷里) 일부와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관동리(關洞里), 정중리(井中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신곡(新谷)과 학동(鶴洞)의 이름을
따서 신학리(新鶴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봉산면 신학리
·광보(廣洑)【보】조개배미 동북쪽에 있는 넓은 보. `봉산면 신학리
·구덕보【보】해징이 북쪽에 있는 보. 구덕이란 사람이 막았다. `봉산면 신학리
·당산나무(堂山나무)【나무】단산정 옆에 있는 느티나무. 둘레 4아름, 수령 약 550년.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지므로 동네 사람
들이 모여 더위를 식힌다. `봉산면 신학리
·뒨전밭【들】신학 서쪽에 있는 들. 뒨전(둔전)이 있었다. `봉산면 신학리
·뒨전보【보】뒨전밭에 물을 대는 보. `봉산면 신학리
·뒷가리【보】뒨전보 남쪽에 있는 보. 신학 뒤가 된다. `봉산면 신학리
·뜅재【산】망월봉 북쪽에 있는 산. `봉산면 신학리
·망월봉(望月峯)【산】불당골 동쪽에 있는 산. 신학의 동쪽이므로 산 위로 달이 떠오는 것을 본다. `봉산면 신학리
·방죽밑【들】한삼모팅이 남쪽, 방죽 밑에 있는 들. `봉산면 신학리
·부가래【보】뒷가의 남쪽에 있는 보. `봉산면 신학리
·불당골【골】신학 동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이 있었다. `봉산면 신학리
·빗가리【들】신촌앞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신학리
·삼밭논〔텃논〕【논】장구리 남쪽에 있는 논. `봉산면 신학리
·섬머리【들】신학 서남쪽에 있는 들. 뱃머리 형국이다. `봉산면 신학리
·신촌앞(新村앞)【들】홈더리 서쪽에 있는 들. 신촌이 있었다. `봉산면 신학리
·외앙골【들】빗가리 서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신학리
·장구리【보】부가래 남쪽에 있는 보. 물구럭처럼 생겼다. `봉산면 신학리
·장구리시암【우물】빗가리에 있는 샘. `봉산면 신학리
·조개배미【논】방죽밑 서쪽에 있는 논. `봉산면 신학리
·줌봇깨【들】홈건네 서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신학리
·추서보(秋西洑)【보】→추석보. `봉산면 신학리
·추석보〔추서보〕【보】구덕보 남쪽에 있는 보. 옛 추성고을터의 서쪽. `봉산면 신학리
·텃논【논】→삼밭논. `봉산면 신학리
·한삼모팅이【들】외앙골 서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신학리
·해징이【들】장구리시암 서쪽에 있는 들. 바다처럼 넓고 큼. `봉산면 신학리
·홈건네【들】신학 북쪽에 있는 들. 홈더리 건너가 된다. `봉산면 신학리
·홈더리【들】섬머리 동쪽에 잇는 들. 홈을 놓아 물을 댔다. `봉산면 신학리
·양지리(陽地里)〔양지〕 조선시대엔 담양군 우면(牛面)의 지역이었다. 양지바른 곳이 되어 양지(陽地)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전리(月田里), 강정리(江亭里) 일부를 합하여 양지리(陽地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
었다. `봉산면 양지리
·강징이【산】양쟁이 동북쪽에 있는 산. 강정자가 있었다. `봉산면 양지리
·개내〔교내〕【들】궁게 동쪽에 있는 들. `봉산면 양지리
·공동골【굴】큰맷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양지리
·교내【들】→개내. `봉산면 양지리
·교뭇들【들】개내 동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양지리
·궁게【들】창들 북쪽에 있는 들. 구렁이 있다. `봉산면 양지리
·궁게통【둠벙】궁게에 있는 둠벙. `봉산면 양지리
·남산(南山)【산】새터 동남쪽에 있는 산. `봉산면 양지리
·남산골【골】남산 밑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양지리
·당산골【골】공동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효열문이 있다. `봉산면 양지리
·독서굴(犢棲굴)【골】포랫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양지리
·들내기【들】옥상이걸 북쪽에 있는 들. 들내기방아가 있었다. `봉산면 양지리
·보릿걸【들】들내기 북쪽에 있는 들. 땅이 메말라 보리를 갈아먹다. `봉산면 양지리
·삼머리【들】통까상 위에 있는 들. 산 모롱이 밑에 있다. `봉산면 양지리
·삼밑통【둠벙】삼머리에 있는 둠벙. `봉산면 양지리
·서적굴【골】새터 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양지리
·소락산〔송락산〕【산】강정 남쪽에 있는 산. `봉산면 양지리
·송락산(松樂山)【산】→소락산. `봉산면 양지리
·싯밭【들】보릿걸 동남쪽에 있는 높은 들. `봉산면 양지리
·쌀거리【들】싯밭 동쪽에 있는 들. 질이 좋은 쌀이 난다. `봉산면 양지리
·옥상이걸【들】교뭇들 동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양지리
·웃골【골】소락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위가 된다. `봉산면 양지리
·창들【들】양지 앞에 있는 들. 조선조 때 사창이 있었다. `봉산면 양지리
·큰맷등【산】팟박지기 동쪽 있는 산. 지형이 나는 매 형국으로 되었다. `봉산면 양지리
·통까상【들】쌀거리 동남쪽에 있는 들. 통(둠벙)가에 있다. `봉산면 양지리
·퉁수방천【뚝】양쟁이 동쪽에 있는 뚝. `봉산면 양지리
·팟박지기【산】웃골 동쪽에 있는 산. 경사가 심해서 오르기가 팍팍하다. `봉산면 양지리
·포랫등【등】송강정 남쪽에 있는 등성이. `봉산면 양지리
·푼산등【산】남산 동쪽에 있는 산. `봉산면 양지리
·효열문【비】단산골에 있는 비. `봉산면 양지리
·효자문〔효자정기동지비〕【비】효열문 동쪽에 있는 비. `봉산면 양지리
·효자정기동지비(孝子鄭基東之碑)【비】→효자문 `봉산면 양지리
·고실【들】죽림 북쪽 앞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나나리【들】화장깔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내산골【골】비락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달갈몰랭이【모롱이】죽림 동쪽에 있는 모롱이. 달걀처럼 동그랗게 생겼다. `봉산면 연동리
·도독골【골】통시암걸 안에 있는 골짜기. 길고 음침하여 도둑이 나올 것 같다. `봉산면 연동리
·배암골【골】외앗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배암(뱀)처럼 꾸불꾸불하다. `봉산면 연동리
·배암골【들】배암골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비락골【골】쉰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빗까리【들】나나리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쉰산【산】만덕재 동쪽에 있는 산. `봉산면 연동리
·양절【골】시술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장절이 있었다. `봉산면 연동리
·양절【들】양절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외앗골【들】양절 동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작은골【골】큰골 동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접골【골】능고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좁은골【골】진골 동남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진골【골】작은골 동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큰골【골】내산골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봉산면 연동리
·통시암【우물】통시암걸에 있는 샘. 통을 짜 넣었다. `봉산면 연동리
·통시암걸【들】빗까리 서쪽에 있는 들. 통시암이 있다. `봉산면 연동리
·화장깔【들】고실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연동리
·곡성통(谷城桶)【둠벙】줄똘 북쪽에 있는 둠벙. 곡성 사람이 팠다고 전해 온다. `봉산면 와우리
·공동묏골【골】방애까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공동묘지가 있다. `봉산면 와우리
·궁게【들】매골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와우리
·꿩바탕껄【골】번디기 남쪽에 있는 골짜기. 넓고 평평하여 초군들이 공치고 놀았다고 전해 온다. `봉산면 와우리
·매골【골】부신당 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와우리
·모지랑통【둠벙】곡성통 북쪽에 있는 둠벙. 물이 모아진다. `봉산면 와우리
·방애까리【산】홍동굴 남쪽에 있는 산. 산세가 디딜방아처럼 생겼다. `봉산면 와우리
·방청매【산】밭등 북쪽에 있는 산. 풀이 좋아 소를 많이 내다 맸다. `봉산면 와우리
·밭등【등】새보 북쪽에 있는 등성이. 밭이 많이 있다. `봉산면 와우리
·번디기【골】쪽지비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와우리
·부신당【산】방청매 서쪽에 있는 산. `봉산면 와우리
·새보【보】와우 북쪽에 새로 된 보. `봉산면 와우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는 들. `봉산면 와우리
·섶바탕【들】천석굴 북쪽에 있는 들. 전에 섶이 무성하였다. `봉산면 와우리
·소락산【산】와우 남쪽에 있는 산. `봉산면 와우리
·솔청【산】와우 서쪽에 있는 산. 소나무가 많다. `봉산면 와우리
·줄똘【들】섶바탕 북쪽에 있는 들. 똘 가에 줄이 많았다. `봉산면 와우리
·쪽지비골【골】공동묏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쪽제비처럼 생겼다 한다. `봉산면 와우리
·천석굴【들】봉학 북쪽에 있는 들. 땅이 기름져 천석군이 부럽지 않게 곡식이 많이 난다 한다. `봉산면 와우리
·홍동굴【들】궁게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와우리
·황새구렁【골】항정목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진구렁창에 황새가 많이 앉는다 한다. `봉산면 와우리
·유산리(柳山里)〔버들뫼, 유산〕【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우면(牛面)의 지역이었다. 산이 벋어 있어서 버들뫼 또는 유산(柳山
)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마산리(馬山里), 창강리(滄江里)일부와 두면(豆面)의 죽림리(竹林里)
일부를 합하여 유산리(柳山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봉산면 유산리
·건넌들【들】버들뫼 동쪽, 내 건너에 있는 들. `봉산면 유산리
·구례실【들】창봇들 동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 대기가 좋다. `봉산면 유산리
·내산골【골】작은병골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유산리
·도독골【골】서당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유산리
·독백걸【들】유산 동쪽에 있는 들. 돌이 박혀 있다. `봉산면 유산리
·둔전보(屯田洑)【보】마산 남쪽에 있는 보. 전에 둔전답에 물을 댔다. `봉산면 유산리
·둔전봇들【들】둔전보의 물을 대는 들. `봉산면 유산리
·방삿들【들】방죽밭 위에 있는 들. `봉산면 유산리
·방애통【둠벙】구례실 북쪽에 있는 둠벙. `봉산면 유산리
·방죽밭【들】방애통 동쪽에 있는 들. 방죽이 있다. `봉산면 유산리
·배앙골【골】방삿들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유산리
·부오이꼴착【골】작은병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부오이(부엉이)가 살던 집이 있다. `봉산면 유산리
·서당골【골】배앙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서당이 있었다. `봉산면 유산리
·송강보(松江洑)【보】둔전보 아래에 있는 보. `봉산면 유산리
·쌍교(雙橋)【다리】→쌍다리. `봉산면 유산리
·쌍다리〔쌍교〕【다리】유산 서남쪽에 있는 두 개의 다리. `봉산면 유산리
·양골〔외양골〕【들】마산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유산리
·외양골【들】→양골 `봉산면 유산리
·유산교(柳山橋)【다리】쌍교에 있는 다리. `봉산면 유산리
·작은병골【골】내산골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봉산면 유산리
·창보(倉洑)【보】송강보 아래 서남쪽에 있는 보. `봉산면 유산리
·창봇들【들】창보의 물을 대는 들. `봉산면 유산리
·제월리(齊月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면앙정( 仰亭),
마항리(馬項里)와 서봉리(棲鳳里), 곡정리(曲丁里)의 각 일부와 목면(木面)의 오산동(五山洞), 구미동(九尾洞)을 합하여 제월산(
齊月山)의 이름을 따서 제월리(齊月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봉산면 제월리
·간닥징이【들】동구냉기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광보【보】샛까래 서북쪽에 있는 보. `봉산면 제월리
·남폿갓【산】서봉 동남쪽에 있는 산. 일제 때 기찻길을 놓을 때 남포를 터뜨려 길을 냈다. `봉산면 제월리
·능안골【골】물통안 동쪽에 있는 골짜기. 능선 아래에 있다. `봉산면 제월리
·독골【골】웃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제월리
·동구냉기【들】영상굴 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둔전보(屯田洑)【보】서봉 동쪽에 있는 보. `봉산면 제월리
·뒷들【들】서봉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물통안【골】사중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물통이 있었다. `봉산면 제월리
·민앙지【골】마항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제월리
·밧꿀【골】서남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봉산면 제월리
·사주동【산】재너메 동북쪽에 있는 산. 사주 형국으로 되었다. `봉산면 제월리
·샛가래【들】독골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서남징이【들】흥북굴 동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영상굴【들】샛가래 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웃굴【골】서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마을 터였다. `봉산면 제월리
·작은제밋굴【들】큰제밋굴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재너메【들】뒷들 동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재일봉【산】서봉 남쪽에 있는 산. `봉산면 제월리
·정각밑배미【논】면앙정 밑에 있는 논. `봉산면 제월리
·제월산(齊月山.濟月山)【산】마항 남쪽에 있는 산. `봉산면 제월리
·지렝이【들】재너메 동북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철뚝다리【다리】서봉 앞에 있는 다리. `봉산면 제월리
·큰제밋굴【들】지렝이 동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핑깃물【들】민앙지 서남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흠건네【들】마항 서쪽에 있는 들. `봉산면 제월리
·흥북굴【골】능안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비가 오면 북치는 소리가 난다 한다. `봉산면 제월리
·개동리(開東里)〔개동〕【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지역이었다. 개(浦)가 동쪽에 있어서 개동(開東)이라 하였
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개동리(開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개동리
·간당거리【들】개동 남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개동리
·갱봇섶【들】큰새터 동쪽에 있는 들. 갱변 옆. `수북면 개동리
·거창배미【논】목화배미 위쪽에 있는 논. ① 거창(고추장)과 바꿨다고 전해 온다. ② 고추장처럼 흙이 붉다. `수북면 개동리
·구렁걸【들】큰새터 북동쪽에 있는 깊은 들. `수북면 개동리
·너검물【들】작은새터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개동리
·띠논【논】띠논들에 있는 논. `수북면 개동리
·띠논들【들】띠는 남서쪽에 있는 들. 띠논이 있다. `수북면 개동리
·모서방거리【들】너검물 남쪽에 있는 들. 모새(모래)가 많다 한다. `수북면 개동리
·목화배미【논】큰새터 서쪽에 있는 논. 옛날 물이 귀하여 목화를 심었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개동리
·바지배미【논】새터 남쪽에 있는 논. 지형이 바지 모양으로 생겼다. `수북면 개동리
·사중논【논】애기배미 동쪽에 있는 논. 사정이 섰었다. `수북면 개동리
·상신보(上新洑)【보】→새보. `수북면 개동리
·새보〔상신보〕【보】개동 동쪽 위에 새로 된 보. `수북면 개동리
·선두논(先頭논)【논】거창배미 동쪽에 있는 논. 제일 웃머리가 된다. `수북면 개동리
·섬논【논】선두논 남서쪽에 있는 논. 가운데 작은 섬같이 솟아 있다. `수북면 개동리
·신두보(新斗洑)【보】용호보 밑에 있는 보. `수북면 개동리
·애기배미【논】장태구름에 있는 논. `수북면 개동리
·용호보(龍湖洑)【보】새로 밑에 있는 보. 용이 올라갔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개동리
·우더리【논】개동 앞에 있는 논. `수북면 개동리
·워성골【들】개동 남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개동리
·월천굴【들】갱봇섶 위, 서쪽에 있는 들. 이 곳에 집을 지으면 언챙이가 난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개동리
·장구배미【논】개동 서쪽에 있는 논. 지형이 장구처럼 잘룩하게 생겼다. `수북면 개동리
·장태구름【들】통거리 북쪽에 있는 들. 장태(닭장)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개동리
·진배미【논】장태굴 동쪽에 있는 긴 논. `수북면 개동리
·쪽남징이【들】모서방거리 서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개동리
·큰논거리【들】개동 북쪽에 있는 들. 큰 논이 여럿 있다. `수북면 개동리
·텃등【들】큰논거리 밑에 있는 들. 집이 있었다 하며, 기왓장이 나온다. `수북면 개동리
·통거리【들】큰논거리 남쪽에 있는 들. 통시암이 있었다. `수북면 개동리
·폿죽배미【논】장구배미 밑에 있는 논. `수북면 개동리
·항거리툼벙【둠벙】너검물에 있는 둠벙. `수북면 개동리
·갈마정(渴馬亭)【들】→갈마징이. `수북면 고성리
·갈마징이〔갈마정〕【들】신월 북쪽에 있는 들. 갈마음수형(갈마음수형)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고성리
·걸치목【등】꽃징이 서쪽에 있는 등성이. 들 사이에 걸쳐 있다. `수북면 고성리
·고실꼬랑【골】궁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고성리
·구렁보【보】밭뚝보 남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꼭두말배미【논】매논 동쪽에 있는 논. 지대가 높다. `수북면 고성리
·너덜골【골】월성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너덜이 있다. `수북면 고성리
·너븐굴【들】신월 남쪽에 있는 넓은 들. `수북면 고성리
·더드리보【보】걸치목 서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돈이매〔토이매〕【등】신월 동쪽에 있는 등성이. `수북면 고성리
·매논【논】호랭이배미 동쪽에 있는 논. `수북면 고성리
·미침배기【산】신월 북쪽에 있는 산. `수북면 고성리
·밭뚝보【보】한그리보 남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생이치걸【골】창앞들에 있던 마을. 생이치(상엿집)가 있었다. `수북면 고성리
·서낭댕이【골】고실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낭당이 있었다. `수북면 고성리
·소금가매【들】→송가맷등. `수북면 고성리
·송가맷등〔소금가매〕【들】월성산 북쪽에 있는 들. 전에 소금을 구웠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고성리
·숯굴【골】신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숯을 구웠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고성리
·시리밑들【들】창앞들 서쪽에 있는 들. 시리(시루)처럼 물이 잘 빠진다. `수북면 고성리
·오징께보【보】텃거리보 서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작은너덜골【골】너덜골의 작은 골짜기. `수북면 고성리
·장구배미【논】월성산 동쪽에 있는 논. 장구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수북면 고성리
·창등【등】월성산 동쪽에 있는 등성이. 창고가 있었다. `수북면 고성리
·창앞들【들】창등 앞에 있는 들. `수북면 고성리
·큰너덜골【골】너덜골의 큰 골짜기. `수북면 고성리
·텃거리보【보】더드리보 서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토이매【등】→돈이매. `수북면 고성리
·퐈죽배미【논】 장구배미 동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퐈죽(팥죽)과 바꿨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고성리
·한그리보【보】텃거리보 남쪽에 있는 보. `수북면 고성리
·호랭이배미【논】풋죽배미 동쪽에 있는 논. `수북면 고성리
·홈보【보】밭뚝보 남쪽에 있는 보. 홈을 댔다. `수북면 고성리
·곤담【골】앞노래골착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수북면 궁산리
·광주들【들】방애드리들 서쪽에 있는 들. 전에 광주땅이 었다. `수북면 궁산리
·구암(龜岩)【바위】→귀바위. `수북면 궁산리
·구암들(龜岩들)【들】→귀바웃들. `수북면 궁산리
·귀바우〔구암〕【바위】구암촌에 있는 바위. 귀처럼 생겼다. `수북면 궁산리
·귀바웃들〔구암들〕【골】구암촌 앞에 있는 들. `수북면 궁산리
·노리빠탕〔노리뻔더리〕【산】욍이버러지 남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노리뻔더리【산】→노리빠탕. `수북면 궁산리
·무듬골【골】부챗살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 무듬(무덤)이 있다. `수북면 궁산리
·밍미깃등【등】아랫마당바우 밑에 있는 등성이. 밍미기(명매기)가 살던 집이 있다. `수북면 궁산리
·방애드리들【들】궁산 북쪽에 있는 들.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수북면 궁산리
·부챗살【골】집시랑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부챗살처럼 방사형으로 퍼져 있다. `수북면 궁산리
·불당터(佛堂터)【골】용골 옆, 서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터가 있다. `수북면 궁산리
·비암장골【골】웃마당바우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비암(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수북면 궁산리
·뿍떡산【산】쇠정기 남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상건너리【산】곤담 동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상막터(上幕터)【골】홍시나뭇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풀꾼들이 막치고 나무를 했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궁산리
·쇠정기【등】밍미깃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수북면 궁산리
·시앙골【골】치매바우 위쪽에 있는 골짜기. 시앙(샘)이 있다. `수북면 궁산리
·아랫마당바우【바위】비암장골 북쪽에 있는 바위. 마당처럼 넓고 평평하며 웃마당바우의 아래가 된다. `수북면 궁산리
·아릿시앙골【골】시앙골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궁산리
·앞노래골착【골】치알봉 밑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궁산리
·욍이버러지【산】홍시나뭇골 위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용골【골】곤담 서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웃마당바우【바위】부챗살 남쪽에 있는 넓은 바위. 일꾼들의 놀이터였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궁산리
·웃시앙골【골】시앙골 위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궁산리
·중전【골】불당터 북쪽에 있는 골짜기. ① 주 천자가 났다고 전해 온다. ② 절터가 있다. `수북면 궁산리
·집시랑바우【바위】상막터 남쪽에 있는 바위. 집시랑(추녀)처럼 생겼다. `수북면 궁산리
·짓등이【등】쪽박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제를 지내던 제당이 있다. `수북면 궁산리
·쪽박등【등】욍이버러지 남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쪽박처럼 생겼다. `수북면 궁산리
·쪽재굴【골】중골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궁산리
·차일봉(遮日峯)【산】→치알봉. `수북면 궁산리
·참시암【우물】앞노래골착에 있는 샘. `수북면 궁산리
·참시암걸【들】광주들 서북쪽에 있는 들. 참시암의 물을 받아 농사를 지다. `수북면 궁산리
·채알봉【산】→치알봉. `수북면 궁산리
·천장봉【산】용사재 서쪽에 있는 산. `수북면 궁산리
·치매바우【바위】중전 위 서쪽에 있는 바위. 치매(치마)를 두른 것처럼 생겼다. `수북면 궁산리
·치알봉〔채알봉, 차일봉〕【산】중골 북쪽에 있는 산. 치알(차일)처럼 생겼다. `수북면 궁산리
·홍시나뭇골【골】천장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감나무가 있었다. `수북면 궁산리
·나산리(羅山里)〔나리매, 나산〕【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벌판이 되어 나리매 또는 나산(羅山)
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촌(上村)을 합하여 나산리(羅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 `수북면 나산리
·가마구논【논】몰미논 만쪽에 있는 논. `수북면 나산리
·고라실【들】상촌 남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수북면 나산리
·대밭뒤에【들】하촌 서쪽에 있는 들. 대밭 뒤가 된다. `수북면 나산리
·대흥리뒷등(大興里뒷등)【들】하촌 동쪽에 있는 들. 대흥리 뒤가 된다. `수북면 나산리
·몰미논【논】나산 남쪽에 있는 논. `수북면 나산리
·방죽밑【들】하촌 남쪽, 나산방죽 밑에 있는 들. `수북면 나산리
·불뭇고삿【골】홍정골착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나산리
·새탯고랑【골】불뭇고삿 남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나산리
·엉개논【논】가마구논 남쪽에 있는 논. `수북면 나산리
·진등들【들】하촌 북쪽, 긴 등성이에 있는 들. `수북면 나산리
·홍정골착(洪亭골착)【골】하촌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홍씨의 정자가 있었다. `수북면 나산리
·남산리(南山里)〔남매, 남산〕【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지역이었다. 남매 또는 남산(南山)이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담양군 부면(夫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와 두면(豆面)의 곡정리(曲丁里) 일부를 합하여
남산리(南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남산리
·감남들【들】대밭가래 동쪽에 있는 들. 감나무가 있었다. `수북면 남산리
·구산(龜山)【산】남산 동북쪽에 있는 산. `수북면 남산리
·대밭가래【들】얼치들 동쪽에 있는 들. 대밭이 있다. `수북면 남산리
·돌무랭이【들】남매 동쪽에 있는 들. 돌아가는 모롱이가 있다. `수북면 남산리
·얼치들【들】남매 서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남산리
·에무지【들】남매 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남산리
·챙평보【보】남매 동쪽에 있는 보. 옛날 창평군의 땅이었다. `수북면 남산리
·챙평봇들【들】챙평보의 물을 대는 들. `수북면 남산리
·가마귀등【등】가새등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수북면 대방리
·가새등【등】국건이너들강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가새(가위)처럼 생겼다. `수북면 대방리
·개밭골【골】신필이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대방리
·개비깃들〔포백평〕【들】포백 앞에 있는 들. `수북면 대방리
·국건이너들강【너설】대각동 서북쪽에 있는 너설. `수북면 대방리
·깃대봉【산】북당골 북쪽에 있는 산. 측량 표준기의 깃대를 꽂았다. `수북면 대방리
·달구바우【바위】보십너들강 남서쪽에 있는 바위. `수북면 대방리
·대각골【골】소금바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대방리
·돛들들【들】옥답골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대방리
·뒤염실【들】수랑들 동남쪽에 있는 들. 토질이 두엄처럼 걸어서 농사가 잘 된다. `수북면 대방리
·등잔대가리〔등잔등〕【등】범골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등잔처럼 생겼다. `수북면 대방리
·등잔등【등】→등잔대가리 `수북면 대방리
·몰무디미【들】뒤염실 남동쪽에 있는 들. 몰(말)무덤이 있다 한다. `수북면 대방리
·범골【골】잉골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범굴이 있었는데 호랑이가 많았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대방리
·보십너들강【너실】지네너들강 서북쪽에 있는 너덜. 지형이 보십(보습)처럼 생겼다. `수북면 대방리
·부체골【골】북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돌부처가 있었다. `수북면 대방리
·북당골【골】한수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북당(불당)이 있었다. `수북면 대방리
·비암똘〔사봇들〕【들】평전들 서북쪽에 있는 들. 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수북면 대방리
·사보(巳洑)【보】비암똘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대방리
·사봇들【들】→비암똘. `수북면 대방리
·소금바우〔송장바우〕【바위】개밭골 밑에 있는 바위. 옛날 소금장수가 소금을 지고 가다가 이 곳에서 죽었다고 전해 온다. `수
북면 대방리
·송장바우【바위】→소금바우. `수북면 대방리
·수랑들【들】비암똘 밑에 있는 들. 수랑(수렁)이 있다. `수북면 대방리
·신선대(神仙臺)【바위】용구산 중턱에 있는 바위. 옛날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놀았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대방리
·신필이골【골】달구바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대방리
·용구산(龍龜山)【산】심방골 북쪽에 있는 산. `수북면 대방리
·용구시암(龍龜시암)【우물】신선대 남쪽에 있는 샘. `수북면 대방리
·잉골【골】부채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터가 있다. `수북면 대방리
·조리봉【산】등잔대가리 서북쪽에 있는 산. `수북면 대방리
·주벅등【등】가마귀등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주벅(주걱)처럼 생겼다. `수북면 대방리
·지네너들강【너설】마흔대미재 아래쪽에 있는 너덜. 지네가 많다. `수북면 대방리
·진골【골】범골 서북쪽에 있는 긴 골짜기. `수북면 대방리
·진등들【들】진등 밑에 있는 들. `수북면 대방리
·평전들(平田들)【들】돛들들 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대방리
·평전보(平田洑)【보】평전들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대방리
·포백평(浦 坪)【들】→개비깃들. `수북면 대방리
·한수동〔한시동〕【골】대방제 위에 있는 큰 골짜기. `수북면 대방리
·한시동【골】→한수동. `수북면 대방리
·대흥리(大興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계리(月溪
里), 만화동(滿花洞)과 장남면(長南面) 남산리(南山里) 일부를 합하여 크게 일어나라는 뜻으로 대흥리(大興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대흥리
·고랫걸【들】만화동 앞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수북면 대흥리
·꽃나무짠등【등】만화동 북쪽, 뒤에 있는 등성이. 꽃나무가 많아 항시 꽃이 피어 있다. `수북면 대흥리
·너분통【둠벙】대흥 앞에 있는 넓은 둠벙. `수북면 대흥리
·뒷고라실【들】대흥 뒤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수북면 대흥리
·딱밭걸【들】고랫걸 서남쪽에 있는 들. 닥나무밭이 있었다. `수북면 대흥리
·방아들【들】만화동 동남쪽에 있는 들. 방아가 있었다. `수북면 대흥리
·밴등【들】대흥 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대흥리
·밴등보【보】밴등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대흥리
·새꼬들【들】대흥 서남쪽에 있는 들. 지형이 쇠 꼬리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대흥리
·얼청굴【들】→얼치. `수북면 대흥리
·얼치〔얼청굴〕【들】대흥 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대흥리
·두정리(斗井里)【리】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두동리(斗洞
里), 용정리(龍井里), 경호리(鯨湖里) 일부와 담양군 고면(高面)의 구연동(龜淵洞) 일부를 합하여 두동(斗洞)과 용정(龍井)의 이
름을 따서 두정리(斗井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두정리
·거묵내들【들】둔터 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두정리
·노루뻔대기【들】경산 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두정리
·되마징이【들】경산 동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두정리
·둔터(둔터)【골】모개남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두정리
·마룰앞【들】말울 앞에 있는 들. `수북면 두정리
·매봉산【산】경산 동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다. `수북면 두정리
·모개남굴【골】안산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두정리
·방애타리【들】노루뻔대기 서쪽에 있는 들.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수북면 두정리
·수들【들】진밭들 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두정리
·신기시암(新基泉)【우물】신기시암들에 있는 샘. `수북면 두정리
·신기시암들【들】말을 서쪽에 있는 들. 신기시암이 있다. `수북면 두정리
·안산(안山)【산】용정 앞에 있는 산. 마을의 안대가 된다. `수북면 두정리
·진밭들【들】되마징이 동쪽에 있는 들. 긴 밭이 있다. `수북면 두정리
·하방골【골】하방산 밑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두정리
·오정리(梧亭里)〔머구정이, 오정〕【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지역이었다. 머구나무(머귀나무) 정자가 있어서
머구정이 또는 오정(梧亭)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강동(江洞), 삼인동(三人洞)과 동서면(東西面
)의 궁암 일부를 합하여 오정리(梧亭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오정리
·강꿀【들】강골 앞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개굴등【들】강골 동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너덕굴【골】머무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너덕(너설)이 있다. `수북면 오정리
·농바우【바위】학구당에 있는 바위. 농처럼 생겼다. `수북면 오정리
·덕진평【들】삼인동 남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독샛굴【골】덕진평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독사가 많다. `수북면 오정리
·뒷골【골】삼인동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오정리
·배남등【들】강골 동북쪽에 있는 들. 배나무가 있었다. `수북면 오정리
·범바우【바위】범박골에 있는 바위. 큰 굴이 뚫려 있는데 범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오정리
·범박골【골】뒷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범바우가 있다. `수북면 오정리
·부엉바우【바위】산태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처럼 생겼다. `수북면 오정리
·산태바우【바위】여시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이 근처에서 산태가 자주 났다. `수북면 오정리
·서당터골【골】뒷골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수북면 오정리
·솔개다무락【들】창등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수랑골【들】삼인동 북쪽에 있는 들. 수랑(수렁)이 있다. `수북면 오정리
·스승바우【바위】서당터골 남쪽에 있는 바위. `수북면 오정리
·시갈래【들】화정골 동쪽에 있는 들. 세 갈래졌다. `수북면 오정리
·아릿강골【골】강골 아래쪽에 있는 마을. `수북면 오정리
·여시바우【바위】범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 여시(여우)처럼 생겼다. `수북면 오정리
·오정교(梧亭橋)【다리】강골 남쪽에 있는 다리. 일제 때인 1914년에 놓다. `수북면 오정리
·자래등【등】머구정이 서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자래(자라) 모양으로 생겼다. `수북면 오정리
·작은너덕굴【골】너덕굴의 작은 골짜기. `수북면 오정리
·작은너덕굴【들】작은너덕굴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장구목【산】서당터골 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장구 목처럼 잘룩하게 되었다. `수북면 오정리
·종방등【등】덕진들 서쪽에 있는 등성이. `수북면 오정리
·창등(倉등)【등】머구정이 동쪽에 있는 등성이. 전에 사창이 있었다. `수북면 오정리
·창등들【들】창등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큰너덕굴【골】너덕굴의 큰 골짜기. `수북면 오정리
·파란골【골】범박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숲이 울창하여 파랗게 보이다. `수북면 오정리
·화정골【들】강골 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오정리
·정중리(井中里)〔전중, 정중〕【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지역이었다. 들 가운데가 되어 전중(田中) 또는 정중
(井中)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중리(井中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수북면 정중

·개논【둠벙】앞들에 있는 큰 둠벙. `수북면 정중리
·곰배배미【논】화리배미 서쪽에 있는 논. 모양이 곰배(고무래)처럼 생겼다. `수북면 정중리
·구례들【들】지와배미 남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수북면 정중리
·높은논〔퇴깽이들〕【들】정중 서쪽에 있는 들. 지대가 높다. `수북면 정중리
·대구배미【논】바우배미 동북쪽에 있는 논. 어느 흉년에 대구 1마리와 바꿨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정중리
·뒤엄논들【들】방애더리 동북쪽에 있는 들. 땅이 나빠서 두엄이 많이 든다 한다. `수북면 정중리
·바금머릿들【들】바금머리 앞에 있는 들. `수북면 정중리
·바우배미【논】송악배미 남쪽에 있는 논. 큰 바위가 있다. `수북면 정중리
·방애더리【들】정중 서남쪽에 있는 들. 디딜방아로 놓은 다리가 있었다. `수북면 정중리
·밭뚜【들】구례들 동북쪽에 있는 들. 밭이 많다. `수북면 정중리
·새논치들【들】앞들 동쪽에 있는 들. 새로 논을 만들었다. `수북면 정중리
·새보〔하신보〕【보】참남징이 동쪽에 새로 된 보. `수북면 정중리
·새암건네【들】정중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정중리
·설미논통【둠벙】개논 위쪽에 있는 둠벙. `수북면 정중리
·송악배미【논】정중 동쪽에 있는 논. `수북면 정중리
·순두보【보】새보 북쪽에 있는 보. `수북면 정중리
·앞들【들】정중 동쪽 앞에 있는 들. `수북면 정중리
·지와배미【논】뒤엄논들에 있는 논. 지와(기와)를 구웠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정중리
·참남징이【들】새논치들 서쪽에 있는 들. 참나무가 있었다. `수북면 정중리
·퇴깽이들【들】→높은논. `수북면 정중리
·하신보(下新洑)【보】→새보. `수북면 정중리
·화리배미【논】대구배미 동쪽에 있는 논. 지형이 화리(화로)처럼 둥글다. `수북면 정중리
·각시시암【우물】각시시암거리에 있는 샘. `수북면 주평리
·각시시암거리【들】구련 앞 서남쪽에 있는 들. 각시시암이 있다. `수북면 주평리
·구련앞【들】구련 동쪽, 앞에 있는 들. `수북면 주평리
·귀만들【들】왁새들 동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주평리
·귀만들보【보】귀만들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주평리
·매봉【산】배매산 북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다. `수북면 주평리
·배매산【산】구련 뒤에 있는 산. 배 매는 형국으로 되었다. `수북면 주평리
·산탯보【보】원텃보 동북쪽에 있는 보. 산태가 자주 났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주평리
·산탯봇들【들】산탯보의 물을 대어 농사를 짓는 들. `수북면 주평리
·서방시암【우물】각시시암 밑에 있는 샘. `수북면 주평리
·숯들【들】용구동 북쪽에 있는 들. 숯을 구웠다고 전해 온다. `수북면 주평리
·숯보【보】숯들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주평리
·오룡곡(五龍谷)【골】→오룡굴. `수북면 주평리
·오룡굴〔오룡곡〕【골】참나무배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주평리
·오룡굴들【들】오룡굴에 있는 들. `수북면 주평리
·왁새들【들】산탯봇들 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주평리
·원텃보【보】각시시암거리 동북쪽에 있는 보. `수북면 주평리
·원텃봇들【들】원텃보의 물로 농사짓는 들. 원집이 있었다. `수북면 주평리
·주평교(舟坪橋)【다리】주평에 있는 다리. 1922년에 준공되었다. `수북면 주평리
·진밭들【들】오룡굴 동남쪽에 있는 들. 긴 밭이 있다. `수북면 주평리
·참나무배기【들】숯들 북쪽에 있는 들. 참나무가 많았다. `수북면 주평리
·갱이【들】금안 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고둠들【들】월산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금안【들】미산 서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모서릿들【들】갱이 서쪽, 모시리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미산(尾山)【산】강림 동북쪽에 있는 산. 넓은 들 끝에 얕고 작게 솟아있어 마치 꼬리와 같다. `수북면 풍수리
·밭뚜【들】미산 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배암보【보】새암들 남쪽에 있는 보. 봇도랑이 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수북면 풍수리
·상수보(上水洑)【보】금안에 있는 보. `수북면 풍수리
·새암들【들】아랫보 동쪽에 있는 들. 새암(샘)이 있다. `수북면 풍수리
·새암들보【보】새암들에 물을 대는 보. `수북면 풍수리
·수건들【들】월산 뒤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싸래【들】마산 동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아랫보【보】싸래에 있는 보. `수북면 풍수리
·작은전탯골【골】전탯골의 작은 골짜기. `수북면 풍수리
·장구레【들】월산 동쪽에 있는 긴 들. `수북면 풍수리
·잿밭【골】황새바웃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대가 재처럼 높다. `수북면 풍수리
·전탯골【골】미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수북면 풍수리
·큰거리【들】월산 남쪽에 있는 들. `수북면 풍수리
·큰전탯골【골】전탯골의 큰 골짜기. `수북면 풍수리
·황새바우【바위】황새바웃등에 있던 바위. 황새처럼 생겼다. `수북면 풍수리
·황새바웃등【등】작은전탯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황새바우가 있었다. `수북면 풍수리
·구렛들【들】황덕 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냇건네【들】장가래 서쪽, 내 건너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모리들【들】쌍구레미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새보【보】황덕 동쪽에 새로 된 보. `수북면 황금리
·새봇들【들】새보의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들. `수북면 황금리
·순두보【보】새보 위쪽에 있는 보. `수북면 황금리
·쌍구레미【들】황덕 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원댕잇들【들】장가래 동북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작은가리〔장가래〕【들】황덕 서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잔가리〔장가래〕【들】→작은가리. `수북면 황금리
·장가래【들】→작은가리. `수북면 황금리
·텃논【논】구렛들에 있는 논. `수북면 황금리
·텃논들【들】황덕 뒤쪽에 있는 들. `수북면 황금리
·도림리(道林里)〔도림〕【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도림(道林)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림리(道林里)라 하며, 1976년 담양호(潭陽湖)가 완성됨에 따라 수몰 지구인 산성리(山城里)의 남은 지역을 넣
었다. `용면 도림리
·가새바우【바위】안탁골 동쪽에 있는, 가새(가위) 모양의 바위. `용면 도림리
·감투봉【산】산성산 서쪽에 있는, 감투 모양의 산. `용면 도림리
·구례실【들】성적굴 남쪽에 있는 들. 구례가 많다. `용면 도림리 `용면 도림리 `용면 도림리
·국시몬당이【산】파랏골 북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금성산(金城山)【산】→산성산. `용면 도림리
·꼬지밥골【골】참시암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날갯독거리【골】남문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남문등(南門등)【등】산성 동쪽에 있는 등성이. 산성의 남문이 있었다. `용면 도림리
·내안골【들】구례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냇가새【들】중밭뚜 남쪽에 있는 들. `용면 도림리
·농바우【바위】농바웃골에 있는 바위. 농처럼 생겼다. `용면 도림리
·농바우골【골】연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농바우가 있다. `용면 도림리
·다릿골【골】산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돼아지보【보】→방갯보. `용면 도림리
·돼지바우【바위】개암사방터에 있는 바위. 돼지처럼 생겼다. `용면 도림리
·매산바우【바위】성적굴에 있는 바위. `용면 도림리
·모감지골【골】부릉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물보침【들】→물복침. `용면 도림리
·물복침〔물보침〕【들】방갯들 남쪽에 있는 들. 전에 물이 흔했다고 전해 온다. `용면 도림리
·미륵실【골】신정굴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돌미륵이 있다. `용면 도림리
·방갯들【들】방갯보의 물을 대는 보. `용면 도림리
·방갯보〔돼아지보〕【보】산성 북쪽에 있는 보. 많은 양의 물을 머금고 흘려 보내므로 돼지보라 한다. `용면 도림리
·방주간【들】안두배미 서쪽에 있는 들. 방죽이 있었다. `용면 도림리
·방주간몰랑【산】짓등몰랑 서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배나뭇골【골】농바웃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배나무가 많았다. `용면 도림리
·베락바우【바위】접시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벼락맞아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용면 도림리
·보싯골【골】흰점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부릉개【골】재너메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북당골【골】산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불당이 있었다. `용면 도림리
·불난골착【골】꼬지밥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산불이 났었다. `용면 도림리
·불묵골【골】불묵골몬당이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용면 도림리
·불묵골몬당이【산】국시몬당이 서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비아바우【바위】베락바우 남쪽에 있는 바위. `용면 도림리
·비아바웃등【등】냇가새 남쪽에 있는 등성이. 비아바우가 있다. `용면 도림리
·산성(산성)〔산성성〕【성】→금성면의 '금성산성'. `용면 도림리
·산성교(山城橋)【다리】산성 남쪽 입구에 있는 다리. `용면 도림리
·산성산(山城山)〔금성산〕【산】산성리 남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산성성(山城城)【성】→산성. `용면 도림리
·살망태【골】큰적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서낭댕이【골】미륵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낭당이 있었다. `용면 도림리
·성안【골】북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성의 안쪽이었다. `용면 도림리
·성적골【골】산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성적골【골】방주간몰랑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신글레까금【산】농바웃등 동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신정굴【골】부릉개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안두배미【논】도림 서쪽에 있는 논. `용면 도림리
·안탁골〔안터골〕【골】돼지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안터골【골】→안탁골. `용면 도림리
·어디밋골【골】불난골착 서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가 깊어서 어두컴컴하다 한다. `용면 도림리
·엄나뭇골【골】배나뭇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엄나무가 있었다. `용면 도림리
·연산골【골】보싯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외밭굴【들】재너메 남서쪽에 있는 들. `용면 도림리
·욧굴【들】방주간 동쪽에 있는 들. `용면 도림리
·장골【골】살망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장바우【산】→코찌몰랑. `용면 도림리
·장태바우【바위】흰점바우 북쪽에 있는 바위. `용면 도림리
·재너메【들】어디밋골 남서쪽에 있는 들. `용면 도림리
·재봉골【골】방주간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접시바우【바위】장바우 동쪽에 있는 바위. 접시처럼 생겼다. `용면 도림리
·중밭뚜【들】청수논 동남쪽에 있는 들. `용면 도림리
·짓등몰랑【산】코찌몰랑 동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참시암【우물】참시암골에 있는 샘. 차도 맛좋은 물이 난다 한다. `용면 도림리
·참시암골【골】큰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참시암이 있다. `용면 도림리
·철마봉(鐵馬峯)【산】투구봉 동쪽에 있는 산. 산꼭대기에 무쇠로 만든 철마가 있었다. `용면 도림리
·청수논【논】내안골 남쪽에 있는 논. `용면 도림리
·코찌몰랑〔장바우〕【산】불묵골 북쪽에 있는 산. `용면 도림리
·큰골【골】장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큰적굴【골】서낭댕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투구봉【산】감투봉 남쪽에 있는 산. 투구처럼 생겼다. `용면 도림리
·파랏골【골】엄나뭇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도림리
·평남거리【들】돼지보 위에 있는 들. 전에 팽나무가 있었다. `용면 도림리
·흰점골【골】날갯독거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흰점바우가 있다. `용면 도림리
·흰점바우【바위】흰점골에 있는 바위. 흰 점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용면 도림리
·두장리(斗長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서평리(西坪里),
장찬리(長贊리)와 천면(泉面)의 두지동(斗支洞), 오정리(梧丁里) 일부를 합하여 두지(斗支)와 장찬(長贊)의 이름을 따서 두장리(
斗長里)라 하였다. `용면 두장리
·각골【골】시앙골재 북쪽 가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구례실【들】장찬리 남쪽에 있는 들. `용면 두장리
·구매논골【골】각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당산나무【나무】두지동 입구에 있는 소나무. 둘레 두 아름, 수령 약 500년. `용면 두장리
·도링개【골】조소코빼기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개가 달아나다 뒤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용면 두장리
·둥녘굴〔무슴징이골〕【골】두지동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등잔바우【바위】정맛들 동쪽에 있는, 등잔 모양의 바위. `용면 두장리
·똘새【들】구례실 동남쪽에 있는 들. 똘 사이에 있다. `용면 두장리
·무슴징이골【골】→동녁굴. `용면 두장리
·방죽들【들】장찬리 북쪽에 있는 들. 방죽이 있었다. `용면 두장리
·밭몽달【들】새태 북족에 있는 들. `용면 두장리
·배깡이니실【골】연화봉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부아내【들】장찬리 동쪽에 있는 들. `용면 두장리
·불묵골【골】작은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용면 두장리
·비석등【등】배깡이니실 북쪽에 있는 등성이. 비석이 있다. `용면 두장리
·서삿골【골】두장천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사(물총새)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용면 두장리
·시암바다〔천해〕【들】장찬리 남동쪽에 있는 들. 전에 물이 잘 나는 시암(샘)이 많았다고 전해 온다. `용면 두장리
·안모실【골】동이재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안산【산】배깡이니실 북쪽에 있는 산. `용면 두장리
·안이니실【골】안산 앞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여지등【등】장찬리 서쪽에 있는 등성이. `용면 두장리
·연화봉(蓮花峯)【산】두장천 동쪽에 있는 산. 연화도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용면 두장리
·영가밭등【등】부아내 동쪽에 있는 등성이. `용면 두장리
·왕살미【산】웃구매논골 북쪽에 있는 산. `용면 두장리
·외앗굴【골】서삿골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웃구매논골【골】구매논골 위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작은골【골】안모실 서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용면 두장리
·정맛들【들】새태 동북쪽에 있는 들. 마치 밑에 있어서 정마(말고삐)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용면 두장리
·조소코빼기【골】불묵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두장리
·천해(天海)【들】→시암바다. `용면 두장리
·쌍태리(雙台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월리(上月里),
태월리(台月里), 삼태리(三台里)를 합하여 태월(台月)과 삼태(三台)의 아름을 따서 쌍태리(雙台里)라 하였다. `용면 쌍태리
·가장사리【골】→독점굴. `용면 쌍태리
·굴등【등】뱅자나뭇골 서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용면 쌍태리
·논골【골】해청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논이 많다. `용면 쌍태리
·논골【들】논골에 있는 들. `용면 쌍태리
·당산나무【나무】쌍태에 있는 느티나무. 둘레 1.5아름. `용면 쌍태리
·당산보【보】당산나무 밑에 있는 보. `용면 쌍태리
·대적굴【골】물통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쌍태리
·독점굴〔가장사리〕【골】오장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옹기점이 있었다. 산의 맨 끝. `용면 쌍태리
·뒷굴【들】웃굴 서쪽에 있는 들. `용면 쌍태리
·만니봉〔망지봉〕【산】선녀굴 서쪽에 있는 산. `용면 쌍태리
·망지봉(望地峯)【산】→만니봉. `용면 쌍태리
·매봉【산】초분골 서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다. `용면 쌍태리
·물통골【골】추월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물통바우가 있다. `용면 쌍태리
·물통바우【바위】물통골에 있는 바위. 물통처럼 생겼다. `용면 쌍태리
·뱅자나뭇골【골】쑥곡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산태골【골】굴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산태가 났었다. `용면 쌍태리
·삼똘앞【들】원텃개 남쪽에 있는 들. `용면 쌍태리
·서낭딩이【골】독점굴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서낭당이 있었다. `용면 쌍태리
·선녀굴【골】매봉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솔나무밑에【들】삼똘앞 남쪽에 있는 들. 위에 소나무 숲이 있었다. `용면 쌍태리
·쑥곡굴【골】대적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앞산골【골】작은노니랑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오장산【산】절굴 서남쪽에 있는 산. `용면 쌍태리
·웃굴【들】쌍태 위에 있는 들. `용면 쌍태리
·원텃개【들】논골 동남쪽에 있는 들. 원집이 있었다. `용면 쌍태리
·작은노니랑굴【골】큰노니랑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절굴【골】만니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용면 쌍태리
·초분골【골】앞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초빈을 했었다. `용면 쌍태리
·큰노니랑굴【골】파랑생이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쌍태리
·파랑생이골【골】논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숲이 우거져 파랗게 보인다. `용면 쌍태리
·해청굴【골】산태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해가 골짜기 위로 넘어간다. `용면 쌍태리
·가는골【골】쇤점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가는바우【바위】배남등 동쪽에 있는 바위. `용면 용연리
·가는바우【바위】가는바웃골에 있는 바위. `용면 용연리
·가는바웃골【골】통사바우 남쪽에 있는 골짜기. 가는바우가 있다. `용면 용연리
·가래방죽골【골】통삿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각시소【소】새텃들에 있는 소. 옥녀가 세수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감투바우【바위】쇤점 서쪽에 있는 바위. 감투처럼 생겼다. `용면 용연리
·강드래미【들】배남등 남서쪽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개바우【바위】용평리 북동쪽에 있는 바위. `용면 용연리
·건넘골【골】→큰골. `용면 용연리
·고싯등【등】배나뭇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 `용면 용연리
·관천봉【산】산밭등 남쪽에 있는 산. 갓 모양으로 생겼다. `용면 용연리
·구녕바우【바위】작은도룡굴에 있는 바위. 구멍이 뚫려있다. `용면 용연리
·꾀꼬리재【산】청수 서북쪽에 있는 산. `용면 용연리
·낙천봉(樂天峯)【산】낙천 뒤에 있는 산. `용면 용연리
·느릅몬당【산】죄악실 동쪽에 있는 산. 길게 느리하니(늘어져) 있다. `용면 용연리
·도롱굴【골】청수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동산들【들】고싯등 동쪽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됫이골【골】무듬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뒷골【골】소년촌 뒤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무듬골【골】장성배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무덤이 있다. `용면 용연리
·묵은논골【골】느릅몬당 북쪽에 있는 골짜기. 묵논이 있다. `용면 용연리
·배나뭇골【골】소잡은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배나무가 있었다. `용면 용연리
·배남등【등】관천봉 남쪽에 있는 등성이. 길에 배나무가 있었다. `용면 용연리
·범바우【바위】가래방죽 서쪽에 있는 바위. 호랑이굴이 있다. `용면 용연리
·볼통바우【바위】볼통바웃골에 있는 바위. 전에 벌통을 놓았다. `용면 용연리
·볼통바웃골【골】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볼통바우가 있다. `용면 용연리
·비뉘실【산】용평리 서남쪽에 있는 산. 옥녀의 비녀에 해당한다 한다. `용면 용연리
·비룡등(飛龍嶝)【등】용추사 뒤에 있는 등성이. `용면 용연리
·비리산【산】노리목 남쪽에 있는 산. `용면 용연리
·산밭등【등】새암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용면 용연리
·새보【보】새봇들에 물을 대는 보. 새로 되었다. `용면 용연리
·새봇들【들】각시소 동쪽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새암골【골】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물이 많이 난다. `용면 용연리
·새텃들【들】새터 앞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소년바우(少年바우)【바위】소년촌 앞에 있는 바위. `용면 용연리
·소잡은골【골】볼통바웃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도둑이 소를 훔쳐다 이 곳에서 잡아 먹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소툼벙【둠벙】소툼벙다리 밑에 있던 둠벙. 전에 소가 빠져 죽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소툼벙다리【다리】주막위 위에 있는 다리. `용면 용연리
·속강드래미【들】강드래미 안쪽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쇤점【골】작은도룡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수라바우【바위】작은한데미 북쪽에 있는 바위. 먹이를 노리는 수리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연리
·시리댕이【산】속강드래미 서쪽에 있는 산.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연리
·시리바우【바위】시리봉에 있는 바위.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용면 용연리
·시리봉【산】큰산밭골 북쪽에 있는 산. 엎어 놓은 시루처럼 생겼다. `용면 용연리
·신선대(神仙臺)【바위】용소 북쪽에 있는 바위. `용면 용연리
·아랫갱변【들】웃갱변 남쪽 개울 가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아홉마지기【논】아홉마지깃들에 있는 논. 아홉 마지기이다. `용면 용연리
·아홉마지깃들【들】동산들 남쪽에 있는 들. 아홉마지기가 있다. `용면 용연리
·안산(案山)【산】용평 앞에 있는 산. `용면 용연리
·어디밋골【골】꾀꼬리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깊어서 어둠컴컴하다. `용면 용연리
·연대산(連岱山)【산】범바우 님쪽에 있는 산. 연꽃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연리
·옥녀봉(玉女峯)【산】분통 동쪽에 있는 산. `용면 용연리
·용목골【골】소툼벙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못이 있다. `용면 용연리
·용소〔용연분소〕【소】가막골에 있는 소. 용이 살다 폭포를 따라 승천했다고 전해 온다.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소, 중, 대의
) <신증동국여지승람> 담양 도호부편에는 "추월산 동쪽에 두 개의 석담이 있다. 아래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구멍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공중에 뿌리고 이 물이 쏟아져 큰 못을 이루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바위구멍은 용이 뚫은 것이라 하는데 마치 용이
지나간 자취처럼 암면이 꾸불꾸불 패여 있다. 옛적에 전라도 안겸사가 이 곳을 찾아와 용의 모습을 보고자 청하자 용이 머리를 내
밀었다. 안겸사와 그를 따라왔던 기관이 용의 눈빛에 놀라 죽어 분소 아래에 안겸사와 기관이 묻힌 그 무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가 있다. 용소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이곳 암반으로 형성된 물목을 통과하는 동안 억만 겁의 세월을 통해 암반을 깎고깎
아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자국처럼 홈을 이루었다. 이 홈이 중간에서 석질이 강한 암반에 걸려 이를 뚫지 못하자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분수처럼 솟구친 물이 암반 밑에 쏟아져 시퍼런 용소를 이루어 놓았다. 원시림과 계곡이 어우러져 여름에도 서늘하
다. 용연 제1폭포 와 용연 제2폭포를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경사가 완만하여 삼림욕 코스로 그만이다. 바위채송화, 참나리등 다
양한 야생 화가 분포해 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추사가 있다.
`용면 용연리
·용연분소(龍淵噴所)【소】→용소. `용면 용연리
다. 1961년 3월 말 다시 세움. `용면 용연리
·용평들【들】용평리 앞에 있는 들. `용면 용연리
·웃갱변【들】청수 북쪽 개울가에 있는 들. 아랫갱변 위가 된다. `용면 용연리
·웃보【보】진가시보 북쪽에 있는 보. `용면 용연리
·웃보들【들】웃보의 물을 대는 보. `용면 용연리
·작은골【골】비리산 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용면 용연리
·작은도룡굴【골】큰도룡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큰도룡굴보다 작다. `용면 용연리
·작은산밭골【골】작은한데미 밑에 있는 골짜기. 큰산밭골보다 작다. `용면 용연리
·작은쪽쪽굴【골】됫이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큰쪽쪽굴보다 작다. `용면 용연리
·작은한데미【산】 큰한데미 동쪽에 있는 산. 큰한데미보다 작다. `용면 용연리
·장구목재【산】중산골 동남쪽에 있는 산. 장구목처럼 잘록하다. `용면 용연리
·장군봉(將軍峯)【산】장구목재 동쪽에 있는 산. 장군대좌형(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장성배기【들】용목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장승이 섰었다. `용면 용연리
·죄악실【골】용평리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주막위【들】새텃들 동쪽에 있는 들. 전에 주막이 있었다. `용면 용연리
·중산골【골】학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신라 때 절이 있었다. `용면 용연리
·지잣등【등】비리산 북쪽에 있는 등성이. 지자나무(치자나무)가 많다. `용면 용연리
·지치바우【바위】큰골 남쪽에 있는 바위. 주위에 지치가 많다. `용면 용연리
·진가시보【보】청수 앞에 있는 보. 진씨 각시가 빠져 죽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진가시봇들【들】진가시보의 물을 대는 들. `용면 용연리
·진가시소【소】진가시봇들에 있는 소. `용면 용연리
·진거삿굴【골】분통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진거사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치마바우【바위】소툼벙 북쪽에 있는 바위. 치마폭같이 생겼다. `용면 용연리
와 부흥(復興)의 이름을 따서 청흥리(淸興里)로 정하고, 용면에 넣었다가, 1976년 담양호가 완성됨에 따라 수몰 지구가 되어 용연
리에 넣었다. `용면 용연리
·큰골【골】도롱굴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골【골】작은골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골【골】장군봉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도룡굴【골】소년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보【보】웃보 남쪽에 있는 큰 보. `용면 용연리
·큰봇들【들】큰보의 물을 대는 보. `용면 용연리
·큰산밭골【골】작은산밭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쪽쪽굴【골】작은쪽쪽굴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연리
·큰한데미【산】가막골 동쪽에 있는 큰 산. `용면 용연리
·통사바우【바위】통삿굴에 있는 바위. 앞 산에 장군대좌혈이 있어서 통사가 시립해 있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통삿굴【골】분통 동쪽에 있는 골짜기. 통사바우가 있다. `용면 용연리
·평풍바우【바위】묵은논골 남쪽에 있는 바위. 평풍(병풍)을 쳐 놓은 것같이 빙 둘러 서 있다. `용면 용연리
·피잿골【골】신선대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피재가 있다. `용면 용연리
·학바우【바위】진거삿굴에 있는 바위. 학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연리
·용치리(龍峙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천치(大天峙),
사거리(四巨里), 견양동(牽羊洞)을 합하여 용치리(龍峙里)라 하였다. `용면 용치리
·갈광매【산】큰부래기 남쪽에 있는 산. `용면 용치리
·갈울【골】바람내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감남굴【골】아랫배남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감나무가 있었다. `용면 용치리
·건넘굴【골】천치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구녕바우【바위】구녕바웃골에 있는 바위. 20∼3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 있다. 임진왜란 때 박씨가 피란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치리
·구녕바웃골【골】보적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구녕바우가 있다. `용면 용치리
·나근매【산】건넘굴 동쪽에 있는 산. 산 모양이 나아가는 배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치리
·문바우【바위】문박골에 있는 바위. 길 양쪽에 대문처럼 돌이 서 있어 그 사이로 지나다님. `용면 용치리
·문박골【골】구녕바웃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바람내기【골】큰장자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깊은 바위 구멍에서 바람이 나오는데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차다 한다. `용면
용치리
·배나뭇골【골】송곳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배나무가 있었다. `용면 용치리
·배앙골【골】작은부리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 ① 배처럼 길고 꾸불꾸불 하다. ② 선인독서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치리
·보적골【골】수틀바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여군(女根)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치리
·산밭골【골】작은안잣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송곳바우【바위】수리바우 남쪽에 있는 송곳 모양의 바위. `용면 용치리
·수리바우【바위】수리봉 상봉에 있는 바위. 날아가는 수리(독수리)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치리
·수리봉【산】천치 서북쪽에 있는 산. 수리바우가 있다. `용면 용치리
·수틀바우【바위】안들바우 서족에 있는 바위. 숫돌처럼 생겼다. `용면 용치리
·시리바우【바위】수리바우 밑에 있는 바위. 시루에 안친 떡쌀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용면 용치리
·아랫배남골【골】초분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안들바우【바위】안들바우꼴착에 있는 바위. 사람이 앉은것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용치리
·안들바우꼴착【골】자작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안들바우가 있다. `용면 용치리
·자작골【골】큰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매우 시원하여 나무꾼들이 낮잠잔다 한다. `용면 용치리
·작은안잣골【골】배나뭇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작은장자우【골】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중산(中山)【산】배앙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초분골【골】산밭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초분(초빈)을 했다고 전해 온다. `용면 용치리
·큰골【골】감남골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용면 용치리
·큰골【골】한삼밭골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용면 용치리
·큰장자우【골】작은장자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용치리
·한삼밭골【골】중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모시밭이 있었다. `용면 용치리
·황새골【골】하눌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황새 목처럼 길고 높다. `용면 용치리
·월계리(月桂里)〔월계〕【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추월산 밑이 되어 월계(月桂)라 하였는데, 일제 때
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복룡리(伏龍里), 월암리(月岩里), 신령리(新令里), 월성리(月星里), 진수리(進水里)를 합하여
월계리(月桂里)라 하였다. `용면 월계리
·가낙바우〔가녁바우〕【바위】항등안꼴착에 있는 바위. 과녁 판처럼 생겼다. `용면 월계리
·가녁바우【바위】→가낙바우. `용면 월계리
·가맛굴【골】접사리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가마솥처럼 쑥 들어가 있다. `용면 월계리
·개정이들【들】핑풍바우밑 서쪽에 있는 들. `용면 월계리
·꽃밭등【등】가낙바우 동쪽에 있는 등성이. `용면 월계리
·나막신박골【골】돼아지툼벙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돼아지툼벙【둠벙】꽃밭등 동쪽에 있는 둠벙. `용면 월계리
·뒷골【골】복룡 뒤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마운데미【골】큰불묵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물통골【골】마운데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찬물이 나서 여름에 물맞이를 했다. `용면 월계리
·불묵골【골】나막신박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용면 월계리
·산짓골【골】진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산제를 지냈다. `용면 월계리
·소목골【골】보리암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수랑너들【너설】수루바우 동쪽에 있는 너설. `용면 월계리
·수루바우【바위】중성밭등 동쪽에 있는 바위. 시루모양이다. `용면 월계리
·수루바우밑【골】수루바우 밑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신정굴【골】구복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여시골【골】구복리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여시(여우)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용면 월계리
·웃나들【골】가맛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웃모랭이【골】가녁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이승골【골】뒷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작은불묵골.【골】불묵골의 작은 골짜기. `용면 월계리
·접사리골【골】차독때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 깊숙이 파여서 접힌 것 같다. `용면 월계리
·중바우【바위】중박골에 있는 바위. 중머리같이 빤질빤질하다. `용면 월계리
·중박골【골】여시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중바우가 있다. `용면 월계리
·중성밭등【등】웃나들 동남쪽에 있는 등성이. 추월산 중턱에 있다. `용면 월계리
·진등【등】참시암등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용면 월계리
·진등【등】이승골 서쪽에 있는 긴 등성이. `용면 월계리
·진시들【들】진시동 앞에 있는 들. `용면 월계리
·차독때기【골】월계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차돌이 많이 박혀 있다. `용면 월계리
·참시암【우물】참시암등에서 있는 샘. 차고 물맛이 좋다. `용면 월계리
·참시암등【등】수랑너들 동쪽에 있는 등성이. 참시암이 있다. `용면 월계리
·추월암(秋月岩)【바위】추월산 상봉에 있는 큰 바위. 깍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되었다. `용면 월계리
·큰불묵골【골】불묵골의 큰 골짜기. `용면 월계리
·터골【골】개정이들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마을이 있었다. `용면 월계리
·핑풍바우【바위】흥골 서쪽에 있는 바위. 병풍을 친 것처럼 생겼다. `용면 월계리
·핑풍바우밑【골】핑풍바우 밑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항등안꼴착【골】중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월계리
·홍골【골】진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홈통처럼 생겼다 한다. `용면 월계리
·추성리(秋城里)〔추성〕【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담양의 옛 이름인 추성이 있었으므로 추성(秋城)이
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치등리(峙嶝里)와 천면(泉面)의 신흥리(新興里)를 합하여 추성리(秋城里)
라 하였다. `용면 추성리
·갑방적굴【골】큰장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추성리
·강쟁잇보【보】뒷보 서쪽에 있는 보. `용면 추성리
·금산게【산】청룡등 서북쪽에 있는 산. `용면 추성리
·대중골【골】추성 북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추성리
·대중골들【들】대중골에 있는 들. `용면 추성리
·둥굴바우【바위】생이바우 남쪽에 있는 둥근 바위. `용면 추성리
·뒷들【들】추성 뒤에 있는 들. `용면 추성리
·뒷보【보】뒷들에 있는 보. `용면 추성리
·몰바우【바위】몰바웃등에 있는 바위. 말처럼 생겼다. `용면 추성리
·몰바웃등【등】갑방적굴 남쪽에 있는 등성이. 몰바우가 있다. `용면 추성리
·미끄릉바우【바위】작은장굴에 있는 바위. 이끼가 끼어 미끄러움. `용면 추성리
·방주간【골】와맷들 북쪽에 있는 골짜기. 방죽이 있다. `용면 추성리
·비실골【골】추성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추성리
·비시골들【들】비실골에 있는 들. `용면 추성리
·생계들【들】뒷들 동쪽에 있는 들. `용면 추성리
·생이바우【바위】큰장굴 북쪽에 있는, 상여 모양의 바위. `용면 추성리
·선바우【바위】대중골 북쪽에 서 있는 바위. `용면 추성리
·속날【골】추성 북서쪽 안에 있는 골짜기. `용면 추성리
·옥녀봉(玉女峯)【산】왕실봉 서쪽에 있는 산. `용면 추성리
·와매〔와산〕【산】와매 뒤에 있는 산. `용면 추성리
·와맷들〔와산들〕【들】와매 앞에 있는 들. `용면 추성리
·와산(臥山)【산】→와매. `용면 추성리
·와산들【들】→와맷들. `용면 추성리
·왕실봉【산】몰바우 남쪽에 있는 산. `용면 추성리
·작은장굴【골】장굴의 작은 골짜기. 미끄릉바우가 있다. `용면 추성리
·장굴【골】와매 서남쪽에 있는 긴 골짜기. `용면 추성리
·정간산【산】와매 북쪽에 있는 산. `용면 추성리
·청룡등(靑龍嶝)【등】속날 북쪽에 있는 등성이. 추성의 청룡(왼쪽). `용면 추성리
·큰장굴【골】장굴의 큰 골짜기. `용면 추성리
·탐방골【골】작은장굴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탕건바우가 있다. `용면 추성리
·탕건바우【바위】탐방골에 있는 바위. 탕건처럼 생겼다. `용면 추성리
·통천리(桶泉里)〔통시암, 통천〕【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마을에 통시암이 있어서 통시암 또는 통천
(桶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박곡리(泊谷里), 매월리(梅月里)를 합하여 통천리(桶泉里)라 하였
다. `용면 통천리
·너들바우【너설】오장산에 있는 바위 너설. `용면 통천리
·뒷굴【골】박실 뒤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등적굴【골】오장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매생이골【골】알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방죽밑【들】박실 남쪽, 방죽 아래 있는 들. `용면 통천리
·새앙건네봉【산】매생이골 남쪽에 있는 산. `용면 통천리
·서당뒤【골】등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용면 통천리
·안골【골】뒷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양당골【골】차나뭇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외머릿들【들】매월 동남쪽에 있는 들. `용면 통천리
·외앗골【골】새앙건네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박실의 왼쪽. `용면 통천리
·외앗등【등】외앗골 위에 있는 등성이. `용면 통천리
·이적굴【들】외머릿들 남쪽에 있는 들. `용면 통천리
·짐정굴【골】양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용면 통천리
·차나뭇등【등】서당 뒤 남쪽에 있는 등성이. 차나무가 있엇다. `용면 통천리
·통샘들【들】통시암 앞에 있는 들. `용면 통천리
·통시암【우물】통시암에 있는 샘. `용면 통천리
·광암리(廣岩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산정리(山亭里),
사암리(四岩里), 광덕리(廣德里), 월천리(月川里), 개양동(開陽洞), 신기(新基)를 합하여 광덕(廣德)과 사암(四岩)의 이름을 따서
광암리(廣岩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광암리
·가래잣굴【골】샛동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가마재골【골】가매재 밑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건너물【들】웃골 북쪽에 있는 들. 내 건너에 있다. `월산면 광암리
·광대바우【바위】광대바웃골에 있는 바위. 넓고 큼. `월산면 광암리
·광대바웃골【골】서방골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광대바우가 있다. `월산면 광암리
·구생이밭골【골】구선봉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구선봉(九仙峯)【산】용애골 북쪽에 있는 산. `월산면 광암리
·국하나굴【골】신민안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둔전골【골】광대바웃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둔전이 있었다. `월산면 광암리
·둔터들【들】능재 서쪽에 있는 들. 군대가 진쳤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광암리
·뒷골【골】사암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등잔태가리【골】지묵골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만사발재꼴착【골】만사발재 밑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멍굴【골】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멸재골【골】멸재 밑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산적골【골】사암 서북쪽에서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산정리들【들】산정 앞에 있는 들. `월산면 광암리
·새바탕【산】진천등 동남쪽에 있는 산. `월산면 광암리
·샛동굴【골】멍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서당매【산】뒷골 남쪽에 있는 산. 서당이 있었다. `월산면 광암리
·서당맷들【들】서당매 밑에 있는 들. `월산면 광암리
·서방골【골】서방골재 밑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성적굴【골】가래잣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소금젓때【골】장질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소롱굴【골】홍나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신민안굴【골】작은성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신하굴【들】중참이 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광암리
·오동나뭇걸【들】신하굴 서쪽에 있는 들. 오동나무가 있다. `월산면 광암리
·용애골【골】가매재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웃골【들】광덕 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광암리
·작은성적굴【골】성적굴의 작은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중참이【들】광덕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광암리
·지묵굴【골】산적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진등【등】산정리를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 `월산면 광암리
·진천등【등】국하나굴 남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광암리
·초막굴【골】광덕 북쪽에 있는 골짜기. 초막이 있었다. `월산면 광암리
·큰골【골】장굴재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월산면 광암리
·홍나부골【골】설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나부(나비)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광암리
·신계리(新溪里)〔신계〕【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시냇가 되어 신계(新溪)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
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유곡(柳谷), 용산(龍山), 신평리(新平里)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대정
리(大井里) 일부를 합하여 신계리(新溪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신계리
·가루모탱이【들】방죽밑에 서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신계리
·갱기랏대【산】순사말재 동쪽에 있는 산. `월산면 신계리
·굴레등【등】갱기랏대 서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굴바우【바위】굴박등에 있는 바위. 굴이 뚫려 있다. `월산면 신계리
·굴박등【등】밤나뭇등 위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대팬이골【골】덕재골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넓은 들이 있다. `월산면 신계리
·덕석바우【바위】회골에 있는 바위. `월산면 신계리
·덕재골【골】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매채미【들】집앞 서쪽에 있는 들. `월산면 신계리
·몰맷등【등】가루모탱이 북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무지등【등】굴레등 옆에 있는 등성이. 무지(기우제)를 지냄. `월산면 신계리
·문바우【바위】큰골에 있는 바위. `월산면 신계리
·밤나뭇등【등】진등 서남쪽에 있는 등성이. 밤나무가 많았다. `월산면 신계리
·방게등【등】신계리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방죽밑에【들】매채미 서쪽에 있는 들. 방죽 밑. `월산면 신계리
·번들바우【바위】자라실 아래에 있는 바위. 번들번들하다. `월산면 신계리
·북바우【바위】차작굴에 있는 바위. `월산면 신계리
·불뭇등【등】초장골 남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살구쟁이【등】자라실 밑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삵가짓굴【굴】대팬이골 옆에 있는 골짜기. 삵괭이가 산다한다. `월산면 신계리
·삼바실꼴착【골】살구쟁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삼밭이 있었다. `월산면 신계리
·쇠바배미【논】절터굴에 있는 논. `월산면 신계리
·옹동굴【등】초붕거리 서쪽에 있는 등성이. 옹기점이 있었다. `월산면 신계리
·자라실【골】북바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절터굴【골】굴박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월산면 신계리
·진등【등】회골 동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 `월산면 신계리
·집앞【들】굴바우 동쪽에 있는 들. 마을 앞이다. `월산면 신계리
·차작굴【골】삵가짓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찬 물이 난다. `월산면 신계리
·참샘골【골】무지등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참샘골【샘】참샘골에 있는 샘. 매우 물이 참. `월산면 신계리
·초붕거리【등】몰맷등 서쪽에 있는 등성이. 초붕(초빈)을 하던 곳이 있다. `월산면 신계리
·초장골【골】번들바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큰골【골】참샘골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회골【골】방게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신계리
·오성리(五星里)〔오성〕【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오장산 밑이 되어 오성(五星)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군수동(郡守洞), 내동(內洞)을 합하여 오성리(五星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오성리
·거칠매【산】오줄 남쪽에 있는 산. `월산면 오성리
·건넌들【들】녹으마지 북서쪽에 있는 들. `월산면 오성리
·녹으마지【들】오성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오성리
·버드징이보【보】용시암 북쪽에 있는 보. 버드나무가 많다. `월산면 오성리
·뽕나뭇보【보】예순배미 동쪽에 있는 보. 뽕나무가 많다. `월산면 오성리
·솔대봉【산】거칠매 서남쪽에 있는 산. 솟대를 세웠다. `월산면 오성리
·수처리들【들】오성 서쪽에 있는 들. `월산면 오성리
·안꼬랑【골】군수동 뒤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안산(案山)【산】내동 앞에 있는 산. `월산면 오성리
·예순배미【들】내동 앞에 있는 들. 60 배미가 된다 한다. `월산면 오성리
·오줄【골】큰어장굴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용시암【우물】용시암보에 있는 샘. 용이 승천했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오성리
·용시암보【보】중트리보 북쪽에 있는 보. 용시암이 있다. `월산면 오성리
·장오리장굴【골】조댐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조댐굴【골】오성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중들【들】수처리들 동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오성리
·중트리보【보】뽕나뭇보 북쪽에 있는 보. `월산면 오성리
·큰어장굴【골】장오리장군 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해앙골【골】해앙골몬딩이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오성리
·해앙골몬딩이【산】군수동 뒤에 있는 산. `월산면 오성리
·용암리(龍岩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남계리(南溪里),
능동(陵洞), 홍암리(紅岩里)와 산면(山面)의 용금동(龍錦洞) 일부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적암리(赤岩里)를 합하여 용금(龍錦
)과 적암(赤岩)의 이름을 따서 용암리(龍岩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용암리
·용흥리(龍興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동(道洞), 용금
동(龍錦洞) 일부와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월송정(月松亭), 가곡(柯谷), 죽림동(竹林洞)을 합하여 용흥리(龍興里)로 정하고, 월
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용흥리
·월계리(月溪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복정리(福井里),
농암리(籠岩里), 옥산리(玉山里)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 일부를 합하여 월계리(月溪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
산면 월계리
·가마수【들】초동머리 서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가마수보【보】가마수에 물을 대는 보. `월산면 월계리
·거칠매【산】장풍골 서쪽에 있는 산. `월산면 월계리
·깔바탕【들】당산밭 동쪽에 있는 들. 깔(꼴)이 많다. `월산면 월계리
·높은새내미【들】마구대 동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당산밭【들】잿등에 남쪽에 있는 들. 당산이 있었다. `월산면 월계리
·당징이【들】비린내 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뒷매【산】모갈모팅이 남쪽에 있는 산. 복정 뒤가 된다. `월산면 월계리
·똑배기【들】높은새내미 북쪽에 있는 들. 큰 독(돌)이 박혀 있다. `월산면 월계리
·마구대【들】당징이 북쪽에 있는 들. 뒷산이 와우형인데, 외양간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월계리
·맷골【들】가마수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명매기바우【바위】거칠매에 있는 바위. 명매기집이 있다. `월산면 월계리
·모갈모팅이【모롱이】불무골 남쪽에 있는 모롱이. `월산면 월계리
·물구십리【들】짚북쟁이 서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복샘【우물】복정에 있는 우물. `월산면 월계리
·불무골【골】복정 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계리
·비닌내【들】새내미 동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새내미【들】물구십리 북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수랑골【들】복정 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장풍골(藏風골)【골】뒷매 남쪽에 있는 골짜기. 깊숙하여 바람이 약하다. `월산면 월계리
·잿등에【들】북정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지룽보【보】초동몰보 남쪽에 있는 보. `월산면 월계리
·짚북쟁이【들】매골 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짚북쟁이보【보】짚북쟁이에 물을 대는 보. `월산면 월계리
·창더리보【보】가마수보 남쪽에 있는 보. 광면사창(廣面社倉)이 있었다. `월산면 월계리
·천륭당【집】→청룡당. `월산면 월계리
·청룡당(靑龍堂)〔천륭당〕【집】복정 뒷산에 있는 당집. 마을의 청룡(왼쪽)이 된다 한다. `월산면 월계리
·초동머리【들】거칠매 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계리
·초동몰보【보】초동머리에 물을 대는 보. `월산면 월계리
·가쟁이【산】동산 동북쪽에 있는 산. 갓처럼 생겼다. `월산면 월산리
·군게【들】수랑굴 서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산리
·금여동(金如洞)【골】→소록굴. `월산면 월산리
·노동굴【골】성적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산리
·닭밭보【보】월산 서쪽에 있는 보. `월산면 월산리
·대리등【들】동산 서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산리
·댕잇걸【들】동산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산리
·댕잇걸보【보】댕잇걸에 물을 대는 보. `월산면 월산리
·도매산【산】월산 서남쪽에 있는 산. `월산면 월산리
·물구실【들】동산 동남쪽에 있는 들. 물이 많다. `월산면 월산리
·물방애보【보】닭밭보 동쪽에 있는 보. 물방아가 있었다. `월산면 월산리
·방천거리【들】동산 남쪽, 뚝 밑에 있는 들. `월산면 월산리
·방천거리보【보】방천거리에 물을 대는 보. `월산면 월산리
·성적굴【골】소록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산리
·소록굴〔금여동〕【골】월산리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산리
·소록굴들【들】소록굴에 있는 들. `월산면 월산리
·수랑굴【들】월산 동쪽에 있는 들. 수랑(수렁)이 많다. `월산면 월산리
·시리산〔중산〕【산】동산 서남쪽에 있는 산. 시루처럼 생겼다. `월산면 월산리
·쏘쟁이보【보】외앗등 서남쪽에 있는 보. `월산면 월산리
·외앗등【등】동산 북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월산리
·중산【산】→시리산. `월산면 월산리
·회나무보【보】물방애보 동쪽에 있는 보. 회나무가 있었다. `월산면 월산리
·뇌산(雷山)【산】→베락매. `월산면 월평리
·대드리【들】뒷굴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평리
·대밭골【골】서당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밭이 있다. `월산면 월평리
·도마산(도마山)【산】월평리와 용암리 사이에 있는 산. `월산면 월평리
·뒷굴【들】함쟁이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평리
·베락매〔뇌산〕【산】월평 북서쪽에 있는 산. `월산면 월평리
·서당곡(書堂谷)【골】→서당골. `월산면 월평리
·서당골〔서당곡〕【골】신평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월산면 월평리
·성적굴【골】소쿠리재 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평리
·작은골【골】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평리
·중보(中洑)【보】왕산 서쪽에 있는 보. `월산면 월평리
·중봇들【들】중보의 물을 대는 들. `월산면 월평리
·큰골【골】작은재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월평리
·함쟁이【들】베락매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월평리
·중월리(中月里)【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중방리(中方里)와
월곡리(月谷里)를 합하여 중월리(中月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면 중월리
·가오리쯔【등】솔태배기 서쪽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중월리
·간징이【들】살구쟁이 북쪽에 있는 들. `월산면 중월리
·개빗골【골】가오리쪽 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눈등【등】투구봉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누운 것처럼 밋밋하다. `월산면 중월리
·당산나무【나무】월곡 중앙에 있는 5그루의 느티나무. 둘레 2아름.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냈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중월리
·대추나뭇골【골】통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추나무가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도독골【골】화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도둑이 많았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중월리
·똑다리【다리】똑다릿골에 있는 돌다리. `월산면 중월리
·똑다릿골【골】작삼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바녁굴【골】월곡 서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박달너덜【너설】절터골 동남쪽에 있는 너설. `월산면 중월리
·밤나뭇등【등】대추나뭇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 밤나무가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밭논【들】점등 동쪽에 있는 들. 물이 귀하여 밭같이 푸석푸석하다. `월산면 중월리
·배나뭇골【골】중방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배나무가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살구쟁이【들】월곡 동남쪽에 있는 들. 살구나무가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샛까끔【산】개빗골 북쪽에 있는 산. 큰산 사이에 있다. `월산면 중월리
·소코리골【골】큰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소쿠리처럼 옴팍하다. `월산면 중월리
·솔태배기【등】양지배기 북쪽에 있는 등성이. 소나무가 많았다. `월산면 중월리
·쐐깃등【등】밭논 서쪽에 있는 등성이. 쐐기풀이 많다. `월산면 중월리
·쑤세미골【골】밤나뭇등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양지배기【등】쐐깃등 동북쪽, 양지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중월리
·음달【등】쐐깃등 동쪽 음지에 있는 등성이. `월산면 중월리
·인계골【골】용구산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뒷산에 장닭혈이 있어서 인계(영계)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중월리
·작삼곡(鵲三谷)【골】→작삼골. `월산면 중월리
·작삼골〔작삼곡〕【골】눈등 북쪽에 있는 골짜기. 까치 세 마리가 날아가는 모양이라고 전해 온다. 배를 맨 자리가 있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중월리
·절터골【골】소코리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점등【들】간징이 남쪽에 있는 들. 질그릇을 만들던 독점이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큰골【골】샛까끔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통골【골】바람재 서쪽에 있는 골짜기. 물맞던 물통이 있었다. `월산면 중월리
·투구봉【산】박달너덜 동남쪽에 있는 산. 투구처럼 생겼다. `월산면 중월리
·화산곡(花山谷)【골】→화산골. `월산면 중월리
·화산골〔화산곡〕【골】뚝다릿골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중월리
·누운보【보】두주막거리 북쪽에 있는 보. 누운 것 같이 길게 늘어져 있다. `월산면 화방리
·눈봇들【들】누운보의 물을 대는 들. `월산면 화방리
·대리구렁【들】마산 동쪽에 있는 들. `월산면 화방리
·만화교(萬花橋)【다리】봉명동 동쪽, 담양읍과의 경계에 있는 다리. 담양읍 만성리의 '만'자와 화방리의 '화'자를 땀. 1940년
준공. `월산면 화방리
·모릿등【들】대리구렁 북쪽에 있는 들. 모래등성이가 있었다. `월산면 화방리
·물통거리【골】외박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물맞던 물통이 있었다. `월산면 화방리
·바람모퉁이【산】봉명동 남쪽에 있는 산. 북풍바지이다. `월산면 화방리
·밧씨정이【들】안씨정이 동쪽에 있는 들. 박씨가 살았다. `월산면 화방리
·사갑들【들】봉명동 동남쪽에 있는 들. `월산면 화방리
·상양수(上陽水)【보】누운보 남쪽에 있는 보. `월산면 화방리
·시리산【산】→신랑봉. `월산면 화방리
·신랑봉(新郞峯)〔시리산〕【산】화방리, 월산리, 삼다리, 가산리 사이에 있는 산.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한다. `월산면 화방리
·안씨정이【들】두주막꺼리 남쪽에 있는 들. 전에 안씨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화방리
·외박골【골】시리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월산면 화방리
·케케보【보】하양수 동쪽에 있는 보. `월산면 화방리
·하양수(下陽水)【보】상야수 밑에 있는 보. `월산면 화방리
`창평면
·광덕리(廣德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치(德峙), 광암
(廣巖), 조현(鳥峴)을 합하여 광암(廣巖)과 덕치(德峙)의 이름을 따서 광덕리(廣德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
면 광덕리
·영천산(靈泉山)【산】새고개 동북쪽에 있는 산. 영험한 샘이 있다 한다. `창평면 광덕리
·금성보【보】방장들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삼천리
·방장들【들】삼천리에 있는 들. `창평면 삼천리
·사랫등【등】안골 남동쪽에 있는 등성이. `창평면 삼천리
·삼천교(三川橋)【다리】아랫삼지내 서남쪽에 있는 다리. `창평면 삼천리
·엉골【골】노천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삼천리
·절골【골】주포산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다. `창평면 삼천리
·주산(朱山)【산】서낭당절 동쪽에 있는 산. `창평면 삼천리
·주포산【산】주산 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삼천리
·진산리【들】사랫등 북쪽에 있는 들. `창평면 삼천리
·창평교(昌平橋)【다리】웃삼지내 동쪽에 있는 다리. `창평면 삼천리
·오강리(梧江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당곡(唐谷),
오산(梧山), 양산(良山)과 북면(北面)의 강촌(江村)을 합하여 오산(梧山)과 강촌(江村)의 이름을 따서 오강리(梧江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오강리
·가다리지【골】똥골 동쪽 끝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건넌들【들】당골 건너편에 있는 들. `창평면 오강리
·고라니골【골】모랫등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라니가 살았다. `창평면 오강리
·광대산(廣大山)【산】양산 동쪽에 있는 산. 당골에 살던 무당들이 광대놀이를 했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오강리
·굴등【등】고라니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창평면 오강리
·노적봉(露積峯)【산】메주바웃골 동쪽에 있는 산.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창평면 오강리
·달구명당【산】폿죽바우 동쪽에 있는 산. 금계포란형(금계포란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오강리
·독골【골】핑겟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독점이 있었다. `창평면 오강리
·된깔끄막【산】노갈재 동쪽에 있는 산. 경사사 심해서 산에 오르기가 되다 한다. `창평면 오강리
·등빨【들】양산 북쪽에 있는 들. 등성이에 있다. `창평면 오강리
·똥골【골】좁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으슥해서 초군들이 똥을 눈다 한다. `창평면 오강리
·메물산【산】양산 서쪽에 있는 산. 메밀밭이 많다. `창평면 오강리
·메주바우【바위】메주바웃골에 있는 바위. 메주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창평면 오강리
·메주바웃골【골】가다라지 동쪽에 있는 골짜기. 메주바우가 있다. `창평면 오강리
·모랫등【골】으름더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모래가 많다. `창평면 오강리
·모장등【등】양산 동쪽에 있는 등성이. 모정이 있다. `창평면 오강리
·몰무등【등】독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 몰(말)무덤이 있다. `창평면 오강리
·뭉게【산】메주바웃골 동쪽에 있는 산. 창평과 남면의 경계에 있는데, 골짜기에 길이 나있어 왕래가 잦고 지형이 문처럼 생겼다
. `창평면 오강리
·박바우【바위】당곡 남쪽에 있는 바위. `창평면 오강리
·배나뭇등【등】굴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배나무가 있었다. `창평면 오강리
·산짓골【골】오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산제를 지냈다. `창평면 오강리
·서당골【골】양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창평면 오강리
·성적굴【골】오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수랑걸【들】당곡 북쪽에 있는 들. 수렁이 많다. `창평면 오강리
·수랑시암【우물】건넌들에 있는 샘. 밑바닥이 수랑(수렁) 흙으로 돼 있어 한정없이 들어간다 한다. `창평면 오강리
·수제비골【골】큰가람산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쑤시깍금【산】서당골 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오강리
·안껄【들】건넌들 서쪽에 있는 들. 당골 안쪽. `창평면 오강리
·연댕이깍금【산】→우렁깍금. `창평면 오강리
·외을골【골】쑤시깍금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우렁깍금〔연댕이깍금〕【산】오산 서쪽에 있는 산. 연댕이란 사람의 산이다. `창평면 오강리
·으름더리【골】수제비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작새등【등】배나뭇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굴이 있다. `창평면 오강리
·작은가람산골【골】성적굴 동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정문거리【들】청룡등 북쪽에 있는 들. 정문이 있다. `창평면 오강리
·좁은골【골】달구명당 동쪽에 있는, 좁은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질마들【들】오산 남쪽에 있는 들. 지형이 질마(길마) 형국으로 되었다. `창평면 오강리
·청룡등【등】양산 서쪽에 있는 등성이. 마을의 청룡(왼쪽). `창평면 오강리
·초분골【들】질마들 서쪽에 있는 들. 초분(초빈)을 했었다. `창평면 오강리
·큰가람산굴【골】성적굴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창평면 오강리
·큰고랑【골】메물산에 있는 큰 산. `창평면 오강리
·큰멧갓【산】당골 동쪽에 있는 큰 산. `창평면 오강리
·큰아라지【들】작새등 동쪽에 있는 등성이. `창평면 오강리
·폿죽바우【바위】큰아라지 동쪽에 있는 바위. 폿죽(팥죽)처럼 붉은 빛이다. `창평면 오강리
·핑겟등【등】노갈재 동쪽에 있는 등성이. 핑계(풍경)처럼 생겼다. `창평면 오강리
·용수리(龍水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량(月良),
용운동(龍雲洞), 상소천(上素川), 수곡(水谷), 용전(龍田), 부동(釜洞)을 합하여 용운(龍雲)과 수곡(水谷)의 이름을 따서 용수리
(龍水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용수리
·건지당【들】용운동 동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괘바우【바위】괴빗등에 있는 바위. 지형이 괘(고양이)처럼 생겼다. `창평면 용수리
·괘빗등【등】묵은재 서쪽에 있는 등성이. 괘바우가 있다. `창평면 용수리
·구례실【들】새적굴 서쪽에 있는 들. 바닥이 깊어 물대기가 좋다. `창평면 용수리
·노적봉(露積峯)【산】묵은재 서쪽에 있는 산. 바위가 노적 모양으로 쌓여 있다. `창평면 용수리
·녹두보【보】대싯보 서쪽에 있는 보. `창평면 용수리
·단지배미【논】참시암들에 있는 논. 지형이 단지처럼 생겼다. `창평면 용수리
·대싯보【보】대밑보 서쪽에 있는 보. `창평면 용수리
·독떼바우【바위】독떼바우산에 있는 바위. 작은 돌이 모여 바위가 되었다. `창평면 용수리
·독떼바우몬뎅이【산】→독떼바우산. `창평면 용수리
·독떼바우산〔독떼바우몬뎅이〕【산】용운 동쪽에 있는 산. `창평면 용수리
·매밀보【보】멧밑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용수리
·멧밑【들】참시암들 동쪽에 있는 들. 메(山) 밑. `창평면 용수리
·묵은잿골【골】묵은재 밑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용수리
·물방애골【골】지당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물방아가 있었다. `창평면 용수리
·바깥가래【들】솔나무징잇들 서쪽에 있는 들. 용운동 바깥쪽. `창평면 용수리
·바우배기뫼【묘】솔나무징잇들에 있는 묘. 바위가 박혀 있다. `창평면 용수리
·불묵굴【골】오릿굴 밑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창평면 용수리
·비랫골【골】한바대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용수리
·삼바래이몬대이【산】독떼바우산 동쪽에 있는 산. 위가 평평하고 맞은 편 산이 마주 보이다. `창평면 용수리
·삽재꼬랑【골】삽잿등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용수리
·삽잿등【산】용운동 동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용수리
평면 용수리
·새적굴〔재앙굴〕【골】청룡등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용수리
·새적굴【들】지넷등 북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서창보【보】서창봇들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용수리
·서창봇들【들】양달들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솔나무징잇들【들】안까래 북쪽에 있는 들.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창평면 용수리
·수리봉【산】월봉산 남쪽에 있는 산. `창평면 용수리
·시리봉〔주산〕【산】땅나무재 북쪽에 있는 산. 시리(시루)를 엎어 놓은 형국이다. `창평면 용수리
·시암걸【들】건지당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시암걸시암【우물】시암걸에 있는 샘. `창평면 용수리
·씹시암【약】→오갈시암. `창평면 용수리
·안까래【들】진걸 서쪽 안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양달들【들】용운동 동쪽 양지쪽에 있는 들. `창평면 용수리
·양달보【보】양달들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용수리
·어름독골【골】상월정 남쪽에 있는 골짜기. 깊어서 얼음이 늦게까지 있다. `창평면 용수리
·오갈시암〔씹시암〕【약】숫줏재 밑에 있는 샘. `창평면 용수리
·오릿굴【골】수곡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용수리
·장구배미【논】솔나무징잇들에 있는 논. 장구처럼 가운데가 잘록하다. `창평면 용수리
·장녁굴【골】주산 밑에 있는 골짜기. 주산이 시루 형국이므로 아궁이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창평면 용수리
·장사바우【바위】배냉기재 밑에 있는 바위. 장사 발자국이 있다 한다. `창평면 용수리
·재앙굴【골】→새적굴. `창평면 용수리
·절터【골】배랫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점이 있었다. `창평면 용수리
·젯당산【산】수곡 동쪽에 있는 산. 정월 보름에 산제 지냄. `창평면 용수리
·주산(朱山)【산】→시리봉. `창평면 용수리
·지당골【골】배냉기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제당이 있었다. `창평면 용수리
·진걸【들】시암걸 서쪽에 있는 들. 긴 논배미가 있다. `창평면 용수리
·참시암【우물】참시암들에 있는 샘. 차고 물맛이 좋다. `창평면 용수리
·참시암들【들】바깥가래 서쪽에 있는 들. 참시암이 있다. `창평면 용수리
·청룡등【등】장녁굴 서쪽에 있는 등성이. 수곡의 청룡(왼쪽). `창평면 용수리
·큰까금【산】젯당산 동쪽에 있는 큰 산. `창평면 용수리
·푸석골【골】괴빗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 푸석푸석한 바위가 많이 있다. `창평면 용수리
·한바대【들】구례실 남서쪽에 있는 넓은 들. `창평면 용수리
·유곡리(維谷里)〔얼구실, 월구실, 유곡〕【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이었다. 얼구실, 월구실 또는 유곡(維谷)
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加面)의 화촌(華村)과 장산(長山), 연화촌(蓮花村)의 각 일부를 합
하여 유곡리(維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유곡리
·가냇골【골】은드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곡리
·갈매【들】절산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곡리
·개동터【골】대송밭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곡리
·대송밭【골】방갓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대솔이 많았다. `창평면 유곡리
·동거리【들】마난들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곡리
·등잔골【골】가냇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곡리
·땅바탕【들】할미당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곡리
·마난들【들】미리징이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곡리
·미리징이【들】절산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곡리
·방갓골【골】석작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곡리
·밭파주【골】양파주 동쪽에 있는 골짜기. 박씨의 묘가 있다. `창평면 유곡리
·배바우【바위】배바웃등에 있는 바위. 배를 매었음 `창평면 유곡리
·배바웃등【등】시암골꼴착 동쪽에 있는 등성이. 배바우가 있다. `창평면 유곡리
·서당골【골】절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창평면 유곡리
·석작골【골】사실고개 동쪽에 있는 고개. `창평면 유곡리
·쇠적골【골】철마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곡리
·시암골꼴착【골】도깻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 시암(샘)이 있다. `창평면 유곡리
·양파주【골】땅바탕 동쪽에 있는 골짜기. 양씨의 묘가 있다. `창평면 유곡리
·은드리【산】침바탕 서쪽에 있는 산. `창평면 유곡리
·철마산(鐵馬山)【산】절산 동쪽에 있는 산. 철마가 있었다. `창평면 유곡리
·침빠탕【산】동거리 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유곡리
·할미당【산】등잔골 동남쪽에 있는 산. 할머니 당산이 있다. `창평면 유곡리
·유천리(柳川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유촌(柳村)과
하소천(下素川)을 합하여 유천리(柳川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유천리
·공청매(公廳매)【산】경동 동쪽에 있는 산. 공청이 있었다. `창평면 유천리
·구경들【들】뒤껍들 북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천리
·금정매【산】매골 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유천리
·까재샘【둠벙】잣골들에 있는 둠벙. 가재가 많다. `창평면 유천리
·뒤껍들【들】유촌 앞에 있는 들. `창평면 유천리
·매골【골】선바웃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천리
·서당골【골】웃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서당이 있었다. `창평면 유천리
·선바우【바위】선바웃골에 있는, 우뚝 서 있는 바위. `창평면 유천리
·선바웃골【골】안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선바우가 있다. `창평면 유천리
·시악시샘【둠벙】팽갯등에 있는 둠벙. `창평면 유천리
·우무샘【둠벙】뒤껍들에 있는 둠벙. `창평면 유천리
·웃골【골】경동 위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천리
·잣골들【들】구경들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유천리
·천젯등【산】서당골 동쪽에 있는 산. 천제를 지냄. `창평면 유천리
·팽갯등【등】경동 서쪽에 있는 등성이. `창평면 유천리
·포의사【집】유촌 남쪽에 있는 재실. `창평면 유천리
·함방골【골】금정매 북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유천리
·의항리(義項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의암(義巖.義岩)
, 죽항(竹項) 일부와 북면(北面)의 신기(新基)와 군내면(郡內面)의 보평(普坪)을 합하여 의암(義岩)과 죽항(竹項)의 이름을 따서
의항리(義項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의항리
·갈림보【보】들보 북쪽에 있는 보. `창평면 의항리
·갈매실【들】장산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의항리
·강릉터【골】화양촌 남쪽에 있는 골짜기. 강씨가 살았다. `창평면 의항리
·낡은터【들】화양촌 앞에 있는 들. 마을이 있었다. `창평면 의항리
·널다리【다리】의암 남쪽에 있는 넓은 다리. `창평면 의항리
·당하보【보】벌시암거리 북서쪽에 있는 보. `창평면 의항리
·대매기골【골】장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의항리
·덜머리【산】바웃걸 동쪽에 있는 산. `창평면 의항리
·두견산【산】장산 동쪽에 있는 산. `창평면 의항리
·들보【보】당하보 북쪽에 있는 보. `창평면 의항리
·맷골【골】화양촌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의항리
·바웃걸【들】솔댓거리 서쪽에 있는 들. 큰 바위가 있다. `창평면 의항리
·밤밭골【골】양파정이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많다. `창평면 의항리
·벌시암【우물】벌시암거리에 있는 샘. `창평면 의항리
·벌시암거리【들】덜머리 동쪽에 있는 들. 벌시암이 많다. `창평면 의항리
·비암밭【골】맷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비암(뱀)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창평면 의항리
·삼천교(三川橋)【다리】대매기골 남쪽에 있는 다리. 삼지내 위에 놓아졌다. 1932년 3월 준공. `창평면 의항리
·성녕터【골】화양촌 북쪽에 있는 골짜기. 성씨가 살았다. `창평면 의항리
·솥댓거리【들】갈매실 남쪽에 있는 들. 진사에 급제한 이가 있어 솥대(솟대)를 세웠다. `창평면 의항리
·솔매【들】장산 서쪽에 있는 들. 솔이 있던 작은 산이 들 가운데에 있었다. `창평면 의항리
·양파정이(兩派정이)【들】솔매 남쪽에 있는 들.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창평면 의항리
·옷방굴【골】장산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의항리
·용머리재【산】두견산 북동쪽에 있는 산. 지형이 용머리 형국이다. `창평면 의항리
·작은밤밭골【골】밤밭골의 작은 골짜기. `창평면 의항리
·장구보【보】갈림보 북쪽에 있는 보. 지형이 장구처럼 잘록하다. `창평면 의항리
·진툼벙【둠벙】낡은터에 있던 둠벙.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한다. `창평면 의항리
·큰밤밭골【골】밤밭골의 큰 골짜기. `창평면 의항리
·일산리(一山里)〔일산〕【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산이 일자로 되어서 일산(一山)이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산(上山), 하산(下山)과 북면(北面)의 하유곡(下維谷), 제월리(霽月里), 상덕리(上德里
)의 각 일부를 합하여 일산리(一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일산리
·고무쟁이【들】하산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일산리
·동굴이【들】하산 북쪽에 있는 들. `창평면 일산리
·비란【골】홈굴 동쪽에 있는 골짜기. 비란(벼랑)이 있다. `창평면 일산리
·상가보【보】수통모태이 위쪽에 있는 보. `창평면 일산리
·쇠정이【골】하산 동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일산리
·수통모태이【모롱이】수통보에서 상산으로 가는 모롱이. 수통이 있다. `창평면 일산리
·수통보【보】천지등몬뎅이 남쪽에 있는 보. `창평면 일산리
·장군바우【바위】초분골에 있는 바위. 장군발자국이 있다. `창평면 일산리
·집앞【들】상산 앞에 있는 들. `창평면 일산리
·천지등몬뎅이【산】상산 북동쪽에 있는 산. 천제를 지냄. `창평면 일산리
·초분골【골】하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초빈했다. `창평면 일산리
·한바대【들】집안 남쪽에 있는 넓은 들. `창평면 일산리
·홈굴【골】상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홈을 놓아 물을 댔다. `창평면 일산리
·장화리(長華里)【리】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전(長田)과 장
산(長山), 연화촌(蓮花村)의 각 일부와 대면(大面)의 화양촌(華陽村), 가흥동(佳興洞) 일부를 합하여 장전(長田)과 화양(華陽)의
이름을 따서 장화리(長華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면 장화리
·구장다리(舊場橋)【다리】구장터에 있는 다리. `창평면 장화리
·구장터(舊場基)【들】사장거리 서남쪽에 있는 들. 옛 장터였다. `창평면 장화리
·금성보【보】엔굴 남쪽에 있는 보. `창평면 장화리
·도구쟁이【들】주산 서쪽에 있는 산. `창평면 장화리
·마두쟁이【들】오리시암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장화리
·방장들【들】마두쟁이 동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장화리
·보평앞들【들】방장들 남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장화리
·옌굴【골】도구쟁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장화리
·오리시암【우물】오리시암에 있는 샘. `창평면 장화리
·조산(造山)【산】조산거리에 있는 산. `창평면 장화리
·조산거리【들】보평앞들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장화리
·주산(舟山)【산】사장거리 동북쪽에 있는 산. `창평면 장화리
·질꿋등【등】도구쟁이 남쪽에 있는 등성이. `창평면 장화리
·창수당(昌壽堂)【집】사장거리에 있는 경로당. `창평면 장화리
·개똥아리【들】쑥다릿들 위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개똥아리보【보】개똥아리에 물을 대는 보. `창평면 해곡리
·개바우【바위】개바웃재에 있는 바위. `창평면 해곡리
·갱이들〔괴엄, 구레이들〕【들】둔전보 동쪽에 있는 들. 지형이 갱이(고양이)처럼 생겼다. `창평면 해곡리
·고냇걸【들】내동 남쪽에 있는 들. 내가 흘렀다. `창평면 해곡리
·괴엄【들】→갱이들. `창평면 해곡리
·구레이들【들】→갱이들. `창평면 해곡리
·군보【보】하마보 동남쪽에 있는 보. `창평면 해곡리
·둔전보(屯田洑)【보】섶새 동쪽에 있는 보. 둔전이 있었다. `창평면 해곡리
·모청안【들】개똥아리 북쪽에 있는 들. 모정 안쪽. `창평면 해곡리
·바닷들〔해평〕【들】부동촌 앞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빗터걸【들】지작걸 서남쪽에 있는 들. 비가 있었다. `창평면 해곡리
·새보【보】새봇들에 새로 된 보. `창평면 해곡리
·새봇들【들】화걸 동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섶새【들】고냇걸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심방골【골】옥산등 남쪽에 있는 골짜기. `창평면 해곡리
·쑥다릿들【들】쑥다리 앞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옥산등(玉山嶝)【등】월구실 뒤쪽에 있는 등성이. 지형이 구슬 모양으로 둥그렇게 생겼다. `창평면 해곡리
·절골【골】부동촌 뒤쪽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다. `창평면 해곡리
·중새보【보】섶새 동쪽에 있는 보. `창평면 해곡리
·지작걸【들】쑥다리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진등【등】월구실 북쪽에 있는 긴 등성이. `창평면 해곡리
·큰고래실【들】부동촌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토던【들】옥산등 북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팽나무정이【들】갱이들 밑에 있는 들. 팽나무가 있었다. `창평면 해곡리
·하마보(下馬洑)【보】새보 동쪽에 있는 보. `창평면 해곡리
·함정골【들】큰고래실 서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해평(海坪)【들】→바닷들. `창평면 해곡리
·화걸【들】빗터걸 남쪽에 있는 들. `창평면 해곡리
*담양군의 법정리명(法定里名)들
*담양읍의 법정리명
&담양읍 (18개 리)
·가산리(佳山里) = 고가매, 고가산(高佳山), 가산(佳山)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면(高面)의 지역이었다. 고가산(高佳山) 밑이 되어 고가매 또는 고가산, 가산(佳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
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회룡동(回龍洞)을 합하여 가산리(佳山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
로 옮겨 넣었다.
`바바
·강쟁리(江爭里) = 강쟁(江爭)
조선시대엔 담양군 목면(木面)의 지역이었다. 강바닥이 변하여 마을이 되었으므로 강쟁(江爭)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두곡리(斗谷里) 일부를 합하여 강쟁리(江爭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
으로 옮겨 넣었다.
·객사리(客舍里) = 객사(客舍)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面)의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객사가 있어서 객사(客舍)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객내리(客內里), 북내리(北內里), 북외리(北外里), 부중리(府中里)와 동정리(東亭里), 간동리(澗洞里), 마내리(馬內
里), 마외리(馬外里), 마구리(馬口里), 북우리(北右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객사리(客舍里)로 정하고, 담양면(潭陽面→담양읍)에
넣었다.
·금월리(錦月里) = 금월(錦月)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동면(泉洞面)의 지역이었다. 금월(錦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은리(長
隱里), 연화촌(蓮花村)을 합하여 금월리(錦月里)로 정하고, 금성면(金城面)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면(→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남산리(南山里) = 남산(南山), 남촌(南村)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面)의 지역이었다. 남산 밑이 되어 남산 또는 남촌(南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동정리(東亭里) 일부를 합하여 남산리(南山里)라 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담주리(潭州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西邊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천리(外川里)와 마내리(馬內里), 마
외리(馬外里), 천변리(川邊里)의 각 일부와 동면의 북우리(北右里) 일부를 합하여, 담양의 옛 이름을 따서 담주리(潭州里)로 정하
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옛날 담양면의 면 소재지이다.
·만성리(萬成里) = 만성(萬成), 완동(完洞)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西邊面)의 지역이었다. 완동(完洞) 또는 만성(萬成)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리(峰山里)와 동면의 광동(廣洞) 일부를 합하여 만성리(萬成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반룡리(盤龍里) = 반룡(盤龍)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용이 서리고 있는 형국이어서 반룡(盤龍)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신촌(新村), 용주리(龍珠里)와 목면(木面)의 두곡리(斗谷里), 도고정(都古亭)의 각 일부를 합하여 반룡리(盤龍里
)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백동리(柏洞里) = 잣굴, 백동(柏洞)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재(고개) 밑이 되어 잣굴 또는 백동(柏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신기리(新基里)와 동변면(東邊面)의 내동(內洞) 삼거리(三巨里)와, 무면(武面)의 향백동(香柏洞) 일부와 목면(木
面)의 두곡리(斗谷里) 일부를 합하여 백동리(柏洞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삼다리(三茶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면(高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연동(龜蓮동), 외다리(外茶里), 동다리
(東茶里), 서다리(西茶里), 사미정(四美亭) 일부와 서면의 시산리(匙山里) 일부를 합하여 외다(外茶), 동다(東茶), 서다(西茶)의
세 '다(茶)'자를 따서 삼다리(三茶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삼만리(三萬里) = 삼만(三萬), 삼무절, 삼무사(三無寺)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동면의 지역이었다. 전에 세 절이 있었다 하여 삼만(三萬) 또는 삼무절 또는 삼무사(三無寺)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선계(仙界), 내동(內洞), 오정(梧丁)의 각 일부와 광면(廣面)의 기룡리(起龍里), 장원리(
壯元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삼만리(三萬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양각리(羊角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시산, 고산동(高山洞), 사미정(四美亭)을 합하
여 양각산(羊角山) 밑이 되어 양각리(陽刻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오계리(五桂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현동(五鉉洞)과 계동(桂洞)을 합하여 오계리(
五桂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운교리(雲橋里) = 구룸다리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원리(壯元里.장월), 기룡리(起龍里)의
각 일부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 일부와 서면의 만성리(萬成里)일부를 합하여 운교리(雲橋里)로 정하고, 월산면(月山面)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지침리(紙砧里) = 교방(敎坊)거리, 조방거리, 교촌(校村), 지침(紙砧)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面)의 지역이었다. 교방(敎坊.기방)이 있어서 교방거리, 조방거리 또는 교촌(校村), 지침(紙砧)이
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득삼리(得三里)와 간동리(澗洞里), 마구리(馬口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지
침리(紙砧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천변리(川邊里) = 천변(川邊)
조선시대엔 담양군 서변면(西邊面)의 지역이었다. 관방천변(官防川邊)에 있어서 천변(川邊)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누문(樓門), 간리(間里)를 합하여 천변리(川邊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었다.
·학동리(鶴洞里) = 학굴, 학동(鶴洞)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뒷산이 학(鶴)의 형국이므로 학굴 또는 학동(鶴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심곡리(深谷里)와 천면(泉面)의 연화촌(蓮花村) 일부를 합하여 학동리(鶴洞里)로 정하고, 금성면(
金城面)에 넣었다가 1983년 2월에 담양읍으로 옮겨 넣었다.
·향교리(鄕校里) = 향교(鄕校), 교촌(校村)
조선시대엔 담양군 동변면(東邊면)의 지역이었다. 담양향교(潭陽鄕校)가 있어서 향교(鄕校) 또는 교촌(校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취영리(取英里), 광동(廣洞) 일부를 합하여 향교리(鄕校里)로 정하고, 담양면(→담양읍)에 넣
었다.
&고서면 (10개 리)
·고읍리(古邑里) = 구읍(舊邑), 고읍(古邑)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다. 창평현(昌平縣)이 있어서 구읍(舊邑) 또는 고읍(古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촌(德村), 죽림(竹林), 신량(新良), 삼산리(三山里)를 합하여 고읍리(古邑里)로 정하고, 담
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교산리(校山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북촌(下北村), 강정(江亭), 교
촌(校村)과 북쪽의 운월리(雲月里) 일부를 합하여 교산리(校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금현리(金峴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단동(金丹洞), 노채리(蘆菜里) 일부와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운현을 병합해서 금단(金丹)과 운현(雲峴)의 이름을 따서 금현리(金峴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
다.
·동운리(東雲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산리(東山里)와 성덕리(盛德里), 원등(
院嶝), 운월리(雲月里), 하유곡(下維谷)의 각 일부와 가면(加面)의 하산(下山)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
를 합하여, 동산(東山)과 운월(雲月)의 이름을 따서 동운리(東雲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보촌리(甫村里) = 봇몰, 보촌(甫村.洑村)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물대는 보(洑)가 있어서 봇몰 또는 보촌(洑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보촌(外洑村), 내보촌(內洑村)과 북면(北面)의 원등(院嶝) 일부를 합하여 보촌리(甫村里)로 정하고, 담양
군 고서면에 넣었다.
·분향리(分香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인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백정(栢亭), 용대(龍臺), 고읍리(古
邑里) 일부와 서면(西面)의 노채리(蘆菜里) 일부와 내남면(內南面)의 학미동(鶴尾洞) 일부를 합하여 분향리(分香里)로 정하고, 담
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산덕리(山德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인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연동(蓮洞), 후산(后山), 상덕리(上德里),
운월리(雲月里) 일부를 합하여 산덕(山德)과 후산(后山.後山)의 이름을 따서 산덕리(山德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성월리(聲月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성산(聲山), 평촌(坪村), 광산(廣
山)과 북면(北面)의 원등(院嶝) 일부와 서면(西面)의 월전리(月田里), 검단리(檢丹里), 내보촌(內甫村) 일부를 합하여 성산(聲山
)과 월전(月田)의 이름을 따서 성월리(聲月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원강리(院江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분토동(粉吐洞), 원이동(院以洞), 월곡(月
谷)과 우면(牛面)의 장산리(長山里), 상동(上洞), 강정리(江亭里), 일부를 합하여 원이(院以)와 강정(江亭)의 이름을 따서 원강리
(院江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주산리(舟山里) = 주산(舟山)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고 하여 주산(舟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주평리(舟坪里), 내보촌(內甫村) 일부를 합하여 주산리(舟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고서면에 넣었다
.
&금성면 (10개 리)
·금성리(金城里) = 금성(金城)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금성산(金城山) 밑이 되어 금성(金城)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문암리(文岩里), 부곡(釜谷), 평신리(平新里)를 병합해서 금성리(金城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대곡리(帶谷里) = 대곡(帶谷), 대실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띠처럼 생겼다고 하여 대실 또는 대곡(帶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
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손곡(巽谷)과 산이천(山伊川), 외추동(外楸洞)을 합하여 대곡리(帶谷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
었다.
·대성리(大成里) = 대성(大成)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면(泉面)의 지역이었다. 향교의 대성전(大成殿)이 있어서 대성(大成)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곡리(蜂谷里)와 용면(龍面)의 정각리(正角里), 양지리(陽地里), 치등리(峙嶝里) 일부를 합하여 대성리로 정하
고, 금성면에 넣었다.
·덕성리(德成里) = 덕성(德成)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둔덕에 마을이 이룩되어서 덕성(德成)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행정리(杏亭里), 영월리(迎月里), 시목리(枾木里)를 합하여 덕성리(德成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봉서리(鳳棲里) = 봉서(鳳棲)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주위의 지형이 봉황이 깃드는 형국으로, 봉서(鳳棲)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항(獐項), 비내동(飛乃洞), 와룡촌(臥龍村) 일부를 합하여 봉서리(鳳棲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봉황리(鳳凰里) = 봉황, 봉황동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봉황산(鳳凰山) 밑이 되어 봉황동(鳳凰洞) 또는 봉황(鳳凰)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라실(가라곡.加羅谷), 장재리(長財里), 대곡리(帶谷里) 일부를 합하여 봉황리(鳳凰里
)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석현리(石峴里) = 돌고개, 석현(石峴)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동면(泉洞面)의 지역이었다. 마을에 돌이 많으므로 돌고개 또는 석현(石峴)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띠라 무림동(茂林洞)과 고지산면(高之山면)의 와룡촌(臥龍村), 산이천리(山伊川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석현리
(石峴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금성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관 지시, 우체국, 학교들이 있다.
·외추리(外楸里) = 외추동(外楸洞), 외추(外楸)
조선시대엔 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추성산의 바깥쪽이 되어 외추동(外楸동) 또는 외추(外楸)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매곡(梅谷)과 노천동(盧川洞)을 합하여 외추리(外楸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원율리(原栗里) = 원율(原栗)
조선시대엔 고지산면(高之山面)의 지역이었다. 옛날 원율현(原栗峴)이 있어서 원율(原栗)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평리(五坪里)와 우면(牛面)의 원우리(院隅里)를 합하여 원율리(原栗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원천리(元泉里) = 원천(元泉)
조선시대엔 담양군 천동면(泉洞面)의 지역이었다. 큰 샘이 있어서 원천(元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원리(內院里), 외천리(外泉里), 내동(內洞) 일부를 합하여 원천리(元泉里)로 정하고, 금성면에 넣었다.
&남면 (12개 리)
·가암리(柯岩里) = 구멍바우, 혈암(穴岩), 오리터, 가암(柯岩)정이, 가남정이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마을 뒤에 구멍바우가 있어서 구멍바우 또는 혈암(穴岩) 또는 오리나무 정자와
반석이 있어서 길손과 장사꾼들이 쉬어 가므로 오리터, 가암정이, 가남정이 또는 가암(柯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청촌(淸村), 자창리(自唱里)를 합하여 가암리(柯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경상리(京相里) = 경상굴, 경상동(京相洞)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경상굴 또는 경상동(京相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환암촌(環巖村)을 합하여 경상리(京相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구산리(九山里) = 거북뫼, 구산(龜山)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거북뫼(거북산)가 있어서 거북뫼 또는 구산(龜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
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단리(長丹里)를 합하여 구산리(九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만월리(滿月里) = 망월(望月), 만월(滿月)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망월봉(望月峰) 밑이 되어 망월(望月) 또는 만월(滿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
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룡촌(九龍村), 석계리(石溪里), 쌍룡리(雙龍里), 용연촌(龍淵村)을 합하여 만월리(滿月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무동리(茂洞里) = 무동촌((舞童村), 무동(舞童)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북산 밑이 되어 아이가 춤을 추는 형국이므로 무동촌(舞童村) 또는 무동(舞童)
이라 하였다 하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수구촌(守口村)을 합하여 무동리(茂洞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연천리(燕川里) = 제비내, 연천(燕川)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제비내 또는 연천(燕川)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
라 산음동(山陰洞), 취연리(吹連里), 반석리(盤石里) 일부와 광주군 상대석면(上大石面)의 당촌리(唐村里), 평촌리(坪村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연천리(燕川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외동리(外洞里) = 외동(外洞)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창평 읍내에서 높은 산 밖에 외따로 떨어진 마을이어서 외동(外洞)이라 하였는
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동리(外洞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인암리(仁岩里) = 기린바우, 인암(麟岩)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기린바우가 있어서 기린바우 또는 인암(麟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인암리(仁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정곡리(鼎谷里) = 속골(솥골), 정곡(鼎谷)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면)의 지역이었다. 안골짜기가 되어 속골 또는 정곡(鼎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봉리(士峯里)를 합하여 정곡리(鼎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지곡리(芝谷里) = 지실, 지곡(芝谷)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지실 또는 지곡(芝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지석리(支石里)를 합하여 지곡리(芝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풍암리(豊岩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외남면(外南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화암촌(花岩村), 학항(鶴項), 연풍정
(連豊亭)을 합하여 연풍정(連豊亭)과 화암촌(花岩村)의 이름을 따서 풍암리(豊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학선리(鶴仙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남면(內南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개선동(開仙洞), 외지곡(外芝谷), 학
미동(鶴尾洞) 일부와 광주군 석제면(石堤面)의 덕의리(德義里. 현재 광주시 북구의 덕의동) 일부를 합하여 학미(鶴尾)와 개선(開
仙)의 이름을 따서 학선리(鶴仙里)로 정하고, 담양군 남면에 넣었다.
&대덕면 (11개 리)
·갈전리(葛田里) = 갈밭, 갈전(葛田)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떡갈나무가 많으므로 갈밭 또는 갈전(葛田)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갈리(上葛里), 하갈리(下葛里)와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의 반곡리(盤谷里) 일부를 합하여 갈전리(葛
田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금산리(錦山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시목리(枾木里), 당촌(堂村), 무월리(撫月
里)를 합하여 금산(錦山) 밑이 되어 금산리(錦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매산리(梅山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내면(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등갈리(藤葛里), 사창리(社倉里), 일부를
합하여 매봉(梅峰) 밑이 되어 매산리(梅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문학리(文學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문치(內文峙), 외문치(外文峙), 원기(院
基), 학동(學洞), 옥천(玉泉), 수곡(水谷) 일부를 합하여 문치(文峙)와 학동(學洞)의 이름을 따서 문학리(文學里)로 정하고, 담양
군 대덕면에 넣었다.
·비차리(飛 里) = 비나굴, 차동( 洞), 비차동(飛 洞)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비나처럼 생겼다고 하여 비나굴 또는 차동( 洞), 비차동(飛 洞)이라 하였는
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원효동(元孝洞), 가흥동(佳興洞) 일부를 합하여 비차리(飛 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
덕면에 넣었다.
·성곡리(聲谷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성신리(聲新里)와 요곡(要谷)을 합하여 성
곡리(聲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용대리(龍坮里) = 가재굴, 가재동(可在洞), 용대(龍坮)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들 가장자리에 있어 가재굴 또는 가재동(可在洞)이라 하였는데, 화재가 자주 나서
불을 끄는 데는 용이 물을 내려야 한다 하여 용대(龍坮)로 고쳤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청운동(靑雲洞),
소지방(所之坊), 수곡(水谷) 일부를 합하여 용대리(龍坮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운산리(雲山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덕면(德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산(松山), 저심리(楮沈里), 대서산리(大
西山里)를 합하여 수양산(首陽山)밑이 되어 운산리(雲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운암리(雲岩里) = 운암(雲岩)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큰 바위가 있어서 운암(雲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
라 상운암(上雲岩), 하운암(下雲岩), 사창리(社倉里) 일부를 합하여 운암리(雲岩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입석리(立石里) = 선돌, 입석(立石)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마을 앞에 선돌이 있어서 선돌 또는 입석(立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남면(外南面)의 입석리(立石里)를 합하여 입석리(立石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장산리(章山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대면(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소산리(小山里), 대산리(大山里), 장동(獐
洞)을 합하여 장동(獐洞)과 대산(大山)의 이름을 따서 장산리(章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덕면에 넣었다.
&대전면 (12개 리)
·갑향리(甲鄕里) = 갑향(甲鄕)
조선시대엔 창평현에 딸린 갑향면(甲鄕面)의 지역이었다. 고려 때 나주에 붙였다가, 광주에 옮기고, 제34대 공양왕 3년(1391)에
창평현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갑향면(甲鄕面)이 되었는데, 고종 32년(1895)에 장성군에 넣었다가,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학동리(鶴洞里), 소두리(梳頭里)와 학전리(鶴田里), 사성리(四聲里), 나곡리(羅谷里)의 각 일부와 광주군 갈전면의
본하리 일부를 합하여 갑향리(甲鄕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강의리(講義里) = 강의(講義)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서당에 있어서 강을 받으며 예를 배운다 하여 강의(講義)라 하였는데, 일제 때
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우치리(牛峙里)의 용강리(龍江里)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의 운산리(雲山里) 일부를 합하여 강의
리(講義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강의리
·대치리(大峙里) = 한재, 대치(大峙)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한재 밑이 되어 한재 또는 대치(大峙)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망화리(望化里)와 효례리(孝禮里), 문내리(門內里)의 각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의 대산리(臺山里) 일부를 합하여 대치
리(大峙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병풍리(屛風里) = 병풍(屛風)
조선시대엔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지역이었다. 병풍산 아래 있어서 병풍(屛風)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
합에 따라 내동(內洞), 후동(后洞), 노은동(魯隱洞)과 나곡리(羅谷里), 행정리(杏亭里), 대산리(臺山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병풍
리(屛風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풍리
·서옥리(西玉里) = 서옥산(西玉山), 서당몰
본래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으로서, 옥산(玉山) 서쪽에 되어 서옥산(西玉山) 혹은 서당(書堂)이 있었으므로 서당몰이라 하
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新村里)와 금곡리(金谷里), 환인동(環印洞), 용동(龍洞), 청룡리(靑龍里)의 각 일
부와 장성군 외동면(外洞面)의 청룡리(靑龍里) 일부를 병합하여 서옥리(西玉李)라 해서 담양군 대전면에 편입되었다.
·성산리(城山里) = 성산(城山), 성매
조선시대엔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지역이었다. 바위가 북두철성처럼 생겼다고 하여 성매 또는 성산(星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갑성산리(甲城山里)와 옥동리(玉洞里), 학전리(鶴田里), 기강리(基岡里), 주동리(舟洞里)의
각 일부와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화성산(花城山), 평성산(平城山)의 각 일부와 장남면의 금구동(金九洞) 일부를 합하여 성산리
(城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월본리(月本里) =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인리(月印里)와 본상리, (本上里),
본하리(本下里)의 각 일부와 대치면의 문내리(門內里)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의 대산리(臺山里), 사성리(四聖里)의 각 일부를 합하
여 월인(月印)과 본상(本上)의 이름을 따서 월본리(月本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의 넣었다.
·응룡리(應龍里) =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응기리(應基里)와 갈전면(葛田面)의
신룡리(新龍里)와 삼소지면(三所旨面)의 해산리(海山里) 일부를 합하여 응기(應基)와 신룡(新龍)의 이름을 따서 응룡리(應龍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중옥리(中玉里) = 중옥(中玉)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서옥산(西玉山)과 동옥산(洞玉山)의 중간에 있어서 중옥(中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문내리(門內里), 금곡리(金谷里), 용동리(龍洞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중옥리(中玉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태목리(台木里) =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태암리(台岩里)와 대치면(大峙面)의
시목리(枾木里)와 문내리(門內里), 응기리(應基里)의 각 일부와 우치면(牛峙面)의 신평리(新坪里) 일부를 합하여 태암(台岩)과 시
목(枾木)의 이름을 따서 태목리(台木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평장리(平章里) = 평장동(平章洞)
조선시대엔 광주군 대치면(大峙面)의 지역이었다. 고려 때 김씨 문중에서 평장사(平章事) 벼슬이 많이 났으므로 평장동(平章洞)이
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아리(大雅里), 화암리(花岩里), 효례리 일부를 합하여 화암(花岩)과 대
아(大雅)의 이름을 따서 화아리(花雅里)라 하였다가, 1917년 평장리(平章里)로 고쳤다.
·행성리(杏成里) =
조선시대엔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에 폐합에 따라 옥산리(玉山里), 덕산리(德山里),
대성리(大成里)와 행정리(杏亭里), 옥동리(玉洞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행정(杏亭)과 대성(大成)의 이름을 따서 행성리(杏成里)로
정하고, 담양군 대전면에 넣었다.
&무정면 (13개 리)
·덕곡리(德谷里) = 덕실, 덕곡(德谷)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큰 골짜기가 되어 덕실 또는 덕곡(德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곡리(德谷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동강리(東江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고지(東古支)와 강정(江亭)을 합하여 동
강리(東江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동산리(東山里) = 동산(東山)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옻재 동쪽 금산(錦山) 밑이 되어 동산(東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칠전리(漆田里), 칠치리(漆峙里)를 합하여 동산리(東山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봉안리(鳳安里) = 봉안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비봉산 안쪽이 되어 봉안(鳳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안동(龜安洞), 술지리(述只里), 수문동(守門洞), 기동(基洞)과 외당리(外堂里), 동산리(東山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봉안
리(鳳安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봉안리
·서흥리(瑞興里) = 서흥(瑞興)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서암산 밑이 되어 서흥(瑞興)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
라 족자동(族子洞)을 합하여 서흥리(瑞興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성도리(成道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성덕리(成德里), 서정리(西亭里), 중리(中
里), 도리(道里)를 합하여 성덕(成德)과 도리(道里)의 이름을 따서 성도리(成道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안평리(安平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안동(新安洞), 평장동(平章洞)과 무면(
武面)의 동산리(東山里) 일부를 합하여 신안(新安)과 평장(平章)의 이름을 따서 안평리(安平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
다.
·영천리(靈泉里) = 영천(靈泉)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영천산(靈泉山)이 있어서 영천(靈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
합에 따라 봉서리(鳳棲里), 죽산리(竹山里)를 합하여 영천리(靈泉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오례리(五禮里) = 오례원(五禮院), 오례(五禮)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덕기역(德奇驛)에 딸린 오례원(五禮院)이 있어서 오례원 또는 오례(五禮)
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회룡동(回龍洞), 등룡동(登龍洞)과 창평군 덕면(德面)의 성신리(聲新里)
일부를 합하여 오례리(五禮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오룡리(五龍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운산리(雲山里), 외당리(外堂里)를 합하여
지형이 다섯 용처럼 생겼다 하여 오룡리(五龍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오봉리(五峰里) = 오봉(五峰), 오봉촌(五峰村)
조선시대엔 담양군 무면(武面)의 지역이었다. 뒷산이 다섯 봉우리로 되었으므로 오봉(五峰) 또는 오봉촌(五峰村)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오봉리(五峰里)로 정하고, 무면(→무정면)에 넣었다.
·정석리(貞石里) = 정석(貞石)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정면 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정석(貞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환대리(還大里), 평촌(坪村) 일부를 합하여 정석리(貞石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었다.
·평지리(平地里) = 평지(平地), 청석(靑石)
조선시대엔 담양군 정면(貞面)의 지역이었다. 평지가 되어 평지(平地) 또는 푸른 돌이 많이 나서 청석(靑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미산리(尾山里)와 평촌(平村) 일부를 합하여 평지리(平地里)로 정하고, 정면(→무정면)에 넣
었다.
&봉산면 (9개 리)
·기곡리(錡谷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덕리(上德里), 방축리(防築里), 탄금정
(彈琴亭), 천수동(泉水洞), 구암리(龜岩里), 연동(蓮洞) 일부와 우면(牛面)의 송산리(松山里)를 합하여 기곡리(錡谷里)로 정하고
,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대추리(大秋里) = 대추징이, 대추(大秋)
조선시대엔 담양군 목면(木面)의 지역이었다. 대추나무가 있었으므로 대추징이 또는 대추(大秋)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곡정리(曲丁里), 도고정(都古亭)의 각 일부와 두면(豆面)의 서봉리(棲鳳里) 일부와 우면(牛面)의 신기(新基
) 일부를 합하여 대추리(大秋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삼지리(三支里) = 삼도촌(三島村), 삼지(三支)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마을 둘레에 작은 섬(山) 셋이 있어서 삼도촌(三島村) 또는 삼지(三支)라 하였는데
,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목면의 신기리(新基里)와 우면(牛面)의 와우리(臥牛里), 유산촌(柳山村)의 각 일부와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정중리(井中里) 일부를 합하여 삼지리(三支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신학리(新鶴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학동, 신곡리(新谷里) 일부와 창평군 장남
면(長南面)의 관동리(關洞里), 정중리(井中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신곡(新谷)과 학동(鶴洞)의 이름을 따서 신학리(新鶴里)로 정
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양지리(陽地里) = 양지(陽地)
조선시대엔 담양군 우면(牛面)의 지역이었다. 양지바른 곳이 되어 양지(陽地)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
라 월전리(月田里), 강정리(江亭里) 일부를 합하여 양지리(陽地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연동리(淵洞里) = 못굴, 지동(池洞), 연동(淵洞)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못이 있어서 못굴 또는 지동(池洞), 연동(淵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
정 구역 폐합에 따라 죽림리(竹林里), 삼지촌(三支村), 신곡리(新谷里)의 각 일부와 우면(牛面)의 유산촌(柳山村) 일부를 합하여
연동리(淵洞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와우리(臥牛里) = 와우(臥牛)
조선시대엔 담양군 우면(牛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와우(臥牛)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화평리(華坪里), 봉학정(鳳鶴亭), 신기(新基) 일부와 광주군 우치면(牛峙面)의 학림리(鶴林里), 회룡리(回龍里
)의 각 일부를 합하여 와우리(臥牛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유산리(柳山里) = 버들뫼, 유산(柳山)
조선시대엔 담양군 우면(牛面)의 지역이었다. 산이 벋어 있어서 버들뫼 또는 유산(柳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마산리(馬山里), 창강리(滄江里)일부와 두면(豆面)의 죽림리(竹林里) 일부를 합하여 유산리(柳山里)로 정하고, 구
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제월리(齊月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두면(豆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면앙정( 仰亭), 마항리(馬項里)와 서봉리
(棲鳳里), 곡정리(曲丁里)의 각 일부와 목면(木面)의 오산동(五山洞), 구미동(九尾洞)을 합하여 제월산(齊月山)의 이름을 따서 제
월리(齊月里)로 정하고, 구암면(→봉산면)에 넣었다. 월리
&수북면 (13개 리)
·개동리(開東里) = 개동(開東)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지역이었다. 개(浦)가 동쪽에 있어서 개동(開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개동리(開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고성리(高城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월리(新月里), 신복동, (新福洞),
고리대(古里大), 평촌(坪村), 성산(城山)과 궁암(弓岩), 화성산, (花城山), 평성산(平城山)의 각 일부를 합하여 고대(高臺)와 성
산(城山)의 이름을 따서 고성리(高城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궁산리(弓山里) = 활뫼, 궁산(弓山)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활처럼 생겼다고 하여 활뫼 또는 궁산(弓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龜岩里), 신기리(新基里), 경호리 일부와 창평군 장북면의 와룡동(臥龍洞)을 합하여 궁산리
(弓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나산리(羅山里) = 나리매, 나산(羅山)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벌판이 되어 나리매 또는 나산(羅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
역 폐합에 따라 상촌(上村)을 합하여 나산리(羅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남산리(南山里) = 남매, 남산(南山)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지역이었다. 남매 또는 남산(南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담양군 부면(夫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와 두면(豆面)의 곡정리(曲丁里) 일부를 합하여 남산리(南山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
면에 넣었다.
·대방리(大舫里) = 대방(大舫)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고 하여 대방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松亭里), 행정, 포박리(浦泊里)와 동서면(東西面)의 회룡리(回龍里), 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대
방리(大舫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북면대방리
·대흥리(大興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계리(月溪里), 만화동(滿花洞)과 장
남면(長南面) 남산리(南山里) 일부를 합하여 크게 일어나라는 뜻으로 대흥리(大興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두정리(斗井里) =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두동리(斗洞里), 용정리(龍井里), 경
호리(鯨湖里) 일부와 담양군 고면(高面)의 구연동(龜淵洞) 일부를 합하여 두동(斗洞)과 용정(龍井)의 이름을 따서 두정리(斗井里
)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오정리(梧亭里) = 머구정이, 오정(梧亭)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지역이었다. 머구나무(머귀나무) 정자가 있어서 머구정이 또는 오정(梧亭)이라 하였는데, 일
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강동(江洞), 삼인동(三人洞)과 동서면(東西面)의 궁암 일부를 합하여 오정리(梧亭里)로 정
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오
·정중리(井中里) = 전중(田中), 정중(井中)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지역이었다. 들 가운데가 되어 전중(田中) 또는 정중(井中)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중리(井中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주평리(舟坪里) = 뱃들, 주평(舟坪)
조선시대엔 광주군 갈전면(葛田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배처럼 생겼다고 하여 뱃들 또는 주평(舟坪)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신정리(新亭里) 일부와 담양군 고면(高面)의 가량리(加良里), 운연리(雲
淵里), 구연동(龜蓮洞) 일부를 합하여 주평리(舟坪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풍수리(風水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동서면(東西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장동(東庄洞), 월산(月山)과 회룡동
(回龍洞), 신정리(新亭里)의 각 일부와 담양군 목면(木面)의 미산리(尾山里), 동장리(東庄里)의 각 일부와 우면(牛面)의 신기리(
新基里) 일부를 합하여 풍수리(風水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황금리(黃金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장남면(長南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구동(金九洞)과 장성군 갑향면(甲鄕
面)의 운산리(雲山里), 주동리(舟洞里), 기강리(基岡里)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황덕리(黃德里) 일부를 합하여 황덕(黃德
)과 금구(金九)의 이름을 따서 황금리(黃金里)로 정하고, 담양군 수북면에 넣었다.
&용면 (8개 리)
·도림리(道林里) = 도림(道林)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도림(道林)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림리(道林里
)라 하며, 1976년 담양호(潭陽湖)가 완성됨에 따라 수몰 지구인 산성리(山城里)의 남은 지역을 넣었다.
·두장리(斗長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서평리(西坪里), 장찬리(長贊里)와 천면(
泉面)의 두지동(斗支洞), 오정리(梧丁里) 일부를 합하여 두지(斗支)와 장찬(長贊)의 이름을 따서 두장리(斗長里)라 하였다.
·쌍태리(雙台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월리(上月里), 태월리(台月里), 삼태리
(三台里)를 합하여 태월(台月)과 삼태(三台)의 아름을 따서 쌍태리(雙台里)라 하였다.
·용연리(龍淵里) = 용소(龍沼), 용못, 용연(龍淵), 용동(龍洞)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용소가 있어서 용소(龍沼), 용못 또는 용연(龍淵), 용동(龍洞)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흥리(大興里), 분통리(粉桶里), 용평리(龍平里), 소천치(小天峙), 세룡동(細龍洞)을 합하여
용연리(龍淵里)라 하며, 1976년 담양호가 완성됨에 따라 수몰 지구인 청흥리(淸興里)의 남은 지역을 넣었다.
·용치리(龍峙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천치(大天峙), 사거리(四巨里), 견양동
(牽羊洞)을 합하여 용치리(龍峙里)라 하였다.
·월계리(月桂里) = 월계(月桂)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추월산 밑이 되어 월계(月桂)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복룡리(伏龍里), 월암리(月岩里), 신령리(新令里), 월성리(月星里), 진수리(進水里)를 합하여 월계리(月桂里)라 하였다.
·추성리(秋城里) = 추성(秋城)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담양의 옛 이름인 추성이 있었으므로 추성(秋城)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치등리(峙嶝里)와 천면(泉面)의 신흥리(新興里)를 합하여 추성리(秋城里)라 하였다.
·통천리(桶泉里) = 통시암, 통천(桶泉)
조선시대엔 담양군 용면(龍面)의 지역이었다. 마을에 통시암이 있어서 통시암 또는 통천(桶泉)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박곡리(泊谷里), 매월리(梅月里)를 합하여 통천리(桶泉里)라 하였다.
&월산면 (10개 리)
·광암리(廣岩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산정리(山亭里), 사암리(四岩里), 광덕리
(廣德里), 월천리(月川里), 개양동(開陽洞), 신기(新基)를 합하여 광덕(廣德)과 사암(四岩)의 이름을 따서 광암리(廣岩里)로 정하
고, 월산면에 넣었다.
·신계리(新溪里) = 신계(新溪)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시냇가가 되어 신계(新溪)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창
평군 장북면(長北面)의 유곡(柳谷), 용산(龍山), 신평리(新平里)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대정리(大井里) 일부를 합하여 신계
리(新溪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오성리(五星里) = 오성(五星)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오장산 밑이 되어 오성(五星)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
라 군수동(郡守洞), 내동(內洞)을 합하여 오성리(五星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용암리(龍岩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남계리(南溪里), 능동(陵洞), 홍암리(紅岩
里)와 산면(山面)의 용금동(龍錦洞) 일부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적암리(赤岩里)를 합하여 용금(龍錦)과 적암(赤岩)의 이름을
따서 용암리(龍岩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용흥리(龍興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도동(道洞), 용금동(龍錦洞) 일부와 창평
군 장북면(長北面)의 월송정(月松亭), 가곡(柯谷), 죽림동(竹林洞)을 합하여 용흥리(龍興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계리(月溪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광면(廣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복정리(福井里), 농암리(籠岩里), 옥산리
(玉山里)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 일부를 합하여 월계리(月溪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월산리(月山里) = 월산(月山)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반달처럼 생겨서 월산(月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
합에 따라 동산리(東山里)와 화방리(化方里), 왕산리(旺山里), 대례촌(大禮村)과 광면(廣面)의 장재동(長財洞) 일부를 합하여 월
산리(月山里)로 정하고, 이 지역 일대를 월산면으로 하였다. 월산면 면 소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관 지서, 우체국, 시장, 학
교 들이 있다.
·월평리(月平里) = 월평(月平)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큰 산 밑 들에 마을이 이룩되었으므로 월평(月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평리(新平里), 단사동(丹砂洞), 신양리(新陽里), 왕산리(旺山里), 대례촌(大禮村) 일부를 합하여 월평리
(月平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중월리(中月里) =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중방리(中方里)와 월곡리(月谷里)를 합하
여 중월리(中月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화방리(化方里) = 화방촌(化方村), 화방(化方)
조선시대엔 담양군 산면(山面)의 지역이었다. 지형이 모가 지므로 화방촌(化方村) 또는 화방(化方)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
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정리(松亭里)의 봉명동(鳳鳴洞), 마산리(馬山里)와 광면(廣面)의 장재동(長財洞), 기룡리(起龍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화방리(化方里)로 정하고, 월산면에 넣었다.
&창평면 (11개 리)
·광덕리(廣德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치(德峙), 광암(廣巖), 조현(鳥峴)을 합
하여 광암(廣巖)과 덕치(德峙)의 이름을 따서 광덕리(廣德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삼천리(三川里) = 삼지내, 삼지천(三支川), 삼천(三川)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세 갈래의 내가 있어서 삼지내 또는 삼지천(三支川), 삼천(三川)이라 하였는데
,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본촌(本村), 읍리(邑里) 일부와 대면의 증산리(甑山里) 일부를 합하여 삼천리(三千里
)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오강리(梧江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당곡(唐谷), 오산(梧山), 양산(良山)
과 북면(北面)의 강촌(江村)을 합하여 오산(梧山)과 강촌(江村)의 이름을 따서 오강리(梧江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
·용수리(龍水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월량(月良), 용운동(龍雲洞), 상소천
(上素川), 수곡(水谷), 용전(龍田), 부동(釜洞)을 합하여 용운(龍雲)과 수곡(水谷)의 이름을 따서 용수리(龍水里)로 정하고, 담양
군 창평면에 넣었다.
·유곡리(維谷里) = 얼구실, 월구실, 유곡(維谷)
조선시대엔 창평군 북면(北面)의 지역이었다. 얼구실, 월구실 또는 유곡(維谷)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加面)의 화촌(華村)과 장산(長山), 연화촌(蓮花村)의 각 일부를 합하여 유곡리(維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
었다.
·유천리(柳川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유촌(柳村)과 하소천(下素川)을 합하
여 유천리(柳川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의항리(義項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의암(義巖.義岩), 죽항(竹項) 일부와 북면
(北面)의 신기(新基)와 군내면(郡內面)의 보평(普坪)을 합하여 의암(義岩)과 죽항(竹項)의 이름을 따서 의항리(義項里)로 정하고
,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일산리(一山里) = 일산(一山)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산이 일자로 되어서 일산(一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산(上山), 하산(下山)과 북면(北面)의 하유곡(下維谷), 제월리(霽月里), 상덕리(上德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일산리(一山
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장화리(長華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전(長田)과 장산(長山), 연화촌(蓮花村
)의 각 일부와 대면(大面)의 화양촌(華陽村), 가흥동(佳興洞) 일부를 합하여 장전(長田)과 화양(華陽)의 이름을 따서 장화리(長華
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창평리(昌平里) = 창평읍내(昌平邑內), 읍리(邑里), 창평(昌平)
조선시대엔 창평군 군내면(郡內面)의 지역이었다. 창평 읍내가 되어 창평읍내(昌平邑內) 또는 창평(昌平), 읍리(邑里)라 하였는데
,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의 죽항(竹項) 일부와 내면(內面)의 증산리(曾山里), 가흥리(佳興里)의 각 일부를
합하여 창평리(昌平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해곡리(海谷里) =
조선시대엔 창평군 가면(加面)의 지역이었다.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부동(富洞), 애교(艾橋)와 북면(北面)의
내동(內洞), 성덕리(盛德里), 하유곡(下維谷)의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합하여 해평(海坪.들)과
유곡리(維谷里) 이름을 따서 해곡리(海谷里)로 정하고, 담양군 창평면에 넣었다.
*담양군의 각 마을들
·가곡(柯谷) `월산면 용흥리
용흥리에 있는 마을. 나무가 많어 이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 온다.
·가남정이 `남면 가암리
법정리명의 남면 '가암리' 참조
·가라곡(加羅谷, 가라실) `금성면 봉황리
봉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가라실'은 '갈'과 '실'이 합쳐진 이름으로 '물가의 마을'의 뜻일 가능성이 있다.
·가마골(가마실, 부곡.釜谷) `창평면 용수리 `금성면 금성리
산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형국이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 오는 경우가 많지만, '가마골(가매골)', '가마실(가매실)' 등
은 '큼(大)'의 뜻을 가진 '감'에 '마을'의 뜻인 '실'이나 '골'이 합쳐져 된 경우가 많다. '큰 마을' 또는 '신성한 마을'의 뜻.
·가산(佳山) `담양읍 가산리
법정리명의 '가산리' 참조.
·가암(柯岩) `남면 가암리
법정리명의 '가암리' 참조.
·가암리(佳岩里) `창평면 해곡리
월구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
·가재굴(가재동.可在洞) `대덕면 용대리
법정리명의 '용대리' 참조. 이런 이름은 내에 가재가 많아서 붙었다고 전해 오는 경우가 많지만, '가장자리 마을'의 뜻으로 붙여
진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가자굴', '가재말' 들이 대개 같은 뜻의 이름들이다.
·가흥골 `대덕면 비차리
'가운데' 마을'의 뜻인 '가운골'이 변한 이름인 듯하다. 차동 남쪽에 있는 마을.
·간징이 `월산면 중월리
'~징이'는 '마을'의 뜻을 갖는다. '가운데 마을'의 뜻일 가능성이 있다.
·갈밭(갈전.葛田) `대전면 월본리 `대덕면 갈전리
'갈대가 많은 밭'의 뜻일 수 있고, '밭이 있는 물가의 마을'의 뜻일 가능성도 있다. '갈'은 '갈대'의 준말로 많이 쓰이며, 또한
'물'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
·갈전(葛田, 갈밭) `대덕면 갈전리
→갈밭.
·감남골(시목.枾木) `금성면 덕성리
덕성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감나무가 많았다고 전해 온다. '감나무'라는 말이 줄어 '감남'이 되었다.
·감바우(현암.玄岩) `창평면 광덕리
광덕리에 있는 마을. 검은 바위가 많다.
·갑향(甲鄕) `대전면 갑향리
법정리명의 '갑향리' 참조.
·갓점(용전.龍田, 월동.月洞) `창평면 용수리
웃소내 동남쪽에 있는 마을. 갓을 만드는 점이 있었다.
·강곡(강동.江洞) `수북면 오정리
원오정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양류도강형(楊柳倒江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강동(江洞, 강골) `수북면 오정리
→강골.
·강림(江林) `수북면 풍수리
신기 서쪽에 있는 마을.
·강변말 `남면 지곡리
지실 남쪽에 있는 마을.
·강의(講義) `대전면 강의리
법정리명의 '강의리' 참조.
·강쟁(江爭, 강쟁리) `담양읍 강쟁리 `대전면 강의리
법정리명의 '강쟁리' 참조.
·강정(江亭, 강정자.江亭子) `무정면 동강리 `고서면 교산리
옛날에 강정자(江亭子)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강촌(江村) `창평면 오강리
오산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갈마음수(渴馬飮水) 형국이므로 강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다.
·개동(開東, 개동리) `수북면 개동리
→개동리.
·개배기 개비기(포백.浦 , 개배기) `수북면 대방리
송징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바닷가로 배를 맸다고 전해 오고 있다.
·개선동(開仙洞. 선동.仙洞) `남면 학선리
밭지실 서쪽에 있는 마을. 개선사 터였는데 석등이 있다. 보물 111호.
·객사(客舍) `담양읍 객사리
법정리명의 '객사리' 참조.
·거북뫼(구산.龜山) `남면 구산리
→구산(龜山). 산이 거북이 엎드린 모습이다.
·건정실(용산.龍山) `월산면 신계리
신계 북쪽에 있는 마을.
·검단(檢丹) `고서면 성월리
월전 서북쪽에 있는 마을.
·견양동(牽羊洞) `용면 용치리 사거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경동(京洞) `창평면 유천리
아랫소내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이 마을 사람들이 서울을 자주 왕래했다고 전해 온다.
·경산(경호.鯨湖) `수북면 두정리
두동 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고래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경상굴(경상동.京相洞) `남면 경상리
법정리명의 '경상리' 참조.
·경호(경호.鯨湖. 경산) `수북면 두정리
→경산
·계곡(桂谷) `대전면 갑향리
사성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계동(桂洞) `담양읍 오계리
오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계수나무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고가매(고가산.高佳山) `담양읍 가산리
법정리명의 '가산리' 참조.
·고내(고천.古川, 신양.新陽) `월산면 월평리
월평 남쪽에 새로 된 마을. '고내'는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의 뜻'인 '골내'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양지쪽이어서 '신양'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대실(고도실) `담양읍 삼만리
→고도실.
·고도실(고대실, 내동.內洞) `담양읍 삼만리
삼만 동남쪽에 있는 마을. 고대산 맞은편에 있는 골짜기, 마을이 깊숙이 위치해 있다.
·고리대(古里大) `수북면 고성리
궁암 동쪽에 있는 마을.
·고읍(古邑, 고읍리.古邑里. 구읍.舊邑) `고서면 고읍리
창평군 고현내면(古縣內面)의 지역이었던 곳으로 창평현(昌平縣)이 있어서 '옛날 고을'이란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다.
·고정리(古亭里, 높은쟁이) `무정면 평지리
→높은쟁이.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의 뜻이다. '쟁이'는 '마을'의 뜻.
·고지(高地, 토옥동) `남면 인암리
→토옥동.
·고천(古川, 고내) `월산면 월평리
→고내.
·곡정(曲丁, 곡징이) `봉산면 대추리
→곡징이.
·곡징이(곡정.曲丁, 구붕정) `봉산면 대추리
대추 서남쪽에 있는 마을. '골짜기 마을'의 뜻이다. '~징이'는 '~쟁이'와 함께 쓰이는 말로, 땅이름에선 '마을'의 뜻을 갖는다.
·관음촌(觀音村, 봉명동) `월산면 화방리
→봉명동.
·광덕(廣德, 머드실) `월산면 광암리
→머드실.
·광동(廣洞, 엉골) `담양읍 향교리
→엉골.
·광산(廣山, 들말) `고서면 성월리
→들말.
·괸돌(지석.支石) `남면 지곡리
바르뫼 동쪽에 있는 마을. 괸돌(지석)이 있어 이 이름이 붙었다.
·교방거리(敎坊거리)
법정리명의 '지침리' 참조
·교촌(校村) `고서면 교산리
법정리명의 '지침리' 참조. 하북산 서쪽에 있는 마을. 향교가 있다.
·구련(.龜蓮, 구연) `수북면 주평리
용구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구룡촌(九龍村) `남면 만월리
망월촌 서북쪽에 있던 마을. 6.25 사변 뒤 폐촌되었다.
·구름다리(운교.雲橋) `고서면 동운리
동운리에 있는 마을. '다리'를 대개는 '냇물이나 강을 건너기 위한 시설물'로만 알기 쉬우나, '들'의 옛말인 '달'이 변해 '다리'
가 되기도 한다. 이 이름은 '낮은 지역의 '들'일 가능성도 있다.
·구멍바우 `남면 가암리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는 마을이 있어서 이 이름이 붙었다. 법정리명의 '가암리' 참조.
·구미동(제월) `봉산면 제월리
→제월. '구미'는 대개 ``에서 '돌아가는 (산)머리 지역'의 뜻으로 많이 붙는다.
·구복리(狗伏里, 황등, 월암.月岩) `용면 월계리
월계 동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개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뒤에 황등골과 월암이 있다.
·구붕정(곡징이) `봉산면 대추리
→곡징이.
·구산(龜山, 곡징이) `남면 구산리
법정리명의 '구산리' 참조.
·구암(九岩, 아홉바우) `봉산면 기곡리
→아홉바우.
·구암리(九岩里) `용면 도림리
산성 동남쪽에 있던 마을. 8.15 해방 후 폐촌되었다.
·구암촌(龜岩村) `수북면 궁산리
원궁산 서쪽에 있는 마을. 귀바우가 있다.
·구연(龜淵, 구련) `수북면 주평리
→구련.
·구읍(舊邑) `고서면 고읍리
법정리명의 '고읍리' 참조.
·구장산역(舊長山驛) `고서면 원강리
원유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일제 때 장산역(長山驛)이 있었다.
·국굴(菊屈) `창평면 외동리
국굴에 있는 마을. 둘레에 국화가 많이 핀다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골짜기 마을'의 뜻인 '곳굴'일 가능성이 있다.
·군수동(郡守洞) `월산면 오성리
오성 남쪽에 있는 마을. 군수가 났다고 전해 온다.
·궁산(弓山) `수북면 궁산리
법정리명의 '궁산리' 참조.
·궁암(弓岩) `수북면 고성리
신월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금곡(金谷, 쇠골) `대전면 서옥리
→쇠골.
·금구동(金九洞) `수북면 황금리
황덕 서북쪽에 있는 마을.
·금단동(金丹洞) `고서면 금현리
노채 서남쪽에 있는 마을.
·금성(金城) `금성면 금성리
법정리명의 '금성리' 참조.
·금월(錦月) `담양읍 금월리
법정리명의 '금월리' 참조.
·기동(基洞, 텃골) `창평면 유곡리
→텃골.
·기린바우 `남면 인암리
법정리명의 '인암리' 참조. 기린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이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 온다.
·꽃밭정이(화전.花田, 화전정.花田亭) `창평면 용수리
가마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꽃징이 `수북면 고성리
신월 남쪽에 있는 마을. 매화낙지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나곡(羅谷) `대전면 병풍리
노은동 남쪽에 있는 마을.
·나리매(나산.羅山) `수북면 나산리
법정리명의 '나산리' 참조.
·나산(羅山, 나리매) `수북면 나산리
→나리매.
·낙천(樂天) `용면 용연리
부흥 남쪽에 있는 마을. 낙천봉(樂天峯) 아래가 된다.
·남계(南溪) `월산면 용암리
용금동 북쪽에 있는 마을. 남쪽으로 시냇물이 흐른다.
·남매 `수북면 남산리
법정리명의 '남산리' 참조. '낮은 뫼'의 뜻인 '낮뫼'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남바들(남전.南田) `수북면 대방리
송징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 바다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그보다는 '넓은 들'의 뜻인 '넘버들'이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 실제, ``에선 '버들'이 '벋은 들'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또, '바들'은 '밭이 있는 들'의 뜻인 '밭들'이 변한 이름으로
볼 수도 있다.
·남부(南部) `대전면 대치리
한재의 남쪽 마을.
·남산(南山) `담양읍 남산리 `수북면 남산리
법정리명의 '남산리' 참조.
·남전(南田, 남바들) `수북면 대방리
→남바들.
·내당(內堂) `무정면 오룡리
외당 안쪽에 있는 마을.
·내동(內洞) `담양읍 삼만리 `담양읍 백동리(서당골) `담양읍 삼만리(고도실) `금성면 봉서리(비내동) `대전면 병풍리 `월산면
오성리 `창평면 해곡리
대개 '안쪽의 마을'의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는다.
·내문(內門, 안문재) `대덕면 문학리
→안문재.
·내문치(內門峙, 안문재) `대덕면 문학리
→안문재.
·내보촌(內甫村, 방주간) `고서면 보촌리
→방주간.
·내천(內泉, 안새암골) `금성면 원천리
→안새암골.
·내촌(內村, 안마을) `남면 정곡리
→안마을. '안쪽의 마을'의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너더리 `금성면 봉서리
장항리 북쪽에 있는 마을. '너른 들'의 뜻인 '너덜(너들)'에서 나온 이름이다.
·넘은들(월산.越山) `수북면 풍수리
강림 동쪽에 있는 마을. 옛날 물이 넘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넓은 들'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네아우(사암.四岩)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네 개의 큰 바위가 있었다. '네바우'란 이름이어야 하나, '배고개'가 '배오개'로, '애고개'가 '애오개
'로 변하듯 자음이 약해져 나온 현상이다.
·노거리 `용면 두장리
서평 북쪽 길가에 있는 마을. 전에 노씨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퍼진 내'의 뜻인 '너걸(널걸)'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거리'는 '내'의 뜻을 지닌다.
·노랑골(장동.獐洞)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산이나 들이 넓게(늘어지게) 퍼져 나온 지역에 '널'을 뿌리로 하는 '너러', '너리', '노리', '느리'
``이 많이 붙는다. '노랑골'도 그런 유의 이름인 '너렁골'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노루목(노리목) `금성면 봉서리(노리목), `금성면 봉서리(장항리) `용면 용연리(부흥)
노루목처럼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이런 이름은 골짜기 안에서 좀 넓은 지역이거나 산 또는 늘어진 지역
에 많이 붙는다. '널목', '놀목', '날목', '놀메기', '늘메기' 등도 모두 같은 종류의 이름들이다. 용연리에 있던 '노리목'은 19
76년 담양호 준공으로 없어졌다.
·노은동(魯隱洞) `대전면 병풍리
내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노채(蘆菜) `고서면 금현리
운현 동남쪽에 있는 마을.
·노천동(盧川洞) `금성면 외추리
외추 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천안함로형(川雁含蘆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농암(籠岩) `월산면 월계리
복정 서쪽에 있는 마을.
·높은쟁이(고정리.高亭里) `무정면 평지리
평지 서북쪽에 있는 마을. 지대가 높다.
·누문동(樓門洞) `담양읍 천변리
천변 동쪽에 있는 마을. 누각의 문이 있어서 나온 이름이다.
·당고개(당현.堂峴) `무정면 정석리
한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 '당고개'라는 고개의 밑이다.
·당곡(唐谷, 당골) `창평면 오강리
→당골.
·당골(당곡.堂谷) `창평면 오강리
양산 북쪽에 있는 마을. 무당이 살았다.
·당산거리 `봉산면 삼지리
뒷말 앞에 있는 마을. 당산나무가 있다.
·당촌(堂村, 서당골) `대덕면 금산리
시목리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서당이 있었다.
·당현(堂峴, 당고개) `무정면 정석리
→당고개.
·대각골 `수북면 대방리
대각동에 있는 마을.
·대곡(帶谷) `금성면 대곡리
법정리명의 '대곡리' 참조.
·대덕(大德) `대덕면 매산리
사창리 서남쪽에 있는 마을.
·대례촌(大禮村) `월산면 월산리
월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
·대명동(大明洞) `고서면 산덕리
상덕 동남쪽에 있는 마을.
·대방(大舫) `수북면 대방리
법정리명의 '대방리' 참조.
·대밭골(대판리.大阪里) `금성면 봉서리
장항리 동쪽에 있는 마을.
·대산(大山) `대덕면 장산리
노랑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산막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대성(大成) `금성면 대성리
법정리명의 '대성리' 참조.
·대성(大成) `대전면 행성리
행정 남쪽에 있는 마을.
·대실 `금성면 대곡리
법정리명의 '대곡리' 참조.
·대아리(大雅里) `대전면 평장리
평장동 동북쪽, 깊은 산 속에 있는 마을.
·대조동(大鳥洞, 한새울) `대덕면 매산리
→한새울. 한>대(大), 새>조(鳥), 울>동(洞).
·대추징이(대추.大秋) `봉산면 대추리
법정리명의 '대추리' 참조.
·대치(大峙) `대전면 대치리
법정리명의 '대치리' 참조.
·대판리(大阪里, 대팥골) `금성면 봉서리
→대팥골.
·대팥골(대판리.大阪里) `금성면 봉서리
'대밭골'이 '대팥골'로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대흥(大興, 상암.上岩) `용면 용연리
분통 서남쪽에 있는 마을.
·대흥(大興) `수북면 대흥리
대흥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덕곡(德谷) `무정면 덕곡리
법정리명의 '덕곡리' 참조.
·덕성(德成) `금성면 덕성리
법정리명의 '덕성리' 참조.
·덕실 `무정면 덕곡리
법정리명의 '덕곡리' 참조.
·덕양촌(德陽村, 덕촌) `고서면 고읍리
→덕촌.
·덕진말(덕진.德津) `대전면 행성리
행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
·덕촌(德村, 덕양촌.德陽村) `고서면 고읍리
신양 동쪽에 있는 마을.
·도개동(道開洞) `월산면 월산리
동산 남쪽에 새로 된 마을.
·도고(都古, 도고징이) `봉산면 대추리
→도고징이.
·도고징이(도고.都古) `봉산면 대추리
곡정 서북쪽에 있는 마을. '~징이'는 다른 지방에서 '~정이' 또는 '~쟁이'에 해당한다. '마을'의 뜻을 갖는다.
·도동(道洞) `월산면 용흥리 `무정면 성도리
'산의 마을'의 뜻인 '도골'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도리(道里, 도동.道洞) `무정면 성도리
→무정면 성도리의 '도동'.
·도림(道林) `용면 도림리
법정리명의 '도림리' 참조.
·돌고개 `금성면 석현리
법정리명의 '석현리' 참조. '돌이 많은 고개'의 뜻을 갖는다.
·동고지(東古支) `무정면 동강리
강정 동쪽에 있는 마을. 동고지’란 사람이 이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원래 '도는 목(길목)'의 뜻인 '돈곶'에서 나
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동다(東茶) `담양읍 삼다리
외다 동쪽에 있는 마을.
·동매 `수북면 황금리
쌍구레미 남쪽에 있는 마을. '돌의 산'의 뜻인 '독매(독뫼)'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동부(東部) `대전면 대치리
한재의 동쪽 마을.
·동산(東山) `월산면 월산리 `무정면 동산리 `수북면 궁산리
조그만 동산이 있을 때 많이 붙는 이름이다.
·동산촌(東山村) `고서면 동운리
아산 동쪽에 있는 마을.
·동상골(동상동.東床洞) `수북면 풍수리
월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
·동옥산(東玉山, 맹겟등) `대전면 태목리
→맹겟등.
·동정자(東亭子) `담양읍 남산리
남촌 북쪽에 있는 마을. 담양읍의 동쪽.
·동지모팅이 `봉산면 유산리
버들뫼 동쪽, 모롱이에 있는 마을.
·동짝 `담양읍 강쟁리
강쟁 동쪽에 있는 마을.
·두곡(斗谷) `담양읍 강쟁리
신성 서쪽에 있는 마을.
·두동(斗洞, 말울) `수북면 두정리
→말울.
·두주막거리 `월산면 화방리
봉명동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주막이 둘 있었다.
·두지동(斗支洞) `용면 두장리
두장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지형이 두지(뒤주) 같다고 전해 온다.
·뒷고삿 `봉산면 삼지리
삼지 뒤에 있는 마을. '고삿'은 '고샅'으로 '골짜기 사이'의 뜻을 갖는다.
·뒷들 `담양읍 강쟁리
서편 동쪽에 있는 마을. 강쟁의 뒤편.
·뒷말 `담양읍 남산리 `봉산면 삼지리
'뒤에 있는 마을'의 뜻이다.
·뒷매(後山) `고서면 산덕리
언동 남쪽에 있는 마을. 뒷매 밑.
·들광산 `고서면 성월리
광산 동쪽, 들에 있는 마을.
·들말(광산.廣山, 평촌.坪村) `고서면 성월리
성산 서남쪽 들 가운데에 있는 마을로, 광성산 밑이다.
·등갈리(藤葛里) `대덕면 매산리
사창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등룡동(登龍洞) `무정면 오례리
오례원 동남쪽에 있는 마을. 전에 용이 등천했다고 전해 온다.
·똥매(뚝매, 용주리.龍珠里) `담양읍 반룡리 `금성면 외추리
구터 서남쪽에 있는 마을 을. 똥매산 밑. '똥매'는 '돌의 산'의 뜻인 '독매'가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뚝매(똥매) `담양읍 반룡리
→똥매.
·마각재 `금성면 외추리
마각재 밑에 있는 마을.
·마산(馬山) `월산면 화방리 `봉산면 유산리
'말 모양의 산'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단순히 '재'의 의미를 지닌 경우가 많다. '마'도 산이고, '산'도 산이기 때문이다.
·마항(馬項) `봉산면 제월리
서봉 서남쪽에 있는 마을
·막적골(언동, 연동.蓮洞) `고서면 산덕리
상덕 동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연꽃처럼 생겼다기도 하고, 전에 목수가 막을 짓고 살았다고 전해 온다.
·만월(滿月) `남면 만월리
법정리명의 '만월리' 참조.
·만화동(滿花洞) `수북면 대흥리
대흥 서쪽에 있는 마을. 뒷 등성이에 꽃나무가 많아 항상 꽃이 피어 있다.
·말울(두동.斗洞) `수북면 두정리
회룡 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말(斗)처럼 생겼다고 하나, '산 마을'의 뜻일 가능성이 있다. '울'은 '골짜기 마을'의 뜻으로 많
이 붙는 것으로, '골'과 거의 같은 뜻을 갖는다.
·망월(望月) `남면 만월리
법정리명의 '만월리' 참조.
·망월촌(望月村) `남면 만월리
쌍룡촌 서쪽에 있는 산.
·매곡(梅谷) `금성면 외추리
외추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청계공이 시묘를 살아 나라에서 '어매(御梅)'란 이름을 내렸으므로 매곡이라 한다고 전해 온다.
·매월(梅月) `용면 통천리
통시암 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맹겟등(동옥산.東玉山) `대전면 태목리
옥산의 동쪽이며, 시목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나무가 없는 산등성이'의 뜻인 '민개등'의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머구쟁이(梧亭) `담양읍 삼만리
삼만 서쪽에 있는 마을. 큰 오동나무가 있었다.
·머구정이 `수북면 오정리
법정리명의 '오정리' 참조.
·머드실(광덕.廣德) `월산면 광암리
네아우 남쪽에 있는 마을. '먼 들에 있는 마을'의 뜻인 '먼들실'이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면앙정 `봉산면 제월리
면앙정 밑에 있는 마을.
·명양(鳴陽 명양촌(鳴陽村, 신양) `고서면 고읍리
→신양.
·모갈리(목알리, 주평.舟坪) `고서면 주산리
마을에 모과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모갈'이라 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어느 목(중요한 장소)의 아래에 있다는
뜻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주평.
·못굴 `봉산면 연동리
법정리명의 '연동리' 참조.
·묏광산 `고서면 성월리
광산 서쪽, 뫼(山) 밑에 있는 마을.
·무동(舞童, 무동촌.舞童村) `남면 무동리
법정리명의 '무동리' 참조.
·무월리(撫月里. 뭉월리) `대덕면 금산리
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문암리(文岩里) `금성면 금성리
평신기 동북쪽에 있는 마을. 입구에 한자로 '문(文)'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다.
·뭉월리(무월리) `대덕면 금산리
→무월리.
·미산(尾山) `수북면 풍수리
미산 밑에 있는 마을.
·바금머리 `수북면 정중리
삼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 전에 주막이 있었다.
·바르뫼(발산.鉢山) `남면 지곡리
지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발산 아래에 있다. '발', '바리'는 '벌'의 변한 이름인 듯하다. 경기도 화성군의 '발안'도 '벌의 안쪽
'의 뜻인 '벌안'과 같은 이름이다. '바르뫼'는 '벌 가의 산'의 뜻을 지닌 듯하다.
·바지(쇠꼬들) `수북면 남산리
→쇠꼬들.
·바징이(소지방.所支坊) `대덕면 용대리
용대 북쪽에 있는 마을.
·박곡(朴谷.泊谷, 박실) `용면 통천리
→박실.
·박산(朴山) `월산면 신계리
건정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박씨가 처음 이루었다고 전해 온다.
·박실(박곡.朴谷) `용면 통천리
매월 북쪽에 있는 마을. 맨 먼저 박씨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그러나, 그런 뜻의 이름이라기보다는 '바깥쪽의 마을'의 뜻인 '밧실
(밭실)'이 변한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밖지실(밭지실, 외지곡.外芝谷) `남면 학선리
→밭지실
·반룡(盤龍) `담양읍 반룡리 `남면 연천리
법정리명의 '반룡리' 참조.
·반석(盤石) `봉산면 기곡리
새터 서쪽에 있는 마을.
·반월리(半月里) `남면 지곡리
연방죽 동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
·발산(鉢山, 바르뫼) `남면 지곡리
→바르뫼.
·방애실 `담양읍 반룡리
반룡리에 있는 마을. '방아 마을'의 뜻이다.
·방축(防築) `봉산면 기곡리
연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
·밭문재(외문.外門, 외문치.外門峙) `대덕면 문학리
문재 바깥쪽에 있는 마을. 여기서, '밭'은 '논밭'의 '밭'이 아니라 '바깥'의 뜻이다. '밖'의 옛말은 '밧' 또는 '밭'이다.
·밭새암굴(밭시암골) `금성면 원천리
외천.外泉) 원천 바깥쪽에 있는 마을. '밭'은 '바깥'의 뜻을 갖는다. '시암'은 '샘'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밭지실(외지곡.外芝谷) `남면 학선리
학선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백동(柏洞) `담양읍 백동리
법정리명의 '백동리' 참조.
·백정(栢亭, 잣정리) `고서면 분향리
→잣정리.
·뱃들(주평.舟坪, 모갈리) `고서면 주산리 `수북면 주평리
→주평. 땅모양이 배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밭이 있는 들판'의 뜻인 '밧들(밭들)'이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고서면
주산리의 '주평'은 주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황룡부주형(黃龍浮舟形)의 지형이어서 '주평(舟坪)'이란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 오
기도 한다. →모갈리(고서면 주산리)
·버들뫼 `봉산면 유산리
법정리명의 '유산리' 참조. '유산리'는 '버들뫼'의 뜻옮김이다. 버드나무가 많아 이 이름이 나왔을지도 모르나, '벋은(늘어진) 뫼
'의 뜻에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버실(蜂谷) `금성면 대성리
대성 서남쪽에 있는 마을. 앞산이 벌통 같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벌의 마을'의 뜻인 '벌실'이 변한 이름인 듯하다.
·벌매(벌뫼. 봉산.蜂山) `담양읍 담주리
만성 동쪽에 있는 마을. 벌매 밑에 있다. '벌매'는 '벌 가의 산'의 뜻을 지닌 듯하다.
·별뫼(성산.星山) `남면 지곡리
지실 서쪽에 있는 마을. 벼랑이 있다. '별'은 '벼랑(비탈)'의 뜻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병문거리 `담양읍 천변리
소전거리 동쪽, 현 교육청 입구에 있는 마을.
·병풍(屛風) `대전면 병풍리
법정리명의 '병풍리' 참조.
·보촌(洑村) `고서면 보촌리
법정리명의 '보촌리' 참조.
·복룡(伏龍, 복리암.伏里岩) `용면 월계리
월계 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 모양이 엎드린 용처럼 생겨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복리암(伏里岩, 복룡.伏龍) `용면 월계리
→복룡.
·복정(福井) `월산면 월계리
월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복샘이 있다.
·봇몰(보촌.洑村) `고서면 보촌리
보(洑)가 있어서 나온 이름이다. '보의 마을'이란 뜻의 '보말(봇말)'이 되는데, '마을'의 뜻인 '말'은 전라도에서는 대개 '몰'이
되므로, 이 곳의 마을 이름은 '봇몰'이 되었다. 법정리명의 '보촌리' 참조.
·봉곡(蜂谷, 버실) `금성면 대성리
→버실.
·봉명동(鳳鳴洞, 관음촌) `월산면 화방리
화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뒷산에 관음사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봉산(蜂山, 벌매) `담양읍 담주리
→벌매.
·봉서(鳳棲, 봉서리.鳳棲里) `금성면 봉서리 `무정면 영천리
법정리명의 '봉서리' 참조. 죽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봉이 깃드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봉안(鳳安) `무정면 봉안리
법정리명의 '봉안리' 참조.
·봉암촌(鳳岩村) `남면 경상리
경상굴 북쪽에 있는 마을.
·봉학(부업정) `봉산면 와우리
와우 동북쪽에 있는 마을.
·봉황(鳳凰, 봉황동.鳳凰洞) `금성면 봉황리
법정리명의 ''봉황리 참조.
·부곡(釜谷, 가마실) `금성면 금성리
→가마실.
·부동(釜洞, 가마골) `창평면 용수리
→가마골.
·부동촌(富洞村) `창평면 해곡리
성덕 북쪽에 있는 마을.
·부안동(鳧安洞) `무정면 봉안리
술기 위에 있는 마을.
·부업정(봉학) `봉산면 와우리
→봉학.
·부흥(復興, 봉학, 노루목) `용면 용연리
→노루목.
·북부(北部, 소리촌) `대전면 대치리
→소리촌.
·분토동(粉吐洞) `고서면 원강리
원유동 서쪽에 있는 마을. 옥녀봉의 옥녀가 단장하는 분이라고 전해 온다.
·분통(粉桶) `용면 용연리
용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옥녀가 세수한 다음 분 바르는 곳이라고 전해 온다.
·비나굴 `대덕면 비차리
법정리명의 '비차리' 참조.
·비내동(飛乃洞. 내동.乃洞) `금성면 봉서리
장항리 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비아(飛鴉) `고서면 동운리
아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까마귀가 날아가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비앗등(비오등.飛烏嶝) `고서면 교산리
장성말 서남쪽에 있는 마을. '비탈진 등성이'의 뜻을 갖는다.
·비오등(飛烏嶝, 비앗등) `고서면 교산리
→비앗등.
·비차동(飛 洞) `대덕면 비차리
법정리명의 '비차리' 참조.
·사거리(四巨里) `용면 용치리
용치리에 있는 마을.
·사당굴(상산) `창평면 일산리
→상산.
·사동(巳洞) `대전면 중옥리
사줏등 밑에 있는 마을.
·사미정(四美亭) `담양읍 양각리
술매 남서쪽에 있는 마을. 선주민(先住民) 윤씨가 사미정을 지어 시를 읊고 지냈다고 전해 온다.
·사봉실(士峯室, 사봉곡) `남면 정곡리
새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 마을 주위에 향로봉, 건망봉, 독봉, 상봉의 4개의 산이 있다.
·사성동(四聲洞, 사성리.四聲里,) `대전면 갑향리
갑향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사암(四岩, 네아우) `월산면 광암리
→네아우.
·사장가(사장거리) `창평면 장화리
→사장거리.
·사장거리(사장가, 장터) `창평면 장화리
창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사창골(사창동.社倉洞) `수북면 오정리
삼인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의 사창이 있었다.
·사창리(社倉里) `대덕면 매산리
매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산성리(山城里, 신정리) `용면 도림리
담양군 용면(용천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 성내리, 신정리를 병합하여 산성리라 하였다가, 1976년
담양호가 완성됨에 따라 수몰 지구가 되어 도림리에 편입되었다.
·성내리(城內里) `용면 도림리
구암리 동북쪽에 있던 마을. 8.15 해방 후 폐촌이 되었다.
·산음동(山陰洞) `남면 연천리
새터 남쪽에 있는 마을. 전 신민(신민)이 고려 말에 은거하였다.
·산이내(산이천.山伊川) `금성면 대곡리
소누실 북쪽에 있는 마을. '산의 내(川)'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산이천(山伊川, 산이내) `금성면 대곡리
→산이내.
·산정(山亭) `월산면 광암리
광덕 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산정리(山亭里, 산직촌) `대덕면 운산리
저심리 북쪽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산직촌(산정리.山亭里) `대덕면 운산리
→산정리.
·삼거리(三巨里) `남면 풍암리(연풍정), `담양읍 백동리 `수북면 정중리 `용면 용연리(새터) `고서면 보촌리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진 곳에 잘 붙는 ``이다. 담양읍 백동 남쪽에 있는 '삼거리'는 무정면과 광주, 담양읍으로 가는 세 갈래의 길
이 나 있어 나온 이름이다. 또, 고서면 보촌리 내보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의 '삼거리'는 담양, 창평, 광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 남면 풍암리(연충정)의 것은 '삼거리'보다는 '세거리'로 많이 불린다.
·삼도촌(三島村) `봉산면 삼지리
법정리명의 '삼지리' 참조.
·삼땔리(삼태) `용면 쌍태리
→삼태.
·삼만(三萬) `담양읍 삼만리
법정리명의 '삼만리' 참조.
·삼무절(삼만) `담양읍 삼만리
→삼만.
·삼산동(봉황동.鳳凰洞) `대전면 태목리
신양 동쪽에 있는 마을. 삼봉밑이 되어 나온 이름으로, '봉명조양(鳳鳴朝陽)'이란 구절에서 땄다.
·삼암(三岩, 태암리) `수북면 오정리
→태암리.
·삼인동(三人洞) `봉산면 삼지리
삼인산 밑에 있는 마을.
·삼지(三支, 삼지리) `창평면 삼천리
→삼지리.
·삼지내(삼지천.三支川, 삼천.三川) `창평면 삼천리
법정리명의 '삼천리' 참조.
·삼태(三台, 삼땔리) `용면 쌍태리
쌍태 남쪽에 있는 마을.
·상갈전(上葛田, 웃갈밭) `대덕면 갈전리
→웃갈밭.
·상덕(上德) `봉산면 기곡리
능안재 북쪽에 있는 마을.
·상덕(上德) `고서면 산덕리
산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상산(上山. 사당굴) `창평면 일산리
일산 뒤쪽에 있는 마을. 사당이 있다.
·상소천(上素川, 웃소내) `창평면 용수리
→웃소내.
·상신기(上新基, 장가동.長佳洞) `금성면 봉황리
죽림 동쪽에 새로 된 마을. 지대가 높다.
·상암(上岩, 상운암.上雲岩, 대흥) `용면 용연리
→대흥. 운암 위에 있는 마을.
·상월(上月, 쌍태) `용면 쌍태리
→쌍태.
·상촌(上村) `남면 만월리
구룡촌 서쪽에 있는 마을. 6.25 사변 때 폐동되었다.
·새고개(조현.鳥峴) `창평면 광덕리
감바우 남쪽에 있는 마을. 새가 나는 땅모양이라 해서 나온 이름이라 전해 오고도 있으나, '사이 고개'의 의미를 지닌 듯하다.
·새말(신촌.新村, 성신리.聲新里) `대덕면 성곡리
'새로운 마을'의 뜻을 갖는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새몰'로 불리는 곳이 많다. '새터(새터말)'과 비슷한 뜻의 이다.
·새암물(학동.鶴洞) `봉산면 신학리
신학 동쪽에 있는 마을. 샘이 있다.
·새태(새터, 새티) `고서면 금현리(작은새) `대전면 갑향리(제주성산) `창평면 유천리 `용면 두장리 `수북면 나산리와 황금리 `
대덕면 운산리
→새터. '새티'라는 이름도 '새터'라는 이름과 같다. 즉 '새터'를 조금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모음조화(母音調和). 특히, 전라도
지방에 '새태'라고 하는 마을들이 아주 많다.
·새터(새티, 새태) `고서면 동운리-성월리 `금성면 금성리(가마실)-원천리 `남면 연천리-정곡리-인암리 `담양읍 백동리-향교리
`대덕면 장산리 `대전면 병풍리-월본리 `무정면 동산리 `봉산면 삼지리-양지리-무동리 `수북면 풍수리-개동리 `용면 용연리 `창평
면 용수리-의항리
이러한 이름의 마을 이름은 전국에 무척 많다. 대개 '새로 이루어진 마을'의 뜻으로 붙여진 것이 많으며, 더러는 '사이의 마을'의
뜻으로 들어간 것도 있다. 산지보다는 평지에 많고, 마을의 규모가 대개 큰 편이다. 한자로는 '신기(新基)'나 '신대(新垈)'로 옮
겨간 것이 많고, 더러는 '신촌(新村)' '신흥(新興)'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담양군의 경우는 거의 '신기(新基)'이다. '기(基)'는
``에서 대개 '터'의 뜻으로 쓰인다. '새터'라는 이름이 너무 많은 탓에 다른 곳과의 구분을 위해 '새터' 마을들 중에는 딴 이름을
가진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용면 용연리의 '새터'는 '삼거리' 또는 '용평리'라는 이름을 달리 갖고 있고, 봉산면 양지리의 '새터
'는 '월전'이라는 딴 이름도 갖고 있다.
·새터몰 `금성면 봉서리
노리목 북쪽에 새로 된 마을. 이 이름은 '새터마을'의 뜻이다. '마을'은 전라도 사투리로 '몰' 또는 '모실'이다. 즉, '마을'이 '
말'로 옮겨가고, 이것이 다시 '몰'로 옮겨간 것이다. 전라도 지방의 말들 중에는 'ㅗ(오)' 발음이 들어간 것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파리'를 '포리'로, '팥죽'을 '퐈죽'으로, '나물'을 '노물'로 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다른 지방에서의 '새터말'은 이 지방
에서는 '새터몰'이 되고 있다.
·생말(회룡동.回龍洞) `담양읍 가산리
가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좋아 용이 모인다고 전해 온다. '생말'은 '사이의 마을'의 뜻인 '샛말'이 '샘말'로 되었다가 변
한 이름으로 보인다.
·서다(西茶. 안창이) `담양읍 삼다리
외다 서쪽에 있는 마을. 골짜기 깊숙이 있다.
·서당골(당촌.堂村) `대덕면 금산리
→당촌.
·서당골(서당동, 서당골) `수북면 주평리
용구동 서쪽에 있는 마을. 서당이 있었다.
·서당몰 `대전면 서옥리
법정리명의 '서옥리' 참조.
·서변(西邊. 서편.西便) `담양읍 천변리
천변 북쪽에 있는 마을. 옛 동헌의 서쪽 가에 있었다.
·서봉(棲鳳) `봉산면 제월리
제월 서남쪽에 있는 마을
·서부(西部) `대전면 대치리
한재의 서쪽 마을.
·서옥산(西玉山) `대전면 서옥리
법정리명의 '서옥리' 참조.
·서우내 `담양읍 향교리
향교 북쪽에 있는 마을.
·서정(西亭) `무정면 성도리
중리 남쪽에 있는 마을. 서쪽에 정자가 있었다.
·서편(西便) `담양읍 강쟁리
강쟁 서쪽에 있는 마을.
·서평(西坪) `용면 두장리
장찬리 서쪽에 있는 마을.
·서흥(瑞興) `무정면 서흥리
법정리명의 '서흥리' 참조.
·석현(石峴) `금성면 석현리
법정리명의 '석현리' 참조.
·선계(仙界) `담양읍 삼만리
삼만 남쪽에 있는 마을.
·선돌 `대덕면 입석리
법정리명의 '입석리' 참조. '서 있는 돌'의 뜻을 갖는 ``이다. 한자로는 대개 '입석(立石)'이 되는데, 전국에 비교적 많은 ``이다
.
·선동(仙洞, 개선동.開仙洞) `남면 학선리
→개선동.
·성내리(城內里) `용면 도림리
구암리 동북쪽에 있던 마을. 8.15 해방 후 폐촌이 되었다.
·성덕(聖德, 쑥다리) `창평면 해곡리
→쑥다리.
·성덕(成德) `무정면 성도리
성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성매(越城山) `수북면 고성리
고리대 서남쪽에 있는 마을.
·성매 `대전면 성산리
법정리명의 '성산리' 참조.
·성산(星山, 별뫼) `남면 지곡리
→별뫼.
·성산(聲山, 소리매) `고서면 성월리
→소리매.
·성산(城山.成山) `대전면 성산리
법정리명의 '성산리' 참조.
·성신리(聲新里, 새말) `대덕면 성곡리
→새말.
·세거리(연풍정) `남면 풍암리
→연풍정.
·소년촌(少年村, 소천치.小天峙) `용면 용연리
용평 서쪽에 있는 마을. 앞에 소년바우가 있다.
·소누실(손곡.巽谷) `금성면 대곡리
대곡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전해 오고 있으나, 그보다는 '소루실'의 변한 이름이 아닌가 한다. '소
루실'은 '솔실', 즉 '작은 마을'의 뜻을 갖는다.
·소두말(소두촌.梳頭村) `대전면 갑향리
계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 소두산 밑.
·소두촌(梳頭村, 소두말) `대전면 갑향리
→소두말.
·소리매(성산.聲山) `고서면 성월리
월전 동북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기러기를 노리는 수리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그보다는 '작은 산'의 뜻인 '솔뫼'의
변한 이름일 수 있다. '솔'은 ``에서 '작음'의 뜻으로 옮겨간 것이 많다. 즉, '솔섬'은 '작은 섬', '솔고개'는 '작은 고개', '솔
말'은 '작은 마을'의 뜻인 경우가 많다.
·소리촌(효례촌.孝禮村, 북부.北部) `대전면 대치리
한재의 북쪽 마을. 옛날 효(孝)와 예(禮)를 겸비한 덕망 높은 선비가 있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은 마을'의 뜻에
서 나온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소산(小山) `대덕면 장산리
대산 동쪽에 있는 마을. 작은 산막이 있었다.
·소지방(所之坊, 바징이) `대덕면 용대리
→바징이.
·소천치(小天峙, 소년촌) `용면 용연리
→소년촌.
·속골 `남면 정곡리
법정리명의 '정곡리' 참조. '속골'은 '안 마을'의 뜻인데, 이것이 '솥골'과 발음이 거의 같으므로 한자로 '정곡(鼎谷)'으로 옮겨
간 듯하다.
·손곡(巽谷, 소누실) `금성면 대곡리
→소누실.
·송산(松山, 아홉바우) `봉산면 기곡리
→아홉바우.
·송산(松山) `대덕면 운산리
저심 서쪽에 있는 마을. 소나무가 많았다.
·송정(松亭, 송징이) `수북면 대방리 `월산면 화방리
정자가 있거나 있었던 마을에 이런 이름이 붙는다. 더러는 '솔징이'라고 하는 곳도 있다.
·쇠골(금곡.金谷) `대전면 서옥리
신촌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금을 캤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이런 이름들 중에는 '상의 마을'의 뜻인 '새골'이 옮겨간 것이 아주
많다. 여기서도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
·쇠꼬들(바지, 새텃골) `수북면 남산리
남산 서남쪽에 새로 된 마을. 지형이 쇠코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사이의 들'이란 뜻으로 붙여진 '새곶들'이 변한 이
름으로 보인다. '바지'는 '벌이 있는 곳'의 뜻이 아닌가 한다. 발(벌)+지>발지>바지
·수곡(水谷) `창평면 용수리 `대덕면 용대리
물이 많이 흐른 곳에 많이 붙는 이름이다. 용수리의 가마골 서쪽에 있는 마을인 '수곡'은 당나무재의 물과 월봉산 계곡의 물이 마
을 앞으로 흘러 나온 이름이고, 용대리의 청운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 '수곡' 역시 마을에 물이 흐른다.
·수구촌(守口村) `남면 무동리
무동촌 동북쪽에 있는 마을.
·수문동(守門洞) `무정면 봉안리
술기 동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고을이 있을 때 성문이 있어 항상 문을 지켰다고 전해 온다.
·술기(술지.述只) `무정면 봉안리
봉안 동쪽에 있는 마을. 신라 때 김 술지 장군이 났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산 마을'의 뜻인 '술지'가 아닌가 한다. '술'이나 '
수리'는 '산' 또는'산 머리'이 옛말이다.
·숲정이 `용면 추성리
추성 서남쪽에 있는 마을. 숲이 있다.
·시목(枾木, 감남골) `금성면 덕성리
→감남골.
·시목(枾木, 시목리.枾木里) `대전면 태목리 `대덕면 금산리
감나무가 있거나 있었던 곳에 이런 이름이 붙는다. 우리말로는 '감나무골', '감남골', '감남기골', '감골' 등으로 불린다.
·시문기(市門基, 장문터) `남면 정곡리
→장문터.
·시산(匙山, 술매) `담양읍 양각리
→술매.
·식기촌 `남면 만월리
망월봉 서쪽에 있는 마을.
·신계(新溪) `월산면 신계리
법정리명의 '신계리' 참조.
·신기(新基, 새터) `남면 연천리 `남면 정곡리 `담양읍 백동리 `수북면 개동리 `수북면 풍수리 `창평면 용수리 `창평면 의항리
→새터. '신기(新基)'는 '새터' 또는 '새터말(새터몰)', '새티'의 한자식 표기이다.
·신룡(新龍, 실룡) `대전면 응룡리
응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약 50년 전에 새로 되었다.
·신북동(新北洞) `수북면 고성리
고리대 동남쪽에 있는 마을.
·신성(新聖, 창고등) `담양읍 강쟁리
→창고등.
·신안동(新安洞) `무정면 안평리
안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신양(新陽, 명양, 명양촌) `고서면 고읍리
덕촌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봉 형국이다.
·신양(新陽, 고내) `월산면 월평리
→고내.
·신월(新月. 신월리.新月里) `수북면 고성리
고리대 서북쪽에 새로 된 마을.
·신정리(新正里, 산성리) `용면 도림리
→산성리. 법정리명의 '도림리'.
·신촌(新村, 전재민촌) `월산면 화방리
송정 서쪽에 새로 된 마을. 6.25 사변 후 전재민을 수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신촌(新村) `담양읍 반룡리 `대덕면 성곡리 `대전면 서옥리
새로 된 마을에 이런 이름이 붙는다. 대개 '새말'이란 토박이 ``을 갖고 있다. 담양읍 반룡리의 '신촌'은 '구터'라고 불리고 있다
,
·신평(新坪) `월산면 월평리
월평 서쪽에 새로 된 마을.
·신평(택리) `봉산면 와우리
와우 동쪽에 있는 마을.
·신학(新鶴) `봉산면 신학리
신학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신흥(新興, 와매) `용면 추성리 `창평면 광덕리 `봉산면 삼지리
→와매. 추성리의 '신흥'은 '새고개'라고도 불린다. 삼지리의 '신흥'은 '새터'라는 토박이 ``을 갖고 있다.
·실룡(신룡) `대전면 응룡리
→신룡.
·심곡(深谷, 지프실) `담양읍 학동리
→지프실.
·심방골(심방곡.尋舫谷) `수북면 대방리
송징이 남쪽에 있는 마을.
·쌍룡촌(雙龍村) `남면 만월리
망월촌 동쪽에 있는 마을. 앞에 있는 쌍바우가 용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쌍태(雙台, 상월) `용면 쌍태리
→상월.
·쑥다리(성덕.聖德, 애교.艾橋) `창평면 해곡리
내동 서쪽에 있는 마을. 쑥이 있어 나온 이름이기보다는 '숲다리'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숲다리'는 '숲의 다리'라기보다는 '숲
앞의 들'의 뜻이 아닌가 한다. '다리'는 '들'의 뜻으로 곧잘 쓰인다.
·아래갈밭(하갈전.下葛田) `대덕면 갈전리
갈밭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래턱 `담양읍 향교리
서우내 동쪽에 있는 마을.
·아랫삼지내 `창평면 삼천리
삼지내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랫소내(하소천.下素川) `창평면 유천리
유촌 동북쪽에 있는 마을. 소내 아래쪽. '소내'는 '작은 내'의 뜻인 '솔내'의 다른 이름이다.
·아릿삼인동 `수북면 오정리
삼인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
·아산(芽山) `고서면 동운리
운월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아홉바우(구암.九岩, 송산.松山) `봉산면 기곡리
연산 남쪽에 있는 마을. 뒤에 아홉 개의 바위가 있어 '아홉바우'이고, 소나무가 많아 '송산'이다.
·안고사태 `봉산면 삼지리
뒷말 안쪽에 있는 마을.
·안마을(내촌.內村) `남면 정곡리
평촌 서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안문재(내문.內門, `대덕면 문학리
내문치.內門峙) 문재 안쪽에 있는 마을.
·안새암골(안시암골, 내천.內泉) `금성면 원천리
원천 안쪽에 있는 마을.
·안양동(安養洞)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에 있는 마을. 부모를 잘 모신 효자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안창이(서다.西茶) `담양읍 삼다리
→서다(西茶).
·안편동(安平洞) `봉산면 유산리
창강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앞고삿 `봉산면 삼지리
삼지 앞쪽에 있는 마을로, '고삿'은 '골짜기 사이'의 뜻인 '고샅'의 다른 표기이다.
·앞말(앞고삿) `봉산면 삼지리
→앞고삿.
·앞주막 `담양읍 강쟁리
서편 서쪽, 앞에 있는 마을. 전에 주막이 있었다.
·양산(良山) `창평면 오강리
오산 서남쪽에 있는 마을.
·양지(陽地) `봉산면 양지리 `금성면 대성리
법정리명의 '양지리' 참조. 대성리의 '양지'는 정각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양지쪽이다.
·언내(堰內, 영월) `금성면 덕성리
→영월.
·언동(막적골) `고서면 산덕리
→막적골.
·언안(堰안, 영월) `금성면 덕성리
→영월.
·얼구실 `창평면 유곡리
법정리명의 '유곡리' 참조. '얽힌 마을'의 뜻인 '얽으실'의 변한 이름인 듯하다.
·엉골(광동.廣洞) `담양읍 향교리
향교 서쪽에 있는 마을. '널은 골'의 뜻인 '넌골'이 '넝골'로 되었다가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한자식 이름 '광동(廣洞)'의 '광(
廣)' 역시 '넓음'을 의미한다.
·연동(蓮洞, 막적골) `고서면 산덕리
→막적골.
·연동(淵洞) `봉산면 연동리
법정리명의 '연동리' 참조.
·연산(連山) `봉산면 기곡리
상덕 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연하여 있다.
·연천(燕川, 제비내) `남면 연천리
법정리명의 '연천리' 참조. →제비내
·연풍정(連豊亭, 세거리, 삼거리) `남면 풍암리
학정 북쪽에 있는 마을. 대덕면 입석리, 화순군 북면, 남면 소재지로 가는 세 갈래의 길이 있다.
·연화리(蓮花里) `남면 연천리
연천 동남쪽에 있던 마을.
·연화촌(蓮花村) `담양읍 금월리 `창평면 유곡리
금월리의 금월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에 연화도수형(蓮花倒水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유곡리의 절산 동쪽에
있는 마을 역시 같은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영월(迎月, 언안, 언내) `금성면 덕성리
덕성 동쪽에 있는 마을. 뚝이 있었다.
·영천(靈泉) `무정면 영천리
법정리명의 '영천리' 참조.
·예교(쑥다리)_ `창평면 해곡리
→쑥다리.
·오례(五禮, 오례원.五禮院) `무정면 오례리
법정리명의 '오례리' 참조.
·오리시암(오리천) `창평면 장화리
창평리에 있는 마을.
·오리터 `남면 가암리
법정리명의 '가암리' 참조.
·오봉(五峯,오봉촌.五峯村) `무정면 오봉리
법정리명의 '오봉리' 참조.
·오산(鰲山. 오산리.鰲山里) `대덕면 성곡리
새말 동쪽에 있는 마을.
·오산(梧山) `창평면 오강리
당골 동쪽에 있는 마을. 오동나무가 많았다.
·오성(五星) `월산면 오성리
법정리명의 '오성리' 참조.
·오정(梧亭) `수북면 오정리
법정리명의 '오정리' 참조.
·오평(五坪) `금성면 원율리
원율 남쪽 들에 있는 마을.
·옥답골(옥대동.玉帶洞) `수북면 대방리
심방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옥의 띠'라는 뜻의 ``이지만, 여기서는 '위의 산마을'의 뜻인 '웃닷골'이 '옷닷골'로 되었다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닷'은 '산(山)'의 옛말이다.
·옥매(옥산.玉山) `월산면 월계리
복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옥같이 둥글다.
·옥산(玉山, 옥산촌.玉山村, 옥매) `월산면 월계리 `대전면 행성리
→옥매. 월계리의 '옥산'은 행정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옥매'로도 불린다.
·옻밭(칠전.漆田) `무정면 동산리
동산 서북쪽에 있는 들에 있는 마을이다.
·옻재(칠치.漆峙) `무정면 동산리
옻재 밑에 있는 마을.
·와롱동(와룡동.臥龍洞) `대전면 서옥리 `수북면 궁산리 `금성면 봉서리
서옥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와룡(臥龍)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수북면 궁산리의 '와룡'은 궁산 서쪽에 있는 산이 소가 누
워 있는 형국이라고 해서 나왔다. 금성면 봉서리의 '와룡'은 노리목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역시 뒷산의 지형이 용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와매(와산.臥山, 신흥.新興) `용면 추성리
추성 동쪽에 있는 마을. 와산밑.
·와산(臥山, 와매) `용면 추성리
→와매.
·와우(臥牛) `봉산면 와우리
법정리명의 '와우리' 참조.
·완동(完洞, 만성리) `담양읍 담주리
→만성리.
·왕산(旺山) `월산면 월평리
고내 동쪽에 있는 마을.
·외당(外堂) `무정면 오룡리
내당 바깥쪽에 있는 마을.
·외동(外洞) `창평면 외동리
법정리명의 '외동리' 참조.
·외문(外門, 외문치.外文峙, 밭문재) `대덕면 문학리
→밭문재. '밭'은 '논밭'의 '밭'이 아니라 '바깥'의 뜻이다.
·외보촌(外洑村) `고서면 보촌리
삼거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보촌 밖.
·외지곡(外芝谷, 밭지실) `남면 학선리
→밭지실.
·외천(外泉, 밭새암굴) `금성면 원천리
→밭새암굴.
·외추(外楸, 외추동.外楸洞) `금성면 외추리
법정리명의 '외추리' 참조.
·요곡(要谷, 요골) `대덕면 성곡리
→요골.
·요골(요곡.要谷) `대덕면 성곡리
새말 남쪽에 있는 마을.
·용구동(龍龜洞) `수북면 주평리
구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용금동(龍錦洞) `월산면 용암리
용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용대(龍坮) `대덕면 용대리
법정리명의 '용대리' 참조.
·용동(龍洞) `용면 용연리
법정리명의 '용연리' 참조.
·용동(龍洞) `대전면 서옥리
청룡 북쪽에 있는 마을.
·용못 `용면 용연리
법정리명의 '용연리' 참조.
·용산(龍山, 건정실) `월산면 신계리
→건정실.
·용소(龍沼) `용면 용연리
법정리명의 '용연리' 참조.
·용연(龍淵, 용연촌.龍淵村) `용면 용연리 `남면 만월리 `남면 만월리
용이 산다거나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의 '용연(龍淵)'은 전국에 무척 많다. 남면 만월리의 '용연' 마을은 '용연촌'이라고도
불린다. 만월리의 '용연'은 쌍룡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에 용못이 있다.
·용운동(龍雲洞) `창평면 용수리
수곡 남쪽에 있는 마을. 뒤에 용운사가 있었다.
·용전(龍田, 갓점) `창평면 용수리
→갓점.
·용정(龍井) `수북면 두정리
경산 남쪽에 있는 마을. 복판에 물 잘 나는 샘이 있다.
·용주리(龍珠里, 똥매) `담양읍 반룡리
→똥매.
·용추(龍湫) `용면 용연리
용추봉 밑에 있는 마을.
·용평리(龍平里, 새터) `용면 용연리
→새터.
·운교(雲橋, 기룡리.起龍里) `담양읍 운교리
운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운교(雲橋, 구름다리) `고서면 동운리
→구름다리.
·운산(雲山) `대전면 갑향리 `무정면 오룡리
사성동 북쪽에 있던 마을.
·운암(雲岩) `대덕면 운암리
법정리명의 '운암리' 참조.
·운월리(雲月里) `고서면 동운리
비아 동북쪽에 있는 마을.
·운현(雲峴) `고서면 금현리
금단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웃갈밭(상갈전.上葛田) `대덕면 갈전리
갈밭 위에 있는 마을.
·웃강골 `수북면 오정리
강골 위쪽에 있는 마을.
·웃노거리 `용면 두장리
노거리 위에 있는 마을.
·웃삼인동 `수북면 오정리
삼인동 위쪽에 있는 마을.
·웃삼지내 `창평면 삼천리
삼지내 위쪽에 있는 마을.
·웃소내(상소천.上素川) `창평면 용수리
수곡 서남쪽에 있는 마을. 작은소내의 위쪽이다. →아랫소내
·원궁산(原弓山)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의 원 마을.
·원기동(院基洞, 원텃골) `대덕면 문학리
→원텃골.
·원대방(元大舫)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의 원 마을.
·원등(院嶝) `고서면 동운리
아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
·원모랭이(원우리.院隅里) `금성면 원율리
오평 동쪽에 있는 마을. 전 율원현(栗原峴)의 모롱이었다고 전해 온다.
·원오정(元梧亭) `수북면 오정리
오정리의 원 마을.
·원우리(院隅里, 원모랭이) `금성면 원율리
→원모랭이.
·원유동(院柳洞) `고서면 원강리
분토동 동쪽에 있는 마을.
·원율(原栗) `금성면 원율리
법정리명의 '원율리' 참조.
·원천(元泉) `금성면 원천리
법정리명의 '원천리' 참조.
·원촌(元村) `대전면 대치리
동부 동쪽에 있는 마을.
·원텃골(원기동.元基洞) `대덕면 문학리
밭문재 북쪽에 있는 마을.
·원효(元孝) `대덕면 비차리
차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월계(月桂) `용면 월계리
법정리명의 '월계리' 참조.
·월곡(月谷) `고서면 원강리 `월산면 중월리
원강리 '월곡'은 원유동 남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월산면 중월리의 '월곡'은 중방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월구실(얼구실) `창평면 유곡리 `창평면 해곡리
→얼구실. 법정리명의 '유곡리' 참조. 창평면 해곡리의 '월구실'은 성덕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월동(月洞, 갓점) `창평면 용수리
→갓점.
·월량(月良) `창평면 용수리
새터 동남쪽에 있던 마을. 6.25사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월산(月山) `수북면 풍수리 `월산면 월산리
풍수리의 '월산'은 '넘은들'이라는 토박이 ``을 가졌다. 법정리명의 '월산리' 참조.
·월성산(月城山, 성매) `수북면 고성리
→성매.
·월송정(月松亭) `월산면 용흥리
가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뒤에 큰 소나무와 정자가 있어 달밤의 경치가 좋았다 한다.
·월암(月岩) `용면 월계리
법정리명의 '구복리' 참조.
·월인동(月印洞, 월인리.月印里) `대전면 월본리
갈밭 북쪽에 있는 마을.
·월전(月田) `고서면 성월리 `봉산면 양지리
성월리의 '월전'은 광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양지리의 '월전'은 '새터'라는 토박이 ``을 가졌다.
·월천(月川) `월산면 광암리
사암 밑에 있는 마을. 주위로 반달 모양의 내가 흐른다.
·월평(月平) `월산면 월평리
법정리명의 '월평리' 참조.
·유곡(維谷) `창평면 유곡리
정리명의 '유곡리' 참조.
·유산(柳山) `봉산면 유산리
법정리명의 '유산리' 참조.
·유촌(柳村, 큰말) `창평면 유천리
→큰말.
·읍리(邑里) `창평면 장화리
법정리명의 '창평리' 참조.
·응기(應基) `대전면 응룡리
신룡 동쪽에 있는 마을.
·응지핀 `대전면 중옥리
중옥 서북쪽에 음지에 있는 마을.
·의암(義岩.義巖) `창평면 의항리
새터 서북쪽에 있는 마을. 의암서원이 있었다.
·인암(麟岩) `남면 인암리
법정리명의 '인암리' 참조.
·일산(一山) `창평면 일산리
법정리명의 '일산리' 참조.
·입석(立石, 선돌) `대덕면 입석리
→선돌. 법정리명의 '입석리' 참조.
·자동(子洞, 족자동) `무정면 서흥리
→족자동.
·자창(自唱, 자창이) `남면 가암리
청촌 남쪽에 있는 마을. 노서식창형(老鼠食倉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작은말 `남면 구산리
구산리에 있는 마을.
·작은새(새태) `고서면 금현리
→새태. '작은 새태(새터)'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새터 `수북면 개동리
새터의 작은 마을.
·작은성매 `수북면 고성리
성매의 작은 마을.
·잣정리(백정.栢亭) `고서면 분향리
용대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큰 잣나무 정자가 있었다.
·장가동(長佳洞, 상신기) `금성면 봉황리
→상신기.
·장단(큰말) `남면 구산리
→큰말.
·장동(獐洞, 노랑골) `대덕면 장산리
땅(산줄기나 들)이 늘어져 있는 곳에 붙는 ``인 '너렁골(널엉골)', '느렁골(늘엉골)'과 같은 뜻의 이름인데, 이와 같은 뜻의 이름
인 '노루골(널으골)'로도 불린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노루'에 해당하는 '장(獐)'자가 들어갔다. →노랑골, 노루목
·장문터(시문기.市門基) `남면 정곡리
정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장이 섰었다.
·장산(長山, 진매) `창평면 의항리
→진매.
·장산리(長山里) `고서면 주산리
주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
·장살미 `수북면 풍수리
월산 서쪽에 있는 마을.
·장성말(下北山) `고서면 교산리
교촌 동북쪽에 있는 마을. 장승이 있었다.
·장재동(長財洞) `월산면 월산리
동산 동쪽에 있는 마을.
·장전(長田) `창평면 장화리
장화리에 있는 마을. 긴 밭이 있다.
·장찬리(長贊里) `용면 두장리
두지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
·장터(사장거리) `창평면 장화리
→사장거리.
·장항리(獐項里, 노리목) `금성면 봉서리
→노루목. 노리목.
·재경굴 `창평면 용수리
가막골 남쪽에 있는 마을.
·잿막(치막.峙幕) `대전면 평장리
한재 밑에 있는 마을. '막'은 ``에서 '마을'의 뜻으로 많이 붙는다. 돌이 많은 마을의 '독막(동막)', 물줄기가 지나는 곳의 '무수
막(뭇막, 문막)' 등이 그러한 예이다.
·저심리(楮沈里, 제심리)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전재민촌(戰災民村, 신촌) `월산면 화방리
→신촌.
·전중(田中, 정중리) `수북면 정중리
→정중리.
·절산(節山) `창평면 유곡리
텃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접실(蝶室, 화암.花岩) `남면 풍암리
풍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진달래꽃이 많이 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각(正角) `금성면 대성리
버실 동북쪽에 있는 마을.
·정석(貞石) `무정면 정석리
법정리명의 '정석리' 참조.
·정중(井中) `수북면 정중리
법정리명의 '정중리' 참조.
·제비내 `남면 연천리
법정리명의 '연천리' 참조. 이러한 ``은 '제비'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수 있으나, 대개는 '좁은 골짜기의 마을'의 뜻인 '좁이울(조
비울)'이 이런 이름으로 옮겨가 있는 경우가 많다.
·제심리(저심리) `대덕면 운산리
→저심리.
·제월(濟月.齊月, 구미동.九尾洞)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제주성산(새태) `대전면 갑향리
→새태. 계곡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 제주도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조현(鳥峴, 새고개) `창평면 광덕리
→새고개.
·족자동(族子洞, 자동.子洞) `무정면 서흥리
서흥 동남쪽에 있는 마을. 임진왜란 때 이(李)씨들이 많이 피란했다고 전해 온다.
·주동(舟洞) `대전면 갑향리
사성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배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주산(舟山) `고서면 주산리
법정리명의 '주산리' 참조.
·주진동(舟津洞, 하성리) `금성면 금성리
→하성리.
·주평(舟坪, 뱃들) `고서면 주산리 `수북면 주평리
법정리명의 '주평리' 참조. →뱃들. 마을에 모과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모갈'이라 했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어
느 목(중요한 장소)의 아래에 있다는 뜻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죽림(竹林) `봉산면 연동리 `월산면 용흥리 `금성면 봉황리 `고서면 고읍리
봉산면 연동리의 '죽림'은 연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대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월산면 용흥리 가곡 서남쪽의 '죽림'은 마을
에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금성면 봉황리 가라실 서북쪽 마을인 '죽림'은 마을 뒤에 대숲이 있어서, 고서면 고읍리 구읍 동쪽에
있는 마을의 '죽림'은 마을에 대숲이 우거졌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여 나온 이름이다.
·죽산(竹山) `무정면 영천리
영천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대가 무성하다.
·중골(중동.中洞) `수북면 궁산리
법정리명의 '중동.' 참조. 궁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들 가운데에 있다.
·중리(中里) `무정면 성도리
성덕 동북쪽에 있는 마을. 서정과 도동의 가운데 있다.
·중방(中方) `월산면 중월리
중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중옥(中玉) `대전면 중옥리
법정리명의 '중옥리' 참조.
·중촌(中村) `수북면 대방리
남바들 서북쪽에 있는 마을. 들 중간에 있다.
·지곡(芝谷) `남면 지곡리
법정리명의 '지곡리' 참조.
·지동(池洞) `봉산면 연동리
법정리명의 '연동리' 참조.
·지석(支石, 괸돌) `남면 지곡리
→괸돌.
·지실 `남면 지곡리
법정리명의 '지곡리' 참조.
·지프실(심곡.深谷) `담양읍 학동리
학동 남쪽에 있는 마을. 깊은 골짜기에 들어 있다. 골짜기가 깊다는 뜻의 이름인 '기프실(깊으실)'이 변한 이름이다. 즉, '기프실
'이 구개음화(口蓋音化)하여 '지프실'이 되었다. →진매
·진굴 `담양읍 강쟁리
서편 남쪽에 있는 마을. '긴골(긴굴)'이 변한 이름이다. →진매
·진등 `수북면 대방리
송징이 서남쪽, 긴 등성이에 있는 마을. '기다란 등성이'의 뜻인 '긴등'이 변한 이름이다. →진매
·진매(장산.長山) `창평면 장화리 `창평면 의항리
장전 서남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길고 펀펀하게 내려와 있다. '길게 늘어진 매(뫼)'의 뜻으로 '긴매(긴뫼)'이던 것이 변한 이름
이다. 구개음화(口蓋音化)에 의한 현상인데, '길'을 '질'로, '기름'을 '지름'으로, '겨울'을 '저울'로, '김'을 '짐'으로 발음하는
것이 다 그런 현상들이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 이러한 현상이 아주 심하다. 창평면 의항리 화양촌 남쪽에 있는 마을의 '진매'
는 뒷산이 길게 뻗어 있어 이 이름이 나왔다. '깊은 마을'의 뜻인 '기프실(깊으실)'이 '지프실'(담양읍 학동리)이나 '긴 등성이'
의 뜻인 '긴등'이 진등'(수북면 대방리)도 역시 구개음화 현상에 의한 것이다.
·진수동(進水洞, 진시) `용면 월계리
→진시.
·진시(진수동.進水洞) `용면 월계리
구복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앞에 큰 내가 흐른다.
·쪽쪽골 `용면 용연리
작은쪽쪽굴 입구에 있는 마을. 옥녀가 족두리를 쓴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차동( 洞) `대덕면 비차리
법정리명의 '비차리' 참조.
·창강리 `봉산면 유산리
마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 조선 때 곡식을 모아 두던 사창이 있었다.
·창고등(신성.神聖) `담양읍 강쟁리
강쟁 동쪽에 있는 마을. 창고가 있었다.
·창평(昌平) `창평면 장화리
법정리명의 '창평리' 참조.
·창평때 `대덕면 입석리
선돌 서쪽에 있는 마을. 전에 작은 똘을 사이에 두고 담양과 창평의 경계였는데, 창평에 예속했다.
·창평읍내(昌平邑內) `창평면 장화리
법정리명의 '창평리' 참조.
·천변(川邊) `담양읍 천변리
법정리명의 '천변리' 참조.
·천치(天峙, 하눌재) `용면 용치리
→하눌재.
·청계동(淸溪洞, 청촌) `남면 가암리
→청촌.
·청룡(靑龍) `대전면 서옥리
서옥산 남쪽에 있는 마을.
·청석(靑石, 평지리) `무정면 평지리
법정리명의 '평지리' 참조.
·청수리(淸水里) `용면 용연리
부흥 동북쪽에 있는 마을. 앞으로 청수천이 흐른다.
·청운동(靑雲洞) `대덕면 용대리
바징이 서쪽에 있는 마을.
·청촌(淸村, 청계동.淸溪洞) `남면 가암리
자창 북쪽에 있는 마을.
·청흥리(淸興里) `용천면 용연리
담양군 용천면의 지역이었는데, 일제 때인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부흥리(復興里), 낙천리(樂天里), 청수리(淸水里)를`용
면 용연리 합하여 청수(淸水)와 부흥(復興)의 이름을 따서 청흥리(淸興里)라 하여 용면에 편입되었다가, 1976년 담양호가 완섬됨
에 따라 수몰 지구가 되어 용연리에 편입되었다.
·추성(秋城, 추성리.秋城里) `용면 추성리
법정리명의 '추성리' 참조.
·치막(峙幕, 잿막) `대전면 평장리
→잿막.
·칠전(漆田, 옻밭) `무정면 동산리
→옻밭.
·칠치(柒峙, 옻재) `무정면 동산리
→옻재.
·큰말(유촌.柳村) `창평면 유천리
유천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큰말(장단.長丹) `남면 구산리
구산 동쪽에 있는 마을. 근처의 작은말보다 크다.
·큰새터 `수북면 개동리
새터의 큰 마을.
·큰성매 `수북면 고성리
성매의 큰 마을.
·탄금(彈琴) `봉산면 기곡리
방축 남쪽에 있는 마을. 앞의 옥녀봉에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태산리(台山里) `대전면 월본리
갈밭 동쪽에 있는 마을.
·태암리(台岩里, 삼암.三岩) `대전면 태목리
태목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전에 마을 앞에 큰 바위 셋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태월(台月) `용면 쌍태리
쌍태 동남쪽에 있는 마을.
·태촌 `대전면 병풍리
밴들이 서쪽에 있는 마을.
·택리(신평) `봉산면 와우리
→신평.
·탱자남거리 `담양읍 강쟁리
동짝 동쪽에 있는 마을. 탱자나무가 있었다.
·텃골(기동.基洞) `창평면 유곡리
연화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
·토옥동(吐玉洞, 고지) `남면 인암리
인암 동남쪽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6.25 때 경찰이 주둔하던 고지가 있다.
·토이매 `수북면 나산리
새태 남쪽에 있는 마을. 다른 지방의 '퇴퇴(퇴매)'와 비슷한 ``이다. '외따로 떨어진 곳의 산'의 뜻으로 이런 이름이 많이 붙는다
.
·통시암 `용면 통천리
법정리명의 '통천리' 참조.
·통천(桶泉) `용면 통천리
법정리명의 '통천리' 참조.
·퇴끼등 `대전면 갑향리
퇴끼등에 있는 마을. '토끼처럼 생긴 등성이'의 뜻인 '토까등'이다.
·팔학동(八學洞) `대덕면 운암리
운암 북쪽에 있는 마을. 팔학사가 날 터라고 전해 온다.
·평신기(平新基, 불로리) `금성면 금성리
금성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평지에 이루어졌다. 큰 소나무가 있었다.
·평장동(平章洞) `대전면 평장리 `무정면 안평리
법정리명의 '평장리' 참조. 무정면 안평리의 '평장동'은 신안동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평지(平地) `무정면 평지리
법정리명의 '평지리' 참조.
·평촌(坪村) `고서면 성월리 `남면 정곡리 `수북면 고성리
이런 이름은 고서면 성월리의 '평촌'과 같이 '들말'로 많이 불린다. 수북면 고성리의 '들말'은 '창앞들'이라는 들에 있는 마을이
다.
·포백(浦 , 개비기) `수북면 대방리
→개비기.
·하갈전(下葛田, 아래갈밭) `대덕면 갈전리
→아래갈밭.
·하눌재(천치.天峙) `용면 용치리
사거리 서쪽에 있는 마을. 뒤에 하눌재가 있다.
·하북산(下北山, 장성말) `고서면 교산리
→장성말.
·하산(下山) `창평면 일산리
일산 아래쪽에 있는 마을.
·하성리(下城里, 주진동.舟津洞) `금성면 금성리
평신기 북쪽에 있는 마을. 마을 뒷산이 배가 나가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하소천(下素川, 아랫소내) `창평면 유천리
→아랫소내.
·하운암(下雲岩) `대덕면 운암리
운암 아래에 있는 마을.
·하촌 `수북면 나산리
나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학굴 `담양읍 학동리
법정리명의 '학동리' 참조.
·학동(鶴洞) `대전면 갑향리
사성동 동쪽에 있는 마을.
·학동(學洞) `대덕면 문학리
안문재 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지번이 배울 '학'자였다.
·학동(새암물) `봉산면 신학리
→새암물.
·학미동(鶴尾洞) `남면 학선리
밭지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 주령이 학 형국인데 그 꼬리에 해당된다 한다.
·학산리(鶴山里) `고서면 금현리
운현 남쪽에 있는 마을.
·학정(鶴頂) `남면 풍암리
접실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학머리같이 생겼다 한다.
·한다리 `무정면 정석리
'널은 들'의 뜻인 '한들(한달)'의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법정리명의 '환대리' 참조.
·한사정 `대전면 갑향리
계곡 동북쪽에 있는 마을.
·한새울(대조동.大鳥洞) `대덕면 매산리
사창리 동쪽에 있는 마을. '큰 골짜기 사이의 마을'의 뜻인 듯하다. '한'은 '큰'의 뜻이고, '새'는 '사이 있다. 이며, '울'은 '마
을'의 뜻이다.
·한재 `대전면 대치리
'한'은 '큰'의 뜻이므로 '큰 고개'의 의미를 지닌다. 법정리명의 '대치리' 참조.
·함정거리 `대전면 행성리
행정 동남쪽에 있는 마을.
·해방촌 `수북면 대방리
남바들 동남쪽에 있는 마을. 해방 뒤에 생겼다.
·행정(杏亭) `대전면 행성리 `금성면 덕성리
이런 이름은 은행나무 정자가 있을 때 많이 붙는다. 대전면 행성리의 '행정'은 대성 동쪽에 있는 마을이고, 금성면 덕성리의 '행
정'은 덕성 마을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약 400년 전에 행화정(杏花亭)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행정(杏亭)'은 토박이 ``으로는
'은행정이'이다.
·향교(鄕校) `담양읍 향교리
법정리명의 '향교리' 참조.
·현암(玄岩) `창평면 광덕리
법정리명의 '감바우' 참조.
·혈암(穴岩) `남면 가암리
법정리명의 '가암리' 참조.
·홍암(紅岩) `월산면 용암리
용금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에 밝은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 온다.
·화방(化方, 화방촌.化方村) `월산면 화방리
법정리명의 '화방리' 참조.
·화암(花岩, 꽃바우) `대전면 평장리
→꽃바우.
·화암(花岩, 접실) `남면 풍암리
→접실.
·화양촌(華陽村) `창평면 장화리 `창평면 의항리
창평면 장화리 장전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 '화양촌'은 화양사(華陽寺)란 절이 있었다고 전해 오고 있으며, 의항리의 '화양촌'은
의항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었다고 전해 온다.
·화전(花田, 화전정.花田亭, 꽃밭정이) `창평면 용수리
→꽃밭정이.
·화평리(花坪里) `남면 화평리
인암 동쪽, 들에 있던 마을.
·환대리(還大里,한다리) `무정면 환대리
→한다리. 정석리에 있는 마을.
·환암촌(環巖村) `남면 경상리
봉암촌 동남쪽에 있던 마을.
·환인동(環印洞) `대전면 서옥리
신촌 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가락지처럼 둥글다.
·활뫼 `수북면 궁산리
법정리명의 '궁산리' 참조.
·황덕(黃德) `수북면 황금리
금구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황등(구복리) `용면 월계리
→구복리
·황장자골 `대전면 행성리
행정 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황장자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회룡동(會龍洞, 생말) `담양읍 가산리
→생말.
·회룡동(回龍洞) `수북면 두정리 `무정면 오례리
수북면 두정리의 '회룡동'은 경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용이 휘어돈느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 무정면 오례리의 '회룡동'은 오례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용이 다시 돌아왔다는 전설에 따라 나온 이름이다.
·효례촌(孝禮村, 소리촌) `대전면 대치리
→소리촌.
·후산(後山, 뒷매) `고서면 산덕리
→뒷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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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의 연혁 및 옛 땅이름
&담양군의 연혁
·삼국시대-추자혜군(楸子兮郡)
삼국시대엔 백제 땅의 추자혜군(楸子兮郡)이었다.
·통일신라시대-추성군(秋城郡)
삼국 통일 후에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 때-담주(潭州) 도단련사(都團練使)
고려 제6대 성종 14년(995)에 담주(潭州) 도단련사(都團練使)로 하였다.
·얼마 후-나주(羅州)에 붙임
담양(潭陽)으로 고쳐 나주(羅州)에 붙이다.
·고려 명종 때-감무(監務)를 둠
고려 제19대 명종 2년(1172) 감무(監務)를 두다.
·고려 공양왕 때-율원현(栗原縣) 겸임
고려 제34대 공양왕 3년(1391)에 율원현(栗原縣)을 겸임하였다. 율원현은 지금의 금성면 (일대.)
·조선 태조 때-군(郡) 승격
조선 태조 4년(1395)에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본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정종 때-부(府)로 승격
조선 제2대 정종 원년 (1399)에 중궁 김씨의 어머니 본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때-도호부사(都護府使)가 됨
조선 제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되었다.
·조선 영조 때-현(縣)과 군(郡)으로 강등과 복구 거듭
조선 제21대 영조 4년(1728)에 현(縣)으로 강등, 같은 14년(1738)에 군(郡)으로 복구, 같은 38년(1762)에 또 현으로 강등, 같은
48년(1772)에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 고종 때-남원부(南原府) 관할
조선 제26대 고종 32년(1895)에 남원부(南原府) 관할의 군이 되어, 동변(東邊), 무이동(無伊洞), 정석(貞石), 답곡(畓穀), 고지산
(高之山), 서변(西邊), 목산(木山), 산막곡(山幕谷), 마입곡(馬入谷), 대곡(大谷), 갈마곡(葛馬谷), 우치(牛峙), 기곡(基谷), 용
천(龍泉), 천동(泉洞)의 15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때-구역 관할 개편
1914년 3월 1일, 창평군(昌平群) 일원과 장성군(長城郡)의 갑신면(甲申面), 광산군(光山郡)의 갈전면(葛田面), 대치면(大峙面)을
편입하였다.
·군면(郡面) 폐합- 13면 139리로 개편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郡面) 폐합에 따라 창평군(昌平郡)의 군내(郡內), 가면(加面), 서면(西面), 고현내(古縣內), 북면(北面), 내
남(內南), 외남(外南), 대면(大面), 덕면(德面), 장북(長北), 장남(長男), 동서(東西)의 12개 면과 광주군(光州郡)의 갈전(葛田)
, 대치(大峙)의 2개 면과 장성군 의 갑향면(甲鄕面) 및 북하면(北下面)의 적암(赤岩), 대정(大井) 일부와, 동복군(同福群) 외북면
(外北面)의 반곡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 구암, 월산, 금성, 용면, 무면, 정면, 평창, 고서, 남면, 대덕, 수북, 대전의
13면, 139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일제 후기-1면 줄여 12면
1932년 4월 1일, 13면을 12면으로 1면을 줄이다. 무면(武面)과 정면(貞面)을 합하여 무정면(武貞面)으로 하고, 구암면(九岩面)을
봉산면(鳳山면)으로 고쳐서 12면으로 하였다.
·광복 직전-담양면의 읍 승격으로 1읍 11면
1943년 9월 1일,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담양읍(潭陽邑), 고서면(古西面), 금성면(金城面), 남면(南面), 대덕면(大德面), 대전
면(大田面), 무정면(武貞面), 봉산면(鳳山面), 수북면(水北面), 용면(龍面), 월산면(月山面), 창평면(昌平面) 등 1읍, 11면이 되
었다.
·1983년-읍·면의 관할 조정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담양군(潭陽郡)의 옛 땅이름
·추자혜(秋子兮)
이 이름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갓골'로 유추되고 있다. '추(秋)'는 지금은 그 훈이 '가을'이지만, 옛말로는 '가슬' 또는 '
갓'이 된다. '갓'은 '가장자리(邊)'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그 뒤에 따르는 '자(子)'는 특별한 의미는 없으며, 다만 앞말과
뒷말을 이어 주는, 지금의 'ㅅ(사이시옷)' 구실을 하는 정도로 보아도 될 것이다. '혜(兮)'는 '흘'로도 읽어 왔는데, 이것은 옛
땅이름에서 '고을'의 의미인 '골'을 표기하는 데 대개 쓰인다. 따라서, '추자혜'는 거슬러 올라가면 '가시골'과 근사한 음으로 불
려 왔던 것이 한자로 그와 같이 표기된 것으로 보이며, 이 이름은 '가장자리 고을'의 뜻인 '갓골'의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아마 옆의 어느 고을(예를 들면, 지금의 광주시나 나주시)로 볼 때 그 곳과 인접해 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나왔을 가능성이
짙다.
'추자혜'에 대한 또 다른 어원적 견해에 '갓잣골'이 있다. '갓(갇)'은 원래 '물(水)'의 뜻을 가진 옛말이고, '잣(잗)'은 '산(山)
'의 뜻을 가진 옛말이므로 이 '갓잣골'을 '물가의 산'이란 의미로 보기도 한다.
'추자혜'를 '갓잣골'로 보는 것은 '추(秋)'를 '갓'으로, '혜(흘)'를 '골'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갓(秋)+자(子)+골(兮)=갓잣골(秋子兮)
·추성(秋城)
담양의 고려 때 이름이 추성(秋城)이다. '추자혜'를 달리 표기한 것으로, 이 역시 '갓골'의 의미를 갖는다. '고서현일운추자혜(皐
西縣一云秋子兮)'라는 기록도 보이는데, 여기서의 '고서(古西)'도 '곳'의 음차(音借)로 보이므로 이 역시 '갓'일 것이다. 지금의
이름 '담양(潭陽)'의 '담(潭)'도 옛날식 훈으로는 '갓'이다.
·담양(潭陽)
'갓골'의 한자식 표기인 '추자헤'나 '추성'의 뜻을 이어받은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글자대로 풀면 '담양(潭陽)'이 '못골'처럼 되
어 큰 담수호가 있어 이 이름이 나온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추성'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름임을 볼 때 여기서의 '담(潭)' 역시
'갓'의 표기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담양'의 '양(陽)'은 다른 고을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고을'의 의미를 지닌다.
*담양의 산천
&산이나 등성이 이름들
·고비산(高飛山)
금성면 (봉황리와 무정면 봉안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62m이다. )
·국수봉(國守峯)
창평면 외동리와 대덕면 입석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18m이다.
·금산(錦山)
무정면 동산리와 대덕면 금산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82m이다.
·노가리재
창평면 유천리와 창평면 외동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41m이다.
·덕재
무정면 동산리와 대덕면 금산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367m이다.
·두구봉
수북면 궁산리와 월산면 용흥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35m이다.
·매봉
창평면 광덕리와 대덕면 비차리 경계에 있는 산.
·삼인산(三人山)
대전면 병풍리와 수북면 오정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64m이다.
·수양재
무정면 덕곡리와 금성면 봉황리 경계에 있는 산.
·연화봉(蓮花峰)
남면 인암리와 화순군 북면 외예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20m이다.
·영천산(靈泉山)
무정면 오봉리와 창평면 광덕리 경계에 있는 산.
·오장산(五將山)
용면 통천리와 월산면 오성리 경계에 있는 산.
·월봉산(月峯山)
대덕면 운암리와 창평면 용수리 경계에 있는 산.
·장원봉(壯元峯)
고서면 고읍리와 남면 학선리 경계에 있는 산.
&각 읍면의( 내력)
① 담양읍(潭陽邑)
·조선시대-담양군의 서변면(西邊面)
담양 읍내 서쪽이 되어 서변면(西邊面)이라 했던 곳이다. 시산(匙山), 고산(高山), 사미(四美), 외천(外川), 마내(馬內), 마외(馬
外), 천변(川邊), 봉산(峯山), 만성(萬成), 백동(柏洞), 신기(新基), 누문(樓門), 간리(間里)의 1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담양군 담양면 ※ 9개 리 관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 따라 동변면(東邊面)의 남산(南山), 동정(東亭), 향교(鄕校), 취영(取英), 광동(廣洞), 객사(客
舍), 북내(北內), 북외(北外), 부중(府中), 간동(澗洞), 마내(馬內), 마외(馬外), 마구(馬口), 북우(北右), 득삼(得三), 지침(紙
砧), 삼거(三巨)의 17개 동리와, 무면(武面)의 향백동(香柏洞) 일부와 목면(木面)의 두곡리(斗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면(潭陽
面)이라 해서 남산, 향교, 객사, 지침, 양각, 담주, 만성, 백동, 천변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3년-읍으로 승격
1943년 9월 1일, 면(面)에서 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읍 관할 구역 확장 ※ 18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금성면
남쪽-무정면과 봉산면
서쪽-월산면
북쪽-월산면
② 고서면(古西面)
·조선시대-창평군의 고현내면(古縣內面)
옛 고을이 있어서 '고현내면'이라 했던 곳이다. 분향(分香), 용대(龍臺), 고읍(古邑), 덕촌(德村), 죽림(竹林), 신량(新良), 삼산
(三山), 성산(聲山), 평촌(坪村), 광산(廣山), 하북(下北), 강정(江亭), 교촌(校村), 운현(雲峴)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고서면(古西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분토(粉土), 원이(院以), 월곡(月谷), 주평(舟坪), 내보(內甫), 외보(外甫), 금
단(金丹), 노채(蘆菜)의 8개 동리와 북면(北面)의 연동(蓮洞), 후산(後山), 상덕(上德), 운월(雲月), 동산(東山), 성덕(盛德), 원
등(院嶝), 하유(下維), 주산(舟山)의 9개 동리와 우면(牛面)의 장산(長山), 상동(上洞), 강정(江亭) 일부와 내남면(內南面)의 학
미동(鶴尾洞) 일부와 가면(加面)의 하산(下山)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 고서면(古西面)이라 하
여 하여 원강, 주산, 보촌, 금현, 분향, 구읍, 성월, 교산, 산덕, 동운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창평면과 남면
서쪽-광주시
남쪽-광주시
북쪽-봉산면
③ 금성면(金城面)
·조선시대-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
고지산(高之山) 밑이 되어 고지산면(高之山面)이라 하여, 문암(文岩), 주진(舟津), 부곡(釜谷), 평신기(平新基), 행정(杏亭), 영
월(迎月), 봉서(鳳棲), 장항(獐項), 비내(飛內), 와룡(臥龍), 시목(枾木), 덕성(德城), 손곡(巽谷), 산이천(山伊川), 대곡(帶谷)
, 장재(長財), 가라곡(加羅谷), 봉황(鳳凰), 원율(原栗), 오평(五坪), 매곡(梅谷), 노천(盧川), 외추(外楸)의 23개 동리를 관할하
였다.
·일제 때-금성면(金城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천동면(泉洞面)의 금월(錦月), 장은(長隱), 연화촌(蓮花村), 삼만(三萬), 선계(仙界), 내동(內
洞), 오정(梧丁), 석현(石峴), 무림(茂林), 내천(內泉), 외천(外泉), 봉곡(蜂谷), 대성(大成)의 13개 동리와 용천면(龍泉面)의 정
각(正角), 양지(陽地), 치등(峙嶝)의 3개 동리와 각 일부를 편입하여 금성산(金城山) 밑이 되어 금성면(金城面)이라 해서 석현,
금월, 삼만, 원천, 대성, 원율, 금성, 덕성, 봉서, 대곡, 외추, 봉황, 학동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학동리(鶴洞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전북 순창군 금과면
서쪽-월산면과 담양읍
남쪽-무정면
북쪽-용면과 순창군 팔덕면
④ 남면(南面)
·조선시대-창평군의 외남면(外南面)
창평 읍내 남쪽이 되어 외남면(外南面)이라 했던 곳이다. 수구(守口), 무동(武洞), 구룡(九龍), 석계(石溪), 망월(望月), 쌍룡(雙
龍), 용연(龍淵), 구산(九山), 장단(長丹), 인암(麟岩), 혈암(穴岩), 청촌(淸村), 자창(自唱), 화암(花岩), 학항(鶴項), 연풍(連
豊)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남면(南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남면(內南面)의 개선(開仙), 외지(外芝), 학미(鶴尾), 지석(支石), 지곡(芝谷), 산음(
山陰), 연천(燕川), 취연(吹連), 반석(盤石), 정곡(鼎谷), 사봉(士峯), 경상(京相), 환암(環岩)의 13개 동리와 군내면(郡內面)의
외동(外洞)과 광주군(光州郡) 석제면(石堤面)의 덕의리(德義里) 일부와 같은 군 상대석면(上大石面)의 당촌(唐村), 평촌(坪村)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면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학선, 지곡, 연천, 정곡, 경상, 무동, 만월, 구산, 인암, 가암, 풍암, 외
동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과 화순군 북면
서쪽-광주시
남쪽-화순군 서면
북쪽-대덕면과 창평면
⑤ 대덕면(大德面)
·조선시대 창평군 대면(大面)
창평군의 지역의 대면(大面)으로, 입석(立石), 등갈(等葛), 사창(社倉), 소산(小山), 대산(大山), 장동(獐洞), 비차(飛 ), 원효(
元孝), 가흥(佳興), 상운(上雲), 하운(下雲)의 11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덕면(大德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덕면(德面)의 시목(枾木), 당촌(堂村), 무월(撫月), 요곡(要谷), 성신(聲新), 내문(內門), 외
문(外門), 원기(元基), 학동(學洞), 옥천(玉泉), 수곡(水谷), 청운(靑雲), 소지(所之), 용대(龍臺), 상갈(上葛), 하갈(下葛), 송
산(松山), 운산(雲山), 대서산(大西山)의 19개 동리와 외남면(外南面)의 입석리(立石里)와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의 반곡
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면(大面)과 덕면(德面)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大德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입석, 매산, 장
산, 비차, 운암, 금산, 성곡, 문학, 용대, 갈전, 운산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오산면
서쪽-창평면
남쪽-남면과 화순군 북면
북쪽-무정면
⑥ 대전면(大田面)
·조선시대 광주군(光州郡)의 대치면(大峙面)
조선시대 광주군의 지역으로서 대치(한재) 밑이 되어 대치면(大峙面)이라 했던 곳이다. 중옥(中玉), 문내(門內), 금곡(金谷), 용
동(龍洞), 서옥(西玉), 신촌(新村), 환인(環印), 청룡(靑龍), 응기(應基), 망화(望化), 효례(孝禮), 대아(大雅), 화암(花岩), 평
장(平章), 시목(枾木)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전면(大田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갈전면(葛田面)의 월인(月印), 본상(本上), 본하(本下), 강의(講義), 태암(台岩), 신룡(新龍)
의 5개 동리와 삼소지면(三小旨面)의 해산리(海山里)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갑성(甲城), 옥동(玉洞), 학전(鶴田), 기강
(基岡), 주동(舟洞), 옥산(玉山), 덕산(德山), 대성(大成), 행정(杏亭), 소두(梳頭), 사성(四聖), 나곡(羅谷), 내동(內洞), 후동
(後洞), 노은(魯隱), 대산(臺山)의 17개 동리와 같은 군 외동면(外洞面)의 청룡리(靑龍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大峙)와 갈전(葛
田)의 이름을 따서 대전면(大田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월본, 강의, 태목, 중옥, 서옥, 응룡, 대치, 평장, 성산, 행성,
갑향, 병풍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수북면과 봉산면
서쪽-장성군 진원면과 장성읍
남쪽-광주시
북쪽-수북면과 장성군 북하면
⑦ 무정면(武貞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촌(新村), 반룡(盤龍), 용주(龍珠), 봉서(鳳棲),
영천(靈泉), 죽산(竹山), 오봉(五峯), 오현(五鉉), 계동(桂洞), 운산(雲山), 오룡(五龍), 외당(外堂), 성덕(成德), 서정(西亭),
중리(中里), 도리(道里), 칠전(漆田), 동산(動産), 봉안(奉安), 구안(龜安), 술지(述只), 수문(守門), 기동(基洞)의 2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목면(木面) ※ 8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木面)의 두곡(斗谷), 도고정(都古亭)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반룡, 영천, 오봉, 오계, 오룡
, 성도, 동산, 봉안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2년-무정면(武貞面)
1932년 지방 행정 구역 조정에 의하여 정면(貞面)의 전역(안평, 덕곡, 서흥, 정석, 평지, 동강, 오례 7개 리)을 병합하여 무면(武
面)과 정면(貞面)의 이름을 따서 무정면(武貞面)이라 하여 15개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3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옥과면과 오산면
서쪽-봉산면
남쪽-대덕면과 평창면
북쪽-담양읍과 금성면
⑧ 봉산면(鳳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두면(豆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두면(豆面)이라 했던 곳이다. 연동(淵洞), 죽림(竹林), 삼지(三支), 신곡(新谷), 상덕(上德), 방축
(防築), 탄금(彈琴), 천수(泉水), 구암(九岩), 학동(鶴洞), 면앙정( 仰亭), 마항(馬項), 서봉(棲鳳), 곡정(曲丁)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구암면(九岩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목산면)의 강쟁(江爭), 두곡(斗谷), 대추(大秋), 도고정(都古亭), 신기(新基)의 5개 동리
와 우면(우치면)의 양지(陽地), 월전(月田), 강정(江亭), 화평(華平), 오산(五山), 구미(龜尾), 봉학(鳳鶴), 와우(臥牛), 광신(光
新), 마산(馬山), 송산(松山), 유산(柳山)의 12개 동리와 창평군(昌平郡) 장남면(長南面)의 정중리(井中里), 관동리(關洞里) 일부
와 광주군(光州郡) 우치면(牛峙面)의 학림(鶴林), 회룡(回龍)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기곡리)의 이름을 따서 구암면(九岩面)
이라 하여 강쟁, 대추, 삼지, 연동, 기곡, 신학, 제월, 양지, 와우, 유산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1-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변경
1931년 4월 1일, 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고쳤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9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강쟁리(江爭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무정면과 창평면
서쪽-대전면과 수북면
남쪽-고서면과 광주시
북쪽-월산면과 담양읍
⑨ 수북면(水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장북면(長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지역으로서 장평부곡(長平部曲)의 북쪽이 되어 장북면(長北面)이라 했던 곳이다. 송정(松亭), 행정(杏
亭), 대방(大舫), 포박(浦泊), 강동(江洞), 삼인(三人), 와룡(臥龍), 오정(梧亭)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수북면(水北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남면(長南面)의 정중(井中), 금구(金九), 개동(開東), 남산(南山)의 5개 동리와 동서면(東西面)
의 상촌(上村), 나산(羅山), 신월(新月), 신복(新福), 고대(古大), 평촌(坪村), 성산(城山), 궁암(弓岩), 대흥(大興), 화성(花城
), 월계(月桂), 동장(東庄), 월산(月山), 회룡(回龍), 신정(新亭)의 16개 동리와 광주군(光州郡) 갈전면(葛田面)의 두동(斗洞),
용정(龍井), 경호(鯨胡), 궁산(弓山), 구암(龜岩), 신기(新基), 주평(舟坪)의 7개 동리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황덕(黃德), 신기
(新基)의 각 일부와 부면(夫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와 두면(豆面)의 곡정리(曲丁里) 일부와 목면(木面)의 미산(尾山), 동장(東
庄)의 각 일부와 고면(高面)의 가량(加良), 운연(雲淵), 구연(龜淵), 일부와 갑향면(甲鄕面)의 운산(雲山), 주동(舟洞), 기강(基
岡)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산강 북쪽이 되어 수북면(水北面)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두정, 궁산, 대방, 오정, 정중, 황금
, 개동, 남산, 나산, 고성, 대흥, 풍영, 주평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봉산면
서쪽-대전면
남쪽-봉산면
북쪽-월산면
⑨ 용면(龍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용천동면(龍泉洞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용못(龍淵)이 있어서 용천동면(龍泉洞面) 또는 용면(龍面)이라 했던 곳이다. 대흥(大興), 분통(粉桶), 용평
(龍平), 소천치(小天峙), 대천치(大天峙), 세룡(細龍), 용동(龍洞), 사거(四距), 견양(牽羊), 복룡(伏龍), 월계(月桂), 월암(月岩
), 신령(新令), 월성(月星), 진수(進水), 청연(淸淵), 부흥(復興), 낙천(樂天), 구암(九岩), 성내(城內), 신정(新正), 도림(道林
), 상월(上月), 태월(台月), 삼태(三台), 추성(秋城), 치등(峙嶝), 서평(西坪), 장찬(長贊), 박곡(泊谷), 매월(梅月), 통천(桶泉
)의 32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용면(龍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천면(泉面)의 신흥(新興), 두지(斗支), 오정(梧丁) 일부를 병합하여, 용연, 용치, 월계, 청흥, 도
림, 쌍태, 추성, 두장, 통천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6년 담양호 담수로 지역 개편 ※ 8개 리 관할
1976년 10월 14일 준공된 담양호(潭陽湖)로 말미암아 용면의 청흥리(淸興里), 산성리(山城里) 2개 리가 완전히 물로 들어가 청흥
리의 남은 지역을 용연리에, 산성리의 남은 지역을 도림리에 각기 편입하여 8개 리로 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팔덕면
서쪽-월산면과 순창군 복흥면
남쪽-금성면과 월산면
북쪽-순창군 쌍치면
⑪ 월산면(月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산막곡면(山幕谷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산막곡면(山幕谷面) 또는 산면(山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계(新溪), 신평(新平), 도동(道洞), 용금
(龍錦), 중방(中方), 월곡(月谷), 월평(月平), 단사(丹砂), 신양(新陽), 왕산(旺山), 대례(大禮), 송정(松亭), 월산(月山), 동산
(東山), 화방(化方)의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월산면(月山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면(廣面)의 산정(山亭), 사암(四岩), 광덕(廣德), 월천(月川), 개양(開陽), 신기(新基), 오성(五
星), 군수(郡守), 내동(內洞), 월계(月桂), 농암(籠岩), 옥산(玉山), 장원(壯元), 기룡(起龍), 남계(南溪), 능동(陵洞), 홍암(紅
岩), 장재(長財)의 18개 동리와 고면(高面)의 봉명(鳳鳴), 마산(馬山), 회룡(回龍), 가산(佳山), 구련(龜蓮), 외다(外茶), 동다(
東茶), 서다(西茶), 사미(史美)의 9개 동리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와 서면(西面)의 만성(萬城), 시산(匙山)의 각 일부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적암(赤岩), 대정(大井)의 각 일부와 창평군(昌平郡) 장북면(長北面)의 유곡(柳谷), 용산(龍山), 신평(
新平), 월송(月松), 가곡(柯谷), 죽림(竹林) 6개 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월산리(月山里)의 이름을 따서 월산
면(月山面)이라 하여 광암, 오성, 월계, 운교, 용암, 신계, 용흥, 중월, 월평, 월산, 화방, 가산, 삼다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
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용면과 금성면
서쪽-장성군 북하면
남쪽-담양읍과 봉산면, 수북면,
북쪽-순창군 복흥면
⑫ 창평면(昌平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군내면(郡內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지역으로서 창평 읍내가 되어 군내면(郡內面)이라 했던 곳이다. 당곡(唐谷), 오산(梧山,) 양산(良山), 유촌(柳
村), 하소천(下素川), 상소천(上素川), 월량(月良), 용운(龍雲), 수곡(水谷), 용전(龍田), 부동(釜洞), 읍리(邑里), 본촌(本村),
보평(普坪)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창평면(昌平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加面)의 장전(長田), 장산(長山), 연화(蓮花), 덕치(德峙), 광암(廣岩), 조현(鳥峴), 부동(富
洞), 애교(艾橋), 화촌(華村), 상산(上山), 하산(下山), 의암(義岩), 죽항(竹項)의 13개 동리와 대면(大面)의 가흥(佳興), 화양(
華陽), 증산(曾山)과 북면의 내동(內洞), 성덕(盛德), 하유곡(下維谷), 신기(新基), 강촌(江村) 및 상유곡(上維谷), 운월(雲月),
상덕(上德)의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하여 창평면(昌平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장화
, 광덕, 해곡, 유곡, 일산, 의항, 오강, 유천, 용수, 창평, 삼천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
서쪽-고서면과 봉산면
남쪽-남면
북쪽-무정면과 대덕면
*담양군의 여러 마을들
`담양읍
·티미산【산】정잣굴꼴착 서쪽에 있는 산. `담양읍 금월리
·아래남산〔下南山〕【산】남산 아래에 있는 산. `담양읍 남산리
·하남산(下南山)【산】→아래남산. `담양읍 남산리
·벌매〔봉산〕【산】벌매 뒤에 있는 산. 지형이 벌통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담주리
·봉산(蜂山)【산】→벌매 `담양읍 담주리
·괘머리콧배기【산】새터 뒤에 있는 산. 고양이 대가리처럼 생겼다. `담양읍 백동리
·똥매산【산】용주 서쪽 들 가운데에 있는 작은 산. `담양읍 반룡리
·고대산【산】고도실 앞에 있는 산. `담양읍 삼만리
·미리산【산】동매기골 동쪽에 있는 산. `담양읍 삼만리
·북덕산【산】선계 동쪽에 있는 산. `담양읍 삼만리
·배암산【산】사미정 북쪽에 있는 산. ① 배암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다. ② 뱀이 많다. `담양읍 양각리
·술매〔시산〕【산】사미정 북쪽에 있는 산. 숟가락처럼 생겼다. `담양읍 양각리
·시산(匙山)【산】→술매 `담양읍 양각리
·양각산(羊角山)【산】양각리 뒤에 있는 산. `담양읍 양각리
·건네까끔【산】학동 건너에 있는 산. `담양읍 학동리
·꼬치산【산】섬까끔 동북쪽에 있는 산. 꼬치(고추) 형국이다. `담양읍 학동리
·비락봉【산】학동 동남쪽에 있는 산. 비락(벼락)을 맞았다고 전해 온다. `담양읍 학동리
·섬까끔【산】절뫼 남쪽에 있는 산. 들 가운데에 섬처럼 외로이 있다. `담양읍 학동리
·순등【산】건네까끔 남쪽에 있는 산. `담양읍 학동리
·절뫼【산】학동 서남쪽에 있는 산. 외추리 보광사로 가는 어귀에 있다. `담양읍 학동리
·서당까끔【산】토꾸재 동쪽에 있는 산. 밑에 서당이 있었다. `담양읍 향교리
·서산(西山)【산】서우내 서쪽에 있는 산. `담양읍 향교리
·정두산【산】서우내 북쪽에 있는 산. `담양읍 향교리
·공동산【산】→메물대산. `고서면 고읍리
·대팽이골【산】신양 동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고서면 고읍리
·등잔걸이【산】신양 동북쪽에 있는 산. 등잔걸이형의 명당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메물대산〔공동산〕【산】화약골 동쪽에 있는 산. `고서면 고읍리
·산정등【산】새앙골 서쪽에 있는 산. 소산정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삼봉(三峯)【산】신양 동남쪽에 있는 산. 봉우리가 셋이 있다. `고서면 고읍리
·생적굴몬댕이【산】→행굣골몬댕이. `고서면 고읍리
·작살골몬댕이【산】대팽이골 동쪽에 있는 산. 지형이 작살처럼 생겼다. `고서면 고읍리
·진등【산】신양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고서면 고읍리
·행굣골몬댕이〔생적굴몬댕이〕【산】작살골몬댕이 서쪽에 있는 산. 전에 향교가 있었다. `고서면 고읍리
·가락등【산】물레실 서남쪽에 있는 산. `고서면 금현리
·갈미봉【산】독징이 남쪽에 있는 산. 갈미(갈모)처럼 생겼다. `고서면 금현리
·강단산【산】노채 동쪽에 있는 산. `고서면 금현리
·광단산【산】노채 북쪽에 있는 산. `고서면 금현리
·매봉【산】노채 서쪽에 있는 산 `고서면 금현리
·신청이【산】지방바우 서쪽에 있는 산. `고서면 금현리
·갈미봉【산】백정 남쪽에 있는 산. 갈미(갈모) 형국이다. `고서면 분향리
·산정등【산】외밭골 동쪽에 있는 산. 소산정이 있다. `고서면 분향리
·소탕매【산】관수정 북쪽에 있는 산. 지형이 소 형국으로 되었다. `고서면 분향리
·광대봉【산】호봉산 동남쪽에 있는 산. `고서면 산덕리
·된까금【산】부엥바우 동쪽에 있는 산.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되다고 전해 온다. `고서면 산덕리
·뒷매〔후산〕【산】후산 뒤에 있는 산. 옛 창평현의 뒤가 된다. `고서면 산덕리
·매물산〔목맥산, 몽매산〕【산】후산 동쪽에 있는 산. `고서면 산덕리
·목맥산(木麥山)【산】→매물산. `고서면 산덕리
·몽매산【산】→매물산. `고서면 산덕리
·안산(案山)【산】뒷매 앞에 있는 산. 뒷매와 안대가 된다. `고서면 산덕리
·호봉산(虎奉山)【산】목맥산 동쪽에 있는 산. 호랑이처럼 생겼다. `고서면 산덕리
·후산(後山)【산】→뒷매. `고서면 산덕리
·매봉【산】사직산 남쪽에 있는 산. 지형이 나는 매처럼 되었다. `고서면 성월리
·사직산【산】새터 서쪽에 있는 산. 창평 사직단이 있었다. `고서면 성월리
·암산【산】월전 동쪽, 앞에 있는 산. `고서면 성월리
*담양군의 연혁 및 옛 땅이름
&담양군의 연혁
·삼국시대-추자혜군(楸子兮郡)
삼국시대엔 백제 땅의 추자혜군(楸子兮郡)이었다.
·통일신라시대-추성군(秋城郡)
삼국 통일 후에 신라 경덕왕이 추성군(秋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 때-담주(潭州) 도단련사(都團練使)
고려 제6대 성종 14년(995)에 담주(潭州) 도단련사(都團練使)로 하였다.
·얼마 후-나주(羅州)에 붙임
담양(潭陽)으로 고쳐 나주(羅州)에 붙이다.
·고려 명종 때-감무(監務)를 둠
고려 제19대 명종 2년(1172) 감무(監務)를 두다.
·고려 공양왕 때-율원현(栗原縣) 겸임
고려 제34대 공양왕 3년(1391)에 율원현(栗原縣)을 겸임하였다. 율원현은 지금의 금성면 (일대.)
·조선 태조 때-군(郡) 승격
조선 태조 4년(1395)에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본향이라 하여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 정종 때-부(府)로 승격
조선 제2대 정종 원년 (1399)에 중궁 김씨의 어머니 본향이라 하여 부(府)로 승격하였다.
·조선 태종 때-도호부사(都護府使)가 됨
조선 제3대 태종 13년(1413)에 예에 따라 도호부사(都護府使)가 되었다.
·조선 영조 때-현(縣)과 군(郡)으로 강등과 복구 거듭
조선 제21대 영조 4년(1728)에 현(縣)으로 강등, 같은 14년(1738)에 군(郡)으로 복구, 같은 38년(1762)에 또 현으로 강등, 같은
48년(1772)에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 고종 때-남원부(南原府) 관할
조선 제26대 고종 32년(1895)에 남원부(南原府) 관할의 군이 되어, 동변(東邊), 무이동(無伊洞), 정석(貞石), 답곡(畓穀), 고지산
(高之山), 서변(西邊), 목산(木山), 산막곡(山幕谷), 마입곡(馬入谷), 대곡(大谷), 갈마곡(葛馬谷), 우치(牛峙), 기곡(基谷), 용
천(龍泉), 천동(泉洞)의 15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 때-구역 관할 개편
1914년 3월 1일, 창평군(昌平群) 일원과 장성군(長城郡)의 갑신면(甲申面), 광산군(光山郡)의 갈전면(葛田面), 대치면(大峙面)을
편입하였다.
·군면(郡面) 폐합- 13면 139리로 개편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郡面) 폐합에 따라 창평군(昌平郡)의 군내(郡內), 가면(加面), 서면(西面), 고현내(古縣內), 북면(北面), 내
남(內南), 외남(外南), 대면(大面), 덕면(德面), 장북(長北), 장남(長男), 동서(東西)의 12개 면과 광주군(光州郡)의 갈전(葛田)
, 대치(大峙)의 2개 면과 장성군 의 갑향면(甲鄕面) 및 북하면(北下面)의 적암(赤岩), 대정(大井) 일부와, 동복군(同福群) 외북면
(外北面)의 반곡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 구암, 월산, 금성, 용면, 무면, 정면, 평창, 고서, 남면, 대덕, 수북, 대전의
13면, 139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일제 후기-1면 줄여 12면
1932년 4월 1일, 13면을 12면으로 1면을 줄이다. 무면(武面)과 정면(貞面)을 합하여 무정면(武貞面)으로 하고, 구암면(九岩面)을
봉산면(鳳山면)으로 고쳐서 12면으로 하였다.
·광복 직전-담양면의 읍 승격으로 1읍 11면
1943년 9월 1일, 담양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담양읍(潭陽邑), 고서면(古西面), 금성면(金城面), 남면(南面), 대덕면(大德面), 대전
면(大田面), 무정면(武貞面), 봉산면(鳳山面), 수북면(水北面), 용면(龍面), 월산면(月山面), 창평면(昌平面) 등 1읍, 11면이 되
었다.
·1983년-읍·면의 관할 조정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담양의 산천
&각 읍면의( 내력)
① 담양읍(潭陽邑)
·조선시대-담양군의 서변면(西邊面)
담양 읍내 서쪽이 되어 서변면(西邊面)이라 했던 곳이다. 시산(匙山), 고산(高山), 사미(四美), 외천(外川), 마내(馬內), 마외(馬
外), 천변(川邊), 봉산(峯山), 만성(萬成), 백동(柏洞), 신기(新基), 누문(樓門), 간리(間里)의 1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담양군 담양면 ※ 9개 리 관할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 폐합 따라 동변면(東邊面)의 남산(南山), 동정(東亭), 향교(鄕校), 취영(取英), 광동(廣洞), 객사(客
舍), 북내(北內), 북외(北外), 부중(府中), 간동(澗洞), 마내(馬內), 마외(馬外), 마구(馬口), 북우(北右), 득삼(得三), 지침(紙
砧), 삼거(三巨)의 17개 동리와, 무면(武面)의 향백동(香柏洞) 일부와 목면(木面)의 두곡리(斗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담양면(潭陽
面)이라 해서 남산, 향교, 객사, 지침, 양각, 담주, 만성, 백동, 천변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3년-읍으로 승격
1943년 9월 1일, 면(面)에서 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읍 관할 구역 확장 ※ 18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봉산면의 강정리(江爭里), 무정면의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 금성면의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 학동리(鶴洞里), 월산면의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금성면
남쪽-무정면과 봉산면
서쪽-월산면
북쪽-월산면
② 고서면(古西面)
·조선시대-창평군의 고현내면(古縣內面)
옛 고을이 있어서 '고현내면'이라 했던 곳이다. 분향(分香), 용대(龍臺), 고읍(古邑), 덕촌(德村), 죽림(竹林), 신량(新良), 삼산
(三山), 성산(聲山), 평촌(坪村), 광산(廣山), 하북(下北), 강정(江亭), 교촌(校村), 운현(雲峴)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고서면(古西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서면(西面)의 분토(粉土), 원이(院以), 월곡(月谷), 주평(舟坪), 내보(內甫), 외보(外甫), 금
단(金丹), 노채(蘆菜)의 8개 동리와 북면(北面)의 연동(蓮洞), 후산(後山), 상덕(上德), 운월(雲月), 동산(東山), 성덕(盛德), 원
등(院嶝), 하유(下維), 주산(舟山)의 9개 동리와 우면(牛面)의 장산(長山), 상동(上洞), 강정(江亭) 일부와 내남면(內南面)의 학
미동(鶴尾洞) 일부와 가면(加面)의 하산(下山)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 고서면(古西面)이라 했
던 곳이다. 원강, 주산, 보촌, 금현, 분향, 구읍, 성월, 교산, 산덕, 동운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창평면과 남면
서쪽-광주시
남쪽-광주시
북쪽-봉산면
③ 금성면(金城面)
·조선시대-담양군 고지산면(高之山面)
고지산(高之山) 밑이 되어 고지산면(高之山面)이라 하여, 문암(文岩), 주진(舟津), 부곡(釜谷), 평신기(平新基), 행정(杏亭), 영
월(迎月), 봉서(鳳棲), 장항(獐項), 비내(飛內), 와룡(臥龍), 시목(枾木), 덕성(德城), 손곡(巽谷), 산이천(山伊川), 대곡(帶谷)
, 장재(長財), 가라곡(加羅谷), 봉황(鳳凰), 원율(原栗), 오평(五坪), 매곡(梅谷), 노천(盧川), 외추(外楸)의 23개 동리를 관할하
였다.
·일제 때-금성면(金城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천동면(泉洞面)의 금월(錦月), 장은(長隱), 연화촌(蓮花村), 삼만(三萬), 선계(仙界), 내동(內
洞), 오정(梧丁), 석현(石峴), 무림(茂林), 내천(內泉), 외천(外泉), 봉곡(蜂谷), 대성(大成)의 13개 동리와 용천면(龍泉面)의 정
각(正角), 양지(陽地), 치등(峙嶝)의 3개 동리와 각 일부를 편입하여 금성산(金城山) 밑이 되어 금성면(金城面)이라 해서 석현,
금월, 삼만, 원천, 대성, 원율, 금성, 덕성, 봉서, 대곡, 외추, 봉황, 학동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금월리(錦月里), 삼만리(三萬里), 학동리(鶴洞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전북 순창군 금과면
서쪽-월산면과 담양읍
남쪽-무정면
북쪽-용면과 순창군 팔덕면
④ 남면(南面)
·조선시대-창평군의 외남면(外南面)
창평 읍내 남쪽이 되어 외남면(外南面)이라 했던 곳이다. 수구(守口), 무동(武洞), 구룡(九龍), 석계(石溪), 망월(望月), 쌍룡(雙
龍), 용연(龍淵), 구산(九山), 장단(長丹), 인암(麟岩), 혈암(穴岩), 청촌(淸村), 자창(自唱), 화암(花岩), 학항(鶴項), 연풍(連
豊)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남면(南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남면(內南面)의 개선(開仙), 외지(外芝), 학미(鶴尾), 지석(支石), 지곡(芝谷), 산음(
山陰), 연천(燕川), 취연(吹連), 반석(盤石), 정곡(鼎谷), 사봉(士峯), 경상(京相), 환암(環岩)의 13개 동리와 군내면(郡內面)의
외동(外洞)과 광주군(光州郡) 석제면(石堤面)의 덕의리(德義里) 일부와 같은 군 상대석면(上大石面)의 당촌(唐村), 평촌(坪村)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남면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학선, 지곡, 연천, 정곡, 경상, 무동, 만월, 구산, 인암, 가암, 풍암, 외
동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과 화순군 북면
서쪽-광주시
남쪽-화순군 서면
북쪽-대덕면과 창평면
⑤ 대덕면(大德面)
·조선시대 창평군 대면(大面)
창평군의 지역의 대면(大面)으로, 입석(立石), 등갈(等葛), 사창(社倉), 소산(小山), 대산(大山), 장동(獐洞), 비차(飛 ), 원효(
元孝), 가흥(佳興), 상운(上雲), 하운(下雲)의 11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덕면(大德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덕면(德面)의 시목(枾木), 당촌(堂村), 무월(撫月), 요곡(要谷), 성신(聲新), 내문(內門), 외
문(外門), 원기(元基), 학동(學洞), 옥천(玉泉), 수곡(水谷), 청운(靑雲), 소지(所之), 용대(龍臺), 상갈(上葛), 하갈(下葛), 송
산(松山), 운산(雲山), 대서산(大西山)의 19개 동리와 외남면(外南面)의 입석리(立石里)와 동복군(同福郡) 외북면(外北面)의 반곡
리(盤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면(大面)과 덕면(德面)의 이름을 따서 대덕면(大德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입석, 매산, 장
산, 비차, 운암, 금산, 성곡, 문학, 용대, 갈전, 운산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오산면
서쪽-창평면
남쪽-남면과 화순군 북면
북쪽-무정면
⑥ 대전면(大田面)
·조선시대 광주군(光州郡)의 대치면(大峙面)
조선시대 광주군의 지역으로서 대치(한재) 밑이 되어 대치면(大峙面)이라 했던 곳이다. 중옥(中玉), 문내(門內), 금곡(金谷), 용
동(龍洞), 서옥(西玉), 신촌(新村), 환인(環印), 청룡(靑龍), 응기(應基), 망화(望化), 효례(孝禮), 대아(大雅), 화암(花岩), 평
장(平章), 시목(枾木)의 16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대전면(大田面) ※ 12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갈전면(葛田面)의 월인(月印), 본상(本上), 본하(本下), 강의(講義), 태암(台岩), 신룡(新龍)
의 5개 동리와 삼소지면(三小旨面)의 해산리(海山里) 일부와 장성군 갑향면(甲鄕面)의 갑성(甲城), 옥동(玉洞), 학전(鶴田), 기강
(基岡), 주동(舟洞), 옥산(玉山), 덕산(德山), 대성(大成), 행정(杏亭), 소두(梳頭), 사성(四聖), 나곡(羅谷), 내동(內洞), 후동
(後洞), 노은(魯隱), 대산(臺山)의 17개 동리와 같은 군 외동면(外洞面)의 청룡리(靑龍里) 일부를 병합하여 대치(大峙)와 갈전(葛
田)의 이름을 따서 대전면(大田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월본, 강의, 태목, 중옥, 서옥, 응룡, 대치, 평장, 성산, 행성,
갑향, 병풍의 12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수북면과 봉산면
서쪽-장성군 진원면과 장성읍
남쪽-광주시
북쪽-수북면과 장성군 북하면
⑦ 무정면(武貞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무이동면(武伊洞面) 또는 무면(武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촌(新村), 반룡(盤龍), 용주(龍珠), 봉서(鳳棲),
영천(靈泉), 죽산(竹山), 오봉(五峯), 오현(五鉉), 계동(桂洞), 운산(雲山), 오룡(五龍), 외당(外堂), 성덕(成德), 서정(西亭),
중리(中里), 도리(道里), 칠전(漆田), 동산(動産), 봉안(奉安), 구안(龜安), 술지(述只), 수문(守門), 기동(基洞)의 23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목면(木面) ※ 8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木面)의 두곡(斗谷), 도고정(都古亭)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반룡, 영천, 오봉, 오계, 오룡
, 성도, 동산, 봉안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2년-무정면(武貞面)
1932년 지방 행정 구역 조정에 의하여 정면(貞面)의 전역(안평, 덕곡, 서흥, 정석, 평지, 동강, 오례 7개 리)을 병합하여 무면(武
面)과 정면(貞面)의 이름을 따서 무정면(武貞面)이라 하여 15개리를 관할하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3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오계리(五桂里), 반룡리(盤龍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곡성군 옥과면과 오산면
서쪽-봉산면
남쪽-대덕면과 평창면
북쪽-담양읍과 금성면
⑧ 봉산면(鳳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두면(豆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두면(豆面)이라 했던 곳이다. 연동(淵洞), 죽림(竹林), 삼지(三支), 신곡(新谷), 상덕(上德), 방축
(防築), 탄금(彈琴), 천수(泉水), 구암(九岩), 학동(鶴洞), 면앙정( 仰亭), 마항(馬項), 서봉(棲鳳), 곡정(曲丁)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구암면(九岩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목면(목산면)의 강쟁(江爭), 두곡(斗谷), 대추(大秋), 도고정(都古亭), 신기(新基)의 5개 동리
와 우면(우치면)의 양지(陽地), 월전(月田), 강정(江亭), 화평(華平), 오산(五山), 구미(龜尾), 봉학(鳳鶴), 와우(臥牛), 광신(光
新), 마산(馬山), 송산(松山), 유산(柳山)의 12개 동리와 창평군(昌平郡) 장남면(長南面)의 정중리(井中里), 관동리(關洞里) 일부
와 광주군(光州郡) 우치면(牛峙面)의 학림(鶴林), 회룡(回龍)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암(기곡리)의 이름을 따서 구암면(九岩面)
이라 하여 강쟁, 대추, 삼지, 연동, 기곡, 신학, 제월, 양지, 와우, 유산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31-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변경
1931년 4월 1일, 면이름을 봉산면(鳳山面)으로 고쳤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9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강쟁리(江爭里)가 담양읍으로 들어갔다.
〈인접 지역〉
동쪽-무정면과 창평면
서쪽-대전면과 수북면
남쪽-고서면과 광주시
북쪽-월산면과 담양읍
⑨ 수북면(水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장북면(長北面)
조선시대 창평군(昌平郡)의 지역으로서 장평부곡(長平部曲)의 북쪽이 되어 장북면(長北面)이라 했던 곳이다. 송정(松亭), 행정(杏
亭), 대방(大舫), 포박(浦泊), 강동(江洞), 삼인(三人), 와룡(臥龍), 오정(梧亭)의 9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수북면(水北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남면(長南面)의 정중(井中), 금구(金九), 개동(開東), 남산(南山)의 5개 동리와 동서면(東西面)
의 상촌(上村), 나산(羅山), 신월(新月), 신복(新福), 고대(古大), 평촌(坪村), 성산(城山), 궁암(弓岩), 대흥(大興), 화성(花城
), 월계(月桂), 동장(東庄), 월산(月山), 회룡(回龍), 신정(新亭)의 16개 동리와 광주군(光州郡) 갈전면(葛田面)의 두동(斗洞),
용정(龍井), 경호(鯨胡), 궁산(弓山), 구암(龜岩), 신기(新基), 주평(舟坪)의 7개 동리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황덕(黃德), 신기
(新基)의 각 일부와 부면(夫面)의 남산리(南山里) 일부와 두면(豆面)의 곡정리(曲丁里) 일부와 목면(木面)의 미산(尾山), 동장(東
庄)의 각 일부와 고면(高面)의 가량(加良), 운연(雲淵), 구연(龜淵), 일부와 갑향면(甲鄕面)의 운산(雲山), 주동(舟洞), 기강(基
岡)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영산강 북쪽이 되어 수북면(水北面)이라 해서 담양군에 편입하여 두정, 궁산, 대방, 오정, 정중, 황금
, 개동, 남산, 나산, 고성, 대흥, 풍영, 주평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봉산면
서쪽-대전면
남쪽-봉산면
북쪽-월산면
⑨ 용면(龍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용천동면(龍泉洞面)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용못(龍淵)이 있어서 용천동면(龍泉洞面) 또는 용면(龍面)이라 했던 곳이다. 대흥(大興), 분통(粉桶), 용평
(龍平), 소천치(小天峙), 대천치(大天峙), 세룡(細龍), 용동(龍洞), 사거(四距), 견양(牽羊), 복룡(伏龍), 월계(月桂), 월암(月岩
), 신령(新令), 월성(月星), 진수(進水), 청연(淸淵), 부흥(復興), 낙천(樂天), 구암(九岩), 성내(城內), 신정(新正), 도림(道林
), 상월(上月), 태월(台月), 삼태(三台), 추성(秋城), 치등(峙嶝), 서평(西坪), 장찬(長贊), 박곡(泊谷), 매월(梅月), 통천(桶泉
)의 32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 용면(龍面) ※ 10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천면(泉面)의 신흥(新興), 두지(斗支), 오정(梧丁) 일부를 병합하여, 용연, 용치, 월계, 청흥, 도
림, 쌍태, 추성, 두장, 통천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76년 담양호 담수로 지역 개편 ※ 8개 리 관할
1976년 10월 14일 준공된 담양호(潭陽湖)로 말미암아 용면의 청흥리(淸興里), 산성리(山城里) 2개 리가 완전히 물로 들어가 청흥
리의 남은 지역을 용연리에, 산성리의 남은 지역을 도림리에 각기 편입하여 8개 리로 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팔덕면
서쪽-월산면과 순창군 복흥면
남쪽-금성면과 월산면
북쪽-순창군 쌍치면
⑪ 월산면(月山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산막곡면(山幕谷面)
조선시대 담양군의 지역으로서 산막곡면(山幕谷面) 또는 산면(山面)이라 했던 곳이다. 신계(新溪), 신평(新平), 도동(道洞), 용금
(龍錦), 중방(中方), 월곡(月谷), 월평(月平), 단사(丹砂), 신양(新陽), 왕산(旺山), 대례(大禮), 송정(松亭), 월산(月山), 동산
(東山), 화방(化方)의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월산면(月山面) ※ 13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광면(廣面)의 산정(山亭), 사암(四岩), 광덕(廣德), 월천(月川), 개양(開陽), 신기(新基), 오성(五
星), 군수(郡守), 내동(內洞), 월계(月桂), 농암(籠岩), 옥산(玉山), 장원(壯元), 기룡(起龍), 남계(南溪), 능동(陵洞), 홍암(紅
岩), 장재(長財)의 18개 동리와 고면(高面)의 봉명(鳳鳴), 마산(馬山), 회룡(回龍), 가산(佳山), 구련(龜蓮), 외다(外茶), 동다(
東茶), 서다(西茶), 사미(史美)의 9개 동리와 천면(泉面)의 오정리(梧丁里)와 서면(西面)의 만성(萬城), 시산(匙山)의 각 일부와
장성군 북하면(北下面)의 적암(赤岩), 대정(大井)의 각 일부와 창평군(昌平郡) 장북면(長北面)의 유곡(柳谷), 용산(龍山), 신평(
新平), 월송(月松), 가곡(柯谷), 죽림(竹林) 6개 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월산리(月山里)의 이름을 따서 월산
면(月山面)이라 하여 광암, 오성, 월계, 운교, 용암, 신계, 용흥, 중월, 월평, 월산, 화방, 가산, 삼다의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
였다.
·1983년-면 관할 구역 조정 ※ 10개 리 관할
1983년 2월 15일, 운교리(雲橋里), 삼다리(三茶里), 가산리(佳山里)를 담양읍에 편입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용면과 금성면
서쪽-장성군 북하면
남쪽-담양읍과 봉산면, 수북면,
북쪽-순창군 복흥면
⑫ 창평면(昌平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군내면(郡內面)
조선시대 창평군의 지역으로서 창평 읍내가 되어 군내면(郡內面)이라 했던 곳이다. 당곡(唐谷), 오산(梧山,) 양산(良山), 유촌(柳
村), 하소천(下素川), 상소천(上素川), 월량(月良), 용운(龍雲), 수곡(水谷), 용전(龍田), 부동(釜洞), 읍리(邑里), 본촌(本村),
보평(普坪)의 1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일제 때-창평면(昌平面) ※ 11개 리 관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면(加面)의 장전(長田), 장산(長山), 연화(蓮花), 덕치(德峙), 광암(廣岩), 조현(鳥峴), 부동(富
洞), 애교(艾橋), 화촌(華村), 상산(上山), 하산(下山), 의암(義岩), 죽항(竹項)의 13개 동리와 대면(大面)의 가흥(佳興), 화양(
華陽), 증산(曾山)과 북면의 내동(內洞), 성덕(盛德), 하유곡(下維谷), 신기(新基), 강촌(江村) 및 상유곡(上維谷), 운월(雲月),
상덕(上德)의 각 일부와 담양군 우면(牛面)의 창강리(滄江里) 일부를 병합하여 창평면(昌平面)이라 하여 담양군에 편입하여, 장화
, 광덕, 해곡, 유곡, 일산, 의항, 오강, 유천, 용수, 창평, 삼천의 11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인접 지역〉
동쪽-대덕면
서쪽-고서면과 봉산면
남쪽-남면
북쪽-무정면과 대덕면
*담양군의 여러 마을들
■ 산이름
·가랏등 `고서면 금현리
금현리 물레실 서남쪽에 있다. '가랏등', '가랫등'과 비슷한 이름으로 '갈라진 등성이'의 뜻을 지닌다.
·가쟁이 `월산면 월산리
월산리 동산 동북쪽에 있는 산이다. 갓처럼 생겼고 전해 온다. 그러나, '가장자리'의 뜻으로 정착된 이름으로 보인다.
·가짠둥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화봉 서쪽에 있다. '깐등'이 '산'이므로 '가장자리의 산'의 뜻을 갖는다.
·각산(각시산)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연기포 동북쪽에 있다.
·갈광매 `용면 용치리
용치리 큰부래기 남쪽에 있다. '갈기진 산'의 뜻을 지닌다.
·갈미봉 `고서면 금현리 `고서면 분향리
금현리의 갈미봉은 독징이 남쪽에 있다.
분향리의 갈미봉은 백정 남쪽에 있다. 갈미(갈모) 형국이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그보다는 '갈래로 뻗은 산'의 뜻을 지닌 듯
하다.
·감남걸 `남면 풍암리
꽃박굴 남쪽에 있다. 감나무가 있었다.
·감투봉 `용면 도림리
도림리 산성산 서쪽에 있는, 감투 모양의 산이라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강단산 `고서면 금현리
금현리 노채 동쪽에 있다.
·강징이 `봉산면 양지리
양지리 양쟁이 동북쪽에 있다. 강정자가 있었다.
·개알산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솔정지 동쪽에 있다. '물가의 아래쪽 산'의 뜻인 '개(가) 아래 산'의 뜻을 지닌 듯하다.
·갱기랏대 `월산면 신계리와 무정면 동산리 사이
순사말재 동쪽에 있다.
·거북뫼(龜山) `남면 구산리
구산리 작은말 남서쪽에 있다. 산 모양이 거북처럼 생겼다.
·거칠매 `월산면 오성리 `월산면 월계리
바위가 많아 산이 가칠어 보여 나온 이름으로, '거츨산', 거칠산' 등이 비슷한 이름이다.
오성리의 거칠매는 오줄 남쪽에 있다.
월계리의 거칠매는 장풍골 서쪽에 있다.
·건네까끔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학동 건너에 있다. '건네'는 '건너쪽'의 뜻이고, '까끔'은 '작은 산'의 뜻이다.
·걸망봉 `남면 가암리 `대덕면 갈전리
가암리의 걸망봉은 두뭇골 서남쪽에 있는데, 전에 이 곳이 바다로서 배를 맸다고 전해 온다.
갈전리의 걸망봉은 장군봉 남쪽에 있다.
·게걸봉 `남면 풍암리
풍암리 어생이 동쪽에 있다.
·고가지터(古家趾터)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장항 서쪽에 있다. 옛 집터가 있다.
·고대산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고도실 앞에 있다.
·고라이 `대전면 평장리
평장리 신광수 북쪽에 있다. 고라니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고비산(高飛山) `금성면 봉황리
금성면 봉황리와 무정면 봉안리 경계에 있다. 높이 462m이다.
·고산(鼓山,북산.) `남면 정곡리
→북산.
·고저리 `남면 구산리
구산리 거북뫼 서쪽에 있다. 산 모양이 조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고지메(고지매,고지산.高之山) `금성면 덕성리 `금성면 봉서리
덕성리의 고지메는 행정 뒤에 있는 산이다.
봉서리의 고지매는 좆박등 동쪽에 있는 산으로, 고지(곶.串)로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 산이름을 딴 '고지산면'이 있었다.
·공동산(메물대산) `고서면 고읍리
→메물대산.
·공청매(公廳매) `창평면 유천리
유천리 경동 동쪽에 있다. 공청이 있었다.
·관천봉 `용면 용연리
용연리 산밭등 남쪽에 있다. 갓 모양으로 생겼다.
·광단산 `고서면 금현리
금현리 노채 북쪽에 있다.
·광대봉 `고서면 산덕리
산덕리 호봉산 동남쪽에 있다.
·광대산(廣大山)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양산 동쪽에 있다. 당골에 살던 무당들이 광대놀이를 했다고 전해 온다.
·괘머리콧배기 `담양읍 백동리
백동리 새터 뒤에 있다. 고양이 대가리처럼 생겼다. '괘머리'는 '고양이 대가리'란 뜻이다.
·괴고리봉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동지산 남쪽에 있다. 지형이 괴고리(개구리) 형국으로 되었다.
·괴비산 `금성면 외추리 `대덕면 운암리
산이 괴비(고양이) 모양이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고 있으나, 산비탈이 급해서 '고비산'이던 것이 변한 이름으로 보인다.
외추리의 괴비산은 노천 동남쪽에 있다.
운암리의 괴비산은 큰새텃걸 동남쪽에 있다.
·구산(龜山, 거북뫼) `남면 구산리 `수북면 남산리
수북면 남산리의 구산은 남산 마을 동북쪽에 있다. →가북뫼
·구선봉(九仙峯)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용애골 북쪽에 있다.
·구시봉(국수봉) `창평면 외동리
→국수봉.
·구실매(옥산) `무정면 평지리
평지리 평지 북쪽에 있다.
·국수봉(國守峯) `창평면 외동리
창평면 외동리와 대덕면 입석리 경계에 있다. 높이 518m이다.
·국수봉(國守峯,구시봉) `창평면 외동리
외동리 외동 동북쪽에 있다. 조선시대애 나라에 일이 있으면 봉화를 올렸다고 전해 온다.
·국시몬당이 `용면 도림리
도림리 파랏골 북쪽에 있다. '몬당이', '몬댕이'는 '작은 산'의 뜻이다.
·궁굴너들 `남면 연천리
연천리 가매바우 서쪽에 있는 산, 너덜겅이 있다.
·권세남 `남면 정곡리
정곡리 평촌 남서쪽에 있다.
·금산(錦山) `무정면 동산리 `남면 연천리
무정면 동산리의 금산은 대덕면 금산리와의 경계에 있고, 높이 482m이다.
남면 연천리의 금산은 서남들꼴창 서쪽에 있다.
·금산(金山) `남면 지곡리
지곡리 남면 지곡리에 있는 작은 산이다.
·금산게 `용면 추성리
추성리 청룡등 서북쪽에 있다.
·금성산(金城山,산성산) `용면 도림리
→산성산.
·금정매 `창평면 유천리
유천리 매골 북쪽에 있다.
·깃대봉 `고서면 원강리 `수북면 대방리
원강리의 것은 대명산등 서쪽에 있고, 측량 표준기를 꽂았다.
대방리의 것은 북당골 북쪽에 있고, 역시 측량 표준기의 깃대를 꽂았다.
·까리산 `대덕면 매산리
매산리 새앙골 남서쪽에 있다. '가리산'과 비슷한 이름으로, '갈라진 줄기의 산'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깐치봉(鵲山峯) `남면 정곡리 `남면 연천리
정곡리의 것은 평촌 남쪽에 있고, 산까치가 알을 품은 것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연천리의 것은 외앗등 동남쪽에 있다. 작소형(鵲巢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깐치'는 '까치'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꼬두까끔 `대덕면 용대리 `무정면 성도리
용대리의 것은 작은꼴착 남쪽에 있다.
성도리의 것은 작은골짝 남쪽에 있는데, 광대들이 꼭두각시놀이를 했다고 전해 오며, 모양이 꿩 형국이어서 '꿩바탕'이라는 딴 이
름을 갖고도 있다.
·꼬치산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섬까끔 동북쪽에 있고, 꼬치(고추) 형국이다.
·꽃댕이 `대전면 중옥리
중옥리 중옥 서쪽에 있고, 참꽃이 많이 핀다 한다.
·꽃봉몰랭이 `무정면 봉안리
봉안리 술기 동쪽에 있고, 봄이면 봉우리에 참꽃이 많.
·꾀꼬리봉 `대덕면 금산리 `남면 만월리 `용면 용연리
금산리의 것은 망월봉 북쪽에 있다.
만월리의 것은 쌍룡촌 북쪽에 있고, 꾀꼬리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용연리의 것은 청수 서북쪽에 있는데, '꼬고리재'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꾀꼴봉 `남면 연천리
연천리 깐치봉 동남쪽에 있고, 산 봉우리가 꾀꼬리집과 같이 생겼다 한다.
·꿩바탕(꼬두까끔) `무정면 성도리
→꼬두까끔.
·나근매 `용면 용치리
용치리 건넘굴 동쪽에 있고, 산 모양이 나아가는 배처럼 생겼다고 하나, '낮은 산'의 뜻을 지닌 듯하다.
·낙천봉(樂天峯) `용면 용연리
용연리 낙천 뒤에 있다.
·난조봉 `남면 가암리
가암리 꽃밭등 북쪽에 있고, 전에 기생이 놀았다고 전해 온다.
·날평전 `대덕면 매산리
매산리 두끼바웃등 서쪽에 있다.
·남산(南山) `금성면 대성리 `봉산면 양지리
남쪽에 있는 산일 때 이런 이름이 많이 붙여진다. 서울의 남산, 경주의 남산 등을 비롯해서 전국에는 이런 이름의 산이 무척 많다
.
대성리의 것은 대성 남쪽에 있다.
양지리의 것은 새터 동남쪽에 있다.
·남산깽이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뒷매 서쪽에 있다.
·남산봉(南山峰)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남산깽이 서쪽에 있고, 원강리 남쪽이다. →남산
·남폿갓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 서봉 동남쪽에 있고, 일제 때 기찻길을 놓을 때 남포를 터뜨려 길을 냈다.
·노가리재 `창평면 유천리
창평면 유천리와 창평면 외동리 경계에 있고, 높이 441m이다.
·노리빠탕(노리뻔더리)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욍이버러지 남쪽에 있다.
·노리뻔더리(노리빠탕) `수북면 궁산리
→노리빠탕.
·노적봉 `금성면 금성리 `대덕면 매산리 `대전면 병풍리 `창평면 오강리 `창평면 용수리 `무정면 평지리
이러한 봉우리들은 산봉우리나 산꼭대기의 바위가 노적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에 무척 많으며, 난시(亂時)
에 적을 물리쳤다는 사실과 관련하는 전설을 간직한 것도 많다.
금성리의 것은 금성 북쪽에 있다.
매산리의 것은 소신봉 남쪽에 있다.
병풍리의 것은 '티봉'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오강리의 것은 메주바웃골 동쪽에 있다.
용수리의 것은 묵은재 서쪽에 있다.
평지리의 것은 소신봉 남쪽에 있다.
·뇌산(雷山,베락매) `월산면 월평리
→베락매.
·뉘에머리 `금성면 원천리 `대덕면 매산리
이러한 봉우리는 대개 그 모양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 '뉘에'는 '누에'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원천리의 것은 건널굴 남쪽에 있다.
매산리의 것은 북지기 서쪽에 있다.
·느릅몬당 `용면 용연리
용연리 죄악실 동쪽에 있고, 길게 느리하니(늘어져) 있다. '몬당'은 '산(山)'이다.
·다랫등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 감태바우 북동쪽에 있고, 모양이 다래처럼 생겼으며, 다래가 많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나, 본래 '달애등(달앳등)'으
로 단순히 '산 등성이'의 뜻을 지닌 듯하다. '달'은 '산'의 옛말이다.
·다리깃산 `대덕면 운암리 `무정면 봉안리
이 이름은 원래 '달깃산(닭잇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운암리의 것은 무짓등 동쪽에 있다.
봉안리의 것은 술지 동쪽에 있고, 산 위로 달이 떠오른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달구명당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폿죽바우 동쪽에 있고,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담양산(潭陽山,대명산등) `고서면 원강리
→대명산등.
·담주봉(潭州峯,성재) `무정면 오봉리
`무정면 오봉리 새까끔 남쪽에 있고, 고려 때 담주군이 있었다.
·당묏산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덕실 북서쪽에 있고, 당산제를 지내던 당산나무가 있었다.
·당살매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진등 남쪽에 있고, 당산나무가 있다.
·대명산등(潭陽山)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원유동 북쪽에 있고, 옛 창평면이었을 때 이 산은 담양에 속했다고 전해 온다. 송강정이 있다.
·대팽이골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신양 동쪽에 있는 넓은 골짜기.
·댈깔꾸막 `금성면 원율리
원율리 오평 북쪽에 있고, 가팔라서 오르기가 되다 한다.
·덕재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 대덕면 금산리와의 경계에 있다. 높이 367m이다.
·덜머리 `창평면 의항리
의항리 바웃걸 동쪽에 있다. '들 쪽의 산'의 뜻을 지닌 듯하다. '덜'은 '들'로 보이며, '머리'는 '산'이다.
·도루매 `무정면 정석리
정석리 능고개 북쪽에 있고, 동그랗게 생겼다.
·도리봉 `대덕면 갈전리 `남면 가암리
갈전리의 것은 기우산 북쪽에 있다. 가암리의 것은 준창봉 북쪽에 있다.
·도마산(陶馬山) `월산면 월평리
월평리 월평리와 용암리 사이에 있다.
·도매산 `월산면 월산리
월산리 월산 서남쪽에 있다.
·도치바탕 `대덕면 운암리 `무정면 봉안리
운암리의 것은 독짐골 서북쪽에 있고, 지형이 도치(도끼)처럼 생겼다. 봉안리의 것은 돗짐똑골짝 서북쪽에 있다고, 지형이 도끼
형국으로 되었다. '도치'는 '도끼'의 옛말이다.
·독떼바우몬뎅이(독떼바우산) `창평면 용수리
→독떼바우산.
·독떼바우산(독떼바우몬뎅이)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용운 동쪽에 있다. '독떼바우'라는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독숨묏거리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보름독보 남쪽에 있고, 큰 돌이 숨어 있다고 전해 온다.
·동녘걸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 장산리의 것은 노랑골 남쪽에 있다.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의 것은 동산 동쪽에 있다.
·동지산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사장거리 남쪽에 있고, 활 쏘고 난 뒤 이 곳에서 동지(술자리)를 베풀었다고 전해 온다.
·된까끔 `고서면 산덕리
산덕리 부엥바우 동쪽에 있고,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되다고 전해 온다. '된'은 '비탈이 심한'의 뜻을 갖는다.
·된깔끄막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노갈재 동쪽에 있고, 경사사 심해서 산에 오르기가 되다 한다.
·두견산 `창평면 의항리
의항리 장산 동쪽에 있다.
·두구봉 `수북면 궁산리-월산면 용흥리
수북면 궁산리와 월산면 용흥리 경계에 있고, 높이 535m이다.
·뒤안산 `무정면 서흥리 `남면 정곡리 `대덕면 매산리
서흥리의 것은 서흥 뒤에 있다.
정곡리의 것은 평촌 서쪽에 있고, 마을 뒤가 된다.
매산리의 것은 한새울 뒤에 있다.
·뒷까끔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강정자 뒤에 있다.
·뒷동산 `남면 연천리
연천리 찰건넘골 서쪽에 있다.
·뒷매(후산.後山) `월산면 월계리 `고서면 원강리 `고서면 산덕리
월계리의 것은 모갈모팅이 남쪽에 있고, 복정 뒤가 된다.
원강리의 것은 원유동 뒤에 있다.
산덕리의 것은 후산 뒤에 있고, 옛 창평현의 뒤가 된다.
·뒷몰랑 `무정면 성도리
성도리 성덕 뒤에 있다.
·뒷재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수암산 동쪽에 있다.
·등잔거리 `남면 인암리 `고서면 고읍리
인암리의 것은 인암 서쪽에 있고, 등잔거리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고읍리의 것은 신양 동북쪽에 있고, 역시 등잔걸이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똥매(똥매산) `무정면 안평리 `금성면 외추리 `담양읍 반룡리
→마을 이름의 '똥매
'안평리의 것은 신안동 남쪽 들 가운데 있다.
외추리의 것은 조강정이 위쪽 들에 있는 작은 산이다.
반룡리의 것은 용주 서쪽 들 가운데에 있는 작은 산이다.
·똥뫼등 `남면 구산리
구산리 고저리 서쪽 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산이다. →똥매
·뜅재 `봉산면 신학리
신학리 망월봉 북쪽에 있다.
·만니봉(망지봉) `용면 쌍태리
쌍태리 선녀굴 서쪽에 있다.
·말뚝산 `대덕면 성곡리 `무정면 오봉리 `무정면 영천리
성곡리의 것은 새까끔 남쪽에 있다.
오봉리의 것은 오봉 동쪽에 있고, 영천이 소 형국인데 그 말뚝이라고 전해 온다.
영천리의 것은 점뒷산 남쪽에 있고, 모양이 말뚝처럼 생겼다.
·말잔등 `대덕면 운암리
운암리 맹건쟁이 동남쪽에 있고, 지형이 말 잔등 처럼 밋밋하게 되었다.
·망바우산 `남면 가암리
가암리 가남정이 남쪽에 있고, 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망월봉(望月洑) `남면 만월리 `대덕면 금산리 `봉산면 신학리
만월리의 것은 망월촌 뒤에 있고, 옥토망월형(玉 望月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금산리의 것은 금산 동쪽에 있고, 정월 보름에 달을 바라본다.
신학리의 것은 불당골 동쪽에 있고, 신학의 동쪽이므로 산 위로 달이 떠오는 것을 본다.
·망지봉(望地峯,만니봉) `용면 쌍태리
→만니봉.
·매물산(목맥산.木麥山,몽매산) `고서면 산덕리
산덕리 후산 동쪽에 있다.
·매봉 `창평면 광덕리 `남면 구산리 `고서면 금현리 `남면 만월리 `남면 무동리 `대전면 병풍리 `고서면 성월리 `용면 쌍태리 `
무정면 안평리
`남면 연천리 `무정면 오봉리 `금성면 외추리 `무정면 정석리 `수북면 주평리 `무정면 평지리 `남면 풍암리
광덕리의 것은 창평면 광덕리와 대덕면 비차리 경계에 있다.
구산리의 것은 방아재 날아가는 매 형국으로 되었다고 전해 온다.
금현리의 것은 노채 마을 서쪽에 있다.
만월리의 것은 꾀꼬리봉 남쪽에 있다.
무동리의 것은 무동촌 남서쪽에 있고, 매가 깃들었다고 전해 온다.
병풍리의 것은 내동 서쪽에 있다.
성월리의 것은 사직산 남쪽에 있고, 지형이 나는 매처럼 되어 이 이름이 나왔다고 전해 온다.
쌍태리의 것은 초분골 서쪽에 있고, 매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안평리의 것은 '채알봉'으로도 불린다.
연천리의 것은 연천 남쪽에 있다.
오봉리의 것은 담주봉 남쪽에 있다.
외추리의 것은 노천 마을 서북쪽에 있고, 지형이 나는 매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정석리의 것은 넉바웃골 서남쪽에 있다.
주평리의 것은 배매산 북쪽에 있고, 매처럼 생겨 나온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평지리의 것은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풍암리의 것은 학정 북쪽에 있다.
·매봉산 `수북면 두정리 `무정면 성도리 `대덕면 용대리
'매봉'은 대개 한자로 '응봉(鷹峰)'으로 표기하면서 '매(鷹)'와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이 이름은
대개 단순히 '산의 봉우리'란 뜻으로 붙여진 경우가 많다. '매(뫼)'가 산이기 때문이다. 산이름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이 '매
봉' 또는 '응봉(鷹峰)'이다.
두정리의 것은 경산 동쪽에 있고, 매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성도리의 것은 파랏골 동쪽에 있고, 지형이 나는 매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용대리의 것은 파랏골 동쪽에 있다.
·매산봉 `고서면 주산리
주산리 주평 남쪽에 있고, 매산바우가 있다.
·메물대산(공동山)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화약골 동쪽에 있다.
·메물산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양산 서쪽에 있고, 메밀밭이 많다.
·명봉산(鳴鳳山) `남면 지곡리
지곡리 장원봉 남쪽에 있다.
·모퉁이산 `무정면 성도리 `대덕면 용대리
성도리 성도리의 것은 산태바웃골 북쪽 모롱이에 있다.
용대리의 것은 산태박골 북쪽 모퉁이에 있다.
·목맥산(木麥山,몽매산, 매물산) `고서면 산덕리
→매물산.
·무리봉 `무정면 정석리
정석리 송곡바우 남쪽에 있다.
·무짓등몰랭이 `무정면 봉안리
봉안리 새빗재몰랭이 남쪽에 있다.
·뭉게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메주바웃골 동쪽에 있고, 창평과 남면의 경계에 있는데, 골짜기에 길이 나있어 왕래가 잦고 지형이 문처럼 생겨서 나온 이
름이라고 한다.
·미리산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동매기골 동쪽에 있다.
·미산(尾山) `수북면 풍수리
풍수리 강림 동북쪽에 있고, 넓은 들 끝에 얕고 작게 솟아있어 마치 꼬리와 같다.
·미침배기 `수북면 고성리
고성리 신월 북쪽에 있다.
·민새알 `대전면 평장리
평장리 고라이 동쪽에 있다.
·바람모퉁이 `월산면 화방리
화방리 봉명동 남쪽에 있고, 북풍바지이다.
·박두봉(박두우방)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방아쟁이 동쪽에 있다.
·박두우방(박두봉)`무정면 동강리
→박두봉.
·발산(鉢山) `남면 지곡리
지곡리 바르뫼 동쪽에 있고, 마을 뒤가 된다.
·방애까리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홍동굴 남쪽에 있고, 산세가 디딜방아처럼 생겼다.
·방주간몰랑 `용면 도림리
도림리 짓등몰랑 서쪽에 있다.
·방청매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밭등 북쪽에 있고, 풀이 좋아 소를 많이 내다 맸다.
·배나뭇걸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 폭깍시암 서남쪽에 있고, 전에 배나무가 많았다.
·배매산 `수북면 주평리
주평리 구련 뒤에 있고, 배 매는 형국으로 되었다.
·배암산 `담양읍 양각리
양각리 사미정 북쪽에 있고, 배암처럼 길고 꾸불꾸불하며, 뱀이 많다고 전해 온다.
·벌매(蜂山)`담양읍 담주리
담주리 벌매 뒤에 있고, 지형이 벌통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범굴산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에 있는 산으로 범굴이 있다고 전해 온다.
·베락매(雷山) `월산면 월평리
월평리 월평 북서쪽에 있다.
·봉산(蜂山,벌매) `담양읍 담주리
→벌매
·부신당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방청매 서쪽에 있다.
·북덕산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선계 동쪽에 있다.
·북산(鼓山) `남면 정곡리
정곡리 사봉실 남서쪽에 있다.
·북산(종산.鐘山) `남면 무동리
무동리 무동촌 북서쪽에 있고, 북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분산등(分山嶝) `남면 학선리
학선리 개선동 북쪽에 있다.
·분통꺼리 `대전면 행성리
행성리 상자바우 남쪽에 있고, 옥녀봉의 옥녀가 화장을 하는 곳이라고 전해 온다.
·불묵골몬당이 `용면 도림리
도림리 국시몬당이 서쪽에 있다.
·불뭇등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 초장굴 남쪽에 있다.
·비뉘실 `용면 용연리
용연리 용평리 서남쪽에 있고, 옥녀의 비녀에 해당한다 한다.
·비락봉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학동 동남쪽에 있고, 비락(벼락)을 맞았다고 전해 온다.
·비리산 `용면 용연리
용연리 노리목 남쪽에 있다.
·빈태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솔다징이 동북쪽에 있고, 마을이 있었다.
·빕새머리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앞뫼 남쪽에 있고, 지형이 빕새(뱁새) 머리처럼 생겼다.
·뿍떡산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쇠정기 남쪽에 있다.
·사두산(巳頭山)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물방앗거리 북쪽에 있고, 뱀머리 처럼 생겼다.
·사이내(연기포)`금성면 봉서리
→연기포.
·사주동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 재너메 동북쪽에 있고, 사주 형국으로 되었다.
·사직산 `고서면 성월리
성월리 새터 서쪽에 있고, 창평 사직단이 있었다.
·산성산(山城山,金城山) `용면
`용면 도림리 산성리 남쪽에 있다.
·산정등 `고서면 고읍리 `고서면 분향리 `무정면 평지리
고읍리의 것은 새앙골 서쪽에 있고, 소산정이 있다.
분향리의 것은 외밭골 동쪽에 있고, 소산정이 있다.
평지리의 것은 노적봉 서쪽에 있다.
·삼바래이몬대이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독떼바우산 동쪽에 있고, 위가 평평하고 맞은 편 산이 마주 보이다.
·삼봉(三峯) `고서면 고읍리 `남면 지곡리
고읍리의 것은 신양 동남쪽에 있고, 봉우리가 셋이 있다.
지곡리의 것은 장원봉, 효자봉, 열녀봉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삼인산(三人山) `대전면 병풍리-
대전면 병풍리와 수북면 오정리 경계에 있고, 높이 564m이다.
·삼태봉(三太峯) `대덕면 금산리 `남면 만월리
금산리의 것은 매봉 남쪽에 있고, 큰 봉우리가 셋이 있다. 만월리의 것은 매봉 북쪽에 있고, 3개의 봉우리로 되었다.
·삽잿등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용운동 동북쪽에 있다.
·상건너리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곤담 동쪽에 있다.
·상투봉 `대전면 서옥리
서옥리 시리봉 동쪽에 있고, 상투바우가 있다.
·새까끔 `월산면 광암리 `무정면 동강리 `대덕면 성곡리 `무정면 오봉리
'동쪽의 산' 또는 '사이의 산'이란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다. '새'는 '동쪽' 또는 '사이'의 뜻을 지녔다.
광암리의 것은 진천등 동남쪽에 있다.
동강리의 것은 쟁기산 동쪽에 있다.
성곡리의 것은 요골 서쪽에 있다.
오봉리의 것은 말뚝산 남쪽에 있다.
·새빗재몰랭이 `무정면 봉안리
봉안리 수문동 동쪽에 있고, 지형이 새비(새우) 형국으로 되었다.
·새앙건네봉 `용면 통천리
통천리 매생이골 남쪽에 있다.
·샛까끔 `월산면 중월리 `금성면 덕성리
→새까끔
중월리의 것은 개빗골 북쪽에 있고, 큰 산 사이에 있다.
덕성리의 것은 덕성 북쪽에 있고, 소처럼 생겼다고 전해 온다.
·생적굴몬댕이(행굣골몬댕이) `고서면 고읍리
→행굣골몬댕이.
·서당까끔 `담양읍 향교리
향교리 토꾸재 동쪽에 있고, 밑에 서당이 있었다.
·서당매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뒷골 남쪽에 있고, 서당이 있었다.
·서산(西山) `담양읍 향교리
향교리 서우내 서쪽에 있다.
·설묏대이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덕실 동쪽에 있다.
·섬까끔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절뫼 남쪽에 있다. 들 가운데에 섬처럼 외로이 있다.
·성산(城山.成山) `대전면 성산리
성산리 성매 뒤에 있다.
·성재 `무정면 오봉리 `대덕면 성곡리
오봉리의 것은 '담주봉'으로도 불리고 있다.
성곡리의 것은 말뚝산 남쪽에 있고, 고려 때 성이 있었다.
·소두산(梳頭山) `대전면 갑향리
갑향리 소두말 뒤에 있다.
·소락산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와우 남쪽에 있다.
·소락산(송락산.松樂山) `봉산면 양지리
양지리 강정 남쪽에 있다.
·소반성국 `무정면 오봉리
오봉리 매봉 서쪽에 있고, 지형이 소반 형국으로 되었다.
·소신봉 `무정면 평지리 `대덕면 매산리
평지리의 것은 군시암 동북쪽에 있다.
매산리의 것은 군시암 동북쪽에 있고, 산이 우뚝 솟아 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솟은 봉우리'의 뜻인 '소슨봉(솟은봉
)'이 원이름일 것이다.
·소탕매 `고서면 분향리
분향리 관수정 북쪽에 있고, 지형이 소 형국으로 되었다.
·소태쟁이 `금성면 대곡리
대곡리 대실 서북쪽에 있다.
·솔다징이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깃대봉 남쪽에 있고, 정 철(鄭澈)이 벼슬을한 후 이 곳에 솔대(솟대)를 세웠다고 전해 온다.
·솔대봉 `월산면 오성리
오성리 거칠매 서남쪽에 있고, 솟대를 세웠다.
·솔청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와우 서쪽에 있고, 소나무가 많다.
·송락산(松樂山,소락산) `봉산면 양지리
→소락산.
·쇠꼬리명당 `대덕면 매산리
매산리 한새울 동쪽에 있고, 쇠꼬리 명당이 있다.
·수리봉 `창평면 용수리 `용면 용치리 `무정면 안평리
전국에는 '수리산', '수리봉' 등이 무척 많은데, 대개 새 종류의 '수리(독수리)'와 관련한 ``으로 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 '수리'는 '꼭대기'의 뜻을 지닌다. 지금의 말의 '정수리'의 '수리'도 그를 의미한다. 따라서, '수리봉'은 '(근처에서) 가장 높
은 봉우리'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용수리의 것은 월봉산 남쪽에 있다.
용치리의 것은 천치 서북쪽에 있고, 수리바우가 있다.
안평리의 것은 채알봉 남저쪽에 있다.
·수암산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꽃봉산 동쪽에 있다.
·수양산(首陽山,수항山)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산정리 동북쪽에 있다.
·수양재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무정덕곡리와 금성면 봉황리 경계에 있다.
·수항산(受降山,수양산) `대덕면 운산리
→수양산.
·순등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건네까끔 남쪽에 있다.
·순산 `대전면 평장리
평장리 화암 뒤에 있고, 지세가 순하다.
·술매(匙山) `담양읍 양각리
양각리 사미정 북쪽에 있고, 숟가락처럼 생겼다.
·쉰산 `봉산면 연동리
연동리 만덕재 동쪽에 있다.
·시리댕이 `용면 용연리
용연리 속강드래미 서쪽에 있고,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한다.
·시리봉
`금성면 금성리
`대전면 서옥리
`용면 용연리
이러한 이름의 산들은 대개 엎어 놓은 시리(시루)처럼 생겨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수리봉'과 같은 ``으로
봅이 좋을 듯하다. →수리봉
금성리의 것은 평신기 북쪽에 있다.
서옥리의 것은 큰민탈 북서쪽에 있고, 시리(시루)처럼 생겨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용연리의 것은 큰산밭골 북쪽에 있다.
·시리봉(주산.朱山)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땅나 북쪽에 있고, 시리(시루)를 엎어 놓은 형국이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하고 있다.
·시리산(증산.甑山,신랑봉) `월산면 화방리
→신랑봉.
·시리산 `월산면 월산리
월산리 동산 서남쪽에 있고, 시루처럼 생겼다.
·시봉산 `무정면 성도리 `대덕면 용대리
성도리의은 절산 동남쪽에 있다.
용대리의 것은 절산 동남쪽에 있고, 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말하고들 있다.
·시산(匙山,술매) `담양읍 양각리
→술매
·신글레까금 `용면 도림리
도림리 농바웃등 동쪽에 있다.
·신랑봉(新郞峯,시리산) `월산면 화방리-
월산리, 삼다리, 가산리 사이에 있고, 시리(시루)처럼 생겼다 한다.
·신청이 `고서면 금현리
금현리 지방바우 서쪽에 있다.
·쑤시깍금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서당골 북쪽에 있다.
·아래남산(下南山)`담양읍 남산리
남산리 남산 아래에 있다.
·안산 `용면 두장리
두장리 배깡이니실 북쪽에 있다.
·안산(案山) `남면 가암리 `대덕면 갈전리 `금성면 덕성리 `수북면 두정리 `금성면 봉서리 `고서면 산덕리 `고서면 성월리 `담양
읍 양각리 `남면 연천리 `월산면 오성리 `창평면 외동리 `용면 용연리 `고서면 원강리 `창평면 유천리 `무정면 평지리
산이 마을 앞에 있을 때, 그 산을 거의 일반적 명사와 같이 '안산(案山)'으로 부른다. 그러나, '안산' 중에는 '안쪽에 있는 산'의
뜻으로 붙은 경우도 많다. 흔히, 풍수적인 면과 관련을 짓는다. 풍수에서는 '안산(案山)'이 마을의 기(氣)를 잘 보호해 주는 산으
로 여기고 있다.
가암리의 것은 뒷골 앞에 있고, 청촌과 안대가 된다.
갈전리의 것은 갈밭 앞에 있고, 마을의 안대가 된다.
덕성리의 것은 영월 앞에 있다.
두정리의 것은 용정 앞에 있다. 마을의 안대가 된다.
봉서리의 것은 노리목 앞에 있다.
산덕리의 것은 뒷매 앞에 있고, 뒷매와 안대가 된다.
성월리의 것은 월전 동쪽, 앞에 있다.
양각리의 것은 양각리 마을 뒤에 있다.
연천리의 것은 바람모팅이 앞에 있다.
오성리의 것은 내동 앞에 있다.
외동리의 것은 국굴 앞에 있다.
용연리의 것은 용평 앞에 있다. 유천리의 것은 천젯등 앞에 있고, 유촌의 안대가 된다.
원강리의 것은 영마봉 북쪽에 있고, 원유동 앞이다.
유천리의 것은 천젯등 앞에 있는 산으로, 유촌의 안대가 된다.
평지리의 것은 평지 서남쪽에 있다.
·여시모리 `대덕면 성곡리 `무정면 영천리
'여시'는 '여우'의 사투리이고, '모리'는 '산'의 옛말이다.
성곡리의 것은 가미절골 남쪽에 있는데, 여시(여우) 머리처럼 생겼다 한다.
영천리의 것은 봉서리 남쪽에 있는데, 역시 여우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역마봉(驛馬峰,영마봉) `고서면 원강리
→영마봉.
·연기포(사이내)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사이내들에 있다.
·연대산(連岱山) `용면 용연리
용연리 범바우 님쪽에 있고, 연꽃처럼 생겼다 한다.
·연댕이깍금(우렁깍금) `창평면 오강리
→우렁깍금.
·연화봉(蓮花峰) `용면 두장리 `대덕면 매산리 `남면 인암리
두장리의 것은 두장천 동쪽에 있고, 연화도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매산리의 것은 중매 동쪽에 있는 산이다.
인암리의 것은 남면 인암리와 화순군 북면 외예리 경계에 있고, 높이 420m이다.
·열녀봉(烈女峯) `남면 지곡리
지곡리 효자봉 북서쪽에 있다.
·엿까끔 `대덕면 용대리
용대리 무네미고개 북쪽에 있다.
·엿깍금 `무정면 성도리
성도리 도동 북쪽에 있다.
·영마봉(역마봉)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당살매 남쪽에 있다.
·영천산(靈泉山) `창평면 광덕리 `무정면 영천리 `무정면 오봉리
광덕리의 것은 새고개 동북쪽에 있고, 영험한 샘이 있다 한다.
영천리의 것은 영천 마을 뒤에 있다.
오봉리의 것은 무정면 오봉리와 창평면 광덕리 경계에 있다.
·오장산 `용면 쌍태리
쌍태리 절굴 서남쪽에 있다.
·오장산(五將山) `용면 통천리
통천리 용면 통천리와 월산면 오성리 경계에 있다.
·옥녀봉(玉女峯) `봉산면 기곡리 `금성면 대성리 `무정면 동강리 `용면 용연리 `고서면 원강리 `금성면 원천리 `용면 추성리 `대
전면 행성리
풍수적으로 많이 붙는 이름이다. 대개 산봉우리 모양이 수려한 것에 이런 이름이 많이 붙는다. 전국에 아주 많은데, 근처의 '장군
봉(將軍峰)'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기곡리의 것은 탄금 앞에 있다.
대성리의 것은 대성리에 있다.
동강리의 것은 강정자 동쪽에 있다.
용연리의 것은 분통 동쪽에 있다.
원강리의 것은 분토동 서쪽에 있다.
원천리의 것은 내천 동북쪽에 있고,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추성리의 것은 왕실봉 서쪽에 있다.
행성리의 것은 수꿀 동쪽에 있다.
·옥산(玉山) `무정면 평지리 `대전면 서옥리
평지리의 것은 '구실매'라고도 한다. 서옥리의 것은 서옥산 동쪽에 있고, 구슬처럼 둥글고 작다.
·옥산까끔 `대덕면 성곡리 `무정면 오봉리
성곡리의 것은 소반성국 서북쪽에 있다. 오봉리의 것은 소반성국 서북쪽에 있고, 돛대처럼 생겼다 한다.
·옹지봉(집답峯) `금성면 원천리
원천리 당재 북쪽에 있다.
·와매(와산.臥山) `용면 추성리
추성리 와매 뒤에 있다.
·왕살미 `용면 두장리
두장리 웃구매논골 북쪽에 있다.
·왕실봉 `용면 추성리
추성리 몰바우 남쪽에 있다.
·욍이버러지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홍시나뭇골 위쪽에 있다.
·용골산 `대덕면 매산리 `무정면 평지리
매산리의 것은 쟁비산 서남쪽에 있다. 평지리의 것은 평지 서남쪽에 있다.
·용구산(龍龜山)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 심방골 북쪽에 있다.
·용두봉(龍頭峯) `봉산면 기곡리
기곡리 모산이 동쪽에 있고,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용머리재 `창평면 의항리
의항리 두견산 북동쪽에 있고, 지형이 용머리 형국이다.
·우렁깍금(연댕이깍금)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오산 서쪽에 있고, 연댕이란 사람의 산이다.
·월봉산(月峯山) `대덕면 운암리
운암리 대덕면 운암리와 창평면 용수리 경계에 있다.
·은드리 `창평면 유곡리
유곡리 침바탕 서쪽에 있다.
·자래봉 `대덕면 성곡리
성곡리 지신갱이 동쪽에 있고, 자래(자라)처럼 생겼다.
·작산봉(鵲山峯,깐치봉) `남면 연천리
→깐치봉.
·작살골몬댕이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대팽이골 동쪽에 있고, 지형이 작살처럼 생겼다.
·작은한데미 `용면 용연리
용연리 큰한데미 동쪽에 있고, 큰한데미보다 작다.
·장구매기 `대덕면 입석리
입석리 장태봉 서남쪽에 있고, 지형이 장구목 처럼 잘록하다.
·장구목 `수북면 오정리
오정리 서당터골 북쪽에 있고, 지형이 장구 목처럼 잘룩하게 되었다.
·장구목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중산골 동남쪽에 있고, 장구목처럼 잘록하다.
·장군봉(將軍峯) `대덕면 갈전리 `용면 용연리 `대전면 평장리
산 모양이 힘차 보일 때 이런이름이 많이 보인다. 전국에 아주 많은데, 근처의 '옥녀봉(玉女峰)'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갈전리의 것은 투구봉 남쪽에 있다.
용연리의 것은 장구목재 동쪽에 있고,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평장리의 것은 투구봉 남쪽에 있고, 장군대좌형이 있다고 전해 온다.
·장바우(코찌몰랑) `용면 도림리
→코찌몰랑.
·장원봉(壯元峯)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고서면 고읍리와 남면 학선리 경계에 있다.
·장지매 `대전면 중옥리
중옥리 비앙골 동쪽에 있다.
·장태봉 `대덕면 입석리
입석리 바구루매등 동쪽에 있고, 장태(닭장)처럼 생겼다.
·재일봉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 서봉 남쪽에 있다.
·쟁기산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강정 서쪽에 있다.
·쟁비산 `대덕면 매산리 `무정면 평지리
매산리의 것은 짓당골 남쪽에 있다. 평지리의 것은 짓당골 남쪽에 있다.
·저리매(절의산) `남면 지곡리
지곡리 식영정 서쪽에 있다.
·절뫼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학동 서남쪽에 있고, 외추리 보광사로 가는 어귀에 있다.
·절산 `대덕면 용대리 `무정면 성도리
산에 절이 있을 때 이런 이름이 많이 붙는다.
용대리의 것은 서적골 동쪽에 있고, 절이 있다.
성도리의 것은 서적골 동쪽에 있고, 정도사가 있다.
·절의산(節義山,저리매) `남면 지곡리
→저리매.
·점뒷산 `무정면 영천리
영천리 영천산 서북쪽에 있다.
·정각산(正角山) `금성면 대성리
대성리 정각 뒤에 있다.
·정간산 `용면 추성리
추성리 와매 북쪽에 있다.
·정두산 `담양읍 향교리
향교리 서우내 북쪽에 있다.
·제월산(齊月山.濟月山)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 마항 남쪽에 있다.
·젯당산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수곡 동쪽에 있고, 정월 보름에 산제 지내 왔다.
·조강정이 `금성면 외추리
외추리 외추 북쪽에 있고, 조강정이 있었다.
·조리봉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 등잔대가리 서북쪽에 있다.
·조산(造山) `창평면 장화리
장화리 조산거리에 있다.
·종산(鍾山,북산) `남면 무동리
→북산.
·주산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 서금밭 서쪽에 있다.
·주산(朱山) `창평면 삼천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의 것은 '시리봉'이라고도 한다.
삼천리의 것은 서낭당절 동쪽에 있다.
·주산(舟山) `창평면 장화리
장화리 사장거리 동북쪽에 있다.
·주산(主山)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 석은밭 서쪽에 있다.
·주포산 `창평면 삼천리
삼천리 주산 북쪽에 있다.
·준창봉 `남면 가암리
가암리 청촌 남쪽에 있다.
·중메 `대덕면 매산리
매산리 뉘에머리 북동쪽에 있다.
·중묏봉 `금성면 봉황리
봉황리 주걱등 서쪽에 있다.
·중산(시리산) `월산면 월산리
→시리산.
·중산(中山) `용면 용치리
용치리 배앙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진갓돌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소롱굴재 남쪽에 있다.
·진등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신양 동쪽에 있는 긴 등성이.
·진지모니 `남면 풍암리
풍암리 매봉 서쪽에 있다.
·집답봉(옹지봉) `금성면 원천리
→옹지봉.
·짓등몰랑 `용면 도림리
도림리 코찌몰랑 동쪽에 있다.
·짝굴산 `무정면 안평리
안평리 신안동 서남쪽에 있다.
·차일봉(遮日峯, 채알봉, 치알봉) `수북면 궁산리 `금성면 금성리 `무정면 덕곡리 `무정면 안평리
흔히 산이 차일을 친 것처럼 생겼다면서 '차일(遮日)'과 관련지어 `` 풀이를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골짜기를 깊게 품은 산'의
뜻인 '자일'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자일'은 ``에서 대개 '골짜기' 또는 '골짜기의 마을'의 뜻을 갖고 있다.
궁산리의 것은 중골 북쪽에 있고, '치알봉', '채알봉'이라고도 한다.
덕곡리의 것은 덕실 동쪽에 있고, 모양이 치알(차일)을 친 것처럼 붕긋하게 솟았다.
안평리의 것은 신안동 동북쪽에 있고, 지형이 채알(차일)처럼 생겼다고 하며, '매봉(梅峰)'이라고도 한다.
치알(차일)처럼 생겼다. 금성리의 것은 가짓몰고랑 동쪽에 있고, 채알(차일)을 친 형국으로 보고 있다.
·천장봉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용사재 서쪽에 있다.
·천젯등 `창평면 유천리
유천리 서당골 동쪽에 있고, 천제를 지냄.
·천지등몬뎅이 `창평면 일산리
일산리 상산 북동쪽에 있고, 천제를 지냄.
·철마봉(鐵馬峯) `용면 도림리
도림리 투구봉 동쪽에 있고, 산꼭대기에 무쇠로 만든 철마가 있었다.
·철마산(鐵馬山) `창평면 유곡리
유곡리 절산 동쪽에 있고, 철마가 있었다.
·치알봉(채알봉, 차일봉.遮日峯)
→차일봉
·침빠탕 `창평면 유곡리
유곡리 동거리 북쪽에 있다.
·코재이 `남면 연천리
연천리 선바우 서쪽에 있다.
·코찌몰랑(장바우) `용면 도림리
도림리 불묵골 북쪽에 있다.
·큰까금 `창평면 용수리 `남면 무동리
용수리의 것은 젯당산 동쪽에 있는 큰 산이다. 무동리의 것은 진틀배기 북쪽에 있다.
·큰맷등 `봉산면 양지리
양지리 팟박지기 동쪽 있고, 지형이 나는 매 형국으로 되었다.
·큰멧갓 `창평면 오강리
오강리 당골 동쪽에 있는 큰 산이다.
·큰봉 `남면 경상리 `남면 구산리
경상리의 것은 웃말 남쪽에 있는 큰 산이다. 구산리의 것은 큰말 북쪽에 있는, 큰 봉우리의 산이다.
·큰새터껄(큰새텃걸) `무정면 봉안리 `대덕면 운암리
봉안리의 것은 수문동 동쪽에 있고, 새터가 있었다.
운암리의 것은 진잔등 동쪽에 있고, 역시 새터가 있었다.
·큰음달 `남면 연천리
연천리 꽃밭등 남서쪽에 있다.
·큰한데미 `용면 용연리
용연리 가막골 동쪽에 있는 큰 산이다.
·퇴끼바우몬댕이 `무정면 봉안리 `대덕면 운암리
봉안리의 것은 수문동 동북쪽에 있고, 퇴끼바우가 있다.
운암리의 것은 평풍바우 동북쪽에 있고, 퇴끼바우가 있다.
·퇴미봉 `봉산면 기곡리
기곡리 용두봉 동쪽에 있다.
·투구봉 `대덕면 갈전리 `금성면 금성리 `용면 도림리 `월산면 중월리 `대전면 평장리
갈전리의 것은 여시골 남쪽에 있고,
금성리의 것은 시리봉 북쪽에 있고, 투구 형국이다.
도림리의 것은 감투봉 남쪽에 있고, 투구처럼 생겼다.
중월리의 것은 박달너덜 동남쪽에 있고, 투구처럼 생겼다.
평장리의 것은 화암 북쪽에 있고, 투구처럼 생겼다.
·티미산 `담양읍 금월리
금월리 정잣굴꼴착 서쪽에 있다.
·티봉(露積峯) `대전면 병풍리
밴들이 남서쪽에 있고, 노적가리처럼 생겼다.
·팟박지기 `봉산면 양지리
양지리 웃골 동쪽에 있고, 경사가 심해서 오르기가 팍팍하다.
·팩개 `금성면 원천리
원천리 외천 서쪽에 있다.
·팽풍산 `남면 연천리
연천리 연천 북쪽에 있고, 지형이 팽풍(병풍)을 친 것처럼 죽 둘러싸고 있다.
·푼산등 `봉산면 양지리
양지리 남산 동쪽에 있다.
·하남산(下南山, 아래남산) `담양읍 남산리
→아래남산.
·학이동 `남면 풍암리
풍암리 학정 북서쪽에 있다.
·할미당 `창평면 유곡리
유곡리 등잔골 동남쪽에 있고, 할머니 당산이 있다.
·함풍산 `무정면 덕곡리
덕곡리 덕실 북쪽에 있다.
·해앙골몬딩이 `월산면 오성리
오성리 군수동 뒤에 있다.
·행굣골몬댕이(생적굴몬댕이)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작살골몬댕이 서쪽에 있고, 전에 향교가 있었다.
·향로봉(香爐峯) `남면 정곡리
정곡리 평촌 동남쪽에 있고, 향로처럼 생겼다.
·호봉산(虎奉山) `고서면 산덕리
산덕리 목맥산 동쪽에 있고, 호랑이처럼 생겼다.
·화봉산(花峯山, 꽃봉산) `대덕면 운산리
→꽃봉산.
·황룡부주등(黃龍浮舟嶝) `고서면 주산리
주산리 주산 남쪽에 있고, 황룡부주형(黃龍浮舟形)이라고 전해 온다.
·황새봉(황사봉.黃巳峯) `금성면 금성리
금성리 평신기 남쪽에 있다.
·회룡산(回龍山) `금성면 외추리
외추리 용복골 남쪽에 있고, 용이 새끼를 돌아보는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효자봉(孝子峯) `남면 지곡리
지곡리에 있는 산으로, 효자와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다.
·후산(後山,뒷매) `고서면 산덕리
→뒷매.
&고개 이름들
·가롱재 `대덕면 운산리 `무정면 서흥리 `무정면 덕곡리
'갈라 들어가는 고개'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즉, '사이의 고개'의 뜻인 '새재'와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
운산리의 것은 서흥 북쪽에서 순창군으로 가는 목에 있다.
서흥리의 것은 금과면 청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덕곡리의 것은 엄고개 동쪽에 있다.
·가루개재 `창평면 의항리
'가로질러 들어가는 고개'라는 듯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이며, '지름길로 가는 고개'의 뜻인 '지릅재'와 듯을 같이한다.
의항리 화양촌에서 장화리 장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가매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큰골 서북쪽에 있다. 가마처럼 생겼다.
대개 가마처럼 생겨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믿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큰 고개'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감'은 '크
다'는 뜻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가마', '가매', '가무', '가미'가 들어간 이름들 중에 이러한 뜻을 지닌 것이 아주 많다.
·가시고개 `수북면 두정리
두정리 큰재 동쪽에 있다. 월산면 중월리 월곡으로 넘어간다. '가장자리에 있는 고개'의 뜻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각화재(각화치.角化峙) `남면 학선리
학선리 선동 북쪽에서 고서면 분향리로 가는 고개이다.
·개바웃재 `창평면 해곡리
해곡리 꽃밭재 동쪽에서 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개산재 `무정면 서흥리
서흥리 족자동에서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걸망재 `남면 경상리
경상리 두뭇골에 있다. 전에 도둑이 망보았다고 전해 온다.
·고갓재 `무정면 서흥리
서흥리 서흥에서 곡성읍 옥과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과치(果峙, 과투재) `담양읍 오계리
오계리 계동 남쪽에 있다. 과일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구렁고개 `금성면 원천리 `남면 무동리
'구렁진(깊이 들어가는) 고개'의 뜻으로 이 이름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구렁'은 '낮은 지역' 또는 '깊은 곳'을 의미한다.
원천리의 것은 옹지봉 남쪽에 있다.
무동리의 것은 무동촌 남쪽에서 구룡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구렁굴재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구렁굴에 있다. 강정자에서 정석리로 넘어간다. →구렁고개
·구룡고개 `남면 만월리
만월리 망월촌 남쪽에서 화순군 이서면 인계리 서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구렁고개
·구룡치(九龍峙, 구룡고개) `월산면 화방리
화방리 물통거리 동쪽에서 마산으로 가는 고개이다. 구룡쟁주형(九龍爭珠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구수재 `남면 인암리
인암리 인암 동쪽에서 화순군 북면 구수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기우재(기국치, 기우치) `대덕면 용대리
용대리 용대 동남쪽에서 곡성군 오산면 조양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기운(기울어진, 만히 비탈진) 고개'의 뜻으로 붙여진 이름
일 가능성이 있다.
·기우치(祈雨峙, 기우재) `대덕면 용대리
→기우재.
·까마귀재(오치.烏峙) `대덕면 금산리
금산리 무월리 남동쪽에서 문학리 원텃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깍굴재 `금성면 덕성리
덕성리 깍굴꼴착에 있다.
·깐치고개 `담양읍 가산리
가산리 가산 동북쪽에 있다. 나무가 무성하여 까치가 많이 날아왔다고 전해 온다.
·꼭두말재 `고서면 산덕리 `대덕면 장산리 `무정면 동산리
산덕리의 것은 마당바우 동쪽에 있다. 꼭두말 모양으로 생겼다.
장산리의 것은 새터 남쪽에 있으며, 매우 높다.
동산리의 것은 새터 남쪽에서 대덕면 금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꽃밭재 `창평면 해곡리
해곡리 쑥다리 동쪽에 있다. 꽃모습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남산재 `수북면 풍수리
풍수리 월산 남서쪽에 있다.
·노가리재(지넷등) `창평면 용수리
→지넷등.
·노가리재(노갈재, 녹치.鹿峙, 노갈치재) `창평면 유천리 `창평면 외동리 `창평면 오강리
유촌리의 것은 유촌 남쪽에서 창평면 외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외동리의 것은 선돌재 북서쪽에 있다. 지형이 사슴처럼 생겼다. 달리 '녹치(鹿峙)라고도 한다.
오강리의 것은 오강리에서 남면 지실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형이 노가리(사슴)처럼 생겼다 한다.
·녹치(鹿峙, 노가리재) `창평면 외동리 `창평면 오강리`창평면 유천리
→노가리재.
·느즌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된재 북쪽에서 용연리 분통으로 가는 고개이다. 경사가 완만하다. '늦은'은 '비탈이 심하지닌 듯하다. 은'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능고개 `무정면 정석리 `봉산면 연동리
이런 이름의 고개는 상당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능'자가 들어가 있어 꼭 '능(陵)'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토박이 ``
에서의 '능'은 대개 '늘어진'의 뜻을 담은 것이 아주 많다. '능고개'는 '는(늘어진) 고개'로 봄이 좋을 듯하다. '능골', '능말',
'능매' 같은 이름들 중에도 '늘어진'의 의미를 가진 것이 무척 많다.
정석리의 것은 매봉 북쪽에 있다. 전에 능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연동리의 것은 죽림 북쪽에서 기곡리 능안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능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소금젓때 서쪽에서 흥암리로 가는 고개이다.
·니거리재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여시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네 갈래로 길이 나 있다.
·당고개 `무정면 정석리
정석리 당고개에 있다. 산앵도나무가 많었다.
·당산고개(堂山고개) `금성면 원천리
원천리 내천 동남쪽에서 외천으로 가는 고개이다.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뭇거리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재너메 동쪽에 있다.
·당재 `금성면 원천리
원천리 베틀바우 동쪽에 있다. 서낭당이 있었다.
·대밭재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새적굴에 있다.
·대치(大峙, 한재) `대전면 평장리
→한재.
·덕재(덕치.德峙) `대덕면 금산리
금산리 시목리 서북쪽에서 무정면 동산리 옷밭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덕재골 `월산면 신계리
신계리 덕재골에 있다.
·도깻재 `창평면 유곡리
유곡리 개동터 동남쪽에 있다. 지형이 도끼처럼 날카롭게 생겼다.
·도롱굴재 `대덕면 금산리 `남면 만월리
금산리의 것은 도롱굴에 있다.
만원리의 것은 용연촌 남쪽에서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로 가는 고개이다.
·도시락재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 둥구밭재 동쪽에 있다. 재마루에 물이 나서 나무꾼들이 도시락을 먹었다고 전해 온다.
·독개재(독고갯재) `창평면 일산리
일산리 초분골재 서쪽에서 유곡으로 가는 고개이다. 돌이 많다.
·독고갯재(독개재) `창평면 일산리
→독개재.
·독굴재 `월산면 월평리
월평리 대밭골 남쪽에 있다.
·독재 `창평면 외동리
외동리 질마재 남쪽에 있다. 돌이 많다.
·독정재 `금성면 외추리
외추리 노천동 남쪽에서 무정면 봉안리 부안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동이재 `용면 두장리
두장리 비석등 남서쪽에 있다.
·된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새암골 옆에 있다. 경사가 심해서 오르기가 되다 한다. 여기서의 '된'은 '몹시 비탈이 심한'의 뜻을 가졌다.
·됫이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됫이골에서 전북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로 가는 고개이다.
·둥구밭재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 바람재 동쪽에 있다.
·뒷재 `무정면 서흥리 `봉산면 양지리 `봉산면 연동리
서흥리의 것은 황정목 북쪽에서 와우리로 뒤안산에 있다.
양지리의 것은 넘어가는 고개이다. 마을 뒤가 된다.
연동리의 것은 달갈몰랭이에 있다.
·등적굴재 `용면 통천리
통천리 등적굴에 있다.
·땅나구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큰까끔 동쪽에 있다. 지형이 당나귀처럼 생겼다.
·마각재(마각치.馬脚峙) `금성면 외추리 `무정면 봉안리 `무정면 오룡리
'산 가장자리의 고개'의 뜻인 '마갓재'가 원이름일 것이다. '마'는 예날 말에서 '산(山)이며, '갓'은 '가장자리'의 뜻을 담는 경
우가 많다.
외추리의 것은 매곡 남쪽에서 무정면 봉안리 부안동으로 넘는 고개이다. 말처럼 생긴 산이므로 고개가 다리에 해당한다고 전해 온
다.
봉안리의 것은 봉안 북쪽에서 금성면의 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룡리의 것은 다른이름으로 '매각재'라 하기도 한다.
·마실재 `금성면 금성리
금성리 금성리 꽃남쟁이 동북쪽에서 전북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로 가는 고개이다. '마실'은 '마을'의 사투리이므로, '마을이 있는
골짜기의 고개'의 뜻을 봄이 좋을 듯하다.
·마치(馬峙) `용면 두장리
두장리 등잔바우 동쪽에 있다. 말처럼 생겼다 한다.
·마항재(馬項재) `봉산면 신학리
신학리 뜅재 동북쪽에 있다. 지형이 말목처럼 생겼다 한다. 그러나, '말목'은 '말의 목'이란 뜻이라기보다 '산의 중요한 목'으로
봄이 좋을 듯하다.
·마흔대미재 `수북면 대방리
대방리 조리봉 서북쪽에 있는 큰 고개이다. 장성과 담양의 경계로 지형이 험해서 마흔 번을 쉬어서 넘어간다 한다.
·만덕재 `봉산면 연동리 `봉산면 유산리
연동리의 것은 배암골 남쪽에 있다.
유산리의 것은 퇴상재 북쪽에 있다.
·만사밭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지묵골 서북쪽에 있다. 경사가 매우 급하다.
·만화실재 `금성면 외추리-담양읍 학동리
외추리 만화실에서 담양읍으로 넘는고개이다.
·망태굴재 `용면 두장리
두장리 새태 동쪽에 있다.
·매각재(마각치.馬脚峙, '마각재) `무정면 오룡리-금성면 외추리
→마각재.
·매봉재 `남면 구산리 `대덕면 입석리
→산이름의 '매봉'
구산리의 것은 매봉에 있다.
입석리의 것은 선돌 남쪽, 매봉 밑에 있다. 운산리 송산으로 넘어간다.
·멸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산정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모툿재(母牛峙, 모우치) `대덕면 문학리
문학리 원텃골 남서쪽에 있다. 달리 '문재(문치.文峙)'라고도 한다. '모툿재'는 '모퉁이의 '재(산)'의 뜻을 갖는다.
·몰씹고개 `월산면 오성리
오성리 잉고개 동쪽에 있다. 암말의 생식기처럼 생겼다 해서 나온 이름인 듯하다. '몰'은 '말'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무너미고개 `무정면 성도리 `금성면 석현리 `대덕면 용대리 `수북면 주평리 `월산면 오성리
'물이 넘는 고개'의 뜻으로 이런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고개 위로 물이 넘을 수는 없다. 이 이름은 '산을 넘는 고개'의 뜻
인 '모너미', 또는 '뫼너미'가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월산면의 것은 서정 남쪽에서 창평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큰 홍수 때 창평으로 물이 넘어갔다고 전해 온다.
석현리의 것은 석현 북쪽에서 대성리로 가는 고개이다.
용대리의 것은 비암바우 서쪽에 있다.
주평리의 것은 매봉 북쪽에서 월산면 가산리 회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전에 물이 넘었다고 전해 온다.
오성리의 것은 몰씹고개 동쪽에 있다. 옛날에 물이 넘나들었다고 전해 온다.
·무동촌재(백남정재) `남면 경상리
→백남정재.
·무등재 `무정면 성도리
성도리 시봉산 남쪽에 있다.
·무리봉재 `무정면 동강리
동강리 동고지 동쪽에서 곡성군 오산면 운곡리를 거쳐 옥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묵은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질마재 서남쪽에 있다.
·문바웃재 `고서면 성월리
성월리 매봉 북쪽에 있다. 문바우가 있다.
·문재(문치.文峙, 모툿재) `대덕면 문학리
→모툿재.
·문재(門峙) `고서면 금현리
금현리 노채 서북쪽에서 광주시로 가는 고개이다. 광주로 가는 입구여서 '문'이라고 전해 온다.
·물목고개 `남면 무동리
무동리 큰까끔 동남쪽에 있다. 물이 난다.
·미륵실재 `용면 도림리
도림리 미륵실에 있다.
·미름몰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방정지 동쪽에 있다.
·미리산재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미리산에 있다.
·민재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치랏재 동쪽에 있다.
·민치(民峙, 민재) `무정면 서흥리
서흥 동쪽에서 순창군 금과면 청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밀재 `용면 쌍태리 `용면 통천리
쌍태리의 것은 쌍태 북쪽에서 전북 순창군 부흥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통천리의 것은 통천 북쪽에서 월산면 오성리로 가는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 넓은 밀밭이 있었다고 전해 온다.
·바람재 `수북면 대방리 `용면 용연리 `월산면 중월리
대방리의 것은 고싯등 북쪽에 있는 심방골 북쪽에 있다. 북쪽이 터져서 바람이 매우 세게 분다.
용연리의 것은 북향하고 있어 겨울철에는 바람이 세다.
중월리의 것은 큰골 서쪽에 있다. 북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바람맞이가 된다.
·바심재(소심치.所心峙) `월산면 중월리
중월리 월곡 북쪽에서 용흥리 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마을 가까이 있는 고개'의 뜻으로 붙은 '바순재'가 원이름일 것이다
. '바순(밧운)'은 '가까이 있는'의 뜻이다.
·박성고개 `고서면 교산리
교산리 안터 남쪽에 있다.
·반고개 `월산면 월산리
월산리 동산에서 월계리 농암으로 가는 고개이다.
·밤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피재 동쪽에 있다.
·방아재 `대덕면 용대리
용대리 수곡 서쪽에 있다. '방아 모양으로 생긴 고개'의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잘록한 고개를 의미할 것이
다.
·방아치(방아재) `남면 구산리
구산리 작은말 남쪽에서 화순군 이서면 석도리로 가는 고개이다. →방아재
·방애재 `남면 만월리 `대덕면 비차리
만월리 용연촌에서 화순군 이서면 도석리 석림촌으로 가는 고개이다.
비차리 방주간 남쪽에 있다. →방아재
·방애재고개 `대덕면 금산리
금산리 뚜깨빗등 동북쪽에 있다. →방아재
·배냉기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푸석골 서쪽에 있다. 전에 배가 넘어 다녔다고 전해 온다. 그러나, 그보다는 단순히 '산을 넘는 고개'의 뜻으로 붙여진 이
름일 가능성이 있다. '배'는 옛말로 '산(山)'을 나타내기도 한다. '냉기'는 '넘기다'의 전라도 사투리인 '냉기다'의 어간이다.
·배알이재 `남면 만월리 `대덕면 금산리
만월리의 것은 도룡굴재 동쪽에 있다.
금산리의 것은 여시골재 북쪽에 있다.
·백골재 `월산면 광암리
'백골'은 '뱃골'일 것이다. '뱃골'은 '산 고을'의 뜻이다.
광암리 능재 서쪽에서 백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백남정재(百男丁터,무동촌재) `남면 경상리-무동리
경상굴 남쪽에서 무동리의 무동촌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숲이 컴컴하여 도둑이 들끓어 장정 백 명이 있어야 넘었다고 전해 온다
.
·백동고개 `담양읍 반룡리 `담양읍 백동리
반룡리의 것은 신촌에서 담양읍 백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백동리의 것은 삼거리 동쪽에서 무정면으로 가는 고개이다.
·부리기재(하눌재) `용면 용치리
→하눌재.
·부석재 `담양읍 담주리
담주리 칼고개 북쪽에 있다. 부석부석한 돌이 많이 널려 있었다.
·북실고개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삼산낭고개 북쪽에서 창평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베틀의 북 형국이다.
·북지기 `남면 정곡리
정곡리 평촌에서 사봉실로 가는 고개이다.
·비오재(비오치.飛虎峙) `용면 추성리-용면 도림리.
용면 도림리의 도림 남쪽에서 추성리로 가는 고개이다. 지형이 날아가는 호랑이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사락골재 `금성면 대곡리
'사락골'은 '사이의 골짜기'의 뜻을 지닌듯하다.
대곡리 사락골에서 전북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로 가는 고개이다.
·사수개재 `창평면 의항리
의항리 화양촌 서쪽에 있다.
·사실고개 `창평면 유곡리 `창평면 해곡리
유곡리의 것은 서당골 위쪽에 있다.
해곡리의 것은 옥산등 서쪽에서 광덕의 새오개로 가는 고개이다.
·사장고개(射場고개)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새내미재 서쪽에 있다. 활터가 있음
·삼산낭고개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사장고개 남쪽에서 남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삽갯재 `무정면 동강리
'삽재'는 '사이의 고개'의 뜻을 지닌 듯하다. '삽'은 ``에서 '사이'의 뜻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동강리 방겟등 서쪽에 있다.
·상신기재 `금성면 금성리
금성리 평신기 북쪽에서 문암리로 가는 고개이다.
·새고개 `창평면 광덕리
광덕리 새고개 동북쪽에 있다. 새같이 생겨서 이 이름이 나왔다고 믿고 있는 사람도 많으나, '새'는 ``에서 '사이'의 뜻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새고개(조현.鳥峴) `봉산면 제월리
제월리 마항 동남쪽에 있는 고개 →창평면 광덕리의 '새고개'
·새매기재(조항치.鳥項峙) `남면 연천리 `고서면 고읍리
'사이의 목(지점)'의 뜻으로 '새목'이란 ``이 아주 많다. 이 이름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새미기', '새매기'로 되는 수가 아주 많
다. →창평면 광덕리의 '새고개'
연천리의 것은 새미기에 있다. 연천에서 외동리로 넘어간다.
고읍리의 것은 고서면 동쪽에서 창평면 외동리로 가는 고개이다. 지대가 높아서 새만 넘어다녔다 한다.
·새빗재 `무정면 봉안리
봉안리 새빗재몰랭이에 있다. 수문동에서 안평리로 넘어간다.
·새짓고개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마각재 북쪽에 있다.
·서낭당고개 `담양읍 삼만리
삼만리 정림골 남쪽에 있다. 서낭당이 있었다.
·서당재 `금성면 덕성리
덕성리 덕성리 시목 동쪽에서 전북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 외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서당이 있었다.
·서루고개 `용면 쌍태리
쌍태 서남쪽에 월산면 광암리 월천으로 가는 고개이다.
·서리고개(서리치.庶履峙, 설고개)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사암 동쪽에서 용면 쌍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서낭당이 있었다. '작은 고개'의 뜻인 솔고개(소리고개'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서방골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만사발재 북쪽에서 전북 순창군 복흥면 대방리 금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서삿골재 `용면 두장리
두장리 서삿골에 있다.
·선돌재 `대덕면 입석리
입석리 선돌 서쪽에서 외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선돌재(입석치.立石峙) `창평면 외동리 `대덕면 장산리
외동리의 것은 외동 동쪽에서 대덕면 입석리 선돌로 가는 고개이다.
장산리의 것은 노랑골 동남쪽에서 입석리로 가는 고개이다. →마을이름의 '선돌'
·선동재 `남면 학선리
학선리 개선동에서 고서면 분향리 금단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설고개(서리고개) `월산면 광암리
→서리고개.
·성성재 `무정면 동산리 `월산면 신계리
동산리의 것은 무지등에 있다.
신계리의 것은 굴레등 남쪽에 있다.
·성재 `무정면 오봉리
오봉리 담주봉에 있다. 오봉리에서 창평면 광덕리로 넘어간다. 고려 때 쌓은 성터가 있다.
·소롱굴재 `무정면 평지리 `대덕면 매산리 `무정면 동강리
평지리의 것은 소롱굴에 있다.
동강리의 것은 소롱굴에 있다.
동강리의 것은 번디장이 서쪽에 있다.
·소심치(所心峙, 바심재) `월산면 중월리
→바심재.
·소쿠리재 `월산면 월평리
월평리 독굴재 북쪽에 있다. 소쿠리처럼 생겼다.
·송정지고개 `담양읍 학동리
학동리 덕석바우 서쪽에 있다.
·쇄빗재 `대덕면 운암리
운암리 하운암 남쪽에 있다.
·수양재(수양치.垂楊峙) `금성면 봉황리-무정면 덕곡리.
덕곡저수지 위에서 금성면 봉황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전에 수양버들이 많았다고 전해 온다.
·순살막재(순사막재) `무정면 동산리-월산면 신계리
신계리 밤나뭇등 서쪽에 있다.
·숫줏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에 있다.
·수양치(수양재) `무정면 덕곡리
→수양재
·쉬영고개 `담양읍 반룡리 `담양읍 백동리
반룡리의 것은 말머리 북쪽에서 담양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형이 쉬영(호리병) 모양이다.
백동리의 것은 새터 서남쪽에 있다. 담양 광주간의 주요 지점이다. 고개가 높아 행인들이 쉬어 넘었다고 전해 온다.
·시술재 `봉산면 연동리 `봉산면 유산리
연동리의 것은 뒷재 동쪽에 있다. 고개가 높아서 한 차례 쉬어 넘어간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유산리의 것은 만덕재 동쪽에 있다.
·시앙굴재 `용면 두장리
두장리 안이니실 북쪽에서 금성면 원천리 시앙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곡재 `봉산면 기곡리
기곡리 연산 서쪽에서 신학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민안굴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신민안굴에 있다.
·아차정이고개 `월산면 화방리
화방리 구룡고개 남쪽에서 삼다리 안창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아홉사리재 `대전면 행성리
행성리 행정에서 수북면 오정리로 가는 고개이다. 아홉 구비가 졌다.
·안골재 `대덕면 운암리 `무정면 봉안리
운암리의 것은 안골에 있다.
봉안리의 것 역시 안골 마을에 있다.
·안두배미재 `용면 도림리
안두배미 위에 있다.
·안산재(案山峴) `수북면 두정리
두정리 안산에 있다. 월산면으로 넘어간다.
·어산이재(어산치.魚山峙) `남면 연천리
연천리 깐치봉 동남쪽에 있다. 유어산란형(遊魚産卵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엄고개 `무정면 덕곡리
'큰 고개'의 뜻을 지닌 듯하다. '엄'은 '큼'을 나타낸다.
덕곡리 설묏대이 남쪽에 있다.
·여시고개(여시골재) `남면 만월리
만월리 배알이재 동쪽에 있다. 전에 여시(여우)가 살았다고 전해 온다.
·여시골재 `대덕면 금산리
금산리 도롱굴 서쪽에 있다.
·역적고개 `금성면 덕성리
덕성리 시목 동남쪽에 있다.
·연이실재 `금성면 원천리
원천리 안시암골 북쪽에 있다.
·오두재(오두치.烏頭峙)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산정 서쪽에서 입석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리깃재(수양재) `용면 용연리
→오정자재.
·오정자재(오리깃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대흥 동북쪽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 오정자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오치(烏峙, 까마귀재) `대덕면 금산리
→까마귀재.
·옥굴재(옥굴치.玉屈峙) `남면 가암리
가암리 가암리 가남정이 동북쪽에서 화순군 북면 옥리의 옥굴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옻재(칠치.柒峙) `무정면 동산리
동산리 옻재 남쪽에서 대덕면 금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 옻나무가 많았다고 전해 온다.
·외앗굴재 `금성면 봉서리
봉서리 외앗굴에 있다.
·용두치(龍頭峙, 용머리재) `대덕면 장산리
→용머리재.
·용머리재(용두치.龍頭峙) `대덕면 장산리
장산리 장산리에 있다. 산머리가 용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용무골재 `남면 만월리
만월리 용무골에 있다.
·용사재(쪽재) `수북면 궁산리
→쪽재.
·용추고개 `용면 용연리
용연리 용추 동쪽에서 전북 순창군 구림면 월정리 닥사래로 가는 고개이다.
·울력치(鬱力峙, 하늘재) `용면 용치리
→하눌재.
·유둔재(유둔치.留屯峙, 환암촌재) `남면 경상리
경상리 경상굴 동쪽에서 가암리 자창으로 가는 고개이다. 전에 군사들이 진쳤다고 전해 온다.
·을목고개(이리목고개) `수북면 주평리-담양읍 가산리
주평리 매봉 북쪽에서 담양읍으로 가는 고개이다. 길이 구불구불하다.
·일곱거리(칠거리) `금성면 대성리
대성리 큰골 서북쪽에서 월율리로 가는 고개이다. 일곱 갈래의 길이 있다.
·일우목고개(日牛牧고개) `수북면 풍수리
풍수리 미산 동남쪽에 있다.
·입석치(立石峙, 선돌재) `창평면 외동리 `대덕면 장산리
→선돌재.
·잉고개 `월산면 오성리
오성리 내동 북쪽에 있다.
·작은부리기 `용면 용치리-월계리
문박골 동쪽에 있다.
·작은재 `봉산면 신학리 `월산면 월평리
신학리의 것은 단산정 남쪽에 있는 작은 고개이다.
월평리의 것은 큰골 동쪽에서 용암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장구목 `대덕면 갈전리
갈전리 꽃밭등 북쪽에 있다. 지형이 장구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장구목재 `남면 풍암리
풍암리 접실 남쪽에 있다. 장구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장구재 `금성면 외추리
외추리 매곡 북쪽에서 담양읍으로 가는 고개이다. 장구처럼 허리가 잘록하다.
·장굴재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초막굴 서쪽에 있다.
·장질깨 `월산면 광암리
광암리 새바탕 동쪽에 있다.
·재정굴재 `남면 정곡리
정곡리 재정굴에 있다.
·조수고개(조수고개) `봉산면 와우리
와우리 와우 남쪽에서 봉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이 고개로 바닷물이 넘나들었다고 전해 온다.
·조수치(潮水峙, 조수고개) `고서면 원강리
원강리 강동굴에 있다. 옛날에 바닷물이 넘어 왔다고 전해 온다.
·조항치(鳥項峙, 새매기재) `남면 연천리
→새매기재.
·조현(鳥峴, 새고) `봉산면 제월리
→새고개
·중고개 `남면 무동리
무동촌 북서쪽에 있다. 전에 고개 너머에 절이 있어서 중들이 넘어다녔다고 전해 온다.
·지경재(지경치.地境峙) `금성면 덕성리
덕성리 영월 동쪽에 있다. 담양군과 전북 순창군과의 경계이다.
·지넷등(노가리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갓점 남쪽에 있다. 지네 모양으로 되었다.
·지실재 `고서면 고읍리
고읍리 신양 서남쪽에서 남면 지곡리 지실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질마재 `창평면 용수리
용수리 수리봉 남쪽에 있다. 길마 형국이다.
·쪽돌재 `창평면 의항리
의항리 화양촌 북쪽에 있다. 지형이 족두리를 얹은 형국이라고 전해 온다.
·쪽재(용사재)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 쪽재굴에 있다.
·천치(天峙, 하늘재) `용면 용치리
→하눌재.
·초분골재 `창평면 일산리
일산리 초분골에 있다. 초빈터가 있다.
·치랏재 `대덕면 운산리
운산리 가롱재 북쪽에 있다.
·칠거리(일곱거리) `금성면 금성리
→일곱거리.
·칠치(柒峙, 옻재) `무정면 동산리
→옻재.
·칼고개 `담양읍 담주리
담주리 벌매 동북쪽에서 월산면 운교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옛날 도둑이 칼을 들고 숨어 있었다고 전해 온다. 그러나, '갈나무
의 고개' 또는 '줄기가 갈라진 고개' 뜻을 지닌 '갈고개'가 변한 이름인 듯하다.
·큰부래기 `용면 용치리
용치리 갈울 서쪽에 있다.
·큰재 `봉산면 신학리 `수북면 두정리
신학리의 것은 작은재 남쪽에 있는 큰 고개이다.
두정리의 것은 가시고개 서쪽에 있는 큰 고개이다.
·토꾸재 `담양읍 향교리
향교리 서우내 북쪽에서 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퇴상재 `봉산면 유산리
유산리 부오이꼴착 남쪽에서 배앙골로 가는 고개이다.
·풀섭재 `담양읍 운교리 `봉산면 대추리
운교리의 것은 운교 서남쪽에 있다. 풀짐을 진 사람들이 많이 넘어다녔다고 전해 온다.
대추리의 것은 최신보 위에 있다.
·풍정골재 `남면 만월리
만월리 풍정골에서 무동리 무동으로 가는 고개이다.
·풍풍재 `남면 풍암리
풍암리 댕갈막 동쪽에 있다.
·피재 `용면 용연리
용연리 피잿골에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양신리 피재로 가는 고개이다.
·핏골재 `남면 풍암리
풍암리 접실 동쪽에 있다.
·핑깃재 `고서면 분향리
분향리 조석교 남쪽에 있다. 소탕매 옆이 되어 소풍경에 해당한다.
·하눌재(천재, 천치.天峙, 울력재, 울력치, 부리기재) `용면 용치리
천치에서 전북 순창군 쌍치면 답동리로 가는 고개이다.
·한재(대치.大峙) `대전면 평장리
평장리 치막에서 장성군 북하면 두무동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한재'는 '큰 고개'의 뜻을 갖는다.
·함충재(함충치.含蟲峙, 함칭이재) `남면 연천리
연천리 꾀꼴봉 동남쪽에 있다. 지형이 꾀꼬리가 벌레를 물고 있는 모양 같다 한다.
·항골재(항굴재) `대덕면 매산리 `남면 정곡리
'큰 골짜기의 고개'의 뜻을 갖는 '한골재'가 원이름일 것이다.
매산리의 것은 항골에 있다.
정곡리의 것은 항굴 서쪽에 있다.
·항정목(項頂목, 황정목) `봉산면 와우리
와우 동쪽에 있다. 소의 목처럼 되었다.
·항정목재 `금성면 덕성리
덕성에서 금성리 가마실로 가는 고개이다.
·허구재 `수북면 대흥리
대흥 서북쪽에서 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환암촌재(유둔재) `남면 경상리
→유둔재.
·황새골재 `용면 용치리
용치리 황새골에서 전북 순창군 쌍치면 답동리 새터로 가는 고개이다. '황새골'은 '큰 골짜기 사이의 마을'의 뜻을 갖는다.
·황정목(항정목) `봉산면 양지리
→항정목
&내-못-저수지-호수 이름들
·가래방죽 `용면 용연리
가래방죽골에 있는 못. 가래(고기)가 많았다고 전해 온다.
·가산제(佳山堤) `담양읍 가산리
가산 서북쪽에 있는 못.
·개방죽 `고서면 교산리 `용면 두장리
교산리 도리챙이 동쪽에 있는 못.
두장리 밭몽달에 있는 못.
·경산저수지(京山-) `남면 경상리
경산 남쪽에 있는 저수지. 1962년 12월 31일 준공되었다.
·계천(鷄川) `고서면 분향리
→닭내.
·고가매방죽(고가제.高佳堤) `담양읍 가산리
가산 동남쪽에 있는 방죽.
·고내쏙 `대전면 응룡리
응기 북서쪽에 있는 내.
·고리대방죽 `수북면 고성리
고리대 서남쪽에 있는 못.
·고읍지(古邑池) `고서면 고읍리
구읍 동북쪽에 있는 못.
·골방죽(연-) `고서면 산덕리
후산 앞에 있는 방죽으로, 골짜기에 있으며, 연이 많았다.
·궁암제(弓岩堤) `수북면 고성리
궁암에 있는 못.
·금현저수지(金峴-) `고서면 금현리
금단동 동북쪽에 있는 저수지.
·나산방죽(羅山-) `수북면 나산리
나산에 있는 못.
·능안제(陵安堤) `봉산면 기곡리
천수동 남쪽에 있는 못.
·닭내(계천.鷄川) `고서면 분향리
소탕매 북쪽에 있는 내. 이런 이름을 흔히 '닭'과 관련지어 그 뜻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 중에는 단순히
'산(山)의 내'의 뜻을 갖는 것이 이외로 많다. '닭'은 ``에서 곧잘 '산'의 뜻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닭실(닥실)'은 '산 마을',
'닭재(닥재)'는 '산 고개', '닭내(닥내)'는 '산의 내'의 뜻을 담기도 한다. '닥', '닭', '달', '닫' 등이 모두 '산'의 뜻을 가진
친척말이다.
·담양호(潭陽湖) `금성면 대성리
영산강 본류를 가로질러 만든 댐으로 인해 생긴 인공 호수이다. 1973년 8월부터 1976년 9월 사이에 만든 것으로, 유역 면적(자체
유역)은 42.7㎢이며, 만수 면적은 4.1㎢가 된다. 총 저수용량은 6670㎥이다. 호수가 들어섬으로써 담양군 용면의 청흥리(淸興里)
와 산성리(山城리)의 2개 리가 없어졌다.
·대방제(大舫堤) `수북면 대방리
송징이 서쪽에 있는 못. 1931년 준공되었다.
·대치저수지(大峙-) `대전면 평장리
→한재저수지. 마을 이름의 '한재'.
·대흥제(大興堤) `수북면 풍수리
신기(新基) 서남쪽에 있는 못.
·덕곡저수지(德谷-) `무정면 덕곡리
덕실 서쪽에 있는 저수지. 일제 때인 1914년 2월에 준공되었다.
·오봉저수지(五峯-) `무정면 오봉리
오봉 서쪽에 있는 저수지.
·도깨비방죽 `창평면 의항리
진매 앞에 있는 못. 도깨비가 살아서 고기가 없다고 전해 온다.
·두장천(斗長川) `용면 두장리
두장리에 있는 내.
·두정제(斗井堤) `수북면 두정리
→하방제.
·뒷내물 `봉산면 삼지리
뒷말 뒤에 있는 내.
·뒷방죽(신월제.신월제) `수북면 고성리
신월리 남쪽, 뒤에 있는 방죽.
·바차제(飛 堤) `대덕면 비차리
차동 북쪽에 있는 못.
·백동제(柏洞堤) `담양읍 백동리
삼거리 남쪽에 있는 못. →마을 이름의 '백동'.
·병풍저수지(屛風-) `대전면 병풍리
노은동 북쪽, 병풍산 밑에 있는 저수지. 1959년 준공되었다.
·살구쟁이 `남면 연천리
쏘쟁이바우 서쪽에 있는 내. 전에 살구나무가 있었다.
·삼다저수지(三茶-, 삼다제.三茶堤) `담양읍 삼다리
서다 남쪽에 있는 저수지.
·삼사계(三 溪) `남면 지곡리
봉명정터 위를 흐르는 내.
·삼산제(三山堤) `수북면 고성리-대전면 성산리
고성리 성산 동북쪽에 있는 못. 그 바로 옆에는 '신월저수지'가 또 있다.
·새똘 `대전면 대치리
동부 북쪽에 새로 된 개울. '똘'은 '작은 물줄기'의 뜻이다.
·샛내물 `봉산면 삼지리
도지기 북쪽에 있는 내. 들 사이에 흐른다.
·송강천(松江川) `창평면 해곡리
성덕 서남쪽에 있는 내.
·수북천(水北川) `수북면 궁산리
궁산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내.
·시목제(枾木堤) `대덕면 금산리
시목 앞에 있는 못. →마을 이름의 '시목'.
·신월제(新月堤, 뒷방죽) `수북면 고성리
→뒷방죽.
·앞내물 `봉산면 삼지리
삼지 앞을 흐르는 내.
·연방죽(蓮-, 골방죽) `고서면 산덕리-고서면 교산리 `봉산면 기곡리 `대덕면 장산리
산덕리 개방죽 서쪽에 있는 못. 연이 많다. →골방죽.
기곡리 내산골 서쪽에 있는 못. 연(蓮)이 많이 있다.
장산리 장산리에 있는 방죽. 연꽃이 많았다.
·오례천(五禮川) `봉산면 제월리
마항 북쪽에 있는 하천.
·오리강 `봉산면 제월리
제월 북쪽에 있는 내. 영산강 상류가 된다.
·오리방죽 `남면 연천리
개정이들 위에 있던 못.
·외동저수지(外洞-) `창평면 외동리
외동 남쪽에 있는 저수지.
·용구천(龍龜川) `수북면 주평리
용구동 앞으로 흐르는 내.
·용담대(龍潭臺) `고서면 분향리
용대 서쪽에 있는 못. 깊은 못으로, 전에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 온다. →마을 이름의 '용담'.
·용대제(龍坮堤) `대덕면 용대리
용대교 위에 있는 못. →마을 이름의 '용대'.
·용못(용연.龍淵) `용면 용연리
용목골에 있는 못. 전에 용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마을 이름의 '용못'.
·용운저수지 `창평면 용수리
용운동 동남쪽에 있는 저수지.
·운암저수지(雲岩-) `대덕면 운암리
운암 앞에 있는 저수지.
·원유동저수지 `고서면 원강리
원유동 서쪽에 있는 저수지.
·원효제(元孝堤) `대덕면 비차리
원효 남쪽, 앞에 있는 못.
·월산저수지(月山-.월산제) `월산면 월산리
월산 북서쪽에 있는 저수지.
·월평제(月平堤) `월산면 월평리
신평 서북쪽에 있는 못. 1945년 10월 준공.
·입석제(立石堤) `대덕면 입석리
선돌 앞에 있는 못. →마을 이름의 '선돌'.
·장산제(章山堤) `대덕면 장산리
노랑골 남쪽에 있는 못.
·제비내 `남면 연천리
연천 앞에 있는 내. →마을 이름의 '제비내'.
·줄레 `대전면 응룡리
줄렛들에 있는 내. 전에 줄(풀)이 많았다.
·증암강(甑岩江) `남면 지곡리
지곡리 앞을 흐르는 내. 무동산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간다.
·진도섬 `금성면 원율리
오평 서쪽에 있는 못. 진도처럼 들 가운데에 떨어져 있다.
·청운제(靑雲堤) `대덕면 용대리
청운동 북쪽에 있는 못.
·하방제(두정제) `수북면 두정리
하방산 밑에 있는 못. 1935년에 준공되었다.
·하북저수지(下北-) `고서면 교산리
하북산에 있는 저수지.
·한재저수지(대치-) `대전면 평장리
평장리에 있는 저수지. →마을 이름의 '한재'.
·행성저수지(杏城-) `대전면 행성리
옥산촌 위에 있는 저수지.
·환계(環溪) `담양읍 가산리
소쟁이들에 있는 내. 환벽당 아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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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적
·용추사(龍湫寺)
-용면 용연리
용추봉(523m) 아래 있는 절이다. 백제 성왕 4년(서기 526년)에 혜총, 혜증 양 선사가 공동으로 창건하였고, 백제 무왕 25년(624)
원광대사가 원당을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조선 인조 8년(1630)에 소요대사가 중건하였다. 세경을 천 석이나 거두는 큰 절이었다고 하나, 6.25사
변으로 소실되었다. 1961년 원래의 절터로부터 동북쪽 300m 지점에 새로 지었다.
절터에는 부도(일명 사리탑) 6기가 늘어서 있으며, 춘담화 상탑(春潭話常塔), 월파당탑(月波堂塔), 소요대사탑(消謠大師塔) 등 3
개의 부도에 만탑호가 남아 있다. 부도의 형태는 팔각 원당 형식을 갖춘 일반형 부도형식을 따르고 있다.
`바바
·소산정 (小山亭) =고서면 고읍리 산정등에 있는 정자.
창녕 조(曺)씨가 세움.
·만옹정 (萬翁亭) =고서면 금현리
초봉골에 있는 정자.
·관수정 (관수亭) =고서면 분향리
갈미봉 남쪽에 있는 정자.
·소산정 (小山亭) =고서면 분향리
산정등에 있는 정자.
·명옥헌 (明玉軒) =고서면 산덕리
→쟁거정이. →지방특집
·쟁거정이 (명옥헌) =고서면 산덕리
후산 남쪽에 있는 정자. 옆 바위에 '明玉軒'이라 새겨져 있다.
·송강정 (松江亭) =고서면 원강리
대명산등에 있는 정자. 전에 송강(松江) 정 철(鄭澈)이 초막을 짓고 공부한 곳에 후손들이 세웠다.
·송포정 (松圃亭) =고서면 원강리
대명산등에 있는 정자.
·독수정 (獨守亭) =남면 연천리
산음동 동쪽에 있는 정자. 고려 충신 서은(徐隱) 전신민(全新民)이 나라가 망하자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뜻을 밝히고 은거했다.
·식영정 (息影亭) =남면 지곡리
소쇄원 남쪽에 있는 정자.
·용투정 (龍鬪亭) =남면 학선리
용머리 남쪽, 개울 가에 있던 정자.
·연계정 (蓮溪亭) =대덕면 장산리
대산 동북쪽에 있는 정자.
·단산정 (丹山亭) =봉산면 신학리
신학 서쪽에 있는 정자.
·송강정 (松江亭) =봉산면 양지리
푼산등에 있는 정자.
·면앙정 ( 仰亭)(민앙정) =봉산면 제월리
마항 서북쪽에 있는 정자. 중종 때 면앙정 송순(宋純)이 여러 작품을 남겼다.
·민앙정 →면앙정. =봉산면 제월리
·동화정 (同和亭) =용면 용연리
분통 입구에 있는 정자. 마을에서 세움.
·상월정 (上月亭) =창평면 용수리
새터 동남쪽, 월봉산 기슭에 있는 정자. 조선조 세조 때 추재(추재) 김 응교(김응교)가 세움. 주위의 경치가 아름다우며 많은 명
사들을 배출했다.
·문일정 (門一亭) =창평면 의항리
갈매실 북쪽에 있는 정자.
·소지암터 (蘇地庵터) =고서면 분향리
미륵불 뒤에 있는 터. 고려 때 소지암이 있었다.
·사직단터 (社稷壇터) =고서면 성월리
사직산에 있는 사직단의 터. 국가의 위기나 가물 때 제사를 지냈다.
·금성사터 (金城寺터) =금성면 금성리
금성산에 있는 금성사의 터. 1950년 6.25사변 때 소실되었다.
·고지산면소터 (高之山面所터) 고지산 밑에 있는 조선 때 고지산면소의 터. 고지산(高之山)의 이름을 따서 담양부 고지산면(高之
山面)으로 정하고,, 문암(文岩), 주진
·명봉정터 (鳴鳳亭터) =남면 지곡리
지실 서쪽에 있는 명봉정의 터.
·서하당터 (棲霞當터) =남면 지곡리
식영정 동쪽에 있는 터. 이 당에 서하 김 성원(金聲遠)이 살았다.
·용추정터 (龍湫亭터) =남면 지곡리
용추소 위에 있는 용추정 터.
·개선사터 (開仙寺터) =남면 학선리
학선리에 있는 절터. 바깥쪽. 신라 경문왕(경문왕) 7년(867)에 세웠다고 전해 온다.
·향적사터 (香積寺터) =남면 학선리
학미동 동북쪽에 있는 터. 향적사가 있었다.
·옥천사터 (玉泉寺基) =대덕면 문학리
옥천골에 있는 옥천사의 터.
·가미절터 가미절골에 =대덕면 성곡리
있는 가미절의 터.
·강정자터 (江亭子터) =무정면 동강리
강정에 있는 강정자의 터.
·동산점터 (東山店터) =무정면 동산리
옹동굴에 있는 동산점의 터. 조선조 때 옹기 그릇을 굽던 동산점이 있었다.
·문암사터 (門岩寺터)(빈대절터) =무정면 동산리
절터꿀에 있는 문암사의 터. 빈대가 많아 망했다고 전해 온다.
·빈대절터 →문암사터. =무정면 동산리
·옻밭터 옻밭 =무정면 동산리
위에 있는 마을 터.
·가미절터 가미절골에 =무정면 영천리
가미절이 있었다.
·담주군터 (潭州郡터) =무정면 오봉리
담주봉(潭州峯) 밑에 있는 담주군의 터. 고려 성종(成宗) 34년(995)에 설치하였다가 명종(明宗) 32년(1172)에 담양읍으로 옮겼다
.
·절터 북당골에 =수북면 대방리
절이 있었다.
·개암사방터 보싯골 =용면 도림리
북쪽에 있는 터. 개암사가 있었다.
·시정거리 두지동에 =용면 두장리
있는 쉼터. 느티나무가 많이 섰고 시정이 있다.
·관음사터 (觀音寺터) =월산면 화방리
봉명동 뒷산에 있는 터. 관음사가 있었다.
·대자암터 (大慈菴터) =창평면 용수리
상월정 자리에 있는 대자암의 터. 약 천 년전 고려 경덕왕 때 세웠다고 전해 온다.
·용운사터 (龍雲寺터) =창평면 용수리
용운동 뒷산에 있는 용운사의 터.
·의암서원터 (義岩書院基) =창평면 의항리
의암에 있는 서원 터. 선조 40년에 세워서 미암(眉岩) 유희춘(柳希春)을 제사지냈는데, 고종 5년(1868)에 헐렸다.
·동정사터 (동정사터) =담양읍 남산리
오층석탑 남쪽에 있는 터. 동정사가 있었는데 약 200년 전 금성산성으로 옮겼다고 전해 온다.
·성황단터 =담양읍 남산리
(城隍壇터) 무젯등 서남쪽에 있는 성황단의 터.
·동헌터 (東軒터) =담양읍 담주리
현 농산물검사소 자리에 있는 조선조 때 동헌의 터.
·우송사 (又松寺) =담양읍 양각리
사미정 옆의 절. 원래 1927년에 복애공(伏崖公)의 18대손 우송공(又松公) 국채웅(鞠採雄)이 정자를 지어 우송정(又松亭)이라 하다
가 딸 성해(性海)를 초대 주지로 하여 1963년 대한 불교 조계종으로부터 인가되었다
(性海)를 초대 =담양읍 양각리
주지로 하여 1963년 대한 불교 조계종으로부터 인가되었다.
·빈대절 →사봉실. =남면 정곡리
·서봉사 (瑞鳳寺)(빈대절) =남면 정곡리
절골에 있던 절. 약 300년 전에 빈대가 많아서 없어졌다.
·만일사 (萬一寺) =남면 지곡리
도장골에 있던 절.
·극락사 (極樂寺)(극락이절) =대전면 병풍리
절태골에 있던 절.
·극락이절 →극락사.
=대전면 병풍리
·원통사 (元通寺)(원통이절) =대전면 병풍리
병풍 동쪽에 있던 절.
·원통이절 →원통사.
=대전면 병풍리
·감남사 감남사터에 =대전면 행성리
있던 절.
·정도사 (正道寺) =무정면 성도리
절산에 있는 절.
·정화사 미럭절에 =무정면 안평리
있는 절.
·개암사 개암사방터에 =용면 도림리
있던 절.
·보리암 (菩提庵) =용면 월계리
추월산 상봉에 있는 절.
·용흥사 (龍興寺) =월산면 용흥리
도동 서남쪽에 있는 절.
·노천사 절골에 =창평면 삼천리
있는 절.
·녹천정 (綠泉亭) =창평면 삼천리
→일광사.
·서낭당절 진산리에 =창평면 삼천리
있는 절. 서낭당이 있었다.
·일광사 (日光寺)(녹천정) =창평면 삼천리
주산 서북쪽에 있는 절.
·우송사 (又松寺) 사미정 옆에 있는 절. 원래 1927년에 복애공(伏崖公)의 18대손 우송공(又松公) 국채웅(鞠採雄)이 정자를 지어
우송정(又松亭)이라 하다가 딸 성해
·고산사 (高山寺) =고서면 고읍리
대밭에 있던 절.
·보광사 (普光寺) =금성면 외추리
매곡 서쪽에 있는 절. 1951년 세움.
·동강조대 (東江釣臺) =고서면 분향리
증암천에 있는 대. 조 운곡이 낚시질을 하였다고 전해 온다.
·오층석탑 (五層石塔) =담양읍 객사리
석당간 옆에 있는 5층 돌탑. 보물 제506호.
·석도 (石棹) =담양읍 남산리
→짐대.
·오충석탐 (五層石塔) =담양읍 남산리
탑거리에 있는 돌탑. 높이 7m, 약 1, 300여년 전 에 세웠다고 전해 온다. 문화재 506호.
·종대 →짐대.
=담양읍 남산리
·짐대 (종대, 석도) =담양읍 남산리
짐댓거리에 있는 높이 30자 정도의 찰간. 아래는 화강암으로 되고 위는 쇠로 만들었으며, 철산(鐵傘)과 삼지창(三支槍)을 달았다
. 네 개의 풍경이 달려 있었는데, 두 개는 풍우에 떨어져 없어졌다. 고려 명종 2년(1172) 담주산(潭州山)에서 읍터를 현재 읍으로
옮길 대 세웠다고 전한다. 읍의 지형이 행주형(行舟形.배가 떠 가는 모습)이므로 배의 짐대(돛대)라고 전해 온다. 1794년 중건했
는데, 1838년에 낡아 부서진 것을 부사 홍기섭(洪基燮)의 고쳤다.
·사공석 (沙工石) =담양읍 천변리
→사공불.
·담양향교 =담양읍 향교리
(潭陽鄕校) 향교에 있는 담양군의 향교. 담양의 문묘로 명륜당(明倫堂),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죽림재 (竹林齋)(죽림정사) =고서면 고읍리
죽림동에있는 고적. 죽림 조 수문(趙秀文)이 이 곳에서 후진을 교육하였다.
·죽림정사 (竹林精舍) =고서면 고읍리
→죽림재.
·창평향교 (昌平鄕校) =고서면 교산리
교촌에 있는 창평의 향교.
·미륵불 (彌勒佛) =고서면 분향리
관수정 서쪽에 있는 고적. 소지암의 유물로 좌석불이다.
·소쇄원 =남면 지곡리
(搔灑園) 지석에 있는 고적. 중종 14년 (1539)에 양산보(梁山甫)가 지었는데 경치가 매우 좋아서 명현들의 칭송이 많다.
·개선사석등 (開仙寺石燈) =남면 학선리
개선사터에 있는 고적. 보물 111호.
·몽한각 (몽한각) =대덕면 매산리
매장리에 있는 고적. 순조 3년(1803)에 이 서(이서)를 추모하여 세움.
·언곡사석탑 (彦谷寺石塔) =무정면 봉안리
엉굴에 있는 언곡사 돌탑.
·송강정 (松江亭) =봉산면 유산리
쌍다리 옆에 있는 정자. 송강 정철(鄭澈)이 이 곳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학구당 (學求堂) =수북면 오정리
파란골에 있는, 조선 말의 서당.
·석당간 (石幢竿) =담양읍 객사리
객사리에 있는 돌짐대. 보물 제505호